열쇠도 품 안에 챙긴 모미지가 아야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귀털과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같이 밖으로 나서자, 출입 통제소에서 참배객과 주민을 가려서 검문검색을 시행하는 텐구 경비부대원과 경계작전 중인 대기조, 훈련용 바리케이드를 옮기는 대원, 경광봉으로 각각 길을 안내하는 치안과 대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투덜거리며 나온 모미지의 눈에 못 보던 요괴들이 끌고 온 수많은 수레가 관문을 통과해 들어오자, 그 광경을 본 아야가 웃으며 물었다.

"저 행렬은 뭐야?"

"몰라. 어차피 넌 몰라도 돼."

삐친 표정의 아야를 뒤로하고 설렁설렁 뒷짐을 지며 검문하는 텐구들에게 그녀가 다가가자, 바로 경례가 그녀를 반겼다.

"산 안에서 단결!"

"그래, 이 화물들 다 뭐야?"

"네, 오늘 미리 납품 예약받은 지저 광물입니다."

모미지가 경비대원에게서 건네받은 상황판에는 '7/24 10시 통과예정 11수레 물자 (콜탄, 희토류, 몰리브덴, 보크사이트, 니켈, 구리, 납, 텅스텐, 보석, 철광석 등 기타)'이라고 적혀있었고 슬쩍 아야의 눈치를 보고서 돌려주었다.

"열심히 근무하도록."

"네, 산 안에서 단결!"

"쳇, 자기만 알기야?"

"아씨, 알아서 뭐하게? 부대 보안사항을 어디 기사 내려고."

"오~ 그래? 그래! 기사 내려 그런다! 왜!!"

목걸이 클립을 끼운 카메라를 목에 멘 아야가 모미지와 옥신각신 싸우면서 산 밖으로 나가는 사이,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하타테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모미지가 완전히 아야에게 붙잡혀 사는 것 같네. 뭐, 나야 일만 제대로 해주면 되지만.'

치장물자가 든 나무상자를 옮기는 병력을 제외하고는 각각 꼬리를 확인하며 코를 킁킁거리는 창과 검을 든 백랑텐구들과 광학장비, 열감시 장비를 낀 카라스텐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그 사이에서 감시 장비를 만지거나 자기 몸만 한 무전기가 실린 가방을 메고 통신하는 캇파들을 바라보던 하타테는 그런 모습이 별로 안 익숙해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산 안에서 단결'이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보며 난감해 했다.

"취지는 좋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를 강요하듯 하는 분위기에선 나같이 소극적인 참여에 소외를 자청하는 요괴도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진 않은데 말야."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라 모미지와 아야의 뒷모습을 자신의 폰 카메라로 찍은 하타테가 나지막히 말했다.

"허어, 그럼 나도 조사 좀 해볼까."

'모미지가 대텐구님 명령을 받고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분명 아야의 행적도 관청에 보고되고 있을 거야.'

산기슭으로 날아가던 하타테는 자신의 염사능력으로 호기심에 아야의 행적을 스캔해보다가 자신의 집에서 헤드셋을 쓴 아야가 글을 받아적는 모습의 사진을 보고 무심하게 넘겼다.

"음악듣는 건가."

붙는 속력만큼 불어오는 바람에 옷과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다음 사진을 넘겨본 하타테는 근래 사진들이 모미지랑 함께인 사진이나 사진을 찍는 모습들밖에 없는 것을 보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좀 쓸만한 사진들은 안 보이네. 쩝."

사진을 살펴보며 주민 통제소에 도착한 하타테는 번호표를 뽑고 잠깐 기다렸다가 텐구 직원이 자신의 부르자 차분하게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무슨 민원으로 오셨습니까?"

'참, 밖에 잘 안 돌아다녔더니 많이도 바뀌었네.' 주변을 돌아보며 속으로 생각하던 하타테가 입을 열었다.

"기자라는 직업 업무상, 행정 공문에 쓸 건데 다른 요괴의 요(妖)적사항도 같이 알아볼 게 있어서."

건네받은 주민증을 기계에 꽂고 그 내용을 확인한 직원이 진지한 태도로 그녀에게 말했다.

"네, 일단 주민증 보안 절차상 혈액 감식도 해주세요."

하타테가 자연스럽게 혈액 감식기에 팔을 대자 바늘이 한번 팔에 찍히면서 채취된 혈액의 감식과 주민증이 꽂힌 기계에 불이 초록빛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한 직원이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네, 하타테 씨 주민 확인되셨고요. 성함이랑 찾으시는 분 성함, 관계 말씀해주세요."

"히메카이도 하타테. 찾는 요괴는 샤메이마루 아야. 관계는 같은 카라스텐구이자 동료야."

그러자 직원이 슬쩍 하타테의 눈치를 보았다.

"동료요? 동료 관계는 열람이 힘드신데요."

"왜? 같은 기자란 말야. 주민증에 쓰여 있잖아!"

따지는 하타테에게 직원이 옆 직원과 무언가 소곤소곤 말하더니 양해를 구하면서 자리를 비웠고, 정복을 입은 딱 봐도 직급이 높아 보이는 다른 카라스텐구가 토킨을 정돈하고 하타테의 창구로 와서 말을 걸었다.

"하하, 네. 기자시라고요?"

"네. 찾고 싶은 정보가 있어서 왔어요."

그러자 카라스텐구가 주민증을 다시 확인해보고 옆에 있던 무전기의 전원을 켜면서 물었다.

"그러시군요. '기자'야 우리 산에 많으니까요. 그럼 소속이 '신문사'이신가요?'

그러자 하타테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럼요. 화과자념보(花果子念報)가 제 신문이자 1요(1妖) 신문사죠!"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하타테를 병찐듯이 바라본 카라스텐구는 무전기를 끄고 몹시 곤란한지 잠깐 하늘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지만 그런 쪽 소속이시군요. 죄송하지만 요적사항은 개요(妖)정보보호를 위해 동료라도 악용할 우려가 있어 발급은커녕 열람도 되지 않습니다. 대텐구님이나 관청에서 발급하는 정통 '신문사' 소속 인증서도 필요하고요. 잘 살펴 돌아가십시오. 그럼 이만."

"에에?"

하타테가 놀라든 말든 카라스텐구가 주민증을 건네주며 돌아서자, 텐구 직원이 다시 자리에 앉아서 쫓아내듯 외쳤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잠깐! 그럼 아야도 그 신문사에 가입된 건가요!"

하타테의 외침에 카라스텐구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저희에게 분명 동료라고 말하시지 않으셨나요? 같은 '신문사' 소속도 아니시면서."

그 말과 함께 다시 돌아서서 다른 텐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창구의 텐구 직원과 다른 손님이 하타테를 멀뚱멀뚱 쳐다보자, 상황이 난감해진 하타테가 뒤로 돌아서서 천천히 걸어가다 다들 일 처리로 소란스럽고 바쁜 와중이었지만 조심스럽게 그 카라스텐구와 다른 텐구의 대화가 그녀의 귓가에 들어왔다.

"위에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자라면서요?"

"나도 기자라는 말에 혹했는데 말야. 그랬으면 이미 내가 무전 날렸겠지. 이봐, 대화해봤는데 쟨 아무것도 몰라. '신문사'에 알려서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보내자고."

"그래도 이 산의 기자라면서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정보까지 열람하려 했잖습니까. 저 기자 진짜 뭐죠?"

"자자, 진정해. 영입이 안 되었거나 아직 잘 모르는 비전속인가 보지."

주민 통제소의 문밖을 나선 하타테는 염사능력으로 그들의 대화 모습을 폰의 사진으로 저장한 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뭐지? 신문사라니 언제 기자들도 집단으로 하는 협동조합 같은 게 생긴 거야?'

"진짜 뭐지?"

작은 돌을 발로 차며 착잡해진 하타테가 나무 옆에 있는 평평한 돌에 앉아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뭔가를 공적으로 알려면 그 신문사에 가입해야 한다는 건데 난 내 신문도 있고 혼자 하는 게 더 끌리는걸. 하, 마음이 안 내키니 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네. 일단 이건 차선으로 두고 수상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니 계속 뒷조사를 해봐야겠어.'

"그럼, 어디보자. 모미지는 지금쯤 아야랑 뭐 하고 있으려나."

하타테가 염사로 모미지와 아야의 지금 모습을 화면에 담아내자, 얼굴만 봐도 빡친 모미지와 투덜거리는 아야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비쳤다.

"얘넨 또 싸우네. 그나저나 어디지?"


AM 10시 25분 인간마을 시장


인간마을의 장터에서 시끄럽게 으르렁거리던 모미지와 아야가 인파를 헤치며 주변을 날았다.

"아잇! 여긴 뭐하러 온 거냐고!"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해! 귀에 본텐[각주:1]이 박혔나!"

"허? 참나, 면상보니 다시 생각날수록 화나네, 야! 너 때문에 자리 비워서 부대가 엉망이 됐잖아!"

"네가 간수 못한 거지 그게 뭘 다 나 때문이래?" 아야가 피식 웃으며 맞섰다.

물건이나 식료품을 사고파는 장터에서 소란스러움에 골치가 아파진 모미지가 아야에게 따지자, 아야도 지지않고 맞섰다.

"뭐야? 고맙게 시비를 걸어주고 나야 반갑게 싸우자는 거냐?" 그녀가 검을 뽑아들며 살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호오, 이 많은 인파에서 피해가 나면 너는 마법사가 사은품으로 달린 무녀 종합선물세트에 퇴치당하고 나는 1면 기사를 얻고 좋네!"

아야도 카메라를 눈에 대고 셔터를 누를 준비하자, 주변의 사람들과 요괴들이 그녀들을 쳐다보며 웅성웅성거렸고, 모미지가 안 그래도 심란한데 짜증이 나서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젠장, 하우씨, 소란 피우면 안 되니까 참는다. 공문만 아니면 진짜. 콱!"

"후후, 그나저나 여기 어디쯤 있을 거라고 했는데."

아야가 주변을 살피다가 가게들이 그리 가깝게 붙어있지 않은 빈 공터의 그늘에서 무릎을 든 채로 주저앉아 두 손을 자신의 볼에 대고 두 팔꿈치를 자신의 무릎에 대며 지탱하면서 행인이나 상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코코로를 발견하곤 인사했다.

"코코로 양! 반가워요. 잘 돼 가나요?"

"음. 뭐 그럭저럭." 코코로가 가면을 빙빙 돌리는 것으로 인사했다.

"점심은 먹었니?"

"그럼."

"그래, 여기서 뭘 하고 있니?"

"응, 흰 늑대 텐구언니. 까마귀 언니가 사람이나 요괴들이 각각 어떤 표정을 짓고 대화에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관찰해보라고 해서 사람 많은 곳에서 쳐다보는 중이야."

이제 얼굴이 익어서 그런지 '언니'라고 불러주는 것에 슬쩍 기분 좋아진 모미지가 그러냐면서 같이 옆에 주저앉자, 아야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때요? 좀 알 것 같나요?"

그러자 코코로는 폈던 두 손을 주먹을 쥐어 볼에 괴면서 무표정한 특유의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어떨 때 어떤 표정을 짓는다는 것만 알겠어. 물건을 흥정하거나 살 때, 또 팔렸을 때 활짝 웃으면서 방방 뛰며 기쁜 거랑 흥정에 실패하거나 돈이 부족해서 못 살 때 눈꺼풀이 쳐지고 시선이 아래를 향하면서 한숨을 쉬고 슬픈 거, 좋아하는 걸 사려고 할 때 설렘으로 입꼬리가 올라간다든지, 다른 가게 물건이 더 많이 팔릴까 봐 눈치를 보며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눈썹이 인상 쓰듯 올라가는 시샘 같은 거라든지. 그래도 노가쿠할 때처럼 열심히 관찰 했다구!"

"와, 너 세세하게 잘 봤구나." 모미지가 대견한 듯이 코코로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하하 그럼! 난 감정을 제대로 배워서 더 성장하고 대단해지고 강해질 거야!"

"그 의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지금 모습도요!" 아야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 사진으로 남겼다.

"하여간, 방심할 틈을 안 줘. 그나저나 엄청 더웠겠다."

손에서부터 열기가 느껴졌는지 놀라는 모미지에게 코코로가 깜빡했다는 듯 손으로 볼을 두번 두드리고 부채를 펴서 자신에게 부채질했다.

이미 입은 체크무늬 남방셔츠의 소매를 접어 반팔처럼 만든 코코로의 모습을 보면서 아야가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모미지처럼 옷이 어깻죽지가 뚫려있는 게 아니라서 더운 날씨에 힘들겠어요. 잠깐만요."

말을 마치고 모미지가 맨 배낭에서 자신의 신문뭉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은 아야를 보고 모미지와 코코로가 같이 황당한 말투로 물었다.

"뭐하는 거야?" / "야, 뭐해?"

"후후."

아야가 웃으면서 팔짱을 낀 채로 엽단선을 여러 번 흔들자 세찬 강풍이 몰아닥치며 신문들을 사방팔방으로 널리 날려버렸고, 그 바람을 고스란히 맞은 코코로와 모미지의 머리모양도 엉망이 되었다.

"보다시피 일하는 중이지. 자, 코코로양, 결자해지(結者解之)니까, 언니가 정돈해 줄게요."

모미지가 투덜거리며 자신의 손으로 단발인 머리를 대충 넘겨서 정돈하는 사이, 어느새 꺼내 든 빗으로 아야가 머리를 빗겨주자 코코로는 잠시 부채질을 멈추고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치르노에게 사온 얼음을 부으며 생선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모습이나 시원해지라고 바닥에 물을 뿌리고 각각 부채를 흔들면서 더위에 힘들어하면서도 손님이 오자 웃으면서 장사하는 상인의 모습, 주위를 살피며 음료를 마시면서 구매할 물품에 대해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구경하는 다른 손님의 광경이 코코로의 눈에 들어왔다.

"이거 좀 더 깎아주면 안될까. 다들 왜 이렇게 비싸졌데 그려."

"에이, 우리도 남는 거 없이 깎은 거예요. 요새 살 수 있는 건 물가가 하도 올라서 이정도면 거저지 거저. 다른 집 가보봐도 이 가격보다 높을 거예요. 시가일테니까."

"안 살수는 없겠지만 요즘 가격들이 다 섭섭하네. 아쉽게스리."

"가격에다 요즘 다 오를 때에 우리도 어떻게든 사가시라고 깍을 만큼 깍아드리는 거예요." 

코코로는 주변 상점의 흥정을 바라보며 앉아있다가 아야가 바람에 날린 머리를 빗겨주면서 슬쩍 기분 좋을 때 쓰는 노인 가면을 꺼내 들어 감정표현하였고 그런 모습을 바라본 모미지는 코코로가 바라보는 시선을 살펴보고는 웃으면서 기분 겸 자신의 천리안으로 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음?"

모미지의 천리안 시야에 투시로 뚫은 건물 벽 너머로 미코가 수행자 몇몇과 함께 시장 근처에서 주변 사람들과 만나는 모습이 들어오자,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 모미지가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멀리서 주변 건물 벽 너머로 토지코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엥?"

"자꾸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아야가 예쁘게 빗긴 머리모양을 코코로에게 거울로 보여주며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별로 좋은 감정도 없고 시끄러워질까 봐 그냥 쳐다만 보면서 대답했다.

"아냐, 그냥. 기분 탓이겠지."

대충 얼버무리고 돌아서서 코코로를 보던 모미지와 아야, 그리고 계속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던 코코로의 귓가에 그녀들을 쳐다보던 몇몇 사람이나 요괴들이 웅성거리던 대화가 열기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스멀스멀 귓가에 들어왔다.

"쟤 좀 귀엽지 않아?"

"어디? 예쁘장하게 생겼네. 텐구들이랑 붙어있는 걸 보니 요괴인 것 같은데."

"어디 기분이 안 좋은 건가. 표정이 굳어있네. 오싹하게."

"어머, 쟤 좀 봐. 가면만 떠 있고 굳어서 표정이 하나도 없어. 표정을 저렇게밖에 못 짓나."

"괜히 요괴인 멘레이키겠어. 저 얼굴도 다 가면이겠지. 속은 아마 다를걸."

"예쁘지만, 표정을 알 수 없으니 저 요괴가 안에선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떻게 알아. 방심할 때 습격할까 봐 보는 사람이 다 불안해."

"저 요괴 표정이 소름 끼치도록 없어서 화나 있는 것 같은데, 여기 있다 습격 당하는 거 아냐? 무섭다."

인파 사이로 지나가는 소리를 들은 코코로가 움찔하며 황급히 심란할 때 쓰는 원숭이 가면으로 바꾸자, 아야와 모미지도 당황했다.

"방금 입턴 것들 누구야! 당장 안 튀어나와!"

방패와 검을 빼 들며 모미지가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서 웅성웅성 소란이 일었고, 코코로가 머리 모양을 살피던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자 아야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괜찮은지 옆에서 되물었다.

"아니 이것들이 요괴들 걸고넘어질 게 없어서 이젠 표정으로 걸고넘어지느냐고! 어!!"

안 그래도 이런저런 일에 쌓인 스트레스로 흥분한 모미지가 언성을 높이며 무력시위를 하자, 사람들이나 주변 요괴들이 동요하면서도 그녀의 동태를 지켜보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표정없는 모습을 멍하니 계속 쳐다보다가 집게손가락을 펴서 자신의 입 끝을 슬쩍 올려보고 눈 끝도 올려보거나 잡아당겨보던 코코로는 긴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코코로 양의 속이 많이 상했겠어요. 저들도 자기들만의 느끼는 감정이 있고 어떻게 말하든 자유라지만 남의 특징을 대놓고 함부로 대하다니 존중이라곤 없군요. 요괴가 원래 인간의 두려움으로 살아간다지만 저런 상처가 되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요."

아야가 코코로를 달래주자 코코로가 계속 거울로 얼굴을 비쳐보다가 어제 누에가 자신의 가면들을 치며 했던 말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여기 있잖아. 네 표정들. 그래. 이것들이 너고 너의 얼굴이자 표정들이라고.'

코코로가 슬쩍 거울을 올려 자신이 가면들을 비추면서 자신의 감정대로 움직이는 가면들의 표정들 하나하나를 살피다가 다시 노인 가면으로 고정하고는 도도하게 일어서서 자신에게 부채질한 뒤, 거울을 내려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쇼가 했던 말도 회상했다.

'무표정도 솔직한 표정이잖아요.'

"응? 코코로 양 괜찮아요?" 아야가 놀란 눈으로 묻자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면이든 얼굴이든 다 내 표정이니까."

그리고는 거울로 모미지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언니도 내가 괜찮으니까 그만 화 풀어."

"하나같이 입만 살아선! 아니 어떻게 된.. 응. 그래. 괜찮니?"

방패와 검을 도로 집어 넣은 모미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짚자 괜찮다는 표시로 공중에 뜨면서 가면들을 흔들었다.

"뭐해? 언니들, 나 얼른얼른 강해지려면 빨리 감정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주변이 그녀들을 쳐다보며 웅성거리는 와중에 아야와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날 준비를 했다.

"하긴, 이럴 시간도 없겠네요. 얼른 배우러 가야죠. 그래도."

아야가 냉혹한 표정으로 엽단선을 몇 번 흔들자, 돌풍이 몰아닥치며 주변을 휘저었다.

"벌 줄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모미지도 배낭을 들쳐메듯 뒷짐을 지면서 코코로와 아야를 따라 날아가자, 멀리서 쭉 지켜보던 토지코는 멍한 표정으로 난잡한 심정을 정리못해 하소연하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무리 지켜봐도 저 텐구들이 뭘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니까. 곽청아랑 엮인 건 좀 내키지 않지만 수상쩍어. 몰래 알아보려고 해도 저 늑대텐구의 시야에 걸리니."

바람에 날려 헝클어진 머릿결을 정돈하며 미코가 요괴나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향을 바라본 토지코가 뜨거워지는 햇살이 빛을 발하며 머무르는 공기마저 뜨거워지는 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느끼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태자님은 포교가 안 되는 점을 고려해 종교를 가지지 않은 자들과 어울리시고, 후토는 텐구와 절 것들 감시하러 갔고, 나는 바깥에서 텐구들을 감시하고. 우리 쪽도 할만큼 하는 것 같은데 곽청아도 솔직히 불안하고 믿진 못하겠지만 자기도 한 역할 해주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야. 곽청아 말도 그렇고 내가 느끼기에도 뭔가 수상쩍어."

입 밖으로 속의 말을 내려놓은 토지코는 가벼워진 듯이 날아올라 텐구들이 향한 방향으로 뒤쫓았고 일하는 부하들처럼 미코도 어수선한 인파 속에서도 열심히 이야기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 텐데 열사병이나 더위 타지 않도록 다른 분들 다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토요사토미미노 님."

"토요사토미미노 님. 도교에는 더위를 피하는 방법도 있나요. 하핫."

"하하하, 실질적으로 필요하면서도 유쾌한 질문이로군요. 따지고 본다면 더위는 본질이 육체적 고통, 선인이 된다면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답니다. 도교의 가르침에 따라 신념을 지니고 수행을 통해 평온함을 되찾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지요. 그러니 스스로 믿음을 가지세요. 제 측근들이 없어서 아쉽지만 이렇게 다 같이 나들이도 하고 질문을 받고 답을 해드릴 수 있으니 좋군요."

[각주:2]을 들면서 다른 도교 수행자들과 같이 과일이나 복숭아를 갈아 만든 냉 음료를 사 마시며 장도 보고 열심히 대화를 나누던 미코는 자신을 지켜보는 행인들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가게 구석에서 자신을 슬그머니 지켜보며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 몇몇을 흘겨보곤 눈을 감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고 귀를 기울였다.

수행자들과 말을 섞던 사람 중 한 명이 전단지처럼 도교에 대한 내용이 적힌 종이를 가지고 조용히 있는 미코에게 물었다.

"저기 예전에 마을에 뿌려진 이 종이를 읽다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수행자가 웃으면서 그 사람에게 말했다.

"아, 전에 뿌린 전단지군요. 궁금하시다면 직접 토요사토미미노 님에게 여쭤보셔도 괜찮습니다."

"토요사토미미노 님! 그럼 누구나 도교를 믿고 수행을 받으면 선인이 될 수 있는 건가요?"

그러자 미코가 눈을 뜨면서 천진난만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질문에는 답 해드려야죠. 그렇답니다. '기(氣)'라고 할 수 있는 음양(陰陽)의 조화와 오행(五行)의 순리에 따른 것. 도술을 연마하고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으며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면 누구나 선인이 될 수 있지요. 그것이 큰 꼬리가 달린 짐승일지라도 말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도교를 믿어보도록 하죠." 물어본 사람이 웃으며 말하자 미코도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쪽의 욕구와 열망이 들리는군요. 드디어 본질을 깨우치고 어두웠던 내면의 눈을 뜨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미코가 감사의 인사를 받고는 그에 답하듯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상쾌한 복숭아 음료를 마셔가며 수행자들과 쏟아지는 질문, 주변의 흥정, 하나라도 팔기 위한 열띤 홍보들로 어우러진 거리를 거닐자, 햇빛이 채운 구름 한 점 없는 텅 빈 마을의 하늘에서는 어디선가 금방 날아온 사나에가 연둣빛 긴 머리를 풀잎처럼 바람에 휘날리면서 돌풍으로 소란이 일었던 장터 쪽을 향해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유심히 곳곳을 살폈다.

  1. 梵天: 토킨에 다는 털뭉치 [본문으로]
  2. 笏 관위를 가진 자가 손에 드는 패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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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일요일 (교육 3일차) AM 9시 경


아침을 알리는 햇빛이 얼굴을 덮은 너저분해진 머리카락 사이로 감긴 눈을 비추자, 아야가 머리카락을 들춰내고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이불은 발로 차서 한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광경에 머리를 비볐다가 다시 베개에 자신의 머리를 파묻은 뒤, 서늘한 바람을 일으키면서 잠깐만 더 눈 붙여야지, 눈 붙여야지 하며 피곤함에 무력해진 아야는 조심히 주워온 이불을 덮으며 잠을 청했다.

등의 척추부터 시작해 허리와 날갯죽지로 번지는 감싸 쥐는 듯한 피로와 몸을 지탱하는 이불과 베개의 나른함에 시간과 몸을 맡기던 아야가 정신이 확 들며 재빨리 일어섰다.

"헉! 지금 몇 시지?"

시간을 확인하고 허겁지겁 씻은 뒤, 바람을 일으켜 물기를 털어내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린 그녀는 치마와 반팔 와이셔츠를 챙겨 입고 목에 검은 리본과 허리띠를 차고는 공문을 꺼내 배낭에 넣었다.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눈썹과 입술을 살펴보면서 얼굴에 미스트를 뿌리고 흡수가 잘되라고 손으로 툭툭 두드려준 뒤, 빗으로 머리를 빗고 닦은 수건을 빨래통에 집어 던지자마자 이불을 갰다.

주먹밥으로 대충 요기를 하고 토킨을 쓰고 양말을 신으며 배낭을 멘 아야는 서재에 있던 메모지의 글을 확인하자마자 자신에게 몇 번 뿌린 캇파 공산품인 데오트란트와 살충제, 부채 엽단선(葉団扇)을 챙긴 뒤, 굽이 긴 구두를 신으며 현관을 나섰다.



치안과 텐구들이 순찰도는 내부지역을 지나 검이나 창, 방패로 무장한 경비 부대원들이 초계임무를 보는 외곽지역을 지나간 아야는 관문인 출입 통제소에서 무전기를 든 다른 경비대원의 안내를 받고 경비대장실로 향했다.

건물 안 복도에 배치된 '서고'라고 적힌 책장에 붕붕마루 신문이 배치된 것을 확인하고 기분이 좋아진 아야는 배낭을 열어 7월 24일 일요일자 신간을 그 위에 채워놓고 복도를 거닐다가 어떤 방에서 큰 목소리가 들리자 흥미가 발동해 살짝 방문 틈새로 슬쩍 살펴보았다.

"정규병력인 달토끼들은 지배층인 월인들에게 착취와 억압을 받고 온갖 군, 노역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혜택을 받는 월인들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안하무인인 지배층 월인들에게 존중은커녕 봉사의 대가와 보람을 얻지 못하며 그들이 만든 비합리적인 환경에 저항하지 못하고 희생당하며 고통받고 있다. 3장, 그러므로 달의 병력 체계에 대해 우리는 달토끼와 월인을 구분해야 하며 달토끼는 월인의 꼭두각시임을 인지하고 그들의 행복과 권리를 짓밟고 그들을 자신들의 뜻을 위해 침략의 수발이자 수단으로 쓰는 원흉인 월인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고 평화를 깨뜨리는 그들을 규탄하여야 한다. 4장, 우리는."

많은 텐구들이 자리를 잡고 모여있는 가운데, '정훈병'이라는 완장을 찬 텐구가 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확성기로 정신교육자료를 읽으면서 대적관(對敵觀) 확립시간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아야는 들키지 않게 벗어나 복도를 걸으며 경비대장실에 도착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려던 아야는 문이 열려있고 문 너머로 많은 이들이 모인 데다가 방의 분위기가 꽤 심상치 않음을 느껴 멀리 떨어져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거 다 설명해봐."

어제자 경비부대원 근무일지, 치안과 체포, 구금 및 출동기록, 경보장치 경보 작동기록과 레이더 기지에서의 침입자 적발기록 등 많은 서류를 탁상에 꺼내놓은 모미지가 자리에 앉은 부관과 치안과장, 작전과장, 경보장치, 레이더를 담당하는 캇파 공병대장에게 다그쳤다.

"분명히 어제 부대가 침입자에 대한 수색작전을 시행하는걸 봤다는 목격자가 있는데 여긴 왜 하나같이 그런 기록이 없는 건지 설명을 좀 해보실까?"

"목격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록은 정확합니다. 정기적으로 하는 침입자 집단 체포훈련을 시행하는 걸 누군가가 착각했나 보죠."

기존부터 고위직이던 카라스텐구인 치안과장이 옷을 잡고 털면서 바람을 일으켜 몸의 열기를 식히고는 행정병이 가져온 냉차를 마시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집단 체포훈련이면 주체가 어디지? 경비부대면 밑에서부터 올라온 내가 모를리 없고 치안과인가?"

"그렇습니다."

"내부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과가 체포 훈련을 하는데 왜 외곽인 경비부대도 총동원되지? 부관!"

"정기적인 합동훈련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폭죽'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다보니 만전을 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적 탐지 전력의 8할을 담당하시는 대장님이 안 계실 때는 침입자 발견 및 요격능력이 경비부대와 캇파들의 감시장비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곤두박질치는지라 바로 최고경계태세가 발동된 만큼 각 부서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니까요."

부관이 서류의 일정표를 꺼내보이면서 그렇게 말하자 모미지가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기록 서류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말했다.

"단순한 훈련이었는데도 모든걸 총괄하고 알아야 할 나에게 보고도 없었고 기록도 없다? 분명히 내가 상관일텐데 말이야. 나도 그렇게 위로 즉각즉각 올려보냈던게 보고였는데 내가 위가 되니 보고랑 정황이 따로놀고 있잖아."

표정의 변화없이 태연하게 팔짱을 끼고 듣는 작전과장과는 상반되게 치안과장이 머리를 긁으며 미간을 찌푸리며 자세를 고쳐잡자 모미지도 인상을 팍 썼다.

"어떻게 생각해?"

"아마도오..  시정이 필요한 것 같아 보입니다."

모미지가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잠깐 생각하고는 말했다.

"게다가 지나가는 요정도 적발하는 경보장치와 레이더 탐지기가 그런 병력이 움직였는데도 탐지 기록이 깨끗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가끔 기계가 고장이 날 때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우리 캇파대원들이 예산 받는 즉시 바로 정비에 들어가고 있고요. 그리고 가뜩이나 결재할 서류가 체계없이 난잡해지니까 원래 계획에 있던 일이나 별일이 아니면 최대한 간소화해서 굳이 기록 안합니다. 행정에서 미리 있는 내용을 다 포함하면 행정맡은 텐구들이든 캇파들이든 다 과로사합니다. 경비대장님."

"네, 대장님. 경보장치가 너무 예민해서 지나가는 새나 두더지도 탐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적었다간 처리해야 할 서류가 2배는 늘 겁니다." 부관도 거들면서 말했다.

그러자 모미지가 서재에서 서류함을 꺼내 기록을 보이며 말했다.

"그럼 이게 21일, 글피 전에 작전과 정보사항 보고기록인데 왜 다른 부서의 기록에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던 대텐구님 명령으로 기술된 정기 훈련보고에 레이더 탐지사항이랑 경보가 울린 기록이 있는 거지?"

격양된 그녀가 들어서 내보인 서류에 공병대장과 치안과장이 답답한건지 성가신건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일단 저희 공병대가 경보장치와 통신, 탐지의 기술적인 부분을 맡고 있고 그에 따른 모든 정보는 작전과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공병대가 정규군인 경비부대가 아니라 의무부대와 같은 독립부대인 점을 고려하심과 더불어 사소하고 잦은 일은 기록 안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다 관행이었고 딱히 대텐구님이 지정한 규칙으로 정해진 게 없으니까요. 게다가 작전과가 기록을 하든 안하든 우린 일단 전부 드린마당에 그쪽 관할에 저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죠."

"힘드니까 관행으로 빠지는 건 그 점이 편한 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내가 없을 때는 전부 기록하고 보고할 수 있도록 하지. 작전과장은?"

그러자 작전과장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경비대장님도 아실 건 아셔야지요."

모미지가 꺼내놓은 서류를 살피며 찾다가 작전과장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자 작전과 서류는 왜 보이지 않지?"

그 말에 작전과장이 옆의 서류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탁상에 놓았다.

"제 수하들이 보고드리러 갈 때마다 안 계셔서 늦었습니다."

마치 눈치를 보는듯이 헛기침을 하며 위축하는 다른 요괴들처럼 슬쩍 작전과장을 쳐다본 모미지는 그녀가 높은 지위와 출신이었음이 내심 상기되고는 여전히 차분한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언성을 내며 말했다.

"어제 보고가 오늘 오게 되어있진 않는 것 같은데? 상부에서 더 들어온 정보는!"

"없습니다."

모미지는 떨떠름한 표정의 치안과장과 부관, 공병대장과 무표정에 가까운 시큰둥한 얼굴의 작전과장에게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다들 내가 자리를 비우는 와중에 빡세게 업무 보는거 충분히 이해하고 미안하네. 이 모든 상황은 내가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나도 미칠 것 같지만 대텐구님 명령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거니까 다 종료될 때까지 자기 맡은 일에 최선 다할 수 있도록 하고. 지금 서류건에 대해선 말야. 내가 대장이잖아. 내가 밑에 있을때보다 더위에서 내 부대일을 못 보고 있는건 이상하잖아. 엄연히 보고체계라는 게 있는 거니까 있는 그대로 신용있게 자료 내올 수 있도록."

그리고는 하소연하듯 팔짱을 끼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너희 믿고 싶으니까 믿을 수 있게끔 해줘."

"예."

모인 요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미지가 차분하게 말했다.

"좋아, 그럼 이건 이쯤으로 해두고, 공병대장, 듣자하니 이번에 새로 오이밭을 가꿨다면서."

"아, 하하. 벌써 귀에 들어가셨다니. 이번에 공사마감이 잘 돼서 대텐구님께 감독 잘했다고 받은 땅에 농사짓고 있죠. 부하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잘 영글었으니까 나중에 놀러 오시면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오, 그럼 그땐 제가 술도 챙겨 가겠습니다." 치안과장도 웃으며 말했다.

"뭐, 저희 캇파들이 공장 특구에서 만든 비료 덕분 아니겠습니까. 산 복구사업의 주춧돌이기도 하죠. 하하."

"캇파들의 노고야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니까, 솔직히 거기 근처 너무 시끄럽긴 해." 

"소음은 뭐 작업상 어쩔 수 없죠. 그러고 보니 요즘 작업이 잦아서 작업 병력 차출 건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힘들게 일하고 오는 거면 그쪽에서도 좀 잘 챙겨줘. 퇴근 시간 잘 맞춰주고 고기나 술이라도 더 돌려주던지."

"그럼요. 텐구들이 힘이 세다 보니 작업도 빨리 이루어지는데 보급이랑 예산 들어오는 대로 더 많이 챙겨주어야죠. 하하핫."

"응? 그쪽에 보급이나 예산은 후하게 쳐주지 않나?"

"그렇긴 해도 다 공사비랑 자재, 여러 설비나 소모품 등 줄줄 빠져나가니까요. 그런 것 빼면 부대 운영비는 사실 경비부대보다 조금 더 받는 정도입니다."

"치안과도 유치장이나 부대 관리비가 빠듯한데 다 거기서 거긴가 봅니다." 치안과장도 공감한다는 듯이 말했다.

"경리과에 물어봐야겠지만 어쨌거나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부관도 참여하며 입을 열었다.

"어디 가나 사정 마찬가지지 뭐, 더 부족한 거나 서운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게."

모미지가 냉차를 홀짝거리다가 푹 담구면서 열기로 가득해진 혀를 식히며 말하자 작전과장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치안과장도 '허허' 웃으며 분위기에 동조하자 공병대장이 대답했다.

"그럼요. 이렇게 밑 사정을 잘 헤아려주시는 경비대장님이 잘 알아주시니까 저희 캇파들도 마음 놓고 어울리면서 근무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과연 대텐구님의 융합령에 잘 어울리시고 혜안 있는 인사이시죠."

그러자 모미지가 공병대장에게 손등을 보이면서 상하로 흔들며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부 그만해. 하핫."

"그래도 듣는 게 싫지는 않지 않으십니까. 하하하."

"아니까 그만하라곸크크킄." 모미지도 덩달아 웃음이 터지며 말했다.

"아후훗, 암튼 나에게 너스레도 챙겨줄 신경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내 대원들도 신경 써주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산에선 다 한 식구인걸요."

"좋아, 그럼. 다 숙지 된 거 같으니 이번 회의는 이쯤으로 해두지."

"네, 그럼 저흰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작전과장과 치안과장, 공병대장이 경례하면서 물러가자 모미지는 남은 냉차를 다 마시며 부관을 돌려보내고 혹시나 싶어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그들 뒤를 슬며시 밟자, 현관에서 치안과장과 공병대장이 다른 백랑텐구에게 경례를 받고나서 서로 작전과장에게 하소연하듯 손짓을 크게 하며 이야기하고, 작전과장이 고개를 저으며 진정하라는 듯이 박수를 한번치면서 말하고 달래는 모습을 바라보고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빠르게 방으로 들어왔다.


스스로 찻잔들을 한구석에 치운 뒤, 뭔가 숨기는게 있는거라고 마음에 걸린 모미지는 자리에 앉아 작전과장이 내놓은 보안처리가 된 서류에 자신의 열쇠를 꽂고 돌린 뒤,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내용을 훑어 보았다.

서류에 '7/23 초계 작전 결과 보고'라는 제목과 함께 '발령- 최고경계태세'로 시작하는 내용과 같이

'10:17 설치류 다량 침입 적발 및 처리,

10:45 침입자 2명(기체생명체 1명 및 거동이 수상한 자 1명) 적발,
미확인 침입자 확인 후 경비 1대대 투입 및 치안과 긴급 체포조 출동하였으나 탐색실패,

15:12 기체생명체 추가 침입 적발, 상부의 감시 지시로 감시작전 개시, 설치류 추가 침입 요격. 

17:03 요정 추정 침입자 1명 북북서 방향 적발 및 요격' 와 같은 기록들이 적혀있었다.

"응? 어제자?"

모미지가 다음 장을 펼쳐보자 경보장치들이 산의 어디서부터 경보가 울렸는지 시간별로 표시된 지도와 액신(神) 경보 기록, 열 감지 카메라 사진과 대기 중 성분을 분석해 수상한 물체를 탐지하는 기체,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실시간 기록, 시간별 각종 레이더 탐지 기록들이 표시되어 있자, 꼼꼼히 챙겨본 모미지는 당혹스러워 다시 쳐다보았다.

"어? 어라? 뭐야 이거?"

잠시 잡생각을 멈추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근거로 잡고 머리를 굴려보던 모미지는 뒷목을 부여잡으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분명히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었다고 들었고 상황판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는데 지금 이건 그게 다 거짓말이라는 거잖아."

작전과의 기록 중에서도 '설치류'와 '기체 생명체'라는 단어에 딱 해당하는 두 명이 연상되던 모미지는 혹시나 하며 치안과 기록과 공병대의 기록, 작전과 기록을 사흘 것까지 가져와 교차검증을 해보았지만, 작전과 기록 외에는 두 과의 침입자 적발 기록이 사소한 침입 한 두개 빼고는 자료가 부실하거나 모두 깨끗한 것을 보곤 의자에 몸을 기대고 깍지를 쥔 손을 자신의 뒤통수에 포개며 천장을 보곤 격양된 마음으로 생각했다.

"하..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건 아니겠지."

하지만 아까 자신이 현관에서 모습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끈하며 속으로 외쳤다.

'이것들이 감히 사기를 쳐? 비리 잡으라고 만들어진 치안과가 공병대와 짜고 비리를 저지르지 않나, 한 번 다 징계를 내리든가 해야지.'

한숨을 길게 쉬고 서류를 정리하려던 모미지는 잠깐 머뭇거리며 속으로 되뇌었다.

'아, 가만. 근데 작전과장은 왜 이걸 나한테 저 둘을 피해서 알려준거지.? 서로 같은 기존 고위급일텐테 한 패가 아닌 건가?'

"어흠.. 뭐지. 뭘까. 분명 내가 불편하고 태도는 마음에 안들지만."

꼬리를 말았다 폈다하며 답답해하던 모미지가 자료를 계속 보면서 마음속에 걸리는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다 하나가 딱 걸려서 속으로 되뇌었다.

'게다가 전부터 걸리던 건데 우리 예산이 어떻게 처리되길래 다들 예산이 부족하다 이 소리가 나오는 거야? 공사가 잦은 공병대에 돈이 덜 돌면 문제가 있는 건데. 설마 이것도 비리..?'

순간 정색하며 당황한 모미지가 자신의 서재 옆의 책장에서 '경비부대 백서'라고 적힌 책을 허겁지겁 꺼내서 예산안 페이지를 펼쳐서 살펴보았다.

"산 보유 총 방위예산 4,826만엔[각주:1], 정규부대/ 경비부대 예산 1,965만엔, 대텐구령 직속부대/ 의무부대 720만엔, 공병대 1,336만엔. 대텐구령 직속 특수부대/ 신속 대응부대 805만엔,"

그리고는 지난번 회의에서 받았던 처리되지 않은 경리과 결재 서류를 꺼내 내용의 제일 끝 부분을 살펴보았다.

"경비부대 각 과 합산 경비부대 실질 운영 총예산. 1,946만엔."

하지만 그 아래 실질적으로 결제된 내용을 보자 모미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운영비 보급품 및 장비 5월 선급 현금 결제, 지출액 1,019만엔. 잔액 927만엔? 진짜 뭐지?"

현장에서 구르던 출신이라 서류가 익숙하지 않은 체질이던 모미지는 자신이 빼먹은 게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당황스러워서 과거 결재 서류를 꺼내려던 중, 한구석에 자리 잡은 무전기에 눈이 갔다.

"그래,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그녀는 무전기를 작동시키고 통신문에 써진 경리과 연락 코드대로 다이얼과 버튼을 눌렀다.

"9.5 그리고 3."

'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리자 모미지가 통신 은어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당소 경비대장실. 귀관 각응(角鷹[각주:2] 경비대장)인데 현재 음성 입감되는지?"

[당소 경리과, 입감 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각행(角行[각주:3] 경리과장)는 아닌 것 같은데 혹시 그쪽 각행이 주변에 있는지?"

[수신, 부재중입니다. 불러 드릴까요?]

"그럼 자네가 눈치껏 뭘 좀 해줘야겠어. 들켜도 책임져 줄 테니까 그쪽 부서 서류 중 5월 자 자료 좀 찾아봐."

[입감 했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미지가 방심할 시간도 없이 다음 무전이 들어왔다.

[찾았습니다. 올해 5월자 결제 처리내용입니다. 기밀이라 무전기의 음성 암호화 모듈을 작동 했습니다. 송신.]

"수신 양호, 이쪽도 작동 중이다. 거기서 우리 경비부대 5월에 계산된 예산이랑 보급품 물품 좀 확인해 주겠어? 금액 1019만 엔인데."

[에.. 각응님. 저희 원래 사용 가능한 총예산이 927만 엔입니다. 서류에는 이미 사용 불가능한 1019만 엔이 경보장치 구입 보수비로 나갔습니다만.]

모미지가 황당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가 추스르듯 다시 잡으며 물었다.

"이미 그전부터 있던 장비들인데 내역에 대해 확실하게 확인 가능한지? 송신."

[불가능합니다. 이미 서류에 거래내역이 그렇게 등록돼 있어서 구매물품을 가져와 대조하지 않는 한 저희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입감 했으니 계속 수고하도록. 이상."

수화기를 내려놓은 모미지는 그 즉시 책상에 주먹을 치며 분개했다.

'이런 썅! 감히 이것들이 공금횡령을 해!'

팔꿈치를 책상에 붙이고 볼에 주먹을 괸 그녀는 착잡한 마음으로 다른 손을 허리춤에 짚으며 되뇌었다.

'멀리 있는 것도 꿰뚫어보는 내가 안은 한 치 앞을 못 보고 있었다니... 이걸 대텐구님에게 보고 해야 하나, 공론화 하기 위해 기자들에게 알려야 하나. 기자라면 아무래도....'

그 즉시 천둥처럼 느닷없이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놀란 모미지가 허겁지겁 자료를 다 치우고서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시치미를 떼며 외쳤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부관과 함께 반갑게 손을 흔들며 웃는 아야를 보자마자 머릿속부터 뚜껑이 열린 모미지가 외쳤다.

"야, 저거 분리수거해서 내 직장에서 내다 버려!"

"네..넵?"

"어휴, 말하는 꼬라지도 참 모미지답네. 진짜 직장일 할 시간이니까 얼른 튀어나와."

당황하는 부관옆에서 손가락을 흔들면서 비웃는 아야가 공문을 꺼내며 말하자 모미지가 버럭 하며 받아쳤다.

"야! 저거 누가 진영에 들여보냈어!! 보안 똑바로 못하지!!"

"환상향 최속을 자랑하는 내 스피드로 다 뚫고 온 거란다. 후후."

빡친 모미지가 아야의 눈앞으로 다가갔으나 아야가 미동조차 없다가 뭔가 살짝 흐릿해지자, 손으로 한번 휘둘러보았지만 짚이는 것 없이 허공만 갈랐다.

'잔상(殘像)?'

"까하하핫. 뭐야? 천리안도 이제 약빨이 다 된 거야?" 모미지의 등 뒤에서 아야가 실실 비웃으면서 팔짱을 끼고 상반신과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모미지를 쳐다보았다.

"시끄러워. 방심한 거야. 이 잔상 생각보다 안 없어지네." 방패와 검을 챙긴 모미지가 아야에게 다가가 응징하기 위해 소름 끼치게 다가가자 아야는 태연하게 공문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뭐해? 교육시간이야. 즉 니가 일할 시간이 됐다는 거지."

깊은 한숨과 함께 떨리는 주먹으로 빡침을 표현하던 모미지가 아야를 죽일듯이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대텐구님 부하라 명령에 따를 뿐인 줄 알아."

"그래. 그럼 어서 가자." 아야도 미소를 지으며 배낭을 모미지에게 내려놓고는 신이 나서 허공을 날며 방 밖으로 나섰다.

그 광경을 본 모미지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부관에게 나가라고 싸인을 준 뒤, 그녀가 나가자 앞머리를 쥐어뜯으며 방패와 검을 배낭 위에 끼우고 멘 후,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아야의 잔상에 화풀이로 옆구리를 허공을 가르듯 치고는 서랍을 열어서 미리 챙겨둔 빈 필름을 배낭 주머니에 넣으면서 생각했다.

'부대 공금횡령 비리 보고누락에 안그래도 빡치는데 시간 아깝게 아야의 농간질이라니.. 속이 미여터지겠군.'

그리고 방을 나선 뒤, 문을 잠그면서 찜찜한 기분에 다시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가만, 그런데 왜 점잔빼는 작전과장만 정확하게 보고하고 나머지는 다 짜고 치는 것처럼 나에게 조용했던 거지? 그저 이것들이 이 비리와 다 연관이 있어서?'

방문을 잠근 열쇠를 품에 넣으면서 목을 한번 돌려서 풀어주고 두 주먹으로 볼을 문질러주며 머리가 아파서 목 뒤쪽과 관자놀이를 손끝에 힘을 주며 지압해준 모미지가 갑갑한 심정이 드러나는 표정으로 고뇌했다.

'부대 운영비에 해당하는 그 많은 돈이 경리과에서 눈감아주듯 빠져나갔다는 건데. 그럼 직책으로 따지는 융합령 전, 나보다 신분상 윗선이었던 텐구들의 농간일 수도 있으니 일단 대텐구님에게 보고하고 처리경과를 보면서 아야가 눈치채지 않도록 하타테 씨에게 내부고발겸 특종으로 쓰라고 자료를 넘겨줘야겠어.'

  1. 1엔을 현재의 오천엔~만엔정도의 가치로 추산, 동방 화영총 샤메이마루/테위 대사중 테위: 사실 1엔보다 더 좋은 재료가 있는데 이 쪽은 두 엔. / 아야: 너무 높습니다. (てゐ: 実は一円のネタより、もっと良いネタがあるんだけど…… こっちは二円 /文: 高すぎす……) 에서 일단 가치 대략 유추 (물론 둘 다 장난삼아 하는 이야기 일 가능성도 염두해 두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대장기에서 말 중 하나인 용마(龍馬)가 승격한 말. [본문으로]
  3. 대장기의 말중 하나로 승격하면 용마(龍馬)가 됨.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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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불경 조각을 집어 살짝 껍질을 벗겨내자, 겉에 써진 글씨와는 다른 내용으로 글자가 빼곡히 적힌 글이 모습을 드러냈다.

'체계는 그대로, 정견(正見) 27 고제(苦諦) 35, 2994.'

모든 사물이 그대로인지를 확인한 나즈린은 낯이 익지 않은 물건 하나를 걷어낸 뒤, 종이에 써진 글씨를 읽으며 책장의 맨 밑바닥 부분에서 왼쪽 5번째에 있는 책을 꺼내 99페이지의 24번째에 해당하는 글자를 다른 종이에 붓으로 받아적으며 다시 지령을 확인했다.

'정념(正念) 52 집제(集諦) 49, 6147.'

7번째 층에서 오른쪽에서 4번째에 있던 책을 꺼내 든 나즈린이 14페이지의 67번째에 해당하는 글자를 받아적었다.

'정어(正語) 83 고제(苦諦) 29, 4235.'

4번째 층에서 왼쪽으로 9번째 있는 책에서 23페이지의 45번째에 해당하는 글자를 받아적은 나즈린의 눈과 손이 학습되어 제법 빠르게 움직였다.

'정업(正業) 19 멸제(滅諦) 35.'

그녀가 책상에서 왼쪽에서 5번째에 자리 잡은 불상에 적힌 글귀 중 19번째에 해당하는 글씨를 받아적었다.

'정정(正定) 4 도제(道諦) 72.'

책상 왼쪽에서 두 번째에 배치된 벼루에서 모퉁이에 써진 상표의 글자 4번째를 그대로 적는 등, 쪽지에 적힌 그대로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보고 책상에서는 물건들을 살피며 글씨를 적어나간 나즈린의 모습에 쥐들도 곡식까먹으랴 냄새맡으며 주위 살피느랴 둘의 병행으로 분주해지고 덩달아 예민해져서 경계를 삼엄하게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그녀가 꼬리를 말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전부 마법으로 하는 건 뱌쿠렌에게 들킬 우려가 있어서 안 된다지만 번거로운데 암호도 마법으로 해주시면 안 되나.'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코를 킁킁거리는 쥐들의 꼬리를 흔드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주위 소리에 예민해진 나즈린이 시간이 조금 흘러 마지막 글자까지 받아적자, 조심스럽게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보고확인 완료 절의 밀착 생활이 가능해진 만큼 발각되지 말고 오늘부터 대상의 움직임과 의사를 철저히 보고할 것 '

"흠.."

나즈린이 종이를 내려놓고 다른 종이를 꺼내 붓으로 오늘 쇼에 관에 보고 들은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보고서를 평문으로 적고는 편지처럼 접어 서랍 바닥의 마법 진에 내려놓았다.

'솔직히 오늘 주인을 많이 못 봤지만 그동안 보았던 내용을 적었으면 됐겠지.'

그리고는 지령이 적힌 종이와 받아적었던 종이도 같이 서랍에 집어놓고 위장용이던 바닥 뚜껑을 닫은 뒤, 서랍문을 닫자, 큰 소리가 나서 살짝 움추려든 나즈린이 힘조절을 잘못했네 투덜거리고는 펜듈럼으로 잠가 버리고서 꺼내놓은 책들과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팔정도(八正道[각주:1])와 사성제(四聖諦[각주:2])라니, 역시 비사문천님 다우시군.'

나즈린이 돌아보자 주위 정찰을 마친 쥐들이 마지막으로 방문을 닫았고, 서랍을 닫고 이부자리에 누워서 얇은 이불을 감기 걸리지 않도록 배에 덮은 나즈린은 베개를 들척거리며 통풍 잘되는 파자마와 천의 시원한 촉감과 함께 꼬리가 눌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서늘한 잠자리에 몸을 기댔다.

"주인이랑 같이 지내는 와중에 이 일도 해야 한다니, 요즘 하는 일이 많은데 정말 조심해야겠어."

이런저런 생각들로 살짝 불편해진 기분에 두 팔을 기지개 켜듯 펼치며 마음속으로 하소연하듯 외쳤다.

'하, 요즘 왜 이렇게 신경 쓸 게 많지!'

그리고는 한숨을 한 번 길게 쉬고 눈을 꾹 감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난 어쨌든 비사문천님의 부하니까." 

그녀가 눈을 감은 것을 본 쥐들이 호롱불을 끄자, 하루 동안 쓴 신경만큼 나즈린의 눈꺼풀도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PM 10시 32분 몽전대사묘


"두 분 다 수고가 많으셨군요. 멘레이키도 잘 배우고 왔는가?"

미코가 웃으며 토지코를 옆에 끼고 여기저기 노닥거리다 코코로를 데려다 준 아야와 모미지에게 감사를 표하자, 아야가 웃음으로 답하고 모미지는 주변을 기웃기웃 살폈다.

"어엄청 많이 배우고 왔어!!" 두 손을 번쩍 들면서 자랑하듯 곁에 붙은 코코로에게 미코가 미소로 답했다.

"오호, 더 배우고 싶은 열망이 밖으로도 드러나는 것 같네요. 두 분께서 잘 도와주시고 있으셔서 그렇겠죠."

"에헤, 아네요. 코코로 양이 배우고 익히는 열망과 역량이 뛰어나서 그렇죠."

"하하, 그렇겠죠?"

쑥스러워하는 미코가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웃는 사이, 모미지가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주시하는 것을 슬쩍 눈치챈 아야가 모미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하고 치며 신호를 줬다.

"아잇! 왜!!"

"어딜 그렇게 봐?"

"아, 아냐." 모미지가 겸연쩍은지 말을 돌렸다.

"그럼 오늘은 무엇을 배웠는가?"

"감정 중 분노에 대해 배웠어! 분노의 본질적인 표현방식은 위협이고 강력한 동기이자 항의이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당한 표현이니까!"

코코로가 반야 가면을 빠르게 슬쩍 비추며 미코의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하자 미코가 터진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좋아했다.

"하하, 누가 손본 애인지 정말 영특하지 않아요? 하하핫."

"그렇습니다. 태자님."

대견스럽게 등을 토닥여주는 미코를 뒤에서 슬쩍 바라보던 토지코는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자네들도 여기까지 왔는가?"

후토의 호기심 어린 얼굴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아야와 계속 한쪽을 쳐다보던 모미지가 쳐다보며 인사하자, 후토가 됐다는 듯 손을 저었다.

"바래다주는 길이에요."

"그러고 보니 후토는 오늘 하루 종일 안 보였는데?"

토지코의 물음에 후토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음.. 그게 말일세. 실은 대접을 좀 받기는 했다네."

"오늘 교육에 참여해주셨거든요. 저녁 식사도 차려주셨어요. 코코로 양 보호자처럼요."

아야가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미코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하, 그런 자상한 면모가 있었군그래. 후토도 이번 협력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주고 있다니 나와 뜻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매우 감격스러운 일일세."

"황송합니다. 태자님."

후토가 깍듯이 예를 갖추며 미코에게 고개를 숙이자, 손짓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준 미코가 토지코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는 와중에 아야와 모미지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우리 멘레이키.. 아니 이름을 불러줘야겠지. 코코로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끝날 때까지 좋은 교육 부탁하네."

"네, 걱정마세요. 불교 측과도 지금까지는 잘 합의되었으니까요."

미소를 지은 아야와 악수한 미코가 모미지에게 손을 내밀자, 살짝 당황했지만 웃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와 악수를 하기 시작한 모미지는 아무 생각없이 흔드는 손에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가 그녀가 자신을 기묘하게 눈빛으로 표정에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한 인상을 받고 손을 놓은 뒤에도 멀뚱멀뚱 미코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이제 들어가 봐야겠군요. 오늘 하루 다시 한 번 수고하셨습니다."

"언니들 안녕! 조심해서 가!" 미코의 쓰다듬을 받은 코코로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두 분 다 어두운 밤길 살펴가십시오." 토지코도 고개를 숙이며 배웅했다.

"조심히 돌아가게나."

"네, 그럼 다음에 볼게요."

아야가 후토의 인사까지 합쳐서 답하다가 자꾸 벽 쪽을 유심히 보는 모미지에게 말했다.

"자꾸 어딜 그렇게 봐?"

"아니, 그게."

입을 더 열려던 모미지는 아야와 더 말 섞기도 싫고 더 귀찮아질 것 같아 말했다.

"아냐."

"치, 그럼 계속 한눈팔고 뭐야. 안녕히계세요."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 저 벽에 곽청아가 계속 대기 타고 있었는데. 얘기했다간 피곤하니까.'

아야와 모미지가 산을 향해 날아가자, 미코도 코코로와 오늘 배운 것에 대해 말을 걸며 들어가고, 토지코가 후토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저녁 따로 안 차려줘도 되지?"

"그렇다네. 오늘은 좀 많이 챙겨 먹었으니 말일세."

"다행이네. 들어가서 씻고 자."

그녀들의 말을 들으며 맞은 편 벽에서 죽치고 있던 곽청아는 싫증 가득한 표정으로 못마땅한 심기를 들어내며 말을 내뱉었다.

"참, 저 텐구 천리안이었던걸 잊고 있었네. 참 성가신 능력이라니까. 뭐, 그래도 입을 다물고 있어줘서 수월하겠어."

그리곤 후토가 방으로 들어가고 토지코가 혼자 남자, 특유의 음흉한 미소로 토지코에게 다가갔다.

"응? 청아 그댄 후토처럼 어디서 무엇하다 오는 거야?"

토지코가 한심하게 쳐다보자 곽청아도 자신의 비녀를 만지작거리며 일부러 다른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 재밌는 일이 많아서 관심을 두느라 쏘다니고 있답니다. 호호."

"무슨, 청아가 관심 있는 일이라니 그것참 불안한 일이네." 그녀가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그럼요. 분명 누군가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멘레이키의 교육에 관한 일이니까요."

그러자 토지코의 눈빛이 사나워지고 언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태자님의 일을 방해할 셈이냐!"

"워워, 아무리 제가 잘못을 많이 하고 다닌다지만 그렇게 모든 일에 초를 치고 다니진 않아요. 후훗, 다만 좀 수상한 게 많다는 거죠."

"수상한 점이라니? 혹시."

속으로 이번 일이 석연치 않았던 토지코가 주춤하자, 곽청아는 쉬지 않고 몰아붙였다.

"오늘 후토가 뭘 하고 왔을까요?"

"분명히 텐구가 말하길 저녁을 차려주고 보호.."

"정말요? 오늘 제가 다 보고 왔는데요?"

"무슨..." 토지코의 안색이 변하며 물었다

"오늘 후토는 말이죠. 절에 불 지르려다 실패했거든요."

"뭐? 분명 후토라면 그럴 것 같아서 거짓말이라도 설득력이 있지만.."

"거짓말은 아니에요. 절의 땡중들에게 직접 물어보시면 부인하지 않을 거니까요. 오히려 텐구들이 거짓말을 퍼붓는 광경이랍니다." 나풀거리는 천들을 잡아 손으로 흔드는 곽청아가 씨익 웃었다.

"그치만. 욕망을 볼 수 있는 태자님께서 진행하시는 일인데 그 정도는 눈감을 수도 있지 않나?"

"그래요. 토요노미미 님은 분명히 모두의 욕망을 훤히 꿰뚫고 있죠. 남의 의도 정도는 쉽게 간파하시는 분이신데 그걸 하나도 짚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가신다? 특히 당한 불교 쪽은 더더욱 조용하게 넘어가 도교의 수하에게 저녁도 대접하고 교육까지 해주고?"

"음.." 토지코가 턱을 괴며 눈을 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싸워온 불교와 갑자기 협력한다는 점도 의아하지만, 자신이 만든 요괴이자 도교적인 상징으로 쓸 수 있는 멘레이키에 불교 물을 들이는 것도 분명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일 텐데 넘어가시고, 도교의 지도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물렁물렁해졌나요? 보나 마나 그걸 감수하고 이 일을 진행해야 하는 큰 이유가 있어서겠죠."

"분명히 의심도 들고 석연치 않은 구석은 많아. 너무 갑작스럽고 우리가 하자고 한 게 아니라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이 양쪽이 하자고 한 거니까.."

"그래요. 토요노미미 님이나 땡중이나 멘레이키의 성장이니 뭐니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라는 거죠. 후후. 그렇게 서로 대화가 통하고 관용적이었다면 애초에 전쟁이 왜 일어났겠어요? 거기에 계속 이 일을 진행하게 하려고 거짓말하는 사건과 기사에 환장한 텐구까지."

"청아 말은 산이랑 절이랑 우리 태자님이랑 서로 다른 의미로 입을 맞췄다는?"

"단순한 음모론은 아닌 거 알죠? 엄연히 정황증거가 있으니까요. 그 예로 천리안을 가진 텐구가 분명히 숨어있는 저를 보았을 텐데 입도 뻥긋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있으면 일이 방해될 거라는 것으로 여겼던 듯이 말이죠."

토지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한 곳을 계속 쳐다보던 모미지가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지. 방해할 건가?"

"어머, 그런 과격한 표현을, 사정이 어떻게 되는 건지 좀 알아보자는 거죠. 특히 이걸 진행하고 있는 수상하기 그지없는 텐구들은 더더욱."

'하긴, 텐구들이든 절에서 사는 것들이든 꿍꿍이나 의도가 있다면 태자님이 모르진 않을 터, 그걸 다 반영할 만큼 태자님도 무엇이든 의도가 있으시다는 건데.'

특히 곽청아 모르게 해야 된다고 청아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했던 미코의 모습이 떠오른 토지코는 공감하는지 고개는 끄덕거리면서도 한숨을 한번 쉬며 말했다.

"하지만 신하로서 명령에 반하는 일을 할 수는 없어."

"참, 이건 반하는 일이 아니라 조사라고요. 그렇게 따질 거면 합의해놓고서 불을 지른 후토 씨도 이미 반하는 일을 했던 걸요. 하지만 그 어떤 벌도 받지 않았잖아요. 그 입싼 텐구들은 더더욱 감췄고요."

팔짱을 낀 토지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곽청아가 들뜬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내막을 이제 알아보도록 합시다. 우리도 알 권리 정도는 있잖아요? 능글맞은 산이나 뒤숭숭한 절 뿐만 아니라 남의 꿍꿍이나 욕망을 잘 보시는 분은 어떤 꿍꿍이가 있으신지도 말이에요."

"지금 말하지만 난 이해되지 않고 석연치 않은 부분에서만 알아볼 뿐 그 이상은 하지 않아."

"네. 그러든지요. " 곽청아가 만족스러운 듯이 요시카를 불러오면서 손을 들어 손가락을 접었다 피며 답했다.



PM 11시 10분 요괴의 산


산의 입구인 출입 통제소에 도착한 아야와 모미지는 경비대원들의 출입심사를 거친 뒤, 모미지가 집어 던진 배낭을 받아든 아야가 화를 냈다.

"아잇! 부서지면 책임 질 거야!! 똑바로 달라고!"

"시끄러워. 일 끝났으면 돌아가!"

"흥, 모미지 너도 올라가야지!"

그러자 모미지가 비웃으며 말했다.

"뭐래, 여기 내 직장이거든? 할 일 없음 올라가셔."

할 말 없어진 아야가 고개를 저으며 배낭을 메고 올라가자, 고소한지 피식 웃은 모미지는 품 안에 감춘 몰래 따로 빼놓은 필름을 만지작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산 안에서 단결!"

자신을 보고 경례하는 부하들의 경례를 받은 모미지가 엄숙하게 물었다.

"밤늦게까지 수고가 많군."

"아닙니다."

"그래, 내가 부재중인 동안 경계지역에 침입자가 생겼다던가 특이사항으로 경보 울린 적이 있어?"

"아뇨, 없습니다." 부하중 한 명이 상황판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럼 별일 없었네."

상황표로 열외자나 근무병력 사항을 파악한 모미지는 출동기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돌려주었다.

"근무 수고하고. 장비 고장 나는 거 있으면 항상 보고해."

"네."

돌아선 모미지가 더운지 손 부채질을 하며 집에 가기 전, 경비대장실로 가서 경비대장 근무일지를 대충 적은 후, 경찰업무를 맡은 치안과에서 추적 및 체포기록, 레이더기지에서의 감지기록과 경보장치 작동기록이 자잘한 오작동 외에는 백지인 것을 확인하고 결재 싸인을 마친 다음, 펼쳐놨던 쇼기판을 정리해 제자리에 두고 산으로 올라갔다.

어두워진 밤을 비추는 달은 너무 먼지 길가의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에 날파리와 풍뎅이, 사슴벌레들이 달라붙으며 빛을 쐬는 와중에 주변을 날아가던 모미지는 방범하러 지나가는 치안과 대원들의 인사를 받고 나서 나무에 붙어 노래하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길 위를 날았다.

경험상 경보기가 없는 나무가 우거지고 한적한 곳에서 모미지가 주변을 살피고는 나무에 걸터앉아서 바람을 쐬자, 시간이 한참 지나 하타테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잘 있었어?"

"어.. 제가 여기있는 건 어떻게 아셨죠?"

"뭘, 내 능력이 염사잖아. 모미지가 지금 뭘 하는지 생각하면 이 폰에서 다 보여주지."

모미지가 웃음과 함께 품 안에서 필름들을 꺼내 하타테에게 건네주었다.

"바꿔치기한 필름입니다."

하타테가 필름을 받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챙기고는 모미지에게 빈 필름을 주면서 말했다.

"좋아, 몇 번 더 수고해줘."

"물론이죠. 그 정도야 뭐."

그녀가 건네준 필름을 챙긴 모미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참, 혹시 하타테 씨도 아시나요? 아야가 모리야 신사에서 망신을 당했다고."

"아니, 무슨 일인데?"

"아야가 극성맞게 모리야 신사에서 무례한 짓을 하다가 사나에 씨에게 내팽개쳐졌다고 하더군요."

"뭐? 까하하하핫! 진짜 웃기네. 응징당해도 싸지." 하타테가 고소하다는 듯 숨 넘어갈듯이 배를 집고 낄낄거렸다.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하타테 씨는 기자 치고 밖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으신 것 같군요."

"아, 어후흨, 배 아퍼. 실은 말야, 사정상 내가 밖에 잘 안 돌아다니거든. 관청에도 관행상 중요한 일 아니면 참석을 안 해서."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신나게 웃은 하타테가 차분한 말투로 답했다.

"네. 그렇군요. "

"솔직히 요즘 좀 시끄럽잖아. 밤이든 낮이든 많이도 돌아다니고." 하타테가 혀를 차며 뒷목을 잡았다.

"여기는 경보장치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경비대장인 제가 보장하죠."

"응, 오늘도 엄청 시끄러웠는데 매미소리처럼 또 시끄러워지게 여기서 걸리면 안 되니까."

하타테의 말에 모미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오늘도'라뇨?"

"응? 모미지는 못 들었어? 오늘 장난 아니었잖아. 난 밖이 너무 더워서 햇빛에 피부 상할까 봐 집안에 있었는데도 엄청나게 시끄러웠다고, 사방팔방에서 백랑텐구든 카라스텐구든 날아다니고 경보장치가 울리고."

"네? 그랬었다고요?"

"응."

어디 남의 나라 이야기하는 줄 아냐는 듯 쳐다보는 하타테를 보고 병쪄진 모미지가 자신의 목 뒷덜미를 쓰다듬으며 당황해서 물었다.

"이상하다. 다들 별일 없다고 했는데."

"왜? 오늘 가 있을 때 산 쪽 못 봤어? 천리안이면 다 보이잖아."

그러자 모미지가 '아차.' 싶어서 놀라며 외쳤다.

"그러고 보니 산 쪽을 오늘 본 적이 없긴 없는데..."

손에 깍지를 끼고 목을 감싸면서 한숨을 한번 쉰 모미지가 덩달아 당황하는 하타테에게 물었다.

"아무튼 하타테 씨의 말이 사실이라는 거죠?"

"그럼."

하타테가 자신의 폰으로 경비대원들이 출동하는 사진이나 수색하는 치안과 대원들의 사진 등, 염사한 사진들을 보여주자 충격을 받은 모미지가 당황해서 말했다.

"하지만 심지어 보고서에도 각자가 하나같이.."

"엥? 어.. 음.. 어쩌면 신경 안 쓰게 하려고 그러는 거 아냐?"

하타테의 말에 모미지가 엄숙하게 말했다.

"상관에게 보고 누락은 어떤 것이든 초계 임무를 맡은 자에겐 중죄입니다."

"음, 난감하네. 뭐 잘못한 거야 문책해보면 나오겠지. 일단 우리는 우리 일이 중요하니까."

"아무튼, 확실하게 이번 일로 아야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 까마귀 때문에 제가 자리를 너무 비워서 군기 빠지고 태업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아야도 지 업보를 그대로 갚게 될 거야."

모미지가 그 말에 안도하면서 주변을 살피며 치안과 대원들의 이동방향을 파악하며 말했다.

"이제 슬슬 가보는 게 들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타테가 그 말을 듣고 염사로 폰에 가까운 곳으로 날아오는 경비과 텐구들의 사진을 찍어서 보며 말했다.

"와, 천리안 엄청 편리하네. 고마워."

"감사합니다. 뭐, 제 눈엔 하타테 씨 염사가 더 편리해 보이는데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하타테가 염사를 한 번 더 하자. 폰에는 마을로 날아가는 아야의 모습이 찍혔다.

"그냥 집에 가고 있네. 나도 집에 가야겠어."

"살펴가십시오. 그리고 잘 부탁합니다."

"응, 나도. 수고해."

모미지의 인사를 받으며 하타테가 날아가자, 모미지도 태연히 길로 돌아가 걸어가면서 풀벌래의 날갯짓 소리와 풀을 갊아먹는 소리, 매미소리와 함께 나무수액을 먹으러 딱딱한 껍질을 투닥거리면서 다투는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꽃무지와 주변을 날아다니며 붙는 벌들의 날개 비비는 소리를 들으면서 습기로 푹푹찌는 밤하늘을 걸어가며 고개를 들어 천리안으로 더 많이, 크게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다가 열권[각주:3]에서 펼쳐지는 오로라를 감상했다.

집에 들어와 지하에서 전선으로 연결된 전등을 켠 뒤, 구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게다를 벗고 양말을 빨래통에 집어놓은 후, 토킨과 목의 리본을 걸이대에 놓은 다음, 몇 달 전 캇파들의 공사로 생긴 지하수를 이용한 상수도 펌프에서 끌어온 차가운 물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아야가 주변에 시원한 강풍을 일으키며 수려한 유카타로 옷을 갈아입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의 물기를 말리던 아야는 하루 동안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며 긴 하품을 하면서 새 이불을 깔아 잘 준비를 마쳤다.

수납 가능한 공간에 빼곡히 자리 잡은 카메라들과 수많은 렌즈, 차곡차곡 쌓인 신문 뭉치나 책, 벽걸이 시계 하나와 스크랩 된 종이 자료들과 앨범, 벽마다 차곡차곡 붙은 바람에 흔들리는 사진들이 반기는 서재에서 경옥으로 만든 케이스에 담겨있던, 렌즈에 색이 있는 독서용 안경을 쓰고 '눈이 편안해지는 색소사용'이라고 글씨가 써진 안경다리를 만지며 높낮이도 조절한 뒤, 펜과 종이를 꺼내 자신이 문화첩에 쓴 내용을 보고 그대로 옮겨적은 아야는 종이들을 케이스에 넣고 열쇠로 자물쇠를 잠갔다.

그리고 안경을 벗고 배낭에서 카메라들을 꺼내 상태를 확인한 후, 렌즈를 갈거나 배낭에 챙기고 필름들을 갈아두며 나중에 인화하려고 빈 케이스에 넣어둔 그녀는 찍지 않은 필름이 담긴 작은 박스 하나를 배낭에 넣었다.

'니토리 작품'이라는 문구가 작게 써진 큰 오디오같이 생긴 기계에 달린 헤드셋을 쓴 아야는 전원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음향'이라고 써진 다이얼을 돌리고는 음악을 감상할 때 하는 모습처럼 고개와 몸을 까닥까닥 흔들고 리듬을 타며 흥얼거리면서 가계부를 꺼내 살피고 기록한 취재 및 기록용지를 꺼내 읽거나 쓰면서 정리와 편집을 마친 뒤, 작업이 끝나자 헤드셋을 벗고 다른 방에 자리를 잡고 있던 니토리가 만들어 준 윤전기를 돌렸다.

그렇게 자신의 붕붕마루 신문을 뽑아낸 아야는 헤드라인과 신문 상태를 확인하며 만족스러운지 몇십 장을 가져와 배낭에 넣었다.

짜릿함을 가누지 못해 신나는 표정으로 들뜬 그녀는 철저하게 문단속을 하고 모든 전등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 얇은 이불을 덮고 베개를 베면서 지친 몸을 기댔다.

'윙~'

순간 '탁!'하는 소리와 함께 반사적으로 아야의 두 손이 손뼉을 치자, 소리가 조용해짐과 동시에 아야가 투덜거리며 일어섰다.

"에이, 집에도 모기가 있었네. 그러게 왜 귓가에 윙윙거려, 짜증나게."

펌프로 가서 손을 씻고 곳곳에 캇파가 영원정에서 약재를 받아 공장에서 만든 'd-페노트린, 0.1%, 디클로르보스, 사이클로덱스트린(탈취성분),(탈취성분 α포함) 함유 에어로졸' 가정용 살충제를 곳곳에 뿌린 아야는 살충제를 배낭에 집어넣은 다음, 다시 이불에 몸을 기대고 몸부림을 한번 치며 등이랑 어깨가 모이지 않도록 근육을 풀어주며 편한 자세로 열대야를 보내려 잠을 청했다.


  1. 사성제의 깨달음과 고통의 원인을 없에기 위해 수행하고 행하는 도제(道諦)에서 8가지 수행방법이자 실천 덕목으로 1.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2.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기, 3.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4.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5.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6.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정진하기, 7.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있기 8. 정정(正定) 바르게 집중하기, 이렇게 8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으로]
  2.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중 하나로 네 가지의 귀한 진리 혹은 깨달음을 뜻하며 고집멸도(苦集滅道)라 하여 깨닫지 못한 자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사람인 만큼 고통을 겪는다는 진리인 고제(苦諦), 고통의 원인에 대한 업과 번뇌에 대해 통찰하는 집제(集諦), 고통의 원인이 소멸할 수 있고 소멸에 이르는 단계가 열반 및 해탈임을 일컫는 진리인 멸제(滅諦), 고통의 원인을 소멸하기 위한 수행이자 실천을 통한 행의 진리인 도제(道諦)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3. 지표면에서 80km ∼ 1000km에 해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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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전에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이 있지."

그렇게 말한 나즈린이 다우징 봉으로 방안 곳곳을 수색하고 쥐들도 이리저리 살피면서 코를 킁킁거리며 수상한 것을 찾아내려고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다가 펜듈럼으로 마지막 확인까지 끝내자 얌전해졌다.

"수상한 것은 없군. 오늘 내가 여러 방면에서 알아보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요괴의 산 쪽은 경비가 삼엄해져서 쥐들도 들어가질 못해."

"뭐? 저 조그맣고 무수한 쥐가 들어가질 못해?"

이치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들어가려고 했는데 다 들켜서 쫓겨나거나 고양이, 쥐덫, 쥐약과 같은 함정에 희생을 치렀어. 마치 이미 대비라도 해둔 것처럼 다녀온 애들이 하나같이 말하더라."

"뭐라고 했는데?"

누에의 물음에 그녀가 쥐 한 마리를 안고 쓰다듬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거긴 지옥이라고."

그 말에 마미조가 담뱃대를 내려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땅을 파고갈 수 있지 않겠쓰으이?"

"당연히 그래 봤다는데 감전되는 줄에 물 흐르는 관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까지는 봤다는데 침입을 막기 위한 격벽들과 함정이 잔뜩 있어서 땅 파고도 들어가기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하더군."

'음..' 하는 소리와 함께 다들 생각하기 시작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뭐,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많은 정보를 모았다고, 아야가 신문에 혈안이 돼 있다는 것과 들은 소문으론 텐구들이 모리야 신사에게 굴복하고 복종하면서 산의 문호도 개방했다고 해, 요즘은 텐구들이 아마노자쿠를 찾으러 다니나 봐."

"앵? 게네가 아마노자쿠를 찾는다고?" 이치린이 당황하며 물었다.

"응, 그랬어. 인간 마을의 인간들에게도 물어보나 봐. 그리고 그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있는데."

"어떤 사건?"

"인간 마을에서 밤중에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더군. 오니가 강력한 용의자로 뽑히고 있어."

"오니가? 어째서?" 누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목격자 중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뿔이 달렸고 오니들 목소리였데."

"더 자세히 말해줬으면 좋겠구마이." 마미조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튼, 오니들이 사람을 납치한 다음에 눈을 가리게 하고 그 사람의 죄를 털어놓는데. 자세히 말하자면 환상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거라고 한 말이나 요괴를 욕하거나, 또, 결계에 대한 내용을 캤는지에 대해 말야. 이미 그랬던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상대의 눈을 가리고 지들이 오니라고 밝히는 것도 애매하구마이, 게다가 이미 조사를 마치고 잡아왔다는 말이제?"

"응. 자기네 오니들은 미움을 받기 때문에 환상향을 미워하는 자를 잡아먹으면 뒤탈이 없어서 좋데. 다만 반성하고 사죄하고 다신 안 하겠다고 약속하고 입 닫으면 살려준다고 해서 살려줬데."

"그래? 그래도 너에겐 다 말해줬네?"

누에의 물음에 나즈린이 품에서 금을 꺼내며 말했다.

"당연히 매수했지. 솔직히 사람좀 없어지든 말든 상관없지만 금좀 쥐여주고 신변을 보호해 주겠다고 했어, 인간은 지들 안전과 물욕은 끔찍히 추구하는 욕심의 동물이니까. 아무튼,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히 오니들이 무녀나 관리자인 유카리에게 털릴 것이 뻔하니 입을 연 인간을 족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다신 안 그러겠다는 조건으로 풀어줬데. 습격은 많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몇 개월 안 되었고 세간에는 오니들이 핑계 대 사람을 먹으려고 잡아가는 걸로 보고 있고 이미 모리야 신사에서 직접 오니들을 털었다더군."

"흐음.." 마미조가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상한걸. 오니들이 뭐하러 그런 복잡한 짓을 해? 인간을 잡아먹고 싶으면 그냥 집 부시고 들어와 잡아먹었겠지."

"그러니까, 내가 아는 오니들은 그렇게 머리 못 굴려. 혹시나싶어 그 인간을 누군가가 감시하는 조짐이 있는지 다른 쥐들을 붙여서 역으로 감시중이야."

이치린도 더운지 두건을 벗고 누에의 말에 동조하며 말했다.

"어찌 되었건 몇 개월 안 됬을뿐더러 그자들이 관리자의 핑계를 대었고 환상향과 경계에 신경 쓰고 질서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풀어줬단 말이제. 입막음을 했다 캤지만 이 실종사건에 대해서이 소문은 퍼질 대로 퍼졌썼고. 관리자의 뒷배가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술수를 쓰거나 무언가 경각심을 주려는 것처럼 보이는 구마이."

"응? 술수라면?"

"말을 들으면 관리자나 무녀들이 쳐들어오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으인디, 누가봐도 관리자가 좋아할 만한 일을 하고 있응께 잘보이면서 처벌을 피해가려고 하는 거겠제. 물론 진짜 관리자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겄지마는."

"확실히 경각심을 주려고 한 거 같긴 해. 인간으로서는 상당히 두렵고 무서울 것인 데다가 자신이 저지른 것이 있으니까 말야." 나즈린이 소매를 접어 반팔을 만들고서는 달래주던 쥐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고것보다 더 의문스러운 건 말여, 오니들이 어떻게 그런 정보들을 알았냐는 것이제."

"마미조 네 말대로 그 우둔한 것들이 정보를 다룰 리 없으니 환상향의 관리자가 몰래 엿듣고 알아서 하라고 정보를 쥐여줘서 자기 수발처럼 쓰는 게 아닐까? 솔직히 누가 봐도 관리자에게 좋을 일이고 어디든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경계를 다루는 능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야 쉽겠지."

"유카리가 껴있을 수 있다는 건가요.."

누에의 말에 이치린이 고심에 찬 표정으로 외마디를 뱉었고 마미조가 팔짱을 끼면서 대답했다.

"음, 그럴 수도 있겄제. 아직 말밖엔 증거가 없으니께. 아무튼 수고가 많았구마이, 내는 직접 산에 들어가 봤더니만 쥐 아가씨 말대로 보안이 철저하고 요새처럼 꽁꽁 싸매고 있었제."

운잔이 그 말을 듣고 이치린에게 말을 하자, 이치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도 운잔이랑 같이 요새처럼 되어 있는 걸 봤어요. 운잔이 멀리서 더 자세히 살펴본 산 전경이 수많은 초소와 곳곳의 철조망, 경비를 도는 텐구와 갓파, 커다란 건물들로 마치 군사기지를 방불케 했다고 하네요."

하소연하듯 술술 털어놓는 운잔의 말을 끄덕끄덕 듣던 이치린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응? 걸리자마자 바로 무장한 텐구들이 쏟아져 나와 쫓아다닌 걸 보면 입자에 대한 대처도 빨랐다고?"

"그건 내가 직접 봤당께. 애당초 입구부터 철저하게 가려서 들여 보내더구마이. 이제 내가 겪은 일들을 말할 차례인것 같은디."

"오오, 어떻게 들어갔어?"

누에가 배시시 웃으면서 묻자 마미조가 내려간 안경을 손으로 슬쩍 올리면서 웃었다.

"다 나름의 방법이 있제. 텐구 글마들이 작년에 달에게 배후를 공격당한 이후에 외부에 대한 초 긴장상태가 되어버려서 경계가 삼엄해진 데다가 아예 지네 전통을 바꿔서 산안에 사는 주민을 단결시키고 관리하는 법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더랑께. 수많은 경보장치를 깔아둔 것만 해도 침입에 대해서 아주 노이로제가 걸려버렸쓰응께. 변신을 해도 알아차리고 잡으려 병력을 끌고 온 걸 봐선 말여."

"흠, 작년이라면 그때 달에서 천도니 뭐니 하며 이변을 말하는 거죠?"

"그러제." 마미조가 웃으며 이치린에게 대답했다.

"그 이변, 무녀들이랑 마리사랑 영원정의 레이센이 해결했다고 들었는데."

나즈린이 펜듈럼을 만지작거리며 말하자,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갇힌 방인지라 땀을 슬슬 흘리는 마미조에게 손 부채질을 하는 누에를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쩌면 텐구들이 자신들이 받은 '침략'을 산의 무녀가 응징해줬다고 여겨부러서 더 고마워하고 충성할 수도 있겄제. 시설을 확충해서 참배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보면 말여, 걸려서 산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어도 내 부하들이 들고 온 정보에 의하면 봄에도 텐구가 비슷한 기사를 썼었는데 평범했었고 텐구고 캇파고 산의 신들을 깍듯이 대한다고 하더랑께, 텐구가 쓰고 있는 붕붕마루 신문도 듣자하니 거의 그 사건을 보도해서 재미를 봤고 산 쪽에서는 위의 지침에 충실한 관영매체로 위상을 떨치고 있다든디 그 말인 즉슨, 산의 윗 요괴들의 의사를 아야 그 텐구가 매우 충실히 반영하고 있고 더 잘보이려 할 수 있다는 거제."

"음, 그렇다면 대충 추슬려서 달이 먼저 산을 침공했고, 그것에 대해 열 받은 텐구들이 문단속을 강화하면서도 달을 응징해준 산의 무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모리야 신사에게 보답을 해주기 위하여 산의 위임도 받아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가설이 만들어지는데?"

누에의 말에 운잔이 뭔가 떠올라서 놀란 눈빛으로 이치린에게 말하자, 이치린이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운잔도 산 쪽에서 신사로 가는 길이 생겼고 텐구들이 잘 닦아놔서 참배객들로 붐빈다고 말하네요."

"음, 그래도 걸리는 건 말이여, 이게 정말 모리야 신사나 텐구네 윗 요괴같은 위에서 시켜부러서 그 텐구들이 벌이는 것인지, 그냥 텐구들이 일을 벌여놓고 윗선에도 잘 보이려 하고 있는 건지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보니께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랑 산의 민심은 달에 대한 반감이 심하믄서도 달 출신이자 이번 이변을 해결했다는 달토끼가 있는 영원정과는 협상을 위한 대화창이자 의약품 거래를 하고 있다고 직접 들었으니께 그렇게 계속 친하고 있다는 것이 내는 걸리는구마이."

"일단 영원정이랑은 친할 만 하지. 인간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소문으로 들었는데 그 토끼가 달에서는 배신자로 통한다더라, 그리고 달에서 내려온 것들이랑 싸우기까지 했다며, 적의 적은 동지이지 않겠어?"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 누에의 말에 마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또 수상한 것으로 말이제, 산에 사는 선인한디 물어보니까네 산에서 큰 소음이 울린다고 하더구마잉."

"소음?" 누에가 자신의 날개들을 빙빙 돌리면서 바람을 일으키며 되묻자 마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은 것들이네.." 이치린이 따뜻한 방 온기에 목덜미에서 스미는 땀을 닦았다.

"확실히 산 쪽이 수상한 게 많고 지금까지 나눠본 이야기랑 정해본 가설이 일리는 있지만, 거기까지는 그냥 산이 이상하게 변했다는 것과 사건을 지 신문에 넣는 데 혈안이 된 텐구가 다른 텐구랑 한패를 이루어 이 일을 꾸미는 동기까지만 설명되고 뱌쿠렌과 도교대빵이 저번 가면 요괴의 이변 때문에 아무리 교육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싸웠는데, 대표라는 자격만으로 모두와 상의도 없이 서로 정식적으로 합의까지 간 건 설명은 잘 안 되는데." 나즈린이 의아해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흠, 역시 그 부분까지는 어떻게 안 되나. 아! 맞다. 걔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누구 말이여?"

"마미조. 걔 있잖아. 생각을 읽는 요괴!"

"설마 사토리 씨요?" 이치린이 경악하며 누에에게 물었다.

"그래, 걔한테 셋 다 생각 읽어달라고 하면 그냥 해결되는 거 아냐."

"허, 뭐 말은 되네." 나즈린이 기가 찬 듯이 말했다.

"뭐, 능력으로는 확실하긴 하겠구마이."

"그치? 지저까지 가야 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아쉬운 듯한 표정의 누에가 기운 빠지는지 몸이 푹 쳐지면서 날갯짓과 손 부채질을 멈추며 말했다.

"그래도 내가 이야기를 꺼냈으니 내가 사토리와 이야기해 보도록 할게."

마미조가 역으로 큰 꼬리를 흔들며 누에에게 바람을 일으켜주자 나즈린도 귀를 펄럭거리며 바람이 나도록 하면서 말했다.

"뭐, 그럼 나도 다른 요괴나 사람에게 수소문해보도록 하지, 최대한 의심받지 않게끔 말야. 수상쩍긴 해도 정말 단순한 취재인데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보는 눈이 많으니 꼬투리는 잡히지 말아야지."

"뭐, 그건 그렇고 오니들이 환상향 또는 요괴를 깠다거나 결계 이야기를 대며 인가를 습격했다는 건 야쿠모 유카리가 배후에 개입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데? 텐구들은 예전에 이변을 일으킨 아마노자쿠를 찾아다니는 것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이치린이 턱을 괴며 말하자 마미조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겄제. 둘 다 하나같이 관리자에게 잘 보이려 하는 행동이기도 하니께 말여."

"흠, 뭐야. 생각보다 진짜 더 복잡하잖아."

골치 아픈 표정으로 누에가 머리를 긁자 마미조가 웃으며 누에의 등을 토닥거렸고 이치린과 나즈린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종교 지도자 차원을 넘어 관리자의 영역이라.. 어쩌면 진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관리자에게 트집 잡히기 싫으니 관리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허울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생각해 보니 아마노자쿠는 본래 누구나 다 잡으려 했었잖아. 잡히지 않았으니 찾아다니는 것도 일리는 있어. 연관이 없는 확대해석일 수도 있다고. 솔직히 잡히면 그만한 특종이 어딨겠어?"

나즈린이 그렇게 말하고는 더운지 긴 소매를 접어 반팔을 만들고 케이프를 벗어서 갠 뒤, 꼬리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기사에 미친 텐구들인데. 에후, 푹푹 찐다. 쪄."

이치린도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은 후, 운잔의 부채질을 받으며 자신의 옷의 배 부분을 잡고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시원해지라고 바람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진지하게 듣는 자세를 취했고 누에도 마미조도 각각 서로를 쳐다보다가 마미조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여. 사건들이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점에서이 연관성에 대한 의심을 배제할 순 없는 노릇이제."

그리고는 땀이 묻은 안경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자세히 알 권리 정도는 우리에게 있지 안 겄어? 하나같이 의심스러운 부분투성이들이니께, 그중 하나로 도교의 귀에 뭘 낀 그 지도자가 마음속의 욕망 정도는 가볍게 읽는다고 들었는디 그랬다면 히지리와 텐구들의 생각쯤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을 거라는 거제."

"뭔가 있었으면 이미 알면서도 그것을 감수하고 받아들였다?"

"그럴 만큼 충분히 얻어 가는 게 더 있을 수 있다?"

이치린이 그렇게 말하고는 투덜거리며 같이 대답한 나즈린에게 따졌다.

"야, 쥐들 좀 나가라 그래, 방 안이 너무 더워."

"알았어. 솔직히 나도 더워. 치르노나 아야가 있었을 땐 시원했는데 둘 다 가니까 푹푹찌고 더워 미치겠네."

나즈린의 손짓 한 번에 많은 쥐가 숨겨진 구멍이나 문을 열고 사라지자, 마미조가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제. 그 부분도 좀 걸리는구마잉. 정말 평화와 화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교 측도 일부러 눈감아주고 히지리도 자신의 의사가 간파당하든 말든 확실히 무언가 확실하게 얻어갈 건덕지가 있으니께 서로 조건이 좋든 나쁘든 합의상 침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여."

"뭐, 확실히 그건 그러네. 사실 도교 입장에서도 멘레이키를 자기들이 만들었는데 우리에게 교육을 맡긴다는 건 정말 싫어하는 애들이 자기 작품에 덧칠하는 거랑 똑같은 거잖아. 그걸 감수하는 건데."

"정말 말씀대로군요.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 투성이라서.." 이치린이 누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일단 텐구들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비록 오늘도 그렇고 계속 다우징해봐도 찾아낸 건 아무것도 없긴 했지만. 내 다우징 능력이라면 찾아낼 수 있을 거야." 나즈린이 다우징 봉을 잡으며 말했다 .

"히지리랑 미코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하겠지?" 누에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살짝 떨면서 묻자 마미조가 대답했다.

"그건 내가 할러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말여."

"응, 솔직히 히지리에 대해서 캐는 건 좀 그래. 그럼 나는 지저에 다녀오지."

"저도 다른 분들에게서 정보를 모아보죠. 아직 너무 불확실한 추측이나 의혹만 많고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까요. 운잔에게 부탁해서 산의 동태를 계속 주시하도록 하죠. 특히 그 소음 부분이 걸리니까 한번 알아봐야겠어요." 이치린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며 말했다.

"그럼 텐구들의 배후가 더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확실히 정보를 더 모아야겠네요. 히지리 님이나 도교 측의 의도에 대해서 도요. 지금은 그저 확실하지 않은 의혹뿐이니까요."

"그러제. 텐구들이 산 안을 샅샅이 감시하고 지들을 꽁꽁 사매는 것도 무언가 과민반응처럼 과도한 측면이 있응께, 뭔가 들키면 안 되는 듯이 말이제."

"그럼 이야기는 서로 다 꺼낸 것 같은데? 너무 강제적으로 진행되긴 해도 교육이라는 명분이 명확해서 꿍꿍이가 있다면 텐구들이나 우리랑 도교 같은 양측이 부인 못할 증거가 필요한데, 아무리 알아봐도 이걸 파면 팔수록 수상하잖아."

나즈린의 말에 이치린도 덜 식혀진 땀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튼, 다들 언니나 텐구, 도교 측등 다른 요괴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꼬투리 잡혔다간 더 시끄러워질 테니까요. 운잔한테도 텐구들이나 산을 잘 감시하라고 다시 한 번 말해두죠. 그럼, 더워서... 아니 말이 잘못 나왔네, 이제 물러나도록 하죠. 여기서 너무 시간 오래 끄는 것도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요." 이치린이 허겁지겁 일어서려다 당황하자 나즈린도 타이밍이라는 듯이 황급히 일어섰다.

"그러게, 일단 쥐들도 풀어보고 인간 마을 쪽에서 사건이나 소문들도 연관이 있나 알아볼게. 텐구든 도교든 음.. 히지리든지 간에 말야. 내 다우징 능력이면 수상한 건 바로 물증으로 찾아낼 수 있으니까."

"수고 좀 해주어야겠구마잉. 우리야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멘레이키의 교육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의혹이 생기는 부분을 마땅히 증명해보자는 걸 알자는 것잉께 진실에 다가가는데 능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겄제"

"그럼, 나도 내 능력으로 지저에 다녀오도록 할게. 정말로 그리 내키진 않지만." 누에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팔짱을 끼고 긴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말하고 마미조가 고생한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누에의 등을 토닥거려주자, 이치린과 나즈린은 자신들의 두건과 케이프를 챙기면서 방문을 열고 고개를 한 번 숙여 인사한 뒤, 복도로 나왔다.

"아우, 쪄 죽는 줄 알았네. 땀으로 옷이 살에 붙어서 후덥지근해, 왜 이렇게 덥지."

"여름인 데다가 방안에 체온 높은 요괴는 많은데 바람이 안 통하니까... 잠깐인데도 이렇게 땀으로 젖다니."

"아까 너네 쥐떼 때문 아냐?"

"아니거든!"

나즈린이 자신의 넓은 귀를 펄럭이고 불편한 표정으로 얼굴에 열심히 손부채를 쳤다.

"누에씨처럼 옷을 짧고 얇게 입고 다녀야 하나. 항상 이렇게 입고 다녔는데."

"이치린은 딱 봐도 옷이 두꺼우니까. 내가 지금 같은 열대야에 평소 그 모습으로 입고 다녔단 땀띠 걸릴걸."

그녀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복도에서 걸어가다 흩어지자. 방에서 나온 누에와 마미조도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흩어졌다.

나즈린이 이치린과 헤어지고 자신이 짐을 푼 방으로 들어서려다 불경을 들고 들어서는 쇼를 보고 말했다.

"주인, 내 방 앞쪽에서 봐서 놀랬네. 공부하고 들어오는 거야?"

"아, 그럼요. 나즈린. 실은 밖에 생각보다 모기가 많거든요. 아무래도 묘지 쪽에 아직도 비오고 남은 물웅덩이가 아직도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내일이라도 다른 요괴들 보고 메우러 가자고 해야겠는데, 주인."

"그래야겠어요, 밖에는 좀 시원할 것 같아서 나갔었더니 생각을 워낙 내가 짧게 해버렸네, 하핫. 뭐, 방안은 덥겠지만 팔이라도 걷으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나즈린처럼 소매를 각 잡아서 걷었거든요. 예쁘게 접어서 딱!"

"으음, 주인. 확실히 예쁘게 접었네요."

"그쵸? 신경 써서 접은 거라서 그래요. 저도 지금 복장이 땀으로 탈진할 위험이 있어서 이제 나즈린처럼 짧은 치마로 입으려고 준비중이에요. 무척 더워지면 법회하기 전 평소에는 누에 씨처럼 원피스로 맞춰서 반팔차림으로도 다녀보죠. 뭐, 흐흐."

웃으면서 호탕하게 말하는 쇼에게 나즈린이 웃으면서도 살짝 귀찮은 말투로 말했다.

"모기랑 더위로 고생하네. 주인, 얼굴이라도 찬물로 씻고 자고 쑥이라도 태워봐. 극성맞은 모기지만 쫓는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될 터이니."

"도움이 될 터이니!!!"

난데없는 큰 소리에 깜짝 놀란 나즈린이 귀를 쫑긋 세우고 흠칫하자, 쇼의 뒤에서 우산이 안 보이게끔 뒤집어서 내려놓은 코가사가 슬쩍 모습을 비춰주면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혀를 내밀며 웃었다.

"아이, 깜짝이야! 뭐하는 거야!" 

"헤, 쿄코인줄 알았지? 이것이 예상을 뒤엎고 허를 찌르는 놀래키기다!!! 어때?"

"지금 뭐래는 거야." 나즈린은 혀를 차면서도 놀란 게 창피했는지 얼굴을 붉혔다. 

"아, 들어와서 방 찾다가 다시 만났어요. 사실 남을 놀래켜 주는데 너무 고민이 많다고 하길래 제가 좀 도와줬거든요. 수고했어요. 나즈린."

"본존(本尊[각주:1])님 말씀대로네! 고마워!"

"후훗! 잊지 말고 나중에 반야탕[각주:2] 몇 잔 걸치면서 갚는 겁니다!" 쇼도 기분좋게 기뻐하는 코가사와 하이파이브로 답했다.

그런 코가사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팔을 안긴 쇼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달래듯이 나즈린의 팔을 두드려주었고, 나즈린이 얼굴이 붉어지며 눈을 감고 싫증 난 표정으로 외쳤다.

"하아, 주인이 내가 겁 많고 잘 놀란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그랬구나. 짜증은 나지만 할 수 없지 뭐."

"그래도 다행이네요. 무지 겁먹은 것처럼 보였는데."

"주인! 갑자기 큰소리로 튀어나오는데 안 놀라겠어. 적어도 내 방앞에선 그러지 마, 스트레스받으니까."

방문을 크게 열어젖힌 나즈린이 한숨을 한번 쉬면서 그들을 바라보자 둘 다 그런 나즈린에게 미소를 지었다.

"네, 수고했어요. 들어가 쉬어요."

"미안, 나즈린! 고맙고 들어가 쉬어!!"

큰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히자, 코가사가 우산을 들고 쇼에게 해맑은 미소로 답했다.

"쇼!! 고마워!!"

"하하, 저보다 나즈린에게 더 고마워해 주세요."

미소로 답한 쇼가 더운지 손 부채질을 하며 코가사와 같이 복도로 걸어가자, 그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큰 귀를 기울이며 세심하게 파악한 나즈린은 불만족스러운 표정과 불안감이 가득한 눈으로 한숨을 길게 쉬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쥐고 있던 땀 묻은 케이프와 등에 멘 다우징 봉을 빈 구석에 놓은 뒤, 책상 위에 올려진 호롱불을 피웠다.

흘린 땀으로 씻으러 다녀온 그녀가 한구석에 수건을 널어 놓고 파자마 잠옷으로 갈아입자, 이부자리를 편 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를 킁킁거리다 눈치껏 나즈린의 앞에 집합했고, 그중 제법 큰 쥐를 그녀가 손으로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화영총에 살던 집의 배치돼있던 그대로 다 잘 가지고 온 거지? 배열이나 토씨 하나 틀리면 안 돼."

쥐가 고개를 끄덕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나즈린은 방에 배치된 책장의 책들과 화장품 등 잡동사니가 올려진 책상, 붓과 벼루 같은 도구나 옷이 든 옷장 등 물건들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좋아. 잘했어,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 너희들. "

쥐를 내려놓고 책상에 있던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가득 담긴 곡식을 한가득 뿌리자, 쥐떼가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허겁지겁 곡식들을 먹기 시작했고, 나즈린의 옷을 빨래통에 넣던 쥐들도 냄새를 감지하고 순식간에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더 있으니까, 숫자가 아무리 많다지만 이 상태 그대로 가져오기 정말 어려웠을 테니까. ."

그리고 슬픈 눈으로 측은하게 곡식을 한구석에 뿌리며 말했다.

"죽은 애들도 정말 미안하고 명복을 빌어주면서, 윤회에서 더 나은 입장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어 극락에 가길."

애도를 표한 나즈린은 항아리에서 곡식 한 줌을 쥐고 쥔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오늘 수고한 나의 몫,"

손안에 있던 한 톨의 곡식까지 입안에 털어놓은 나즈린은 오물오물 씹으면서 펜듈럼과 다우징 봉을 옆에 둔 뒤, 큰 방문을 열어 밖을 살피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긴장된 손으로 여닫이 문을 닫았다.

코를 킁킁거리는 쥐들이 이빨로 갈고 씹는 소리에 소란스러워진 방에서 책상의 서랍을 열어 물건들을 내려놓은 다음 어떤 두꺼운 케이스로 된 수첩같은 물건에 펜듈럼을 꽂으며 입안의 음식물을 다 씹어 삼키고 입을 열었다.

"확실히 내 방앞에 있으면 곤란하단 말이야."

수첩과 꽂은 펜듈럼에서 잠깐 빛이 나면서 '철컥'하는 소리가 나자, 수첩 같이 생긴 부분을 잡고 서랍 바닥을 들어낸 나즈린은 마법진과 함께 그 안에 든 편지와 비슷한 찢어진 불경 몇 장을 보면서 꺼내 들었다.

'비사문천님이 주신 주인에 대한 이번 달 감시 지령.'

그것을 바라본 쥐들이 슬그머니 눈치를 채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철통같이 자리를 잡고 코를 킁킁거리면서 이리저리 살피다가 가장 큰 쥐가 몇몇 쥐와 울음소리를 내자, 나즈린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바람을 '훗' 하고 불면서 앞머리를 날리며 말했다.

"야근할 시간이군."


  1. 법당에서 모시고 숭배하는 불상 및 부처 [본문으로]
  2. 般若湯 절에서 술을 일컫는 말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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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을 다 들인 죽순 밥을 밥그릇에 푸기 시작한 이치린을 도와 모미지가 코를 막고 상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올리자, 아야도 다른 접시들을 상에 올리는 것을 도우면서 큰 식사상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이거 상이 굉장히 큰데 가지고 갈 수 있어?"

커다란 항아리에서 우메보시(매실 장아찌)를 국자로 그릇에 퍼담던 무라사가 묻자 아야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텐구들은 힘이 세거든요."

"그래, 그럼. 부탁해."

밥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로 인해 이마에 땀이 맺힌 이치린은 슬며시 불어온 바람에 수증기가 흩어지며 시원해지자, 바람이 부는 방향을 쳐다보았고 눈이 마주친 아야가 엄지를 치켜들며 웃었다.

"꽤 쓸만한 재주네."

"더울 때 많이 불러주세요. 흐흐."

무라사가 그릇을 상에 마지막으로 두자마자 아야가 모미지와 같이 상을 들고 마당에 놓았고, 밖에서 바람을 쐬던 운잔이 그것을 보고 쿄코에게 이야기해주면서 쿄코가 즉각 응답하며 모두를 불러모았다.

깍지를 끼고 자신의 뒷덜미를 짚으며 걸어오는 쇼와 나즈린, 마미조와 누에, 코가사와 코코로가 아야와 모미지가 먼저 않은 밥상에 모이자, 공양간에 있던 뱌쿠렌과 무라사, 후토와 이치린도 합석했다.

"자, 식겠어요. 얼른 드실 수 있도록 다 자리에 앉아볼까요."

뱌쿠렌의 말에 나즈린과 무라사가 방석을 가져와 개수만큼 놓고 쿄코와 코가사가 손수건과 수저, 젓가락을 놓으면서 위치를 정하는 사이, 모미지는 아까일로 살짝 투덜거리며 방석에 앉았다.

'아. 하필 맛있는 냄새에 이성을 잃어서 저 망할 까마귀에게 부끄러운 모습만 보였네. 맛있긴 했어도 아우 젠장. 쪽팔려..'

그리고는 턱을 들어 고개를 등에 붙이고 하늘을 향해 한숨을 쉬면서 콧가를 쓱 닦았다.

 '아우 하필이면.. 미치겠다. 진짜.'

깊은 한숨과 함께 밥상을 본 모미지는 옆이 빈걸 보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며 서있는 아야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저보고 여기 앉으라고요?! 농담이죠?"

"뭐가 농담이야. 잘만 붙어다니는 것들이, 음식 식으니까 들게 얼른 앉아.

무라사가 흘기듯이 면박을 주자 모미지가 방석을 뒤로 빼며 외쳤다.

"아, 썅 뭐야! 저리 가!"

"밥상머리에서 뭐하는 겐가! 얼른 앉게나."

후토가 다그쳤으나 둘은 쳐다도 안보고 서로에게 삿대질 하며 말했다.

"그건 비즈니스니까 붙어있는 거구요! 밥맛 떨어지게 어딜!"

"밥상머리에서 저 머리통 보기 짜증나니까 자리 바꿔주세요!"

코코로가 마치 한심하게 보는듯한 무표정으로 호기심 가득한 가면을 앞세워 쳐다보든 말든 서로 노발대발 하는 사이, 어이없게 바라보던 이치린의 눈치를 살핀 운잔이 주먹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제서야 신경전을 멈춘 둘이 씩씩 어깨를 떨며 서로를 노려보자 뱌쿠렌이 다가와 말했다.

"다같이 열심히 마련한 음식을 더불어서 식사하는 자리에 소동피우지 마세요!"

서로의 입에서 "쯥." "흥."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 눈치를 본 아야와 모미지가 서로 한숨을 길게 쉬다가 결국 사이에 코코로를 끼고 앉았고 코코로가 둘의 등을 토닥여주었고, 쿄코와 운잔이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자리에서 뱌쿠렌의 '나무삼' 소리와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젓가락을 들며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이거 엄청 맛있다."

흰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의 꼬들꼬들한 식감과 쫄깃 죽순, 양념간장이 어우러지는 맛에 젓가락질이 빨라진 코코로가 뜨거워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긴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그치만 너무 더워."

"밥이 뜨거우니까 천천히 후후 불면서 드세요."

뱌쿠렌이 인자한 미소로 합장하며 코코로를 쳐다보았다.

"허어~ 후우~"

무표정한 표정으로 밥에 입김을 불어넣는 모습에 마냥 귀여워진 아야와 모미지는 그 광경에 피식 웃었다.

"게다가 얜 지금 옷이 긴 팔이잖아."

"나즈린 치마 밑단처럼 곳곳이 구멍 난 치마라 통풍이 잘되어서 괜찮아!" 나즈린에 말에 코코로가 손을 흔들며 답했다.

"밖인데도 생각보다 덥네요. 아까 치르노가 있었을 땐 시원했는데."

쇼가 손 부채질을 하며 말하자 나즈린이 말했다.

"요즘 한창 열대야잖아. 주인."

"하, 날도 덥고. 그러니까 시원하게 좀 들이켰으면 하는데."

"하하, 실없는 소리 말고 열심히 만든 식사에 전념하세요." 뱌쿠렌이 칼같이 대답했다.

"헹. 역시 그렇군요."

쇼가 아쉬운듯이 말하자, 뱌쿠렌이 웃으며 말했다.

"절에서 코코로 양이 음주가무를 배웠다고 기사가 나면 참 볼만하겠네요."

"네, 어쩔 수 없죠." 쇼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는 그런 기사 나도 될 것 같다네." 후토가 밥을 먹으면서 말하자 다들 후토를 쳐다보았다.

"뱌쿠렌 말대로 진짜로 안 되겠네요."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는 쇼에게 나즈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워, 바람! 텐구언니 바람좀!"

"헤헤, 세기는 어느 정도?" 아야가 젓가락을 흔들면서 웃으며 물었다.

"머리 대빵 휘날리게!"

코코로가 아야의 팔을 잡아당기며 요청하자 아야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켰고, 모두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흩날리면서 주변이 제법 서늘해지자 접시에 올려진 음식들이 수많은 젓가락질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야참플이 고야가 생각보다 아삭거리고 두부와 계란을 넣어서 그런지 부드럽고 맛깔나게 간이 잘 되어있네요."

모미지가 냄새를 음미하면서 허겁지겁 입에 넣는 광경 옆에서 아야가 사진을 한 장 찍으며 감탄하자 뱌쿠렌이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요리한 것에 맛있게 먹어주셔서 제가 다 감사하네요."

"이치린 씨는 이 중에서 어떤 음식이 마음에 드세요?"

카메라를 들이대는 아야에게 민망한 표정을 짓던 이치린은 뱌쿠렌을 슬쩍 쳐다보고는 마지못해 미소국을 가리켰다.

"생각보다 맛있더라고. 이거."

"하하핫. 당연하지 않느냐!!"

기고만장해진 후토가 기뻐하는 모습까지 카메라로 찍어댄 아야가 문화첩을 꺼내 이치린에게 계속 물었다.

"어떤 점에서 맛있었던 거죠?"

"두부도 잘 익었고 버섯도 손질이 잘돼서 부드러우면서 담백하고 미소가 빛깔 좋게 잘 우러나서.."

"네, 그렇군요!" 아야가 그 말을 펜으로 받아 적은 후, 열심히 먹고 있던 코가사를 카메라로 찍으면서 물었다.

"코가사 씨는 어떤 음식이 마음에 드세요?"

"난 미쯔바 무침! 통깨를 넣어 고소하고 윤기가 흐르고 짭조름한 게 마음에 들어! 밥이랑도 잘 맞고."

그 말에 무라사가 흐뭇해 하자 코가사도 웃으면서 젓가락으로 무침을 집어 입에 넣었다. 

"누에 씨는요?"

"야, 이렇게 가까이에선 내 얼굴에 갖다 대지 마."

아야가 한 손으로 카메라를 집어 누에에게 들이대자 누에가 역정을 냈다.

"에, 어차피 누에 씨는 능력 때문이신지 자체 모자이크가 돼서 안 찍혀요."

"참나, 그럼 셔터는 왜 누르는데?"

"그야, 모자이크된 대상이 뭘 드시는 거라도 찍으면 제 신문에 이슈가 되니까요! 궁금해서 더 많이들 보겠죠?"

빙그레 웃는 아야에게 질렸다는 듯 어이없게 바라보던 누에가 혀를 차다가 할 수 없는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음.. 음.. 아무리 생각해도 고야참플이 제일 맛있던데."

"나도 마찬가지랑께." 마미조도 덩달아 말했다.

"저도요. 밥도 맛있지만 고야참플이 마음에 드네요."

쇼도 덩달아 말하고 모미지와 쿄코도 고개를 끄덕이자 뱌쿠렌이 말했다.

"하하, 여러분들. 지금 유일하게 거기에만 고기가 들어가 있다고 그러는 거 아니죠?" 

그 순간, 찰나였지만 상 주변은 조용히 밥만 먹으며 정적에 휩싸였다.

"이게요. 아주 씹는 맛이 그냥."

쇼가 생각 안하고 고양된 기분 그대로 웃으며 속내를 말하자 나즈린이 눈을 감으며 자신의 이마를 짚었.

난감해진 뱌쿠렌과 반대되게 웃음이 터진 광경을 아야가 펜으로 문화첩에 받아적자 한숨을 쉬던 뱌쿠렌이 나지막히 외쳤다.

"그거 적지 마세요." 

"에이, 아쉬운데. 그럼 다음! 후토 씨는요?"

"죽순 밥이 제일 마음에 든다네. 잘 익은 꼬들꼬들한 죽순과 고슬고슬한 밥이 내가 만든 국에 어울리니까 말일세."

후토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는 이치린을 보며 말하자 아야가 고스란히 받아적고 나서 후토의 식사하는 모습을 찍었다. 

"그렇군요. 저도 사실 제가 요리했지만, 밥이 정말 잘 되었어요. 죽순 손질도 잘 되었고요. 저도 죽순 밥이 마음에 드네요."

뱌쿠렌이 말을 마치고 밥을 한 젓가락 먹자, 이치린도 살짝 감격한 표정으로 그 둘을 슬쩍 쳐다보았고 아야도 자동으로 셔터를 눌렀다.

맛있게 밥을 먹던 모미지 대신 필름을 스스로 갈아 끼운 아야가 흐뭇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죽순 밥을 가리키는 운잔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서 무라사를 바라보았다.

"그럼 미나미츠 씨는 마음에 드시는 음식이 뭐죠?"

"응? 그야 내가 한 아삭한 미쯔바 무침."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무라사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아야가 문화첩에 그대로 적었다.

"스스로 만든 부분에서 어떤 점이 좋으신 건지 자세히 여쭤볼 수 있을까요?"

"참나물은 여름에 좋은 나물이고 내가 한 것처럼 양념으로 새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을 내서 입맛을 돋우고 단순히 무치는 것만으로도 밥과 같이 먹을 수 있거든."

"오오, 그렇군요."

"뭐 재료만 더 있으면 더 좋은 솜씨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지만 말이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무라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웃자 이치린도 딴죽을 걸었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아야가 사진을 몇 장 찍고서 나즈린을 바라보자 나즈린이 젓가락을 입에 물고 말했다.

"난 죽순밥. 곡식이 늘 먹던 거라 입에 맞거든. 밥이 잘 익어서 식감도 좋고 죽순도 고소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건데 이 식사자리가 쿄코 씨도 쉬어주시는 시간이 되는 것 같네요."

열심히 밥과 반찬을 먹던 쿄코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야를 바라보자 아야가 웃으며 말했다.

"항상 남의 말만 따라 하려면 목 아프잖아요."

쿄코가 미소국을 마시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고개를 끄덕이자 나즈린도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따라 하면 우리의 귀도 아프고 말이지."

주위의 웃음소리와 함께 식탁을 찍던 아야가 우메보시의 사진을 한 장 찍으면서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 근데 우메보시는 아무도 안 골랐네요?"

그러자 무라사가 겸연쩍은 듯이 말했다.

"뭐, 밑반찬이기도 하고. 여기서는 매실의 제철인 6월마다 매년 잔뜩 담가서 여름내 질리도록 먹고 있으니까."

"오, 그랬었군요! 그래도 새콤한 데다가 과육도 촉촉하면서도 부드럽고 맛있던 걸요."

"그 우메보시가 딱 5년 되었는데 생각보다 잘 되었거든."

고개를 끄덕이면서 코코로를 슬쩍 쳐다본 아야가 코코로에게 카메라를 향하며 물었다.

"자, 코코로 양은 어떤 게 마음에 드세요?"

그 순간 불교 측과 도교 측인 후토도 살짝 긴장하자 코코로가 열심히 먹으면서 말했다.

"응, 좀 더 먹어봐야 알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다 비우고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뱌쿠렌이 중재하고 나서 모미지에게 지금 필요 없으니 밥이나 먹으라고 투덜거리면서 찍은 카메라들의 필름을 정리하는 아야를 제외하면 나즈린이 어깨 쪽 케이프와 소매가 바람에 휘날리는 와중에도 쇼에게 물을 떠다 주고 마미조가 고야와 고기 몇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누에가 먹던 밥 위에 얹어주거나 뱌쿠렌이 모미지와 코코로가 비운 접시에 직접 국자로 음식을 담아주는 등, 식사를 계속했고, 필름 정리를 마친 아야도 플래시를 살짝 터뜨려서 모두를 놀라게 하는 장난을 치면서 합류하며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들이 그릇을 다 비우자, 다들 빈 그릇이 가득한 상을 치우지 않고 코코로를 쳐다보았다.

"자, 코코로 양은 어떤 게 마음에 들어요?"

아야가 카메라로 코코로를 찍을 준비를 하면서 묻자, 시선이 모여진 코코로가 팔짱을 끼며 사뭇 심각해진 불교 측 인원들의 표정과 침을 삼키며 턱을 괸 후토와는 달리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얼굴로 표정 없이 말했다.

"미소국."

두 주먹을 젖히며 소리를 지르면서 기뻐하는 후토와 아쉬운지 "헤에.." 하며 아쉬운 표정의 이치린, 허탈해 하는 무라사를 비롯한 불교 측의 희비가 엇갈리는 광경을 아야가 카메라로 담았고 그걸 무심하게 바라보던 모미지는 껄껄 웃는 마미조와 피식하고 웃는 누에를 지나치며 코코로에게 다가갔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

"그냥 아까 뜨거운 밥에 국 부어서 먹으니까 맛있어서."

모미지가 그 말을 듣고 슬쩍 코코로의 머리 위를 쳐다보자 그 허공에는 즐거운 표정의 방화범 가면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는 모미지에게 자극을 주듯 코코로가 재빨리 귓속말로 속삭였다.

'실은 말이야. 킥킥. 표가 너무 갈리잖아.'

그 말을 듣고 모미지가 코코로를 쳐다보자, 코코로는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로 모미지를 쳐다보며 가면을 흔들어댔다.

"그랬어요?"

"어이씨, 깜짝이야!"

미지가 반대편 귀에서 소리가 들리자 놀라 돌아보자, 바로 옆에서 아야가 문화첩으로 무언가를 받아적었다.

"뭐야? 방금 저기 있었는데?"

"환상향 최속을 언제까지 무시할런지.. 둔탱이니까 적응이 힘든 거 맞죠?"

"허어, 그러셔? 그럼 그쪽은 천리안을 언제까지 무시할런지. 여기저기 들쑤시고 오지랖만 넓으니 적응이 힘든 거겠지."

"뭐? 오지랖? 천리안은 개뿔. 바로 옆에 와도 못보는데욬크킄!"

"내가 눈이 앞에 두 개 달렸지 옆에 달렸냐! 옆으로 온 걸 내가 어떻게 봐!!"

"아, 천리안도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네. 천 리 밖만 보느라 한 치 앞도 못 보니까."

"이게! 그렇게 빨라 봤자 난리나 피우는 데 쓰면서, 네 조잡한 신문에 종이가 되어 사라지는 나무가 불쌍하다! 나무한테 사과해!"

아야와 모미지가 서로 온갖 말을 주고받자, 얘네 뭐하냐는 듯이 어이없게 바라보는 누에의 옆에 낀 코코로가 마미조의 쓰다듬을 받으며 흥미롭게 그 둘을 쳐다보았고, 감격에 찬 후토가 '태자님 해냈습니다!' 하며 들떠있는 사이 이치린과 나즈린도 그 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

뱌쿠렌이 중재하면서 멈춘 아야와 모미지는 서로 못마땅하게 쳐다보면서 코코로를 사이에 끼고 식사를 마쳤고, 뒤처리 및 설거지를 도와준 뒤, 절의 요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돌아갈 채비를 했다.

"덕분에 맛있게 잘 먹고 가네요."

"아네요. 두 분이 뒷정리까지 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제 좋은 기사만 써주시면 되죠.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퍼질 수 없지만, 덕인(德人)의 명성은 온 바람을 거슬러 온 세상에 퍼지는 법이니까요."

"네, 제 신문으로 두 종교의 명성을 꼭 넓힐 수 있도록 할게요."

아야와 모미지의 인사를 받아들인 뱌쿠렌이 인사하자 쇼도 옆으로 다가섰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합장과 함께 작별인사를 받은 아야와 검을 차고 배낭을 멘 모미지, 코코로가 돌아서 날아가자, 손을 흔들어주다 먼저 돌아선 뱌쿠렌이 안으로 걸어가자 쇼도 돌아서면서 뱌쿠렌의 뒤를 따라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으로 들어섰다.



"신문으로 명성을 높여?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아항, 뭐, 그렇게 생각하시던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던 모미지가 코코로를 사이에 끼고 불만 가득한 말투로 따지자, 아야가 웃으며 물었다.

"너같이 스캔들을 즐기는 파파라치에게 가십거리 기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손해잖아."

"허, 제대로 안 읽었나 보네. 그런 것만 쓰는 거 아니거든요?"

"애초에 제대로 읽힐 종이 쪼가리도 아니잖아! 그걸 누가 읽어!"

"많이 읽어! 멍청아! 너만 모르지!"

모미지가 언성을 높이고 아야도 발끈하자 그 사이에 낀 코코로는 무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다른 신문보다 더 많이 뿌려버리는 데 안 읽히겠냐!!"

"그럼 읽지 마시던가. 나는 니 말대로 종이 아까운 줄 모르거등요? 후후."

서로 으르릉거리는 말들을 들던 코코로가 그만하라는 듯 서로의 팔에 팔짱을 끼고 강하게 힘을 주자,

아야와 모미지도 양쪽을 번갈아 보는 코코로의 얼굴을 보고 무안해져서 각자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날아갔다.



"그럼 돌아가 보겠네!"

말 끝나기가 무섭게 후토가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도술로 자취를 감춰버리자 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녁은 해결하고 가서 기분 좋은가 봐."

그 말에 나즈린과 쿄코, 이치린이 웃자, 쇼가 장난기 많은 표정으로 말했다.

"불 지른 것에 비하면 뭐 수지 남는 장사지. 주인." 나즈린이 거들듯 속삭였다.

"네, 뭐, 우리야 지나간 일에 연연할 필요 없으니까요. 이제 각자 자기 할 일이나 합시다."

쿄코가 문단속을 하러 일주문으로 날아가고, 마미조가 슬그머니 들어온 너구리 요괴 몇 마리와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비치는 중에 뱌쿠렌이 본전 대웅전에서 자리에 앉아 목탁을 치며 불경을 읊기 시작하자, 쇼도 남는 방에 짐을 푼 나즈린과 잠깐 말을 섞다가 어디서 머무를지 몰라 복도를 기웃기웃하는 코가사에게 잠잘 방을 알려주었고, 호롱불과 방석, 불경 몇 권을 챙겨 범종각으로 가서 범종을 한 번 치고 밤공기에 실려 마음을 청아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는 자리를 펴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쇼와 헤어진 나즈린은 쥐들과 함께 복도를 걸어가다 슬쩍슬쩍 눈치를 보고서는 깊숙하고도 외진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 왔어?"

"이제 나즈린도 왔으니 다 모인 것 같네."

방안에는 운잔과 이치린, 누에와 마미조가 서로를 방석을 깔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하고 있었고, 코를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는 쥐 한 두 마리만 놔두고 나머지에게 누가 오는지 주위를 살피게끔 명령한 나즈린도 자리에 앉았다.

"나까지 해서 다 모인것 같은데, 늦게 왔으니 나부터 오늘 있었던 일을 꺼내면 되겠지?"

다우징 봉을 꺼낸 나즈린이 이치린, 누에, 마미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계속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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뱌쿠렌이 말을 마치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고 짐을 주섬주섬 챙긴 모미지와 아야를 나즈린이 막아섰다.

"잠깐. 절에 들어오기 전에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어."

"네?"

나즈린이 다우징 봉과 펜듈럼으로 그들의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하자, 모미지는 자신이 숨긴 품 안의 필름이 들킬까 조마조마하며 말했다.

"뭘 하려는 거죠?"

"혹시 수상한 물건이라도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지 살펴보려는 거지. 유비무환으로 말이야."

"그 말은 저희를 믿지 못한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걸릴 게 많은 모미지가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아야도 동조하며 나즈린에게 따졌다.

"후토도 절 안에서 불 지르면 안 되니까 좀 살펴봐야겠어."

"허허헛, 더 불 지를 물건 같은 건 없네만!!" 후토가 실없는 소리라는 듯이 비웃으며 외쳤다.

"에이, 그럼 나즈린도 점검해야지. 나즈린도 원래 절에 안 살잖아." 무라사도 딴죽을 걸었다.

"시끄러워. 음." 나즈린이 능력을 사용하며 살피다가 배낭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 꺼내봐."

"네?" "에?" 아야와 모미지가 동시에 놀라서 소리치자, 나즈린은 그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꺼내 보라고, 이런 건 확실히 해야지. "

"응? 가방에 뭐라도 있어?" 코코로가 물었다.

"우리 절에 들어오려는데 수상한 것이라도 있으면 곤란하지."

"찍은 필름에 손상 가면 어떡하시려고요! 얼마나 예민한 물건인진 알아요??"

"몰라, 어떻게든 물어 줄 테니까 조심스럽게 다 꺼내봐!"

아야가 할 수 없이 모미지가 맸던 배낭에서 필름과 렌즈, 카메라들을 다 끄집어내자, 나즈린이 철저하게 다우징 봉으로 탐색했다.

"음, 금속반응은 렌즈랑 카메라에만 나오고, 딱히 수상한 건 없네."

"어디 봐." 이치린도 거들면서 카메라들을 만져보고 누에도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며 살피는 등, 빈 배낭 안까지 확인한 나즈린이 카메라의 상이 비추는 것까지 눈에 대고 살펴보고 펜듈럼을 거두자, 모미지가 탄식을 내뱉고 아야는 그다지 불만없는 표정으로 필름과 카메라들, 렌즈들을 배낭에 쑤셔 넣었다.

"자, 이제 확인된 건가요?"

"아니, 니들 옷도 수색해야지."

나즈린이 무표정으로 아야를 흘겨보면서 그녀의 벨트 부분을 살피자 아야가 난처하게 바라보았다.

"꼭 이래야만 하나요? 보는 눈도 많은데?"

"시끄러, 분명히 니들 중에 뭔가 물체 같은 게 잡힌단 말이야. 그게 뭔지는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저기 나즈린, 이 정도만 해도 민폐인데 이 정도로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쇼가 다가가면서 말리자 나즈린이 주섬주섬 아야의 옷들을 살피며 말했다.

"안 돼, 내 능력이 물건을 찾는 능력이지만 사물이 무엇인 줄 알아야 정확하게 찾지, 그냥 능력을 쓰면 물건이 있긴 있는데 그게 확실히 무엇인지는 끄집어내지 않는 이상 모른다고! 니들 중에 분명 있는데."

나즈린이 아야를 지나쳐 모미지의 허리춤을 살피자 모미지의 목덜미가 떨리고 손과 발에서 땀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하자, 긴장으로 경직된 손으로 무의식중에 품 안의 필름에 손이 안 가도록 이성의 끈을 확실히 잡으며 외쳤다.

"주지승님! 주지승님!"

뱌쿠렌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자 나즈린과 이치린, 쇼도 당황하고 뱌쿠렌도 황당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아, 확실히 점검 중이었어. 우리 절에 수상한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 말야."

"그래서 수상한 게 나왔나요?"

"아직. 하지만 분명히 있어." 나즈린이 확신하듯 모미지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아야 씨 물건은 다 살핀 건가요?"

"뭐, 모든 물건은 다 살피긴 했는디." 지켜보던 마미조가 대답했다.

"그럼 됐네요. 더 의심이 필요한가요? 다들 이런 시간에 저녁 준비부터 하고, 후토 씨랑 모미지 씨, 아야 씨는 결례를 용서하고 식사 준비랑 촬영 준비 들어가 주세요."

뱌쿠렌의 상황정리에 나즈린도 아쉬운 표정으로 다우징 봉을 집어넣고 지켜보던 코가사는 코코로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방 안에 들어갔으며, 마미조와 누에는 돌아서서 들어가는 뱌쿠렌을 슬쩍 쳐다보다가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자, 이제 사소하게 굴지 말고 먹으면서 놉시다. 나즈린. 먹을 땐 먹고 놀 땐 놀아야죠."

쇼가 나즈린을 부여잡고 방으로 끌고 가자 나즈린이 난처한 얼굴로 아웅다웅하다 끌려가고, 치르노는 자신의 주문이 밀려있는 게 생각났다며 작별인사를 하고 날아갔으며, 남들 정신 팔릴 때 제일 바깥쪽 문인 일주문을 살피러 간 쿄코도 빠르게 돌아와 무라사와 말을 나누며 함께 들어가고 이치린이 후토와 승강이를 벌이다 들어가 아야와 모미지, 둘이 남게 되자, 아야가 말했다.

"뭐해? 들어가야지?"

깜짝 놀란 모미지가 긴장을 풀지 못하고 긴 한숨을 쉬며 내뱉었다.

"어휴 씨, 깜짝이야. 너나 들어가!"

"아니, 안 들어가면 안 들어가는 거지 웬 성질이람!"

모미지가 흥건해진 손을 옷에 닦으며 화를 내자, 아야도 짜증을 내며 외쳤다.

"비싼 렌즈들인데 다시 닦아놔야 하잖아. 모미지, 여기 극세사 천으로 렌즈들 다 닦아놔."

"시끄러워. 내가 만진 것도 아닌데."

"니 할 일이 뭐지?"

아야가 공문을 꺼내 들자 모미지가 격분했다.

"아잇! 그것 좀 그만 꺼내! 무슨 노예 문서야!! 나즈린 씨가 말한 수상한 물건이 그거네! 그거!"

"너야말로 시끄럽고 다 닦아놔라. 사진 계속 찍어놔야 하니까! 히히힛!"

모미지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품 안의 필름들을 건드리며 안도의 한숨을 털어내는 사이, 나즈린이 쇼에게서 벗어나 뱌쿠렌에게 다가가 말했다.

"뱌쿠렌. 이야기 좀 해."

"어떤 이야기이죠? 나즈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들어오는 요괴들에 대한 소지품 검사도 못 해?"

못마땅한 표정의 나즈린이 따지자, 뱌쿠렌이 인자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나즈린에게는 그들이 많이 수상했나 보네요."

"응, 그러니까 확실히 알아보려고 한 건데, 그걸 말리는 건 좀 아니지."

"그랬었군요. 그래서 알아보려고 했었고요. 하지만 나즈린. 그건 의심이에요. 의심을 품어서 확실한 물증이 나왔나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뭔가 있긴 있었다고."

나즈린이 살짝 당황하자 뱌쿠렌이 다시 물었다.

"확실한 물증이 있었는지에 대해 묻고 싶군요."

"아니, 그렇게 확실한 건 아닌데. 그러니까 알아보고자 하려는 건데."

뱌쿠렌의 위압감에 눌린 나즈린이 당황하며 말하자 뱌쿠렌이 한숨을 길게 쉬며 말했다.

"나즈린. 당신의 물건 탐지능력은 정말 대단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의문과 의심은 결국 그럴만한 이유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게다가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는데 의심을 품고 캐게 되면 아야 씨와 모미지 씨의 기분은 어떨까요? 성심껏 코코로 씨의 교육을 돕고 싸우던 예전에서 벗어나 화합 분위기를 만들려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아니.. 뭐, 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상하잖아."

나즈린이 못마땅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자 뱌쿠렌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즈린. 그건 번뇌에요. 수상은 한데 증거가 확실하지 않는다는 건 나즈린의 마음이 그들을 믿고 싶지 않은 거겠죠. 그런 비합리적이고 무분별한 미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알아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심증만이 아닌 누구나 수긍할 확실한 물증을 찾아야 하겠지만 결코 그 과정에서 이 합의가 깨질만한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절에서는 그런 번뇌스런 마음을 버렸으면 하군요."

나즈린은 단호한 뱌쿠렌에 말에 대화가 통하지 않겠다 싶어서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뱌쿠렌이 말했다.

"자, 그럼 저녁준비와 함께 이번 교육에 나즈린도 열심히 임하도록 하세요. 나즈린도 불제자로서 우리의 자비와 종교적 역량에 대해 도교 분들이든 상관없는 텐구분들이든 수긍하게끔 보여주도록 합시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즈린에게 뱌쿠렌이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공양간(절의 부엌)으로 들어가자, 나즈린이 머리를 긁다가 한숨을 한번 푹 쉬고 말했다.

"뱌쿠렌에겐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지."

그리고는 절간의 곳곳을 다우징 봉과 펜듈럼으로 이질적인 것이 있나 구석구석 다우징하며 찾아보기 시작했다.

공양간으로 들어온 뱌쿠렌이 이치린, 무라사와 같이 공양간에서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하고 쿄코가 길어온 물로 손을 씻고서 저녁준비를 하자, 후토와 모미지, 아야도 같이 껴서 관람했다.

"어우, 깜짝이야. 옷이 하에서 얘도 앞치마 입은 줄 알았네." 

이치린이 후토를 보고 놀라서 외치자 후토가 얼굴이 붉어져 자신의 에보시[각주:1]를 만졌고, 다른 요괴들도 피식 웃었다.

"이런! 무엄하도다!"

"공양간에 이렇게 많이 들어올 필요는 없는데."

"저흰 촬영해야 하니까요. 후훗."

이치린이 카메라를 든 아야의 말에 투덜거리자 후토가 째려보며 말했다.

"흐흥! 요리가 잘 되는지 구경하고 싶을 뿐이네!"

"너 생각보다 언행이 솔직한 거 같다?"

후토를 가리키는 이치린의 말에 후토가 얼굴이 붉어졌다.

"도교를 행하는 자는 모든 생활에 있어 깨달음을 추구하고 자연스러움을 행해야 하는 법이다!"

"어휴, 어련하시겠어." 무라사가 읊조리며 미쯔바(참나물)를 물에 씻어 접시에 놓았다.

"그럼 저녁 메뉴는 무엇이죠?"

"아무래도 모코우 씨가 가져온 죽순으로 죽순 밥에 고야참플(여주볶음), 미쯔바(참나물)와 미소국으로 준비하려고요. 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는 음식들이에요."

"오, 그렇군요! 그럼 열심히 취재하겠습니다. 모미지 필름 좀 갈아줘."

아야가 모미지에게 카메라를 넘기고 다른 카메라를 꺼내 들자, 모미지가 능숙하게 필름을 갈았다.

이치린은 죽순을 잘라 쌀을 씻어놓은 쌀뜨물을 냄비에 담은 뒤, 붉은 고추와 같이 넣고 아궁이에 놔두며 말했다.

"너 여기 아궁이에 불 좀 피워. 너 좋아하는 거잖아."

"키킥." 무라사가 웃자, 후토가 자신이 생각해도 기묘했는지 난감한 표정으로 부싯돌을 쳐서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후토 씨가 절에 제대로 된 불을 피우셨네요."

"그러네요." 아야가 사진을 찍으면서 뱌쿠렌의 말에 동조했다.

아궁이에 불을 피운 후토가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으며 불을 피우자, 삶기 시작한 냄비 근처에 밥솥을 놔둔 이치린이 후토에게 말했다.

"미소(일본 된장)국 만들 줄은 알아?"

"알다마다!"

"그래? 잘됐네. 좀 만들어줄래. 미소는 저기 항아리에 있고 두부는 아래쪽에 사둔 게 있어. 야채 손질 좀 해야 해서."

후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씻은 뒤, 냄비를 꺼내와 물을 담고 도마를 가져와서 두부를 썰기 시작하자 이치린이 만족스러운 듯 버섯을 손질했다.

뱌쿠렌이 씻은 쌀을 불려놓고 고야(여주)를 썰기 시작하자, 아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셔터를 눌러댔고 모미지는 사방에서 풍겨오는 음식냄새에 무의식적으로 입 끝이 올라가면서 뒷짐을 지고 지켜보았다.




방의 다른 한구석에서는 코가사가 코코로와 같이 벽에 기대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츠쿠모가미들에게도 만나서 확 하고 놀래키려고 숨어 있었는데, 내가 그만 깜빡하고 잠들었지 뭐야?"

"앜크크킄, 정말?"

코가사가 기분 좋을 때 쓰는 노인 가면을 보이며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묻자 코가사가 신 나서 말했다.

"응, 근데 다른 애들이 어쩌다가 날 발견하고 확 놀라는 거 있지! 거기서 생뚱맞게 잠들어 있을 준 몰랐다고 그러더라! 흐흐흐흐."

"으히히히힠. 어쨌든 언니 성공은 했넼크크킄."

코코로가 박수를 몇 번 치면서 맞장구를 치자 코가사도 웃으면서 자신의 우산을 껴안았다.

"잠깐, 너희 이야기하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좀 끼어들어도 될까?"

누에가 코코로와 코가사에게 다가와서 묻자, 코코로와 코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슨 이야기인데?"

"음, 멘레이키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볼 거라서 코가사 너는 좀 비켜줄래?"

"음, 그렇게 말한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알았어!"

코가사가 우산을 들고 방에서 나가자 코코로가 아쉬운지 코가사를 슬쩍 쳐다보았고 누에가 멀어지는 코가사를 확인하고는 방문을 닫고서 코코로에게 물었다.

"너와 우리가 절에 있는 이상, 서로 허물없이 지내려면 솔직해야 하잖아? 그렇지?"

"뭐, 그렇겠지."

"그래, 너도 그런 점은 수긍은 하는구나, 그래서 우리가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몇 가지를 물어볼 건데 말야.

너 혹시 텐구들이랑 오기 전에 이야기 나눈 거 있어?"

"음? 어떤 거?" 코코로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가면으로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집게손가락으로 긁으며 물었다.

"뭐, 구체적으로 오늘은 뭘 할거라든지, 그런 거. 사소한 거라도 말야."

"아니. 그냥 오늘 절에서 배울 거라고만 했어."

"저번에도?"

"응,"

"처음 이걸 시작할 때도 그랬어?" 누에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랬다니까? 날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그러려면 내가 배워야 한다고 그랬어. 태자한테도 그랬고!"

"태자라.. 그 녀석을 이야기하는 건가."

"응, 태자한테 이야기했다고 텐구 언니가 그래서 바로 여기로 오게 된 건데. 난."

"뱌쿠렌은?"

"나야 모르지. 그때 절에 처음 와서 이야기 나눴어. 진짜야."

"그래? 텐구는 따로 또 뭐라고 했었어?"

"그때 언니도 들었던 그게 전부야."

"아, 그래?"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누에가 이것저것 물어보자 코코로는 점점 '이 언니가 왜 이러냐'는 듯이 무표정의 가면을 보이며 팔짱을 꼈다.

"그래, 그럼 넌 따로 들은 건 없다? 텐구든 도교 쪽이든?"

"그렇다니까. 들은 거라곤 잘 배우고 오라고 태자가 말한 게 전부야."

"텐구가 너를 데려올 때도?"

"그럼. 오늘 기분 어떠냐? 배운 것은 기억나느냐? 그런 것뿐이야."

"믿을 수 있는 거지?"

"참, 저기 언니. 내가 표정이 변하지 않아서 그렇지 말할 때 가면에서 다 티가 나서 거짓말 함부로 못 해."

누에가 그녀 머리 위의 가면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알겠어. 좀 확실해진 것 같네. 너무 급작스러워서 우리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거든."

"뭐, 나도 이 절에서 적응이 필요하니까. 알겠어."

누에가 방문을 열고 문밖을 나서며 말을 이었다.

"혹시 다른 일 있으면 우리도 알아야 하니까 알려줘. 그래야 서로 믿고 임하지."

"알았어. 언니."

'그다지 큰 수확은 없었네. 쳇.'

누에가 투덜거리며 문을 닫고 복도를 계속 걸어가자 다우징 봉을 양손에 낀 나즈린이 무성의한 표정으로 말을 거는 쇼와 쿄코에게 말을 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나즈린도 그 선술집에 가면 만족할 거라니까. 거기 완전 죽여준다고."

"허헛, 주인. 절에선 그런 이야기 하는 거 아냐."

"이야기하는 거 아냐!!!!"

"에이, 나즈린도 거기서 몇 잔 걸치면서 먹으면 분명히 반해. 거기 야키토리(일본 닭꼬치)가 소스가 정말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된다고. 아까는 치르노가 있어서 시원했지만, 지금처럼 방 안에서 푹푹 찔 때는 몇 잔 걸치면 바로 시원해 진다니까"

흥분해서 들뜬 모습으로 격양된 쇼에게 나즈린이 주책없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말했다.

"알았으니까, 주인. 이따 저녁이나 그렇게 드시고 짧은 치마랑 반팔로 갈아입은 다음에 얘랑 같이 좀 놀아."

"같이 좀 놀아!!!!"

쿄코가 크게 외치자 나즈린이 웃으면서 쇼에게 보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거봐, 같이 놀자니까 좀 놀아줘, 주인."

"에이, 나즈린도. 다음에 꼭 같이 가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

그녀가 다우징 봉으로 달라붙은 쇼를 슬쩍 밀자, 슬며시 웃은 쇼가 쿄코를 데리고 술과 음식에 관해 이야기하기 하며 반대편으로 걸어갔고, 나즈린이 문을 열고 코가사를 찾으러 간 코코로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개의치 않고 누에를 보며 고개를 흔들자 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누에가 이야기하자 나즈린도 봉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중에 쥐가 듣는 밤이 되면 이야기하자고."

그렇게 말하고는 누에를 지나쳐 복도를 걸어가던 나즈린은 복도를 뛰어다니는 코가사와 코코로를 보며 '뭐하냐.'라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쥐 몇 마리를 불러와 주의를 당부했다.



PM 6시 20분 몽전대사묘


그 시각, 신령묘에서는 곽청아와 토지코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로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

토지코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곽청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물론이죠."

말없이 곽청아를 쳐다보는 토지코에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애초에 이 상황이 이해가 가긴 하나요?"

"그건 아니지."

딱 잘라 말하는 토지코에게 곽청아가 특유의 묘한 웃음으로 살며시 곁에 앉으면서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 생각해봐요. 그렇게 종교전쟁까지 벌이며 인기를 위해 싸웠던 이들이 인제 와서 교육 운운하며 서로 평화모드에 들어간다고요? 너희가 섬기는 높고 높은 태자와 불교에서 그 콧대 높은 주지승이 서로 화기애애하게 텐구의 말을 순순히 듣고? 단순히 생각해봐도 밖에서 보이는 표면적인 이미지 달랑 하나 때문에 모든 걸 감수하면서까지 그럴 리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 상황을 수긍하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밑에 있다?"

곽청아가 주먹 쥔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만 펴 토지코에게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그거죠! 그걸 좀 알자는 거랍니다. 내 주장은 말이죠."

"하지만 태자님이 행하는 일에 신하가 의심나는 대로 건드린다는 것은 태자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

토지코가 고개를 젓자 곽청아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우린 태자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텐구를 믿지 못하는 거랍니다. 어쩌면 태자가 주지승이랑 같이 텐구에게 놀아나고 있을 수도 있지요. 텐구야 말로 욕심 가득하고 이득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요괴일 뿐이잖아요. 그런 것들에게 종교의 수장들이 놀아나는 건 더 위신 상하는 일 아닐까요? 후후후."

"그건 맞는 말이지만.. 사실 태자님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한 게 한두 가지는 아니었어."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네요. 그러니까 좀 확실하게 배경을 알자는 거죠. 진짜 불미스러운 배경이나 사건이라도 있으면 자리에서 박차고 나가버린 후, 비난하면 그만이고. 아니면 필요하다면 불교 쪽을 좀 몰래 괴롭혀서 못 견디고 나가게 해 이 자리를 파투내고 텐구와 불교 측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 버리면서 역시 못 믿을 것들이었다고 선전해 우리가 더 부흥할 수도 있고요. 방법은 참 많답니다."

토지코가 곽청아를 노려보듯이 쳐다보자 곽청아가 윙크를 하며 말했다.

"물론 '필요시'에야. 필요시. 후훗. 이래 보여도 다 전략 아니겠어요?"

"적과의 협상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아 알아보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곽청아 그대 생각에 공감하는 건 신하된 자로서 위의 위신을 고려해 태자님이 텐구에게 놀아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일 뿐이야."

"그래,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참 고맙지."

곽청아가 토지코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음흉한 미소로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알아내자고요. 태자와 텐구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또 이 모든 것의 배경에 대해 말이죠."



PM 6시 45분 묘렌사 공양간



공양간에서 이치린이 삶은 죽순을 우스바보쵸(薄刃包丁, 야채를 취급하는 칼)로 깍둑썰기하여 불린 쌀과 같이 넣고 밥을 지었고, 후토가 양수냄비에서 끓는 물에 미소(된장)를 풀어놓고 고운 채로 덩어리를 걸러낸 뒤, 실파를 가늘게 채를 썰어 찬물에 헹궈 매운맛을 씻어내고 청주와 같이 첨가하고는 간을 보고서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연한 소금물에 미리 살짝 삶아놓은 두부와 버섯을 넣었다.

"아까보니 센기리(せんぎり, 5~6cm 정도로 채 썰기) 속도가 제법 빠른데. 요리 하는 쪽인가 봐?"

"사이노메기리(さいのめぎり 두께 1cm 크기의 정육면체썰기)하는 자네보단 많이 했을 걸세."

둘이서 칼로 무언가를 써는 방법을 가지고 말을 나누자, 지켜보던 모미지는 전문분야라 가소로운지 희쭉 웃음을 지었다.

아야가 바람으로 공양간 안에서 차오르는 열기와 김을 흩어버리는 와중에 후토가 국이 끓으면서 거품이 생기는 대로 걷어내어 산초가루를 뿌림으로써 미소국을 끓여냈고, 무라사가 자루(腐, 데치거나 보관할 때 쓰는 소쿠리)로 데치고 찬물에 담가둔 미쯔바를 이치린에게 건네받은 칼로 썰어둔 양파와 스리바치(すりばち, 일본식 절구)에 살짝 으깬 통깨, 약간의 소금, 참기름과 간장을 곁들여서 볶아 초록빛이 감도는 무침 반찬을 만들고, 뱌쿠렌이 고야(여주)를 두부와 야채, 다진 고기와 볶으면서 계란을 풀어 노란빛과 함께 흰 두부와 야채, 고야의 초록빛이 어우러지는 고야참플(여주볶음)을 요리하자 그 광경을 보던 아야가 호기심에 물었다.

"주지승님은 고기를 안 드신다고 들었는데요."

"네, 저는 먹지 않지만 다른 분들은 드시니까요."

"아, 그렇군요."

"절의 방침과는 어긋나지만 사정상 외부에서 온 분들이 많으니 다른 분들의 입맛도 존중해야죠."

"그렇군요. 그럼 술은요?"

문화첩에 펜으로 적던 아야가 물어보고 모미지도 눈동자를 반짝거리자 뱌쿠렌이 웃었다.

"하하, 될 것 같나요?"

"에이. 너무해."

아쉬워하는 아야와 모미지, 이치린의 표정을 뒤로하고 뱌쿠렌이 마무리를 지었다.

"자, 다 됐네요."

접시들 마다 가득 고야참플과 미쯔바 무침을 담아내자 아야가 셔터를 광속으로 눌러댔다.

"오오오옷! 명련사의 주지승님이 볶아내고 담아낸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야참플과 배유령이자 성련선의 선장이 기품있게 담아낸 미쯔바 무침이라니 정말 황금보다 더 빛나고 먹음직스럽군요!! 대단한 비쥬얼이에요! 환상적인 조명과 앵글에 맞춰 정성이 카메라에 가득 담겨 있네요!! 보기 좋습니다!!!"

"하하, 주책맞은 칭찬 감사드려요. 아야 씨." 뱌쿠렌이 웃으며 말했다.

이치린이 이 텐구가 뭔 청승맞는 소리하냐는 듯이 쳐다보다가 문득 모미지가 코를 계속 킁킁거리더니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모르고 훌쩍훌쩍한 코와 함께 입에서는 침을 흘리자, 더 어이가 없어져 입을 열었다. 

"얜 왜 저러는 건데요?"

"뭐야? 이 텐구는 비염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러자 놀란 모미지가 허겁지겁 소매로 코와 입을 닦으며 딴청을 부렸고 그걸 본 아야가 실실 웃으면서 비웃듯이 말했다.

"개과 특성이예요. 후각이 발달해서 맛있는 냄새에 더 민감하죠. 지금 미소냄새에다가 요리중이라 더 정신 못 차릴걸요."

차마 부정은 못한 모미지가 그저 너풀거리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장작을 아궁이에 던져 넣었다.

"그래도 선장인데 나도 좀 잘 나오게 찍어. 이왕 앞치마도 입었는데."

"호오오오! 역시 뭔가를 아시는군요! 바로 그 자세예요!!"

무라사가 요리하는 자세를 잡고 아야가 자동적으로 렌즈를 바꿔 끼우고 모미지에게 불붙은 장작을 두 개 꺼내들게 하여 조명을 조절하면서 컨셉사진을 찍자, 황당해서 표정관리가 안 되는 이치린을 끼고 뱌쿠렌도 인자한 표정으로 고야참플이 담긴 접시를 잡았다.

"아아아앗! 주지승님도 가세하는 건가요! 정성스러운 그 자세 좋아요!"

셔터를 누르다가 필름이 다 되자 신속히 카메라를 모미지에게 주고 다른 카메라로 찍는 아야와는 달리 모미지는 귀찮은 표정으로 받아든 카메라의 필름을 갈면서 슬쩍 하나를 바꿔치기했고, 후토는 미소국이 다 끓자 국그릇에 담으면서 아야에게 말했다.

"이보게 텐구! 나의 미소국을 봐주시게나!"

"으아아아앗! 도교의 수행자가 선보이는 미소국이로군요! 정말 번쩍번쩍 빛나는 것 같아요!"

"그렇다네! 도교의 높은 가르침만큼이나 깊이있고 향내가 물씬나는 미소국이라고! 에헴!"

플래시 세례에 기세등등한 포즈로 답하며 죽이 잘 맞는 둘을 보던 이치린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바보가 둘이야."

모미지도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계속 끄덕였다.

"어디 맛이나 보자."

이치린이 국자로 조그만 국그릇에 담아 조금 마셔보고는 놀라며 말했다.

"맛있는데? 야, 이거 진짜 잘 됐다!"

"깊이있는 향내가 난다고 하지 않았느냐. 허허헛!"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들뜬 후토에게 이치린도 놀라며 말했다.

"아니, 진짜 잘됐어. 미소를 어떻게 풀었데?"

"태자님과 토지코의 밥상을 차릴 때 익힌 내 비결이니라!!"

"오오, 한번 밥 되면 먹어봐."

이치린이 태도가 달라지면서 후토에게 붙자 기분이 좋아진 후토도 웃으면서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보도록 하지. 후후."

"자자, 이치린 밥은 다 됐나요?"

"아, 뜸만 들이면 될 거예요. 다들 불러오면 그때 밥 푸죠."

"그래요. 그럼 다들 식사하자고 합시다. 이치린이 만든 죽순 밥이니 맛있을 거예요."

"그럼, 죽순 손질도 잘해놨다고."

"와! 정말 기대되네요!"

아야가 반색하며 모미지에게 고개를 돌리자 아야의 시야에 흥건해진 콧가와 함께 미소국을 맛보는 모미지의 모습이 보였다.

"모미지?"

"헉, 앗! 뜨거."

안 볼 때 허겁지겁 국이 담긴 사발을 맛보던 모미지가 놀라서 황급히 내려놓다 튄 국물과 낯뜨거움에 붉어진 얼굴로 두 집게 손가락을 맞대고 비비며 대답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미소냄새가 강렬하다보니 눈 앞에 있는게 맛있어 보이기에 맛만 보려고 했는데."

아야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말했다.

"어휴, 그래서 맛있어?"

"어.. 음? 음 그러니까 응! 인정!" 모미지는 철저히 물어본 아야가 아닌 뱌쿠렌을 쳐다보며 얼굴에 화색이 돌며 박수를 쳤다.

"맛있게 먹어주어 감사드립니다. 더 많이 해야겠어요." 뱌쿠렌이 합장을 하며 화답했다. 

"모미지가 생각보다 음식을 예쁘고 맛있게 잘 먹네요. 다른 분들도 먹고 싶을 정도로요."

아야가 주변을 의식해 눈치것 감탄하는 사이, 무라사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그럼 됐네. 뱌쿠렌이 고기 섞은 요리도 다하고 말야. 후훗. 식사나 맛깔나게 해보자고."

"텐구분들은 사진 잘 부탁드려요." 뱌쿠렌의 말에 아야와 기분 좋아진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1. 烏帽子: 일본 전통의 길쭉한 모자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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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2시경 묘렌사


"자자, 그러니까 이변이 안 되게 잘 설명해주셔야죠. 우후후."

씨익 우는 아야의 웃음에 기가 막혔는지 모코우가 혀를 찼다.

"뭐, 그래도 여기는 시원하고 좋네. 방금까지만 해도 몹시 더웠는데 말이야."

"그냥 저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요. 엄청나게 길어서 보는 사람도 더운데."

코가사가 말하자 모코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돼. 반팔을 입었으면 되었잖아!"

"바지가 긴 바지인데 뭘.."

마미조가 얼린 체리를 먹으며 말하자 누에와 모미지, 코가사와 쿄코가 피식하고 웃었고 코코로도 노인가면으로 '히히히'하고 소리를 내었다.

"아니, 봐! 케이네도 옷이 길잖아!"

"저기 모코우, 그래도 난 파란색에 통치마라 통풍은 잘 돼서."

할말이 없어진 모코우가 케이네만 바라보자, 얼음을 얼리던 치르노나 쇼, 후토와 뱌쿠렌까지 웃으며 분위기가 심히 무안해졌다.

"야, 음, 그냥 본론 들어가야겠다. 멘레이키. 아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코코로. 하타노 코코로야."

"그래, 코코로. 분노는 말이야. 말 그대로 '화'야. 화내는 것과 분노하는 것은 같은 말이지. 무슨 일이든 우리가 살면서 화를 내게 되는 상황이 있잖아. 나 같으면 당장 갈아 마셔버릴 카구야를 길에서 봤다든지, 밤참새네 가게에서 술 먹는데 카구야를 본다든지, 케이네와 태양의 밭에서 나들이하는데 토끼 두 마리를 붙인 카구야를 봤다든지..."

케이네가 난처해져서 모코우의 허리춤을 툭툭치자 모코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아, 나도 모르게.. 그냥 내가 싫어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정말 싫어하는 대상을 봤을 때 우린 미워하고 화를 내지."

"근데 왜 미워하는 거야?"

코코로의 질문에 모코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꺼려다가 말면서 말했다.

"아주 기이이잎게 사무친 원한이 있어서 말이야. 그걸 풀기 위해서지. 그냥 그런 정도만 알아주었으면 해."

"음.. 뭐, 알았어."

"아무튼, 나는! 꼴 보기 싫은 상대를 만날 때 제일 화가 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너는 어떨 때 화가 나지?"

"졌을 때."

"으흠, 계속 말해봐."

"속상할 때. 그리고."

코코로가 자신의 가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표정을 지었는데 상대방이 오해할 때."

손을 움직이며 머뭇거리는 코코로를 본 모코가 말했다.

"으흠, 그래. 정말 속상했겠구나. 그밖에 더 있니?"

"있을 텐데 좀 화가 나서."

"그래, 아무래도 속에서 울컥했나 보구나. 그래, 충분히 짜증 날 만한 상황이야. 그렇지? 우린 그런 상황에 부닥쳤고 화를 내는 단계에 도달했어. 뭐 더 참을 수 있다면 이 단계까지는 오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견디긴 인내심이 충분하지 않다면 엄청나게 힘든 일이거든. 기분이 좋으면 가슴설레고 두근거리고 무언가 해주고 싶고 에너지가 넘치게 되는 것처럼 화를 내게 되면 말이야. 몸의 모든 근육이 긴장되고, 심장박동이 더 빨라지고, 분노와 함께 몸에서 열이 나게 되지. 지금은 어떠니?"

"지금.. 지금은."

코코로가 분노할 때 쓰는 반야가면을 꺼내면서 무표정한 얼굴이 무서울 만큼 싸늘해지자 아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사진 셔터를 눌렀다.

"너무 화가 나!"

"그래, 너의 몸에 있는 모든 신경이 곤두서지!" 분노의 감정 때문인지 모코우도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응!"

"덜덜 떨리고 열기로 달아오르지!"

"응!"

"주먹이 쥐어지고 빨라진 박동수만큼 몸의 혈압이 높아지는 게 느껴지지!"

"응! " 코코로가 주먹을 쥔 상태로 누구와도 싸울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그래! 이게 바로 화를 냈을 때 몸이 반응하는 거야! 너의 감정이 몸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주는 거지!"

그러자 마미조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잘 가르치시는구먼. 멘레이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겠쓰으이."

"아, 뭐, 내 경험을 설명해주는 건데 뭐. 이런 걸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체험시키는 게 더 얘 몸에 익겠지."

"근데 모코우, 설명을 듣다 보니 나도 슬슬 화가 나는데 좀 진정시켜야 하지 않을까?"

"기다려봐, 케이네! 이제 시작이니까. 코코로 지금은 어때?"

"분통터져! 짜증나!" 코코로가 사납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이런 분노는 호흡을 증가시키고 혈압을 높이기 때문에 심혈관 같은 몸의 핏줄이나 다른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줘! 다혈질인 사람이 병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지. 이건 뭐, 우리가 이런 걸로 죽지 않는 요괴긴 하지만 고통받는 건 마찬가지니 설명하는 거야! 그리고 분노의 문제점이자 특징이기도 한 게 바로 분노가 행동을 너무도 쉽게 유발한다는 거지!"

"행동이라면! 이런 거!"

코코로가 허공에 탄막을 뿌리고 주먹질을 하자 모코우가 미동도 없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행동이 나타나지. 분노가 일어나면 근육이 긴장돼서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혈압이 높아져 있는 만큼 행동을 유발하는 몸의 스피드도 빨리 처리가 되거든! 즉, 전신이 전투태세에 돌입하게 되는거야!"

이를 악문 코코로의 허공을 향한 주먹질을 지켜본 모코우가 말했다.

"그리고 분노는 너를 싸울 준비가 돼 있도록 만드는 동시에 상대와 주변에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줘서 물러나게 해 싸울 필요가 없게 만들기도 하지! 즉, 분노의 본질적인 표현방식은 위협이야!"

"으으, 짜증 나. 그냥 다 박살 나버려! 다 결딴내버릴 거야!

"저기 모코우 씨. 여기서 너무 화를 증폭시켜 버리면 큰 문제가 생겨요! 여긴 갈등요소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다고!!!" 아야가 다급히 외치자 모코우가 쳐다도 안 보고 말했다.

"진짜 분노할 때는 남의 목소리도 안들리게 되지만 말이야. 분노는 강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 힘을 빌려 마음속에 억눌린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평소의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말이야! 여기서 잘못되어 애절한 슬픔과 '한'스러움까지 더해져 심해지게 되면 '홧병'으로 발달하는 경우가 많아. 다시 한 번 묻지! 너는 뭐 때문에 화가 나지!!"

"나는.. 나는!!! 싸움에서 최강이 아직 아니라는 거!!!! 그리고.. 그리고.. 감정의 요괴면서!! 누구보다 감정에 해당하는 표정의 가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가지기만 하고... 가지기만 하고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거!!!!"

아주 큰 탄막들과 함께 주저앉아 코코로가 슬플 때 쓰는 할머니가면을 넘어 누가봐도 슬픈 표정의 가면으로 엉엉 울어버리자 유유히 탄막들을 피한 모코우가 코코로를 달래러 다가가는 요괴들을 제지하고는 자신이 다가가서 주저 앉아 울게 놔두면서 말했다.

"마음껏 울어.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아. 화나고 억울하고 답답한 만큼 울어버려."

오랜 시간 울분을 토해내며 서글프게 울다가 코를 훌쩍거리며 무표정으로 모코우를 쳐다보는 코코로에게 케이네에게서 받은 손수건을 건네준 모코우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분노 다음에는 지금 겪은 것처럼 멍하고 슬픔과 공허함만이 남지. 왜 그래야 했는지 민망하고 억울할 수도 있고, 아니 어쩌면 속에 담아두던 걸 다 쏟아 냈으니 후련함일 수도 있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분노 뒤에는 충분히 화낼 원인이 충분하고 복잡한 너와 너의 마음에 대해 지금처럼 화낸 다음에는 애도를 해주어야 한다는 거야."

눈물을 닦은 코코로가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모코우가 코코로에게 말했다

"아직 너는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을 그냥 상대와 싸우고 대놓고 화내는 분노라는 감정 그 자체에 충실했기 때문에 더 그럴 거야. 분노의 목적은 말이야.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더 관심을 집중시키고 나를 존중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거든."

그리고는 코코로를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거리며 달래면서 말했다.

"그러니 네가 화난 상대를 만나거나 네가 먼저 화를 냈을 때는 무언가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에게 내가 왜 화냈는지, 내가 왜 상대에게 화냈는지 정리해서 이야기 해주고 생각할 시간을 주도록 하렴. 분노는 그 자체로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동기이자 항의이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당한 표현이니까."

"응."

케이네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듯한 표정으로 곁에 서고, 아야도 숙연해져서 셔터를 누르는 사이, 다른 요괴들이나 후토도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았다.    

"흐흑, 모코우. 넌 정말 좋은 선생님이야."

그녀가 울먹이며 말하자 모코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케이네. 내가 말했었잖아. 난 분노가 아니라 증오에 빠졌던 존재야. 그 자체만으로 결코 좋은 선생이 될 수 없어."

"아냐, 난 너처럼 코코로 학생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주지 못했어."

"휴우, 케이네. 너무 자책하지 마. 난 너처럼 배운 존재가 아니야. 난 그저 살다 얻어걸린 경험담을 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모코우가 케이네를 달래주자, 코코로가 케이네에게 젖은 손수건을 건네주면서 모코우에게 물었다.

"그럼.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어? 또 증오는 뭐야?"

"음? 아, 그거?" 모코우가 깜짝 놀라 난색을 보였다가 케이네를 쳐다보며 말했다.

"케이네, 근데 얘한테 증오를 설명해줘도 되나?"

"음.. 어차피 감정의 요괴라면 알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내가 보기엔 얘가 너무 많은 감정이 있어서 더 복잡해져서 그러는 거 같기도 하고, 또."

"또?"

케이네가 묻자 모코우가 눈치를 살짝 보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까 얘 탄막 뿌리고 화낼 때 저기 몰려있는 저것들, 슬쩍 봤는데 탄막이 아니라 무기들을 꺼내고 있더라고."

"!!"

바로 '어쩌면 좋지.'하는 표정으로 기겁한 케이네는 아야를 슬쩍 바라보자, 아야는 대답 대신 카메라를 비추며 셔터를 눌러댔다.

"좀만 더 늦었어도 솔직히 큰일 날 뻔했는데 말이야."

난처한 기색으로 말하는 모코우에게 케이네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해. 모코우, 코코로 학생이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배우겠어."

"그래, 뭐. 별일이나 있겠어. 큰일나면 난 모르지만. 어쨌든 한다."

아야가 다가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물어보자 케이네가 주의를 시켰고, 그 주의를 아야가 모두에게 설명하자마자 뱌쿠렌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모두의 무기를 걷어 한구석에 가져다 놔버리는 것을 본 모코우가 안심하고 말했다.

"뭐, 얼추 된 것 같군. 일단 분노표현은 말이야. 그 자체를 두려워하면 안 돼. 이미 충분히 화낼만한 상황이라면 차라리 화를 내는 게 더 마음 편하거든. 아무리 관계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지만 분노 자체를 통제로 둬서는 안 된다는 뜻이야."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코우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분노는 상당히 나쁜 친구들이 있거든. 아까 말한 증오라든지 앙심, 미움 같은 거 말이야. 즉 부정적으로 충분히 빠져들 수 있다는 거지. 나도 그랬었고 많은 요괴가 거의 이 상태지만. 방금 너도 화나서 알텐데 화나는 마음을 조절하기란 상당히 힘들어. 화라는 게 전혀 나와 맞지 않는 상황이나 주변이나 상대가 증거가 있든 없든 의도를 해서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고 판단이 된다든가 내가 화를 내도 불이익이 없는 위의 처지에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로서 화낼 수밖에 없을걸."

"응."

"그러니 이성으로 일단 화날만한 상황을 정리해. 이미 말했던 것처럼 바로 화내기보단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고. 내가 충분히 화낼만한 상황이고 상대방이든 제3자이든 내가 화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일 때 화내는 게 더 의사 표현의 역할이 잘 되고 예후가 적어도 나에겐 나으니까. 그리고 화가 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 그리고 끝난 일은 곱씹지 말고 끝내. 어떤 일이든 그게 제일 낫더라. 끝난 과거는 끝난 과거일 뿐이야. 현재에서까지 얽매일 필요는 없어."

"응."

"저기, 그럼 카구야와의 일은.."

케이네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모코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건 안 끝났잖아. 내가 말하는 건 완전히 해결된 일을 말하는 거야."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코코로에게 말했다.

"아, 어차피 증오에 관해 설명해줘야 하니까 잘 됐다. 내가 아까 분노는 나쁜 친구들이 있다고 했지?"

"응."

모코우는 말을 하려다가 치르노가 옆에 앉자,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도 배울래!"

"뭐? 넌 배워도.."

'잘 모르잖아.'라고 말하려던 모코우는 케이네의 미소를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휴, 이해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들어나 보렴. 내 처절한 인생의 굴레 같은 거니까."

헛기침을 한번 한 모코우가 말을 이었다.

"증오는 진짜 불같은 거야. 증오는 원인이 있고 밖으로 분출되는 표현인만큼 불이 번저가듯 연쇄작용처럼 주위로 번지기도 쉬운데다가 화낼만한 원인이 있든 없든 간에 이것에 사로잡히면 불이 다 타고 난 뒤 재만 남기듯 마음과 몸만 황폐해지고 지저분해질 뿐이야. 분에 못이겨서 홧병을 보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미워하고 끊임없이 증오하고 싫어하는 그 대상과 절대로 공존할 수 없어서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만 하는 관계거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마음을 계속 비효율적으로 낭비하지. 그저 상대를 미워하는데 말이야."

"마치 번뇌처럼?" 코코로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그래, 불교에서는 그렇다고 듣긴 했어."

"코코로 양이 기억해주고 계셔서 감격스럽네요."

"그러게요.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있어요."

뱌쿠렌이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쇼도 거들었다. 

"응? 여기서 다들 뭐해?"

나즈린이 들어오면서 묻자 쇼가 녀를 반겼다.

"나즈린! 어딜 갔다 온 거예요? 여기와서 얼린 과일좀 좀 먹어요."

"아, 쥐들 밥 먹이느라 좀 늦었어. 주인."

나즈린이 받아든 얼린 과일을 먹으려다 깜짝놀라 화를 냈다.

"주인! 이건 얼린 매실이잖아! 이 신걸 어떻게 먹어!"

"에이 아깝네. 아무 생각없이 햛았어야 됬는데."

아쉬워하며 낄낄거리는 쇼가 투덜거리는 나즈린에게 웃으며 얼린 체리를 건네주자 아야가 말했다.

"그럼 계속 증오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모코우 씨."

"응, 잠시 산만해졌군. 그러니까 분노는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낼 수 있는 아주 강한 의사 표현이라면 말이야. 증오는 그냥 그 대상. 미워하는 게 사람이든, 짐승이든, 요괴든, 사회든, 세상이든지 간에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거야. 내가 없어지거나 상대가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를 초래하는, 즉 무언가를 없애버리기 위한 광폭적 미움이지. 케이네, 그 단어 중에 꼭 그래야만 하고 그렇게 되는게 마땅하다는 의미가 있는 단어가 뭐였지?"

"음... 당위성?"

"아, 그게 맞겠다. 내가 증오할 만한 당위성이 있더라도 내가 느꼈을때는 그것에 빠져 사는 건 너무도 비효율적이야. 특히 나로서는 더 그랬어."

"왜?"

치르노와 코코로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묻자 모코우가 한숨을 쉬었다.

"분노와 같은 번뇌는 무의미함을 느끼신 건가요?" 뱌쿠렌이 물었다.

"명상과 수련으로 자신이 자연과 하나이고 증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건가?" 후토도 거들었다. 

"아니, 그렇게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해봐도 좀 웃긴 건데."

심각한 표정을 짓다 갑자기 피식하고 웃던 모코우가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증오하는 대상과는 공존 불가라고. 난 증오하는 대상이 카구야고 걔도 날 증오해. 결국 죽이거나 없앨 수밖에 없는데 둘 다 불사란 말이야. 크크킄. 이 세상에서 없앨 수도, 없어질 수도 없으니 평생을 질리도록 미워하고 싫어고 죽이려들 수밖에 없지."

그리고는 다시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생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어 보이게 말이야."

조심스럽게 그녀의 말을 듣는 코코로 옆에서 나즈린이 다가와 물었다.

"그럼 벗어날 수도 있다는 거네."

"그래, 그걸 알려주기 전에 말이야.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아주 폭발적이고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지만 그게 옳은지, 정말 나를 위한 건지는 반영하지 않아.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을 마비시키거든. 본능밖에 없는 짐승처럼 말이야."

모코우가 목이 말랐는지 얼린 과일 조각 하나를 삼키고는 말했다.

"그렇게 살면 살수록 나만 소비하고 나만 생각하며 내 내면의 모든 에너지가 낭비되고 가진 감정도 사나워져서 사소한 것에도 화를 내게 되고 결국 모든 것에 화를 미치게 되는 거야. 하나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전부를 미워하게 되고, 하나에만 미움받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미움받게 되지. 그래서 마음과 삶이 힘들고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거야."

"예를 들면 나무에 붙인 불이 산불이 되듯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이고 그건 결국 나에게 화를 미치게 되는 것과 같아." 진지하게 듣고있던 케이네가 옆에서 거들었다.

"음. 증오는 생각보다 나쁜 거구나."

"증오를 낼만 한 이유가 있으니 그런 감정에 대해 나쁘다 착하다 판단을 내리는 건 좀 그래. 네가 아까 보인 울분처럼 한이 맺히거나 슬픔을 가지고 있으면 말이야. 대부분 복수를 할 때 쓰이는 것처럼 증오도 정당한 의도와 수단으로 어떻게 정당성 있는 일에 쓰이느냐에 판단해야겠지. 증오는 정말 분노보다 아주 아주 강한 동기거든. 물론 증오에 빠진자는 주체못할 증오를 내뿜기위해 화나는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어내겠지만."

멍한 채로 듣고 있는 치르노와 곰곰이 생각해보는 코코로에게 모코우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증오는 말이야. 아까 내가 벗어날 수 있다고 했었지? 그걸 알게 된 것이 얼마 전 일이거든."

"그게 뭐죠? 이야기해주세요?"

아야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묻자 모코우가 짜증을 냈다.

"아, 말하려는데 보채지 마! 넌 그냥 각 잘 잡고 날 조명 잘 받게 찍기만 하면 된다고."

"네, 알겠습니다. 헤헷."

"어휴 거참, 극성맞긴. 있잖아. 치르노, 코코로,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은 내가 정말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도움이 될지는 확신은 없어. 하지만 지금 하는 말은 정말로 너에게 도움이 될 거다. 듣는 이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내가 느낀 경험담으로서 말이야. "

고개를 끄덕이는 코코로의 옆에 다가와 앉은 쇼와 뱌쿠렌, 모미지 등 주위의 모두를 한번 쓱 살펴본 모코우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에 카구야와 싸우려고 영원정에 몰래 쳐들어간 적이 있었어. 사실 예전처럼 극성맞게 미워하던 시절은 지난 거 같긴 한데 내 안의 증오는 카구야와의 공존을 허락하지 않았거든. 공격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지만 분이 안 풀리니까 말 그대로 분통이 터져서 물씬 혼내주고 싶고 더 막 공격하게 되는 거지. 담에서 몰래 숨어서 화끈하게 불 지르려 기회만 엿보다가 카구야의 짜증나는 목소리가 들려서 담 너머를 봤거든."

"그래서?" 케이네가 물었다.

모코우는 케이네를 슬쩍 쳐다보더니 허탈하면서도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원정 마당에서 가져둔 평상에서 큰 토끼가 과일을 깎아주고 작은 토끼가 과일을 먹으면서 농담을 하며 웃고 있고 마찬가지로 웃고 있는 양반다리를 한 의사 양반의 허벅지에 무릎베개한 카구야가 웃으면서 과일을 먹고 있더라고."

"으음." 케이네가 손으로 턱을 괴며 대답했다.

"진짜 게네들 행복해 보이더라.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워보였어. 근데 그걸 지켜보던 내 심정은 어땠는지 알아? 딱 두가지가 생기더라고."

"어떤 거였제?" 마미조가 인자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물었다.

"하나는 미운 감정을 잔뜩 들고 간 속이 타는 나에게 나도 저렇게 행복하고 즐겁고 신나게 삶을 누리고 싶다는 부러움과 갈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반대인데. 좀 치사하고 치졸하지만."

모코우는 아까보다 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저렇게 원수 같은 대상이 행복하게 사는 꼴을 볼 수 없어서 더 분통 터지고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고. 못 견딜 만큼 말이야. 나는 이렇게 증오를 품고 분노하며 나 마음속에서도 괴로움을 안고 사는데 정작 내가 망하길 바라는 대상은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거야. 증오를 품은 자에게는 그런 세상이 불공평하고 미울 수 밖에 없지 않겠어?"

아야와 모미지, 뱌쿠렌과 후토 등 모두가 모코우의 말에 집중하며 듣자, 정작 그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두 가지 생각이 나서 복잡해진 마음으로 그 광경을 보다가 내가 그동안 생각의 오류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리고서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어."

"그게 뭐야?" 코코로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말이야. 그동안 내가 복수에 집중하다 보니 얽매여서 헤어나지 못하고 증오심에 빠져 파괴적인 본능에 충실해서 몰랐는데, 증오를 누그러트리고 좀 이성적으로 생각하니까 알게 된 거지만 최고의 증오표현이자 복수는 말이야. 내가 내 삶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사는 거야. 내가 카구야를 보고 느꼈듯이 남이, 아니 원수가 부럽고 미칠 듯이 약올라 죽을 만큼 말이야. 얼마나 고소한 일이야. 나는 행복한데 적은 그 모습을 보고 끽소리도 잘 못하고 속 터져 미치겠다니! 얼마나 꼬라지가 비참한지. 하핫."

그리고는 케이네와 어깨동무하면서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화와 분노, 증오에 빠져 내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지는 못했거든. 나도 엄연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내 주변도 나로 인해 행복해져야 할 텐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가장 좋은 것 같아."

"모코우!"

케이네가 감격에 차서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모코우를 바라보자 그녀도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그렇구나." 코코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코 씨의 복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야가 셔터를 누르면서 웃는 것 같은데 뭔가 심각하게 냉소적인 눈빛에 싸늘한 웃음으로 묻자, 모코가 대답했다.

"말했잖아. 이게 내 복수야. 더는 망가지고 싶진 않아."

"그렇군요. 아주 좋은 말씀이네요.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 남을 미워하는데 쓸 그 시간을 케이네와 다정한 추억으로 만드는 데 쓸 거라고."

코코로가 유심히 보는 앞에서 말을 마친 모코우가 케이네에게 얼린 과일을 먹여주자 쇼가 박수를 친 뒤, 눈웃음과 함께 온화한 표정으로 합장하며 말했다.

"석가가 법구경(法句經[각주:1])에서 말하기를 '원한은 원한으로 풀어지지 않으리니 버릴때에만 풀리리라'고 하였고 이는 변치 않을 진리라고 한 만큼 정말 숭고한 결심입니다." 

뱌쿠렌과 턱을 괴며 고개를 끄덕이는 후토를 포함한 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언짢은 표정으로 아야를 노려보는 모미지의 반대편에서 겸연쩍은 표정의 아야가 급히 카메라로 표정을 감추며 사진을 찍었고, 케이네가 잠깐 생각이 들었는지 옆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잠깐, 모코우. 그럼 카구야를 만나면 어떻게 할 거야?"

"아니, 그때는 싸우지. 과거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싸울 수밖에 없잖아. 그때 빼고는 그냥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방구석 폐인도 토끼들이나 의사에게 소문은 들을 거 아냐. 원수 같은 모코우가 입이 귀에 걸려서 잘살고 있다고. 그럼 뭘 하겠어? 이불이나 걷어차며 방방 뛰겠지. 크히히히히하하핫!"

호탕하게 웃는 모코우에게 케이네가 슬쩍 말했다.

"모코우, 그래도 뒷담은 좋지 않아."

"뭐, 어때? 없는데 선 나라님도 욕한다잖아. 난 카구야를 좋게 말해줄 순 없는 처지라고."

"에이, 그래도 주위 인식이라는 게 있지. 너의 체면도 상하는 일이고 너만 미워하면 되지 다른 요괴들까지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할 필요는 없어."

"흠, 알겠어. 하긴 농담이라도 가릴 건 가려 해야겠지. 안 좋은 부분을 꺼내 공감시키려 한 내가 잘못했어."

뱌쿠렌이 웃으면서 계속 말을 따라 하려는 쿄코의 입을 얼린 과일로 막은 코가사를 칭찬해주는 사이, 코코로가 여전히 생각에 잠겨 그들을 바라보았다.

"좀 도움이 되니?"

모미지가 묻자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행이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을 찍은 아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훈장님이 데려오신 모코우 씨가 잘 가르쳐주셔서 다행이네요. 코코로 양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요."

"응, 고마워!" 코코로가 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모두 정말 다 고마워!"

코코로가 춤사위를 보이며 절을 하자, 다들 유치원에서 상을 받고 돌아온 딸을 보는 듯한 흐뭇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저기 훈장님. 모코우 씨. 저녁은 안 드시고 가시나요?"

"아, 저녁은 둘이서 오긋하게 딴 곳에서 먹으려고요. 가져온 죽순 맛있게 잘 드세요."

모코우가 먼저 케이네에게 팔짱을 끼고 끌어당기며 말하자 케이네가 화들짝 놀랐다.

"모, 모코우!"

"아, 알겠습니다. 두 분 만의 다정한 시간 보내시길."

"네, 그럼요. 주지승님. 케이네, 가자. 아! 코코로."

코코로가 쳐다보자, 모코우가 포근한 눈웃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맙다. 다시 나를 돌이켜 볼 수 있게 해줘서."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코코로를 잠깐 바라보던 모코우가 천천히 돌아서자 아야가 외쳤다.

"아잇! 잠깐만요! 이 자리를 마련한 건 저라고요!"

"시끄러, 텐구! 난 케이네가 불러서 온 거야." 

"에이, 너무해!"

그 모습을 웃으며 살피던 뱌쿠렌이 멍하니 앉아있는 치르노에게 다가가 물었다.

"바쁜데 이렇게 참여해줘서 치르노도 수고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응? 내가 왜 바빠?" 치르노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 많이 벌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바쁘지 않나요?"

"응? 바쁘다니? 그리고 돈은 그냥 여기서 뭘 얼리면 주는대로 받는 건데?"

"..."

뱌쿠렌이 난감한 기색으로 숨을 내쉬며 차분히 물었다.

"그럼 방금 모코우 씨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기억은 나세요?"

"응, 당연하지. 행복하게 살랬어!"

"명쾌한 요약이네요. 잘 이해했어요." 그녀가 감격에 찬 얼굴로 치르노에게 합장했다.



그런 모습을 지붕에서 지켜보던 곽청아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별 청승을 다 떠네. 이런 연극이나 하려고 나에겐 비밀로 했던 거야? 후토도 저기껴서 뭘하는 건지. 아무래도 내가 좀 손을 봐줘야겠는걸."

곽청아가 사라지고 나서 한참 뒤, 이치린은 슬쩍 돌아온 운잔을 보고는 나즈린에게 싸인을 주었고, 나즈린이 누에와 마미조에게 손짓을 하자 마미조가 차분하게 조금이따가 만나자고 이야기하고는 누에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 그럼 좀 늦었는데 이제 배낭을 챙길까."

아야가 카메라를 정리하고 모미지가 배낭을 주섬주섬 챙기자 뱌쿠렌이 말했다.

'에이, 그래도 늦었는데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야죠. 후토 씨도요."

"뭐? 나도 말인가?"

"응? 싫으세요?"

후토가 기겁하며 묻자 뱌쿠렌이 받은 죽순을 내보였고 잠깐 갈등에 빠진 후토가 말했다.

"그, 그럼, 저녁만 먹고 가겠네. 저녁만."

"네. 그러세요. 이치린, 나즈린! 저녁 준비하도록 하죠. 텐구분들은 어찌하실 거죠?"

"저, 저는 그다지.."

필름을 품 안에 숨겼던 모미지가 당황해서 거부하자 코코로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저녁메뉴는 맛있어?"

"절밥이니까 맛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몸에 좋다고 많이 찾거든요."

"후후, 역시 기자시니까 유행을 좀 아시네요." 뱌쿠렌이 웃으며 대답했다.

"응, 먹을래! 텐구 언니들도 같이 먹자!"

코코로가 웃는 노인 가면을 꺼내며 모미지와 아야에게 달려들며 붙자, 모미지가 필름이 든 자신의 품을 만지지 못하게 팔만 잡도록 내주고서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음.... 어차피, 밥만 먹는 거면 안 들킬 수도 있지.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해.'

"뭐, 밥먹는 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모미지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먹고 갈게요. 이왕 저녁 메뉴나 먹는 모습도 사진에 남기죠!"

"네, 잘됐네요. 그럼 코코로 양과 같이 안으로 들어오시길."

 


  1. 인도의 다르마트라타가 편찬한 석가의 가르침을 집성한 불교 초기의 경전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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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2시 명련사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명련사에서는 아야가 불러서 온 치르노의 과일 얼음을 먹으면서 교육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불교에는 삼독(三毒)이라고 해서 탐진치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본능적으로 욕구로서 탐내고 구하는 탐욕에 해당하는 탐(貪), 또 하나는 자신과 맞지 않거나 우월한 대상에게 보이는 증오, 노여움, 시기. 질투와 같은 진(瞋). 치(癡)는 사리분별을 못 하는 무식에 해당하죠. 이 세 가지는 번뇌로서 중생들을 괴롭게 하고 자아에 집착과 고집을 만들게 됩니다. 이를 다스리기 위해 수행이 필요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나 감정적으로 싸우고 다투고 힘들어하는 것도 불교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쇼의 설명을 들으면서 얼린 복숭아를 까둑까둑 소리를 내어 먹는 코코로를 클로즈업하며 찍는 아야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치린이 마지못해 말했다.

"얘 좀 먹게 놔두지?"

"에이, 먹는 모습이 예쁘니까 그렇죠."

"와, 정말? 더 찍어줘."

신난 아야와 좋아하는 코코로를 어이없이 바라보던 이치린은 저 멀리 방패와 검을 두고서는 얼린 과일을 입에 물고 카메라 필름을 가는 모미지에게도 말을 걸었다.

"그쪽은 이 안 시려워? 다 먹고 하지?"

그러자 모미지가 필름을 재빨리 갈고 얼음을 입에서 뺀 후, 대답했다.

"아뇨, 혀로 체온조절 하는지라 오히려 혀도 시원하고 좋은데요."

할 말이 없어진 이치린이 가만히 있자, 과도로 과일 껍질을 깎던 뱌쿠렌이 말했다.

"쇼 씨가 좋은 말씀 해주셨네요. 다들 박수로 응원해줍시다."

얼린 멜론을 입에 문 후토나 한창 썰린 과일을 얼리고 있는 치르노까지 전부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본 쇼는 흐뭇한 미소로 인사하며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많이 연습했는데 나즈린이 없어서 아쉽네요."

"나즈린은 왜?"

누에가 묻자 쇼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즈린에게는 믿음직하고 대범한 모습을 보이고 싶거든요."

"에이, 잘하는데 뭘."

"잘하는데 뭐어어어얼!!!!!!!"

누에와 쿄코가 답하자 쇼가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원래 실수도 좀 하고 감정적이라 평소에 이러질 못해요."

"자신감만 있으면 되죠. 그런 의미로 쇼 씨도 몇 컷 찍겠습니다!"

아야가 재빨리 카메라의 렌즈를 쇼에게 겨누자 옆에서 후토가 눈치껏 쇼에게 얼린 수박을 건네주었고 

무심코 받아는 들었지만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쇼에게 후토가 고개를 돌리면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서.. 설정 샷. 하라고."

우걱우걱 자신의 입에 얼음 과일 조각을 넣는 후토의 뒤에서 빙그레 웃음을 보인 쇼가 제대로 자세를 취했다.

"와! 좋아요! 아주 좋아요! 표정이 살아있네요! 앵글도 좋고!!"

"하여튼 저게 원래 파파라치가 아니라 신문기자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광속으로 셔터를 눌러대는 광경을 묵도한 누에가 자신의 한탄을 모미지가 거들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야, 너네 동업자잖아."

"동업자는 무슨 얼어 죽을.. 이건 뭐 시다바리죠."

"...."

누에가 난감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뱌쿠렌이 치르노에게 합장을 하며 말했다.

"요정분이 이렇게 교육환경을 쾌적하게 해줘서 감사하군요. 나무삼."

"에이, 뭘. 나도 돈 받고 하는 건데."

"네?" 뱌쿠렌의 얼굴이 경직되며 물었다

"아, 제가 돈 주고 불렀거든요. 여름에 엄청 귀하신 몸이라 데려오는데 엄청 어려웠어요."

당황하는 뱌쿠렌에게 아야가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이치린이나 후토, 누에와 모미지도 덩달아 당황했다.

"니가 돈이 있어?"

"있어, 멍청아!" 아야가 내리깔면서 모미지를 꼬라보며 말했다.

"근데 요정이 굳이 돈이 필요한가?"

"그럼! 돈은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댔어! 그러니 난 돈을 겁나 수많이 벌어서 레티랑 다이짱을 겁나 수많이 행복하게 해줄 거야!"

반짝이는 눈으로 의기양양해진 치르노에게 뱌쿠렌이 땀을 흘리며 물었다.

"아,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니?"

"장사하는 캇파에게!!"

"..."

순간 주변이 조용해지자 치르노가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응? 왜? 아냐?"

"치르노. 돈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는 있겠지만 소유할 수는 없어요. 그냥 돈은 수단일 뿐이라고요."

뱌쿠렌이 따로 치르노에게 설교하는 동안 후토가 접시에 있는 얼음 과일을 챙기며 말했다.

"더우니 우리는 땀 빼지말고 과일이나 먹자고."

"뭐, 이해도 안 될 거고 설명하는 것도 오래 걸릴 텐데요. 그러죠."  이치린도 거들면서 얼린 복숭아를 챙겼다.

모미지가 눈치껏 과도를 잡고 과일을 깎자 코코로가 유심히 보면서 웃는 가면으로 말했다.

"와, 이 언니 칼 엄청나게 잘 다루네."

"그럼. 내가 검을 몇년을 잡았는데 작은 칼도 거뜬하지."

"와? 진짜? 방패나 큰 검 휘두르는 것밖에 못 봤는데."

"그래. 솜씨 좀 보여줄까?"

그녀가 과도를 쥐고 다른 멜론을 텐구만의 강한 악력으로 껍질을 부수듯 깎으며 코코로의 얼굴을 슬쩍슬쩍 바라보자, 모미지의 솜씨에 주위에서 감탄 소리가 들리며 시선이 모여졌다.

"휴, 다 됐다."

울퉁불퉁한 멜론이 과육이 드러난 채로 코코로의 무표정한 얼굴이 조각되어있자. '와~'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와 플래시가 터졌다.

"와! 대단해! 대단해!"

"와 믿을 수 없어! 완전 똑같잖아."

"검 진짜 잘 다루시네요! 이게 산의 솜씨인가요!" 

"머리카락까지 잘 묘사했는걸. 엄청나!"

아야도 깎여진 멜론 조각상과 으쓱으쓱 하는 모미지를 집중적으로 찍으며 말했다.

"과연! 산의 으뜸가는 칼잡이는 다르군요!!"

"야! 칼잡이가 뭐야! 검의 장인은 힘의 조절과 검의 길이를 가리지 않는 거지."

모미지가 아야와 승강이를 벌이면서도 만족감을 숨기지 않는 사이, 코코로가 자신의 얼굴이 조각된 멜론을 잡고 유심히 보았다.

"근데 난 왜 안 웃어?"

"응?"

다들 행동을 멈추고 코코로를 쳐다보자 코코로가 멜론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울지도 않고."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여기엔 그 어떤 표정도 없어."

그녀는 모미지에게 다가가 조각상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거 내 얼굴 보면서 만든 거지?"

"으음. 그렇지."

"아무런 표정이 없는데 정말 내가 그래? 이런 표정을 보면 어떤 느낌이야?"

"어, 음..."

"차가워!"

찬 기운을 스물스물 내던 치르노가 해맑게 외쳤다.

"차가워?"

"응!!"

무표정인 코코로가 푸른 오라가 감도는 탈들을 돌리며 천천히 다가가자 그녀도 차가운 얼음날개를 흔들었다.

"나는 네가 차가운데 차갑다는건 어떤 느낌이야?"

"당연히 최강을 나타내는 거지! 게다가 난 최고로 차갑거든!"  

"차가운게 최강이라면 내가 최강을 향하니까 당여한 거잖아!"

"뭐야? 이 치르노님이 최강이거든!!!" 

냉소적으로 둘을 주시하던 모미지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이마를 치고 심각하게 보던 후토가 두 눈을 감고 긴 탄식을 뱉고 이치린이 '아잇, 그게 아니라..'라고 옆에서 말하자 곧바로 고심하던 아야가 거들었다. 

"자, 만담은 그만! 궁금하죠? 표정이 차갑다는건 냉철하고 치밀하고 신중하다는 거예요."

"표현을 안하거나 못하는 걸 수도 있고. 그게 또 카리스마를 뿜기도 하지." 

"응? 정말?"

코코로가 후토의 말을 듣고 아야를 쳐다보자 쇼가 거들었다.

"무표정도 솔직한 표정이잖아요."

"그래? 그런 거야?" 

그녀가 의아해하자 누에가 다가와 코코로의 가면들을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 있잖아. 네 표정들."

"그래도..."

"네가 무슨 요괴인데?"

"그야 멘레이키, 가면요괴."

"그래. 이것들이 너고 너의 얼굴이자 표정들이라고."

"음..."

코코로가 자신의 가면들과 멜론에 조각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누에가 그녀를 보듬듯 바라보는 광경을 아야가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겼다.

"아! 야! 카메라 안 꺼?"

"어휴, 죄송합니다. 제가 플래시를 안 껐네요." 아야가 능청스럽게 카메라의 버튼을 건들며 말했다.

"얘가 한창 생각 중인데 다 깰래!"

화를 내는 누에 옆에서 생각에 잠긴 코코로에게 모미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미안, 표정만 다시 조각해줄까?"

코코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이것도 엄연히 내 표정인걸."

그 말에 모미지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견스러운 듯 코코로를 쓰다듬어주자 훈계를 듣고 온 치르노가 얼린 체리들을 들고 말했다.

"덤으로 이거 하나들 먹어!"

"치르노. 고마워! 잘 먹을게!"

"뭘."

"치르노 양이 말을 잘 이해한 것 같네요."

만족스러운 듯이 웃는 뱌쿠렌에게 치르노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뭘?"

"방금 제가 했던 말들이요."

"응? 그랬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과일 얼리기에 전념하는 치르노를 허탈하게 바라보는 뱌쿠렌을 제외하고 다들 여름의 열기에 베일을 벗듯 김을 내는 얼려진 여름 과일을 열심히 맛보며 먹었다.


"아, 근데 궁금한 거 하나가 있어."

"뭔데?" 코코로의 질문에 이치린이 대답했다.

"그 옆에 따라다니던 요괴는 어딨어?"

"응?!"

깜짝 놀란 이치린이 아야와 누에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으응, 운잔은 여름 나들이한다고 갔어."

"그래? 그럼 츠쿠모가미인 코가사 언니는?"

"어.. 걔, 걔는 잘 모르겠네. 분명히 생각나면 불쑥 튀어나오는 애라."

"원마아아아앙스러어어어어어워어어어어!!!"

범종각의 지붕에서 튀어나온 코가사가 소리를 지르자 이치린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깄네."

"저기서 뭐하는 거야? 얼른 와서 과일먹어!"

누에가 소리를 지르자 재빨리 날아온 코가사가 얼린 과일을 햛짥햛짥 햛는 쿄코를 지나 코코로 옆에 앉았다.

"거기서 뭐 했어?"

"응, 다들 놀라게 해주려고!"

"설마 햇빛 다 드는 저기서 기다렸던 거야?"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는데 이 정도면 놀라게 해주는 건 대 성공이지? 그렇지?"

정말 얜 왜 이렇게 사냐 하는 딱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누에가 싱글벙글한 코가사에 적선하듯 입에 얼린 체리 하나를 넣어주자, 코코로도 그것을 보고 코가사의 입에 체리 하나를 넣어주었다.

"와 시원하고 맛있어!"

그리고는 축 늘어져서 기운이 나가자 코가사가 화들짝 가면을 비추며 기겁한 말투로 물었다.

"츠쿠모가미 언니!! 왜 그래?"

"으음.. 너무 차가운 걸 먹었더니 놀라서 힘이..."

"응? 괜찮아??!" 코코로가 코가사를 흔들며 말하자 코가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누군가 놀라서 괜찮아진 것 같아."

"저거 일부러 장난하는 건가?"

"글쎄." 후토의 질문에 이치린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코가사는 많이 있으니까 손 씻고 드세요."

뱌쿠렌이 인자한 웃음으로 말하자 코가사도 우산을 들며 말했다.

"네."

모미지는 우산 요괴가 우산을 양산처럼 썼는지 말라 죽어가는 듯한 우산의 눈과 빠싹 마른 혀를 보고는 "뭐지.' 하며 잠깐 생각하다가 과일을 먹었고, 하늘에서 마미조가 유유히 날아와 합류했다.

"꽤 맛난걸 먹고 있으니께 즐거워 보이는구마이."

"아. 마미조 씨. 늦으셨네요." 아야가 열심히 주변 요괴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말을 걸었다.

"날이 더워가 그늘진대서 낮잠 잔다고 늦었구먼."

"늦었으면 와서 빨리 먹어!" 코코로가 노인가면으로 즐거운 말투로 말했다.

"빨리 먹어어어어요오옷!!!!!"

친구에게 빙긋 웃어주는 센스도 잊지 않은 마미조가 이치린에게 곁눈질을 하자, 이치린도 눈을 한번 깜빡였다.

"치르노 양이 있을 때 와서 다행이네요. 마미조 씨 몫도 얼려달라고 해야겠어요. 치르노 양. 그래 주실 수 있죠?"

쇼가 묻자 치르노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껍질이나 잘 까두라고."

"에휴, 친구 과일 껍질은 내가 까준다." 누에가 다도를 가지고 깎자 마미조가 낄낄거리며 웃었고 코코로는 그런 둘의 표정을 유심히 번갈아 보았다.

"이건 누가 깎은기가?"

코코로의 얼굴 모양으로 깎인 멜론조각을 들고 감탄한 마미조에게 모미지가 말했다.

"접니다만."

"와, 텐구처자가 솜씨도 기가 막히게 좋구먼. 이걸로 장사해도 되겄당께."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모미지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자 누에가 마미조를 챙기며 말했다.

"얼른 손 씻고 와서 먹어. 날씨도 더운데 말 많이 해서 더위 탈 필요 없잖아."

"아야 씨, 놔둔 얼음이 좀 잘 녹는 거 같으니까 바 람좀 살짝 약하게 해주세요."

뱌쿠렌의 요청에 아야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다 앵글에 잡히도록, 몇번 더 찍을게요."

"그냥 찍으세요. 아까부터 뭐 알려주고 찍었나. 뜬금없게."

이치린이 핀잔을 주자 아야가 모미지가 갈아준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사진빨이라는게 있잖아요. 지금이 빛도 각도 다 잘 나오고 아주 좋다고요! 모미지, 다른 필름도 갈아주세요."

모미지는 아까부터 계속 바꿔치기한 필름을 아야가 안 보는 지금 그 순간에 품속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하아, 하면 되잖아."

하소연을 하든 말든 아야가 상관없이 셔터를 눌러대자, 들뜬 코가사가 조심스럽게 코코로에게 물었다.

"코코로는 지금 기분이 어때?"

"응? 좋아. 덥지도 않고 맛있는 것도 먹고."

"제철과일들이니까 맛있게 먹어!"

"응, 그럴께." 코코로가 가면으로 웃음 지어 보였다.

"얘는, 누가 들으면 니가 다 준비한 줄 알겠다."

과일을 깎던 누에가 핀잔을 주자 부끄러운 듯이 바라보는 코가사를 보고 코코로가 웃었고,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렸던 후토도 뱌쿠렌이 쇼와 이치린과 이야기하고, 쿄코가 치르노나 마미조와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뭐해? 얼른 먹어."

이치린이 후토를 툭 치며 말하자 후토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알아서 먹을테니 좀 내버려두게나!"

"아니, 네 몫이 점점 없어지니까 그렇지."

"알았다고 했지 않느냐!!"

"알았어. 빨리 먹어. 돌아갈 때는 더우니까."

후토가 '흠.'하고 과일을 먹자, 바로 앞의 불이문에서 두 물체가 천천히 걸어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많이 모여 계셨네요?"

이야기 나누며 먹다가 깜짝 놀란 그들이 불이문 방향으로 쳐다보자, 수박과 죽순, 대나무를 든 카미시라사와 케이네와 후지와라노 모코우가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어? 훈장님, 여긴 어쩐 일로?"

"아, 아직도 코코로 학생이 감정에 대해 배우고 있을까 봐서 방문했죠. 잘 지냈니?"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코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야? 케이네. 네가 말한 애가 얘야?"

케이네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코우가 난처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희 절에 방문해주시고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훈장님. 모코우 씨도요."

"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뱌쿠렌과 쇼가 두 명에게 깍듯이 인사하자 케이네와 모코우도 웃으며 가지고 온 물품을 건네주었다.

"그냥 방문하긴 좀 그래서, 선물을 좀 가지고 왔어요. 수박은 이미 먹고 계시지만, 대나무는 쓸 곳도 많고 죽순은 여름 반찬으로 해 드시라고 준비했으니 받아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잘 쓰도록 하죠."

물품을 건네받은 뱌쿠렌의 사진을 찍은 아야가 케이네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오, 이렇게 선물을 드리려고 찾아오신 건가요?"

"헤에, 꼭 그것만은 아니고.."

"뭐야, 텐구 너도 있었네. 난처하게스리.."

모코우가 못마땅해 하고 아야가 웃으면서 대하자 케이네가 이야기했다.

"실은 감정을 가르치던 중에 감정의 요소 중 하나가 '분노'라서 '분노'에 대해 모코우가 누구보다 잘 설명해줄 것 같아서 같이 데리고 온 거예요. 혼자 보내면 안 갈 것 같기도 해서요."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를 만지는 모코우에게 아야가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오옷! 그렇군요!! 모코우 씨께서 코코로 양에게 친히 분노에 대해 가르쳐준다니 과연 경험을 살린 참교육이 되겠네요!"

"야, 얌마! 가까이서 찍지 마! 넌 초상권도 모르냐!"

"후후, 환상향에서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요. 얌전히 제 필름이나 돼 주시길."

"후우, 케이네가 불러서 왔지만. 내가 누굴 가르칠 입장도 아니고 애초에 요괴가 뭐야? 자유분방하고 자기감정이랑 하고 싶은 대로 날뛰면서 자기 멋대로 사는 건데 뭔가 주관적인 가치관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것 같잖아.

이게 요괴로서 정말 잘하는 건지 도움은 되는지 모르겠다고."

모코우가 답답한 기색을 보이자 케이네가 그녀를 달래주었다.

"걱정 마, 모코우. 코코로 양은 감정의 요괴니까 분명히 공감만 잘하면 네 감정이 도움될 거야."

"글쎄. 내가 너처럼 설명이라도 잘했으면 좋으련만. 이건 말이라도 잘못 말했다간 딱 이변 일어날 각이라고."

그리고는 모인 선인과 요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변 일으킬 애들로만 다 모였네, 어휴."


PM 2시 인간마을


인간 마을의 한 건물에 들어간 나즈린이 어떤 사내에게 금덩이를 던져주면서 말했다.

"그때 습격당했던 것 좀 말해줄 수 있어?"

"그런 적 없소."

"시치미 때지 마. 다 알고 왔어. 일단 금덩이부터 받고 대화를 하자고."

그러자 그 사람은 미간을 잔뜩 찌뿌리며 굴러간 금덩이를 잡아 나즈린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정말 모르오."

그러자 나즈린이 다시 금덩이를 건네주고 다우징 봉을 그 사람의 목에 가위처럼 겨누며 말했다.

"헤, 이봐. 나 요괴야. 무녀를 부르기 전에 나한테 바로 죽을 수 있어. 쥐떼도 필요없지. 그러니 금덩이를 받고 말을 하자고. 양측에게 좋은 조건이잖아."

하지만 그는 나즈린을 노려보며 격양된 심호흡 소리와 함께 금덩이를 나즈린에게 던지듯 돌려주면서 말했다.

"금덩이를 받고 말해도 나중에 죽을 게 뻔한데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적어도 지금 도망치거나 누군가 듣고 오도록 소리를 지르는 게 내 목숨보전에 더 이로울 같은 건 내 생각만이오?"

"흠, 협상은 안되는 건가? 그럼 오니에게 습격 당한 건 맞아?" 답답해진 나즈린이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모르오." 그가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아. 정말 답답하게 하네! 난 그저 알고 싶을 뿐이야. 뭐 때문인지 알아야 우리도 우리 절에 다니는 불자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해 주든가 하지. 솔직히 오니라면 사람을 먹고 싶음 대놓고 쳐들어오겠지. 그 힘센 애들이 무녀가 무섭겠냐."

"그런 거 아니오."

제 자신도 답답한지 한숨을 쉬듯 토로하며 팔짱을 꼈고, 그와 동시에 나즈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럼 뭐 어떻게 했는데? 몰래 들어와서 잡아갔나? 아무 죄도 없는데?"

사내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구면서 몸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제발 그냥 가주시오. 제발, 내가 삶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오."

"당신만 잡혀간 건 아니잖아. 못 돌아온 사람도 있다던데 그렇다는 건 뭔가 '경고'의 의미로 당신을 살려줬다는 뜻이겠지. 그럼 당신은 그것에 대해 함구하는 조건으로 목숨을 부지했을 테고."

한숨을 길게 쉰 사내가 나즈린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잘 알면서 나를 괴롭히오? 사정을 알면 이제 그만 가주시구려."

"헤에. 이것 봐. 정작 내가 알고 싶은걸 모르잖아. 나 요괴야. 인간은 인간끼리 사정 봐주겠지만, 요괴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거든. 자, 어떻게 할래? 그 쪽에게는 입을 다무는 게 최선의 선택지인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면 더 많은 금덩이와 함께 명련사의 힘으로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우리 명련사 주지와 비사문천님의 힘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고개를 이러저리 돌려가며 머리를 감싸쥐고 곰곰이 생각을 하던 사내는 한 손가락을 입 중앙에 두고 곧바로 다른손으로 목을 긋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나즈린의 기묘한 미소를 보고 소름이 돋아 무거운 그 입을 열었다.

"좋소. 일단 지금은 살아야하니까.."

"그럼. 그럼. 침묵을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삶의 의지가 충분한 인간이네. 시작해보세요." 

"하아.. 얼마 전에 나는 집에서 자다가 무장한 오니들에게 끌려갔소. 나에게 검은 복면을 씌우고 묶은 뒤 어디론가 데려가서는 오니의 낮고 둔탁하지만 시끄러운 목소리로 나의 죄에 대해 호명을 하였소."

"응? 무슨 죄?" 나즈린이 금덩이를 하나 더 얹어주며 물었다.

"이것저것 말했었소. 요괴가 많은 환상향에 사는 게 언제 잡혀먹힐지 모르니 무서워서 남들에게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것과 요괴에 대한 비방, 그리고 결계에 대해서 알려고 한 죄도 있었소. "

"뭐?"

나즈린이 놀라서 금덩이를 떨구자 사내도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잠깐, 잠깐만!"

그녀가 다우징 봉을 다시 들고 금속을 포함하여 집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질적인 물체를 찾았지만, 전혀 찾지 못했고 집주변에 엿들을 수 있는 통로가 있나 살펴봤지만 그런 부분도 없자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흠, 이상하네. 그래서?"
그가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니는 미움을 받기 때문에 잡아먹어도 전혀 탈이 없는 환상향을 이탈하고 거부하려는 자를 잡아먹기 좋아하는데 내가 적격이라고 그랬소. 그래서 또 무녀나 경계요괴에게 이유없이 함부로 인간을 습격했다는 뒷탈이 없도록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면서 이 일에 반성하고 사죄하고 다신 안 그렇겠다는 조건으로 빌고 또 빌어서 이렇게 살아나온 거요. 또 이게 알려지면 분명 자신들이 무녀나 환상향의 관리자와 갈등이 생길 것이고 그것에 대한 대가는 다 내가 질 것이라고 하였소."

말을 마친 그는 감당하기 힘든지 침을 큰 소리가 나도록 삼키며 깊은 숨을 내쉬고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가만, 언제부터 오니들이 이렇게 습격한거야?"

"잘 모르오. 습격은 빈번했어도 몇 개월 안 되었을거요."

"흠, 그래. 엄청나게 무서웠겠네? 근데 그냥 무녀에게 말하지 그랬어? 알아서 털어줄텐데."

"무녀가 24시간 내내 보호해주는 건 아니잖소. 무녀가 없을 때나 방심하는 새벽 또는 저녁 등 어둠을 틈타 얼굴도 알 수 없는 어두운 복장으로 쳐들어와 순식간에 잡아가는데 한낱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겠소. 이것을 공론화하고 오니들을 혼내줘 봐야 반드시 응징이 돌아오니 그 때 뿐이오."

"그렇군. 알았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당신 주위에는 내가 알 수 있게 쥐들을 붙여놓을거야. 보호를 확실히 받고 싶으면 우리가 사는 절에 와서 귀의하던가, 그 금덩이로 경호원을 더 고용하든 마음이라도 편해지게 맛있는 거라도 많이 먹든지 해. 당신 목숨 값이 될 수도 있으니까. "

그렇게 돌아선 나즈린이 금덩이를 더 던져주고 쥐들에게 주변에서 감시하라고 지시한 후,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오니들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그냥 부닥치고 행동하는 오니들 방식이 아닌데 진짜 무녀에게 혼나니까 빡쳐서 저항의 의미로 저러는 건가? 아니 어쩌면 다들 오니라고 하긴 하는데 복면을 가렸으니 오니라고 단정지을 수가 있나.. 목소리가 오니 목소리였다는 게 걸리긴 하지만 겁에 질리면 공포에 그렇다고 믿게 될수도 있지만. 아, 모르겠다. 일단 돌아가자.'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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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10시 15분 요괴의 산 부근


텐구처럼 토킨을 쓰고 그들의 복장으로 변신한 마미조는 자신의 너구리 부하들에게 산과 산의 주변 소문에 대해 알아보라고 물어본 뒤, 산에 입구에 다다랐다.

"몰라보게 달라졌구마이. 구관이 명관이었는데 말여."

담뱃대를 물고 산의 입구인 출입 통제소와 가로등이 비치된 참배로, 한 구석에 마련된 행인을 위한 자판대나 포장마차, 수많은 참배객과 철저하게 검문검색과 관리를 하거나 자기 갈 길에 바쁜 텐구, 검문검색을 하며 오가는 모습들을 바라보던 마미조는 참배객을 제외하면 그들이 출입증으로 보이는 카드와 주민증을 내고, 모니터에 인식카드에 대한 전자인증을 마치고 캇파가 만들었을 법한 카메라와 검역 기계를 통과해 신원을 확인한 후, 들어가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산 안쪽으론 그냥 변장했다고 들어가는 건 힘들겠구마이. 그럼 검문 자체를 안 받으면 되제.'

마미조는 슬며시 웃으면서 안경을 벗어 옷에 집어넣고 카기야마 히나의 모습으로 변신하고는 커다란 꼬리를 등에 바싹 붙이고 한 바퀴 두 바퀴 춤추듯 돌면서 출입 통제소로 들어섰고 렌즈가 많이 달린 무거운 고글 같은 것을 착용하고 무장한 카라스텐구와 칼을 찬 백랑텐구 경비대원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못 볼 것을 본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렸고 즉시 경보음이 울리면서 급해진 참배객들이 뛰다시피 산으로 올라가고 경비대원들이 철수하며 막힌 문이 열렸다.

"전방에 역신 출현."

"나도 알아! 액을 얻어먹고 싶지 않으면 통과할 때까지 엔가쵸(エンガチョ) 하면서 자세 낮춰!"

다들 혼비백산하며 액막이 풍습인 엔가쵸(エンガチョ) 소리만 중얼중얼 울리게 된 출입통제소의 광경을 바라보던 마미조는 여유 있게 턴을 하면서 유일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카메라들을 힐끗 보고는 산 안으로 들어섰다.

"이거 이거 너무 쉽구마이."

고글을 낀 카라스텐구가 살짝 마미조를 살피다가 백랑텐구에게 말을 걸었다.

"액신(神)이 산 안에 거주 중인지 확인했나?"

"기록상으로는 오늘 나간 적이 있어."

"그런가? 좀 이상한 게 액신 주변에 액()이 하나도 보이질 않아."

"조심하라고. 쳐다본 네 쪽에게 다 가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야."

"혹시 모르니까 한번 냄새라도 맡아봐."



[출입 통제소에서 알려드리는 산 내 안내방송입니다. 현재 액신이 등산로로 이동 중이니 주민께서는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주변에 걸린 스피커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여유롭게 계단을 걸어 올라가던 마미조는 곳곳마다 '산불 조심', '지하 매설 상수관과 지중화된 전선으로 인해 허가받지 않은 땅파기 금지', '쥐 등 야생동물 해수 방지 운동 중', '여름은 안보의 계절', '산 안에서 단결', '산 밖에서 척결'과 같은 피켓들이 붙여져 있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좀 더 정보를 모으기 위하여 다시 텐구의 복장 차림으로 변신한 후, 다른 경비 텐구들이 서로 잡담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마을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마을로 향하는 길이나 산 위쪽에 가지 못하도록 주변의 나무 아래, 풀 구석마다 '비행 및 출입 금지구역'이라는 팻말이 박혀있고, 수많은 경보장치가 땅바닥에 무수히 굴러다니는 것을 목격한 마미조는 조심스럽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분명 이렇게 보안이 철저해졌다는 건 무언가 숨겨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겠제. 아무래도 그냥 들어가는 건 무리겠구먼. 그래도 확실히 알아둘 건 알아두어야제.'

그렇게 생각하던 그녀는 주변을 날아다니는 팔에 완장을 찬 치안과 텐구들을 보고는 느긋하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보게. 자네들 말여."

"응? 정지! 정지! 당장 손들어! "

깜짝 놀라 다급하게 경계태세를 취하는 텐구들의 날랜 검 끝이 그녀를 향하자 마미조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손을 들며 말했다.

"누구냐!"

"내가 요즘 산이 바뀐 게 잘 적응이 안돼가꼬 말여. 길을 잃었는디."

마미조가 능청스럽게 머리를 만지며 말하자 서로 곁눈질을 몇 번 하던 텐구들은 무전기를 꺼내 들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려, 어디 보자. 여기에 있었는데. 그나저나 가진 게 한두 개가 아닌디 요즘 나이가 먹어서 어떻게 생긴 거였제?"

그러자 다른 텐구가 포승줄을 꺼내고 다른 텐구가 자신의 신분증을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생긴 겁니다."

마미조가 그것을 보고 품 안에서 빻은 담뱃잎을 보았던 모습과 같은 신분증으로 변신시켜 보여주자 치안과 텐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료에게 무전기와 포승줄을 집어넣으라고 지시했다.

"요즘 철저하게 관리하나 본디 수고가 많으이."

"아닙니다. 요즘은 경비대장님도 안 계셔서 최고경계태세거든요."

"경비대장이라 하믄?"

"이누바시리 모미지 경비대장님말입니다."

"으음?"

마미조가 아야의 카메라를 갈아주던 모미지를 생각하며 생각에 잠기자, 다른 텐구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 어르신. 요즘 시대 바뀐 걸 잘 모르시니 의아하시겠네요. 주민 융합령 이후에 텐마님과 대텐구님이 이제 신분이나 종족이 아니라 능력으로 대접해주는 시대가 왔다고 하셔서 신분낮은 백랑텐구에서 천리안의 능력으로 초고속 승진한 능력자이자 존경을 받는 신분이 낮던 여러 텐구들의 우상이십니다."

"호오, 대단하구먼. 훈훈하고 좋은 정보 고마우이."

"가시죠. 마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요새 눈이 어두워가 이상한 게 산에 쫙 있으니 길을 잃으면 힘드니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여."

마미조가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연기를 하자 텐구가 코를 훌쩍 거리고는 대답했다.

"그래도 어르신, 감지기가 산 주변에 가득하니 오히려 이렇게 길 잃으신 분들도 찾고 침입자도 막고 더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으세요. 다만 너무 예민해서 강한 바람이나 야생동물이 건들어버려서 소음공해가 지독할 정도로 심하지만요. "

"그럼 우리 텐구선생들은 경비대장의 수하들인겨?"

"네, 저희가 경비부대 안에 속해있는 내무 경찰 업무를 담당하는 치안과 소속이라서요."

"이렇게 도움도 주고, 수고가 많고만 그래."

"하하. 아닙니다. 근데 어르신, 아까부터 냄새가 조금 특이하시네요."

"야, 우리도 할 일 많으니 빨리 민원 처리해드리자고, 가시죠."





출입 통제소에서 다른 참배객들의 출입을 통제하던 백랑텐구는 코를 훌쩍거리며 고글을 낀 카라스텐구가 고글에 내장되어 있던 이어폰을 빼면서 손짓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통제소 주변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초소 안 통신실에서 무전기를 만지던 캇파에게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는 싸인을 하자 캇파가 알겠다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품 안에 있던 두루마리 종이를 펼쳐 써진 그대로 다이얼과 회선을 만진 후, 방음장치가 되어있는 통신실의 문을 닫고 무전기의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1급 보안통신! 산 안에서 단결. 출입통제소입니다. 일단 수상해 보이는 대상에 대해 어떻게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령대로 그냥 통과시켰습니다. 어쩔 수 없죠. 저희가 액신과 맺은 약속도 있고 애초에 검문소에 액이 깃들면 안 되니 검문 자체도 불가능하고요. 예, 예, 그럼요. 저희 백랑텐구들 특기가 뛰어난 후각 아니겠습니까. 물론 혹시 모르니 지나간 다음에 냄새를 맡는 정도지만 말이죠. 하지만 제아무리 검문검색이 어려운 액신으로 다녀도 저희가 이 산에서 한정된 주민의 얼굴과 냄새를 다 아는데 이질적인 너구리 냄새는 지울 수 없지요. 의심? 의심받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얼굴 오래 보지 못했습니다. 설치된 카메라로 몰래 사진도 찍어놨으니 일이 잘못되는 유사시에 침투했다는 증거자료로 쓸 수 있을 겁니다. 저희야 위에서 내려온 대로 했으니 대장님이랑 저희에게 불이익은 없는 건 맞겠죠? 하하하. 알겠습니다. 산 중심 마을로 올라갔을 겁니다. 치안과에 연락해 주시하도록 요청하고 카메라가 찍어내는 일반 사진이나 열 영상 사진 등 증거자료는 전부 부쳐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십시오. 산 안에서 단결."

수화기를 내려놓은 백랑텐구는 캇파가 술과 함께 안주로 먹고있던 오이조각을 입에 집어넣고 씹으면서 말했다.

"비밀회선으로 안 해도 되니까 치안과장님 연락하고, 경비부대 상부에도 연락해. 액신으로 변장해있으면 검문검색도 어렵고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캇파가 머뭇거리면서 울상으로 덜덜 떨며 오이를 우물거리는 텐구의 얼굴만 바라보자 텐구가 한숨을 쉬었다.

"이거 하나 먹었다고 그러냐. 하나 더 사줄 테니까 빨리 연결해! 빨리!"





나즈린도 다우징 로드를 들고 바위에 앉아서 길게 한숨을 쉬면서 쥐들을 불렀다.

"자, 너희. 산에 잘 갔다 왔지?"

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방 뛰면서 격양된 움직임을 선보였다.

"응? 너희가 산 안으로 들어가보질 못했다고?"

다른 쥐 몇마리가 하소연하듯 꼬리를 흔들면서 떨리는 울음소리를 내자 나즈린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소리야. 산은 지옥이라니? 산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면서?"

다른 쥐가 나즈린에게 귓속말을 하고는 픽하고 죽는 연기를 하자 나즈린도 당황하며 물었다.

"뭐? 산에 이상한 물건들이 소리를 내서 들어가자마자 들켜서 쫓겨나고 들어가더라도 잡히거나 쥐약에 쥐덫으로 많이 죽었다고?"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게다가 고양이도 있고 너희 뿐만 아니라 다른 야생동물도 이상한 물체가 경보음을 울리자마자 잡히거나 쫓겨나서 너희처럼 산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니 무슨 소리야?"

나즈린이 당혹감에 얼굴이 붉어지다가 격분하며 쥐들에게 소리쳤다.

"야, 니들 땅속에 굴 파고 들어가면 되잖아!!"

그러자 쥐들이 항의하듯 펄쩍 뛰면서 매서운 눈초리로 사납게 울어댔다.

"산 지하에 격벽들과 함께 감전되는 줄들과 물이 흐르는 관들이 가득한데 거기도 쥐약과 쥐덫, 고압증기에 위험한 가스로 가득해서 목숨 걸어야 한다고? 음... 나 참."

기가 막혔는지 혀를 찬 나즈린이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쥐들을 달래주고 다우징 로드를 챙겨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도대체 산이 뭐 어떻게 되었길래 그 사달이야. 들어가지 못하면 자세히 알 수가 없잖아. 주변 요괴들에게 물어보면서 정보라도 모아야겠군."




치안과 텐구들의 안내를 받아 마을로 들어온 마미조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덕분에 마을에 잘 도착했구먼, 수고가 많구마잉."

"아닙니다. 불편하신 게 있으시다면 저기 제일 큰 건물인 주민 통제소에서 도움받으시면 됩니다. 그럼."

마미조가 돌아가는 그들을 흘깃 쳐다보면서 제일 큰 팻말에 삼각형 안에서 중심을 향해 화살표가 각 꼭짓점으로부터 시작해 모여있는 그림과 함께 '산 안에서 단결'이라는 표어와 함께 각 삼각형의 바깥 꼭짓점에서 시작해서 3개가 대각선처럼 펼쳐져 있는 화살표와 함께 '산 밖에서 척결'이라는 표어가 쓰여 있는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 걸어가면서 '여름은 안보의 계절'이라는 문구가 달린 나무판과 색칠하지 않은 거미 같은 그림에 산의 자연이 파괴되고 위에서 달이 지켜보는 그림과 함께 '달의 무자비한 침공을 잊지 말자' 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보고 의아해하며 주민 통제소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카라스텐구가 쥐여주는 번호표를 받고 담당하는 번호부서로 간 마미조는 서류가 가득한 책상에 앉아있는 캇파의 미소와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무슨 민원으로 오셨습니까?"

"내가 요즘 밖을 잘 안 돌아다니다 보니 우리 산이 어떻게 바뀐 것인지 잘 모르겠구마잉."

마미조가 겸연쩍은 미소를 짓자 캇파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시군요. 저희가 1년 전에 달의 침공을 받은 건 기억나시죠?"

"아, 그랬제."

"그 때 달의 보이지않는 기계를 통한 삶의 터전인 산의 자연 파괴와 더불어 달에서 선발대로 보낸 정보부대가 아무런 방해없이 산에 침투해 임무를 수행한 그 사건 때문에 산이 발칵 뒤집힌 이후로 안보에 문제가 제기되어 텐구의 힘만으로는 방위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거든요. 그래서 모든 종족이 산 안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주민 융합령 이후로 산 안에서는 모든 종족이 차별없이 단합을 추구하면서 고집 센 텐구들이 높은 자리도 양보하고 저희 캇파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임으서 그렇게 큰 개혁이 있었죠."

"그럼 여긴 어떤 곳일랑가."

"아. 여기는요. 주민 융합령 이후로 주민 등록이 시작되면서 저희 캇파의 과학 기술력과 텐구들의 정보력으로 선진적인 행정체계가 도입되면서 이렇게 주민들이 대텐구님이나 텐마님 같은 상부에게 민원 및 고충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주민 통제소예요. 주로 신분증 갱신이나 발급, 호구(戶口)조사나 연금, 연말정산같은 것들요. 그래서 저 같은 캇파도 이렇게 공직을 맡게 되었죠. 그러니 들어올 때는 출입통제소, 들어와서는 주민통제소를 관리를 받게 되는 거예요."

"아, 그렇고만. 주민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기가?"

"주민증은 일단 개인정보 서류 작성하시고 자택에 대한 호구조사 동의서랑 털이나 혈액같은 신체 인증, 대텐구님의 면담 후 승인서가 미리 필요해서 바로는 안 되세요. 예전에는 널찍하게 받아들였다가 하필 달의 침투부대가 가볍게 들어오는 바람에 정착이 아주 까다로워졌거든요."

'으음, 출입증을 맨들어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건 글렀고만.'

"글면 달에 침공을 받았던 것좀 어떻게 생각허는지 물어볼 수 있을랑가?"

그러자 캇파가 친절했던 웃음은 어딜가고 격분에 찬 눈으로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

"달은 망해야죠! 없어져서 지구의 자전 속도가 빨라져 하루가 8시간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주 박살이 나야 한다니까요. 비겁하게 보이지도 않는 공격으로 우리 산을 짓밟고 파괴하고 정탐하고 침략을 위한 베이스캠프까지 호수에 꾸려 유린하고는 책임자가 사과도 없어요! 저희가 파괴된 자연을 복구하는 산 복구사업으로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그것들 때문에 우리 산이 이렇게 된 거라고요!"

주변에 민원을 받던 공무원과 서류를 내던 주민이 기웃거리며 놀라든 말든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캇파를 보던 마미조가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여. 고것들이 당장 망해야 우리 속이 편할거인디. 내는 모리야 신사쪽에서 해결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는가벼."

"모리아 신사랑 저희랑 별개죠. 사나에 님이 해결을 봐서 달의 침투부대와 비겁한 병기도 혼쭐이 나서 철수했지만 엄연히 박살 난 건 우리인데 우리의 입장에서 해결 본 게 아니잖아요. 무엇보다 침공 명령을 내린 책임자가 사과도 없다는 데서 더 분통 터지고 괘씸한 거죠." 

마미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심히 듣는 사이, 옆 창구에서 번호표를 책상에 내려놓은 이바라기 카센이 건너편의 공무원과 승강이를 벌였다.

"아니 글쎄, 그 쿵쿵거리는 소음 때문에 우리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을 못 잔다니까요!!"

"자자, 진정하세요. 그곳은 공장지대라 소음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소음 뒤에 울리는 진동은 어떻게 처리하려고요! 소리와 땅을 타고 흐르는 진동은 술식도 뚫는단 말이에요! 이런 공해에 동물이나 요수들이 얼마나 사나워져 있는 줄 알기나 해요?"

"일단 주민 권유로 신청 접수하고 공장과 집 주변에 방음벽을 설치해 드리죠. 그리고 동물용 진정제가 있으니 일단 받아가세요. 그리고 잠시만 무전 좀 받을게요."

마미조는 옆 창구에서 카센에게 '영원정'이라고 써진 약을 건네주는 것을 보고 캇파에게 물었다.

"달이 밉다면서 영원정과는 거래하는가벼?"

"에이, 달이 우리랑 대화를 전혀 안 하려고 해서 그나마 대화의 창구이자 배상 협상하고 있는 곳이 영원정이잖아요. 붕붕마루 신문도 안 읽으셨나 보네요. 원흉이자 달의 지금 지도자의 스승이 영원정 의사 선생님이라는데 그쪽에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유감이라면서 대신 돈 약간과 약들을 대량으로 거래하는 것으로 합의는 했는데 텐마님이 당장 달의 지도자에 사과를 직접 받아야 하겠다고 뒤집어 진 걸 대텐구님이 이 정도면 꽉 막히고 오만방자한 저들에게서 실질적으로 해결본 거라고 그래서 엄청나게 시끄러웠잖아요. 그래서 토끼 중에서는 그나마 영원정 출신 아니면 산 입구에서부터 맞아 죽을걸요."

"붕붕마루 신문이라면 그 아야라는 텐구가 만든 신문을 말하는 기가?"

"네. 제일 잘 나가는 유력 신문이잖아요."

"다른 신문들도 많은디 제일 잘 나간단 말여?"

"에이, 무슨 말씀을, 대표적으로 달의 특작부대 침투사건을 그 누구보다 빠르고 자세하게 보도해서 작년에 이슈를 일으켰잖아요. 붕붕마루 신문이야 말로 누구보다 자세하고 빠른 기사를 자랑하죠."

캇파가 희동그레해진 눈으로 대답했고, 그 말을 들은 마미조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생각을 할 겸 이야기하던 캇파의 얼굴에서 그 너머를 바라보자, 옆 창구에 있었던 카라스텐구 공무원이 무전기를 귀에 대고 백랑텐구들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그들이 심드렁하게 코를 킁킁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와 자세를 고쳐잡고 말했다.

"알려줘서 고마우이. 수고하시게나."

"네. 수고하세요. 다음 분!"

캇파의 인사를 받으며 주민 통제소를 서둘러 나선 마미조가 투덜거리며 먼저 길을 나서는 카센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보게나."

"응? 네, 무슨 일이시죠?"

"요즘 산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들었네만."

카센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오, 말도 마세요. 그것 때문에 미치겠으니까."

"원래 동물들이 소리에 민감하제.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고 벗어날 수 없으니 답답해 분통 터질일이니께 말여."

"네, 맞아요. 요즘 애들 표정도 짜증이 가득한 표정이라 달래주느라 힘들어요. 정말 그 힘들어하는 표정을 보고 있으려면 제 마음이 다 미워져서어엉엉"

감정이 복받쳐 우는 카센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울도록 놔둔 마미조가 훌쩍거리는 카센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흑흑. 감사합니다. 누구신지도 모르는 초면에 실례를 범했네요. 죄송해요."

"괜찮혀. 울고 싶을 땐 울어야 응어리가 없는 법이제. 그나저나 내가 알기로는 남이 못 들어가게 술식으로 막혀있다고 들었고만, 그게 완벽하게 차단되는 건 아닌가벼?"

"아무리 술식이라지만 공기나 땅같은 매질이 분리된 확실히 격리되어 있는 결계같은 게 아니라서 소리나 지진같이 큰 진동은 들려요. 훌쩍, 예전에는 대텐구에게 따져도 소식이 없었는데 요즘 주민 통제소가 일 처리는 빠르니 될 때까지 항의하려고요."

눈물을 닦은 카센이 젖은 쪽이 닿지 않게 손수건을 접어서 건네주자 마미조가 받으며 말했다.

"손에 있는 받은 약은 먹임 효과가 있는겨?"

"잠시지만 있긴 있더라고요. 영원정에서 만든 거니 효과는 확실하겠지만. 약을 먹이는 게 좋은 게 아니니 원인부터 해결해달라는 거죠. 자꾸 이렇게 진통제처럼 때우려고만 하니."

"소음을 아예 멈출 수는 없는갑제?"

"요즘 뭘 한다고 한거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아예 출입을 못 하게 하니까요."

"난 나이가 많이 주변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말만 들으면 주민 융합령이후로 모든 주민이 편해진 건 아닌가벼?"

"뭐 편해진 건 사는 데 있어서 능력에 따라 신분과 별개로 평등해졌으니 좋지만, 달의 침략을 받은 것 때문인지 경계가 산 외부뿐만이니라 내부도 삼엄해졌죠. 이상한 시설이나 건물들도 많이 생겼고요. 그래도 종교에 대한 지원과 주민에 대한 복지와 서비스 등 다양한 자유와 생존권을 보장하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다만."

"다만?"

"그전보다 굉장히 폐쇄적으로 바뀌었어요. 주민등록도 그렇고 외부인뿐만 아니라 내부 주민도 철저히 통제하고요. 주변에 감지기를 깔아서 못 들어가게 한 지역도 많은데 산 복구사업 후, 아직 복구되지 않은 지역이라 위험하다고 하지만 수상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죠."  

"그렇고만. 내가 붕붕마루 신문에도 비슷한 기사를 본 것 같으인디."

"네? 그랬었나요?"

마미조가 슬쩍 떠보면서 카센의 반응을 살피자 카센이 당황하며 말했다.

"붕붕마루 신문은 그냥 위에서 내려오는 정책에 대한 소리나 가정 통신문, 스캔들을 담는 찌라시에 불과해요. 달의 침공을 보도한 이후로 인기가 좋아져서 자기 위 요괴들의 눈에 들어 팍팍 밀어주느라 산의 유력신문이 되긴 했지만 텐마같이 산의 윗 요괴의 대변인에 불과하다고요. 올바르다고 보긴 힘들죠. 게다가 이렇게 산의 사회를 바꾼 게 텐마와 대텐구인데 그것에 벗어나는 기사를 쓸 리가 없잖아요. 자기도 아래 요괴인 이상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겠죠. 다른 텐구들의 신문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흠.. 그렇구마이."

마미조가 계속 생각하면서 담배를 피려 하자 카센이 기겁하며 말했다.

"저기 죄송하지만 산에선 산불 방지한다고 금연인데요?"

"아, 쪼까 마음이 답답해서 말이제."

담뱃대를 집어넣는 그녀가 겸연쩍은 미소로 말하자 카센도 답답한 듯 말했다.

"투명한 물체가 자연을 박살 낸 후에 그거 원상태로 복구하는 산 복구사업에 노동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하더라고요. 저도 동물들에게 먹일 먹이가 없어져 큰일을 겪었고 캇파들도 삶의 터전인 물가가 없어졌으니 뭐.. 그래서 자연보호에 혈안이 돼서 불만 보면 텐구나 캇파들이 뒤집혀요."

"아까 통제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생각보다 하지 말라는 게 많은가벼."

"심지어 가로등에 안내 스피커 설치한다고 지하에 깔아놓은 전기선과 물이 없어서 지하 수로관으로 지하수를 끌어오기 때문에 땅도 함부로 못 파는 걸요. 치안과에 잡혀가 조사받아요."

"참, 주민으로 살기도 박하구마이."

"뭐, 어쩌다 여기 살게 됬으니 할 말 없죠. 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할테니까요. 침입자를 찾기 위한 감지기 때문인지 시종일관 울림소리가 끊임이 없어서 야생동물이 거의 사라졌거든요. 시끄럽기는 해도, 사실 제가 할 말은 아닌 게 저야 키우던 동물이 탈출해서 길을 잃으면 감지기 덕분에 쉽게 찾지만요."

카센이 그렇게 말하고는 잠깐 머뭇머뭇하더니 황급히 서두르며 말했다.

"저 애들 약좀 줘야 돼서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선인 양반. 내가 제대로 된 신문을 읽고 싶어서 그러는디 아야같은 흔한 기자들 말고 다른 방향으로 쓰는 기자들을 더 아는가?"

"음.. 글쎄요. 기자들은 다 똑같아서요. 음.. 아! 얼굴도 잘 못 뵈고 소식이 없어서 이 산 어딘가에 아직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타테 씨라고 그분도 기자인데 예전에 신문으로 아야 씨랑 다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분 신문을 한 번 찾아보세요."

"고맙구만 그려."

만족스러움이 가득한 마미조의 인자한 미소에 카센도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아네요. 저야말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하죠. 그럼."

카센의 '오늘은 왜 이렇게 늑대 애들이 많이 돌아다니지.'라는 혼잣말까지 들은 마미조가 치안과 텐구들과 걸었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자마자 길가마다 무장한 카라스텐구들과 코를 킁킁거리는 백랑텐구들이 서둘러 수색에 나서는 것을 목격했다.

'이것들이 냄새로 찾는 모양인가비. 다음엔 더 주의를 해야 쓰겠구먼.'

마미조가 히나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경비병력이 쫙 깔린 길을 벗어서 풀 내음이 물씬나는 풀숲에 몸을 숨기며 탐지기가 있나 없나 두리번거리며 조심조심 내려가자, 하늘에서 무전기를 등에 멘 텐구와 옆에서 무전기의 수화기를 든 텐구가 긴급한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산 동쪽에 침입자 발견! 기체 생명체로 추정된다! 즉시 요격 및 체포 바람!"

'기체 생명체 말여?'

마미조가 뭐지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저야 운잔을 보내면 되니까요.'라고 했던 이치린의 말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아이고오. 운잔도 대놓고 들어갔나 봅네. 구름 속에서 멀리 지켜봤으면 들키지 않았을 거인디."

"거기 누구야! 수풀에서 나와!"

혼잣말하던 마미조에게 백랑텐구가 매서운 눈빛으로 불빛을 비추며 검을 겨누자, 마미조가 아무 말 없이 수풀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헉, 액신! 음. 어. 액신님 전 눈이 없습니다. 못 본 거예요. 삼점일사이구팔사육삼이칠.."

백랑텐구가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이 멘탈이 나가 눈을 감은 체 벌벌 떨며 엔가쵸(エンガチョ)를 하면서 액막이와 함께 조심조심 뒷걸음치자, 장난기가 발동한 마미조가 웃으며 다가갔다.

"아악! 잘못했어요! 오지 마세요! 이사삼구구사팔칠육삼이삼삼아아악!! 이팔칠!!."

그러나 못 볼 것을 본 듯 머리를 부여잡고 덜덜 떨며 뒤돌아서 도망하려 하는 텐구에게서 나온 다음 소리가 재밌게 보던 마미조의 유희를 깨트렸다.

[무슨 일이야! 진정하고 보고해라! 방금 액신이라고 했나?]

'이런, 무전기를 켜두고 있었고만. 우짜면 새때마냥 몰려올 수도 있겠구먼.'

마미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 아랫길로 뛰어가 산을 벗어나는 사이, 다른 텐구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신없이 움직였고, 관문인 출입통제소에 다다르자 텐구와 캇파들의 의도적인 무관심 속에 유유히 춤추듯 턴을 몇 바퀴 돌면서 산을 벗어났다.



AM 11시 50분 인간마을 시장



"지금쯤 교육 잘 받고 있으려나."

인간 마을에서 토지코와 함께 시장을 나돌던 미코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토지코는 아무런 반응 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이런, 자네는 나에게 회의감을 가지고 있군.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가?"

"옛? 아니 아닙니!"

얼굴까지 붉어지며 황급히 부인하려던 토지코의 입에 집게손가락을 붙여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미코가 싸늘하게 말했다.

"자네는 자네의 욕망과 속마음을 꿰뚫는 나를 능멸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그래, 애써서 자길 변호하고 변명할 필요 없네. 죄송하다는 말이면 다 끝나. 그 외에 뭐가 더 필요한가."

"다만..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걱정하지 말게. 난 장사꾼이 아니더라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아. 도교의 증진을 위한 길이지."

미코의 웃는 모습과 다르게 심란한 표정의 토지코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휴, 얼토당토 않고 아무런 개연성 없는 이 일에 분명히 태자님 말씀이 맞기를 바랍니다."

미코가 길을 걸어가면서 무언가 발견하고는 토지코에게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는 요괴는 그 절의 요괴가 아닌가?"

토지코가 깜짝 놀라 미코가 가리키는 방향을 유심히 쳐다보자, 그곳에는 나즈린이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태자님, 절의 쥐 요괴죠."

"으흠."

미코가 나즈린이 눈치 못 채도록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조심조심 거리를 두고 접근하자, 토지코도 의아해하며 조심히 미코의 뒤를 따랐다.





같은 시간, 시장의 한쪽에 있던 나즈린은 소문을 들으면서 정보를 모으는데 한창이었다.

"그럼 산에서 텐구들이 뭐라고 했는데?"

"그냥 이곳저곳 돌면서 아마노자쿠를 본 적 없냐고 물었었지."

"아마노자쿠? 그 외에 산에서 뭐 이상한 건 없었어?"

"요즘 텐구랑 캇파들이 모리야 신사로 가는 길을 개방해서 오고 가기가 쉬워졌어. 산 깊숙이는 못 들어가지만 요괴들이 종교적인 부분에서 인정하고 물러섰다는 건 모리야 신사의 강성함을 인정하고 숙였다고 봐도 되겠지. 자기들은 부분적 개방주의라고 말하긴 하지만 말이야."

"모리야 신사는 왜?"

팔짱을 낀 나즈린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행인 중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모리야 신사만큼 우리 인간에게 편의를 잘 봐주고 요괴를 잘 퇴치해주는 곳도 없거든. 그러니까 산의 요괴들도 굴복해 따르는 거지, 요괴들이 소란을 피우려고 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요즘 신통력이 굉장한 사나에님이 바람처럼 와서 친절하게 금방 해결해주고 가시니까 말이야. 너희와 좀 반대지."

"우리가 뭘?"

"에이, 알면서 감싸주고 그래. 비위생적이고 곡식이라면 싸그리 먹어치우는 극성맞은 절의 쥐떼에 요괴들의 음주 난동에 귀청 떨어지는 소음에, 너희가 폐 끼치는 것만으로도 인간에겐 시련이자 재앙이라고."

나즈린이 기분이 나빠서 금덩이를 각자에게 하나 던져주자 행인이 반색하며 말했다.

"아이, 뭐. 우리 인간이야 알 수 없는 요괴에 대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거고. 지금 어쩔 수 없이 다 같이 사니까 기본적인 생활에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지."

"하아, 그럼 혹시 아야라는 까마귀 요괴에 대해선."

"아, 그 자기가 깨끗하고 정확하다고 질리도록 말하고 다니는 이상한 신문을 대량으로 뿌리는 요괴 낭자를 말하는 거야?"

"응, 맞아."

"뭐, 찌라시나 뿌리지 뭐. 나무에 불붙이기 전에 쓰는 불쏘시개로 쓸만한 연료말야."

"근래에 그전보다 엄청나게 뿌리고 다니더라고. 팔심이 어마어마해서 현관 문에 '신문 사절'이라고 붙였는데도 대문을 관통하고 방문까지 뚫어서 안방 옷장에 깊숙이 박혀 있더라니까. 돌돌 말린 신문지 뭉치가 말이야."

"그래? 흠, 그거 말고 뭐 더 이상한거 없어? 평소와 다르다거나"

"글쎄. 그 외엔 옆집에서 소문으로 들은 건데 요즘 일어나는 사건에 관해 자주 물어보긴 하지. 기삿거리로 쓰려나 봐."

"맞아. 나도 들었어."

말하는 사람과 옆 사람이 맞장구를 치자 나즈린이 물었다.

"무슨 소문?"

"아, 요즘 인간 마을에서 괴담 같은 사건인데 밤중에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거야. 완전히 실종되는 예도 있고 다시 돌아오는 예도 있는데 멀쩡해 보여도 그 사건에 대해 물어보면 벌벌 떨면서 자신은 모른다고 입을 다문다더군."

"뭐?"

"아니, 내가 듣기론 말이야. 뿔이 뾰족한 오니들이 습격하는 거라고 하던데. 습격당한 사람이 그렇게만 말했어."

"오니라고?"

"아무튼 성격이 나쁘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더 그렇다고 하더라고. 우리야 하쿠레이 신사에는 '그 오니'가 있으니 말하기 껄끄러워서 모리야 신사에 퇴치를 부탁했거든."

"그래서?" 나즈린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사나에 님이 사람들을 습격하지 말라고 대판 혼내줬는데 그때부터 기습적으로 더 기승을 부리는가 봐. 요괴스럽게 뻔뻔하더라고. 가만히 있는 자기들을 건드렸다고 말야."

"근데 그거 오니들이 한 건 맞대?"

나즈린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습격당한 사람들 말로는 그랬어. 뿔이 있고 둔탁한 저음의 오니 목소리였다고."

"흠... 습격당한 사람 좀 알려줄 수 있어?"

나즈린이 금덩이를 하나 더 나눠주자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러지."


나즈린을 발견하고는 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미코가 웃으며 돌아서자, 그 광경을 보던 토지코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외쳤다.

"절도 어지간히 관리가 안 되는 모양이군요. 지금은 교육시간 아닙니까."

"저 요괴가 가르치는건 아니니 심려치말게. 후후."

미코의 웃음을 여전히 의아하게 생각한 토지코가 물었다.

"태자님. 지금이라도 저렇게 절의 일행이 이탈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도 절에 압박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보아하니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정보를 모으고 수작부리는 거 같은데 말이죠."

"자네의 답답하고 의아한 마음은 알겠으나 엄연히 이 일은 내 생각 안에 있네. 지금은 우리의 대외적인 이미지도 있고 멘레이키가 얼마나 배워가는 게 중요하지 딴지를 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말이야."

토지코가 '끄음'하고 난감한 표정을 짓자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누가 뭘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요?"

"그야 멘레이키가 제대로 감정에 대해 알아..."

고개를 돌린 미코의 눈앞에 웃고는 있는데 소름 끼치도록 눈매가 날카로워진 곽청아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누가 무슨 감정을 배워요?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 거죠?"

"아하하,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나."

당황하는 미코에게 곽청아가 가까이 다가가며 살벌하게 말했다.

"말씀은 전혀 별것이 아닌 거 같은데요. 요즘 잘 안 보이셔서 이상해 뒤를 좀 캤더니, 뭘 꾸미고 있죠?"

'헉, 태자님이 곽청아가 절대 알면 안 된다고 했는데..'

토지코가 기겁해서 어쩔줄을 모르며 그들을 바라보자 미코가 당황한 채로 말했다.

"아, 있잖아. 그게 말이지. 멘레이키를 절에 교육을 맡겼거든. 텐구가 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뭐라고요? 그걸 받아들여요?"

"그럼 조건이 좋은데. 해야지."

"절이랑 그렇게 싸우고 이제 와서요? 후후후후 정말 웃기는 상황이네요. 직접 하자고 한 건가요? 아님 그 텐구들이 먼저 하자고 한 건가요?"

"텐구들이 머, 먼저 하자고 하긴 했는데." 미코가 난처함에 말을 막 던지며 말했다.

'응? 왠지 그때 엄중한 말투와는 다르게 다 말해주시는 거 같은 느낌인데."

토지코가 여전히 의아한 채로 바라보자 팔짱을 낀 곽청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흠, 알겠어요. 참 꼴사나운 일을 하다니. 잘 알아두도록 하죠. 이 우스꽝스러운 일에 제가 뭘 하든 막진 마시고요. 후훗"

곽청아가 말을 마치고 사라지자 당황함에 땀까지 흘린 미코가 땀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후, 깜짝 놀라서 다 말해버렸네. 사고나 치지 말아야 할 텐데 큰일이군."

'정말 그러셨던 걸까. 아님..'

토지코가 애석해 하는 미코의 뒤에서 유심히 그녀를 바라보자 미코가 머리를 긁으며 가자는 손짓을 하고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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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들을 준비가 되었으니 말해봐."

손에 깍지를 끼고 자신의 배에 올려두고서 등받이 의자에 기대 허리를 펴며 정중한 자세를 취한 모미지의 눈동자에 많이 늙어서 겉으로는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지만 융합령 전만 해도 자신보다 높은 신분에 직책을 맡던 카라스텐구였던 만큼 기품있고 절제된 모습의 작전과장이 들어왔다.

"네, 경비대장님. 우리 산에서 주민의 신분이 높든 낮든 종족이 다르든 능력에 따라 직책이 맡겨지는 개혁인 융합령이 시작되어 정착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응, 그렇지."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대장님은 예전에는 말단이셨을지라도 대텐구님의 법령에 노련한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부대의 전술적인 우두머리가 되셨고 다른 신분낮던 백랑텐구들에게 능력을 통해 지위를 획득하고 성공한 우상으로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높았던 신분의 부하들을 거느리시면서 충성을 받으시죠."

"말은 고맙지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모미지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거슬린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저도 융합령보다 훨씬 이전이든 발령 직전이든 나이와 상관없이 신분에 따라 여러 고위직을 맡았었지만, 지금은 물러나 정규부대의 전술적 정보와 군사작전을 통보받고 다루는 일만 많은 고문(顧問)용 직책을 불만 없이 맡으면서 경비대장님에게 충성을 다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대텐구님이 저보다 위이기 때문에 저는 그 명령을 따라 융합령을 따르고 준수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경비대장님이 제 직속상관이자 위이고 저는 아래이기 때문에 경비대장님이라는 위를 따르는 것이죠. 경비대장님도 위이신 대텐구님의 명을 따르고 있고요."

"그래서? 불만이라도 있다는 건가?"

모미지가 자신의 천리안으로 작전과장의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았지만, 작전과장은 표정도 동공도 아무런 미동 없이 서류를 열면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제가 이렇게 말을 돌려가며 하고 싶은 말은 위에는 위가 있고 아래에는 아래가 있다는 겁니다. 위에서 위, 그리고 또 그 위, 이렇게 절차와 체계가 있다는 말이죠."

작전과장이 건네준 낯익은 무언가를 받아든 모미지는 그것이 저번에 자신이 텐마에게 직통으로 보낸 아야에 대한 탄원서임을 보고 당황했다.

"어? 이건."

"보다시피 긴급통문 보내신 거, 거부의 의미로 반려 되셨습니다. 게다가."

작전과장은 골치 아픈 듯한 표정으로 훈계하는 말투로 말했다.

"텐마님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놀라시면서 긴급 보고체계가 어떻게 된 거냐며 대텐구님에게 이야기를 하셨는지 직접 오셔서 저희를 친히 털고 가셨습니다. 덕분에 저희 작전과 애들만 엄청 혼났습니다. 직급을 떠나 온갖 풍파를 겪은 연장자로서 여기저기 일처리 하시느라 바쁘시고 고생하시는 것 때문에 기분이 불쾌하시고 답답하신 마음은 충분히 유념하고 공감합니다만 엄연히 대텐구님 명령을 수행중이시라면 좀 더 숙고하셔서 경비대장님의 직속상관인 대텐구님 안에서 처리하셨으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직급으로 위아래를 따지는 세상에서 대텐구님에게 혜택를 가장 받으신 분이시자 저의 위인 경비대장님이 바로 수혜를 베푸신 위인 대텐구님을 건너뛰고 더 위를 중요시하는 월권적인 이 사례로 아래쪽에서 자신의 단계적으로 위쪽을 충성하는 마음에 대해 의구심과 회의감이 들지 않게 하려면 말입니다."

"으음..."

모미지는 건네받은 탄원서에 큰 도장으로 '거부'라고 적힌 것을 힐끗 보고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돌리며 주섬주섬 접어버린 후, 쇼기판 아래에 깔자 작전과장이 말했다.

"아래 요괴로서 간언[각주:1]하자면 감정적으로 동요되시는 건 알겠지만 일 처리까지 감정싸움으로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랫요괴나 윗요괴나 서로 감정만 상하니까요."

"이번에는 내가 크게 실수했군. 자네나 자네 부하들에게도 미안하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제 부하들은 경비대장님 부하들이고 결국 모두 한 식구지 않습니까. 지금 차려진 쇼기에서도 말을 하나라도 어떻게 다루냐에서 승패가 결정 나는 만큼 잘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잃을 수도 뺏길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다이쇼기의 명수로 명성이 높으신 전문가이시니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작전과장이 말을 마치고 일어서자 모미지가 여전히 부끄러운 듯이 붉어진 얼굴로 어설프게 웃으며 공손히 사과했다.

"내 사사로운 실수에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네. 보급계에 불러서 작전과에 술이랑 안주를 돌릴 테니 그걸로 상한 마음을 달래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저도 최대한 애들 달래보도록 하죠. 결재 서류만 놔두고 비문(비밀문서) 케이스는 가져가겠습니다."

물품을 챙겨서 돌아가려는 작전과장에게 모미지가 뭔가 생각한 듯 손가락을 튕기며 그녀를 불렀다.

"아! 작전과장. 궁금한게 있는데."

"네. 말씀하시지요. 경비대장님."

"요사과(妖事課) 서류상, 작전과 일에 병력지원이 많이 투입되는 거로 아는데 일할 병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왜 나오는 거지?"

"음... 글쎄요. 일단 다시 분류되어 저희보단 다른 중요한 일의 작업에 먼저 투입된다고 아시면 될 것 같군요. 거기까지는 제 소관이 아닙니다. 일이 많아서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산 안에서 단결."

"산 안에서 단결."

작전과장의 경례를 받아준 모미지는 그녀가 나가자 잠깐 멍하니 있다가 다이쇼기판을 바라보고는 배치된 수많은 보병(歩兵) 말을 손으로 밀면서 바닥에 떨어트려 판에서 비우며 혼잣말했다.

"파견 나가는 병력마다 행방도 모르게 증발."

승격 전의 비차(飛車), 각행(角行) 계마(桂馬)와 함께 금장(金将)과 은장(銀将)도 치우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지휘관들도 내 입장을 헤아려 주지 않는 상태에 대텐구님은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그 까마귀에게 홀리셨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장(玉将)을 들어서 만지작거렸다.

"난리 좀 나긴 했지만 이 짓거리를 끝내려면 결국 텐마님 밖에 없는데. 간청하면 받아주실 줄 알았건만 골치 겁나 아프게 되었군. 그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직접 뵙는 수밖에."

모미지는 옥장을 다시 판의 자리에 둔 후, 탄원서를 챙겨서 서랍 안에 넣고는 문밖을 나섰다.

"대장님. 오늘 일정입니다."

부관이 경례하며 서류를 주자 모미지가 받아들었다.

"응, 어디보자."

"아, 그리고 이번 분기에 의무부대에서 전 병력에 대한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직 언제 할지 정해지진 않았지만요."

"알았어, 수고해."

서류를 대충 읽으며 부관을 보낸 모미지가 술 항아리를 들고 더위에 시달리면서 근무를 보다가 저번처럼 코코로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아야가 큰 배낭을 멘 채로 찾아오자 저승사자가 온 듯처럼 한숨을 길게 쉬었다.

"저기! 잘 지냈어?"

코코로가 반가운 표정의 가면을 보이며 아무런 표정 없이 모미지에게 인사하자 모미지도 손을 흔들면서 화답했다.

"어서 가자. 모미지!"

손을 까딱거리며 본론부터 말하는 아야에게 기가 막혔는지 혀를 차던 모미지는 코코로의 긴 머리와 긴 소매 상의가 마음에 걸렸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너, 그렇게 꽁꽁 싸매고 덥지는 않니?"

"응? 나? 아니, 소매가 짧았으면 팔의 피부가 햇볕에 탔을 걸. 그리고 치마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어서 언니 생각보다 통풍 잘 돼. 주변에 바람도 많이 불고." 

노인 가면으로 손을 흔들면서 친근하게 말하는 코코로와 같이 아야도 신난 얼굴로 들뜬 목소리와 함께 들이댔다.

"후후, 저의 능력인 바람을 다루는 능력 덕분이죠. 저의 곁에 있으면 누구라도 시원하답니다!"

확실히 그녀의 주변에만 바람이 몰아쳐서 코코로의 부드러운 머릿결이 휘날리는 것을 본 모미지는 띠꺼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 잘난 '발암'을 다루는 능력 말이지? 댁 덕분에 난 암 걸릴 것 같은데."

"뭐, 뭐얏!!! 이 멍멍이가!! 바람이라고 바람!"

코코로가 '풉'하고 입만 움직이는 미묘한 웃음을 짓자, 아야는 더 민망해져서 성질을 부렸다.

"텐구 언니. 그래도 이 언니 옆에 있으면 진짜 시원해."

"어휴, 그래. 근데 난 얘가 내 눈앞에 없으면 속이 시원해." 모미지가 코코로의 팔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읊조렸다.

"흥. 나도 얘가 암 걸려서 눈앞에서 사라지면 속 시원하겠네!" 아야도 지지 않고 맞섰다.

"이게! 진짜!!"

"응?! 히힛, 맞짱이라도 떠보고서 털리려고?"

아야와 모미지가 서로 옥신각신 싸우고 코코로가 옆에서 박수를 치며 '싸워라~ 싸워라~'하고 혼잣말하는 동안 무전을 받은 경비 텐구가 무전기를 든 채 그들에게 다다가 말했다.

"저기, 방금 민원이 들어왔는데 시끄러우니까 두 분 다 밖에서 싸우시랍니다."

"으.. 진짜 두고 봐! 언젠가 이 검으로 응징해줄 테니까!"

"흥. 너같이 느린 게 나에게 닿기라도 할까 봐?!" 모미지가 으름장을 놓자, 아야도 배낭을 내던지며 신경질로 화답했다.

"뭐? 느려? 「산와 익스페리즈 가나안」! (山窩 エクスペリーズカナン)!"

"헤헤. 역시 느려!" 모미지의 발동된 스펠카드의 탄막을 아야가 신속히 날아서 피했다.

"시끄러워! 그 입을 정말로 다물게 해주겠어!"

"그럼 이쪽도 화답해 줘야지! 환상풍미(幻想風靡)!"

전광석화 같은 아야의 민첩함처럼 탄막이 빠르게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모미지의 탄막과 섞여가며 사방팔방으로 난무하자 살짝 자리에서 물러난 코코로는 전투태세인 여우 가면으로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흥! 빨라 봤자 좁쌀만 한 탄막으로 뭘 어쩌겠다고!"

"조, 좁쌀?! 어딜 맞추지도 못하는 게! 그럼 어디 좁쌀에 한 번 털려봐!"




출입 통제소에서 무전을 받았던 경비텐구는 쌍안경으로 주변을 관측하다가 공중에서 싸우는 둘을 보고 당황하며 카라스텐구 선임에게 보고했다.

"입구에서 싸움 난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어휴, 일단 경비대장님에게 보고하고, 상부조치를 받아야지. 그런 거 좋아하는 기자들한테도 친분상 기사로 쓰라고 알리고."

"저, 싸우시는 분이 경비대장님이신데요."

그러자 선임은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무전기를 들며 말했다.

"하아, 알아서 보고할 테니 싸우는 대상은?" 

"기자요."




으르렁거리는 모미지와 빡친듯한 아야가 서로 피하고 날리기를 반복하며 싸우자, 코코로도 스펠카드를 꺼내 들며 난입했다.

"싸움은 구경만으로는 재미없어! 노면 분노한 기랑의 가면(怒面 怒れる忌狼の面)!"

사방의 탄막을 피하며 눈에 보이는 아무에게나 돌진하는 코코로의 공격을 피해 서로에게 탄을 날리던 아야와 모미지도 코코로의 영향으로 감정이 더욱 격해져 SP모드 급으로 탄막을 뿌려댔다.




"나 원, 안 오는 건 둘째치고 왜 내가 얘넬 찾으러 가야 하는 거야?"

이치린이 운잔과 함께 투덜거리며 두건을 부여잡고 요괴의 산을 향해 날면서 투덜거렸다.

"...."

운잔이 같이 날면서 이치린에게 귀속말을 하자 이치린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휴, 몰라 나도. 그냥 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

"...."

운잔이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하소연하듯 운잔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언니가 시켜서 가는 거란 말야. 노닥거리고 있는 다른 애들도 많은데 귀찮게 정말."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아.' 소리와 함께 운잔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차피 가는 거 정보 좀 알아볼 겸 요괴의 산 좀 살피고 가자. 약속한 것도 있고."

"...."

"응? 지나가 보면서 한번 봤었는데 예전과는 좀 달라져 있다는 게 무슨 소리야?"

운잔이 대답 대신 손을 가리키자 함께 구름을 헤치며 날던 이치린의 시야에 멀리 떨어져 있던 요괴의 산이 아담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음? 뭐 딱히 이상한 거 같진 않은데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라니, 무슨 소리래?"

운잔이 집게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며 아래를 향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알았어! 내려가서 살펴보면 되잖아."

산 주변을 경계하며 나는 텐구들의 시야를 피해 참배로에서 가까운 산 중턱이 보이는 위치까지 조심스럽게 내려간 이치린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어? 정말 내가 알던 산과는 좀 다른데?"

멀리서 보았을 때는 잘 닦인 길과 마을을 비롯한 몇몇 구조물, 나무들이 우겨진 것처럼 보였던 산은 나무에 가려진 곳곳에 숨겨진 알 수 없는 많은 건물과 참호같이 곳곳에 이어진 길, 그런 건물들 주변의 벽과 철조망, 거대한 조명등과 관측장비, 확성기가 배치된 수많은 경계초소와 지나가는 텐구병사들과 캇파들, 한적한 곳마다 깔린 지뢰 같은 경보장치 등이 숲이라는 베일을 덮은 채 도사리고 있었다.  

"세상에.. 이건 그냥 요새잖아. 알 수 없는 건물들도 많고. 그래서 계속 귓속말로.."

운잔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위를 살피며 두건을 당겨 쓴 이치린이 주변을 살피며 운잔을 쳐다보았다.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되겠어. 일단 빨리 자리를 뜨고 애들부터 찾아봐야겠는걸." 

"..."

"지나가면서 봤는데 반대편에 입구가 있다고? 그럼 어서 가보자."



은엄폐한 경비텐구가 조용히 그들을 카메라로 잡고 셔터를 누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이치린은 운잔을 데리고 산 반대편의 입구로 오자마자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광경을 목격했다.



시간이 지나 '아무나 박살 나라' 하며 재밌게 싸워대던 코코로가 '아차'싶어 입만 크게 벌리면서 말했다.

"잠깐! 이렇게 막 싸우기만 하면 난 언제 최강이 돼?"

"좜껀만! 이 까막이한테 결판쩜 눼고!" 모미지가 탄막뿌리랴 피하랴 버겨운지 땀대신 체온을 식히기 위해 내민 혀를 집어넣지 못하는 상태로 대답했다.

"빨리 끝내드릴 테니 좀 기다리세요. 어떻게든 양쪽을 피하려고 개털 날리는 꼬락서니란, 후후훗."

"빨리 좀 끝내!! 싸우는 건 재밌지만 나도 강해진 다음 눈에 거슬리는 아무나 붙어서 파죽지세로 박살 내고 싶다고!" 코코로가 반야 가면으로 방방 뛰며 화를 내자, 아야가 눈치를 살짝 보고 아쉽다는 듯이 탄막뿌리기를 멈췄고 모미지도 여전히 손과 발이 땀으로 젖은 채, 혀를 내민 상태로 체온을 식히며 멈췄다.

"하여튼간 저 멍멍이 때문에 시간만 축냈네!"

"댁 같은 망할 까마귀 때문에 더 덥기만 하거든!"

아야와 모미지는 서로 성질을 내면서 노려보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한탕 뛰었으니까 그만한 보상은 해야죠. 잘 잡고 있어요!"

모미지는 아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풍이 몰아쳐서 자신의 머리털이 휘날려 옆머리가 얼굴을 덮어버리는 등 헤어스타일이 난장판이 되자, 여전히 휘날리는 머릿결을 자랑하던 코코로가 웃는 가면을 내보였다.

"야, 니희끼리 뭐해?"

운잔이 흩날리는 몸으로 손을 흔들고 강풍에 두건을 부여잡은 이치린이 그들을 부르자, 아야가 인사하며 되물었다.

"어? 이치린 씨, 운잔 씨 안녕하세요. 우리 산에는 어쩐일이시죠?"

"뭐긴! 니들 데리러 왔지. 언니가 부르고 있다고."

"참, 그랬죠. 호호. 이 강아지를 똥개 훈련하며 손봐주느라 신경 못 쓰고 있었네요."

"뭐? 이 발암이나 일으키는 요괴가." 강풍으로 머리가 넝마가 된 모미지가 반격했다.

"아, 정말, 내 능력만으로 탈탈 털릴 애가 입만 살아선."

"아우 씨, 내가 반드시 까마귀 네 작은 배때지에 칼빵을 놔주고 만다."

눈을 못 뜰 정도의 강풍을 맞아 토킨이 날아가고 머리를 휘날리는 모미지가 방패로 막고 칼을 부여잡으며 말하자, 일찌감지 멀리 떨어져 있던 코코로는 평상시의 여자 가면으로 멀뚱멀뚱 지켜보고 이치린은 자신의 볼을 긁으며 한심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니들 정말 말 곱게 하는구나."

"아, 가자고! 언제까지 싸울 거야!" 

코코로가 가면을 반야 가면으로 바꾸고 두 팔을 흔들며 방방 대자 운잔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면서도 아야와 모미지를 째려보고 이치린도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아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웃듯 한숨을 푹 쉬며 바람을 멈췄다.

"네, 네. 갑시다. 저 먼지떨이가 된 모미지도 잘 챙겨가자고요."

앞머리, 옆머리가 뒤범벅된 모미지가 비록 머리카락에 눈이 가려졌지만, 천리안의 능력으로 아야를 째려보며 말했다.

"야! 잠깐 거기서!!"

"왜?"

아야가 시큰둥하게 돌아서며 쳐다보자 모미지가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가더라도 머리는 빗고 가야할 거 아냐!"

그 말과 함께 모미지가 머리를 정돈하고 멀리서 지켜보던 부관과 대원들이 빗을 가지고 와서 머리와 꼬리 빗는 것을 돕고 아야가 그 광경을 보고 엽단선으로 입을 가리며 웃자 이치린과 운잔, 코코로는 그 둘을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정리를 마친 모미지가 잠깐 경비대장실에서 바꿔치기할 남은 필름을 챙기고 돌아와 못마땅한 얼굴로 아야가 주워온 토킨을 뺏아들며 머리에 쓰자마자 일행이 명련사로 출발했다.


AM 10시 8분 명련사 법당


불이문을 넘어 법당 안에 도착한 그들을 뱌쿠렌과 쇼가 맞이했다.

"어서 오시죠. 이치린도 모셔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이치린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뱌쿠렌에게 답하자 쇼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들 좋은 가르침을 받고 가시길."

"응!" 코코로가 손을 흔들며 응답했다.

"다른 분들은요?"

아야가 주변을 돌아보며 묻자 쇼가 겸연쩍은 듯이 말했다.

"아, 이제 불러야죠. 뱌쿠렌. 오늘은 어디서 모일까요?"

"더우니까 시원하게 밖에 그늘에서 모이죠."

모미지는 긴옷에 꽁꽁 싸맸으니 더 덥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아야도 실내서도 바람 일으킬 수 있는 걸 까먹었나 싶어 말하려다가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뱌쿠렌과 쇼, 무라사, 이치린, 쿄코, 코코로, 누에, 아야와 모미지가 석등과 탑의 사이에 생긴 그늘에 모여앉아 서로를 쳐다보았다.

"응? 다 모인 것 같지는 않네요?"

의아한 표정의 아야가 문화첩에 펜을 굴리며 말했다.

"않네요!!!!!!!" 쿄코가 크게 말했다.

"아, 그게 찾아봐도 없더라고." 누에가 두 손을 하늘을 향한 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흠, 꽤 아쉽네요. 카메라 앵글에 다 잡혀야 좀 의미가 있는데 말이죠. "

그러자 불이문에서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후토가 나타나 외쳤다.

"하하하하핫! 역시 너희 땡중들은 결속력 따윈 요란하기만 하고 한 두 달도 못 가는 매미 같구나!! 크하하하핰!"

"쿄코가 복창하지 않도록 자기 입을 필사적으로 막고, 무라사가 스펠카드를 꺼내며 쇼와 누에가 자신의 창을 쓰윽 들어서 투창하려 하자, 아야의 카메라 셔터가 눌리기 전에 뱌쿠렌이 막았다.

"자, 다들 그 정도로만 하세요.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올 테니 후토 씨도 그만하시고요. 지금은 이런 시간낭비 보다 코코로 양의 교육이 우선입니다."

무라사가 스펠카드를 주섬주섬 집어넣고 누에도 창을 세우자 불만이 가득한 이치린이 뱌쿠렌을 이끌고 탑 뒤로 가서 아야와 모미지, 코코로가 듣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었다.

"히지리님, 솔직히 말해서 전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이미 우린 약속을 했는데도 저 불량한 도교 잔챙이가 절간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고요. 분명히 이건 적대행위에 규탄받아야하고 그에 맞는 응징을.."

뱌쿠렌이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특유의 인자한 웃음으로 합장하며 말했다.

"이치린, 그러한 사실로 많이 분했었군요.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그럼 지금이라도 혼쭐을 내줘야하는게 맞는 거 아닐까요?"

"하지만 지금까지 후토 씨가 우리 절에 불 지른 게 한 두번 있는 일이던가요?"

"아뇨, 그건 아니죠. 자주 그랬어요."

"그래요. 이미 우리 절에 대한 미움이 사뭇친 대상의 눈에 협약이 들어올까요? 그저 번뇌에 빠진 본능이 시키는대로 할 뿐이랍니다. 이런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구제해주도록 노력해야지 혼쭐울 내준다는건 분노와 시기에 우리도 사로잡힌 게 됩니다."

이치린이 살짝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이자 뱌쿠렌이 이치린에게 더 다가가 말했다.

"불교에 귀의한 승려로 설법하자면 이 절에 사는 존재로서 자비를 베풀도록 하세요. 그게 우리의 다른 점입니다."

이치린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뱌쿠렌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오자, 여전히 누에와 무라사, 후토가 서로 옥신각신 신경전을 벌였다.

"에휴, 그럼 찾아다닐 시간 소모할 필요없이 모미지가 천리안으로 찾아볼래요?"

"천리안으로 찾아볼래요!!!"

"하, 또 부려먹을려 하네."

아야가 명련사 일원들과 후토를 중재하는 뱌쿠렌의 사진을 찍으며 묻자, 따라하는 쿄코 옆에서 모미지가 투덜거리는 것을 바라본 누에는 몇 시간 전 친구와 이야기한 것이 찰나에 필름이 빠르게 돌아가듯 회상되었다.


AM 7시 12분 명련사 팔상전[각주:2] 


"일단 산 쪽의 사정이 어뜬지 알아봐야 하겠는디 말여."

마미조가 코에서 내려간 안경을 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움직이면 그 약삭빠른 텐구가 눈치를 챌 텐데."

"한두 명 정도 빠져서 나머지가 텐구 둘을 감시하고 빠진 인원이 뒷조사를 해야제."

"그럼 일단 제가 붙어서 둘을 감시하죠." 이치린이 대답했다.

"나야 다우징 봉이랑 펜듈럼으로 수상한 물건을 찾으면 되고 쥐들을 풀어서 정보를 얻으면 되니까 산 쪽을 알아보도록 하지."

"마미조. 그럼 난 남아? 나 변신이나 위장 잘하는데?"

누에가 기대감에 찬 눈을 반짝거리며 묻자 마미조가 말했다.

"아무래도 남아야 하겠구마."

"왜? 나 진짜 잠입해서 정보 캐는 건 잘해!"

"네가 없어지고 나서 무슨 일이 터지면 누에 너의 정체불명의 능력상 텐구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너를 의심할 테니 지금은 의심을 받지 않게 텐구들의 감시영역에 존재하고 있어서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제."

누에가 '흠, 그런가.' 하며 턱을 괴고 생각하자 마미조가 말했다.

"일단 문제는 그 백랑텐구의 눈이제. 천리안이라고 캤던 거 같은데 말여. 투시도 될꺼이고 어디든지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알아보러 다녔다간 다 탐지되어 텐구의 건수만 만들어 줄 수밖에 없제."

"하긴 그건 그렇겠지. 그랬다간 도교 녀석들도 신나서 우릴 물어뜯을 테니까." 나즈린도 골치 아픈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께 남아있는 요괴들이 해줄 역할은 말여. 절대로 그 백랑텐구의 시선을 우리가 알아보러 나간 장소 쪽으로 향하는 방향이나 절 바깥으로 돌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제."

"뭐?" 누에와 이치린이 놀라서 외쳤다.

"아니, 그게 말이 쉽지, 어떻게 해?" 나즈린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하자 마미조가 웃으며 말했다.

"그 백랑텐구에게 말을 걸든가 화제를 돌리던가 그 카라스텐구를 닦달해 진행을 빨리하든가 해서 어떻게든 막아야지. 그 카라스텐구가 백랑텐구의 능력을 이용해 우리를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 가정이니까."

"음..." 이치린이 두건을 만지며 고심하면서 말했다.

"이건 어떻게 해볼게. 혹시 수상한 씨앗을 그 카라스텐구에게 붙여놔서 텐구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그것을 지켜보다 보면 뭔가 꿍꿍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누에의 말에 나즈린이 핀잔을 줬다.

"그랬다가 도교 애들이랑 텐구 애들에게 구실이라도 만들어주려고? 뱌쿠렌과 주인도 우리 쪽에서 벌인 일이니 뒤집어질걸."

"뭘? 도교쪽도 이미 개별적으로 합의를 깨고 불지르려고 선빵을 쳤잖아. 그리고 몇 번 씨앗을 아무 곳이나 둬서 실수가 잦다고 알게 한 다음에 붙여놓으면 장난이라고 하거나 엄연히 내가 간수를 못해서 그랬다고 둘러대면 되지 뭐. "

"글쎄. 장난이라고 해도 그 텐구가 아주 신랄하게 기사를 쓸 테고 누에 씨가 옛날에 일부러 붙여놓은 경험이 있어서 그걸 실수라고 믿을 것 같진 않은데요." 이치린이 대답했다.

"그 안은 정보가 백지인 지금보다 나중에 써먹는 게 좋을 것 같으이. 누에, 그러믄 서로 어디서 정보를 알 것인지 알려주고 공유하도록 하제. 아무래도 배경을 알려면 산 쪽을 알아봐야 하겠는디 말여."

"나도 쥐들을 풀어 산 쪽의 사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어."

"어차피 저는 운잔을 보내면 되니 남아서 시선을 돌리도록 하죠."

"뭐, 그럼 내가 제일 수상하니까 지금은 의심 안 받게 최대한 텐구들을 감시하지."

"그럼 다들 수고하게나." 마미조가 술잔을 기울이며 말하자 나머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비웠다.






"아니, 잠깐. 너 진짜 천리안이야?"

몇 시간전 계획을 염두해 둔 누에가 일부러 화들짝 놀라며 묻자 모미지가 멀뚱멀뚱 쳐다보며 말했다.

"네."

"그럼 내가 그냥 보여?"

누에가 정체불명의 능력을 쓰면서 바싹 붙으며 묻자 모미지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형용할 수는 없지만 보이긴 보입니다."

"응? 그럼 그냥은 내 본모습이 안 보이는 건가?" 자신의 여체 모습으로 돌아온 누에가 의아해하며 묻자 이치린이 거들었다.

"멀리 있는 것을 보는 능력인데 가까운 게 안 보이겠어?"

"네, 그냥 남들 같은 눈에 남보다 먼 곳을 뚫듯이 내다보는 능력이 추가된 것 뿐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 좋은 것도 충분히 보여지지만 외면하고 싶거나 보기 싫은 것도 다 눈에 들어오죠."

막판에 말할 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손가락으로 아야를 가리키는 것을 바라본 누에와 이치린이 피식 웃었고 아야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도 미간을 찌뿌렸다.

"오오, 그럼 투시도 되는 거야?! 본질을 꿰뚫어보는 그런 거 말야."

"헤에, 나머지 분들은 그럼." 아야가 눈에 카메라를 대고 제자리에서 한바퀴를 돌았다.

"뭐, 시간 아까우니까 그냥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니?"

"맞아! 난 빨리 배워서 강해질 거야!"

이치린과 코코로의 말을 들은 뱌쿠렌이 코코로를 신경쓰는 후토를 바라보곤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겠어요. 믿고 맡긴 도교 쪽도 만족스럽게 돌아가려면 말이죠."

"오늘도 잘 배우고 가렴." 쇼가 코코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코코로가 고개를 들어 쇼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응!"



  1. 諫言: 윗선에게 옳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충고함 [본문으로]
  2. 捌相殿,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모신 불교 사찰 건물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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