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보면서 좀 이상한 거 못 느꼈는가 말여."
"뭐,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이치린이 물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보믄 말여. 그렇게 싸우던 불교와 도교의 지도자가 서로 합의를 했다고 캤고. 교육의 조건이 붙긴 했지만은, 얘기는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적대시하던 강한 힘을 가진 수장급인 서로가 이렇게 얌전히 일개 텐구의 말을 따르고 있다는 건 말여. 뭔가 보이는 것 말고도 그 텐구에게 저당 잡힌 게 있거나 서로 얻는 게 있을 수 있단 말이제. 묘렌사에서 가르친다면서 외부 인사를 데려오는 것까지는 융통성 있게 넘어간다 치고, 특히 도교 측 수하가 불을 지른 것만 하더라도 엄연히 규정 위반에 해당할긴데 우리 쪽이 항의하고 심하면 도교 측이 합의했는데도 적대행위를 한다고 언급해버리거나 사과할 때까지 교류 중단까지 갈 수 있는 사건인디 그런 도발을 주지승이고 텐구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는 건 이 교육이 진행되는 게 서로에게 중요함과 동시에 무언가 밑바닥에 미리 약속되었거나 더 중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아닌가 하는디 말여."
"뭔가 수상하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왜 아까 교육할 때 말을 하지 않고 우리에게 말하는 건데?"
나즈린이 따지자 마미조가 말했다.
"그래, 그건 말여. 내도 솔직히 이 교육이 멘레이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께 말이제. 아까 보니 확실히 멘레이키 요괴의 정체성을 찾아줄 좋은 교육이니까 계속 진행되는 거슨 '대승적 차원'도 있고 또 '한 요괴의 생에 큰 발전을 줄 도움 되는 일'이니까 말잉게. 도교 측이나 저 멀리 요괴의 산과 모리야 신사까지 얽혀있으니 확실하지 않으면 판을 건드렸다 우리만 피보는 것이니 말여."
"아, 그래서 아까부터 그랬었구나. 그럼 우리를 부른 건?"
"이 뒷배경에 좀 확실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구먼. 나와 누에가 알아봐도 되긴 하지만 능력상 둘이 더 붙으면 더 정확하면서 효과적이고 빠를 거라고 생각이 드니께. 그래서 확실한 물증이 나올 때까지 알아만 보고 끝내서 우리만 알게 말여."
"지금 자기만의 억측일 수도 있는 가정을 입증하려고 우릴 부른 거란 말이야?"
"근데, 솔직히 도교 것들이랑 그렇게 싸우다가 갑자기 얽히는 것도 이상하고 내가 봐도 텐구가 수상하긴 하지만, 음."
이치린과 나즈린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자 마미조가 말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제. 우린 그저 그 돌다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안전하긴 한 건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니 말여. 이렇게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 자체는 품위 있고 고상하겠쓰나 오래 갈등하며 싸우던 둘이서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히 마주 보고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배경과 그 테이블을 마련한 텐구네가 그저 자신들과 그동안 상관없던 양쪽의 외교적 해결이라는 겉치레 말고도 뭔가 챙기려 할 꿍꿍이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는 보고 이를 덮을지 꺼낼지는 그때 해도 늦지 안응께 조용히 뒤에서 캐보기는 해보자는 거제. 그 정도는 누구나 인과적으로 궁금할 수 있는게고 우리에게 약인지 독인지 분명히 하자는 거구먼."
"그럼 이 일이 어떻게 마련된 것인지, 더 나아가 요괴의 산 쪽이랑 아야에 대해서도 뒷조사를 해볼 필요도 있는거네?"
누에가 말하자 마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가설은 일리는 있긴 한데 왜 굳이 우리야. 다른 애들도 많잖아."
이치린이 따지고 나즈린도 다우징 봉을 만지작거리며 불평하자 마미조가 말했다.
"이 일은 워낙 보는 눈이 많아서리 꼬투리 안 잡히려면 적절한 능력을 갖춘 최소 일행으로 조용히 알아보고 끝내야 하니께. 쿄코와 코가사는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애들이니께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쿄코는 특히 말을 잘 따라하다보니 둘 다 다 티가나서 텐구가 조사하면 쉽게 밝혀질 것이구먼, 미나미츠는 책임감 있고 적극적이고 털털하지만 이 일에 도움되는 능력은 일단 아닌 데다가 너무 즉흥적이라서 친해지거나 분위기에 빠지면 자기도 모르게 이 사실을 흘릴 수도 있제, 쇼는 평소에는 감정적이라 자기 멋대로 하지만 속은 따뜻하고 착한 데다가 비사문천의 화신이란 자부심이 있어서 양심의 가책에 찔리는 일은 자기가 못할 것잉게, 그러니께 남은 대상 중 나즈린 자네는 쥐들의 수장인 만큼 무언가를 탐색하는 그 능력으로 텐구가 뭘 남겨놓거나 숨기는 게 있는지 쥐들을 풀어 탐색해보거나 주변을 살피면서 요괴의 산 쪽이나 도교 쪽과 엮인 모든 부분을 은밀히 탐문해보고, 이치린 자네는 맹우인 운잔을 통해서 몰래몰래 도교 쪽 및 요괴의 산, 모리야 신사와 관련된 모든 쪽을 조사해보고, 스스로 소문이나 배경을 한번 알아봐 주게나. 누에와 나는 둘 다 변장과 정체 숨기기에 능하니께 재주껏 알아보도록 하제. 이 일은 무엇보다 말여, 적절한 역할과 능력으로 '확실한 증거 수집'이 목표이니께 말이제."
"음, 솔직히 지금까지 텐구가 자기 기삿거리 만들려고 어떻게든 언니랑 도교 잔챙이를 꼬신 건 줄 알았는데요. 와서 하는 짓도 사진찍기에 급급했잖아요. 하지만 듣고 보니 확실히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조사하다 아니면 우리끼리 마는 거고 뭔가 확실히 나와서 잡으면 우리 쪽이 주도권을 쥐는 거니까요."
이치린이 고개를 끄덕이는 운잔을 보며 말하자 누에도 자신의 삼지창의 끝부분을 바닥에 대고 두 손으로 비비듯 돌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계획을 언급하는 걸 보면 그럴만한 확신이 있는 것 같은데?"
나즈린이 쥐 한 마리를 꺼내 마미조가 말한 내용을 복창시키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마미조를 보며 말하자, 마미조도 안경을 닦으면서 민얼굴로 나즈린을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내는 이 일이 기자 텐구가 도우미 텐구를 끼고 혼자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요괴의 산과 모리야 신사가 집단으로 끌고 가는 일이라고 보이네. 이 합의의 규모는 누가 봐도 그 정도만 하니께 말여. 아무리 모리야 신사네가 생각이 없다 해도 '인기'에 연연하는 만큼 자기 신사의 이름이 걸린 일에 순전히 우발적으로 텐구 두 명에게 알아서 해보라고 대충 권한 다 주고 발 걸치듯 참여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내가 알기론 저 도우미를 하던 백랑텐구는 자신의 능력으로 경비서는 일을 맡고 있다고 들었는데 침입자가 들어올 수 있는 걸 감수하고 안위를 책임지는 경비를 도우미로 내줬다는 건 요괴의 산에서도 솔직히 종교끼리의 일이라 상관없는데도 불구하고 떡고물이 떨어질 만 하니께 이 일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이제. 게다가 저 백랑텐구가 천리안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네만 그 멀리서도 한눈에 다 볼 정도면 우리 가까이에 있게 되는 건 우리의 행동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감시할 수 있다는 게 되고 거기에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을 찍을 텐구까지 붙여졌으면 의심이 들 수밖에 없제."
"하긴 텐구놈들은 꾀가 좀 많으니까 확실히 뒤에 배경이 있을 거 같긴 하네요. 아니면 정말 평화에 눈을 뜬 거겠죠."
이치린이 피식거리며 비웃는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솔직히 그럴 리가 없잖아. 환상향에서는 느긋한 거 아니면 서로 싸우기 바쁜데. 나도 친구로서 도와줄게!"
누에가 마미조의 등 뒤로 다가와 팔로 목덜미를 감싸며 껴안자, 마미조가 안경을 닦으면서 놀랐으나 이내 바로 미소를 지었다.
"일단 후타츠이와 씨 말대로 내일부터 운잔을 데리고 이 일의 진위와 배경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나도, 쥐들 풀어서 알아보도록 할게. 일단 요괴의 산과 아야와 관련된 것들부터 시작해야겠어."
"그럼 나도 변장해서 인간마을이나 요괴의 산, 신령묘쪽에 잠입해서 정보를 모을게."
"마찬가지구마이. 누에, 일단 어떤 원인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인과관계를 확실히 알아보고자 하는 일이니 뒤에서 캐는 이 일을 주지승이 알면 분명 훈계할 터이니 일단 조용히 정보와 증거를 수집하고 모아보자 하구먼."
"좋아. 확실히 서로 정보를 모으고 경과와 함께 성과가 있으면 의심받지 않을 시간에 따로 언급된 장소에 모여서 이야기하자고."
누에가 몸을 앞으로 쏠면서 마미조가 닦는 안경의 반대쪽에 입김을 불어 놓는 장난을 계속 치자, 마미조가 낄낄거리며 안경을 천으로 계속 닦은 후 누에에게 장난으로 자신의 안경을 씌어주었다.
"이 시간이면 다들 자니까 적당할 것 같네요." 누에의 말에 이치린이 대답했다.
"뭐, 나는 어차피 무연총에서 살다가 이 일 때문에 뱌쿠렌이 끌고 와서 절의 한 방이 잠시 거처가 되어버렸으니까 나도 괜찮아."
나즈린이 그렇게 말하자 이치린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한데, 언니도 뒷조사해야 하는 건가요? 솔직히 그건 좀 꺼림칙한데." 이치린이 껄끄러운 표정을 짓자 나즈린도 동의하듯이 슬쩍 마미조를 쳐다보았다.
"알아는 봐야겠제. 정황을 확인하는 게니 글케 괘념치 말어."
"그럼 서로 합의는 다 끝났으니 내일부터 운잔과 함께 일하도록 하죠."
"수상한 것에 대해 알아보는 일이니까 일단 주인 모르게 협조하도록 할게."
여전히 누에에게 안긴 마미조가 담뱃대를 꺼내 고개를 끄덕이고 둘이 눈치를 보며 방문을 나서자, 담배는 피우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담뱃대로 툭툭 바닥을 치던 마미조에게 안경을 쓴 누에가 물었다.
"이거 생각보다 도수가 있는 거라고 해야 하나. 근데 마미조. 담배 안 펴?"
"잠시 담배에 기대지 않고 내 두 눈 그대로 깊게 생각 중이구먼."
"그래? 근데 마미조.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말해보거레이."
누에는 껴안은 마미조의 볼에 자신의 귀에 걸쳐진 안경의 다리와 자신의 볼을 기대면서 속삭였다.
"그냥 이 일 수상하면 남들 모르게 깽판 치고 끝내버리면 안 돼? 그러면 어차피 그 전이랑 똑같잖아."
"그건 안돼제. 엄연히 멘레이키가 잘 배우고 있고, 그걸 쫑내는 것은 말여, 멘레이키의 복을 우리가 걷어차는 것이니 말이니께. 애당초 서로 싸우던 대상들이 멘레이키를 통해 대화로 풀어가는 분위기 자체도 나쁜 일은 아니지먼 뭔가 우리에게 해가 될 꿍꿍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하니께 지금 정보를 얻는 데는 일가견 있는 쟈들을 보탬이 되라고 부른 것이니 말여."
"그렇구나. 그럼 마미조?"
"그려. 누에여."
"이러고 좀만 더 있어도 돼?"
"가까이 붙으니 덥긴 해도 좋으면 즐겨야제. 근데 말여."
"응."
"껴안는 대가로 네가 안경 좀 씌어 주거레이."
PM 10시 요괴의 산
마미조와 누에 서로의 웃음과 함께 밤은 무르익었고 공중에서는 아야와 모미지가 말다툼을 넘어 서로를 욕하면서 요괴의 산 출입통제소에 같이 도착한 뒤, 야시장비를 낀 카라스텐구와 검이나 창을 들이댄 백랑텐구 경비대원들의 출입심사와 함께 경례를 받았고, 신난 기분으로 먼저 마을로 들어간 아야와는 달리 경비대장답게 대원들의 근황과 있었던 상황을 물어보고 계속 시간을 때우다가 전등이 환히 켜진 출입 통제소와 산의 주변, 망루에서 침입자를 감시하기 위해 돌아가는 탐조등과 빛에 취해 몰려드는 나방과 같은 잡다한 벌레 무리, 밝게 빛나는 가로등이 설치된 모리야 신사로 통하는 참배로를 늦은 밤에도 오가는 신사객들을 바라보던 모미지는 그냥 멍하니 서서 출입심사를 받고 가는 신사객들의 말들을 들었다.
"산 입구에서 모리야 신사로 가는 길이 엄청나게 좋아졌어. 날이 더워서 올라가면 땀을 뻘뻘 흘리긴 해도 말이야. 우스운 이야기지만 텐구 요괴들이 지켜주고 있고 늦은 밤인데도 이렇게나 밝아서 산에서는 다른 요괴의 습격을 받을 위험도 없고. 정말 감탄이 나와. 믿을 수가 없어."
"신들도 그렇고 무녀가 용하잖아요. 이변이란 이변은 물론 요괴들 등쌀을 곧바로 해결하기로 명망이 높으니 우리가 그나마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덕을 많이 보았죠. 오죽하면 요괴들도 신앙에 탄복해서 이렇게 길을 놓았다잖아요. 인사나 드리고 신앙과 함께 복을 빕시다."
그들의 말을 들은 모미지는 대텐구의 명령으로 정상에서부터 삽질하면서 저 참배로의 계단을 놓고 가로등을 들고 하나하나 캇파와 함께 전선을 연결한 후, 지중화 1하며 설치한 자신과 대원들의 작업과정이 생각나 치를 떨면서 떨쳐내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7월 22일 금요일 22시 3분, 카엔뵤 린 입산."
탠구 경비대원이 검문을 마치고 일지기록을 끝내자마자 수레를 밀면서 달려가던 카엔뵤 린이 모미지를 슬쩍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어? 텐구 언니. 안녕."
"응, 안녕?"
"언니 밤에서도 경비서는 거야?"
"아니, 뭐 그냥 오늘 하루 헛짓거리하다가 멍때리고 있어. 넌 밤에도 오니?"
"응. 시체 수거는 부지런해야 하거든! 밤에는 다른 경쟁자들이 활동하니까 말야!"
싱글벙글 웃는 린을 멍하니 보던 모미지가 자신의 옆 머리를 다듬으면서 말했다.
"그 수레에 담아가게?"
"응! 오늘도 가득 담아갈 거야!"
린이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는 사이, 다른 경비대원이 큰 포장수레를 대충 확인하고 통과시키는 것이 모미지의 시야에 들어왔다.
"잠깐! 니들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정지해!"
단호한 모미지의 말에 경비대원들이 당황하고 수레를 끌던 텐구가 급하게 수레를 멈추고는 어색한 미소로 모미지에게 다가왔다.
"뭐야? 규정에 확인도 안 해보고 산 안으로 들여오게 되어있나?"
"대텐구님 명으로 작전수행 중입니다."
"응?"
모미지가 황당해 하며 천리안으로 수레의 안을 투시하자,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게 검은 복장과 오니가면을 쓰거나 가면을 벗고 입가에 달린 기계장치를 그대로 끼고서 피곤한지 앉아서 쉬고 있는, 누가봐도 각종 장비와 무기로 중무장한 몇몇 무리가 빙빙 포장된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모미지의 시야에 들어왔다.
"소속이랑 화물이 뭐지."
"신속 대응부대 특수작전수행반 소속입니다. 그 외엔 전부 보안사항입니다."
"하아, 통과."
모미지가 길을 터주자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수레를 끌며 등산로로 올라가고 린은 가만히 멈춰서 그들이 끄는 수레를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대텐구님 직속부대가 왜? 뭐 알고 있는 요괴 있나?"
"모르겠습니다. 연락은 있었지만, 경비대장님이 무전기가 없으셔서 보고 못 했습니다."
"알았어. 좀 당혹스럽군."
"그럼 나도 올라가 볼게. 텐구 언니."
"그래, 바쁠 텐데 수고해."
"그럼 언니, 안녕~ 빠빠이."
인사를 마치고 적적한지 주변을 산책하듯 몇 번 돌아보던 모미지는 집으로 돌아와 토킨 2을 벗고 검을 거치대에 조심스럽게 놔둔 후, 기다려도 하타테가 소식이 없어서 찾아갈까 생각하다가 연락을 줄 거라고 생각하고 필름을 장롱의 깊숙한 곳에 다른 옷과 함께 싸서 숨겨놓고는 쇼기판과 쇼기말을 꺼내 혼자 쇼기를 연구하다가 피곤함에 취해 이부자리를 피고 잠들었다.
7월 23일 토요일 AM 8시 요괴의 산 (교육 2일차)
해가 뜬 다음 날, 펌프에서 받은 지하수로 머리를 감고 어제 입은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고 디자인만 같은 다른 옷을 옷장에서 꺼내 입고서 검을 찬 후, 경비대장 계급장을 들고 출입 통제소로 출근한 모미지는 상황판에서 자신의 일정을 확인했다.
"산 안에서 단결!"
부관의 경례를 받아 준 모미지가 냉철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황판 보니까 왜 어제 우리 경비부대에 대원들이 갑자기 많아졌다가 오늘은 사라졌어?"
"아, 그건 천리안이신 경비대장님이 없으시니까 4면 방위에 그만큼 병력이 들어갈 수밖에요. 대장님이야말로
우리 산 최고의 감시원이시잖아요."
"하유, 그게 이젠 감투를 써도 굴려지는 건 똑같으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남는 병력 지원이랑 자리 마련해줄 요사과(妖事課) 애들, 머리 깨지겠는데."
"네. 죽어 나가던데요. 힘세고 일 잘하는 병력 지원요구에 혈안이 된 캇파 공병대에 내부 수사와 순찰을 하는 치안과 등 여기저기서 요구 중이니까요.
경비대장실로 부관과 함께 걸어가며 대화하던 모미지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말했다.
"하여튼 아야 그 망할 까마귀 때문에 이 고생이야!"
"정말, 그렇게 하고도 무사한 게 다행이네요."
"내 말이!" 한숨을 길게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부관의 말에 모미지가 맞장구쳤다.
한숨을 길게 쉰 모미지가 부관을 보내고 경비대장실 안에서 벽에 붙은 삼각형의 꼭짓점에서 내부 중심을 향해 각각 화살표 3개가 모여져 있고 아래에 슬로건으로 '산 안에서 단결'이라고 적힌 관영 포스터 옆의 책장에서 쇼기를 꺼내 혼자 둬가며 연습을 하자, 시간이 지난지 오래되지 않아 부대 회의를 위해 보급과, 요사과, 경리과, 병기과, 치안과, 작전과 관련 과장들이 서류를 들고 경비대장실을 찾았다.
"산 안에서 단결!"
모미지가 경례를 받고 회의용 테이블에 앉자 각 과장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23일 토요일 오전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 보급과장부터 보고해."
"네, 경비대장님. 일단 부대 내에 지하수로 확장 공사로 캇파 공병대 지원파견이 많아서 평균 부대 내 병력을 산출하여 술을 주문해 오늘 받아서 창고에 쟁여 놓았습니다. 부대 내 술 보급은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안줏거리등도 보급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날씨가 여름이다 보니 요정의 도움을 받아 얼음 보급을 준비 중이고 본격적인 여름이다 보니 장마철에 지저와 계약한 빨래 건조 서비스를 합의하에 당분간 중단하자고 통보받았고 영원정에서 납품받은 살충제가 오늘 도착 예정입니다."
"그래, 고생이 많았어. 다음 요사과장."
"네, 일단 3분기 진급 심사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리 요괴의 산의 유일한 정규군 집단이 경비부대이고 주민 융합령으로 종족, 신분과 상관없이 산의 주민과 능력대로 맞춰지다 보니 이번에도 엄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장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에 따라 산의 경비에 투입되는 병력의 수가 고무줄이 되다보니 저희 요사과 애들이 명단 만들고 보내느라 과로로 뇌세포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지원 나가서 삽질하다가 갑자기 끌려 나와 경비를 서는 대원들의 피로가 심합니다. 부대 실정과 유지를 위해 해야 할 작업보다 대원수도 많이 부족하고요. 이상입니다."
"아으.. 그건 이번 까마귀 일 해결되면 내가 굳이 나갈 일 없을 테니까 좀 참으라 그래. 도대체 캇파들은 서로 모여서 뭘 질질 끄는 거야. 우리 애들만 고생하잖아."
"일단 경리 부분에 있어서 오늘 대텐구님이 자금을 결제해주셔서 여분의 돈이 남습니다. 여기 예산사용 내역입니다. 남은 운용자금은 일단 대원들의 복지와 장비 수리에 쓸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요즘 더우니까 시원한 거라도 사서 먹여. 푹푹 찌는 날씨잖아."
"병기 과장입니다. 요즘 자동 감시장비들이 더위에 오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캇파 공병대에서 수리파견을 오기로 했습니다. 열 영상 감시장비 등 백랑텐구보다 카라스 텐구들에게 필요한 야간 감시장비들이 오늘 15개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캇파들이 만든 휴대용 신무기 16개가 들어왔습니다."
백랑텐구인 병기 과장이 양쪽에 기다란 창을 보여주자 모미지가 물었다.
"그냥 보기에는 창인데 신무기라고?"
"네.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창이지만 안에는 압축된 고압가스가 들어있어서 비상시에 이 레버 스위치를 당기면 가스의 반동에 창의 앞부분이 분리되어 튀어나가 목표물에 박히는 구조라고 합니다. 가연성이라 여름이라는 계절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서 소량만 들어오게 되었고, 가스가 남아있으면 운이 좋을 시 목표물에 박힌 상태에서 폭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근접용이면서 원거리도 되는 무기라더군요. 쏘고 난 후에는 봉으로 쓸 수 있고요."
"해괴한 것만 만들긴 하지만 어쩌면 쓸만할 수도 있겠군."
"그리고 비상시 및 확전 상황에 사용된 2급 기밀 무기들이 초소 무기고들에 대량 배치되었습니다."
"그래? 나중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지. 다음,"
"치안과장입니다. 요즘 축제를 앞두고 내부순찰 중 음주단속을 하지 않느냐는 주민인 선인의 항의가 들어와 어제 대원들이 순찰할 때 한 번 시범으로 해봤는데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전부 다 전과 때려야 할 수준이라 그냥 안 하려고 합니다. 내부 범죄 발생은 경범죄 말고는 크게 없지만요. 특히 이번에 외부 침입자가 발견되는 사례에 대해서 오늘 대텐구님께서 최고 경계태세를 발령했습니다."
"최고 경계태세면 아무래도 축제를 앞두고 '폭죽' 계획과 관련이 있는 건가?"
"네. 아무래도 축제때 '푹죽'을 쏘신다고 하셨고 무엇보다 경비대장님의 부재가 잦으신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아 골치 아파.. 아야 그 잡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까마귀 진짜." 모미지가 뒷목을 잡고 고개를 젖히자 과장들은 말없이 모미지를 바라보았다.
"1급 기밀 작전 명령서입니다. 열람 절차가 필요합니다." 작전과장이 퉁명스럽게 금속으로 된 박스를 올리고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열쇠를 꺼내어 한쪽 열쇠 구멍에 넣자, 모미지도 한숨을 쉬며 열쇠를 꺼내어 금속 박스의 반대편 열쇠구멍에 집어넣었다.
"숫자 세겠습니다."
"3."
"2."
"1!"
카라스텐구인 작전과장의 말과 동시에 둘이 열쇠를 당기자 박스의 케이스 한쪽 부분이 열리면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키패드와 지문, 홍채 인식창이 모습을 드러냈고. 모미지가 오늘 자신의 단말기로 송신받은 비밀번호를 입력 후 눈과 함께 지문을 인식하자 케이스가 완전히 열리며 명령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보자. 보안사항인 비밀문서랑.. 경비부대 직속 작전 명령서... 칩입자에 대한 심사 절차.. 응?"
모미지는 '폭죽 완성 후 비축중, 곧 축제'라고 뒤집힌 글자로 써진 1급 기밀과 다른 작전명령서를 읽다가
'최전방 2급 기밀 무기 배치, 교전 발생 시 방어선 함락 및 대텐구 허가 하에 사용 가능. 칩입자에 관하여 수하 거부-구금-불응 시 스펠카드룰에 따른 물리적 대응 지침으로 가되, 출입금지 구역 침입 및 수하 불응 시에 야간 및 목격자가 보이지 않을 상황에 관해선 자체 해결 가능할 경우, 척살하여 조용히 처리해도 무방.'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글을 잘못 읽었나 싶어 놀랐고 다음 장에는 산 내부에서 축제시 치안 작전 계획도 뿐만 아니라 산에서 외부 침공 발생 시 방어작전 외에 도발 원점 타격작전에 대한 훈련 및 작전계획 예시 몇 개와 작성요청이 담겨 있는 것에 기겁했다.
'치안과가 내부 방어를 맡고 전 병력을 투입하여 대텐구님 직속부대인 신속대응부대의 적 배후 파괴작전과 합동해 침략 지연 및 적 거점 타격작전??'
"최상부에서 올라온 작전 지령입니다. 눈으로만 읽으십시오." 작전과장이 무심히 말했다.
"허어.. 어.. 일단 명령이니까 바깥에 안 세어나가도록 이번에 바뀐 교전 수칙은 문서화 하지 말고 구전으로 다시 알려주고. 이번에 내가 시간 나는 대로 부대급 전술훈련이 있을 예정이니까 잘 알아두도록."
"네." 과장들이 대답하자 모미지는 놀라서 떨리는 손으로 작전계획서를 케이스에 담고 닫아서 자신의 열쇠를 뺀 뒤 말했다.
"자. 그럼 다들 해산."
다른 과장들이 결제할 서류를 나두고 돌아가는 가운데 작전과장은 자신의 열쇠를 케이스에서 뺀 후,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자리에 앉아서 꼿꼿한 자세로 모미지를 바라보았다.
"다이쇼기(大将棋 대장기)를 두고 계셨나 보군요."
"아, 내가 두는 걸 좋아해서 회의할 때 치우는 걸 깜빡했군."
"아닙니다. 놀라신 건 알겠지만 일단 저도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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