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보면서 좀 이상한 거 못 느꼈는가 말여."

"뭐,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이치린이 물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보믄 말여. 그렇게 싸우던 불교와 도교의 지도자가 서로 합의를 했다고 캤고. 교육의 조건이 붙긴 했지만은, 얘기는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적대시하던 강한 힘을 가진 수장급인 서로가 이렇게 얌전히 일개 텐구의 말을 따르고 있다는 건 말여. 뭔가 보이는 것 말고도 그 텐구에게 저당 잡힌 게 있거나 서로 얻는 게 있을 수 있단 말이제. 묘렌사에서 가르친다면서 외부 인사를 데려오는 것까지는 융통성 있게 넘어간다 치고, 특히 도교 측 수하가 불을 지른 것만 하더라도 엄연히 규정 위반에 해당할긴데 우리 쪽이 항의하고 심하면 도교 측이 합의했는데도 적대행위를 한다고 언급해버리거나 사과할 때까지 교류 중단까지 갈 수 있는 사건인디 그런 도발을 주지승이고 텐구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는 건 이 교육이 진행되는 게 서로에게 중요함과 동시에 무언가 밑바닥에 미리 약속되었거나 더 중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아닌가 하는디 말여."

"뭔가 수상하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왜 아까 교육할 때 말을 하지 않고 우리에게 말하는 건데?"

나즈린이 따지자 마미조가 말했다.

"그래, 그건 말여. 내도 솔직히 이 교육이 멘레이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께 말이제. 아까 보니 확실히 멘레이키 요괴의 정체성을 찾아줄 좋은 교육이니까 계속 진행되는 거슨 '대승적 차원'도 있고 또 '한 요괴의 생에 큰 발전을 줄 도움 되는 일'이니까 말잉게. 도교 측이나 저 멀리 요괴의 산과 모리야 신사까지 얽혀있으니 확실하지 않으면 판을 건드렸다 우리만 피보는 것이니 말여."

"아, 그래서 아까부터 그랬었구나. 그럼 우리를 부른 건?"

"이 뒷배경에 좀 확실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구먼. 나와 누에가 알아봐도 되긴 하지만 능력상 둘이 더 붙으면 더 정확하면서 효과적이고 빠를 거라고 생각이 드니께. 그래서 확실한 물증이 나올 때까지 알아만 보고 끝내서 우리만 알게 말여."

"지금 자기만의 억측일 수도 있는 가정을 입증하려고 우릴 부른 거란 말이야?"

"근데, 솔직히 도교 것들이랑 그렇게 싸우다가 갑자기 얽히는 것도 이상하고 내가 봐도 텐구가 수상하긴 하지만, 음."

이치린과 나즈린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자 마미조가 말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제. 우린 그저 그 돌다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안전하긴 한 건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니 말여. 이렇게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 자체는 품위 있고 고상하겠쓰나 오래 갈등하며 싸우던 둘이서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히 마주 보고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배경과 그 테이블을 마련한 텐구네가 그저 자신들과 그동안 상관없던 양쪽의 외교적 해결이라는 겉치레 말고도 뭔가 챙기려 할 꿍꿍이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는 보고 이를 덮을지 꺼낼지는 그때 해도 늦지 안응께 조용히 뒤에서 캐보기는 해보자는 거제. 그 정도는 누구나 인과적으로 궁금할 수 있는게고 우리에게 약인지 독인지 분명히 하자는 거구먼."

"그럼 이 일이 어떻게 마련된 것인지, 더 나아가 요괴의 산 쪽이랑 아야에 대해서도 뒷조사를 해볼 필요도 있는거네?"

누에가 말하자 마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가설은 일리는 있긴 한데 왜 굳이 우리야. 다른 애들도 많잖아."

이치린이 따지고 나즈린도 다우징 봉을 만지작거리며 불평하자 마미조가 말했다.

"이 일은 워낙 보는 눈이 많아서리 꼬투리 안 잡히려면 적절한 능력을 갖춘 최소 일행으로 조용히 알아보고 끝내야 하니께. 쿄코와 코가사는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애들이니께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쿄코는 특히 말을 잘 따라하다보니 둘 다 다 티가나서 텐구가 조사하면 쉽게 밝혀질 것이구먼, 미나미츠는 책임감 있고 적극적이고 털털하지만 이 일에 도움되는 능력은 일단 아닌 데다가 너무 즉흥적이라서 친해지거나 분위기에 빠지면 자기도 모르게 이 사실을 흘릴 수도 있제, 쇼는 평소에는 감정적이라 자기 멋대로 하지만 속은 따뜻하고 착한 데다가 비사문천의 화신이란 자부심이 있어서 양심의 가책에 찔리는 일은 자기가 못할 것잉게, 그러니께 남은 대상 중 나즈린 자네는 쥐들의 수장인 만큼 무언가를 탐색하는 그 능력으로 텐구가 뭘 남겨놓거나 숨기는 게 있는지 쥐들을 풀어 탐색해보거나 주변을 살피면서 요괴의 산 쪽이나 도교 쪽과 엮인 모든 부분을 은밀히 탐문해보고, 이치린 자네는 맹우인 운잔을 통해서 몰래몰래 도교 쪽 및 요괴의 산, 모리야 신사와 관련된 모든 쪽을 조사해보고, 스스로 소문이나 배경을 한번 알아봐 주게나. 누에와 나는 둘 다 변장과 정체 숨기기에 능하니께 재주껏 알아보도록 하제. 이 일은 무엇보다 말여, 적절한 역할과 능력으로 '확실한 증거 수집'이 목표이니께 말이제."

"음, 솔직히 지금까지 텐구가 자기 기삿거리 만들려고 어떻게든 언니랑 도교 잔챙이를 꼬신 건 줄 알았는데요. 와서 하는 짓도 사진찍기에 급급했잖아요. 하지만 듣고 보니 확실히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조사하다 아니면 우리끼리 마는 거고 뭔가 확실히 나와서 잡으면 우리 쪽이 주도권을 쥐는 거니까요."

이치린이 고개를 끄덕이는 운잔을 보며 말하자 누에도 자신의 삼지창의 끝부분을 바닥에 대고 두 손으로 비비듯 돌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계획을 언급하는 걸 보면 그럴만한 확신이 있는 것 같은데?"

나즈린이 쥐 한 마리를 꺼내 마미조가 말한 내용을 복창시키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마미조를 보며 말하자, 마미조도 안경을 닦으면서 민얼굴로 나즈린을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내는 이 일이 기자 텐구가 도우미 텐구를 끼고 혼자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요괴의 산과 모리야 신사가 집단으로 끌고 가는 일이라고 보이네. 이 합의의 규모는 누가 봐도 그 정도만 하니께 말여. 아무리 모리야 신사네가 생각이 없다 해도 '인기'에 연연하는 만큼 자기 신사의 이름이 걸린 일에 순전히 우발적으로 텐구 두 명에게 알아서 해보라고 대충 권한 다 주고 발 걸치듯 참여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내가 알기론 저 도우미를 하던 백랑텐구는 자신의 능력으로 경비서는 일을 맡고 있다고 들었는데 침입자가 들어올 수 있는 걸 감수하고 안위를 책임지는 경비를 도우미로 내줬다는 건 요괴의 산에서도 솔직히 종교끼리의 일이라 상관없는데도 불구하고 떡고물이 떨어질 만 하니께 이 일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이제. 게다가 저 백랑텐구가 천리안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네만 그 멀리서도 한눈에 다 볼 정도면 우리 가까이에 있게 되는 건 우리의 행동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감시할 수 있다는 게 되고 거기에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을 찍을 텐구까지 붙여졌으면 의심이 들 수밖에 없제."

"하긴 텐구놈들은 꾀가 좀 많으니까 확실히 뒤에 배경이 있을 거 같긴 하네요. 아니면 정말 평화에 눈을 뜬 거겠죠."

이치린이 피식거리며 비웃는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솔직히 그럴 리가 없잖아. 환상향에서는 느긋한 거 아니면 서로 싸우기 바쁜데. 나도 친구로서 도와줄게!"

누에가 마미조의 등 뒤로 다가와 팔로 목덜미를 감싸며 껴안자, 마미조가 안경을 닦으면서 놀랐으나 이내 바로 미소를 지었다.

"일단 후타츠이와 씨 말대로 내일부터 운잔을 데리고 이 일의 진위와 배경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나도, 쥐들 풀어서 알아보도록 할게. 일단 요괴의 산과 아야와 관련된 것들부터 시작해야겠어."

"그럼 나도 변장해서 인간마을이나 요괴의 산, 신령묘쪽에 잠입해서 정보를 모을게."

"마찬가지구마이. 누에, 일단 어떤 원인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인과관계를 확실히 알아보고자 하는 일이니 뒤에서 캐는 이 일을 주지승이 알면 분명 훈계할 터이니 일단 조용히 정보와 증거를 수집하고 모아보자 하구먼."

"좋아. 확실히 서로 정보를 모으고 경과와 함께 성과가 있으면 의심받지 않을 시간에 따로 언급된 장소에 모여서 이야기하자고."

누에가 몸을 앞으로 쏠면서 마미조가 닦는 안경의 반대쪽에 입김을 불어 놓는 장난을 계속 치자, 마미조가 낄낄거리며 안경을 천으로 계속 닦은 후 누에에게 장난으로 자신의 안경을 씌어주었다.

"이 시간이면 다들 자니까 적당할 것 같네요." 누에의 말에 이치린이 대답했다.

"뭐, 나는 어차피 무연총에서 살다가 이 일 때문에 뱌쿠렌이 끌고 와서 절의 한 방이 잠시 거처가 되어버렸으니까 나도 괜찮아."

나즈린이 그렇게 말하자 이치린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한데, 언니도 뒷조사해야 하는 건가요? 솔직히 그건 좀 꺼림칙한데." 이치린이 껄끄러운 표정을 짓자 나즈린도 동의하듯이 슬쩍 마미조를 쳐다보았다.

"알아는 봐야겠제. 정황을 확인하는 게니 글케 괘념치 말어."

"그럼 서로 합의는 다 끝났으니 내일부터 운잔과 함께 일하도록 하죠."

"수상한 것에 대해 알아보는 일이니까 일단 주인 모르게 협조하도록 할게."

여전히 누에에게 안긴 마미조가 담뱃대를 꺼내 고개를 끄덕이고 둘이 눈치를 보며 방문을 나서자, 담배는 피우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담뱃대로 툭툭 바닥을 치던 마미조에게 안경을 쓴 누에가 물었다.

"이거 생각보다 도수가 있는 거라고 해야 하나. 근데 마미조. 담배 안 펴?"

"잠시 담배에 기대지 않고 내 두 눈 그대로 깊게 생각 중이구먼."

"그래? 근데 마미조.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말해보거레이."

누에는 껴안은 마미조의 볼에 자신의 귀에 걸쳐진 안경의 다리와 자신의 볼을 기대면서 속삭였다.

"그냥 이 일 수상하면 남들 모르게 깽판 치고 끝내버리면 안 돼? 그러면 어차피 그 전이랑 똑같잖아."

"그건 안돼제. 엄연히 멘레이키가 잘 배우고 있고, 그걸 쫑내는 것은 말여, 멘레이키의 복을 우리가 걷어차는 것이니 말이니께. 애당초 서로 싸우던 대상들이 멘레이키를 통해 대화로 풀어가는 분위기 자체도 나쁜 일은 아니지먼 뭔가 우리에게 해가 될 꿍꿍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하니께 지금 정보를 얻는 데는 일가견 있는 쟈들을 보탬이 되라고 부른 것이니 말여."

"그렇구나. 그럼 마미조?"

"그려. 누에여."

"이러고 좀만 더 있어도 돼?"

"가까이 붙으니 덥긴 해도 좋으면 즐겨야제. 근데 말여."

"응."

"껴안는 대가로 네가 안경 좀 씌어 주거레이."



PM 10시 요괴의 산


마미조와 누에 서로의 웃음과 함께 밤은 무르익었고 공중에서는 아야와 모미지가 말다툼을 넘어 서로를 욕하면서 요괴의 산 출입통제소에 같이 도착한 뒤, 야시장비를 낀 카라스텐구와 검이나 창을 들이댄 백랑텐구 경비대원들의 출입심사와 함께 경례를 받았고, 신난 기분으로 먼저 마을로 들어간 아야와는 달리 경비대장답게 대원들의 근황과 있었던 상황을 물어보고 계속 시간을 때우다가 전등이 환히 켜진 출입 통제소와 산의 주변, 망루에서 침입자를 감시하기 위해 돌아가는 탐조등과 빛에 취해 몰려드는 나방과 같은 잡다한 벌레 무리, 밝게 빛나는 가로등이 설치된 모리야 신사로 통하는 참배로를 늦은 밤에도 오가는 신사객들을 바라보던 모미지는 그냥 멍하니 서서 출입심사를 받고 가는 신사객들의 말들을 들었다.

"산 입구에서 모리야 신사로 가는 길이 엄청나게 좋아졌어. 날이 더워서 올라가면 땀을 뻘뻘 흘리긴 해도 말이야. 우스운 이야기지만 텐구 요괴들이 지켜주고 있고 늦은 밤인데도 이렇게나 밝아서 산에서는 다른 요괴의 습격을 받을 위험도 없고. 정말 감탄이 나와. 믿을 수가 없어."

"신들도 그렇고 무녀가 용하잖아요. 이변이란 이변은 물론 요괴들 등쌀을 곧바로 해결하기로 명망이 높으니 우리가 그나마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덕을 많이 보았죠. 오죽하면 요괴들도 신앙에 탄복해서 이렇게 길을 놓았다잖아요. 인사나 드리고 신앙과 함께 복을 빕시다."

그들의 말을 들은 모미지는 대텐구의 명령으로 정상에서부터 삽질하면서 저 참배로의 계단을 놓고 가로등을 들고 하나하나 캇파와 함께 전선을 연결한 후, 지중화[각주:1]하며 설치한 자신과 대원들의 작업과정이 생각나 치를 떨면서 떨쳐내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7월 22일 금요일 22시 3분, 카엔뵤 린 입산."

탠구 경비대원이 검문을 마치고 일지기록을 끝내자마자 수레를 밀면서 달려가던 카엔뵤 린이 모미지를 슬쩍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어? 텐구 언니. 안녕."

"응, 안녕?"

"언니 밤에서도 경비서는 거야?"

"아니, 뭐 그냥 오늘 하루 헛짓거리하다가 멍때리고 있어. 넌 밤에도 오니?"

"응. 시체 수거는 부지런해야 하거든! 밤에는 다른 경쟁자들이 활동하니까 말야!"

싱글벙글 웃는 린을 멍하니 보던 모미지가 자신의 옆 머리를 다듬으면서 말했다.

"그 수레에 담아가게?"

"응! 오늘도 가득 담아갈 거야!"

린이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는 사이, 다른 경비대원이 큰 포장수레를 대충 확인하고 통과시키는 것이 모미지의 시야에 들어왔다.

"잠깐! 니들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정지해!"

단호한 모미지의 말에 경비대원들이 당황하고 수레를 끌던 텐구가 급하게 수레를 멈추고는 어색한 미소로 모미지에게 다가왔다.

"뭐야? 규정에 확인도 안 해보고 산 안으로 들여오게 되어있나?"

"대텐구님 명으로 작전수행 중입니다."

"응?"

모미지가 황당해 하며 천리안으로 수레의 안을 투시하자,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게 검은 복장과 오니가면을 쓰거나 가면을 벗고 입가에 달린 기계장치를 그대로 끼고서 피곤한지 앉아서 쉬고 있는, 누가봐도 각종 장비와 무기로 중무장한 몇몇 무리가 빙빙 포장된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모미지의 시야에 들어왔다.

"소속이랑 화물이 뭐지."
"신속 대응부대 특수작전수행반 소속입니다. 그 외엔 전부 보안사항입니다."

"하아, 통과."

 모미지가 길을 터주자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수레를 끌며 등산로로 올라가고 린은 가만히 멈춰서 그들이 끄는 수레를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대텐구님 직속부대가 왜? 뭐 알고 있는 요괴 있나?"

"모르겠습니다. 연락은 있었지만, 경비대장님이 무전기가 없으셔서 보고 못 했습니다."

"알았어. 좀 당혹스럽군."

"그럼 나도 올라가 볼게. 텐구 언니." 

"그래, 바쁠 텐데 수고해."

"그럼 언니, 안녕~ 빠빠이."

인사를 마치고 적적한지 주변을 산책하듯 몇 번 돌아보던 모미지는 집으로 돌아와 토킨[각주:2]을 벗고 검을 거치대에 조심스럽게 놔둔 후, 기다려도 하타테가 소식이 없어서 찾아갈까 생각하다가 연락을 줄 거라고 생각하고 필름을 장롱의 깊숙한 곳에 다른 옷과 함께 싸서 숨겨놓고는 쇼기판과 쇼기말을 꺼내 혼자 쇼기를 연구하다가 피곤함에 취해 이부자리를 피고 잠들었다.



7월 23일 토요일 AM 8시 요괴의 산 (교육 2일차)



해가 뜬 다음 날, 펌프에서 받은 지하수로 머리를 감고 어제 입은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고 디자인만 같은 다른 옷을 옷장에서 꺼내 입고서 검을 찬 후, 경비대장 계급장을 들고 출입 통제소로 출근한 모미지는 상황판에서 자신의 일정을 확인했다.

"산 안에서 단결!"

부관의 경례를 받아 준 모미지가 냉철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황판 보니까 왜 어제 우리 경비부대에 대원들이 갑자기 많아졌다가 오늘은 사라졌어?"

"아, 그건 천리안이신 경비대장님이 없으시니까 4면 방위에 그만큼 병력이 들어갈 수밖에요. 대장님이야말로

우리 산 최고의 감시원이시잖아요."

"하유, 그게 이젠 감투를 써도 굴려지는 건 똑같으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남는 병력 지원이랑 자리 마련해줄 요사과(妖事課) 애들, 머리 깨지겠는데."

"네. 죽어 나가던데요. 힘세고 일 잘하는 병력 지원요구에 혈안이 된 캇파 공병대에 내부 수사와 순찰을 하는 치안과 등 여기저기서 요구 중이니까요.

경비대장실로 부관과 함께 걸어가며 대화하던 모미지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말했다.

"하여튼 아야 그 망할 까마귀 때문에 이 고생이야!"

"정말, 그렇게 하고도 무사한 게 다행이네요."

"내 말이!" 한숨을 길게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부관의 말에 모미지가 맞장구쳤다.

한숨을 길게 쉰 모미지가 부관을 보내고 경비대장실 안에서 벽에 붙은 삼각형의 꼭짓점에서 내부 중심을 향해 각각 화살표 3개가 모여져 있고 아래에 슬로건으로 '산 안에서 단결'이라고 적힌 관영 포스터 옆의 책장에서 쇼기를 꺼내 혼자 둬가며 연습을 하자, 시간이 지난지 오래되지 않아 부대 회의를 위해 보급과, 요사과, 경리과, 병기과, 치안과, 작전과 관련 과장들이 서류를 들고 경비대장실을 찾았다.

"산 안에서 단결!"

모미지가 경례를 받고 회의용 테이블에 앉자 각 과장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23일 토요일 오전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 보급과장부터 보고해."

"네, 경비대장님. 일단 부대 내에 지하수로 확장 공사로 캇파 공병대 지원파견이 많아서 평균 부대 내 병력을 산출하여 술을 주문해 오늘 받아서 창고에 쟁여 놓았습니다. 부대 내 술 보급은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안줏거리등도 보급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날씨가 여름이다 보니 요정의 도움을 받아 얼음 보급을 준비 중이고 본격적인 여름이다 보니 장마철에 지저와 계약한 빨래 건조 서비스를 합의하에 당분간 중단하자고 통보받았고 영원정에서 납품받은 살충제가 오늘 도착 예정입니다."

"그래, 고생이 많았어. 다음 요사과장."

"네, 일단 3분기 진급 심사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리 요괴의 산의 유일한 정규군 집단이 경비부대이고 주민 융합령으로 종족, 신분과 상관없이 산의 주민과 능력대로 맞춰지다 보니 이번에도 엄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장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에 따라 산의 경비에 투입되는 병력의 수가 고무줄이 되다보니 저희 요사과 애들이 명단 만들고 보내느라 과로로 뇌세포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지원 나가서 삽질하다가 갑자기 끌려 나와 경비를 서는 대원들의 피로가 심합니다. 부대 실정과 유지를 위해 해야 할 작업보다 대원수도 많이 부족하고요. 이상입니다."

"아으.. 그건 이번 까마귀 일 해결되면 내가 굳이 나갈 일 없을 테니까 좀 참으라 그래. 도대체 캇파들은 서로 모여서 뭘 질질 끄는 거야. 우리 애들만 고생하잖아."

"일단 경리 부분에 있어서 오늘 대텐구님이 자금을 결제해주셔서 여분의 돈이 남습니다. 여기 예산사용 내역입니다. 남은 운용자금은 일단 대원들의 복지와 장비 수리에 쓸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요즘 더우니까 시원한 거라도 사서 먹여. 푹푹 찌는 날씨잖아."

"병기 과장입니다. 요즘 자동 감시장비들이 더위에 오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캇파 공병대에서 수리파견을 오기로 했습니다. 열 영상 감시장비 등 백랑텐구보다 카라스 텐구들에게 필요한 야간 감시장비들이 오늘 15개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캇파들이 만든 휴대용 신무기 16개가 들어왔습니다."

백랑텐구인 병기 과장이 양쪽에 기다란 창을 보여주자 모미지가 물었다.

"그냥 보기에는 창인데 신무기라고?"

"네.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창이지만 안에는 압축된 고압가스가 들어있어서 비상시에 이 레버 스위치를 당기면 가스의 반동에 창의 앞부분이 분리되어 튀어나가 목표물에 박히는 구조라고 합니다. 가연성이라 여름이라는 계절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서 소량만 들어오게 되었고, 가스가 남아있으면 운이 좋을 시 목표물에 박힌 상태에서 폭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근접용이면서 원거리도 되는 무기라더군요. 쏘고 난 후에는 봉으로 쓸 수 있고요."

"해괴한 것만 만들긴 하지만 어쩌면 쓸만할 수도 있겠군."

"그리고 비상시 및 확전 상황에 사용된 2급 기밀 무기들이 초소 무기고들에 대량 배치되었습니다."

"그래? 나중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지. 다음,"

"치안과장입니다. 요즘 축제를 앞두고 내부순찰 중 음주단속을 하지 않느냐는 주민인 선인의 항의가 들어와 어제 대원들이 순찰할 때 한 번 시범으로 해봤는데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전부 다 전과 때려야 할 수준이라 그냥 안 하려고 합니다. 내부 범죄 발생은 경범죄 말고는 크게 없지만요. 특히 이번에 외부 침입자가 발견되는 사례에 대해서 오늘 대텐구님께서 최고 경계태세를 발령했습니다."

"최고 경계태세면 아무래도 축제를 앞두고 '폭죽' 계획과 관련이 있는 건가?"

"네. 아무래도 축제때 '푹죽'을 쏘신다고 하셨고 무엇보다 경비대장님의 부재가 잦으신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아 골치 아파.. 아야 그 잡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까마귀 진짜." 모미지가 뒷목을 잡고 고개를 젖히자 과장들은 말없이 모미지를 바라보았다.

"1급 기밀 작전 명령서입니다. 열람 절차가 필요합니다." 작전과장이 퉁명스럽게 금속으로 된 박스를 올리고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열쇠를 꺼내어 한쪽 열쇠 구멍에 넣자, 모미지도 한숨을 쉬며 열쇠를 꺼내어 금속 박스의 반대편 열쇠구멍에 집어넣었다.

"숫자 세겠습니다."

"3."

"2."

"1!"

카라스텐구인 작전과장의 말과 동시에 둘이 열쇠를 당기자 박스의 케이스 한쪽 부분이 열리면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키패드와 지문, 홍채 인식창이 모습을 드러냈고. 모미지가 오늘 자신의 단말기로 송신받은 비밀번호를 입력 후 눈과 함께 지문을 인식하자 케이스가 완전히 열리며 명령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보자. 보안사항인 비밀문서랑..  경비부대 직속 작전 명령서... 칩입자에 대한 심사 절차.. 응?"

모미지는 '폭죽 완성 후 비축중, 곧 축제'라고 뒤집힌 글자로 써진 1급 기밀과 다른 작전명령서를 읽다가

'최전방 2급 기밀 무기 배치, 교전 발생 시 방어선 함락 및 대텐구 허가 하에 사용 가능. 칩입자에 관하여 수하 거부-구금-불응 시 스펠카드룰에 따른 물리적 대응 지침으로 가되, 출입금지 구역 침입 및 수하 불응 시에 야간 및 목격자가 보이지 않을 상황에 관해선 자체 해결 가능할 경우, 척살하여 조용히 처리해도 무방.'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글을 잘못 읽었나 싶어 놀랐고 다음 장에는 산 내부에서 축제시 치안 작전 계획도 뿐만 아니라 산에서 외부 침공 발생 시 방어작전 외에 도발 원점 타격작전에 대한 훈련 및 작전계획 예시 몇 개와 작성요청이 담겨 있는 것에 기겁했다.

'치안과가 내부 방어를 맡고 전 병력을 투입하여 대텐구님 직속부대인 신속대응부대의 적 배후 파괴작전과 합동해 침략 지연 및 적 거점 타격작전??'

"최상부에서 올라온 작전 지령입니다. 눈으로만 읽으십시오." 작전과장이 무심히 말했다.

"허어.. 어.. 일단 명령이니까 바깥에 안 세어나가도록 이번에 바뀐 교전 수칙은 문서화 하지 말고 구전으로 다시 알려주고. 이번에 내가 시간 나는 대로 부대급 전술훈련이 있을 예정이니까 잘 알아두도록."

"네." 과장들이 대답하자 모미지는 놀라서 떨리는 손으로 작전계획서를 케이스에 담고 닫아서 자신의 열쇠를 뺀 뒤 말했다.

"자. 그럼 다들 해산."

다른 과장들이 결제할 서류를 나두고 돌아가는 가운데 작전과장은 자신의 열쇠를 케이스에서 뺀 후,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자리에 앉아서 꼿꼿한 자세로 모미지를 바라보았다.

"다이쇼기(大将棋 대장기)를 두고 계셨나 보군요."

"아, 내가 두는 걸 좋아해서 회의할 때 치우는 걸 깜빡했군." 

"아닙니다. 놀라신 건 알겠지만 일단 저도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요."


  1. 地中化: 땅속에 묻음 [본문으로]
  2. 頭襟 일본의 원시 신앙과 밀교가 혼합된 슈켄도의 복식 중 하나로 텐구들이 주로 쓰는 각진 모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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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정이라는 건 지금 느끼고 있는 기분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알겠죠?"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느낀 감정들은 그것이 동기가 되어 생각하는 사고와 행동으로 나타나게 돼요. 예를 들어 흥미에 대한 감정을 느끼면 탐색을 하게 되고, 자부심을 느끼면 더 큰 목표를 잡고 활발해지게 되고, 감사함이나 고마움과 같은 감정을 느끼면 더 사회적으로 친숙해지게 되며, 기쁨을 느끼면 더 즐기며 놀게 되고, 멋짐이나 우아함을 느끼면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고, 분노의 감정을 느끼면 그 대상을 공격하게 되며, 공포의 감정을 느끼면 도피하게 되고, 혐오감을 느끼면 그것을 추방하거나 제거하며, 죄책감을 느끼면 마음을 고쳐잡게 되고, 수치심을 느끼면 사라지려 하고, 슬픔을 느끼면 모든 상황에서 철수하려는 경향들이 나타나죠.[각주:1]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사고-행동 경향성이라고 하지만 어려우니까 감정이 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다는 것 정도만 알면 돼요. "

케이네는 숨을 한번 고르다가 급하게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엄연히 '경향'이니까 꼭 이 감정이면 꼭 이 행동이 나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두어야 해요. 이렇게 느낀 감정들은 지금 내가 처한 환경에서 스스로가 사회적, 내면적, 생리적으로 적절한지 점검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주된 기능이에요."

"어렵네."

코코로가 원숭이 가면으로 축 늘어지자 다들 잘 모르겠다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케이네도 코코로의 반응을 보고 곤란한 말투로 안쓰러워하기 시작했다. 

"훈장님이 코코로 학생에게 미안해. 내가 좀 설명이 재미없는 걸로 유명하거든. 많이 졸렸니?"

"응, 그래도 무슨 말인지는 정말 대충 알겠어."

"구나마 다행이구마이." 마미조가 난처한 기색으로 말을 흘렸다.

"훈장님이 그래도 가르치는 스승답게 박식하셔서 보기 좋네요."

뱌쿠렌도 말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곤란한 표정으로 대하자, 지켜보던 모미지는 그냥 원래부터 자리에 있는 거 자체가 불편해서 난감해하고 나머지도 당혹스러워하는 어정쩡하던 분위기는 아야가 이러면 기사에 사진빨이 안 나온다고 곤란해하여 할 수 없이 코코로가 자세를 고쳐잡으면서 바로 잡혔다.   

"흠, 흠! 그럼 수업 계속할게요. 할 이야기가 많아 일관성없이 늘어지는 건 이해해주시고요. 음. 감정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는 이야기했고. 근데 코코로 학생은 확실히 이해가 된 거죠?"

"응! 진짜야!"

코코로가 여자가면으로 손을 번쩍 들며 외치자, 나즈린이 반사적으로 쿄코의 입을 막았다.

"저기. 훈장님. 아까부터 감정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솔직히 말씀이 잠 올 정도로 너무 어려우니까 그냥 감정이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해 주시는 건 어떨까 싶은데요. 전."

무라사의 건의사항에 케이네가 골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그래요! 좋은 건의사항이에요. 일단 감정에 관련된 단어는 하나하나가 꾸며주는 형용사인 만큼 명확하지 않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면이 많아요. 그만큼 단정 짓기도 어렵고 복잡하다는 거죠. 게다가 우리는 지금 느끼는 감정 등을 표현하기 위한 이런 형용사들을 사용해 글과 말로 표현하거나 표정으로 이를 드러내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소통을 해요. 대화와 마찬가지로 코코로 학생의 가면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어요." 

코코로가 경청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후토와 누에, 이치린, 쇼도 귀 기울여 듣는 동안 아야는 혼자 신나서 셔터를 쾌속으로 눌러댔고 모미지는 아야가 정신 팔려 있을 때 또다시 필름을 갈다가 소맷자락에 숨겨둔 필름으로 바꿔치기했다.

"다만 이게 무척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보니까 정작 그 의미가 맞는지, 정확하게 나도 이해하고 상대방도 이해하도록 표현하고 있는지도 무척 어려운 거죠. 감정에 대한 형용사만 하더라도 '귀찮은, 권태로운, 기분 나쁜, 기운 빠진, 난처한, 공허한, 거북한, 답답한, 마음이 안 놓이는, 시무룩한, 어안이 벙벙한, 아연실색하는, 위축된, 주눅이 든, 민망한, 싫증 나는, 속상한, 맥 빠진, 무기력한, 시큰둥한, 넌더리 나는, 권태로운, 단조로운, 찜찜한, 초조한, 중압감을 느끼는, 허탈한' 등과 같이 사람이고 요괴고 축 처지고 힘든 감정을 비롯해서 '도취한, 기운이 나는, 기분 좋은, 고양된, 명랑한, 격양된, 낙관하는, 만끽하는, 원기 왕성한, 생기 있는, 안심되는, 열렬한, 몰입한, 만족하는, 벅찬, 들뜬, 쾌활한, 통쾌한, 행복한, 힘이 넘치는, 발랄한' 과 같이 신나게 하고 들뜨게 하는 표현 등 가지각색인데, 상황과 의미에 따라 긍정이냐 부정이냐에서 또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내가 겉으로 표현하고 있는 감정이 어떤 기분의 감정인지, 또 상대는 어떤 기분의 감정인지를 유추하고 표현해보거나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어요."

코코로가 케이네의 설명에 가면들을 빙빙 돌려가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볼을 긁적였다.

"그러므로 코코로 학생처럼 다양한 감정이 있는 요괴가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감정을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고 자신의 직, 간접적으로 문제와 관련이 되는 감정에 대해 바꿀 수 있도록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어요. 문제 되는 조건을 바꿔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은 남긴 하겠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솔직히 저게 지금 코코로 씨를 가르치는 이유 중 핵심이에요." 아야가 옆에서 껴들었다.

"의미는 정말 좋네요." 쇼가 웃으며 말하자 근처에 있던 있던 코가사나 쿄코, 나즈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능력이 나를 이해하고 남을 도울 수도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감정은 어떻게 해야 세져?"

"감정이 세진 다라.. 감정은 사실 세진다는 개념이 아니라서 코코로 학생, 잠시만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생각해 보고요."

"그야 화나고 빡치면 눈이 뒤집힐 정도로 감정이 폭발해서 엄청 세지잖아."

"그건 그냥 분노표현이잖아요. 음... 생각 중이니까 잠깐만요."

누에가 너스레를 떨자 망설이던 케이네가 제지했다.

"악을 멀리하고 속세에 얽매이지 말며 충동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절제하여야 하네!"

"감정을 절제하여야 해요!!!!" 후토의 말을 쿄코가 되풀이했다.

"놀라면 세지니까 누가 놀래키면 크게 놀라면 돼!"

"코가사 씨. 약 팔지 마세요." / "약 팔지 마세요!!!!"

"결국 감정을 이해하고 느끼고 잘 표현하는 게 코코로 양의 감정이 발전하는 길인 거군요."

뱌쿠렌이 특유의 인자한 웃음으로 케이네에게 말했다.

"음.. 네, 그게 적절하겠네요, 주지승님. 너의 능력을 잘 활용하는 길이 네가 강해지는 길일 테니까."

"좋아! 그럼 열심히 배울래! 얼른얼른 단련해서 최강이 되어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무찔러주겠어!"

"아하핫. 와, 얘 승부욕 하나는 대단한데!" 누에가 코코로를 가리키며 웃자 마미조가 병쩌진 주변 분위기를 살피며 친구의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우리 잘하고 있는 거 맞는지 모르겠네."

"글쎄요." 팔짱을 낀 나즈린의 한심스러운 푸념에 쇼가 눈을 깜빡이며 응답했다.

"나에게 배우는 학생치곤 드물게 수업에 참여하려는 열의가 대단하구나! 졸지도 않고 열심이라서 이 훈장님은 감격스러워."

케이네가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지 글썽거리는 눈물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얼굴을 붉히자 아야가 셔터를 누르면서 손수건을 건넸다.

"훈장님, 괜찮으신지."

"네, 괜찮아요. 훌쩍. 믿을 수가 없어요. 맨날 2~3교시 넘어가면 애들 허리가 고꾸라지고 눈이 풀어지는 역사만 보다가 이렇게 표정부터 자세까지 한결같은 학생은 간만이라 훌쩍, 더 잘 가르쳐주고 싶네요."

흐느끼는 케이네의 말에 코코로는 방화범을 닮은 가면과 큰 코를 가진 텐구의 가면을 번갈아 보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참, 분노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았는데 그 방면을 잘 아는 지음[각주:2]이 있으니 그쪽에서 배우는 게 좋겠구나. 그럼 계속 수업해야겠지. 이론은 되었으니 아까 했던 것처럼 부르는 감정에 따라 가면과 함께 어떤 감정이 들고 표현하는지 명확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막막한'을 표현해 보겠니?"

손수건을 고이 접어서 아야에게 돌려준 케이네가 붉어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묻자 코코로가 머리를 긁적이며 가면을 빙빙 돌려가면서 곤란할 때 쓰는 원숭이 가면을 내보였다가 뭔가 아니다 싶어 가면들을 하나하나 내보면서 망설여 하고, 모미지가 필름을 갈아 준 카메라로 셔터를 여전히 광속으로 눌러대며 희희낙락하는 아야와 대조적으로 모미지의 얼굴에는 심드렁함이 가득했다. 

"음.. 에휴, 뭐로 고르지."

가면을 빙빙 돌리던 코코로가 답답한지 주먹을 쥔 두 손을 허리에 대고 한숨을 쉬었다.

"와, 코코로 학생이 잘 표현하고 있네요.

"에? 진짜?" 케이네의 말에 코코로가 당황하며 외쳤다.

"그럼요. 가면의 요괴라고 꼭 가면을 내야만 감정이 표현되는 게 아니니까요. 무엇을 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을 가면을 돌려가며 망설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잖아요. 코코로 학생의 가면을 우리의 표정이라고 친다면 표정이 가장 확실히 감정을 알 수 있는 창이긴 하나 행동, 말투, 모습, 기분 등으로도 얼마든지 세세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요."

"아, 아!! 그럼 난 너무 가면에 연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 막막함은 확실히 알겠어."

"확실히 보는 나도 막막한 심정이 들어." 무라사의 말에 다들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나 요괴가 감정을 표현할 때 표정이나 행동들을 관찰해보는 것도 좋아요.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이 느낌을 하는 만큼 감정은 충분히 교감하고 공유될 수 있으니까요. 다음 감정은 의기양양한."

코코로가 인자한 미소의 노인 가면을 보이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다음은, 질투나는."

코코로는 고개를 젖힌 뒤, 분노할 때 쓰는 반야의 가면으로 팔짱을 꼈다.

"지금 코코로 학생은 어떤 기분이 들어요?"

"음! 빡쳐!" 아야의 질문에 코코로가 언성을 높였다.

"질투해 본 적이 있어요?"

"딱히 없는데! 그냥 상대에게 화내는 거 아냐!"

"아야 씨. 그거 기사 가십거리란에 쓰시려고 물어보는 거죠?" 방심을 틈탄 쇼의 말에 아야만 빼고 다들 웃음이 터지자, 아야가 성을 내며 말했다.

"아니거든요!!! 중요한 거라고요!! 질투란 질투를 유발하는 상대가 있는 법! 그 상대가 나를 봐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있을 수 있고 나와 언제나 함께 있어 주길 바라는 소유욕이 있을 수 있고 나에게 마음이나 관심을 주지 않는 상대나 상대가 관심을 주는 나 아닌 다른 상대에게 미움과 안타까움이 있을 수 있는 거라고요. 복합적으로는 애정과 미움이 섞여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엄청 복잡해. 가면을 두 개 낼 수는 없잖아." 코코로가 난감하고 당혹스러울 때 쓰는 원숭이 가면에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가면에 연연하지 말고 그런 감정들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상대는 어떻게 느껴질 수 있는지 공감하자는 거죠."

"갈등을 잘 일으키는 양가감정이기도 하죠." 케이네가 곁들였다.

"표정이 안 되면 그냥 볼에 바람 가득 채우고 정면 쳐다보는 건 어때!!"

코가사의 느닷없는 말에 따라 코코로가 여전히 팔짱 낀 상태로 볼에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입을 내밀면서 '뿌우' 하듯 눈을 깜빡이자 다들 낄낄거리며 뒹굴면서 웃었다.

"풉."

"이얔크크크킄! 야, 코가사 너 천재닼킄크우프흨!!"

"천재다아아아!!!!!!!!!!"

"야~ 가면 다 필요 없어! 으힠, 와아아 저거 진짜로 토라진거얔!! 까하하햑!"

"굳이 표정 못지어도 저러니 진짜 질투 난 것 같은데욬킄킄."

모미지가 피식 소리와 함께 웃었으며 이치린과 운잔, 쇼가 뒤집어지고 뱌쿠렌이 쿄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복창을 막고, 무라사가 이치린을, 나즈린이 쇼의 등을 두드려주며 진정시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태자님이 만드신 멘레이키를 자네들 장난감 취급하지 말게나!!"

후토가 방방 뛰며 외치자 뱌쿠렌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희의 태도에 기분 상하셨다면 사과드리죠."

"아니, 그러니까.. 뭐 내가 불 지른 것도 있고.. 암튼 그래도 데려와 가르치는 것이면 좀 진지하게 대해 달라는 것일세!" 후토가 두 집게손가락을 서로 비비면서 살짝 머뭇거리며 말했다.

"근데 솔직히 얘가 귀여운 건 사실이잖아." 무라사의 무심한 표정의 한마디에 후토도 고개를 숙이며 난처해 했다.

"뭐, 뭐. 그것은 부인할 수는 없네만...저기..아무래도 태자님이 만드셨으니."

누에도 낄낄거리다가 웃고는 있지만 자신의 경험상 여전히 진지한 표정의 마미조를 보고는 찜찜해져서 조용히 속삭였다.

"마미조, 무슨 일 있어?"

"있다 얘기 하구마. 지금은 수업이나 봐야 하것제."

"그럼 계속 수업을 하도록 하죠. 이해하고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요하니까요. 좀 더 전문적으로 가르쳐주고 싶어져서 이야기하자면 감정, 기분, 느낌등은 정서라는 큰 범주에 들어가요. 감정은 굉장히 생물, 생리적인 부분을 가리켜 말하고 기분은 오랜기간 약하게 지속되면서 그 시작이나 끝이 불분명하고 느낌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주관적인 의사가 더 강조될 때 사용이 되지만 일상에서 구분은 거의 없어요. 음, 그리고"

케이네가 잠깐 멈칫하며 위를 올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아, 생각났어요. 정서는 자극이나 대상이 자신의 관심사와 연결될 때와 방금 말했던 불안하면 다리를 떠는 것처럼 감정이 행동을 유발하는 행동경향성, 신체적 변화 수반성이라고 하여 감정이 들 때, 몸의 혈압이 상승하거나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고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빠지는 등 몸을 통해 심리를 느낄 수 있는 의사소통 기능 이렇게 세 가지[각주:3]로 볼 수 있어요. 즉, 정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생존에 필요한 행동이나 상황에 맞게 행동을 유발해 생존과 정보전달과 관련된 의사소통 및 사회적 적응을 돕죠. 특히 자신의 욕구와 관심사는 자기가 의사판단을 하는데 중요한 판단 근거이기도 해요. 자, 코코로 학생. 들어서 이해가 되는 부분들을 말해볼까요?"

코코로가 심드렁해 보이기까지 하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으며 말했다.

"음, 정서안에 감정과 기분, 느낌이 있고, 다 같은 의미지만 미세하게 다르고, 관심사랑 행동을 일으키는 거랑, 의사소통기능이 있고, 또.. 내가 판단하는데 근거가 될 수 있어!"

"어머, 잘 요약해서 이해했어요! 계속 듣다가 혹시라도 이해가 안 되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해주어야 해요. 방금 코코로 학생이 말한 내용에 따라서 정서의 중요한 기능은 정서를 느끼는 존재의 관심사와 욕구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공감 및 이해 기능이에요. 그리고 그 감정들을 통합하고 우선순위를 정하여 느끼고 행동하게 되는데."

케이네가 목이 마른지 물 한 컵을 얻어마시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에서 무언가 상황에 처하면 망설이다 못해 결정을 못 내린다든지, 그래서 주위의 의견을 따르고 나서 나중에 후회한다든지, 이런 마음도 들었다 저런 마음도 들었다가 유유부단한 요괴들이나 사람들의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분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앞에서 말한 정서의 중요한 기능인 관심사나 욕구에 대한 무지로 인해 이해는 커녕 감정상태에 대한 정서적 정보활용 및 통합이 전혀 안 되니 의사에 대한 근거를 찾지 못해 갈팡지팡하게 되는 게 공통적이죠. 근거가 없으니 남에게 의지하고 또 내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니 책임지기엔 후회도 들고, 뭐 그렇게 악순환을 겪게되는 거랍니다."

"아항!"

코코로의 대답과 함께 그 말을 들은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 와 같은 감탄사를 내자, 케이네가 더 힘을 내서 진행했다.

"그래서 정서는 상황에 대한 적당한 생각과 대처능력을 키워주고 좋은 기분의 경험은 긍정적 정보와 사건을 빠르게 처리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하고 불쾌한 기분의 경험은 부정적 정보와 사건을 빠르게 처리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추게 하기 때문에 기억에도 영향을 주어요. 기억 과정인 '자극'(stimulus)과 그 자극을 부호로 정보화하여 단기기억에 저장하는 '기명'(memorizing) 단계에 영향을 주고 바로 다음인,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에서 그 저장된 기억을 장기기억에 보존하는 '파지'(retention) 단계와 그걸 꺼내서 회상하는 재인(recognition) 단계에 큰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좋은 기분에서는 좋았던 기억이 더 잘 생각나고 나쁠때는 부정적인 기억들이나 가슴아프던 일이 더 잘 생각이 나죠."

"와, 훈장님. 그런 것도 아세요?"

문화첩에 받아적던 아야와 뱌쿠렌, 쇼가 경악에 가깝게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보며 놀라자, 케이네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앞머리를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하하하, 저 실은 그게요. 학부모님들이 우리애가 자꾸 공부하다가 암기를 못하는데 기억력이 부족하거나 머리가 나빠서 그런건지 하도 많이 물어보셔서... 잘못된 정보를 줘서는 안 되니 의학적 지식이 많은 영원정의 에이린 씨에게 따로 물어서 배웠던 거예요."

"응, 자극, 기명, 파지, 재인! 이 과정에 감정이 끼어든다는 거야?" 코코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역으로 나쁜기억이 떠오르면 기분이 나빠지고, 좋은 기억이 떠오르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감정을 표현한다고 하면, 예를 들어 좋은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아니면 슬퍼하는 감정이든 나의 시야에서 보이게 된다면 무언가 나에게 요구가 들어가는 것 같고. 어떻게든 저 상황을 해결해주거나 동조해주거나 하듯이 대처해 줘야한다는 압박감이 들어 부담스럽기도 하죠?"

"아니라곤 못하죠. 계속 신경 쓰이고 눈에 밟히니까요." 이치린이 참여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실은, 제가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감정이라는 건 말 그대로 느낌. 그냥 그대로 느끼면 되어요. 감정은 의사표현이기 때문에 슬프면 슬픔을 그만큼 느끼고 즐거우면 즐거움을 그만큼 느끼면 그만인거죠. 환경적, 내적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반응인 만큼 충분히 그 감정을 느끼면 자극도 감정도 싹 가시게 되어 있어요. 건강한 감정은 이런 거예요. 오히려 감정표현이 잘 안되는게 건강하지 못한 거예요. 그러니 누군가 감정을 표현한다면 그대로 놔두어서 충분히 그 감정을 표현하게끔 해주는 것도 충분한 방법이랍니다. 그렇게 해주면 감정표현이 솔직해지고 자신이 감정이 자신은 물론 타인의 영향으로 부담스럽거나 회피적이지 않게 될 수 있으니 충분히 도와준 방법이에요."

"지식의 보고인 훈장님의 참으로 참된 가르침이구먼." 마미조가 감탄스럽게 웃으며 누에와 같이 너스레를 떨었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이해하려고 고뇌하는 코가사와 고개를 떨궜다가 올렸다하며 눈커플을 힘들게 뜨고 있느 쿄코, 상체가 앞으로 쏠리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하게 듣고있는 나즈린과 케이네에게 시선이 고정된 모미지, 후토, 무라사가 주위를 이루었다.

충분히 입이 예열되어 작두를 탄 듯 수업을 진행하던 케이네는 마미조의 덕담이 포괄적으로 수업이 잘 되고 있는 것으로도 느껴져 흐뭇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감사합니다. 후타츠이와 씨. 코코로 학생. 이제 좀 알 것 같나요?"

"응! 어렵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참으로 박식한 게 우리 태자님이 만든 작품답구만!" 후토가 여긴 절이라는 사실이 신경 쓰이지 않는 만큼,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면서 팔을 높이 흔들며 감탄해 외쳤다.

"자, 그럼 코코로 학생. 다시 감정표현을 연습해볼까요? '절실한'!"



그렇게 똑같이 몇 번 더 연습하다 절에서 감사의 의미로 챙겨준 과일을 든 케이네가 모두의 배웅과 함께 웃으며 돌아갔고 후토도 코코로를 챙겨 돌아가자, 모미지도 아야의 짐을 집어던져서 돌려주며 자신의 검과 방패를 메고 같이 일주문[각주:4]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난 별다른 말도 안 했었네.'

아야의 뒤에서 걸어가며 자신이 빼돌린 필름들을 살짝 쳐다보던 모미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거 하느라. 또 필름 갈라 바빴었지. 할 것도 많았는데 진짜 일꾼이잖아.'

"아야 너는 이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푸념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모미지의 말에 앞에서 걸어가던 아야는 등을 돌려 카메라를 들어 보이면서 웃었다.

"그럼! 아주 도움이 되지! 안 믿어질 만큼 너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거야!"

그 말과 함께 공중을 날면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들뜬 아야의 모습을 바라보던 모미지는 어이가 없었지만, 자신이 바꿔치기한 필름을 만지며 비로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PM 9시 40분 묘렌사 


밤이 무르익자, 묘렌사의 어느 한 방에 운잔을 낀 이치린, 나즈린과 누에, 그리고 마미조가 각각 앉아서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우릴 부른 이유가 뭐야?"

나즈린이 심드렁하게 묻자 누에가 기다리듯 마미조를 쳐다보았고 마미조가 입을 열었다.


  1. (Fredrickson, 1998,) [본문으로]
  2. 知音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신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 [본문으로]
  3. (Frijda 1986) [본문으로]
  4. 절의 가장 첫번째 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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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요! 그럼 다들 어디로 모이면 될까요?”

사진기를 들어 보이며 환희에 찬 눈빛으로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아야를 보던 뱌쿠렌이 같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관음전[각주:1]에서 모이도록 하죠. 지금은 바쁘니 바로 시작하긴 무리고 다른 분들이랑 먼저 가서 쉬고 계세요.”

그 말에 마미조와 누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먼저 가고 무라사가 쿄코를 부르러 가자, 그 와중에 이치린은 운잔과 함께 절간으로 들어가고 쇼는 자기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다급히 말했다.

“저도 일단 이분들부터 뵙고요. 나즈린!”

나즈린은 쇼가 부르는 것을 보자마자 눈치껏 아야와 모미지, 코코로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했고, 코코로는 북적한 쇼의 주변을 보면서 궁금해져서 물었다.

“저 요괴는 왜 사람들이 몰리는 거야?”

“비사문천이기 때문도 있겠지만 실은 불교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 외의 대부분이 재복(財福) 때문에 그러는 거야. 자신에게 땡전 한 푼 더 들어오길 바라는 거지.”

나즈린이 감흥 없이 말하자 코코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라 걸었고 취재욕에 상기된 아야와는 달리 모미지는 이곳을 향해 멀리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하타테를 천리안으로 발견하곤 저번에 했던 대화가 떠올라 계속 주시했다.

“무슨 하늘을 그렇게 뚫어지라 쳐다봐?” 아야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냥 한번 쳐다봤을 뿐이야.” 모미지가 단조롭게 말하자 코코로도 호기심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밖엔 아무것도 없는데.”

“난 내 능력으로 저 구름 너머가 다 보이니까."

"그거 엄청 신기하겠네. 비록 나는 못 보겠지만."

실망 가득한 표정의 가면으로 토라진 마음을 대신하는 코코로에게 모미지는 그녀를 아쉽게 했다는 실망감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한숨을 쉬었고 아야도 가면의 영향으로 천리안이 아무것도 못 보는 걸 보니 이제 한 물 다 갔다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며, 길을 안내하던 나즈린은 자신을 잘 따라오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승강이를 벌이는 이것들 데리고 무슨 일을 하느냐는 실망감에 혀를 차면서 속으로 곱씹었다.

나즈린의 안내로 방으로 들어선 그들은 먼저 온 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자 빈자리를 찾아 앉았고, 모미지는 눈치를 보다 아야가 코코로랑 이야기하는 사이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왔다.

자신의 천리안으로 건물 안 아야의 동태를 파악하고 관음전을 빠져나와 밖에 나와 있는 뱌쿠렌, 쇼의 동선도 잘 피해가며 조심스럽게 범종각[각주:2]에 가까이 다가간 모미지는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타테에게 메고 있던 배낭을 던져주었다.

"그게 이번에 쓸 촬영장비들입니다."

배낭을 열어 수북한 필름들과 카메라들을 대충 살펴본 하타테는 필름 하나를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서 비슷한 필름을 꺼내서 모델명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배낭을 돌려주었다.

"좋아. 혹시 지금 바로 취재를 들어가는 거야?"     

"네. 그런데 정황상 지금 여기 오래 있으면 의심받을 상황입니다만."

"응! 걱정마, 그 정도의 눈치는 있으니까 빨리 물건 받고 가."

그녀가 미리 바닥에 내려뒀었던 조그만 상자를 열어 열 개의 필름들을 꺼내서 건네주자 모미지는 필름들을 주섬주섬 품 안에 따로 챙겼다.

"그래서 이걸 이번 촬영하는 필름들과 바꿔치기하면 되는 겁니까?"

"그럼! 그렇게 아야가 찍은 필름을 빼돌려 내가 현상한 다음, 나의 신문인 화과자 염보로 폭로해 기사 소재를 조작하고 사건을 일부러 일으키려는 아야의 왜곡된 기자상에 파국을 맞게 하는 거지!"

"훗, 그럼 서로 잘해봅시다." 모미지가 악수를 청하자 하타테도 웃으며 악수를 하며 말했다.

"이쪽이야말로. 그럼, 누가 보기 전에 이만 가볼게."

"살펴가시죠."

하타테가 눈치를 보며 재빨리 자리를 뜨자 모미지도 고개를 돌려 조심스럽게 자신의 천리안으로 관음전 안에서 아야가 다른 요괴들과 떠드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관음전에 가까워지자 아야가 여전히 떠들고 있음에 코웃음을 친 그녀는 느닷없는 소음에 깜짝 놀랐다.

"모미지씨이잇!!!! 안녕하세요오옷!!!!!" 

쿄코의 목청 어린 소리에 당황한 모미지가 고개를 돌아보자 뒤에는 쿄코와 무라사, 그리고 잡힌 걸로 보이는 후토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고 대답할 새도 없이 후토가 짜증을 부렸다. 

"으음! 몹시 원통하고 분하도다! 이 몸의 부주의로 이 장작더미들이 활활 타는 절경을 보지 못하다니."

그러자 매서운 눈빛의 무라사가 뺏은 것으로 보이는 부싯돌을 집어 던지며 성질을 부렸다.

"허 참, 대놓고 뻔히 보이는 불이문[각주:3]에 불을 붙이려고 하니까 쿄코가 바로 소리를 지르지, 이것 봐, 우리 분명 협의하지 않았었냐? 당분간 적대행위 금지. 적대행위 금지요. 응?"

"적대행위 금지!!" 쿄코도 맞장구쳤다.

"시끄럽다! 하나부터 열까지 괴상하고 요사스러운 것들!" 후토도 귀를 틀어막으며 외쳤다.

"아우, 귀청 떨어지겠네. 쿄코 씨는 그만 좀 소리 지르시고 암튼 이제 다 모여야 할 것 같은데 이 친구 어찌할 건가요?"

"뭐, 데리고 들어가야죠. 데리고 가서 보고하고 청문회를 하든, 협의를 깨든. 그리고 친구는 무슨." 

신경질이 섞인 무라사의 말에 이 일이 파투나서 빨리 끝나고 돌아갈 수 있겠다는 부푼 희망이 생긴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여드는 관음전 안에서는 여전히 안타까운 표정의 후토와 싸늘한 눈빛의 다수가 아웅다웅하느라 조용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가 불 지르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너희 수괴가 시킨 일이야? 아니야?"

나즈린이 불쾌함을 드러내며 묻자 후토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감히 태자님 보고 수괴라니 이 무슨 불경한!!"

"그렇게 불경 타령하다간 불경으로 맞는다. 똑바로 대답해."

누에의 말에 나즈린과 쿄코가 기겁하자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보는 누에에게 마미조가 눈치를 주었다.

"누에, 여기선 불경으로 때리는 거 아녀."

"하 무슨 불경한 소릴.. 근데 그쪽은 왜 저런 말을 듣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 나즈린이 무라사를 향해 외치자 무라사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게 말이지. 요즘은 내가 번뇌가 살짝 껴 영~ 독실하지가 않아서."

혀를 차는 나즈린이나 그런 광경을 바라보는 후토나 동시에 같은 말이 입에서 나왔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란 서로가 상황을 무마하듯 말을 뱉었다.

"태자님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지만 거사에 대한 나의 뜻을 존중해주실 거라고 믿네."

"하아, 얘 뭐래는 거야. 그럼 결국 그냥 자기가 맘에 안 들어서 그랬다는 거잖아."

모미지는 그렇게 흘러가는 상황을 보고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협의 파투까지 나오지 않자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적대행위를 한 거라면 그만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물론 그래야지." 나즈린이 모미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나한테 감정에 대해 가르쳐준다고 했었잖아! 이렇게 자기네들끼리 떠들 거야!"

코코로가 분노, 노여움, 실망과 안달 난 표정의 가면들을 현란하게 돌려가며 방방 뛰자 지켜보던 코가사는 아직 감정이 미치지 않았는지 오히려 그런 코코로를 귀여워했다.

"자자, 너무 화내지 마세요.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여기 있는 모두가 분노해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지금 대판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하지만요. 후훗."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아야가 말은 그러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코코로의 사진을 찍어대자 코코로는 토라져서 외쳤다.

"그치만 난, 빨리 최강이 되어야 한단 말야! 그러기 위해선 당장 빨리 감정에 대해 배워야만 해!"

그 모습에 아야는 '아, 이래서 기자 할 맛 난다니까.'라고 입 밖으로 흑심을 꺼내며 감정을 담아 셔터를 광속으로 눌러댔다.

"잠깐. 너 지금 뭐라고.."

"자. 그럼 이제 감정에 관해서 이야기해봐야겠죠!!" 아야는 모미지의 말을 쿨하게 피하며 윽박지르듯 외쳤다.

"아, 깜짝이야. 그걸 왜 우리에게 물어!!!"

"누에 씨! 이건 모두 코코로씨의 가면의 영향 때문이라구욧!!!" 아야도 화를 내며 따지자 마미조는 코코로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면서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다들 이 멘레이키 숙녀의 기분을 잘 공감하고 있구마. 그려, 그짝 텐구는 어떻게 할 생각인겨?"

"모두를 놀래켜 줄 만한 생각이 아니기만 해봐욧!!!" 코가사도 가면의 영향으로 화를 내듯 말하자, 문이 열리며 쇼와 뱌쿠렌, 이치린이 운잔을 데리고 관음전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길래 이렇게 시끄러운 건가요?"

뱌쿠렌이 방 안을 한번 돌아보자 쇼도 의아해하며 나즈린을 쳐다보았다.

"글쎄요. 나즈린. 진짜 서로 술이라도 걸친 건가요?"

나즈린은 할 말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술이라도 걸친..읍읍읍!!!"

눈치를 보고 쿄코가 따라 하기 전 순식간에 입을 막은 무라사가 순간 매서워진 뱌쿠렌의 시선을 살피면서 한숨을 길게 쉬며 말했다.

"아니 글쎄, 협의를 마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도교 잔챙이가 절간을 태우려 하잖아."

"자,잔챙이라고 했느냐!!!!"

무라사와 후토가 티격태격하고, 주위의 질린다는 표정을 눈치껏 읽은 쇼가 한숨을 길게 쉬자 뱌쿠렌은 그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주인도 뱌쿠렌도 알겠지만, 이번 적대행위에 대해서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나즈린에 말에 모미지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뱌쿠렌을 쳐다보았다.

"자, 분노를 내려놓고 진정들 하세요. 우리 불교에서의 근본은 자비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서 중생에게 낙을 주는 자(慈)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의 어려움을 달아주는 비(悲)를 행하여야 불제자라고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나가서 탄막으로 싸우자고 아웅다웅하던 무라사가 자세를 고쳐잡고 후토도 뱌쿠렌이 강하다는 걸 아는 만큼 조용해지자 쇼는 좋은 말씀이라며 탄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야 씨, 우리가 이러려고 모인 건 아닐 텐데요? 그렇죠?"

뱌쿠렌이 특유의 웃는 얼굴로 눈치를 주자 아야도 웃음으로 화답하며 말했다.

"네, 물론이죠."

그리고 모미지는 속으로 파투는 물 건거 갔음에 속이 타면서 그냥 아까 판 쫑내게 끼어들 걸 그랬나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럼 도교 측 분도 이왕 온 거 같이 듣는 것으로 하죠. 잘못도 있으니까 그걸로 퉁칩시다."

쇼가 박수를 한번 치면서 웃자 후토는 분하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를 찾아 앉았고 아야가 상황을 이끌기 시작했다.

"자, 이제 다 모였으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합시다. 마침 참관 겸으로 도교 쪽도 참석했고요. 일단 저번에 자기소개는 다 했고 서로에 대해서 처음 만났으니 일단 감정에 대해서 알아야 될 텐데요. 일단 불교 측에서 가르침을 주시도록 하죠."

뱌쿠렌은 자연스럽게 사진기를 꺼내 자세를 취하는 아야와 주변의 시선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어,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되는 건가요?"

"네, 지금 각도도 좋고 조명 잘 받고 있어요!"

"그러죠.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일단 불교 쪽에서 오온(五蘊)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하는데. 근간이 되는 부분이 온(蘊)이고 인간을 구성하는 눈, 코, 입 등 감각적이고 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요소인 감정,고통,쾌락을 나타내는 수(受), 심상이나 표상을 나타내는 상(想), 인지판단, 주관적 인식으로서의 주체적인 마음을 식(識) 수,상,식 외에 포함되는 의지나 잠재의식을 나타내는 행(行), 네 가지의 온까지 합쳐서 오온(五蘊) 이라고 한답니다. 이것이 우리 불교가 마음을 정신을 포함하는 가치적 요소와 육체를 포함하는 물질적 요소에 대해 생명활동과 정신적 사고가 상호 연관 및 통합된다고 보는 이론이지요. 물론 이는 우리가 집착할 필요가 없이 끝없이 생멸(生滅)하고 변해가는 현상학적인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만 이곳 환상향에는 뭐.."


후토와 뱌쿠렌이 서로를 쳐다보고 주위가 그 둘을 의식하는 와중에도 모미지는 열심히 눈치를 보면서 카메라의 필름을 갈았다.


"아무튼, 감정이라는 것은 곧 몸으로 마음이 느끼고 몸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 우리 불교에서는 마음과 몸이 연(緣)에 이루어져 있고 연에 의하여 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음이 경험과 지식에 의해 길러지고 그 마음이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는, 원인과 결과 그리고 다시 그 결과가 원인이 되는 셈이지요. 즉 모든 것은 연으로 연관되어 그러한 연이 변하면 멸하게 되는 법입니다. 꽃이 피는 연일 때 자기 혼자 피는 꽃이 없고 낙엽이 지는 연일 때 자기 혼자 지는 낙엽이 없듯,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히 머물러 있는 법이 없는 셈이지요. 여러분이 이 절에서 온 것도 연으로 온 것이고 모든 걸 마치고 가게 되는 것도 연에 의한 것입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군. 그럼 우린 연이라는 실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꼭두각시이고 결국 모든 게 다 정해져 있다는 거 아닌가."

"뭐, 댁 같은 악연도 연이라면 연이니까."

후토가 딴지를 걸자 이치린도 팔짱을 끼며 응수했고 그만하라는 듯, 뱌쿠렌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이러한 연을 감정에 대입하면 우리가 기분이 좋으면 웃고, 그 웃음을 보는 이의 기분이 좋아지거나 흐뭇해지며 반대로 속이 상하면 화를 내고, 그 화를 받는 이가 또 속이 상하고, 이런 대물림은 다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연에 대한 것이지요. 이치를 알고 불성을 높이며 자신을 가다듬으며 잘못된 논리와 무도한 행동을 일으키는 번뇌의 감정을 떨쳐내는 것이야말로 참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제자가 수행하며 가져야 하는 모습이지요."

"뱌쿠렌의 말씀처럼 우리가 연에 의해 흘러가는 만큼 연연할 필요도, 집착할 필요도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는 겁니다. 마음에 고요한 평화를 가지고 번뇌를 버리며 불심을 기르는 것이니까요."

쇼가 거들자 나즈린과 이치린이 '오오!' 하며 놀랐고 아야는 열심히 쇼 말고도 그 둘을 찍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여전히 뾰로통한 얼굴의 후토가 아무 말 하지 않자 쇼의 지원을 받은 뱌쿠렌이 말을 이었다.

"여기서 번뇌의 감정이란 사물의 도리를 분별하지 못해 생존 욕에 굴복하여 모든 것에 집착하는 무지를 말하는 무명과 보고 듣는 모든 것을 탐내는 격한 욕망인 애욕을 말하는데 이 두 개를 토대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 그릇된 견해, 원한, 질투, 아부, 자만, 오만, 비방, 방종, 이기심과 같은 번뇌들이 생겨나지요. 이 번뇌의 불은 자신을 태우고, 다른 사람들도 괴롭히게 됩니다."

아야가 사진을 몇 장 찍고서 문화첩에 최대한 핵심만 적으려고 하고, 경청하는 쇼와 나즈린, 이치린과 마미조, 길지만 최대한 들으려고 노력하는 운잔, 누에, 무라사와 달리 장황한 설명에 나머지는 고개만 끄덕 끄덕거렸다.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겠는데 나에겐 너무 어려워."

코코로가 알 수가 없는 표정의 가면을 보이자 이치린이 차분히 물어보았다.

"혹시 번뇌가 뭔지는 알 것 같아?"

"음, 그냥 머릿속에서 드는 나쁜 생각?"

"다행이네. 그렇게 이해하면 돼, 그리고 마음의 본성이라는 건 음, 해가 뜨면 밝다고 느끼는 것과 해가 지면 어둡다고 느끼는 게 다 한때의 마음이잖아. 이걸 우리 불교식으로 풀면 밝음과 어둠이라는 밖의 연(緣)에 이끌려서 밝음과 어둠을 아는 마음이 생기지만 이건 다 한때의 마음일 뿐이야. 진짜 마음의 본체는 그 밝고 어둠을 아는 힘의 근본이 마음의 본체라는 거지. 그러니까 밖의 인연에 끌려 생기거나 멸하는 선악과 애증의 감정은 결국 자신의 마음에 쌓여가는 일상의 티 끝에 의해서 일어나는 한때의 마음이라는 거야."

"아. 그렇구나. 정말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난해하지만 알 것 같기도 해. 무진장 어렵지만."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난감할 때 쓰는 원숭이 가면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결국 감정 이야기는 마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네?"

"그럼요. 자신이 마음속으로 느끼는 모든 게 감정이 되는 거니까요." 아야가 대답했다.

"그런가." 코코로가 생각에 잠기자 나즈린도 입을 열었다.

"아까 주인이 말한 것처럼 번뇌는 티 끝이라도 마음을 더럽히지만 그러한 번뇌도 더럽힐 수 없는 본래의 깨끗한 마음이 원래 있으니까. 그것이 바로 불성(佛性)이고 본래 갖추어져 있으므로 누구나 깨달을수 있고 누구나 번뇌를 버릴 수 있어. 그치? 주인."

"네, 물론입니다. 누구든 착하다, 나쁘다. 고맙다, 밉다, 있다, 없다 등, 자신이 만든 형체도 마땅한 증거도 없는 생각을 항상 되새기면서 그러한 생각의 부림을 받고, 그 견해와 틀에 박혀서 밖을 쫓기 때문에 괴로움에 빠지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결국 번뇌입니다. 덧없는 것이죠. 이런 번뇌에 속박당하면 그 대상은 전혀 상관도 없는데 마음만 상하게 되고 그 화는 결국 그 대상에 미칠 수밖에 없으니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남이 주든 자신이 만들었던 비합리적이고 거짓된 견해를 밖에서 받았듯이 밖의 연으로 돌려주고 속박당한 적 없는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오면 몸과 마음은 번뇌에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쇼의 말에 뱌쿠렌이 매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머지도 탄복하는 사이, 후토마저도 '어 그럴듯한데'라고 말하자 나즈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와, 주인 생각보다 말 엄청 잘하는데."

"하하, 나즈린. 제가 요즘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쇼가 엄지를 치켜들고 나즈린이 박수를 치자 무라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기자랑 카메라 앞에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

쇼와 나즈린이 동시에 무라사를 쳐다보자, 그녀는 여전히 웃었고 누에는 옆에서 장난끼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뭘 그리 핀잔을 주고 그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지구만."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마미조씨."

쇼가 겸연쩍어하고 아야가 열심히 문화첩에 적는 사이 뱌쿠렌이 정리하듯 말했다.

"자, 가르침이란 말로만 이해하기 너무 장황한 법이죠. 위와 같은 번뇌에서 벗어나 언제든 어디서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 모습을 바르게 생각하고 마음을 자제하면서 부처님의 자비심을 키우며,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 자비심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 어렵지만 대충 무슨 소린지는 알겠어." 코코로가 가면은 그대로인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이네요." 쇼가 탄복하며 말하자, 문화첩을 꺼낸 아야가 나서면서 말했다.

"이봐, 텐구! 생각해보니까 우리 협의할 때 포교금지 아니었던가!"

"협의는 지가 먼저 깨 놓고." 후토의 딴지에 나즈린도 맞섰다.

"아아, 그거요. 생각해보니까 불교에서 가르치는 건데 불교 입장에서의 가르침도 들어봐야죠. 엄연히 우리 코코로씨가 판단할 문제일 뿐. 포교와는 별개에요. 어차피 도교도 가르칠 텐데 상관없지 않을까요."

자신을 바라보는 아야의 말에 후토가 '그런가'하고 물러서자 마미조는 자신의 꼬리털에 붙은 쿄코를 보고 웃으며 누에와 후토를 주시했고, 모미지는 아야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아야가 찍은 필름 중 하나를 하타테가 준 필름으로 바꿔치기했다.

조심스럽게 누가 보진 않았나 주위를 살핀 모미지는 옷매무새를 다듬는 척을 하면서 소매에 숨긴 필름을 자신의 품에 넣었고 아야는 그러거나 말거나 모미지가 필름을 간 카메라를 들면서 말했다.

"불교 쪽 주지 스님의 감정에 대한 말씀은 들었고, 이제 코코로씨에게 감정에 대해 기본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선 아무래도 다른 전문가가 필요하겠죠?"

"엥, 무슨 소리야? 누굴?"

나즈린이 황당한 얼굴로 한소리를 하고, 나머지도 의아했지만, 말이 끝마치기 무섭게 잔상만을 남기고 방을 나서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아야는 모미지가 필름 하나를 또 바꿔치기 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누군가를 데리고 관음전으로 들어왔다.



"어머 어머, 아야 씨가 빠른 건 알았지만 이렇게 정신없이 빠를 줄이야. 멀미나겠어요."

"뭘요. 언제나 환상향 최고 속도를 자랑한답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드리고. 그런데 선생님.. 머리가 좀 헝클어지셨네요."

"어머, 진짜요?!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데서.. 머리 안 감은 것처럼 보지는 않을까요? 아아, 어쩜 좋지. 혹시라도 누워서 잔 표시처럼 나는 거 아니겠죠?"

아야의 말에 깜짝 놀라 살짝 삐뚤어진 모자를 정돈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카미시라사와 케이네를 본 모미지와 코코로를 비롯한 나머지 일원들도 살짝 당황했다.

"저 텐구는 순 막무가내야." 무라사의 말에 거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인사드리세요. 다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특별히 교육을 맡아주실 인간마을에서 교육을 맡고 계시는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훈장님이세요."

"어머, 흠흠, 교육자로서 꼴사나운 모습 다 보인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반갑습니다. 카미시라사와 케이네입니다."

조신하고 공손하게 인사하는 케이네에게 다들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뱌쿠렌이 미소로 화답했다.

"안녕하세요. 훈장님. 저는 이곳 주지승 히지리 뱌쿠렌입니다. 명련사에 오신걸 환영하고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아, 네. 주지승님. 명성 높으신 분을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쇼는 자신이 절의 본존이라고 인사드릴까 하며 나서려다 둘의 대화가 이어지자 타이밍을 놓쳤다 생각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 시간에 서당은 어떡하시고 여기에?"

"서당은 어떡하시고..읍읍."

뱌쿠렌의 말을 따라 하려던 쿄코의 입을 아까보다 빨리 무라사가 막자, 나즈린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길게 쉬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어머, 깜짝이야. 야마비코도 있었네요. 어쩜, 나 여기 와서 계속 놀라기만 하니. 어우."

"걱정 마. 우리 이러다 계속 돌아가면서 한숨 쉬게 생겼으니까."

누에가 여전히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턱을 괴면서 말하자 케이네도 어설프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하하, 아까 주지승님이 물어보셨는데 오늘 서당 방학이에요. 방학식 끝나고 오는 길이랍니다."

그녀는 코코로를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아야 씨가 한 요괴에게 교육자로서 참된 교육을 해주시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그것에 대한 답변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귀엽고 예쁘장한 네가 코코로 학생이구나."

"여어, 내가 바로 하타노 코코로이시다!"

코코로도 호기심 가득한 가면을 보이며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인사하자, 코코로의 태도에 살짝 당황한 주변 요괴들이랑은 다르게 케이네는 웃으며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춰 말을 걸었다.

"음. 정말 츠쿠모가미인 멘레이키답게 가면으로 감정을 표현하는구나. 거리에서 춤추는 걸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보니 신기한걸."

"저도 같은 츠쿠모가미에요. 훈장님! 어때요? 놀랐죠?" 코가사도 옆에서 껴들었다.

"응. 네가.. 코가사였던가.. 코가사 학생 맞지?"

"네! 어떻게 알고 계시네요!" 

분명 놀라게 해줄려고 했는데 오히려 자기가 더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본 케이네가 미안함에 살짝 아야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요괴 학생이 한때 유모 일 한다고 애들을 울렸었다던...'

'네. 맞아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아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코가사가 들떠서 들고 있던 우산을 흔들고 이치린이 먼지 날린다며 말리는 사이, 코코로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나를 최강으로 만들어줄 상대가 그대인 건가?"

"음.. 난 무술 같은 걸 다루는 교관이 아니라서 널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진 모르지만 너를 성장하게 도와줄 수 있단다. 그게 지금 맡은 일이자 교육자로서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역할인걸."

"케이네 훈장님이 교육 부분에서는 이 환상향에서 최고로 전문적인 분이시니 믿고 따라도 된답니다."

옆에서 아야가 거들자 쿄코도 바로 거들었다.

"환상향에서 최고로 전문적인 분!!!"

그러자 코코로도 수긍하고 들뜬 가면을 보이며 외쳤다.

"그럼 당장 날 가르쳐줘!"

"그래, 교육자로서 가르친다는 건 상당한 보람이니까, 휴가인 방학이라도 언제든지 교육의 문은 열려있단다. 그럼 가만있어봐, 아야 씨.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죠?"

"와, 그럼 케이네 훈장님이 방학 보충 학습하시는 거군요."

"아냐. 저건 과외지. 과외." 이치린이 한마디를 하자 무라사가 딱 잘라 말했다.

후토가 진지하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석하는 사이, 모미지는 아야의 눈치를 보면서 아야가 건네준 필름을 일단은 정상적으로 갈았고 누에는 도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고 다 같이 모여서 뭘 할 생각인가 혀를 차면서 마미조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물어보려다가 평소와는 다르게 매서워진 눈빛과 다소 심각한 표정의 친구를 보고는 당황해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자자, 훈장님. 카메라 쳐다보지 마시고, 시선 의식하지 마시면서 일단 감정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세요,"

카메라를 치켜세우고 사진이 잘 나올 각도를 잡은 아야가 응답하자 케이네가 코코로에게 말을 꺼냈다.

"음. 그럼 감정에 대해서 먼저 시작하자면...."

"훈장님! 카메라쪽 보지 마세요. 자연스럽게. 아셨죠? 자연스럽게!"

아야가 카메라를 잡지 않은 손까지 돌려가며 제스처를 취하자 케이네가 당황하면서 말했다.

"아, 네? 자연스럽게요? 흠흠, 카메라만 안 보면 좀 자연스러운가요?"

그러자 아야가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지금 행동이 무진장 부자연스럽잖아요!! 카메라 보지 마시고 턱 좀 안으로 집어넣으시고, 어깨도 좀 펴시고, 시선은 코코로 양을 향해서. 팔 떨지 마시고요."

그 말을 듣고 자세를 고쳐잡은 케이네를 향해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트리자, 늘 하던 일이지만 다 보는 앞에서 누굴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되어 호흡을 가다듬은 그녀가 말을 꺼냈다.

"그래요. 일단 제 전공은 아니지만 감정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감정이라는 의미 자체는 한자로 느끼다는 뜻을 지닌 감(感)에 뜻 또는 마음이 움직이는 뜻을 가진, 정(情)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즉 사물이나 대상, 사건에 대해 느끼어 반응하는 심정이나 마음의 느낌을 의미하죠."

"어어이, 텐구처자, 흥을 깨서 미안하지만 쪼까 묻고 싶은기 있는디, 내는 위탁이라고 했길래 우리가 직접 멘레이키를 계속 가르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갑제?"

내려간 안경을 한 손으로 올리는 마미조의 말에 아야가 입을 열었고 모두의 시선은 마미조를 향했다.

"아, 그거요? 생각해 보았는데 감정이 원래 다양한 느낌을 아우르는 단어인 만큼 명련사의 불교 입장에서만의 교육은 어쩌면 편향된 시점으로서 하나의 잣대가 되어 편견을 줄 수 있다는 문제가 있어서 말이죠. 게다가 도교 측의 후토 씨도 포교에 대해 경계한 만큼 그런 걸 달가워하지 않을 테고요. 일단 감정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듯 복합적인 시각에서 배우게 해야 코코로 씨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아야의 능청스러운 웃음이 마미조의 안경에 비춰지는 사이, 후토를 비롯해 몇 명은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은 '명련사에서' 교육을 하고 있잖아요. 선생님. 계속 진행해주세요."

아 야가 손을 돌리면서 제스처를 보이자 케이네가 헛기침을 하며 어디까지 했는지 물어보는 사이, 코가사가 빗을 가져와 코코로 옆에 바싹 붙어 앉아서 말을 걸면서 머리카락을 빗겨주었고 모미지는 아야가 정신 팔린 사이에 눈치껏 찍은 필름을 바꿔 쳤으며 누에는 표정은 분명 웃고 있는데 뭔가 생각에 잠긴듯한 친구를 보고는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일단 감정에 대해서 쉽게 말하면 지금 드는 기분 등 내가 지금 느끼는 모든 것이에요. 코코로 학생 같은 경우는 표정 대신 가면으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대부분 말이나 표정, 몸짓으로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런 감정들은 나와 다른 대상에게도 영향을 미쳐요. 즉 친구든 가족이든 사회생활을 하는 존재로서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는 거죠. 어린아이가 웃고 울고 하는 것으로 부모에게 자신의 상태도 알리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요. 코코로 학생이 지금 가면이 몇 개라고 했죠?"

"66개!"

"66개라면 츠쿠모가미로서 가면의 하나하나가 고유의 감정을 담고 있다는 건데 사실 감정에 대한 형용사나 단어는 훨씬 더 많아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희로애락이라고 하는 것처럼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등 언어적인 표현을 적게 사용할 뿐이죠. 일단 확실히 이해가 되게 하려면..."

케이네가 코코로를 쳐다보며 어떻게 해야 더 잘 가르쳐줄지 고민에 빠지자 옆에서 마미조가 담배를 한 모금 피우면서 훈수를 두었다.

"어차피 우리 코코로가 가면의 요괴니께 감정과 관련딘 말을 해주면 그에 맞는 가면으로 표현하는 기 좋지 않겠남."

"그거 좋겠네요. 그럼 먼저 감정에 해당하는 단어를 말하면 그것에 맞는 가면을 보여주는 거예요. 코코로 학생. 이해가 됐나요?"

코코로가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변의 요괴들은 마치 자녀들의 학예회를 보는 학부모들처럼 흥미롭게 시선을 집중했다.

"기쁜." 코코로는 웃고 있는 노인의 가면을 꺼내며 두팔을 흔들어 보였다.

"서글픈" 그러자 눈매가 축 처진 할머니 가면을 꺼내면서 고개를 숙이고 뒷짐을 진 뒤 무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쩔 줄 모르는." 그녀는 딱 봐도 놀란 표정의 가면을 꺼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음, 그럼 냉담한." 케이네의 말을 듣고는 고민하면서 원숭이 가면과 평소 기분의 여자 가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바꾸기를 반복하다가 원숭이 가면을 보이면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우히히힠. 너무 귀여워크킄."

쇼가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말을 내뱉자 다들 말없이 냉담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죄송해욬크킄으흡흡. 표정은 안 바뀐뎈킄킄 행동이 너뭌킄크킄"

코코로가 놀란 가면을 보인 다음 평소의 여자 가면으로 바꾸고 보다못한 나즈린이 한심한 표정으로 쇼의 등을 툭툭 두드리는 와중에도 이미 터져버린 웃음은 주체되지 못했다.

"크크킄크킄 아우, 아니 근뎈프흐흡, 너무 앙증맞앜크킄 아우, 생각없이 보다 터져썪낄낄낄."

나즈린이 한숨을 쉬며 진정되라고 등을 두드리는 와중에도 쇼가 눈물까지 흘리며 외쳤다.

"아, 나즈린도 봤어욬크킄. 얘가 팔짱 끼고 고개를 돌리느뎈킄크크킄 그어 것도 한 번에 획! 하고돌았크킄킄킄 아우 어쩜킄킄 좋지 나. 갑자기 터졌썻 배아폌크킄"

누에와 무라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미조가 말없이 담배 연기를 뿜자 뱌쿠렌이 말했다.

"쇼 씨가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래요."

"실없어 보이는 게 위엄도 없군그래!" 후토도 껴들었다.

"이봐, 주인은 까도 내가 까." 나즈린도 지지 않고 맞섰다.

"아흑, 아, 근데 너무 귀엽잖아욬크크킄킄"

"귀엽잖아요옷!!!!!!!!!!!"

쿄코도 본능적으로 쇼의 말을 따라 하자 코코로가 깜짝 놀라 고개를 휙 돌려 쳐다보았지만, 가면과 표정 무엇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춐크킄 진짜 앙증맞죸크크킄." 코가사도 쇼와 맞장구치면서 코코로의 귀여움에 견디질 못하자 이치린과 운잔은 그저 점잖게 사진만 열심히 찍어대는 아야를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자자, 다들 조용! 수업시간에 떠드는 거 아네요!"

"떠드는 거 아네요!!!!"

케이네가 버럭 외치면서 쿄코를 통해 분위기를 잡으며 아야에게 말했다.

"수업에 방해되면 박치기해도 되나요?"

"네, 어차피 훈장님 수업 시간이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아, 그럼.."

케이네는 슬쩍 아야의 카메라를 의식하며 침을 삼키고는 말을 건넸다.

"저기 혹시 처벌 장면도 카메라로 찍는 건 아니겠죠?"

"아뇨. 찍을 건데요? 저 기자잖아요."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아야를 보고 케이네는 머리를 쥐어짜듯 부여잡으며 말했다.

"으이구, 안 좋은 기삿거릴 만들어 줄 수 없으니 일단 수업을 진행해야겠네요. 코코로 학생은 '냉담한'에서 가면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왜 그랬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

"단어가 너무 어려워."

"두 가면을 다 어떨 때 쓰는지 각각 말해 볼 수 있을랑가."

담뱃대를 내려놓고 누에가 건네준 천으로 안경을 닦는 마미조가 묻자 코코로는 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이 평범한 여자 가면은 정말 평소에 쓴단 말야. 이 원숭이 가면은 곤란하거나 당황했을 때 쓰고, 근데 냉담함이면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상대를 보기만 해도 일말의 동정심 없이 보기만 해도 당혹스럽고 어이없다는 모습도 보여야 할지 잘 모르겠어. 어쨌든 둘 다 차갑게 대하는 것은 맞는데 말야."

"코코로 학생의 가면은 너무 획일적이라서 그래요. 정해진 가면에 감정 하나로만 쓰니까요. 우리처럼 표정으로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과는 좀 다르죠."

"잠깐, 흥 깨서 미안하지만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어."

무라사가 손을 들어 질문하자 케이네가 대답했다.

"네, 미나미츠 학생, 질문하세요."

"계속 보면서 느끼는 건데 방금 감정표현을 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감정을 잘 드러내는 것 같은데 말이야. 감정을 아는 건 그렇다 쳐도 감정을 표현하는 것까지 배우는 게 얘한테 의미가 있을까?"

"아, 그거요." 아야가 웃으며 케이네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케이네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말일세! 이 면령기는 츠쿠모가미중에서도 그 능력이 매우 출중하고 치명적이기 때문이지."

"무슨 소리야." 무라사가 기고만장한 후토를 보고 어이없어하고 츠쿠모가미인 코가사도 우산을 빙빙 돌리며 궁금해하자 케이네가 코코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코코로 학생이 제가 그 감정을 이야기하면 반응한 것처럼 가지고 있는 감정 자체는 풍부해요. 66가지나 되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정확히 잘 다루냐는 별개죠. 아야 씨가 미리 알려주셨고 저도 살짝 살펴봤는데 가면으로 그 감정을 표현하면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강제로 공유하게 되는 효과가 있고 가면을 잃어버린 사건 이외에도 이러한 영향으로 일들이 많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얼마 전에는 코코로양이 토라져서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다가 주변 사람들도 부정적인 감정이 강제로 공유되는 바람에 탄막 난투극이 벌어졌다고 하던데. 아야 씨도 저에게 부탁하면서 말한 거지만 사건 자체가 코코로양의 본의는 아니나 엄연히 자아가 있는 요괴로서 이런 일이 자주 벌어져 원흉으로 계속 지목받게 되는 건 육체보다 정신적인 면이 더 중요한 요괴로서 마음에 큰 상처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도 교육자로서 확실하게 감정을 알고 다스리면서 제대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긴 가면이 하나라도 없어지면 즉시 영향을 받는 츠쿠모가미로서 자신이 그런 감정을 확실하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중요하겠군요."

뱌쿠렌의 정의에 후토는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니까 결국 텐구와 훈장의 목적은 이 교육을 통해서 감정에 대해 자기가 스스로 자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 요괴로서 가지는 태생적 취약점을 어떻게든 극복시키겠다는 거야?"

아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케이네도 고개를 끄덕이자 무라사는 피식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게 과연 쟤한테 도움이 될까 궁금해지는데."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이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한 요괴의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일인데 얼마나 값져요."

아야가 사진을 찍으면서 말하자 누에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무리 봐도 텐구 너는 기삿거리만 챙기려고 그러는 것 같다고."

"그렇게 몰아가시다니 섭섭하군요. 아휴, 요괴가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진짜."

모미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야가 발끈하면서 서운한 태도를 보이자, 케이네가 다시 말을 꺼냈다.

"구성원이 많으니 진행이 더디긴 하네요. 그래도 제 수업치고 퍼질러 주무시는 분들이 없어서 어쩜 그리 다행인지 몰라요."

케이네가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한번 쉬자 다들 병쩌서 그녀만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지루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하시고 진행하세요." 아야가 그러한 모습까지 카메라의 렌즈에 담으며 셔터를 열심히 누르면서 진행했다.




(참고자료: 한영대역 - 불교성전 석능가  감수, 조일제 영역 사단법인 불교신도협회 재단법인 (나옹)불교전도협회)


  1. 관음보살을 모시는 전각 [본문으로]
  2. 부처님께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교 도구인 범종을 놓아두는 장소. 이층의 누각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루라고 한다. [본문으로]
  3. 不二門: 사찰에서 본당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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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미지가 서둘러 귀를 막으며 다른 부하들에게 시끄러우니 당장 금지구역에서 쫓아내라고 투덜거리다가 무전을 날리는 사이, 서로 큰 가방을 멘 레이센과 이나바 테위가 승강이를 벌이며 통제소를 향해 걸어왔다.

“힘들게 왔더니 여기저기에 시끄러운 소리만 가득하잖아. 뭐하러 이딴 곳에 와야 하는 거야?”

“이 산이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주변에 경보장치들을 잔뜩 깔아놨지 뭐야.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 주요 고객인데.”

수십 개의 경보장치들이 충실히 내뿜는 시끄러운 경고음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귀를 막으며 화를 내던 모미지는 두 토끼를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검과 방패를 꺼내 들면서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정지! 정지!! 우리 요괴의 산에 출입하고 싶으면 출입 통제소 검문검색에 응해주시기 바랍니다.”

“엑, 뭐래? 얘네 이 넓어터진 산에서 병정놀이에 너무 심취한 거 아냐? 싫다면?” 테위가 피식 웃으면서 깐죽거리며 말했다.

테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미지가 손짓을 크게 하자, 부관이 동시에 준 신호에 맞춰 완전무장한 대기조 경비부대원들이 튀어나와 석궁과 활, 창, 검등 갖가지 무기들로 그들을 포위했다.

“그럼 강제집행 할 수밖에요. 아니면 돌아가시던가.”

하지만 병사경험이 있던 레이센은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광경이네’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자신에게 검을 겨누는 경비대원에게 수하[각주:1]는 어떻게 하는지 암구호는 안 하는지 물어보았고 그런 레이센이 뭘 하나 눈치를 보던 테위가 여전히 깐죽거리며 말했다.

“흥. 우린 너희 요청으로 온 거야. 우리가 돌아가면 너희가 손해고 계약 위반이니까 너희 대빵과 에이린이 가만두지 않을걸. 되도 않는 허세는 그만 부리지그래?”  

안 그래도 경보기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살짝 심기가 불편해진 모미지가 테위를 무시하고 말이 통할 것 같은 레이센에게 통과에 필요한 서류를 요구하자 레이센도 대원들이 초여름에 고생하는 게 뻔히 보여서 안쓰럽다는 덕담과 함께 출입증과 선 계약된 서류, 가방 안의 약품들을 보여주었다.

“형식 생략하고 출입 허가되셨습니다. 허가된 지역 외에는 출입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특히 달 출신들에 대해서 우리 산의 감정이 좋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하시고요. 솔직히 이 부분은 보호 못해드립니다.” 모미지가 서류를 꼼꼼히 읽으며 대답했다.

“참, 쥐들이 병을 옮길 우려가 있다고 맡긴 방역을 하러 온 우리를 이렇게 검문하는 건 좀 아니지. 유도리[각주:2]가 없어!”

방방 뛰는 테위에 비해 레이센은 은근히 공감하면서 땀을 흘리면서 듣는 모미지가 기분 상하지 않게 테위를 달랬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 산을 아작낸 사건이 난 지 1년밖에 안 지났고 아래 요괴들이 윗요괴들 하라는데로 따르는 거니까, 서로 피곤한 건 똑같은 거지, 뭘. 암튼 수고하라고.”

여전히 못마땅했는지 궁시렁거리는 테위에게 레이센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모미지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들어갔다.

그 둘을 바라보며 "달에서 온 것들이야."나, "영원정은 달 출신일 뿐이라지만. 그래도." 외에 "뭔 배짱이지." 또는 "달은 그 난리를 쳐놓고 사과도 없었잖아." 하며 비아냥거리면서 웅성거리던 부하 대원들이 다들 그만하고 복귀하라는 모미지의 말에 다시 궁시렁 궁시렁 제자리로 돌아갔고, 두 토끼가 등산로로 올라가는 것을 본 모미지는 다시 경비 임무를 수행하러 자신의 천리안으로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살피다가 초록색 머리칼의 무녀가 걸어오는 것을 확인하고서 시치미를 떼며 묵묵히 경비임무를 수행했다. 

“고생이 많네요. 모미지씨!” 코치야 사나에가 한참 뒤에 날아오면서 인사하자 모미지도 정중히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다.

“안녕하세요. 요즘 바쁘신 거 같던데 잘 지내세요?”

“신앙과 함께라면 만사형통이지요. 모미지 씨도 저희 신사에 한 번 오셔서 복을 받아야 산의 입구부터 모두가 운수대통 할 텐데 말이에요.” 사나에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핫, 말씀도 좋게 해주시고 참, 저 같은 요괴에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네요. 수고가 많으시잖아요. 여기저기 살피면서 지키는 일을 하는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러자 모미지도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아휴, 아닙니다. 저야 대텐구님이 맡기신 임무를 굳건히 수행하는 건데 수고는요.”

사나에는 오오누사(불제봉)를 뒤로 빼면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 저희 새로 생긴 참배로 때문에 일이 많아지신 거 아니었나요?”

그리고는 두 손을 허리 뒤로 모은 뒤, 미안한 표정으로 오른발의 발끝만을 땅에 대고 빙빙 돌리면서 말을 이었다.

"저희야 그런 호의에 참배객이 많아져서 좋지만 그 때문에 산의 자연 복구 작업하기도 바쁘신 마당에 기존의 로프웨이 대신 산을 깎고 길을 닦아 참배로를 만들고 나선 경비를 맡은 텐구분들이 엄청나게 바빠지셔서 항상 죄송스런 마음이었는데요. 더구나 출세하셨다고 들었는데도 지켜보는 일은 달라진게 없으셔서..."

“물론 몇 달 전에 옛날 일에 사과도 하시고 요괴의 산과 그쪽 모리야 신사 간의 협정이 타결되어 친선교류 차원상 저희가 양보한 부분개방 조항 때문에 일이 많아지긴 했죠. 그래도 보시다시피 만들고 나서는 검문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경비 서는 거야 똑같고요. 우리 산에 필요한 제 막중한 능력상 항상 굴림당하던 요괴가 체력 걱정할 리 없잖아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모미지가 웃으며 사나에를 달래자 사나에도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후훗, 그러셨구나. 저희 신사에 신도들이 간편하게 올 수 있는 참배로도 허용해주고 많이 개방되어 간다는 게 느껴져요. 수고가 많은 요괴의 산과 텐구 분들께 머지않아 기적이 찾아올 거예요!”

모미지가 붉어진 얼굴을 못 가누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 사나에의 옆을 툭툭치며 말했다.

“에이, 말씀도 참. 흐흐, 저흰 대텐구님이 허락하시고 저희에게 명하셨으니 충성을 다해 따르고 있는 것 뿐 입니다. 그래도 덕담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어디 가시는 길인가요?”

“물론 당연히 신앙을 모으러 가는 길이에요.” 사나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미지는 웃으며 사나에를 쳐다보다가 슬며시 화제를 꺼냈다.

“저기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만.”

“무엇인가요? 모미지 씨.”

“물론 별건 아니고 사소한 일입니다만. 불경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간에 아야 씨를 내팽개쳤다는 소문이...”

모미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실실웃던 사나에의 얼굴이 싹 굳으면서 격분하며 모미지에게 쏘아붙었다.

“그 천벌받을 까마귀는 말도 꺼내지 마세요!! 정말 무례하다 못해 기본 상식 자체가 없는 텐구니까요!! 카나코 님과 스와코 님도 그때 얼마나 격분하셨는데요! 그것만으로도 말 다 한거죠!"

모미지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나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아니 글쎄, 신사에 허가도 받지 않고 함부로 쳐들어와선 하는 말이, 뭐, 하참, 기가 막혀서. 온갖 사심 가득한 질문들을 꺼내고는 동의도 없이 기사로 내겠다고 해서 제가 대놓고 쫓아냈죠.”

“아, 그렄쿤요.” 모미지가 아야가 쫓겨나는 상상을 하면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럼요. 어쩜 그리 자기 멋대로인지. 카나코 님이 저것 좀 쫓아내라 하셨는데 뻔뻔하게도 화난 카나코 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서 제가 강제로 무력행사를 해서 쫓아냈죠! 그 까마귀도 참 억척같이 귀찮게 하고선 사실대로 쓰지도 않는 주제에! 어, 가만!"

화를 씩씩 내던 사나에는 모미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모미지 씨도 아야 씨 무척 싫어하시지 않아요? 제 기억엔 분명 붙어 다니시다가도 서로 싸우셨던 게 떠오르네요.”

“그냥 뭐 좀.. 마찬가지로 태도가 워낙 무례해서야 말이죠.” 모미지가 거들자 사나에가 웃으며 맞장구 쳤다.

“아하핫. 그쵸? 그쵸! 그것봐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조금이라도 상대가 기삿거리로 보이면 눈빛이랑 태도가 돌변하는 게 참, 이번에도 두 분에게 사죄드리고 잘못을 만회하겠다고 무슨 부탁을 했나 본데요. 누가 봐도 결례죠. 결례. 대체 신을 어떻게 보는 건지.”

사나에는 생각할수록 기가 찬 지 팔짱을 꼈다.

"다른 텐구 보는 눈도 그런데 오죽하겠어요." 모미지도 덩달아 혀를 내둘렀다.



요괴의 산에서 할당받은 시체를 수레에 담아 거둔 뒤, 지령전으로 돌아가려던 오린은 사나에와 모미지가 신나게 떠드는 것을 보고 뭔 뒷담화를 저렇게 대놓고 열심히 까나 흥미롭게 바라보며 다른 텐구 경비대원에게 시체와 관련 서류, 출입증을 건네받고 출입통제소를 나섰다.



한참을 떠들다가 사나에가 자리를 떠나자, 부관이 건네준 출입기록 일자에 싸인을 해주고 초소로 들어가려다가 멀리서 아야와 코코로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것을 천리안으로 발견한 모미지는 ‘또 시작이군.’이라며 하소연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짜증을 부린 후, 초소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항아리에 든 물을 들이켰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들이 오지 않자 턱을 괴며 무료해진 모미지는 자신의 능력인 천리안으로 그들을 찾아보면서 ‘느려터진 것들’이라고 혼잣말했다가 그것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부하들의 시선들이 눈에 밟혀 머리를 긁적였다.

큰 배낭를 멘 채 자신의 문화첩에 무언가를 적으면서 코코로와 떠들던 아야가 출입통제소에 들어서자, 모미지가 직접 나와 인사하며 말했다.

“또 무슨 일이죠?”

“당연히 취재하러 가야죠! 냉큼 따라오세요.” 아야가 배낭을 던져준 뒤, 손짓하며 말했다.

“어서 따라오라고! 이 몸은 얼른 더 배워서 강해져야 한단 말이야!” 코코로도 아야를 거들며 외쳤다.

“대체 이 요괴 애한테 뭔 수작을 부리는 겁니까?”

모미지가 집어든 배낭을 반사적으로 멘 채, 한숨을 길게 쉬면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수작은 무슨. 우린 날씨 이야기를 한 걸요. 멀리서 봤을 테니 알 거 아네요.”

“아니, 내 능력으로 멀리 있는 걸 볼 수는 있지만, 그 거리까지 들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응? 그럼 뭐야. 멀리서부터 지켜보면서 의심한 거야?” 코코로가 노인 가면을 꺼내며 친근하게 묻자 모미지가 난색을 보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모미지는 당황하면서도 왜 이 텐구에게서 풍겨오는 달짝지근한 냄새를 느꼈다.

“그런 게 아니면 빨리 가죠.” 아야가 모미지에게 메고 있던 배낭을 던진 후, 박수를 한번 치고 상황을 정리하며 모미지를 등 떠밀었다.

"저기 잠깐. 혹시나 해서 내가 개가 아니라 개과라서 그런데 아까 내가 맡은 냄.."

"말 길게 하지 말고 빨리 오기나 하시죠!"

말을 하지도 못하게 막은 아야가 자신을 끌고 가는 것을 본 부관이 남는 인원이 적힌 상황판을 고쳐 쓰며 또 나가시는 거냐는 푸념 섞인 말을 던지자 상관으로서 뭔가 태업 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볼 낯이 없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수인계를 마친 모미지가 한숨을 길게 쉬자, 한숨 쉬면 오래 못 산다고 코코로가 뒤에서 한소리를 했고 어차피 요괴라 저 꼬라지 그대로 오래 산다고 아야가 거들자, 역시나 둘이 한바탕 싸웠고 코코로도 껴서 서로 개인전으로 싸우다가 먼저 정신 차린 아야가 조금 낡은 대탠구의 명이 적힌 서류를 꺼내자 그 즉시 모미지가 할 수 없이 멈추면서 상황이 종결되었지만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다가 우여곡절 끝에 명련사에 도착했다.


AM 9시 명련사



햇빛이 드리운 명련사의 일주문(절의 대문) 앞에서 빗자루로 너저분하게 흩어진 흙먼지와 나뭇잎을 쓸던 쿄코가 허공에 물결처럼 퍼지는 흙먼지에 눈을 감고 기침을 한번 한 후, 눈을 한 번 비볐다.

느닷없이 강풍이 쿄코의 머릿결을 스치며 한쪽으로 몰아붙여 버리자, 쿄코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빗자루를 부여잡고 주변을 두리번 살폈다.

주위의 나뭇잎과 흙먼지가 강풍이 한쪽으로 몰아놓아 수북이 쌓여있는 것을 본 쿄코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다 일주문 쪽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니 그곳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아야와 머리와 옷을 정리하며 표정만큼은 무덤덤한 코코로, 방패를 만지작거리며 싫증 난 표정의 모미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바람이 적당히 부는 좋은 날이죠?”

아야의 말에 빗자루와 한꺼번에 모인 흙과 나뭇잎들을 살짝 번갈아 본 쿄코는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안녕하세요오옷!!!!!!!!!!!”

쿄코의 고음에 일찌감치 귀를 막고 얼굴을 찌푸린 모미지와 미동도 않는 표정과는 달리 가면은 놀란 표정의 가면으로 솔직한 코코로와는 달리 아야는 억지로 귀를 막지 않고 그 소음을 다 들은 뒤, 방긋 웃으면서 모미지와 어깨동무를 하고 코코로의 손을 잡은 채로 쿄코에게 다가가 말했다.

“일하느라 고생하는 거 같아서 저의 바람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거들어 드렸는데 괜찮죠?”

잠깐 멍하니 아야의 얼굴을 바라보던 쿄코가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그럼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잇! 야!! 1절만 해!! 1절만!!" 모미지가 여전히 귀를 막으며 윽박질렀다.

아야는 그런 모미지의 등을 툭툭 치며 적당히 하라고 면박을 준 뒤, 코코로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코코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한 뒤, 싱긋 미소를 지어주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었다.

“항상 지나가다 보는 거긴 하지만 쿄코 씨가 티는 안 내지만 문지기 일도 잘하시고 수고와 고생이 많아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참 보기 좋으니까요. 자, 피곤할 텐데 입가심하세요. 시장의 유명한 가게에서 산 화과자가 남았었는데 마침 잘 되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그런 데도 다녀왔나 보죠?” 모미지가 코코로의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코코로도 눈도 안 마주치고 눈치껏 말했다.

“난 먹었는걸.”

“멀리서 다 봤다면서 그건 못 봤나 보죠?” 아야가 어깨동무를 풀어 쿄코에게 화과자를 건네주고는 모미지를 비웃었다.

“내가 그쪽처럼 한가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못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이 단순하긴.” 모미지도 쏘아붙이며 말했다.

“그럼 가까이 있는 건 본단 이야기네요, 아까 좀 서로 손 좀 봐주는 통에 뭉개질까봐 걱정했는데 말이에요.” 아야가 화과자를 하나 더 꺼내 모미지의 눈앞에 비췄다.

“또 장난인가요? 아우, 그래도 이왕 준 거니 잘 먹도록 하죠.” 모미지가 질린 표정으로 받아들자 아야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쯧쯧. 그렇게 생각이 단순하긴.”

그러거나 말거나 포장지를 조심히 풀어 예쁜 모양의 화과자를 본 쿄코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한입 베어 문 후, 입을 오물거리며 맛을 느끼자마자 초롱초롱한 눈을 글썽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아야와 모미지는 덩달아 흐뭇해졌고 코코로는 그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아야가 펜과 문화첩을 꺼내 들면서 물었다.

“없어요!!!!!” 쿄코가 크게 답했다.

“아잇, 좀 조용해 말해줄 수는 없어?”

모미지가 귀를 막다 말고 짜증을 내자 쿄코가 살짝 위축되어 두 손을 빗자루에 모은 뒤, 조심스럽게 모미지를 살폈다.

“자자, 괜찮아요. 이 개가 하는 말 신경 쓰지 마세요.” 아야가 모미지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아니,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난 개가 아니라 늑대라니까!!” 모미지가 답답해서 짜증을 부리자 아야는 대답 대신 강력한 팔심으로 어깨동무 상태에서 팔을 안쪽으로 조금 틀어 힘을 주면서 힘껏 모미지의 목을 죄었고, 말문과 함께 숨통도 막힌 모미지가 놓으라는 뜻으로 으르렁거리면서 아야의 옆구리를 툭툭 쳤으나 아야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먀비코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한 모습이잖아요. 뭐 어때요?”

“둘이 싸우는 거야? 나도 껴도 돼?”

쿄코는 아야와 코코로를 슬쩍 쳐다보고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볼을 만지며 ‘그런가?’ 하며 혼잣말했다.

“쿄코 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역할에 관해 정말 잘 살아가고 있잖아요.“

“어? 어, 네!!!”

쿄코가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지르자 코코로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껴들지 못해 그저 쿄코와 아야를 지켜보았고 모미지는 상황 타개를 위해 아야의 긴장이 풀리는 때를 노렸으나 그녀의 근육은 물론 말초 신경계마저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자, 청소할 거리는 제 능력으로 해결되었으니 이제 쿄코 씨가 할 일은 끝난 거죠? 그럼 조수기악 새 곡은 언제 나오나요?”

아야가 직업 정신을 발휘하며 펜을 꺼내기 위해 자세를 틀면서 자연스럽게 풀려나온 모미지는 목을 어루만지다가 이 카라스텐구에게 검을 뽑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아야가 펜을 꺼내 문화첩에 적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충실한 직업 정신을 드러냈다.

“어, 어. 그거 미스티아랑 상의해야 해요!!!”

“응? 공연도 하는 거야?” 코코로가 전혀 안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요. 쿄코 씨는 미스티아 씨랑 같이 활동하는 세간에 아주 유명한 밴드라고요.”

“와, 진짜? 나도 유명한 건 뒤지지 않지만.” 코코로가 아야의 말에 춤사위를 보이며 답했다.

‘시끄러운 거로 유명한 거겠지.’ 모미지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쿄코의 표정이 너무 좋아 보여 괜히 좋은 분위기에 초 칠까 봐 말하지 않았다.

“코코로 씨도 보게 되면 춤출 때처럼 엄청나게 신날 거예요. 저번에 취재할 때 관람한 저도 들떴거든요. 엄청 자유분방하고 남이 던진 탄막을 붐 없이 다 피하는 것처럼 짜릿하고 흥미진진 하다니까요.” 아야가 신이 나서 코코로에게 말하는 사이, 모미지가 아야를 툭 건들며 속삭였다.

“저기 그거 예가 좀 괘씸한 거 같은데.”

“유명하다는 건 곧 인기. 그렇게 인기를 얻는단 말이야?” 코코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하죠. 맞다. 쿄코 씨 그럼 다음 공연은 언제인가요?”

아야는 모미지를 가볍게 무시하며 문화첩에 이것저것 적으며 쿄코에게 물었다.

“그것도 미스티아랑 상의해야 해요!!!!”

“그렇군요! 그럼 다음 기사에 싣게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가서 저번처럼 취재 겸 응원하러 갈게요.”

“그럼 그때 공연으로 승부하길 기대하겠어.” 코코로도 여우 가면을 꺼내 결투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세를 풀어 평소의 가면으로 돌아왔고 딱 봐도 질린 표정의 모미지와 방긋 웃으며 펜을 돌리는 아야를 뚫어지라 바라보던 쿄코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외쳤다.

“네!!!!!!”

그리고는 빗자루를 잡은 두 손까지 숙이면서 아야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표시로 인사를 하자 아야가 코코로와 같이 손을 흔들며 모미지를 끌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절의 안쪽에서는 이미 들어올 방문객은 다 들어왔었는지 한적했던 입구와는 달리 합장[각주:3]하는 사람들이나 걸어가는 사람, 시주하는 사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요괴나 불상에 절하는 요괴 등 다수가 만들어가는 다양한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뱌쿠렌이 사람들에게 설교하느라 한창 바쁜 쇼를 끌고 와 보좌를 하던 나즈린과 같이 그녀들을 맞이하자, 찾아온 일행도 감사의 예를 표하며 그들을 상대했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네. 그런데 생각보다 취재할 분들이 많이 안 모이셨네요?” 아야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거야 부르면 되죠.” 뱌쿠렌이 쇼와 같이 웃으며 말하자, 나즈린이 눈치껏 그 자리를 나섰다.

몇 분되지 않아 술병을 든 이치린을 끌고온 운잔, 늦잠을 잤는지 하품을 길게 내뱉고 부스스한 머리를 털며 걸어온 무라사가 나즈린과 같이 대웅전으로 들어오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이치린과 뱌쿠렌에게 모여졌다.

“에휴, 또 시작이겠군.” 상황파악이 된 무라사가 지겹다는 듯 푸념을 하자 코코로는 그저 무심히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 절에서 웬 술병이죠!”

뱌쿠렌이 ‘그것참, 해장술로 몇 잔 걸칠 수도 있는 거죠.’라고 음주파로서 조심스럽게 변호하는 쇼의 말을 외면하며 이치린을 꾸짖자 상황파악이 된 이치린이 앞머리를 움켜잡으며 긴 탄식을 하고는 술병을 밖으로 멀리 던져 버리면서 말했다.

“에이, 웬 술병이요? 보세요. 없잖아요?”

뱌쿠렌과 쇼, 무라사, 나즈린과 아야는 물론 모미지와 코코로마저도 무심히 쳐다보자 이치린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 제가 술병이 없어지는 마법으로 히지리 님의 말씀처럼 이 절에서 술을 없앤거예요.”

운잔마저도 깊은 탄식을 내뱉자 뱌쿠렌은 조용히 아야에게 말했다.

"혹시 저 모습 찍었나요?"

"아, 맞다! 찍어야지."

“아뇨. 저거 기사에 내지 마세요.” 뱌쿠렌이 분명 웃고는 있는데 손은 주먹을 쥐며 말했다.

“끄음. 고려해볼게요.” 가십거리를 놓치지 않는 그녀의 습관상 알겠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코코로는 그러거나 말거나 뱌쿠렌과 쇼를 주시하다가 말했다.

"뭐야, 그때 여자 승려네? 여기 대빵이지?"

"엄연히 말하면 최고로 높은 건 우리 주인이지만 뱌쿠렌이 그냥 실세 같은 거지. 뱌쿠렌을 중심으로 모였으니까."

나즈린이 쥐들을 시켜 던져진 술병을 바로 주워오며 대답하자 이치린이 기겁하며 화를 내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술병을 받아든 뱌쿠렌이 이치린에게 꾸중을 하다가 옆에서 술병을 받아든 쇼가 그새를 못 참고 조금이라도 남아있을까 술병에 입을 대는 바람에 둘이 덩달아 손님 앞에서 한소리를 듣는 광경이 펼쳐졌다.

"방금 건 찍지 않았지?" 나즈린이 민망해하며 아야에게 묻자, 아야는 대답대신 움찔하며 쳐다보질 않았다.

"원망스러워!" 코가사가 뒤에서 다가와 아야의 어깨를 짚으며 속삭였다.

"으앗!" 아야가 깜짝 놀라자 코가사가 신이 나서 우산을 돌려가며 혀를 내밀며 말했다.

"역시! 모든 건 타이밍이었어!"

"모든 건 타이밍!!!!" 따라온 쿄코가 복창했다.

놀란 아야를 본 모미지가 속이 시원해지면서 고소해 하는 사이, 코코로는 매우 벅찬 표정의 코가사와 난처해 하는 아야, 오히려 만족해하는 모미지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어, 옹기종기 모여서 재밌게 놀고 있구마. 그려."

때맞춰 마미조가 담뱃대를 들며 누에와 같이 들어오면서 인사하자 쇼는 박수를 크게 한번 치며 말했다.

"아, 다행히 누에 씨랑 같이 오셨네요."

"이 쥐들이 하도 시끄럽게 해서 말이지." 누에가 투덜거리며 자신과 마미조를 쫓는 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시 나즈린이에요. 착실하고 일 처리 하는 것도 확실하단 말이에요!"

쇼가 감탄하며 말하자 나즈린은 '뭘 그런거 가지고'라며 귀찮은 듯 볼을 긁적이자, 아야는 바로 만족스러운 듯 셔터를 눌렀다.

"어? 어! 뭐야!! 찍지맛!!"

"에이, 플래시 안 터지는 걸로 바꾸든가 해야지. 쯥" 아야가 시크하게 계속 셔터를 누르며 말했다.

"그냥 하던 거 멈추고 사과를 하지그래." 모미지가 보다못해서 아야에게 말했다.

"뭐야! 그러면서 계속 찍지 마!"

그렇게 방방 뛰는 나즈린이 아야와 승강이를 벌이자 쇼는 완전히 화제를 돌릴 겸 말했다.

"자, 그럼 아야 씨. 코코로씨도 그렇고 다 모였으니까 이제 슬슬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공양객 분들이 더 들어오기 전에 말이에요."

  1. 군에서 사용하는 검문 및 피아식별을 일축한 단어. [본문으로]
  2. ゆとり 융통성 [본문으로]
  3. 두손바닥을 합쳐서 하는 예법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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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마땅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하타테에게 아야가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따라와!”

“훗, 그러죠. 말투부터 뭔가 퍼부울게 많을테니 말이야.”

하타테와 모미지가 곁눈질로 서로를 살펴보고 스쳐지나가는 사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야가 순순히 따라 걸어 나와 따로 둘만의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도 무슨 꿍꿍이인진 모르겠지만! 네가 기자라면 당장 그만둬!”

“뭘 말이죠? 다짜고짜 무슨 말이래?”

“지난봄처럼 꾸미고 있는 짓 말이야.” 하타테가 아야를 다그치며 말했다.

“아? 아하. 아하핫! 꾸미다니요. 엄연한 취재라고요. 취재!” 아야도 지지 않고 맞섰다.

“취재? 기자란 엄연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직업이지 사건을 일으켜서 그걸 찍는 게 진짜 기자라고 볼 수 있는 일이야?” 역시나 지지 않겠다는 듯이 하타테가 몰아붙였다.

“어차피 사건 자체로서 있는 사실 그대로 찍었는데 뭐가 문제람. 그리고 결과가 좋으면 그걸로 된 거지. 당사자들도 만족하고 있고 엄연히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텐데.”

“기사를 쓸 탐욕에 빠져 사건 자체의 원인에 관여한 것부터 지금 기자로서의 본분을 너무 악용하고 있는 거잖아! 너를 진정한 기자라고 할 수 있어?”

“진정한 기자라. 난 이제 그런걸 바라볼 영역은 딱 봐도 글러먹어서요. 게다가,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그쪽은 진정한 기자라도 되는 모양이네?”

“뭐, 뭐얏?” 하타테가 왼쪽 눈만 한번 깜빡거리면서 당황하자 아야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과연 방안에 틀어박혀서 염사(念寫)[각주:1]로 찍은 사진이 직접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찍은 내 신문보다 기사로서의 가치가 있느냐는 거지. 사정상 발매가 늦어 같은 뒷북일지라도 말이야.”

“엑! 지금 너야말로 내 취재를 폄하하는 거야?” 하타테가 발끈하며 외쳤다.

“취재대상과 사건을 직접 사진에 담는 게 기자 아닌가? 그게 기자의 본분이고. 내가 꾸몄다 치더라도 이건 엄연히 현재에서 흘러가는 ‘사건’이고 내 신문은 그걸 취재하고 담고 있어. 하지만 염사(念寫)놀이에 취해서 직접 찍지도 않고 그렇다고 발매도 늦어 사건을 알리는 신문의 역할도 제대로 못 하는 그쪽 신문은 내 신문보다 못한 약소 신문인 게 당연한 거고. 난 적어도 사건은 아주 늦지 않게 보도했다고!”

“으으, 아야 너의 그 희망 사항에 맞춰진 그런 신문은 신문이라고 볼 수 없어! 그저 모두가 너의 각본대로 움직이는 너만의 소설일 뿐이지! 적어도 난 기사를 위해 사건에 관여하진 않았다고. 정당성 면에서 넌 기자로서 실격이야!”

“글쎄, 난 이미.."

답답한지 머리를 긁적인던 아야가 더 이상의 설명은 되었다는 듯,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네, 뭐. 잘 알겠어요. 주의할테니 그쪽도 직접 찍지도, 직접 현장에서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담아내지 말고 제때 발매하면 진정한 기자에 걸맞을 수 있을 거예요.”

"야! 내가 염사해 쓰는 건 내가 안 관여된 진짜 사건이거든!!"

아야는 화가 폭발한 하타테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렇게 불만이면 나처럼 직접 취재를 해오시던가. 읽어서 환상향이 어떻게 돌아가나 알 수 있는 소식지로 발돋음을 하시거나. 그러고 나서야 나에게 먼저 이래라저래라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될 것 같은데 말야.”

“으으으, 짜증 나! 지금 피장파장으로 때우는데 그런 입장이 아니어도 아닌 건 아닌 거거든! 억지 부리지 마! 이건 같은 기자로서 말도 안 되고 용납 못 할 일이라고. 기자는 지켜보면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입장이지 사건을 일으키며 관여해서는 안 돼!”

“참, 얘는 다른 기자요괴면 몰라도 눈치가 없어서 그런가 정말 백 번을 설명해줘도 모자랄 애네.”

머리를 긁적이던 아야는 웃으면서 돌아서며 말했다.

“어쨌든 너의 그 소리는 우리 붕붕마루 신문의 봄철특집을 아주 잘 감상했다는 소리로 알겠어. 이번 여름 편도 어떤 결과가 날지 모르니 기대하고 있으라고.”

“정말 아야는 말로 곱게 타이를 수가 없구나! 너의 주관이 가득한 사건을 담은 그런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지?” 

"음.. 사회적?"

어이가 없어진 하타테를 보고 너 아니어도 골치아프다는 표정으로 한숨과 함께 아야가 쏘아붙었다.

“굳이 견제하고 싶으면 이런 소모적인 언쟁보단 신문에 사설이라도 넣어서 비판하고 상대하시지 그래.”

준비가 다 된 모미지가 뭔일이지 하며 아야 옆에서자, 아야와 모미지를 보고 하타테가 속이 터지면서 외쳤다.

“두고 봐! 내가 기자로서 기자의 본분을 망각한 너의 그 행태를 뼈저리게 반성토록 만들어주겠어!”

아야가 대답 대신 뒤도 돌아보지않고 손만 흔들며 걸어가자 하타테는 너무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모미지의 부관에게서 물 항아리를 건네받아 물을 잔뜩 마셨다.

"뭔 소리야."

"그런게 있어."

"아니 너 말고."

모미지의 퉁명쓰러운 말에 아야가 째려보며 외쳤다.

"모미지 얼른 가자고!"

"내 근무지는 내가 알아서 가니까 보채지마."

모미지는 푸념 뒤에 억지로 팔짱을 낀 아야에게 끌려가줘 주면서 하타테를 흘깃흘깃 바라보았고 하타테도 물을 계속 마시면서도 모미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후, 부관. 인수인계 시작한다. 나 없는 동안 니네 통제 좀 잘하고 있어. 감시 잘하고! 검문이 불응하거나 비행 및 출입 금지구역에 경보기 울리면 훈련한 것처럼 바로 차단선 꾸려서 나포하고.”

모미지를 쫓아온 부관이 인수인계를 받고 빈 항아리를 하타테에게 건네받자, 아야와 모미지 그 둘은 구름 한 점 없는 초여름의 하늘을 날았고, 근처에 설치된 펌프에 다시 물을 담은 다른 텐구 경비대원들이 붕붕마루 신문을 실내로 가져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오른쪽 주먹을 턱에 괴고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붙었다 땠다 하던 하타테는 무언가 궁리가 생겼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해가 뜨거운 빛을 땅으로 내뿜는 오후가 무르익어 갈 때쯤, 묘렌사 법당 안에서 토라마루 쇼, 히지리 뱌쿠렌, 운잔과 코모이 이치린, 나즈린, 무라사 미나미츠, 타타라 코가사와 카소다니 쿄코, 호쥬 누에와 후타츠이와 마미조까지 전부 모여 옹기종기 앉아 분위기를 살폈고 그들 앞에는 후타노 코코로와 아랑곳없이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대는 샤메이마루 아야, 그리고 도대체 자기가 여기 왜 있는 건지 모르는 이누바시리 모미지와 도교 최고위 관계자 토요사토미미노 미코와 소가노 토지코가 자리를 잡고 서로 눈치를 보다가 아야가 말을 꺼냈다.

“자, 관계자분들은 다들 모이신 거 같은데 이제 중대발표를 하겠습니다.”

“저기, 태자님. 왜 절에 왔는지 물어보기 전에 후토는 안 부르시는지요?”

그러자 미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걔 데려오면 이 절간에 불부터 질러서 안 돼.”

“하긴 불 보듯 뻔한 일이기야 하지만, 그럼 곽청아는.......”

“이 자리에선 절대로 안돼!” 미코가 쏘아붙이자 토지코는 ‘그럴 테지.’라고 생각하며 지켜보았다.

아야가 모두가 카메라에 들어오도록 뒤쪽으로 가서 플래시를 터트리며 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눈치를 보며 아리송한 표정의 얼굴들을 사진으로 담아내자, 미코와 쇼는 서로 서류를 각자 꺼내 들면서 미코부터 양해각서와 같이 든 합의서를 읽으며 말했다.

“이 시각 이후로 세 종교 간의 합의에 따라 모리야 신사 및 요괴의 산의 중재 및 감독하에 도교를 신봉하는 신령묘측의 대표로서 불교를 신봉하는 묘렌사에 대해 하타노 코코로에 대한 일정 기간에 따른 위탁을 정중히 권유한다.”

그러자 쇼도 합의서를 읽으며 말했다.

“이 시각 이후로 세 종교 간의 합의에 따라 모리야 신사 및 요괴의 산의 중재 및 감독하에 불교를 신봉하는 묘렌사의 대표이자 비사문천의 대리인의 권한으로서 도교 신령묘측의 하타노 코코로에 대한 위탁 요청을 정중히 받아들이는 바이다.”

그러자 아야도 카메라를 모미지에게 맡기고 자신을 찍으라는 손짓을 한 뒤, 합의서를 꺼내 들며 말했다.

“이 시각 이후로 세 종교 간의 합의에 따라 모리야 신사 및 요괴의 산의 대변인인 샤메이마루 아야는 불교와 도교의 위탁 과정에 대해 감독 및 고문 역할과 더불어 중재 역할에 충실하여 양쪽의 친선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세 명이 발표를 마치고 ‘7월 21일 현 시점에서 위탁이 종결되기 전까지 상대방에 대한 포교 및 공식적인 적대행위를 금지한다.’는 말과 함께 합의서까지 직접 바로 서명하자 그 세 명과 뱌쿠렌, 모미지를 제외한 모두는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이 경악하며 외쳤다.

“에엣??!!!!”

“자, 잠깐!!! 주인!! 잠깐만!!” 나즈린이 쇼를 끌어당기면서 말리며 말했다.

“아니, 태자님!! 그게 무슨!!!” 토지코도 미코에게 상소를 올리듯 외쳤다.

“히지리님.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그러거나 말거나 귀찮은 얼굴의 모미지가 그 광경을 아야를 대신해 카메라로 찍고 정작 당사자인 코코로는 주변을 살피는 사이, 이치린이 경악하며 뱌쿠렌에게 묻자 뱌쿠렌이 온화한 미소로 대답했다.

“보다시피 나름 역사적인 광경이지요.”

“아니, 그러니까 합의라는 건 말이죠. 말하자면 양쪽의 동의가 있어야.” 이치린이 땀을 흘리며 말했다.

“합의는 이미 끝났는데요. 뭘.” 뱌쿠렌이 더는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응답했다.

“태자님! 어쩌자고 저런 것들이랑 이런 합의를 하시는 겐지요!!”

토지코가 따지듯 묻자 미코도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자자,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네. 우리가 밑지는 장사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곤 마찬가지로 경악한 표정의 묘렌사 멤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믿기 싫어도 상호 간의 이득 상 맡기는 거니까 그동안은 멘레이키를 잘 부탁하네.”

미코의 말에 나즈린과 무라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미코가 당황하며 뱌쿠렌에게 말했다.

“지금 태도가 왜 이런 건가?”

“서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한 거니까요.”

코코로가 모인 모두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쿄코와 코가사, 쇼도 코코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이, 나즈린이 말을 이었다.

“우린 정확하게 이런 사실에 대해 듣지 못했는데요. 그냥 주인이랑 뱌쿠렌이 모이라고 해서 모인 거지.”

“맞아.” 이치린도 거들었다.

“하여튼 불교는 참으로 일처리가 어수룩한 종교로군. 이래서 믿고 맡기겠나?”

미코의 말에 아야는 머쓱여진 듯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기, 그게. 제가 아직 이 계획에 대한 엠바고[각주:2]를 걸어놔서 여기 분들은 몰라요.”

미코가 혀를 차며 한심하게 쳐다보자 쇼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한 시간 전에 뱌쿠렌에게 들었는걸요. 정말 뜬금없지만 저 역시 이번 위탁에 동의합니다. 양측의 무의미한 싸움은 결국 싸우는 우리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신자들도 지치기 마련이니까요. 서로 상생을 도모하면서 종교적 차이를 인정하고 화합을 이루는 것이 서로의 위신과 함께 양측 간의 종교적으로 성숙한 면모를 아야 씨의 신문을 통해 만천하에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코코로 양이 우리 절에 있는 동안은 감정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약속하죠.”

“그럼 못 미더워도 약속이니 일단 믿고 가보겠네. 언제든지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와서 감독하러 올 터이니 괴롭히지 말고 보필 잘하고 잘 대해주고 신경을 많이 쓰도록!”

미코의 말에 무라사가 피식거리며 말했다.

“누가 들으면 얘 시집보내는 줄 알겠네.”

그말에 몇몇이 웃자, 토지코가 발끈해서 외쳤다.

“무엄하다! 감히 태자님에게!!”

그러자 미코가 괜찮다는 듯 토지코를 말리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 도교가 이만큼 선심을 썼으니 그쪽도 화답하는 게 이치이지 도리인게지. 그럼 이 정도만 하고 맡겨두도록 하겠네!”

“태자님이 직접 나서신거니 합의를 깨는 짓이나 적대행위를 보여다간 해치울 테다!”

미코와 토지코가 말을 마치고 틈새로 사라지자, 묘렌사의 멤버들이 멋적인듯 앉아서 주위를 살피는 코코로와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 부산하게 떠들고 아야가 웃으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코코로에게 말했다.

“자자, 그럼 코코로양은 들은 대로 묘렌사 일동 분들이랑 있으면서 감정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같이 겪을 거예요.”

“감정을 알아간다고?”

코코로가 황당해 하며 자신의 수많은 감정을 담은 가면들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난 이미 감정이 풍부해. 뭘 더 알아간다는 거야?”

그러자 아야가 냉철하게 말했다.

“엄밀히 말해서 감정표현이 풍부한 거지. 그 감정이 어떤 건지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자 코코로는 화난 표정의 가면을 보이면서 말했다.

“흥! 난 내 가면들을 충분히 알고 쓴다고!”

그리고 슬픈 표정의 가면, 기쁜 표정의 가면 등 여러 가면을 차례차례 보이면서 말했다.

“난 내 감정을 충분히 알고 있어! 무시하지 말라고!”

이치린, 나즈린은 뱌쿠렌과 쇼까지 끼어들어 계속 승강이를 벌이고 누에는 마미조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무라사, 코가사와 쿄코가 코코로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와중에 아야는 웃으면서 말했다.

“코코로 양은 가면이 몇 개가 되죠?”

“한 66개 될걸?”

“그래요? 66개라.” 아야는 진지하면서도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흔히 쓰이는 말 중에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을 그 66개의 가면으로 상황에 맞게 잘 쓰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코코로가 반야의 가면을 꺼내 분노를 표현해 보이자, 가면의 영향으로 실랑이를 벌이던 나즈린과 이치린, 쇼와 뱌쿠렌의 언쟁이 격해지기 시작했고 무라사, 코가사와 쿄코, 마미조와 누에도 분노에 휩쓸려 언성을 높이면서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자 검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는 모미지의 팔을 붙잡은 아야가 다른 손을 펴서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자잣!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죠?!”

코코로의 능력에 의해 주변 인물들에게도 감정의 영향이 미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아야가 마찬가지로 화를 내며 말하자 코코로가 다시 평범한 여자가면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물론! 감정의 요괴한테 감정에 관해 묻다니 실례되는 말 아냐?”

아야는 이치린과 나즈린이 쇼와 뱌쿠렌에게 급히 사과하고 다른 요괴들이 싸움 구경한 티를 안 내려고 눈치를 보는 것과 모미지가 놀라서 검을 황급히 떨쳐내는 것까지 지켜보면서 말했다.

“글쎄요. 그럼 양가감정(兩價感情)도 제대로 알고 표현할 수 있나요?”

“응? 양가감정?”

얼굴은 무표정한 코코로가 원숭이 가면을 보이며 곤란함을 표하자 아야가 말을 이었다.

“어떤 것이나 상황에 대해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을 양가감정이라고 하죠. 흔히 저 사람이 좋다가도 싫고 어떤 일이 몹시 두려우면서도 설레고 무척 즐거운 상황에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한없이 슬퍼지는 경우 같은 경우 말이에요.”

“그럴.. 수가 있나?”

코코로가 여전히 아리송한 말투로 아야를 쳐다보자 아야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요. 혹시 사랑하면서도 미운 감정에 대해 느끼는 대로 표현해 보실래요?”

“허허헛, 그거 재밌겠구마이. 으렵지 않을 터니 한번 해 볼텨?”

마미조가 격려하면서 코코로에게 묻자 코코로는 머뭇거리며 기쁠 때 쓰는 노인가면에서 즐거울 때 쓰는 방화범 가면, 슬플 때 쓰는 할머니 가면까지 선보이며 빙빙 돌리다가 화가 났을 때의 반야 가면까지 꺼내 들며 온갖 가면들을 선보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몰라. 그런 상반된 감정 같은 거 느낀다는 거 자체가 이상하잖아.”

“이상할 수야 있죠. 이게 심해지면 마음의 병이 되는 거니까.” 아야가 말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거예요. 그만큼 감정은 하나하나의 가면처럼 딱딱 끊어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한결같은 것 같으면서도 우발적이고 변화무쌍한 거니까요.”

“그럼 내가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다 알면 더 강해질 수 있어?”

코코로가 무척이나 궁금해하며 묻자 아야가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글쎄요. 감정의 요괴이니 감정에 대해서 잘 알면 감정을 조절하기가 수월해질 수 있으니 그만큼 강해지지 않을까요? 코코로 양의 감정은 주변에 있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아마 어떤 부정적인 감정으로 힘들어하는 대상에게 그 감정에 대해 더 쉽게 공감하고 존중하고 긍정적으로 바꾸어 그 부담을 덜어 줄 수도 있겠죠. 그럼 코코로씨의 영향력도 향상될 테고 다방면에 걸쳐서 강해진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자 코코로는 친근할 때 쓰는 노인 가면을 보이면서 재빨리 자신의 몸을 숙이며 말했다.

“그럼 너! 나에게 감정에 대해 가르쳐 줘!”

모미지는 그 말을 듣고 아야가 폭소를 터트리는 것에 의아해했다.

“그건 남이 말로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야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긴 하죠. 애초에 내가 내 감정도 잘 모르는데.” 이치린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럼 어떻게 배워?” 코코로가 아야를 향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야는 손을 펼쳐서 모두를 가르키며 말했다.

“자, 이제 그걸 일단은 이 분들을 통해서 같이 배우는 거죠.”

아야와 뱌쿠렌, 마미조를 제외한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아야가 말을 이으려다가 마미조가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알겠당께. 요 이 텐구가 아주 머리를 잔뜩 굴렸으니 말여.”

그리고는 코코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찌면 이게 네 복일지도 모른 일이니 말혀.”

“그럼 아야 씨와 우리 모두 잘 부탁하도록 하죠.” 뱌쿠렌도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하라는 건데?” 코가사와 쿄코가 눈치를 보는 사이 나즈린이 난처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우 답답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야기를 해야지!!” 누에가 짜증을 내자 마미조가 누에를 달래며 차분히 말했다.

“고것이야 저 텐구 입에서 듣는 게 좋겠제?”

아야는 코코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 이제 지금부터는 묘렌사의 임시적인 일원으로서 이분들이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지내면서 어떤 감정으로 서로를 대하고 표현하고 일상을 살아가는지 행동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게 교육이에요. 물론 다른 곳에도 들르면서 감정에 대해 느끼고 배워나갈 것이고요. 대신! 무조건 듣고 느끼고 보는 조건 한에서 물어보거나 표현하고 할 때만 감정을 표현하세요.”

“뭐? 그 감정을 가르쳐 달랐더니. 속은 기분인데?”

코코로가 못마땅한 표정의 가면을 보이자 아야가 달래며 말했다.

“일단 다른 요괴들이나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어떻게 느끼는지 경험부터 쌓는 게 우선이니까, 그 정도는 지킬 수 있죠?”

“저희 입장에서 봤을 때는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뱌쿠렌이 온화한 미소로 대답해주자 마미조, 운잔, 이치린도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한 듯 시크하게 바라보는 무라사와 누에와 달리 코가사와 쿄코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 지겨운 대화 언제 끝나나 벼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다 끝난 거지? 안녕! 난 타타라 코가사야!! 딱히 불교에 귀의[각주:3]한 건 아니지만 뱌쿠렌이 불러서 그냥 왔어. 난 카라카사(쓰지 않은 우산이 변한 요괴)라서 너처럼 츠쿠모가미야. 비슷한 츠쿠모가미로서 엄청나게 반가워. 어때! 놀랐지!!!”

난데없는 자기소개에 당황한 코코로가 황당한 표정의 가면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코가사는 들떠서 외쳤다.

“와하! 역시 기습적으로 해야 놀라는구나!! 내 능력이 인간을 놀래키는 능력이거든. 히힛!”

신나는 코가사와는 달리 코코로는 적나라하게 말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순간에 튀어나와서 놀랐어.”

그 말에 코가사가 실망하자 무라사도 황당한 표정으로 코가사에게 말했다.

“얘 말이 너무 사실이라 쉴드 쳐 줄 수가 없네. 미안,” 그리고는 코코로를 보며 말했다.

“난 무라사 미나미츠. 배유령이지.” 이치린도 끼어들면서 말했다. “전 쿠모이 이치린. 이쪽은 운잔. 일단 요괴지만 불교에 귀의한 몸이라 수행중이죠.”

“불경보단 술로 말이지.” 무라사가 태클을 걸자 주변 요괴들이 키득키득 웃었고 동시에 뱌쿠렌이 도끼눈으로 이치린을 쏘아보자 이치린은 당황하며 고개를 흔들며 손을 저었다.

“저번 일도 있고 허니 내는 알틴디. 후타츠이와 마미조. 너구리 요괴제.”

“난, 호쥬 누에. 그 이상은 알 필요 없어.” 누에가 무심하게 말했다.

누에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는지 코코로가 반야 가면을 다시 꺼내자 마미조가 코코로를 달래며 말했다.

“누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제. 정체불명의 요괴란 사정이 있응께 네가 이해해 줘야 하지 말허.”

“전 카소다니 쿄코!!!! 야마비코(메아리 요괴)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문지기 일을 하고 있어요!!!!!!!!!”

쿄코를 제외한 모두가 쿄코의 말이 끝날 때까지 귀를 막자, 코코로가 귀에서 손을 뗌과 동시에 이치린이 나지막이 말했다.

“웬만하면 쟨 건들지 마세요.”

놀랐을 때 쓰는 화들짝 가면으로 바뀐 코코로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응! 저 우산 요괴보다 더 크게 놀랐어.”

그 말에 코가사가 고개를 숙이며 축 처지자 무라사가 안쓰러운 듯이 말했다.

“진짜 미안. 이것도 도저히 쉴드 쳐 줄 수가 없네.”

“흐으그으윽으흑, 원-망-스러워. 으흑.”

“지금 안 놀라서 내가 원망스럽다는 거야?”

코코로가 저 요괴 왜 저러냐는 듯이 묻자 누에가 덧붙였다.

“아니, 오히려 지 자신일걸.”

“전 히지리 뱌쿠렌. 이 묘렌사의 주지승이죠. 지금은 마법사의 몸이지만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소중함을 설파하고 요괴들이 귀의하여 힘듦 없이 편안히 사는 세상을 꿈꾸며 이루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나즈린은 눈치를 보다가 쇼가 말하기 전에 재빠르게 외쳤다.

“난 나즈린. 쥐 요괴지만 비사문천 님의 부하지.”

“전 토라마루 쇼. 이 묘렌사의 본존이자 비사문천의 대리인입니다. 부디 좋은 가르침 받고 사무량심(四無量心: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과 미혹을 없애주는 네 가지 무량심, 자(慈)무량심[각주:4], 비(悲)무량심[각주:5], 희(喜)무량심[각주:6], 사(捨)무량심[각주:7] 을 통한 수행방법)을 증장시키길.”

그러자 코코로는 곤란해져서 원숭이 가면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허헛, 이게 습관이 돼서. 좋은 경험하라는 거예요.” 쇼가 머쓱여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아야와 모미지, 코코로에게 돌아가자 아야가 웃으면서 모미지에게서 카메라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전 샤메이마루 아야! 요괴의 산에서 온 카라스텐구이자 신문기자입니다. 보시다시피 취재 중이죠.”

“전 이누바시리 모미지. 백랑텐구이고 요괴의 산 경비부대 총대장이자 출입통제소장으로 근무중입니다.”

“난 하타노 코코로! 멘레이키(가면에 혼이 깃든 츠쿠모가미)야. 감정을 다루는 요괴지.”

“자, 그럼 자기소개들은 얼추 다 끝난 건가요?”

쇼가 온화한 미소로 물어보자 아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격식 차릴 필요 없겠네.” 아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쇼가 돌변하며 말했다.

“히지리. 새 손님도 왔는데 이야기도 나눌 겸 술이나 하죠? 대화는 술자리로 트는 거지.”

“이 절에서 술은 안 됩니다.” 뱌쿠렌이 단호하게 외치자 이치린이 거들었다.

“그럼 고기는 구워도 되죠?”

“안돼요!”

“거참, 좀 마시면 어디가 덧나나! 술!!”

“안돼요!” 뱌쿠렌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술! 수우우울!!!” 쇼도 지지 않고 맞섰다.

코코로와 모미지는 저 양반이 아까까지 격식 있고 온화했던 그 양반이 맞나 쳐다보면서 코코로의 화들짝 놀란 가면과 함께 모미지도 황당하게 쳐다보자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즈린이 다가가 말했다.

“우리 주인이 실은 좀 감정적이라서. 비사문천님의 대리인이라는 체면이 있어 밖에선 그렇게 안 하지만.”

“그래도 손님이 왔는데 맞이는 제대로 해줘야 하지 않겠어?”

무라사가 차분히 말하자 한쪽의 틈새에서 미코가 튀어나와 말했다.

“우리 도교의 특사나 다름없는 손님을 이렇게 맞이하다니 격식도 없고 우습기 짝이 없구나!”

“안 그래도 이제 맞이하려 했었다구.” 근처에 있던 무라사가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자 쿄코가 미코를 보고 외쳤다.

“안녕하세요!!!!!!!!!!!!!!!!!!!!!!!!!!!!!!!”

미코가 너무도 시끄러워 재빨리 틈새로 사라지자 모두가 귀를 막았다가 다시 귀에서 손을 뗀 후, 몇몇은 쿄코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도교 쪽에서 자꾸 저렇게 틈새로 쳐들어오면 곤란한데.” 누에가 푸념하듯 말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만든 요괴니까 관심이 가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겠죠. 합의한 이상 왔다 갔다 하는 걸 문제 삼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공식적인 적대행위 금지라는 안전장치가 있으니 잘 지내보도록 해요.”

그리곤 뱌쿠렌이 누에와 마미조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 코코로양이 위탁된 동안에는 모두 따로 놀지 말고 무조건 묘렌사에 거주하면서 잘 지내도록 하세요! 코가사도, 나즈린도요.”

마미조, 누에와 나즈린이 뜨끔한 듯 놀라서 쳐다보자 뱌쿠렌은 단호히 말했다.

“그러니 나즈린은 당장 짐 빼서 오세요.”

그러자 나즈린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고 쇼는 나즈린의 어깨에 자신의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와! 그럼 나즈린도 이제 밤마다 얼굴 볼 수 있겠네! 따로 살아서 낮에만 보기 좀 그랬는데.”

“주인. 떨어져.” 나즈린이 짜증이 나서 쇼를 밀쳐내며 말했다.

한구석에서는 코가사가 실의에 빠져 있자 쿄코가 다가가 귀속말을 크게 외쳤다.

“코가사!!!!! 힘내!!!!!!!!! 기죽지 마!!!!!!!!!!!!!!!!!!!”

그 소리에 코가사가 화들짝 놀라서 짜증을 내려다가 자괴감에 울먹거리며 말했다.

“으흐흐흑. 내가 요괴인데 요괴에게 놀라다니. 엉엉.”

“으휴, 귀속말을 저렇게 크게 하믄 다 들리는 건 둘째 치고 귀청 떨어지겄어.”

마미조가 담뱃대를 입에 물고 누에가 부싯돌을 쳐대는 사이, 그들 곁에서 자리를 잡고 서 있던 아야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사진을 찍어대고 코코로는 그런 광경을 관찰하자, 모미지는 저번 봄처럼 아야가 준 카메라의 필름을 갈면서 자신이 여기 왜 있는지에 대해서부터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즈린이 쥐들을 불러와 무연총에 있는 자신의 집의 위치와 가져와야 할 물건들에 관해 설명하고 이치린과 쇼가 몰래 고기와 술을 반입하려는 계획을 너무 대놓고 세우려다가 자비로운 탄막과 함께 저지당하는 사이, 아야가 코코로에게 말했다.

“어땠나요?”

“그냥 자기들끼리 서로 떠드는 거잖아!” 코코로가 따지듯 말했다.

“아니죠. 저들의 대화나 상황을 잘 들어본다면 그들의 겉으로 보이는 말투나 표정, 감정에 대해 느끼는 것이 있으니까요.”

“음, 서로 언성 높이며 싸우는 거?”

“아직은 무리일 수 있으니 계속 지켜보도록 해요.” 아야가 사진을 한 장 더 찍으며 말했다.

"나 솔직히 사기당하는 기분이야."

코코로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의 가면을 보이자, 뱌쿠렌이 말을 꺼냈다.

“그럼 오늘은 첫날이니까 식사하고 이야기나 하면서 끝낼까요?”

뱌쿠렌의 말에 코코로와 아야가 고개를 끄덕였고 쇼는 아쉬운 듯이 말했다.

“술이 없잖아!!”

“고기도 없으니 술이 있을리가.” 이치린도 혀를 차며 말했다.

“하하, 둘 다 작작 좀 하세요.” 뱌쿠렌이 주먹을 들어보이며 그 둘에게 말했다.

“작작 좀 하세요!!!!!!!” 쿄코도 옆에서 거들었다.

모미지는 도대체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서 이 멘레이키가 뭘 보고 배우라는 건지 아야의 머릿속이 전혀 이해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잠자코 지켜만 보다가, 묘렌사 일동과 코코로, 아야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코코로와 같이 묘렌사를 나온 후, 그녀를 배웅해 준 뒤, 아야와 함께 요괴의 산에 돌아왔다.


한편, 신령묘로 돌아온 미코는 토지코와 승강이를 한참 벌이고 있었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약속을 하신단 말입니까! 네?”

“생각해보게나. 토지코여. 엄밀히 말해 멘레이키가 된 가면은 내가 만든 것이고 이 몸이 도교의 상징임과 동시에 내 손이 간 그 멘레이키도 우리 도교의 상징적 의미가 충분히 될 수 있다네. 그러므로 이런 자리가 잘못되면 불교와 요괴의 산, 모리야 신사에 모든 책임을 물으며 우린 쏙 빠질 수 있고 잘 되면 적에게 위탁까지 맡기는 우리의 관용과 높은 종교적 역량을 과시하는 것이니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는 것이므로 우리가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러자 토지코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풀지 않으며 말했다.

“태자님! 그럼 사실상 태자님이 만드신 가면이 요괴가 된 그 멘레이키가 불교쪽이랑 어울리다가 불교로 개종이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가 망신을 톡톡히 당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미코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어? 도교의 가르침에 그런 얄팍한 종교가 끼어들 틈새는 없다네. 게다가 그런 일이 있으면 믿고 맡겼더니 불교 쪽이 배신을 때렸다고 선언하고 약속을 파기하면 그만이지.”

그리고 덧붙이며 말했다.

“게다가 그 까마귀 텐구가 자기 잘못을 돌려놓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위정자가 보기에 안쓰럽지 않은가. 그 정도의 아량은 있어야 한없이 높고 열려있는 도교지. 잘하면 요괴의 산 쪽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는 것이고.”

토지코가 태자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단은 그런가 보다라고 혼잣말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무노노베노 후토가 튀어나와 외쳤다.

“태자님!!! 멘레이키가 불교로 배신했단 말씀입니까!!!!”

그러자 미코는 후토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후토여. 자넨 왜 말들의 앞뒤를 다 잘라 듣는 건가?”

“우리도 불교 놈들에게 지지 않고 포교를 해야 합니다. 태자님!!”

열혈 단신으로 자신의 신앙력을 설파하는 후토에게 미코가 귀찮은 듯 토지코에게 눈치를 줬고 토지코가 정말 대충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태자님! 결코 불교 놈들이랑은 손을 잡아선 안 됩니다!!”

피를 토하듯 열변을 내뿜는 후토에게 미코는 무심하게 턱을 괴고 말했다.

“자네 말대로 우리 도교의 신자를 많이 만들려면 인기가 필요하고 인기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는 덜 수 있는 거라네. 즉, 우리 도교도 진입 장벽 없이 더 쉽게 신자를 늘릴 수 있도록 이미지를 환골탈태[각주:8]할 때라네.”

“태자님의 깊은 통찰력에는 감명했으나 그래도 세상을 기만하는 그자들을 가만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방방 뛰는 후토에게 토지코가 합의서를 꺼내 들며 말했다.

“나도 아쉽게 생각은 하지만 서로 간의 공식적 적대 행위는 금지야.”

“그럼 비공식적으로 몰래몰래 하면 되지 않겠나!” 후토도 지지 않고 맞섰다.

“굳이 그걸 말리지는 않겠네. 대신 티 안 날 자신이 있으면 하라고.”

미코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토지코가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며 미코를 쳐다보았다.

“자, 이제 우리가 밑지지도 않는 장사와 같은 이 일에 대해 거론하고 싶지 않군. 곽청아는?”

“놀러 나갔습니다.” 토지코가 미코에게 대답했다.

“최대한 곽청아의 귀에 이 소식이 듣지 않도록 지금부터 모든 입을 닫는다. 분명히 뭔가 일을 벌여서 이 협약이 파투나는 것도 모자라 상황이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수습하는데 골치 아파질 테니까.”

토지코가 고개를 끄덕이고 강경하던 후토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자 미코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린 수행이나 하며 떡이나 먹으면 되는군. 히힛.”

 



7월 22일 금요일 AM 8시 요괴의 산 (교육 1일차)



다음 날, 검문검색 및 경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던 모미지는 대문을 나서면서 저 멀리까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가 그저께 밤을 새워 먹을 갈아 쓴 샤메이마루 아야에 대한 탄원서를 품 안에 잘 챙기고 근무지인 통제소로 날아갔다.

통제소에 도착해 당직사관에게 업무를 인수인계 받고 검과 방패를 찬 그녀는 곧장 행정 부서로 들어가 지난번에 봤었던 작전과 텐구의 자리로 걸어갔다.

“엇! 오셨습니까.”

“행정 업무상 급하게 상부에 처리해야할 공문인데. 혹시 대텐구님에게 다이렉트로 보낼 수 있나?”

모미지에게서 공문을 건네받은 텐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최대한 빠르게 보내 보겠습니다. 오늘이...... 22일 금요일. 그러고 보니 대서(大暑[각주:9])네요.

공문을 처리하는 텐구를 바라보던 모미지가 주변의 일하는 텐구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작전과에 병력이 많이 배치되었다던데 그렇게 많아 보이지도 않네.”

“네?” 작전과 텐구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건 무슨 반응이야? 너희가 잘 알 거 아냐.”

그러자 그 텐구가 눈치를 보더니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일할 대원들에 비해 일이 얼마나 많은지 계속 연등이라 저희 죽어 나가요. 가뜩이나 더운 날씨인데요.”

모미지는 ‘뭐지?’ 하며 당황해하면서 '단순히 소문이었나?'라고 의아해한 뒤, 아야에 대한 부당한 권력남용을 규탄하는 탄원서와 병력 증원을 요청하는 공문까지 새롭게 써서 제출하고 나서려 하자 작전과 텐구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경비대장님. 이거 받으시죠."

"응? 뭔데."

모미지가 상당히 익숙한 탄원서 뭉치들을 받아들자 작전과 텐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상부에서 다 거절해서 반송되셨습니다."

"이거 대텐구 님에게 까지 올라간 건가?"

"글쎄요. 아마도 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모미지가 탄원서마다 '귀관의 사정은 알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정이 있어 임무 교육상 열혈이 임하기 바람'이라고 대텐구의 필체로 써진 것에 분을 삼키지 못하고 외쳤다.

"이봐, 이 공문 우리 산에서 가장 높은 텐마 님에게 직접 보낼 수 있나?"

"네?!"

작전과 텐구가 기겁하면서 덜덜 떨며 외쳤다.

"아니, 아니, 지금 그게 무쓴 말씀이세요!  아무리 우리 병력의 핵심인 경비부대를 지휘하는 경비대장님이시라지만 정해진 보고체계가 있고 단계별로 올라가는 건데 그걸 건너 뛴다는 건.."

"할 수 있어? 없어?"

분노가 느껴지는 단호한 그녀의 말에 작전과 텐구는 한숨을 길게 쉬며 골치 아파 하면서 말했다.

"할 수야 있긴 하지만.. 비상시에만 쓰는 긴급 통문으로 바로 텐마 님에게 올려볼게요. 혹시 저에게 불똥 튀면 안되니까 작전과장님에게 보고는 할게요."

"어차피 작전과장이 내 밑인데.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걱정하지 마. 난 지금 엄청 절실하단 말야."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암구호 방금 바뀌었는데 궁금하시면 한번 보시고 가세요."

마지못해 공문을 받아든 작전과 텐구가 붉은색으로 된 도장을 찍은 후 특별한 케이스에 넣는 것을 확인한 모미지는 비문 케이스를 열어 '호랑이/여우' 암구호를 확인한 뒤, 탄원서 뭉치와 함께 터벅터벅 걸으면서 다시 통제소의 초소 안으로 돌아왔다.

“저기, 경비대장님. 부대 입구에서 찾으시는 분이 있습니다만.”

부관이 찾아와 묻자, 모미지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카라스텐구지?”

“네.”

“아우씨. 진짜. 이번에는 진짜 사달을 내든가 해야지.”

부관은 모미지가 투덜투덜 거리며 빠르게 숫돌을 꺼내 검을 날카롭게 가는 살벌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아야! 근무 중에 또 무슨 잡스러운 일..” 검을 치켜들고 초소 밖의 부대 정문으로 나온 모미지는 경비부대원이 암구호를 물어보며 겨누는 칼들의 날들이 화살표처럼 가리키고 있는 카라스텐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였다.

마찬가지로 시퍼런 검을 들고 살기를 보이는 백랑텐구들이 버럭버럭 외치며 자신을 경계하는 걸 본 하타테도 기겁하며 쳐다보았다.

"호랑이!"

"엥? 뭔 소리야?"

"호랑이! 문어에 답하고 움직이지 마!"

"응? 뭐? 음..  어흥?"

"문어에 더 틀릴시 구금하겠습니다! 호랑이!!"

"어.. 음.. 으허어엉?" 하타테가 두 손을 앞으로 허공에 할퀴는 시늉을 하며 소리쳤다.

“저,저기, 무슨 일이시죠? 출입 통제소의 출입 검색대는 저쪽 입니다만?” 모미지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당황하면서 검을 뒤로 숨기며 방패로 방향을 가리켰다.

아침 해의 빛을 받아 날이 반짝반짝 빛나는 날카로움을 뽐내던 검이 사라지자 하타테가 마음을 추스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후, 으흠. 역시 우리의 병권을 책임지는 경비대장이자 무(武)를 다루는 쪽이라 과격한가. 나랑 좀 같이할 대화가 있어.”

“이쪽은 근무 중이라 근무가 끝난 다음에 오시죠.” 모미지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야에 관한 거라고! 중요한 거야.”

하타테의 말에 눈초리가 달라진 모미지는 상황통제를 다시 부관에게 맡기고 경비대장실로 하타테를 데려와 문을 닫으며 말했다.

“다 나가리 된 줄 알았는데 벌써 공문이 처리되었나 보죠? 엄청나게 빠르군요. 대텐구 님이든 텐마 님이든 위에서 저에게 뭐라고 하시던가요?”

모미지의 질문에 하타테가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며 난색을 보이자, 모미지는 실망했다.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닌가 보군요. 하긴 그렇게 빨리 처리될리가 없겠죠.. 그럼 대체 무슨 일로 오신 거죠?”

“말하자면 긴데. 일단 내가 아야처럼 신문기자를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타테가 심각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

“나야 염사(念寫)의 능력으로 사진을 찍어 기사를 만들지만 아야는 직접 사건을 취재해서 찍잖아. 처음에는 내 신문이나 다른 텐구들의 신문보다 아야가 그렇게 신선한 사건들을 보도할 수 있는지 의구심도 들고 신기했었거든. 하지만 저번에 그 모든 걸 알았고, 몇 달 전 이거.”

모미지는 저번에 백옥루에 가서 찍은 사진들로 만들어진 붕붕마루 신문 봄철 특집 편을 보고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하타테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았다.

“알고 봤더니 다시 사건을 조작해서 기사를 쓰고 있더라고. 뻔뻔히도 말이야.”

자리에서 일어선 모미지는 문을 열고 다른 부하를 불러 차를 내오게 한 뒤, 자신의 서재에 올려진 붕붕마루 신문을 가져와 보이면서 정말 진지하게 들을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저도 그것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비로소 사정을 이야기할 대상이 저에게도 생겼군요.”

“뭐? 무슨 사정?” 하타테가 차를 들이키며 물었다.

“계절마다 무슨 특집기사를 쓰겠다고 대텐구 님에게 이상한 요청을 해서 저는 동의도 안 했는데 대텐구 님의 명으로 제가 아야 씨에게 연수를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정작 연수는커녕 필름을 가는 취재 보조로서 손이 많이 가는 허드렛일만 하고 있죠.”

“어, 일단 왜 끌려다니는지 이유를 몰랐었는데. 이제 알겠네. 이번에도 하고 있지?” 하타테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모미지도 차를 마시며 말했다.

“난 말이야. 밖에 나가긴 싫어하는 편이지만 엄연히 염사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기자라고. 각색이 들어가든 기자로서의 사심이 들어가든 간에 그 사건 자체가 일어나는 건 건들지 않아. 그건 기자로서의 본분이자 진정성, 도덕성에 위반되니까. 하지만 아야는 ‘목적’이 있는 사건을 고의로 일으켜서 소위 특종을 잡아내려 하고 있어.”

“기자가 아니라서 무슨 말인지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사건 일으키고 무척 골치 아프게 하는 건 사실이니까 공감합니다. 엄연히 경비대장이자 출입통제소장으로 임명됐는데 근무를 설 때마다 아야 씨가 대텐구님의 명령이 적힌 공문서를 보이며 연수라는 명목으로 끌고 나가버리니 귀찮은 건 둘째치고 애초에 천리안을 쓰는 제가 없으면 우리 산의 안보가 매우 위험해지고 그리 좋은 사이도 아닌데 얼굴 보며 부하직원처럼 움직여야 하는 것도 기분 나쁘고 제대로 된 근무수당 받기도 어렵죠.”

“그건 그렇고 공문서를 그렇게 사심을 들여 발급받았다는 건 대텐구님을 우롱한 거 아냐?”

“적어도 공문서위조는 아니니까 권력 남용에 관해서 탄원서를 오늘 올렸습니다. 대텐구 님도 뭔가 애매하게 거절을 하셔서 당혹스럽길래 텐마 님께 직접 보냈죠. 제대로 된 근무를 원활히 할 수 없다는 제 의견까지 다 적어놨고요. 지금 아야 그 속도 검은 까마귀는 대텐구님의 명을 가지고 호가호위[각주:10]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그 하찮은 신문도 구독자가 늘어나고 영향력이 향상될 수밖에요. 대텐구 님이 아야씨에게 권한을 줬으니 대텐구님에게 충성하려면 따를 수밖에 없는 아래 요괴니까요. 어떻게 자기 목적을 위해 합법적으로 잔꾀를 내어 대텐구님을 그렇게 속이고 남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지 참 치사하기도 하고요.”

“아야에게 이런 속사정을 진지하게 이야기 해 본 적 있어?” 하타테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말을 해봐도 소용이 없죠. 이번에도 무언가를 꾸미는데 거기에 얽혀서 명련사를 자주 들락거리게 생겼습니다. 저야 능력상 이때까지 이 요괴의 산의 경비를 맡아 왔으니 산에서 거의 벗어날 필요가 없어 다른 곳에 나들이 가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할 일도 많이 쌓여있고 무엇보다 꼴 보기 싫은 아야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게 무척 기분 상하는 일이죠.” 모미지가 못마땅한 듯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야가 꿍꿍이가 많다니까. 말해줘 봤자 고집도 세서 무시할 뿐 듣지도 않아. 그래서 말인데. 난 아야의 기자로서 진정성을 망각한 이 모든 연출을 폭로하여 아야를 정신 차리게 할 생각이야.”

모미지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정말로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하타테가 들떠서 말했다.

“간단하잖아. 그쪽도 대텐구 님의 위세를 빌려 자기 목적을 위해 명령을 해대는 아야가 싫고 나는 기자라면 하면 안 되는 사기를 쳐 보이는 아야가 미운 거니까 공동으로 배척해야 될 대상은 똑같잖아. 그래서 나에게 좋은 계획이 있으니 공공의 적을 향하여 서로 협력을 하자는 거지.”

모미지는 그 제안에 솔깃해져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문밖에 누가 있나를 살핀 뒤, 문을 잠그고 하타테에게 말했다.

“일단 그 계획에 먼저 들어보고 싶군요. 저로서는 최대한 협력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아야가 자신이 꾸미는 사건을 취재하는 중이라고 했지? 게다가 아야가 대량으로 찍는 사진들의 필름을 가는 일을 했다고 말했었잖아. 그날 취재에 대해 말해주고 그 필름 중 일부를 바꿔치기하거나 빼돌려서 입수한 후에 나에게 넘겨.” 하타테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나는 그 사진들을 가지고 아야가 이때까지 꾸민 사건들에 관하여 기사를 써서 독자를 우롱했던 모든 것들을 폭로하는 거지. 그럼 아야는 도덕성과 진정성에서 망신과 비난을 당할 테고 아야도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기사를 쓰려 하겠지. 그쪽이야 아야가 지금까지 자신을 속였단 사실을 안 대텐구 님에게 아야가 꾸중 받으며 제대로 망신당하거나 좀 과하면 징계도 받아서 반성하게 될 테니 앓던 이가 빠진 기분 일 거 아냐.”

모미지는 너무도 간단한 하타테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붕붕마루 신문이야 종이가 되려고 죽은 나무에 사죄해야 할 정도로 아무렇게나 적은 찌라시라 도덕성 면에서 외부적으로 별 타격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대텐구 님에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따끔한 소리를 들을 테니 아주 좋군요. 맘에 듭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타테 씨.”

“나야말로. 바꿔치기할 필름은 요청하면 구해다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 안 그래도 이번에는 묘렌사와 신령묘, 모리야 신사 쪽과도 얽혀있어서 아마 아야 씨가 그 망신을 톡톡히 당하게 될 것 같군요. 생각만 해도 속이 후련합니다.”

모미지가 진짜 앓던 이라도 빠졌는지 감격해 하며 하타테와 악수하자 하타테도 믿음직스러워서 모미지와 악수를 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잘해보자고!”

“그럼요. 무를 행하는 자에게 여부 따윈 없습니다.”

용건을 마친 하타테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돌아섰다가 잠긴 문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자 모미지가 직접 열어주며 말했다.

“아야 씨가 모리야 신사에서 망신당했던 것처럼 스스로 전전긍긍할 정도로 파장이 컸으면 좋겠군요.”

“응? 뭔 망신? 아야가 망신당한 적 있어?” 하타테가 물었다.

“아니, 기자라면서요. 이미 바깥엔 벌써 소문 다 났던 모양이던데”

“아니, 뭐.. 난 밖에 잘 나가지 않으니까. 염사가 아니면 소문 그 자체는 모르지.”

“임무 상 산 밖에 잘 나가지 않는 저랑 비슷하군요. 저도 들은 겁니다만 모리야 신사에 무리하게 취재하러 갔다가 두 신의 노여움을 사서 사나에 씨에게 대놓고 내쫓겼다던데요.”

그 말을 듣고 하타테가 폭소를 터트리자 모미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꾸미는 것도 취재 건도 있지만 모리야 신사에 잘 보이기 위해서도 있는 거로 보고 있어요.”

“아흑, 진짜 웃겨서. 눈물이 다 나네. 어떤 광경이었을지 보고 싶다. 그 자존심 강한 아야가 그렇게 톡톡히 망신을 당했으니 종교가들을 다 건드릴 만도 하네. 좋은 정보 고맙고 앞으로도 많이 좀 보내줘.”

하타테가 인사하며 경비대장실을 나가자 모미지는 환호성을 지르며 드디어 당하기만 하다가 아야에게 복수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십년 묵은 체중이 내려간 듯 들떠서 방안을 덩실덩실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히쭉히쭉 웃음이 나오는 표정을 관리하며 방에서 나와 경비용 초소로 걸어가다 무언가를 보고는 부하를 불렀다.

“야, 능선 쪽으로 3시 방향 공중에 느린 속도로 요정 다섯 접근 중이다. 비행 및 통제 금지구역으로 가까이 가고 있으니까 제재해.”

“네?”

부하가 급히 허공을 쳐다보았지만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급하게 망원경을 꺼내 모미지가 말하는 방향을 살펴보면서 무전기를 꺼냈다.

“비상!! 12번 초소 지역 방향으로 미확인 비행물체 5명 접근 중. 즉각 제재 바람!”

무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미지가 말한 방향에서 자동화된 경보장치의 사이렌들이 산을 진동하자 모미지가 심기가 불편해져서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아우... 이 소리 듣기 싫어서 최대한 빨리 말한 건데.”


  1. 노출 광선 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만으로 풍경과 대상을 찍어 내는 심령 현상 [본문으로]
  2. 일정 시점까지 보도금지를 뜻하는 매스컴 용어 [본문으로]
  3. 歸依:부처의 위엄과 덕망에 마음을 기울여 믿고 의지함 [본문으로]
  4. 한량없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 [본문으로]
  5.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고통의 세계로부터 구해내어 깨달음의 해탈락(解脫樂)을 주려는 마음가짐 [본문으로]
  6.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을 버리고 낙을 얻어 희열하게 하려는 마음가짐 [본문으로]
  7. 탐욕이 없음을 근본으로 하여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미움과 가까움에 대한 구별을 두지 않는 마음가짐 [본문으로]
  8. 換骨奪胎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낸다는 뜻으로 몰라보게 바뀌는 것을 의미, 도교에서 유래 [본문으로]
  9. 24절기중 12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하는 절기 [본문으로]
  10. 狐假虎威 남의 위세를 빌려 세도를 떨침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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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특집 1편, '그 봄날의 연출'에서 이어집니다)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사상, 종교적으로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원작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연성과 장르 연성상 2차 설정이 상당 수 포함되어 있는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미완성이므로 완성될 때까지 수정이 계속 가해지고 있습니다. 되도록이면 현재 올려진 부분은 맛보기로 여기시고 작품이 완성되면 보시길 권장합니다.


 

 

환상향에 도시전설이 구현화되던중 '아폴로는 달에 도착하지 않았다.'란 소문이 흘렀다.


그때와 비슷한 시기, 금속제 거미가 산에 나타났다

그 거미는 천천히 주변을 배회했다.

 레이무 "그래, 이상한 기계라니?"

 사나에 "그걸 발견한건 아침 이슬이 맺힐 무렵의 산에서였어요."


다른 어떤 환수와도 닮은점이 없는 모습을 한 거미. 그것이 지나간곳은 안개가 겆히고, 나무는 말라버렸다.

 레이무 "거미 비슷한 기계가 한 짓이야?"

 사나에 "살짝 본 것 뿐이지만, 요괴를 잘못보거나 한 건 아니에요."

 레이무 "캇파의 도구인가..."


기계가 지나간 뒤에 생명체의 기색은 남지 않는다.

하늘을 텐구가 날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거미의 기색을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거미는 산기슭을 바라보곤 천천히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나에 "정말 신경쓰이는 점이 있어요. 그 모양, 우연이라곤 생각할 수 없어."

 

안절부절 못하는 사나에


레이무 "뭐냐고, 답답하게스리."

사나에 "그거 큐리오시티랑 똑 닮었거든요."

 

                                                                                         <동방감주전 레이무&사나에 프롤로그 中>

 

──영원정.

카구야 "이제 때가 된 모양이네."

에이린 "무엇이 말인가요?"

카구야 "당연한거 아냐. 나는 이미 각오하고 있어."


당연한 대답에 만족한다.

에이린 "그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인간들로선 철저 타도하기는 글렀단 거겠죠. 하지만 우리들이 손을 댄다는건 저쪽이 원하는 바. 하물며 지상의 요괴라면 간섭조차 할수 없겠죠."

카구야 "그럼 어쩌면 좋지?"

에이린 "이를 위해 적절한 약을 만들어 뒀습니다. 이걸 레이센을 통해 무녀들에게 전해주죠."


──마법의 숲에 있는 마리사의 집.

갑자기 나타난 일곱개의 오컬트 볼.

그 중에 하나, 달의 도시의 볼이란건 대체 무엇이었는지에대해 마리사는 조사를 하고 있었다.


마리사 "아무래도 도시전설 소동은 이녀석의 원흉이었던건가……."

그렇게 마리사가 쩔쩔매고 있을때 달토끼, 레이센이 나타났다.


─금속제 거미는 정화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나무는 보이는족족 말라간다. 거미가 지나간 곳은 풀 한포기도 남지 않는다.

환상향이 완전히 정화당했을때, 그곳은 완전한 세계가 되겠지.


아름다운 무생물의 행성으로…….

 

                                                                                                                         

                                                                        <동방감주전 마리사&레이센 프롤로그 中>

 

 




일러스트: 산케 님 (twitter: @unisonote)  이미지의 저작권은 출처의 저작자에게 있습니다

<그 여름날의 연출>

 

 

Double Spoiler

 

 

장마철의 끝자락에 가까워진 7월 중의 어느 날, 비를 툴툴 털어내는 자욱한 비구름에 노을마저 가려진 늦은 저녁에 우산을 쓴 레이센 우동게인 이나바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괴의 산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소슬한 비바람이 우산에 부딪쳐 떨어지는 빗소리를 박자 삼아 더욱 입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수포를 덮은 가방을 조심스래 만지작거려 물기를 털어낸 레이센은 목적지인 요괴의 산이 눈앞에 들어오자 여전히 노래에 취한 상태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곱들어진 능선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삐익-’ ‘삐익-’ ‘삐익-’

그러나 그런 레이센을 반기듯 지표면에 군데군데 박힌 금속 덩어리들은 듣기에도 기분 나쁜 경고음과 함께 붉은 등불을 하늘로 내뿜었고, 순식간에 조건 반사처럼 무장한 백량텐구들이 튀어나와 살벌한 얼굴로 귀를 쫑긋 세운 레이센을 삽시간에 포위했다.

“정지! 더 접근하거나 검문검색에 불응 시 규율에 따라 구금 하겠습니다!”

나무와 풀 색깔이 어우러진 위장 우의를 입은 백량텐구들의 시퍼런 칼날들이 빗물을 머금고 그 날카로움을 빛내자, 그들의 살기를 우산 너머로 바라본 레이센은 특유의 붉은 눈으로 그들과 아래의 감시기들을 흩어보고는 우산을 빙빙 돌리며 빗물을 마치 탄막처럼 흩날리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에이, 난 또.. 자, 이거 보이지?"

레이센이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 달린 무언가를 유심히 살펴보던 백량텐구들은 서로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무전기에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칼을 내리고 경계를 풀며 말했다.

"7월 11일 월요일 15시 28분, 출입허가증 소지자 레이센 씨, 입산."

“아니, 자주 오시는 분이 한두 번도 아니고.. 출입증이 있으시면 정해진 장소인 등산로 정문으로 오셔야 이렇게 안 번거롭죠. 여긴 요괴의 산 융합령에 하위된 주민통제법에 따른 비행 및 출입금지영역이란 말입니다.”

야간투시경처럼 보이는 물건을 머리에 쓴 카라스텐구와 함께 다른 백량텐구가 무선통신으로 상황을 보고하고 그 전파를 몰래 엿들은 레이센은 그들이 상관인 모미지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서 웃으며 말했다.

“뭘, 난 너네 대빵이랑 잘 아는 사이라 이런 것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말이지. 어차피 예전에는 어느 쪽으로 오든 상관없었잖아."

"지난번 침공사건으로 산의 자연이 모조리 황폐해지다 못해 박살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죠." 대답한 텐구가 눈을 지그시 감고 치를 떨며 말했다.

"그러게, 하지만 그런 곳치곤 여긴 황무지는 커녕 오히려 자연이 울창해졌잖아. 거의 1년 조금 지났을 뿐인데 말이야."

레이센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하자 몇몇 텐구들은 당장이라도 공격할 기세로 무기를 대놓고 내보이며 살기를 내뿜었고 한 텐구가 기가 찬 표정으로 하소연을 내뱉었다.

"작년에 달 쪽에서 내려온 투명한 물체가 이 산의 모든 자연을 박살내는 바람에 저희의 모든 노동력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생고생하며 겨우 복구한 거잖습니까."

"흠흠, 그런것 치곤 엄청나게 자연스럽다는 거지. 귀찮게 한 거 같은데 미안해서 어쩌나. 아 참! 그것보다.” 레이센은 그녀들의 살기 어린 눈초리에 겸연쩍어서 헛기침을 한 뒤 지상을 가리켰다.

“저것들 은근히 시끄러워 죽겠는데 어떻게 못 꺼?”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바닥에 다수로 깔린 금속 덩어리들이 일제히 불빛과 소리를 뿜어내는 것에 귀를 아예 덮은 레이센이 투덜거리며 말하자 백량텐구들 중 한 명이 손짓하며 말했다.

“지금 캇파가 만든 동작 감지기가 작동 중이라 등록 안된 침입자는 출입금지 구역인 여기서 벗어나야 꺼집니다. 즉, 여긴 있으셔도 안 되고 절대로 들어오셔도 안 되니 저희랑 같이 정문의 출입 통제소로 오시죠.”

"참나, 저것들이 내뿜는 온갖 전자파에 산에서 뿜어져나오는 강한 레이더 파장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못해 멀미날 지경이라고."

"탐지상 끌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얼른 따라오시죠. 아니면 댁이 가지고 계신 멀미약 하나 드시던가."

레이센이 알았다는 듯 대답 대신 우산을 흔들자 그들은 무전기를 꺼내 대강 상황을 통제실에 이야기한 후, 레이센을 등산로 입구에 있는 출입 통제소로 안내했다.


통제소 입구에 들어선 레이센을 완전히 무장한 백량텐구들이 포위하고 레이센과 이야기를 했던 한 텐구가 시설로 들어가자, 곧바로 경비의 총 책임을 맡은 이누바시리 모미지가 비옷을 걸쳐 입고 방패를 등에 멘 채 검을 들어 레이센에게 다가갔고 부하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쪼르르 레이센의 앞에 섰으나 모미지가 자기가 하겠다며 부하들의 어깨를 잡고 밀어내고는 차분하게 귀를 세운 그녀를 살펴보며 말했다.

“대텐구님이 발령하신 주민....쯥. 늘 하는 거니 구구절절 생략하고 외지 분이시니까 입산 허가증 좀 보여주시죠.”

레이센이 능숙하게 코팅된 무언가를 건네주자, 비에 젖지 않게 비옷으로 상단을 덮고 바라본 모미지가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정식 허가증에 의해 출입 허가 확인되셨습니다. 외지분은 정해진 등산로 및 구역 외에 출입은 제한되어 있습니다만..... 보나 마나 약값 받으러 오셨겠죠.”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방수포에서 꺼낸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든 레이센을 본 모미지는 그저 모든 게 질린 듯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오키구스리(おきぐすり[각주:1]) 쓰셨던 거 수금 받으러 왔습니다! 어디 보자. 저번에 대량 주문하신 심장사상충 예방백신 및 심장병약에 감기약,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등 수인성 전염병약, 지혈제, 소독약, 자양강장제, 의약외품으로 쥐약에 살충제까지, 머릿수가 많으니 아주 대량으로 골고루 많이도 쓰셨네요. 자, 청구서요.”

“아우씨.. 가서 경리과 불러와.” 부관에게 명령을 한 모미지는 받아든 청구서의 금액을 보고 방안을 걸어가다 작은 상의 모서리에 다리의 뼈 쪽 부분을 부딪힌 거 같은 쓰라린 표정으로 짜증을 냈다.

“요괴적으로 가격 좀 내리면 안 됩니까? 아니 무슨 장사가 한철 할 것도 아니고 대량구매면 할인이라도 있어야지.”

모미지가 청구서를 허겁지겁 달려온 경리과 텐구에게 주면서 푸념했다.

“우리도 먹고 살자고 하는 거고, 이것저것 봐주다 보면 스승님에게 혼나요.”

"아니, 요괴가 좀 굶는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퍼주었으면 이 산만한 병원을 지었겠네.."

레이센도 떨떠름한 표정의 경리과 텐구가 준 돈 꾸러미를 받아들면서 말을 이었다.

"에이,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그나저나 나도 묻고 싶은 거였었는데 요괴면 원래 병에 강하지 않나, 단체로 이뮤노디피션시[각주:2]도 아니고 무슨 약들을 이렇게 받아 쓰나요? 우리야 좋지만."

"우리야 병으로 안 죽을 뿐이지 병에 안 걸리는 건 아니니까요. 특히 지금은 잦은 훈련으로 인해 소독약이 많이 쓰이고 위에서 걸리면 미칠듯이 아프다는 심장사상충이 극성이라고 해서."

“음, 단체생활에 찌들어서 쿨타임 끝나면 돌림병인가보지? 뭐. 그나저나 여긴 입구에서부터 들어가기 너무 깐깐해진 거 아네요?”

“뭐, 위에서 침입자를 막기위해 그러라고 하니까. 결국 우리도 여기가 반드시 방위해야할 최전선이고 전통적으로 까라면 까는 거니까 별수 없죠.” 모미지도 비바람에 젖은 꼬리털들을 수그리며 이 현실도 댁도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뿌리며 화답했다.

“핏, 결국 외부요괴인 우릴 못 믿어서 그런 거잖아요?” 레이센은 깐죽거리며 집게손가락으로 모미지를 여러번 가리켰다.

“그야 ‘믿는 토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모미지도 빗물에 충분히 적셔진 비옷을 털고 화답했다.

상자를 받아든 레이센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서 부관에게 우의를 벗어 건네준 모미지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인지가 되자마자 버럭 도끼눈을 뜨며 말했다.

“토끼가 아니라 도끼겠지!! 어쨌든 이렇게 들어가는 것 자체도 힘드니. 그쪽 지도층은 번거롭고 깐깐한 거 되게 좋아하나 보네.”

“텐마님이 발의하시고 대텐구님이 법령화한 주민 융합령, 이 산 안에서는 종족을 나눌 것 없이 모두 하나로 뭉치고 신분제 내에서 능력을 우선시하며 산의 외부 침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안보를 다진다. 그 하위에 있는 주민통제법에 의거 주민들은 각각 개인정보와 주소를 등록 후, 출입 및 산 내, 외를 엄격히 통제하여 주민의 안전 및 침입자를 막으라는 텐마님의 지시니까요. 우리 산에 오시려면 우리 산의 규칙을 따르시죠.”

“몰라, 그런 거. 그냥 외부요괴인 내가 귀찮으니까 그러지! 댁들도 은근슬쩍 마찬가지일테고, 물론 용건은 다 봤지만.” 레이센이 돈 꾸러미를 들쳐 보이며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다음번에도 우리 영원정의 약 많이들 좀 써줘. 그만큼 받아가게. 안녕! 잘 있어. 아, 아니다. 잘 있으면 약이 필요 없잖아! 드로우지[각주:3]상태도 괜찮으니까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만 아프면서 잘 지내!”

돌아서서 자기 갈 길을 다시 돌아가는 레이센을 모미지의 옆에 있던 경리과 텐구가 당황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대장님, 여기 결재란에 서명좀."

"아, 응."

"대장님도 참, 출세도 하실대로 하신 분이 저희 시키시지. 현장에 이리 나와계시고."

"맨날 하던 일인데, 너희가 나보다 잘보는 것도 아니고."

“뭐 그렇긴 합니다만. 어쨌든 저 토끼도 뭔 자기 말만 하다가네요. 듣는 입장에서 무슨 소린지 모를 정도로요.”

“약 파는 것들이 다 그렇지 뭐.”

푸념하며 준 돈이 아쉬운 듯 돌아가는 레이센을 바라보던 모미지는 경리과 텐구가 볼일을 끝내고 결재란과 함께 돌아가자 뒤쪽에서 누군가에게 검문검색 후, 경례하는 것을 보고 시선을 돌렸다.

“출입증 및 등록증 모두 확인 되셨습니다.” 다른 백량텐구가 서류를 확인하며 출입을 승인하자 커다란 배낭을 멘 카와시로 니토리가 모미지를 보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 그동안 잘 있었어?”

비에 젖을까 봐 관련서류를 허겁지겁 가방에 넣고 크롬코팅이 된 연장들을 꺼내는 그녀를 본 모미지가 검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하자 니토리는 여전히 장난기 많은 눈이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장비 점검 나왔는데 오늘 기계들 오작동 한 건 없었어? 고장 난 거라든지.”

"없었습니다. 캇파쪽에서는 직급이 가장 높은 기술부장인데도 직접 방문해주시는군요."

"뭘, 나야 능력이 워낙 출중하니까. 융합령으로 감투를 받아도 능력때문에 여기저기서 굴려지는걸. 경비대장이라는 감투를 쓰고도 현장에서 굴려지는 모미지랑 서로 다를 게 없지 뭐."

모미지는 그 말에 공감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휴,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연락 드렸던 것처럼 장비는 비행 및 출입금지구역에 잔뜩 깔아놓은 동작 감지기와 경보시스템은 작동하는 것 같은데 대형 탐조등 하나랑 저번에 만들어 준 야간 감시장비 5개가 고장 나서.”

“그래? 탐조등은 그렇다고 쳐도 야간 감시장비라.. 적외선을 쓰는 열영상장비를 말하는 건지 증폭관을 사용한 야간투시경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따로 빼놔서 내게 줘. 곧 수리해줄게. 참, 거기! 물건 받은 거 계산은 다 했어?”

돌아가고 있던 경리과 텐구가 허겁지겁 건네 준 서류를 읽은 니토리가 금액을 보고 영원정이 비싸게 받았다며 아쉬워하는 사이, 모미지도 부하들을 시켜 고장난 장비들을 꺼내오면서 니토리가 귀찮은 표정으로 연장을 꺼내들었다.

“비오는 날에 먼지 나겠네. 근데 이거 수리비 따로 나오는데.”

“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모미지가 다시 물었다.

“뭔 소리예요. 분명 모든 장비에 대해서 상부에서 준 예산 다 받았을 텐데.”

“에이, 그건 장비 구매 값이지. 유지 보수는 다른 거라고. 이 넓은 산에 음파, 초음파, 열, 적외선, 전파 등 다양한 탐지방법으로 동작을 감지하고 개별적 레이더 및 자체 탑재 충전 전지를 사용하는 첨단 경보기들을 양산해 잔뜩 뿌려놨는데 그 많은 것들의 에프터까지 합치면 내 노동력과 시간의 손해잖아.”

“하아.” 모미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잔뜩 젖은 비옷의 물 냄새와 장마라 초소 구석구석에 핀 곰팡내까지 신경 쓰일 정도로 착잡해져서 난처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던 경리과 텐구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초과 예산사용이 연달아 나온거 같으니까 예산 계획서 다시 써와야 할 것 같다.”

"네에..."

“너무 아쉽게 생각하지는 마. 엄밀히 그런 통제명령을 내려서 산에다 내 기계들을 잔뜩 뿌려놓고 경계 감시와 통제를 하게 한 건 너희 꼭대기에 있는 텐마님이잖아. '여러 계획'에 대해 캇파들에게 투자도 많이 했었고.. 애초에 이 환상향에서 구하기도 만들기도 힘들고 귀한 부품을 쓰는 비싼 물건들이라 깎아주기도 힘들다고.”

"뭐, 덕분에 침입자 감시는 수월해졌으니까요. 비료공장 운영은 잘 돌아가나요?"

"그럼, 위에서 아낌없이 투자해준 덕분에 산 복구사업 건으로 잘 돌아가고 있지. 수익도 솔솔하고."

니토리가 그렇게 말하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고장 난 물품들의 부품들을 교체하기 시작하고 모미지가 어깨를 주물러주며 격려해준 경리과 텐구가 수리하던 니토리와 흥정 후, 돈을 현금 지급하자 모미지가 조심히 걱정에 찬 표정으로 경리과 텐구에게 귀속말로 물었다.

“예산은 얼마나 남았지?”

“쪼들립니다. 무슨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그렇게 많은지 계획은 커녕 이번 달 부대 운영비 간신히 맞추겠네요. 장마철이라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며 보좌하던 부관도 거들었다.

“가뜩이나 빗물 때문에 무기 녹슬지 않게 손질도 해야 하고요. 다들 교대로 복구 및 토목작업도 있고말입니다. 그나마 빨래는 지령전과의 협약으로 작열 지옥터에서 말리니까 그나마 다행인데 비가 왔다 갔다 하니 보급과 위생이 문제죠. ”

“장마철 곧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 대텐구님에게 말씀드려 볼 테니까.”

모미지가 씁쓸해하는 부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짓자 부관과 그걸 지켜보는 경리과 텐구도 깊은 한숨을 쉬며 아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갑작스러운 기척에 놀란 모두가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자, 우산을 접고 엽단선을 가볍게 들어 보이는 카라스텐구 샤메이마루 아야가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굳이 상대해봤자 좋을 거 없을 거 같습니다만.” 부관이 말했다.

“어? 안녕! 잘 지냈어?” 니토리가 반가워서 공구를 흔들며 인사하자 아야도 화답했다.

“그럼요. 니토리 씨. 항상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럼. 내 일이고 돈벌이 하는데 당연하지. 언제 만나서 쇼기나 두자!”

모미지는 시퍼런 날의 검을 겨누면서 상당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야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가거나 들어오려면 통제소로 가야지 여긴 어쩐 일이죠?”

“통제소에 그쪽이 없던데.” 아야도 히쭉거리며 대답했다.

“무슨 용건인지는 들어본 다음에 쌍판때기 털어도 상관 없겠죠.”

“그럼, 이제 곧 장마철이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니까. 여름특집 취재 좀 하게 날 따라다니면서 도와줘야 하겠어.”

주변에 있던 니토리와 부관, 경리과 텐구까지 저게 무슨 소리인가 기웃거리는 사이, 모미지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아야에게 다가가 말했다.

“지금 대텐구님 명으로 이 요괴의 산의 유일한 출입구인 통제소 경계임무 총 관할을 맡고 있는 나에게 그쪽이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있을 거라고 으름장 놓는 겁니까?”

아야는 그 말에 지나가는 사람이 봐도 기분 나쁘게 비웃으면서 공문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아, 까하핫.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봄날의 이 공고문 잊은 거 아니지?”

모미지는 한동안 뇌리에서 잊고 있었던 공문을 보고 짜증이 폭발했다.

“아, 그래서? 지금 그거 다시 꺼내겠다고?”

“대텐구님 공문에 기간제한이 없으니 유효하지. 잊고 있었던 거 같은데 다시 읊어줄까? 하아, 진짜! ‘백랑텐구 이누바시리 모미지 귀관은 경계 및 수비 임무에 성실히 임하여 이곳의 안위를 지켜온 것에 대해 치하하나 앞으로 적의 다양한 침투 및 잠입 후 공작 등에 대한 수색, 호위 및 방어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는바, 기존 임무와 병행할 새로운 임무로 침투와 잡입에 능한 카라스텐구 샤메이마루 아야를 따르며 직접 연수를 시행할 것을 명한다’라고! 이제 기억이 확실히 나셨습니까?”

모미지는 부관과 경리과 텐구가 수군거리는 것을 본 순간, 이왕 싸운다면 먼저 친 쪽이 싸움을 지배하니 작정하고 한 대 쳐버릴까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지만 오로지 대텐구의 명이라는 생각에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그래서 날 끌고 뭘 하겠다는 거지?”

“후후, 기가 막힐걸. 늘 하던 거니까! 일단 초계임무는 부관에게 맡기고 따라오기나 해.”

니토리는 두 텐구가 뭘 하건 여전히 태연하게 모미지를 보필하는 부관에게 스페너좀 달라고 하면서 조수로 부려먹으면서 기계 수리에 집중하고, 나머지가 눈치를 보며 웅성웅성 떠드는 사이에 우산을 편 샤메이마루가 먼저 자리를 뜨자 모미지도 한숨을 푹 쉰 뒤, 부관에게 우의를 돌려받고 상황을 맡긴 채로 아야를 따라 날았다.

“자, 일단 나를 경호하는 임무부터 해볼까.”

“하아.. 장난치나..”

“장난?” 아야가 되물었다.

“그쪽이 어떻게 대텐구님을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부당한 처사인 걸 모르지는 않을겁니다.”

“응, 알고 하는거야. 바보야. 그리고 최고 상관이 명령했으니 까라면 까는 게 그쪽 원칙일 텐데?”

"말도 참 예쁘게 하네. 봄으로 족한걸 치사하게 또 써먹는다고?"

"응. 그럼?"

아야가 문제있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약을 올리자 모미지가 얼굴이 붉어질만큼 깊은 숨을 몰아쉬고 분노를 몰아붙였다.

“그쪽이 뭔가 얄팍한 속임수를 썼으니 그런 공문이 나왔겠지!!”

키득키득 거리며 웃음으로 답하는 아야를 보고 모미지가 화를 버럭 내자, 아야는 여전히 미소인지 비웃음인지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 어디 가는지 알아?”

“아우, 썅! 내가 어떻게 압니까! 어쩔수 없이 그쪽을 따라가는 걸.”

“그럼 잘 따라와! 도착하면 아마 알게 될 거니까.” 아야가 말했다.

“뭘?”

“이게 장난이 아니란 걸.”

  



7월 11일 월요일 PM 1시 30분  인간마을


어느 인간마을 한쪽에 자리 잡은 근사한 찻집으로 들어간 아야와 모미지는 그들의 우산과 우의를 받아든 점원의 안내를 받고 긴 복도를 지나 아주 깊숙한 곳에 배치된 어떤 방의 방문에 다다랐다.

"이런 데 올 돈은 있는 거겠죠?"

모미지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아야도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예약 다해놓은 거거든! "

"퍽이나. 기자 나부랭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

“있으니까 남 걱정은 할 필요 없고, 모미지는 이제 여기서 늘 하던 것 처럼 아무도 오지 못하게 경계 좀 서세요.”

“누굴 만나러 온 거부터 이야기해주어야죠.” 모미지가 아야를 향해 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어차피 얄팍하게 천리안으로 투시해서 문 너머 다 볼 거고, 문밖에서 다 들을 텐데. 뭐하러.” 아야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방문 안에서 기척이 들리는 것을 파악한 모미지는 대텐구의 인장까지 찍힌 공문서에 할 수 없이 방패까지 꺼내들고 문앞에 서자, 아야는 흐뭇하게 웃었다.

“천리안의 능력으로 잘 감시하라고. 이 자리가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니까.”

대화장소가 이렇게 깊숙한 곳의 방에 자리잡은 것 자체도 수상했기에 자신의 천리안을 쓰기도 전에 먼저 아야가 방문을 열고 들어갈때의 틈새를 놓치지 않고 방안을 살펴본 그녀는 곧바로 자신이 헛걸 보았나 천리안으로 다시 보면서도 눈을 의심했다.

“하하, 오래 기다리셨나요? 깨끗하고 올바른 샤메이마루 아야입니다!”

해맑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온 아야의 눈에는 묘렌사의 주지승 히지리 뱌쿠렌과 도교의 수장 토요사토미미노 미코가 상에 차려진 차를 마시며 아야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없는 동안 이야기 많이 나누셨나요?”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지. 후후.”

미코가 깐죽거리자 뱌쿠렌도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각 집단 대표들답게 앞에서 주고받는 것이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것보다는 서로 신경 덜 쓰이니까요.”

아야는 헤픈 웃음을 지으며 두 집단 지도자의 신경전을 그대로 지켜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바쁘고 귀하신 분들이 날씨도 안 좋은데 이렇게 몸소 회동(會同)에 나셔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리고는 서류하나를 꺼내 그들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자, 그럼 텐마님이 직접 허가와 함께 임명해주신 요괴의 산 대표로서 이번 담화에 주최자로 참석합니다.”

 

모미지는 검과 방패를 들고서도 일게 텐구가 두 종교의 거물들을 접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어서 천리안의 맹점상 주변 소리에 섞여 잘 들리지 않는 방에서 나는 소리를 어떻게든 듣기 위해 방문에 바싹 기대어 몸의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여기에 우리가 굳이 차만 마시러 온 건 아닐 텐데. 본론으로 들어가주시죠? 아야 씨.”

뱌쿠렌이 차를 들이켜면서 묻자 미소를 짓던 아야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요. 이렇게 서로 접견하는 자리를 제가 만든 건 당연히 목적이 있어서죠. 이번에 제가 여름특집으로 취재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불교와 도교 두 종교 간에 이미지와 관계도 개선하고 저도 저의 붕붕 마루 신문에서 아주 뜻깊은 기사를 얻는, 서로 이득인 획기적인 기획이 떠올라서 이에 대해 양측의 허가를 받기 위하여 어렵게 두 분을 모셨습니다!”

아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코는 포복절도하고 뱌쿠렌도 황당했는지 웃어버리자 아야는 머쓱해져 목덜미를 만졌다.

“아흑, 후흐히하하핫.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관계 개선이라닠. 아흑, 너무 웃어서 눈물이 다 나네.”

“아야 씨. 혹시 술 드시고 오신 거 아니죠? 텐구분들은 술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양쪽에서 시큰둥한 입장을 보이자 아야는 웃던 표정을 갈아치우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차피 두 분께서는 종교를 믿는 자들이 많아지는 ‘인기’에 대해 신경 쓰고 계시지 않나요.”

그 말에 지금까지 장난스럽게 보던 뱌쿠렌과 미코의 눈초리가 달라지자 아야가 말을 이었다.

“이제 제가 드릴 제안은 양쪽이 종교적 역량과 그만큼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꽤 참신한 계획입니다. 말 그대로 양쪽이 그러한 이득을 얻을 수 있죠.”

“글쎄? 그리 믿음이 가진 않는걸. 그쪽 신문처럼 말이야.” 미코가 비웃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우리를 끌고 왔다는 건 그럴만한 믿음이 있어서 그럴 것이니 일단 그 목적이나 들어보죠.” 뱌쿠렌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물론 제 계획은 간단한 거예요. 미코 씨가 만드신 츠쿠모가미인 감정을 다루는 능력을 지닌 하타노 코코로 씨를 도교 지도자의 허락 하에 묘렌사에 지내면서 그동안 감정에 대해 교육을 받는 거죠. 저는 그걸 감독 및 취재할 거고요.”

그 말을 들은 미코와 뱌쿠렌, 그리고 방문에서 몰래 엿듣던 모미지마저도 맥이 풀려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미코가 장난치냐는 듯이 묻자 뱌쿠렌도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야 씨. 다시 들어본다 한들, 정말 엉뚱한 이야기네요.”

“그리고 말이야. 내가 아주 완벽하게 만들어서 이미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요괴한테 무슨 감정을 또 가르친다는 거야?”

“에이, 그거야! 코코로 씨가 감정을 다루는 요괴니까 더 그렇죠! 저번의 ‘희망의 가면’ 사건도 그렇고 엄연히 가면이란 도구가 요괴화된 츠쿠모가미가 타인의 감정마저도 영향을 크게 끼쳐버리는 걸 두 분 다 보셨잖아요.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겠는데 지금 코코로 씨가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다스리고 감정에 대해 정확하게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음... 글쎄요?" 뱌쿠렌은 살짝 망설였다.

“오호. 계속해봐.” 미코가 흥미가 생겨 진지하게 들을 준비를 하자 뱌쿠렌도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면서 아야를 바라보았다.

“저의 오랜 기자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식견으로는 어떻게든 타인의 감정까지 영향을 미치는 그녀에 대한 안전장치를 위해선 그녀가 감정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러기 위해선 그녀가 다양한 대상들과 많이 만나보고 대화해보거나 이해해보고 수용해보려는, 즉 자기는 물론 타인에 대한 경험과 기본적 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도달하게 되었죠.”

"아니, 이미 멘레이키는 나를 포함해 다른 상대들과 많이 만나봐왔다네."

미코가 따지자 아야는 그저 웃었다.

"많이 '싸운'거죠. 적의를 빼고는 정식적으로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길게 대화한 건 아니잖아요?"

“그럼 말이죠. 그렇게 주장하는 아야씨가 생각하고 있는 그녀가 배워야 할 점이 뭐죠?” 뱌쿠렌이 물었다.

“후훗, 그건 바로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죠.”

“들어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 미코가 아야에게 딴지를 걸며 말했다.

“들어주면서 상대방의 기분 감정까지 파악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죠. 그건 충분한 대화와 경험이 싸여야 하는데 수행에 충실한 도교 측에서 종교적 규율에 따라 가르칠 때를 제외하고는 그런 이야기가 오간다고 보긴 사실 힘들잖아요.”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야. 하지만 난 내가 만든 멘레이키를 그쪽처럼 사심 가득하게 만들 생각은 없다네.”

“결국 그녀를 우리에게 맡기는 게 못 미덥다는 건가요?” 듣고 있던 뱌쿠렌이 오히려 미코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뭐, 그런 것도 있지. 아니 사실이 그래. 뭔가 볼모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누가 봐도 경쟁하는 상대 종교에 연수를 보낸다니 우리 쪽에서 뭔가 부족한 게 있다는 것이 되어 체면상 우습게 돼버리잖아.”

아야는 뱌쿠렌과 미코의 말을 곰곰이 들어본 뒤, 분위기를 환기할 겸 박수를 한번 치고 정리했다.

“들어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죠. 특히 남의 감정을 헤아려주면서 들어주는 거는요. 의사소통에 있어서 아주 기본적인 거지만 누구나 그 걸 가볍게 여기곤 하죠. 코코로 씨처럼 감정을 다스리는 요괴라면 감정을 이해하고 잘 알아야 남의 감정도 헤아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까지 다스릴 줄 아는 진정한 감정의 요괴가 될 텐데 자신의 정체성에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그녀의 본질이 아무리 도구라지만 엄연한 성격을 가진 개체인 걸 직시하자는 겁니다.” 그리곤 자신의 찻잔에 차를 부어 한 번에 들이킨 뒤, 덧붙여 말을 이었다.

“아우, 술이 아니니 목이 좀 컬컬하네. 아, 암튼 제 계획을 요약하자면 도교의 지도자분인 미코 씨가 만드신 코코로 씨를 도교의 상징적인 대상으로 두면서, 상당히 자유분방하고 개성적인 묘렌사 일원들과 같이 저희 통제에 따라 감정에 대해 배우고 지내보면서 더욱 성숙해질 교육을 받으면 일단 코코로 씨에게도 도움되는 일이죠. 저흰 그 과정을 취재하고 신문으로 대서특필해 선전 목적 겸 대규모로 환상향에 뿌릴 거고요.”

아야는 여전히 목이 말랐는지 자신의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묘렌사에서도 상대 종교에 속한 대상과 자유롭게 어울리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자비로움과 포용력, 도교 측에서도 기존의 어둡거나 베일에 싸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경쟁하는 상대측에 교육을 위해 허용해주는 관용과 높은 종교적 역량을 드높이는 거죠. 그래서."

그녀는 차를 다시 한 모금 음미하고 말했다.

"양측 다 서로 툭하면 싸운다는 국한된 인식에서 탈피해 언제든지 평화를 추구하는 고등적인 제스처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이해와 배려, 상호 존중. 상생 및 화합의 높은 종교적 수준을 과시하고 절로 호감을 느끼게 하여 자발적으로 다가가게끔! 하! 면! 서! 양측 다 서로 호감으로 인기도 얻고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계기가 될 거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도록 저도 갖은 노력을 다하고 좋은 신문기사를 만들어 뿌릴 것이고요. 자,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설명이 다 끝난 거 같네요. 저만 떠든 거 같긴 한데 뭐 정도 견적이면 서로 다 이득을 볼 것이고 서로 만족스러울 것 같은데요. 제 제안이 어떠신지?”

말을 끝낸 아야가 차를 마시자 뱌쿠렌도 생각에 잠기고 미코도 고민을 하다가 아야에게 물었다.

“충분히 우리가 손해가 아닌 이득을 보는 것이니 만족스러운 제안이긴 한데.”

“우리도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죠.” 뱌쿠렌도 거들었다.

“아, 그거야 당연하죠! 저도 좋은 취잿거리 하나 생기는 거라 얼마나 들뜬 지 몰라요! 빨리 끝내서 기사로 내고 싶네요.” 아야는 만족스러운 듯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서류들을 꺼내며 말했다.

“그럼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서로 양해각서를 채결해 주세요. 기본적인 규칙으로 연수 기간에는 서로에 대한 비방 및 공격을 중지하고 개종을 염려한 포교 및 종교분쟁을 자제한다, 멘레이키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 및 판단을 존중한다. 연수 간에는 양측의 이득과 성공적인 성과를 위해 각 당사자는 최대한 협력한다.’와 같은 기본 준수항목들을 담은 각서입니다.”

“뭐, 과거가 어찌 되었던 보내 주신다면 그동안은 저희가 따뜻하게 보살피겠습니다.”

“누가 들으면 입양 보내는 줄 알겠네. 그거야 당연한 거고. 저 텐구랑 그쪽이 얼마나 잘 가르쳐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서류를 받아든 미코와 뱌쿠렌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항목들을 읽자 아야가 다른 서류를 꺼내 들며 말했다.

“그리고 저는 요괴의 산 대표이자 모리야 신사의 대표로서 위임받아 요괴의 산과 모리야 신사의 입장을 대변하여 양측 대표로서 서명하겠습니다.”

그 말에 양측이 어이없게 쳐다보자, 아야는 야사카 카나코와 모리야 스와코의 싸인이 적힌 서류를 보여주었다.

"무임승차는 좀 그렇지 않나?" 어처구니가 없어진 미코가 바로 쏘아붙였다.

“괜찮아요. 저에게 전권을 이양했거든요. 잘 부탁드린다면서요.”

뱌쿠렌은 ‘어휴, 무슨 생각이진 모르겠지만 귀찮게 하지 말고 알아서 잘하세요.’라는 내용이 휘갈겨 적힌 그 서류를 보고서는 미코와 함께 기가 막힌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그랬었군요. 들어본 적 있어요.”

“그래, 나도 후토에게 들었었어. 그때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후후훗.”

아야가 두 명의 반응에 아까까지의 당당함은 어디 가고 부끄러워 얼버무리며 어찌할 줄 모르자 뱌쿠렌이 말했다.

“이번에 하는 것도 결국 모리야 신사에게 자기 좀 잘 봐달라고 하는 건가요?”

“하긴 한동네 사니까 눈칫밥 좀 오죽 먹겠어. 그쪽도 신사인 만큼 기사에 혈안이 된 까마귀의 취재대상 텃밭 중 하나일 텐데.” 미코도 거들었다.

“에이, 좀만 봐주세요. 상부상조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것도 겨우겨우 받아낸 거라 서로 관계개선을 위해서 서로서로 협조 좀 해보자고요.”

“그러니까 도교를 믿으면 근심도 없고 이런 경우를 볼 필요 자체가 없는데 말이야. 완전 개망신을 당했다지?”

“저기, 전 개가 아니랍니다.” 아야가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자 뱌쿠렌이 거들었다.

“그럼 새망신인가요?”

“어쨌든 망신은 망신이 아니던가. 후후.”

미코의 폭소까지 들은 모미지는 얼마 전에 소문으로 들은 샤메이마루 아야가 모리야 신사에서 무리하게 취재요청을 했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사나에에게 팽개치듯 내쫓겼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그럼 그렇지, 저 텐구가 또 사기를 치고 있구나.'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미코, 뱌쿠렌, 아야가 서로 싸인하여 채결한 양해각서를 살펴본 아야는 흡족해하며 각서를 챙겼다.

“자, 이로써 도교의 미코 씨, 불교의 뱌쿠렌 씨. 그리고 요괴의 산과 모리야 신사의 대리인 저, 이렇게 세 종교의 합작 계획이 시작됐네요.”

“엄밀히 말하면 저도 대리인이지만요. 우리 절의 대표는 엄연히 비사문천의 화신인 토라마루 쇼니까요.”

“에이 뭐야. 나만 표면적인 대표가 온 거잖아? 공정하지가 못해, 공정하지가. 후토를 보낼걸 그랬나.” 미코가 다시 깐죽거렸다.

“그럼 앞으로 세 종교의 공동 이익을 위해 그동안은 이 양해각서대로 상호 협력하는 겁니다.”

“그러도록 하죠.” 뱌쿠렌이 아야와 악수하자 미코도 마지못해 악수하며 말했다.

“불교는 싫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얼마나 서로 이득을 더 많이 볼 수 있을지는 두고 보자고.”

"그럼요. 우린 모두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거예요."

그 둘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아야는 대답하면서 볼일은 다 봤다는 듯 주변을 살피고 서류들을 챙겼다.

“그럼 장마철이 곧 끝나는 대로 시작하도록 하죠. 그럼 공동의 인기와 저의 기사를 위해서 서로 협조하는 외교적 성과로서 좋은 계기가 되도록 협력해보자고요.”

아야의 말과 함께 용건을 다 본 미코가 틈새를 통해 사라지고 뱌쿠렌도 차를 다 마시고 나가자 아야는 의기양양해져서 서류들을 귀중하게 챙기며 찻값만을 상에 둔 채 방문을 나섰다.

“이번에는 무슨 짓을 꾸미는 거죠?” 모미지가 검과 방패를 챙기며 물었다.

“하핫! 참! '짓'이라니 산 안에만 있다 보니 뭘 잘 모르나 본데, 이건 외교에요.”

“아니, 난 그저 저의가 궁금해서 말이지. 대텐구님으로도 모자라 모리야 신사와 종교 지도자들까지 끌고 와서 월권의 차원을 넘어 이런 일을 꾸미는 이유를.” 모미지가 말로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대화 수단인 검을 아야를 향해 들이대며 물었다.

하지만 그런 아야의 모습이 흐릿해지자 놀란 모미지는 자신의 뒤쪽에서 대답을 들었다.

“아, 글쎄. 외교적 차원이라니까 못 믿긴. 그렇게 믿음이 약해서야... 그리고 네가 검 휘두르는 것보다 내가 회피하는 게 더 빠른건 알고 있는거지요? 탄막도 마찬가지고."

잔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모미지가 뒤를 돌아보자 아야는 부채로 놀리듯 모미지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물론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솔직히 말하면 이번 여름의 특종을 위한 나의 조금 복잡한 계획이지. 저 두 종교 쪽에서 어떻게든 협력하기로 했으니 모미지도 대텐구님 명에 따라 나에게 협! 력! 을 하세요. 협력을! 후후후후. 이거 망치면 내가 모리아 신사 이름까지 판 만큼 대규모 종교전쟁 나는 거예요. 우리도 참전해서요. 이점 유의하세요.”

뭔가 이제 정도를 지나친다는 생각이 든 모미지가 반감이 생겨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아야는 그러거나 말거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벌써 기사를 쓸 생각에 들떠서 방방 뛰었고 흥을 주체하지 못해 돌아가는 길에도 문화첩과 카메라를 만지작 만지작거리다가 모미지를 끌고 요괴의 산으로 돌아갔다.

 



7월 15일 PM 7시  히메카이도 하타테의 집


며칠 뒤, 오랜 장마 기간 동안 자리를 잡고 슨 곰팡이 자국이 벽에 역력한 어느 방 한구석에서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긴 히메카이도 하타테는 자신의 폰카에서 무언가 찍히는 것을 느끼자마자 서둘러 폰카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염사(念寫)가 된 화면에 아야와 뱌쿠렌, 미코가 서로 담화를 주고받는 사진과 모미지에게 관련 서류를 보이는 사진, 그리고 사진기와 문화첩을 만지작거리는 아야의 모습도 담겨있자, 하타테는 멍하니 시선을 화면에 고정하고 가만히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책상에 있던 스크랩한 한 신문의 기사와 비교해보았다.

아야의 붕붕 마루 신문 봄철 특집 편 기사들과 폰카의 사진들을 바라본 하타테는 두 개의 연관관계를 분석하면서 봄의 사진과 더불어 15일 금요일을 가리키는 달력의 오늘 날짜를 확인하고 이제 곧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여름특집을 계획하고 있다는 가설을 세워보면서 다시 폰카의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또 아야가 기삿거리를 꾸미는 건가.”

아야의 봄철특집 기사처럼 기사란 일어난 그대로를 취재하는 것이고 기자는 그것을 취재하여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지 사건 자체에 관여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하타테에게 아야가 기삿거리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같은 기자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답답함에 기지개를 켜며 바닥에 누운 하타테는 폰카를 계속 바라보면서 말했다.

“결국, 이번에도 아야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취재하는 기자의 본문을 저버릴 생각인 건가.”

그리고는 일어나서 신문을 접으며 혼잣말을 했다.

“안 되겠어. 나가기는 싫지만, 이번에는 따끔하게 경고를 해야지. 같은 기자로서 더는 좌시하고 있진 않겠어.”

 





7월 21일 목요일 PM 1시 15분 요괴의 산 (합의 후 10일 경과)



그렇게 짧지만 강렬했던 장마가 끝나고 햇빛이 땅을 예열하면서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가자, 평소와는 다르게 산의 입구에 해당하는 통제소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하던 모미지는 더위에 못 이겨 혀를 내밀면서 구석에 모아둔 물항아리 중 하나를 들어 자신의 머리에 담긴 물을 끼얹었다.

“아우!! 더워! 더워!!!”

“저희 백량 텐구들의 털이 좀 따뜻하긴 하죠.” 부관도 더위를 못 참고 혀를 내밀면서 모미지에게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아니, 그것보다 부채는 너부터 부치고. 오늘은 왜 이렇게 방문객이 많아? ” 모미지가 물을 적신 수건을 자기 이마에 대며 말하자, 부관도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융합령 이후로 로프웨이 말고도 이번에 새로 신설된 모리야 신사로 가는 참배로의 참배객들이 많아진데다가 합법적 출입을 여기서만 할 수 있고 무엇보다 현재 저희 쪽에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이 없잖아요.”

“그랬었나. 헉헉, 잠깐! 왜 병력이 없어? '그 건'은 이제 다 끝난 거 아니었나?”

모미지가 수건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닦아내자 부관도 더 힘껏 부채질하며 말했다.

“요번에 작전과에 병력 증원요청이 들어와서 그쪽으로 증원되어 편제가 재편되었으니 별수 있나요. 더구나 곧 있을 '그 건'도 있고 나머지도 작년에 창설된 캇파 공병대와 같이 조경 및 물을 끌어오기 위한 지하수로 확장 공사를 포함한 산 복구사업 마무리로 지원에 작업 나간 덕분에 우리 경비부대만 교대 없이 일만 많아지고 출입 통제하느라 이 고생이죠.”

"이상하다. 분명히 내가 저번에 이번일을 끝으로 대텐구님이랑 캇파들에게 병력 좀 공식작전 아니면 빼가지 말라고 요청했던 거 같은데."

모미지는 입맛을 다시다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설마 나를 아직도 신분이 낮을 때의 백량텐구로 보고 위에서 무시한 건 아니겠지?"

"에이, 텐마님이나 대텐구님이나 주민 융합령으로 신분보다 지위만 보라고 했으니까 꼭 그런 영향은 아니겠죠, 저도 하도 이상해서 작전과에게 알아봤는데 이번에 위에서 대량으로 깔린 캇파의 감시, 경계장비들이 정상가동 중이라 병력이 많지 않아도 산들의 4면 경계가 커버 가능하다고 보고가 들어와서 작전과의 전술적 체계구축과 공병대의 신속한 시설보충 및 완공을 위해 TO(정원) 나는 대로 다 빼가느라 그렇답니다. 에휴."

그 말에 모미지가 깊게 빡친 표정으로 마른 수건을 꺼내와 물기를 닦으며 다시 검문을 시작하자 통제소로 들어선 카엔뵤 린이 웃으며 말했다.

“안녕! 지옥 불 예열하듯 슬슬 불타기 좋은 날씨지? 언니, 바싹 잘 말린 시체 수거하러 왔어.”

“좋은 날씨는 무슨. 출입증이나 좀 주시죠.”

린이 준 서류를 받아든 모미지는 혀를 계속 내밀며 체온을 조절하면서 서류를 돌려주며 말했다.

“7월 21일 목요일 13시 17분, 카엔뵤 린, 출입 허가되었고 참배객이 아닌 이상 외부인 출입 통제 구역 외에는 들어가셔도 됩니다. 저희에게 보고한 업무와 참배 외에 목적에는 밀착 감시에 동의하셔야 하고요.”

“응, 곧 여름이 다가오는데 이제 슬슬 지옥처럼 뜨거워지면 여기도 살맛 날 텐데!”

오린은 모미지의 정말로 빡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며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언니도 참. 히힛 농담이야. 얌전히 시체만 수거하다 갈게."

"안그래도 날씨 더운데 빡치는 일 있어서 못 받아들이니까 다음에도 그런 농담 하지마."

"어? 언니 무슨 일 있는거야?"

린이 눈을 깜빡이며 귀를 쫑긋 세우고 수레를 몸쪽으로 당겨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모미지를 집중해서 바라보자, 모미지가 등골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열기에 답답해져서 눈을 찌뿌리며 토로했다.

"뭔 일은. 꼴보기 싫은 까마귀가 괴롭혀서 그렇지. 좀 큰일이 나거나 다치든지 해서 안 보였으면.."

인상을 팍 찡그리며 짜증 섞인 깊은 한숨을 쉬는 모미지에게 린이 턱을 괴고 고개를 살짝 돌리면서 빙긋 웃었다.

"에이, 모미지 언니도 참. 사람이든 뭐든 저주를 하면 구멍이 둘[각주:4]이라고."

그러자 모미지가 손부채질을 하면서 찡그린 얼굴로 검을 꺼내며 말했다.

"진지하게 말해 두는데, 더워 쓰러질 판에 그 면상이 떠올라 빡치기까지 하니 더 불쾌하단 말이지."

"헤헤, 그 정도구나. 그럼 언니 수고해.”

눈치껏 어설프게 웃으며 서둘러 수레를 끌고 노래까지 곁들이며 들어가는 린을 사라질때까지 쳐다본 모미지는 싫증난 표정으로 혀를 내밀어 땀을 식히면서 출입대상 기록을 보다가 못 견디겠는지 초소 근처 건물의 그늘로 가서 앉으며 부관에게 말했다.

“아. 더워. 아직 여름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큰일 났네.”

“귀털이랑 머리털이 좀 기신 거 같은데 짧게 잘라보시는 건 어때요.”

“그건 싫어.”

“그래도 장마철보단 낫잖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요. 일광소독도 되고 빨래도 잘 마르잖아요. 가끔 습기때문에 더울때도 있지만요.”

“뭐가 긍정적이야. 에휴. 경비대장실에 박혀있고 싶지만, 방 안이 더 덥고 직접 두 눈으로 초계업무도 봐야 하니.”

"워낙 능력이 출중하시다 보니 지위가 높아져도 현장에서 구르시는 건 마찬가지시네요."

"내 말이!"

부관도 딱한 듯 너스레를 떨고 모미지도 설움에 빡쳐서 푸념을 늘어놓고 있을 때, 샤메이마루 아야가 다가와 말했다.

“잘 있었어? 모미지.”

모미지가 아야를 보자마자 '아이 씨.'소리와 함게 자리에 누워서 오른팔의 옷깃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려버리는 것을 본 아야가 차갑게 말했다.

“나 참! 시원치 않은 이름까지 불러 주는데 진짜 이러기야?”

“말만 나불거리는 까마귀랑 할 이야기 따윈 없는데.”

아야는 당황하면서 출입을 통제하는 부관과 다른 부하들이랑 달리 혼자 그늘에 누운 모미지를 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전혀 그렇게 안 봤는데, 역시나 그랬어! 이걸 지금 찍어서 부하들은 일하는데 모미지는 근무 태만이라고 고발하는 기사 써도 괜찮지?”

"아잇! 진짜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까마귀가 어딜 또 사기나 치려고!"

아야의 말에 모미지가 마지못해 화를 내며 일어나자, 땀과 물에 젖은 모미지를 살펴본 아야가 자신의 능력으로 시원한 바람을 일으켰다.

“자, 이 정도면 근무환경이 좀 좋아졌으려나.”

강풍에 흩날리는 머리털 사이에서 매서운 눈매를 들어낸 모미지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또 귀찮게 무슨 일이지?”

“당연히! 우리 계획이 시작되었으니 나를 보필해야지. 따라오기나 하세요.”

‘안 간다고 하면 또 공문 꺼내겠지.’라고 생각한 모미지가 할 수 없이 바닥의 조약돌들을 발로 툭툭 쳐가며 갈 채비를 하는 사이, 옆에서 검문검색을 마친 하타테가 둘에게 다가가 말했다.

“잠깐! 아야! 난 네가 꼭 들어야 할 말이 있어!”

“응? 왠일? 얼굴 보기도 힘든 애가 나에게 무슨 볼일인지?”

 

  1. 구급함과 같은 가정에 비축하는 상비약 [본문으로]
  2. (immunodeficiency 면역 결핍) [본문으로]
  3. drowsy: 기면, 심한 졸음 [본문으로]
  4. 사람을 저주하면 구멍이 둘(人を呪わば穴二つ), 타인을 저주하거나 피해를 주면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 온다는 뜻과 더불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자신도 그만한 각오와 피해를 감수 해야한다는 뜻이 되는 일본 숙어, 헤이안 시대에 음양사들이 저주를 걸때 저주가 반환될 것을 감안하여 무덤을 두 개 판 것에서 유래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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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으로 단편을 계획했는데 생각보다 분량조절에 실패해버려 상당히 아쉽지만 앞 부분만 미리 써서 올리고 나머지 부분 업데이트를 일단 4월 6일 묭의 기념일은 맞춰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사실 이제 봄이라 봄꽃도 피고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꽃구경을 하다 항상 벚꽃을 배경으로 두는 백옥루가 생각나 

초기 구상을 봄날의 백옥루로 두었고 글을 쓴 현재 시점으로 특정 부분이 병세가 있어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장기간 약처방을 받고 있는지라 기력이 조금 딸려서 글로 쓰기까지 어려움이 있기는 했습니다.


기획할때 본래 설정에 아야와 모미지의 관계가 상하관계도 아니고 사이가 나쁘다는 점을 감안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웬만한 2차 창작물에서는 모미지가 아야를 따르거나 '선배'나 '님'이나 '씨'라고 부르는등 아랫사람으로 등장하고 세간에도 그러니 오히려 본 설정을 따르는 게 더 색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 본 설정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먹성좋게 그려지는 유유코와 그걸 차려주는 시종 요우무의 상투적인 이미지에서 어떻게 해야 반대로 유유코가 요우무에게 밥상을 차려주기도 하고 신경써서 챙겨줄까에 대해서도 고민을 좀 했습니다. 분명 주종관계라지만 항상 뭔가 시키고 그것을 따르는 일상만 있는게 아니라 한 식구이자 어떻게보면 많은시간을 같이 보낸 가족과도 같은 관계에 서로 아껴주는 다정한 모습이 어떻게 하면 잘 들어날까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생각보다 잘 만들어져서 다행입니다. 일에 시달려오다가 상관과 친구이자 여동생같은 가족처럼 놀고 지내보면서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다시 깨닫게 된 요우무도 행복하겠지만 유유코도 그만큼 행복하게 즐겼을거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부분이 드러난 점에 개인적으로 스토리라인에 대해서는 마음에 듭니다. 자고로 봄이란 이렇게 따뜻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1차적으로는 사이가 안좋은 아야와 모미지를 묶음과 동시에 어떻게든 모미지가 아야를 따르면서 같이 다니게 할만한 설정과 2차적으로 유유코가 오히려 요우무를 챙겨줄수 있는 것에 타당할 만한 설정이 필요했고 궁리한 끝에 낸게 마치 쇼 프로그램 진행자나 사진작가를 하듯 아야가 연출을 하고 공문에 낚인(?) 모미지가 임시적으로 교육겸 따르면서 투덜거리며 같이 지내다가 조수역할을 하면서 점점 친해지게 되면서 아야의 연출에 따라 유유코가 요우무에게 신경을 쓰는 스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뭐 사실 실은 다 알고있는 유유코가 아야의 연출을 적절하게 이용한 거긴 하지만요. 아야도 사실은 모미지를 부려먹을 생각으로 공문을 통한 공작을 한거지만 모미지가 아야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고, 아야도 호감을 느끼면서 각자 어떻게 되었든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갔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갑자기 신문 덕에 봄소풍을 가게된 유카리 일가도 그렇고 마리사와 린노스케는 꽃피는 봄날에 열심히 삶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거나 일터에서 땀흘리고 계신 분들에게 명랑하고 쾌활한 마리사가 린노스케를 끌고 놀러가는 장면을 넣음으로서 위로이자 대리만족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분들께 정말 수고 많으시고 기운내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위아래 관계와 강약의 위치를 크게 신경쓰는 아야 특유의 성격을 반영해 존댓말을 쓰면서도 공문을 보일때는 모미지에게 반말을 하다가 취재대상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영업용 말투를 쓰는것과 모미지도 격식있는 말투를 쓰다가 점점 아야와 가까워지면서 해요체를 쓰는 감정변화를 넣어보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팬픽중에서는 패러디가 거의 없다시피한 유일무이한 첫 작품입니다. 패러디를 꽤 즐겨쓰는 편인데 최근들어 패러디도 단순히 개그를 위해 무분별하게 넣지 않고 작이 진행되면서 그안의 인물들이 벌이는 개그적 상황을 구성하는것 자체를 연습중입니다. 그런면에서 동방 캐릭터들은 각자 특유의 개성들과 성격이 독보적이라 서로 맞물리는 것만으로도 그런 개그적 설정이 손쉽게 가능해서 개인적으로 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요우무가 쓰려다가 멈춘 스펠카드는 업풍신선참입니다.  유유코는 대화면에서 특유의 성격인 모르는 척하면서 다 알고 드러내는 면모(동방신령묘등)를 드러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모미지가 그전보다 그나마 좋은 감정 느꼈다는 거지 아야와 아주 친해진 것은 아닙니다. 후속작을 위해서도 있습니다. 

 

유카와 릴리 화이트는 봄의 이미지와 꽃을 강조하기 위해서와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등장시켰고 레이무의 봄을 다시 모으려 할지 모른다는 발언이랑 유카의 충고는 봄과 관련된 춘설이변(동방요요몽)을 의미하고 개화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는 유카의 다른 충고도 결계이변인 탄막 '개화'선언의 동방화영총을 의미합니다. 둘다 봄과 꽃에 관련된 이변에 대한 이야기이고 마침 '봄'의 '꽃'+ 명계조를 취재하는 아야에게 해당이 되지요. 그리고 아무래도 일본이다보니 요리에 대해서 쓸때 정말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연산홍이나 유채같은 봄꽃, 봄나물도 일본에서 분포하는 꽃인지 찾아보기도 했고요.

가위바위보는 굳이 일본식으로 바꾸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냥 가위바위보로 넣었습니다. 모미지의 부대에 대한 설정도 아주 정확히 찾지는 못해서 부하나 경계에 대한 부분은 지어서 넣었으니 그점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까마귀 고기라던지 개 풀 뜯는 소리라던지 우리나라 속담들도 일부러 집어넣었습니다. 의외로 펀치라인이 되서 재밌더군요.


트윈테일 헤어스타일을 한 텐구면 뭐 하타테밖에 없으니 다 아실거라고 생각하고 결말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역시 후속작을 위해서입니다.


백옥루편은 '봄'으로 종료입니다. 스토리는 이어지겠지만 계절에 맞는 곳으로 설정할 예정입니다. 뭐 확정된게 없어서 확답은 아니지만요(...)


4부작이라고 한 만큼 이렇게 봄을 테마로 한 1부가 끝나고 여름을 주제로 한 2부를 잡으면서 메인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해서죠. 정작 봄이랑 겨울은 구상해두었고 봄은 마무리 했는데 여름이랑 가을은 만족스러운 구상의 서브 스토리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고민이 많습니다. 백옥루 편은 '봄편'에서 끝냈고 물론 전체적으로 4부작 대대로 이끌어갈 스토리는 생각은 해뒀습니다만, 미리 올릴 수 있을지 아니면 여름에 올릴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네요. 예고를 하자면 아무래도 기자란 사건 자체를 취재하는 것이다 보니 '사건 자체를 건드려서 일으킨' 것과 다름이 없기에 하타테와 아야가 기자라는 직업윤리에 대해 다투고 그 사이에 모미지가 끼면서 좀 시리어스하고 복잡해지는 상황으로 이끌어낼 생각입니다. 최대한 잘 써보려고 궁리하고 있고 아직까지 고민이 많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꽃샘추위가 가고나면 봄날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스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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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순간, 유카의 목소리에 자신이 잘못 들었나 생각만 하던 아야가 뒤를 돌아봤다가 유카가 손을 흔들며 부르는 모습에 기겁하며 당황했다.

“응? 왜 다시 오신 건가요?”

필름을 가는데 열중하느라 오는 것을 보지 못한 모미지가 다시 방패와 검을 꺼내자, 유카가 한손에 뭔가 큼지막한 것을 들고서 말했다.

“필요할까봐 잡아왔어.”

“네? 뭘 잡아요??”

아야가 당황해서 유카가 든 물체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그것이 릴리 화이트인 것을 인지하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 크게 외쳤다.

“으아아! 저,지금. 설마?”

릴리 화이트의 등덜미를 잡은 유카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돌아 다니길래 탄막을 좀 써서 끌고 왔지. 이제 마음껏 취재하렴.”

아야는 몹시 당황하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에에. 감사합니다. 유카 씨께서 이렇게 제 촬영에 협조해 주시다니요.”

“뭘, 꽃을 그대로 봐줄 줄 아는 것에 대한 보답이야.”

“그럼. 일단. 그거.. 아니 릴리 화이트 씨부터 좀 내려놔주세요. 살살.”

유카가 자연스럽게 놓자 아야가 재빨리 릴리에게 달라붙어서 카메라를 찍고 문화첩과 펜을 꺼내 기록할 준비를 하며 말했다.

“릴리 화이트 씨. 자자 정신 차리시고! 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정신이 든 릴리 화이트가 봄이라는 말만 듣고도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봄이에요! 봄!”

“봄을 알리는 자명종으로는 얘만한 애가 없잖아.”

유카가 말하자 아야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치 취조하듯 릴리가 하는 봄에 대한 찬양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고 모미지는 아야가 바쁜 것을 확인하고는 뭔가 자기가 해야 할 것 같아 반대편에서 유유코와 요우무의 사진을 대신 찍었다.

그렇게 만족할 만큼 문화첩에 기삿거리를 적은 아야는 문화첩을 도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좋아요! 이제 에이린 씨에게 춘곤증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한 자문만 받으면 특별기사는 완성이군요!”

“어머, 축하해.”

“그걸로 다들 봄을 더 중요하게 여겼으면 좋겠네요! 봄은 소중한 거예요!”

유카가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고 릴리도 격려는 격려인데 자기 할 말에 가깝게 말하자 아야가 웃으면서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한번 숙였다.

“이제 가는 거야?”

“이제 슬슬 사진들도 편집하고 기사도 정리해야 하고 할 일이 많아서요.”

“그래? 그럼 조심해서 가렴. 늦여름이나 가을엔 해바라기가 장관을 이루니까 볼만 할꺼야. 물론 내 능력을 쓰면 꽃을 피우겠지만 그런 걸 좋아할 것 같진 않으니까. 그리고 충고하자면 ‘춘설이변’이랑 관계있는 대상들이니 이변으로 오해해서 무녀 2에 마법사 +1을 받고 싶지 않으면 기사를 아주 잘 써야할 거라는 거고 ‘개화’라는 표현은 웬만하면 쓰지 않는게 조용할 거야.”

“아, 충고 감사합니다.”

“그럼 나도 갈게. 좋은 기사 기대하겠어!”

유카가 돌아서서 가자 릴리 화이트도 눈치를 살짝 보더니 아야에게 인사하고 돌아서며 말했다.

“그럼 저도 다시 봄을 알리러 가볼께요. 수고하셔요.”

그렇게 둘이 가고나자 아야는 모미지와 함께 유유코와 요우무가 실컷 봄을 즐기고 다시 명계로 돌아가는 것까지 배웅하고서 영원정에 잠깐 들린 후에 요괴의 산으로 돌아가자마자 모미지에게서 배낭을 건네받고 편집에 들어갔다.

“수고했어요. 모미지.”

“뭐, 아야 씨도 고생하셨고 저는 이제 다시 근무 들어가렵니다.”

“그러세요. 저는 바빠서 이만!”

아야가 돌아가자 모미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이 했던 경험을 돌이키면서 생각에 잠겼다.

 

 

무수히 많이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인화해 편집하면서 기사를 써가던 아야는 뭔가 초점이 안 맞는 사진들을 보고 인상을 찌뿌리며 살펴보았다.

“뭐야. 이거 모미지가 찍은 거잖아!”

플래시가 잘못 찍힌 사진, 움직여서 흐릿한 사진과 더불어 분명 찍힌 건 자신인데 팔만 보이거나 다리, 몸, 얼굴 한쪽등 가지각색으로 찍힌 사진들을 바라보자 짜증이 나서 외쳤다.

“아! 진짜 필름 아깝게!! 이건 진짜 일부러 골탕먹이려고!!”

그리고 인화한 다음 사진에서는 열중해서 사진을 찍는 자신의 모습이나 웃는 모습, 이야기를 하는 모습들이 찍혀 있는 것을 보고 괜스래 미안해지며 측은해져서 혼잣말을 했다.

“초점을 못 잡았던 거구나.”

 


“요우무! 일어나서 아침 차리렴!”

그 소리에 눈을 뜬 요우무는 잠이 덜 깨서 눈을 비비다가 어제의 기억이 떠올라 어젯밤이 꿈이라면 차라리 안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요우무! 몹시 시장하구나!! 아침은 멀었니?”

유유코의 부름을 듣고 '정말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구나.'는 생각에 흔들리는 자신의 반령처럼 아쉬움에 한숨을 길게 쉰 요우무는 부시시 눈을 뜨며 다시 시작된 일상생활에 속으로 심히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네, 유유코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부자리를 개고 잠결에 떡진 머리를 먼저 감은 뒤, 물기가 마르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머리띠를 쓰고서 검들을 찬 채로 유유코에게 문안인사를 드렸다.

“아침 잘 주무셨나요? 유유코님.”

“응, 잠은 잘 잤는데 아침은 멀었니?”

“금방 차려 드릴게요.”

요우무가 서둘러 아침상을 차리자 유유코가 먹기 시작하는 것과 더불어 요우무도 식사를 시작했다.

“맛잇게 드세요. 유유코님.”

“그래, 요우무도 맛있게 먹으렴.”

요우무는 밥을 먹다가 어제의 유유코가 직접 차려줬던 점심이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아야 씨에게 감사하다고 따로 인사라도 드려야지.’

“아, 요우무! 이거 네 방에 걸어놓으렴.”

유유코가 보자기에 쌓인 큼지막한 것을 직접 건네주자, 요우무가 무심하게 받아들면서 말했다.

“뭘 사신 거예요?”

“응? 산건 아니란다.”

요우무가 보자기를 풀자, 거기는 자신과 유유코가 같이 찍은 사진이 큰 사이즈의 액자에 담겨 있었다.

“어? 어!! 유유코님! 이거??”

“아침에 텐구가 신문 주면서 같이 주고 갔단다.”

요우무가 놀라서 묻자 유유코는 또 뭔가를 꺼내 주면서 말했다.

“이건 그 텐구에게 따로 부탁해서 받은, 신문에 쓰고 남은 우리 둘의 사진들 만이 담긴 앨범이란다. 하도 많이 찍어서 내 것과 네 것이 충분히 되는구나.”

앨범을 펼치자마자 같이 요리하는 모습부터 계단에서 노는 사진, 벚꽃에서 식사하는 사진, 같이 비행하는 사진, 꽃놀이를 하는 사진등 다양한 모습들로 함께 있는 모습이 각각 사진으로 보기좋게 정리 되어있는 것을 본 요우무는 떨리는 손과 눈으로 감격에 차서 하나하나 집중하며 바라보았다.

“참, 우린 함께여서 꽃만큼이나 예쁘지 않았니. 요우무.”

하지만 어제 촬영이 연출이었음이 떠오른 요우무가 감정을 쉽게 가라앉힌 후, 아쉬움에 헛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에이, 그래도 이건 연출이잖아요.”

그러자 유유코는 웃으며 화답했다.

“어머, 요우무. 어떤 것이든 내면에서 본심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들어나오지 않는 법이란다. 연출은 네가 부담스럽지 않게 하기위한 핑계에 불과했거든. 그리고 네가 중요히 여겨줬으면 좋겠는데. 사진은 그 순간과 기억의 멈춰진 박제지만 우리는 이 시간안에서 같이 있어서 이런 추억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그 말을 듣고 다시 사진들을 바라본 요우무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서 대답대신 유유코를 순식간에 껴안고 감격에 차서 울며 흐느끼자, 유유코는 그런 요우무를 토닥였다.

“유유코님 어어엉. 유유코님!! 진짜 훌쩍, 제가 더 잘할께요! 으어어엉. 정말, 너무 감사해요.”

“요우무도 참. 이런 주인을 모시는데 고맙긴 내가 고맙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네. 네!! 그럼요.”

요우무가 손으로 눈물을 닦자 유유코가 다정하게 자신의 옷깃으로 요우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다독이면서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계속 아침 먹자.”

“네,”

 

 


유유코와 요우무가 사진을 찍은 꽃밭 한쪽에서 앉은 유카는 붕붕마루 신문을 펼쳐들고 읽고 있었다.

"유카! 뭐해?"

메디슨 멜랑콜리가 유카를 부르자 유카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신문 읽어."

"뭐 재밌는거라도 거기에 쓰여 있나봐?"

메디슨이 유카옆에 앉아 신문을 살펴보며 말하자 유카는 메디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서 새싹이 크게 찍힌 사진과 함께 ‘새로 피려하는 아름다운 삶의 희망’이라고 적힌 신문기사의 글귀를 보고는 온화한 미소를 짓다가 바람을 받아 흔들리는 사진 속의 새싹을 직접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넌 너만의 때에 어떤 꽃을 세상에 피우게 될까?”

 

 


아침부터 일찍 요괴의 산 경계 근무에 들어간 모미지는 잠깐 자신의 부대원과 근무 교대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하루지만 연수 잘 받고 오셨습니까.”

서류를 든 부하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묻자 모미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뭐, 고생 좀 했지. 필름 가느라 손목을 워낙 많이 써서.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자 부하가 웃으며 말했다.

“저 행정쪽에서도 작전과이지 않습니까. 제가 쥔게 아야 씨가 준 서류인데. 침투 및 정탐 임무까지 알차게 하셨던데요.”

모미지는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순간적으로 황당해져서 부하에게 되물었다.

“뭐? 어제 내가 겪은 걸로는 그럴 리가 없는데?”

“네? 진짜 제대로 교육 받으셨던데요. 상부의 결제를 받아야할 3급 보안서류지만 말 그대로 3급이고 어차피 서류처리상 저도 본 데다가 지금은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뭐 보셔도 상관은 없으시겠죠.”

부하가 건네준 서류를 펼쳐본 모미지는 명계의 경계사진과 침투 가능지역에 대한 표시, 백옥루의 곳곳이 찍힌 사진들과 각각의 위치, 자신만의 종합적 평가와 명계 주민 유유코와 요우무와 같은 주요인물의 사진과 동선 위치까지 같이 기록되어 있고 모미지 자신과 같이 찍은 사진들과 함께 이동루트, 백옥루의 경계 시스템 파악 및 분석과 모미지가 교육을 무난히 이수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소견 등 각각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게 뭐야!! 이렇게 서류 낼려고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던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일단 서류의 처리에는 아무런 하자도 없습니다만."

모미지가 놀라면서 서류를 다시 건네주자 부하는 받고 나서 붕붕마루 신문을 건네주며 말했다.

“아, 그리고 아야 씨가 건네달라고 하던데요. 그럼 전 업무 들어가겠습니다. 나중에 시간되시면 내기 쇼기(일본식 장기)나 한판 두시죠.”

부하가 돌아서서 하던 일을 하고 신문을 건네받은 모미지는 한 장,한 장 읽어나가면서 아야가 이번 일에 대해 상당히 철두철미하게 계획 및 준비를 했음과 더불어 뒷처리도 깔끔하게 하는 등, 자신이 뭔가 그 안에서 쇼기말이 된 기분이 들어 평소에도 상당히 싫어하던 아야였기에 심기가 숭숭했지만, 오히려 경계 및 탐지 임무상 잘 나돌아다니지 않는 자신이기에 좋은 추억거리이가 될 만한 봄구경을 시켜줬다는 생각도 들어 그 양가감정에 칼끝을 땅에 꽂고 비비다가 다시 한 번 신문을 쳐다보고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도 같이 실린 것을 보면서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를 결심하고 유심히 신문을 읽어나갔다.




경계에서 나온 야쿠모 유카리는 차를 마시던 향림당 점주 모리치카 린노스케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점주, 잘 지냈어?”

“오랜만이십니다.”

린노스케가 건네 준 차를 받아든 유카리는 향림당 안에서 하쿠레이 레이무와 키리사메 마리사가 서로 옥신각신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며 말했다.

“뭘 또 재밌는 것을 가지고 싸우나 그래?”

향림당 점주 모리치카 린노스케가 대답대신 자신이 읽던 붕붕마루 신문을 건네주자, 그것을 받아든 유카리는 릴리에 대한 기사나 야고코로 에이린의 춘곤증 예방방법 기사 보다도 신춘특집 백옥루의 봄, 절경 관광 5선과 그 외 봄맞이 코스이라는 기사에 유유코와 요우무가 함께 가지각색으로 찍힌 사진들을 보자마자 차를 격하게 뿜으며 외쳤다.

“뭐야! 이거!!!!!!!!!!!”

린노스케는 둘을 쳐다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그 신문 때문에 이게 이변이다 아니다로 둘이 서로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유카리는 당황한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이면서 말했다.

“언제부터 이 신문이 백옥루 가정통신문이 된거지?”

“글쎄요. 확실히 이번 편은 소식을 알리는 신문이라기 보단 잡지에 가까운 느낌이 들긴 하는데 그래도 평소보단 제때 신문이 나왔고 기사도 한층 읽을 만 하더군요.”

린노스케는 붕붕마루 신문 애독자 기념품이랍시고 준 봄꽃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유카리는 신문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질투에 가까운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경계를 열어 야쿠모 란을 끄집어 내며 말했다.

“란!!!!”

“네! 유카리님!”

“당장 첸 데리고 소풍갈 준비해!! 지금 바로 봄철 가족 야유회다!!”

란은 난데없는 소리에 당황했지만 첸이랑 나들이라는 소식에 기쁜 표정을 감출겸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본부대로 준비하겠습니다.”

경계가 닫히고 찻잔과 신문만 나둔 채, 둘이 사라지자 린노스케는 별로 관심두지 않고 차를 마시며 사진만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이 두 요괴에 대해서 조사를 해야 한다니까. 봄을 또 모르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게다가 세상에 유유코가 요리를 해서 밥상을 차린다는 게 말이 돼!”

“그냥 봄이니까 놀러 간 걸 수도 있잖아. 그리고 레이무 너는 이 신문을 믿냐!”

그렇게 다투다가 마리사가 린노스케에게 다가가 물었다.

“코우린, 봄의 사진 보는 거야?”

“응, 그 텐구가 신문이랑 같이 주더군.”

린노스케가 안경을 닦으며 말하자 마리사가 다시 물었다.

“봄인데 린노스케는 꽃구경 안 해?”

“여기서 일 하잖니.”

“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시간이 없다는 거다. 각자 살아가려면 그만한 건 감수해야하는 거야.”

린노스케가 그렇게 말하면서 신문의 봄의 제철 음식 조리법과 꽃이 핀 사진을 보이며 말했다.

“그래서 세상엔 간접 경험이라는게 있는 거야.”

무심하게 말하는 린노스케와 신문을 번갈아 쳐다보던 마리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흥! 코우린. 그건 다 핑계야. 그냥 부담되서 그런거잖아. 같이 놀러가자! 따라와!!”

마리사가 린노스케의 팔을 잡고 끌고가자 린노스케가 당황하며 말했다.

“마리사! 잠깐!! 지금 바로 가겠다는 거야??!!”

“그럼, 가게는 레이무가 잘 닫아 놓을 거야! 얼른 꽃보러 가자!!”

그렇게 둘이 서둘러 향림당을 나가자 레이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둘이 나간 방향을 쳐다보다가 신문을 다시 읽으며 말했다.

“분명 내 생각에는 이변인데. 아님 뭔가 기사 자체를 짰다는 말 밖에 안 되잖아.”

그리고는 한 구석에 있던 어떤 손님에게 귀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이제 이 가게는 문 닫을거야. 그만 가봐.”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읽던 붕붕마루 신문을 접어 가게 밖으로 나선 트윈 테일 헤어스타일의 텐구는 신문을 보고 못마땅해 하면서 독백했다.

“이건 분명 자연스러운 기사가 아냐. 아야가 짠거라고! 사건을 취재한게 아니라 사건에 개입한거란 말야.”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날아오르며 말했다.

“이건 정말 아냐. 선을 넘은 거라고! 어떻게든 이런 건 막아야 해.”

 


<[4계절 특집 4부작] 1부: 그 봄날의 연출 - FIN>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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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아쉬우니까 사진 몇 점 더 찍도록 하겠습니다! 자, 유유코 씨랑 요우무 씨 둘 다 붙으세요. 먹여주는 모습으로 설정을 잡고 카메라는 보시면 안 돼요!”

요우무가 아야의 말 대로 냉이초무침을 젓가락으로 집어 유유코의 입에 넣어주는 포즈를 취하고 유유코도 그걸 맛있게 먹으려는 표정을 취하자 덩달아 아야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자, 찍습니다!”

셔터버튼이 눌려졌다.

‘번쩍’

“묭??”

난데없는 섬광에 유유코와 요우무가 놀라자 아야가 카메라를 점검하며 말했다.

“어, 플래시 기능이 켜져 있었네요. 실수했습니다.”

“잘 좀 해주렴. 우리 요우우 놀랐잖,,”

‘번쩍’

비슷한 섬광에 내성이 생겼지만 놀라서 젓가락을 떨어트린 요우무도, 따지던 유유코도, 아야마저도 놀라 근원지를 향해 쳐다보자, 모미지가 카메라를 잡고 다시 셔터버튼을 누르려고 하면서 말했다.

“와. 신기하네, 이건 불빛 나가네요.”

‘번쩍’

“그만해 모미지!”

‘번쩍’

짜증이 폭발한 아야가 모미지에게서 카메라를 뺏어서 플래시 기능을 끄자 이미 빡친 유유코가 젓가락을 주섬주섬 챙기는 요우무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앞으로 부엌에는 위생상 개털이랑 깃털은 없도록 해야겠구나.”

"저기, 저 개 아닙니.."

아야는 한 손은 모미지의 입을 틀어막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목을 잡은 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웃음으로 무마하면서 억지로 모미지의 고개를 숙이게 하고 자신도 숙이면서 말했다.

“아하하하, 기능상 실수예요, 실수. 모미지도 사과하세요.”

“죄송합니다.”

모미지도 아야의 힘준 손이 목덜미에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의식해 정중히 사과하자 유유코는 아야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참새는 잔뼈가 많아서 싫은데 넌 그보단 통통해서 괜찮을 것 같아.”

순간 소름이 끼친 아야가 얼버무리자 그녀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호호호 장난 좀 쳐봤어. 농담이야. 농담.”

하지만 아야, 모미지는 물론이고 요우무도 땀을 흘리며 같은 생각을 했다.

‘농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서 유유코는 자세를 고쳐 잡았고 요우무는 떨어트린 반찬을 닦아 낸 뒤, 다시 젓가락을 집고 포즈를 취했다.

”그럼 진짜 다시 찍도록 하겠습니다. 플래시는 껐어요.“

그렇게 몇 장이 또 찍히자 카메라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유유코는 폭풍흡입에 들어갔고 열심히 챙겨먹는 모미지와 다르게 아야는 지금까지 쓴 필름 수와 남은 필름 수를 계산했으며 요우무는 이제 이것들 설거지랑 뒷정리는 언제 다할까와 같은 새로운 근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란했던 식사를 마치자 배낭의 빈 공간에 도시락 통을 가득 담은 후에 모미지가 짊어지고. 나머지는 다른 가방에 나눠 담아 아야와 요우무가 각자 짊어진 후에 나들이를 갈 채비를 맞췄다.

“문지기 치고는 요리를 잘하던데요. 칼 솜씨도 보통이 아니고,”

빵빵해진 배낭위에 방패와 검을 얹고 등에 잘 붙도록 끈을 고쳐 매던 모미지가 요우무에게 묻자, 가방에 검들을 같이 묶어놓은 요우무가 웃으며 말했다.

“전 문지기는 아니고 정원사에요.”

모미지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자, 요우무는 그러거나 말거나 유유코에게 따라붙었다.

‘정원사가 저 정도인데 진짜 소문의 홍마관 문지기는 뭐가 되는 거지.’

“자, 그럼 가볼까?”

유유코가 들떠서 날기 시작하자 아야가 따라 붙으며 말했다.

“일단 백옥루의 계단부터 찍도록 하죠!”

“계단을요?”

요우무가 묻자 아야는 고개를 끄덕였고 요우무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네요.”

“그래, 그럼 그럴까?”

백옥루의 수많은 계단중 한 부분에 도착한 그들은 가방을 내려놓고 아야의 연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자, 모미지는 카메라에 새 필름으로 채우고, 유유코 씨는 한계단 사이로 두고 위쪽에, 요우무씨는 아래쪽에 간격을 두어 서시고 서로를 쳐다보세요.”

모미지가 필름을 갈고 유유코와 요우무가 서로를 마주보며 위 아래로 서자 아야는 모미지가 건넨 카메라를 받아들면서 둘의 상을 렌즈에 담으면서 말했다.

“자 이제 두 분이서 가위 바위 보를 하세요.”

“에이? 뭐라고요?”

요우무가 당황해서 묻자 아야가 카메라를 얼굴에서 때지 않으며 말했다.

“뭐, 있잖아요. 서로 가위 바위보를 해서 진사람은 내려가고 이긴 사람은 올라가는 그런 놀이요. 계단에 대해선 이만한 촬영 컨셉도 없다고요.”

모미지는 생각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의아함이 들어 말했다.

“그럼 기사엔 이 설정된 상황을 찍은 사진으로 뭐라고 쓸거죠?”

그러자 아야는 집게 손가락을 흔들면서 말했다.

“백옥루 계단의 새로운 모습- 정겨운 유희의 보금자리로 정했습니다!”

모미지와 요우무는 아야의 끼워맞추기에 이젠 감탄이 들어 마지못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정말 이래도 되나.’싶은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요우무와는 달리 유유코는 웃으며 말했다.

“편해 보이지 않는구나. 요우무.”

“아니 저 그게, 솔직히 부담 안 될 수가 없잖아요. 오늘 할 일도 많고 또 이것저것 신경도 쓰이고.”

마음속으로 정리가 안 되서 고개를 숙이고 두 집게 손가락을 비비며 뭔가 횡설수설하는 요우무에게 유유코가 말을 건네주었다.

“걱정하지 마렴. 이건 단순한 나들이고 놀러온 거니까 즐긴다고 생각하면 되요.”

그러자 머뭇거리던 요우무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유유코를 쳐다보았다.

“자, 준비 됬죠! 부탁드린 포즈 취해주시고. 절대 카메라 쳐다보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가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한 계단 차이로 위에 선 유유코와 아래에 선 요우무가 서로를 쳐다보고 웃으며 가위 바위 보를 하자 덩달아 아야의 손가락도 엄청난 속도로 셔터를 눌러댔다.

“좋습니다!! 제가 찍은 걸을 인화하기 전까지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네요. 두 분이 같은 계단에 있으니 한번 더 찍을게요!”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요우무가 한 계단 위로 올라가고 유유코가 한 계단 내려가서 같은 거리에 있게 되자, 서로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가위 바위 보를 다시 했다.

“에이, 졌네요.”

“후후. 요우무 다시 내려가렴.”

요우무가 승부욕이 발동해 아쉬워서 내려가고 유유코가 부채를 꺼내서 펼치며 웃는 모습도 카메라의 필름에 담겨가자 남은 필름이 없는 카메라를 모미지에게 주고 새 카메라를 건네받은 아야의 손눌림도 빨라졌다.

그렇게 몇 번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슬슬 거리 차가 나자 아야가 제한을 걸면서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찍은 것 같네요.”

그러자 서너 계단 위에 있던 요우무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에이, 이기고 있었는데. 끝이에요?”

“나도 몇 번 더 해야 할 거 같은데.”

이기고 있다가 연거푸 져서 아래에 있던 유유코도 승부욕이 발동해서 말하자 아야가 중재하며 말했다.

“그럼 두 분 몇 번 더 하세요. 저는 여기저기 찍고 올 테니까요. 모미지는 필름 간수 잘 하고요!”

아야가 새 필름 몇 개를 챙기고 힘껏 날아서 멀리서 본 벚꽃이 날리는 백옥루의 전경과 풍경이 될 만한 이 곳 저 곳을 찍어 다니는 사이 모미지는 필름통을 만지작거리다가 서로 재밌게 노는 두 명을 꼬리를 흔들면서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유유코님! 너무 늦게 내셨어요!”

“요우무! 내가 가위를 냈잖니.”

“제가 내고 나서 내셨어요! 이건 못 내려가요. 다시 해요!”

“요우무.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게 무(武)를 행하는 이의 도리인걸.”

“에이! 그걸 떠나서 반칙이잖아요!!”

둘이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시트콤을 보듯 재밌게 보던 모미지는 돌아온 아야가 준 카메라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갔다오네요.”

“지금 둘이서 아직도 저러고 있는 건가요?”

아야가 놀이에 심취한 둘을 가리키며 묻자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요우무. 없었던 걸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자꾸나!”

“네. 이번에는 유유코님이라 하더라도 안 질 거예요!”

“저기, 잠깐!!”

아야가 다급하게 둘을 부르자, 놀이에 빠져있던 둘은 아야를 쳐다보았다.

“자자, 재밌게 즐기신거 같은데, 이 정도로 하고 점심 드시러 가셔야죠.”

아야의 말에 들뜬 유유코가 두 손을 번쩍 들면서 군침을 흘리며 말했다.

“응! 그래야지. 많이 기다렸는데 잘 됐구나.”

“유유코님, 체통상 침 좀 닦고 말씀하세요.”

모미지도 도시락 통으로 인하여 무거워진 배낭을 짊어지기 싫어서 반기며 필름을 주섬주섬 담아 이동할 준비를 마쳤고 나머지도 짐들을 다 챙기자 아야가 일행을 이끌면서 말했다.

“벚꽃이 휘날리는 곳에서 드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럼 저기 뜰 너머 정원에 있는 벚꽃들이 더 풍성하게 폈으니 보기는 더 좋을 거예요.”

요우무가 조언을 하자 아야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오, 그럼 거기서 드시도록 하죠. 사진은 배경이 좋아야하니까요.”

“후후, 생각만 해도 기대감이 부푸는구나.”

유유코가 좋아서 말하자 요우무가 되물었다.

“먹을 생각에요?”

유유코의 끄덕거림에 요우무는 ‘그럼 그렇지.’하는 생각으로 그냥 정면만 바라보았다.

모미지는 일행이 이끄는 대로 따라 붙다가 나무마다 벚꽃들이 수려하게 펼쳐진 장관을 보고 강한 꽃 냄새가 발달된 후각으로 인해 신경 쓰였지만 바람이 불 때 마다 수많은 벚꽃잎이 휘날리는 모습에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아야도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점심을 먹을 자리를 몰색했고 요우무의 지도아래 벚꽃잎이 잘 날리는 풍광 좋은 곳을 선점하여 가방을 내려놓았다.

모미지가 배낭을 풀고 방패와 검을 뺀 뒤, 도시락 통들을 꺼냈고 요우무와 아야도 각자의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차리자 유유코는 만족스러운 듯 한쪽에 앉았다.

요우무도 조심스럽게 유유코의 옆에 앉고 카메라에 안 잡히도록 모미지가 뒤로 물러서자 아야는 모미지에게서 새 카메라를 받으며 말했다.

“캬, 아주 환상적이네요! 흩날리는 벚꽃 잎 아래서의 두 분이 오긋하게 식사하는 야외촬영이라니!”

아야가 안 볼 때 조금씩 날리는 벚꽃 잎을 잡는 장난을 쳐보던 모미지는 아야가 돌아보자 재빨리 같이 꺼내놓은 카메라 필름을 만졌다.

“그럼 이제 먹어도 돼?”

“네. 서로 오긋하게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으흐흐흐, 진짜 한폭의 그림 같군요.”

아까보다 신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아야를 바라보던 유유코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요우무도 젓가락을 들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모미지는 조신하게 천천히 먹는 요우무와 대조되게 다시 흡입 모드로 들어간 유유코를 보고 자신의 부른 배를 만지며 아까 그렇게 먹고도 들어가나 하는 궁금함에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유유코님! 아까도 맛을 보고 맛있다고 했었지만 직접 만드신 음식들 정말 예쁘고 맛있어요!”

요우무가 감격해하며 웃자 유유코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고맙구나. 널 위해 준비한 거니 많이 먹으렴.”

“네!”

아야는 벚꽃나무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약간 불만이 가득한 상태로 말했다.

“생각보다 벚꽃 잎이 무수히 흩날리지는 않네요.”

모미지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아야씨 말대로 벚꽃 잎은 마구 흩날리는 게 장관이긴 하지만요.”

“그럼 그렇게 연출하도록 하죠!”

“네?”

아야의 말에 모미지가 당황하자 아야는 당당하게 외쳤다.

“잊으셨나요. 제 능력이 바람을 다루는 정도의 능력이라는걸! 이렇게 말이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벚꽃나무의 수관(樹冠)에만 돌풍이 몰아쳐서 수많은 벚꽃 잎이 눈이 내리듯 떨어지자 유유코와 요우무는 감명깊게 벚꽃 잎들을 쳐다보고 모미지는 놀라서 아야에게 외쳤다.

“아니, 이런 건 사기잖아!!”

“어허, 사기라뇨. 촬영을 위한 부득이한 방편일 뿐이랍니다. 빨리 찍어야 하니 비키세요.”

따지는 모미지를 밀쳐내고 아야가 사진을 찍자 유유코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화과자를 요우무에게 건네주었다.

“요우무, 이것도 챙겨먹으렴.”

“네. 유유코님!”

음식에도 벚꽃 잎이 떨어져 자연스럽게 벚꽃 잎 장식이 된 화과자를 두손으로 받아 맛있게 먹는 사진도 찍은 아야가 말했다.

“정말 아름답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군요! 두 분이서 다정하게끔.. 아! 유유코 씨가 뼈를 발라낸 생선살을 요우무씨에게 건네주는 사진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그 말에 따라 유유코가 뼈를 발라낸 생선살을 요우무의 도시락 통에 건네주자 아주 빠른 셔터소리가 들리면서 아야가 말을 이었다.

“와, 와. 생각한거 보다 기대 이상인데요!! 그럼 요우무 씨가 손을 유유코 씨 어깨에 걸치고 서로 바라보면서 요우무씨가 젓가락으로 음식을 입에 넣어주는 포즈로 가겠습니다!!”

‘아주 신났네, 신났어.’

모미지가 혀를 차며 바라보자 요우무는 다시 얼굴이 붉어지며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해요! 모시는 사람에게 지금 무슨!!!!”

그러자 아야는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좋아서 그러기는. 잘 생각해봐요.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괜찮단다. 요우무. 연출이잖니.”

요우무는 반령이 요동칠 정도로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이 붉어졌다가 유유코의 미소에 천천히 포즈를 취하면서 유유코의 어깨에 손을 잡자 조심스럽게 유우코를 쳐다보면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유유코의 입에 가져다댔다.

“자, 요우무 씨! 얼굴 붉힌 거랑 부끄러운 표정 다 사진에 들어나니까 가라앉히시고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시고 유유코 씨는 투정부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다가 요우무씨를 바라보면서 입을 여는 모습으로 가겠습니다!”

요우무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날리는 벚꽃 잎을 보고는 숨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서 젓가락으로 딸기를 집어 자세를 취하고 유유코도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가 요우무를 보고 입을 열어 음식을 받아먹자마자 아야가 셔터를 광속으로 눌렀다.

“와! 와! 대박!!!”

마찬가지로 요우무도 자세를 광속으로 풀며 다시 어쩔 줄 몰라 음식만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자 유유코가 요우무의 등을 툭툭 두드리면서 다독이다가 천천이 끌어서 자신의 무릎에 눕혔다.

물론 이를 놓칠리 없는 아야가 신명나게 셔터를 눌러대고 심심했던 모미지 마저 카메라를 들어 촬영에 가세하자 요우무는 부끄러움과 좋음이 뒤섞여서 볼을 유유코에게 파묻었고 그런 요우무를 유유코는 그녀의 머리띠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와, 진짜 두 분 ‘엄마와 딸’같네요.”

모미지가 그 모습을 보고 감상에 젖어 외치자, 순간 유유코는 화를 냈다.

“응, 다시 말해볼래?”

그러자 아야가 눈치껏 웃으면서 말했다.

“아뇨, 마치 ‘언니와 동생’같네요.”

그러자 유유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고맙구나.”

모미지가 그 어감 차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이 아야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 유유코씨가 저 벚꽃이 가득한 나무가지에 앉아서 아래의 요우무씨를 바라보고 요우무씨가 아래서 도시락을 들고 부르는 모습도 한번 찍어 보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유유코가 다시 역정을 내며 외쳤다.

“좀 먹고 찍자! 먹고!!”

“아, 네. 네.”

아야가 겸연쩍은 듯 고개를 숙이자 유유코는 이것저것 챙겨 먹으면서 무릎에 누운 요우무를 챙겨주었고 계속 누워있으면 소화가 안 된다며 일으켜 세워서 요우무에게 물을 건네주는 그 광경까지도 카메라는 필름에 하나하나 쉬지 않고 기록했다.

도시락이 동이 나고 요우무와 잠시 할 일이 없어진 모미지가 뒷정리를 마치자 유유코는 벚꽃 나무의 큰 가지에 앉아서 말했다.

“많이 먹었더니 차가 마시고 싶네.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움에 취하니 더더욱 그래. 뜨거운 물을 이 밖에서 구하기는 어려운텐데, 그렇겠지”

그러자 아야는 역시 눈치껏 반응했다.

“그럼 부엌에 갔다 오겠습니다. 모미지! 갔다올때까지 그쪽 대신 찍고 있어요!”

모미지는 아야가 잔상을 남기고 사라지자 카메라를 들었고 요우무는 여전히 표정 관리가 안되서 유유코의 옆에 서서 말했다.

“여,연출이라지만 유유코님. 괜찮으세요?”

“응? 뭘 말이니?”

유유코가 가지에 여전히 걸터앉은 채로 부채를 펴들면서 말하자 요우무는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요우무를 쳐다보던 유유코는 부채로 입을 가리고서 웃으며 말했다.

“요우무도 참, 그런 마음 가질 필요 없단다. 지금은 상하관계라든지 이것저것의 틀 때문에 부담 느끼지 않아도 되요. 오히려 그럴 순간에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눈에 더 담고 하나하나 즐겨가도록 하렴. 그게 나들이의 묘미 아니겠니.”

요우무가 다시 고개를 크게 숙이며 말했다.

“네.. 네! 그럴게요.”

모미지는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해서 말이 잘 들리진 않았지만 둘이 같이 있는 걸 아야가 좋아하니 셔터를 눌렀고 아야도 재빨리 찻잔을 쟁반에 담아와 유유코와 요우무에게 건네주었다.

“아야씨. 잘 마실게요.”

요우무가 감사의 인사를 하자 ‘천만에’라는 말 대신 손등을 흔들었고 모미지에게도 찻잔을 거칠게 건네며 말했다.

“받아요! 일단 조수 역할을 하면서 수고하고 있으니까 마시고 해야죠.”

모미지가 받아들자 아야는 자신의 찻잔을 들어 쟁반을 가방에 쑤셔놓고 마시면서 말했다.

“오늘 예상을 벗어 나는 게 많아요. 생각보다 수확물이 좋은 것과 저의 체력소모가 많은거요.”

모미지는 차를 마시다가 지금 자기보고 이야기하는건가 싶어 눈치를 봤다.

“그래! 이제 한 곳만 더 가면 완벽해! 흐흐!”

잔뜩 들뜬 아야를 계속 살피던 모미지가 혼잣말이라고 판단하고 차를 들이키자, 아야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정말 수고하셨어요! 그와 더불어 유유코 씨랑 요우무 씨랑 마지막으로 촬영할 곳이 있답니다.”

“응? 그럼 또 이동해야 돼? 귀찮은데.”

유유코가 차를 마시다말고 가지에 널부러지자 요우무는 염려스러운 듯 바라보고 아야는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만큼 풍경이 좋은 곳이니까 만족하실 거예요.”

아야와 요우무가 달래자 유유코도 할 수 없이 일어났고 모미지는 쓴 필름과 남은 필름을 구분하다가 의아심이 들어서 물었다.

“아야 씨! 그런데 분명히 백옥루의 봄에 대해서 찍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후훗, 백옥루만 찍는다고 한 적은 없어요.”

모미지는 그냥 생각하기 귀찮아서 '그런가 보다.'하고 정리를 마친 뒤, 자신의 방패와 검을 챙기고 배낭을 멨다.

잠시 부엌에 들려 찻잔과 도시락 통들뿐만 아니라 일거리에 대한 요우무의 깊은 한숨도 함께 나둔 후,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던 일행은 아야의 요청으로 봄이 찾아온 지상이 카메라의 렌즈에 담길 수 있는 구도로 위치를 바꿔 몇 번 찍은 후, 유유코가 먼저 날아가고 요우무가 뒤따르는 설정의 사진도 알뜰하게 찍었다.

아야의 지도로 일행이 도착한 태양의 밭에는 피지 않은 해바라기들의 초록 물결이 가득했고 모미지는 '역시나.'싶은 마음에 당황하며 말했다.

“저기, 해바라기는 여름에 핍니다만. 그거 감안하고 온 거죠?”

그 말에 그녀가 비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요. 설마 이 태양의 밭에 해바라기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녀가 따라오라고 손짓하자 모미지는 유유코와 요우무를 지도했고 그렇게 아야가 이끄는 데로 찾아간 들판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연산홍, 유채꽃 복수초등 수많은 봄꽃들이 서로 아름답게 핀 곳에 도달하자. 요우무는 탄성을 질렀다.

“와, 진짜 꽃이 많이 폈네요. 그것도 하나하나 예쁘게요.”

하지만 모미지는 매우 강한 꽃냄새에 코를 훌쩍거리고 심히 기침을 했다.

“에취! 훌쩍! 이런 데를... 어우 코 간지러웍! 으 에취! 언제 미리 점찍어 두에취! 었던 겁니까?”

“제가 괜히 기자를 하는 거 같나요? 환상향 구석구석은 다 꿰고 있답니다.”

그리고는 유유코를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역시 꽃밭에는 나비가 찾아와야 하는 법이지요.”

그 말에 유유코는 그저 부채를 펴들어 웃었고 요우무는 들뜬 나머지 직접 돌아다니면서 꽃들을 종류별로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와, 진짜 예쁜 것들만 골라서 피었어요. 유유코님!”

유유코도 꽃밭에 들어가서 꽃 냄새를 맡는 것으로 화답하자 아야는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를 꺼냈다.

“하기웨취! 하긴. 저쪽은 정원사니까 받아..웨취! 크흐흡! 어후! 꽃냄새. 받아들이는 것도 남다르겠네요. 훌쩍!”

아야는 후각이 매우 민감하게 발달한 나머지 코를 훌쩍거리며 기침하는 모미지를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모미지의 주변에만 바람을 일으켜 냄새를 분산시켰다.

“이제 됬어요?”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야는 다시 활력에 넘쳐서 외쳤다.

“그럼 촬영 들어갑니다! 준비하세요, 모미지!”


그렇게 유유코와 요우무가 꽃밭을 헤집으면서 꽃놀이를 하며 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하나가 되 어우러진 둘의 순간을 필름에 담기 위해 아야가 셔터를 누르고 필름이 다 된 카메라를 건네주면 모미지가 필름을 간 카메라를 건네주는 로테이션이 작동하는 사이, 모미지는 뭔가 수상한 물체가 접근하는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보고는 아야에게 눈치를 줬다.

“저, 아야씨.”

아야는 모미지를 쳐다보지 않고 셔터만 눌러대며 말했다.

“아, 왜요? 지금 바쁜거 안 보여요!”

모미지는 한숨을 길게 쉰 뒤, 말했다.

“초록색 머리를 하고 양산을 든 요괴가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는데요.”

“그런가요? 알았어요.”

그말과 함께 여전히 사진을 찍는 아야를 보고 오히려 모미지가 당황했다.

“저기 괜찮은 건가요. 그거?”

“네, 그러니까 빨리 필름이나 갈아요!”

오히려 면박을 당한 모미지가 의아해하며 자신의 일을 계속하자, 몇 분이 안되서 양산을 든 꽃의 요괴 카자미 유카가 그들에게 다가섰다.

“어? 안녕하세요! 유카씨!”

아야가 시치미를 떼면서 지금 본 듯 인사하고 그 소리를 들은 유유코와 요우무도 반기자 유카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받아들이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돌변하며 물었다.

“너희 여기서 뭘하는 거지?”

“보다시피 봄 특집 기사를 위해서 촬영 중이랍니다. 봄에 핀 꽃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유유코 씨와 요우무 씨의 사진을 찍고 있죠.”

유카가 아야의 말을 듣고 꽃밭을 헤집고 다니는 둘을 살피고 모미지는 혹시라도 유카가 돌변할지 모르기에 방패와 검을 조심스럽게 챙겼다.

“지금 사진 몇장 찍으려고 우리 애들을 밟거나 귀찮게 하는 건 아니겠지?”

“아유, 그럼요. 사실 진짜 찍을 것은 따로 있지만요.”

아야의 뒷말에 유카는 흥미를 가지며 물었다.

“호오, 진짜 찍을 거라니?”

“바로 이거랍니다!”

아야가 유카에게 가리킨 곳에는 아직 자라고 있는 땅에서 비집고 나온 새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모미지가 그 광경을 보고 한숨을 정말 길게 쉬며 방패와 검을 잡았고 유카도 의아해하며 물었다.

“정말 얘를 찍을 거란 말이야?”

“그럼요.”

못미더워 하는 유카에게 아야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모두들 봄 하면 저렇게 아름답게 핀 꽃들을 생각하고 좋아하시지만 저는 이렇게 겨울을 지내면서 땅속에서 자신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자신이 어떤 꽃을 피울까 하며 봄을 기다리면서 세상에 나와 자라면서 다른 꽃들이 꽃을 피우든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그 희망의 의미로 이 새싹을 찍어 기사에 낼 거랍니다.”

그리고는 새싹에 가까이 접근해 접사를 하자 유카는 여전히 차갑게 바라보다가 피식하고 웃으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봄에는 정말로 봄을 기다려온 그 애가 잘 맞을 지도 모르겠네. 내 능력으로 그 애를 꽃 피우게 해줄 수 있는데 도와줄까?”

유카가 양산을 흔들면서 말하자 아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이 모습 이대로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이 전 더 마음에 드네요.”

그렇게 사진을 열심히 찍는 아야에게 유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꽃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꽃이 핀 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단 말이야. 네 기사로 많이들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

그 말에 모미지는 괜찮겠지 싶어서 방패와 검을 놓고 다시 카메라에 필름을 갈았고 유카는 꽃을 맛보려는 유유코를 말리는 요우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봄을 배경으로 잡으면서 왜 저기 백옥루 두 명을 데려온 거지?”

모미지도 사실 궁금했던거라 귀를 쫑긋 세우자 아야가 다시 카메라의 시점을 꽃밭의 두 명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백옥루는 유령이 가득한 차가운 느낌이잖아요. 유유코 씨 능력 자체가 죽음이랑 관련되어있고 요우무 씨는 아예 반령이고. 모름지기 봄이란 따뜻한 느낌이 강하니까 저 둘이 봄놀이를 하며 봄을 즐긴다는 건 차가운 겨울에서 따뜻한 봄이 되는 그 순리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거죠. 한마디로 죽음과 탄생이란 역설적인 의미도 함축되고요. 더구나 저 둘은 주종관계잖아요. 봄에 저 둘이 다정하게 서로 생각해주는 것에 분명 관계적인 면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것을 설정을 부여해서 정말 자연스럽게 어렵지 않도록 연출해주면 평소에는 볼 수 없던 더 따뜻한 모습들이 따스한 봄의 이미지와 어루려져서 뜻 깊은 사진이 나오는 거죠.”

아야의 말에 유카는 여전히 웃었고 모미지는 생각에 잠겨서 아야를 바라만 보았다.

“생각보다 속이 깊네. 평소에는 안 좋은 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좋은 쪽으로도 말이야. 여기서 마음껏 찍다가렴. 대신 우리 애들이 꺾이거나 조금이라도 부러지면 너희들 팔다리도 부러질 거라는 건 잊지 말고.”

아야는 자신이 꽃밭에서 꽃들 뜯어다 도시락 재료를 만들어 먹은 사실이 생각나 당황하면서 얼버무렸다.

“헤에. 하하., 그럼요.”

마찬가지로 모미지도 유카가 눈치 챌 까봐 입을 닫고 아예 다른 곳을 쳐다보는 사이, 요우무가 정말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꽃들이 정말 예쁘게 펴서 칼로 다듬고 정돈하면 아름다운 정원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요우무가 검을 휘두르면서 외치자 유카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칼을 대려고 하지는 마렴. 각자 태어나고 자라온 본질 그 자체로도 예쁜 법이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뭔가 생각난 듯, 유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봄인데 아직 릴리 화이트는 안 찍을 거야?”

“글쎄요. 찍긴 해야하나. 사실 평범할 것 같아서 생각은 안 해뒀어요.”

“음, 그래? 그럼 촬영 열심히 해.”

유카가 말을 마치고 돌아가자, 꽃밭에서는 유유코가 팔배게를 해주고 요우무가 따라서 같이 누워 꽃향기에 취해 눈을 감았고 아야가 그 위로 날아서 모미지가 건네준 카메라를 받아서 사진을 찍었다.

‘번쩍’

순간 섬광에 놀라서 유유코와 요우무가 눈을 뜨고 쳐다보자 아야가 일부러 모미지에 격하게 화를 내며 외쳤다.

“아잇!! 모미지! 플래시 기능!!!!”

그러자 모미지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플래시 끄는 법이 뭔데요? 안 가르쳐 줬어요.”

유유코는 짜증이나서 저 둘에게 탄막을 던질까 말까 만지작거리다가 뭔가 탄막 날라가는 소리에 설마 날아갔나 싶어 자신의 팔을 쳐다보았고, 그 순간 요우무가 평소에 보기 힘들 기쁨이 가득한 표정으로 행복에 겨워 팔을 기대며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자 요우무의 머리띠 때문에 머리 무게로 인한 강한 압력으로 팔이 몹시 아팠지만 흐뭇함에 그저 미소를 지으며 꽃향기를 들이마셨다.

“와, 진짜 두 분. 이 꽃들에 뒤지지 않게 예쁘군요. 아주 좋아요!!”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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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우무. 왜 이렇게 소란이니?”

사이교우지 유유코가 마당으로 걸어 나오면서 물어보자 요우무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서 말했다.

“유유코님. 청소 중에 침입자를 발견해서 쫓아내고 있던 중이었어요.”

방패를 다리에 걸친 뒤, 검을 지팡이처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옆구리를 감싼 모미지와 자신을 보고 인사하는 아야를 살펴본 유유코가 말했다.

“둘 다 이 백옥루엔 무슨 볼일인거지?”

“안녕하세요! 붕붕마루 신문의 깨끗하고 올바른 사메이마루 아야입니다. 봄맞이 특집으로 이 백옥루를 취재하러 왔습니다. 유유코 씨와 요우무씨도 포함해서요.”

“봄이라....... 이 백옥루가 유령들이 가득한 곳이라 그 한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주로 여름에 더 많이 찾아온다는 건 알고 그러는 거지?”

“그럼요. 하지만 저는 지금의 봄을 배경으로 찍을 거랍니다.”

야아의 카메라를 한번 흩어본 유유코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신기하네. 대부분 죽어서 오는 곳을 구경오게 하겠다는 것도 그렇고 함부로 촬영하기로 유명한 텐구가 당사자들에게 허락을 다 받고 말이야.”

“슬슬 초상권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거든요.”

아야도 능청스럽게 받아넘기자 모미지와 요우무는 서로 눈치를 보며 상황의 흐름을 살폈다.

“좋아. 일단 내 허기를 건드리지 않고 우리 요우무에게도 폐끼치지 않는 조건에서 찍어가도록 해.”

모미지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심기'를 지금 잘못 들었나하는 생각과 이제 아야가 원하는 대로 된 건가 싶어 아야를 살펴보았으나 아야는 여전히 능청맞은 표정으로 바뀜이 없었고 허가로 받아들인 요우무는 다시 검을 검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네. 감사합니다! 역시 두터운 신망과 덕이 지극하시고 속이 깊으시니 뭔가를 좀 아시는군요! 사실 이번에는 좀 특별하게 제가 설정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두 분이 모델이 되어 주셨으면 하는데요.”

요우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유유코는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흐음. 지금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나?”

“제가 틀을 잡고 그 안에서 두 분이 배경 속에서 주제에 맞게 연출된 모습을 제가 찍는 거죠. 나중에 그걸 기사로 내면 아주 좋은 특집이 완성될 거예요!”

“기자가 사실적이지 않게 상황 그 자체에 개입해도 되는 거였던가?”

아야는 상관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특집이니까요. 주제는 찍으면서 꽤 바뀌겠지만 일단 핵심은 봄맞이나 배려로 정했습니다!”

“배려라니?”

유유코가 흥미로워 하며 물어보자 아야는 품안에서 요우무가 일하는 모습들로만 가득한 사진들을 꺼내 유유코에게 건네주었고 그것을 본 요우무와 모미지는 합창하듯 동시에 말했다.

“참 많이도 몰래 찍으셨네요.”

“언제 들어오셔서 이렇게 많이 찍으셨어요?”

아야는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어흠, 엄연히 취재한 거예요. 취재!”

유유코가 백옥루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요리하고 정원을 가꾸거나 칩입자를 퇴치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장면들이 찍힌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기며 살펴보자 아야는 유유코의 표정변화를 주시하며 말했다.

“부하가 이 넒은 정원에서 혼자 얼마나 성실히 임하다 못해 고생을 하면 어린나이에 머리가 다 흰머리가 되어 있겠어요?”

그러자 요우무가 화를 내며 대답했다.

“저기 그런 거 아니거든요!”

유유코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모미지를 가리켜며 말했다.

“그럼 그쪽 부하는 머리털부터 꼬리털까지 흰색으로 탈색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그곳에서 실컷 고생하고 있나 보구나.”

아야와 모미지가 서로를 번갈아 보며 당황하자 요우무가 알겠다는 듯 맞장구를 치며 외쳤다.

“아! 그래서 메이드장인 사쿠야 씨의 머리색도 희셨던 거군요!”

“아니야!”

황급히 외치는 둘과는 달리 유유코는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발끈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진대로라면 이곳 백옥루의 일을 크게 맡는 우리 요우무에게 내가 전혀 배려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거니?”

순간, 요우무가 난처해하면서 유유코의 반응을 보고 검을 뽑아들자, 모미지도 대응차원에서 검과 방패로 방어자세를 취했다.

“사진은 직접 사실 그 장면만을 찍었을 뿐이지만 백옥루 밖의 세간 인식은 이미 다 알아서 그런 이미지로 통하던데요? 기삿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로요. 그러니 이번 특집을 통해 주종관계라지만 아마 평소보다는 좀 더 신경을 쓰신다면 아마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싶네요."

한참 전만 하더라도 임시 주종관계를 통해 자신에게 대했던 태도를 생각한 모미지는 그녀의 취재용 멘트에 그저 코웃음만 쳤고, 요우무는 검을 높이 들면서 말했다.

“유유코님의 위신을 건드리시다니 모시는 사람으로서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업풍신...”

“요우무! 그만두렴!”

유유코가 손을 들어 말리자 베려는 본능대로 검만 허공에 휘두르는 차원에서 멈춘 요우무가 대답했다.

“하,하지만 유유코님.”

“그럼 주위에서 보는 눈이 이렇다는 건 우리 백옥루에 대한 이미지나 다름없잖아! 좋아, 그럼 이번 기회에 내가 얼마나 요우무를 신경 써서 챙겨주고 아껴주는지를 보여주겠어!!”

여전히 발끈한 모습으로 외치는 유유코를 바라보던 모미지는 대체 무슨 상황으로 흘러가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아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가 미소를 짓는 아야가 주먹진 손과 팔을 뒤쪽으로 한번 힘껏 당기는 제스쳐를 취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묭?!”

요우무는 깜짝 놀라면서 대체 무슨 일을 벌이시려고 저러실까 하는 염려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유유코를 바라보았다.

“자! 일단 이제 곧 점심이니까 내가 요우무를 위해 점심을 직접 만들어 차려주겠어.”

유유코의 말 한마디에 세 명이 ‘풉’하고 터졌다가 요우무부터 재빨리 표정관리를 하고 자신을 수습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유유코님. 예상 못한 말씀인지라. 아니, 그러니까 일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주 좋아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시는 것에 저는 정말 감복했습니다!! 모미지, 당장 촬영준비 들어가세요!!”

고개를 흔들면서 박수까지 치며 좋아하는 아야와 당혹한 모습 그대로 안절부절 못하는 요우무가 대조를 이루는 사이, 모미지는 이젠 자기도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말 몰라서 달관한 상태로 무심하게 배낭에서 여분의 카메라와 필름을 꺼냈다.

카메라와 필름을 챙긴 모미지와 아야가 뒤에서 따라붙은 채로 부엌으로 들어간 유유코는 앞치마를 둘렀고 요우무는 여전히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옆에 섰다.

“그런데 무슨 요리를 하실 건가요?”

요우무가 묻자 유유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봄이니까 봄에 맞도록 하는게 좋을 것 같구나.”

모미지가 건네준 필름을 끼우고 카메라를 점검하던 아야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점심 드신 다음에 밖에서 들려야 할 곳이 많은 점도 생각해주세요.”

“음, 글쎄. 밖으로 나들이 갈겸 도시락을 많이 쌀 거라는 생각은 안했어.”

나머지 3명은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가 아야가 문화첩을 꺼내면서 먼저 반응했다.

“와!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전 기사로 쓰기 좋은 사진을 위해 지금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찍을게요!”

“사진은 아까부터 찍었잖아요.”

모미지가 핀잔을 주자 아야는 억지로 웃으며 모미지에게 펜을 던졌고, 모미지가 재빨리 방패를 들어 방어에 성공하는 사이, 요우무가 옆에서 노심초사하는 것을 의식한 유유코가 말을 걸었다.

“왜 그러니? 방에서 쉬지 않고.”

“아니, 저기 유유코님은 드시기를 잘하시지 요리를 해보시는 걸 뵌 적이 드문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단 말이에요.”

그러자 유유코는 요우무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면서 말했다.

“그렇게 염려스러우면 옆에서 도우려무나.”

“네. 유유코님.”

말을 마치고 유유코가 조리도구를 챙기는 사이 요우무가 식칼들을 손질하고 아야는 모미지를 데리고 조수로서 쓰기 위한 교육에 들어갔다.

“자, 모미지! 이거 카메라 잡은 상태에서 뒤로 돌리고.”

모미지가 아야의 말에 따라 카메라를 들어 뒤를 돌렸다.

“이걸 당기면 뚜껑이 열려요. 그리고 안의 필름을 빼고.”

아야가 연결된 필름을 직접 빼서 필름 통에 담는 것까지 모미지가 따라하자, 아야는 새 필름을 통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자, 이 새 필름을 여기 이 부위에 끝부분을 연결하고 필름 자체를 규격에 맞게 끼워요.”

“이렇게 하는 거 맞는 건가요?”

필름 연결을 잘 못하는 것을 본 아야는 답답해져서 직접 모미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요! 이 부분을 이렇게!!”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필름이 갈아 끼워지자, 흥미롭게 쳐다보는 모미지에게 그녀가 말했다.

“자, 이제 알겠죠! 이제 내가 사진을 찍을 테니 필름을 다 쓴 카메라는 내가 주는 대로 필름을 이렇게 갈아주면 돼요!”

모미지는 직접 자신의 손을 잡고 가르쳐주는 것과 취재대상이 있어서 자신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것에 미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젠 생각해봐야 피곤하기만 해서 빨리 끝나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시키는 대로 하려는 마음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자, 그럼 교육은 끝냈고 유유코 씨. 봄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해주시면 좋겠네요.”

아야가 사진을 찍을 자세를 취하며 말하자 유유코는 요우무를 돌아보았다.

“그럼, 요우무. 봄이다 보니 봄꽃으로 장식한 음식들로 도시락을 만들어 보자꾸나.”

“앗. 그럼 도시락 통으로 쓸 나무 갑들 꺼내 놓을게요!”

“그러렴, 내가 듣기론 그쪽 텐구가 무척 빠르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하하, 환상향 최속이죠. 그렇게 알아주시다니 이거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래. 그럼, 몸 둘 필요 없이 좀 갔다오렴.”

“음?! 무슨 말씀이신지?”

머쓱해서 웃던 아야가 뜬금없는 소리에 놀라자 유유코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명계보단 밖이 더 재료로 쓸 예쁜 봄꽃들이 많이 피어서 말이야. 너보다 느린 우리가 직접 가는 것 보단 환상향 최속이면 뿌리까지 뽑아서 빨리 가지고 오는 건 일도 아니지 않니? 오늘내로 촬영 마치고 싶다면 말이야.”

“하아, 그럼 하는 수 없군요. 바로 갔다 오죠. 모미지!”

모미지가 아야를 쳐다보자 아야는 모미지에게 카메라의 셔터 부분을 보이면서 말했다.

“이걸 누르면 사진이 찍히고 그다음에는 여기 이 부분을 소리날 때 까지 돌리세요. 내가 금방 갔다 올 때까지 사진 잘 찍고 있어요!”


건네받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모미지가 고개를 들자 이미 아야는 사라지고 없었고, 그 와중에 유유코가 스스로 밥을 짓고 식칼로 도마 위에 올려놓은 야채를 썰자 요우무가 말리면서 말했다.

“유유코님! 칼은 함부로 다루면 안 되니까 제가 할게요.”

식칼을 받아 든 요우무는 손목을 풀면서 다채롭게 재료를 썰면서 말했다.

“이렇게 베면 반달썰기, 이렇게도 베면 어슷썰기, 또 단순하게 이러면 십자썰기, 이렇게 잔잔하게 썰면 채썰기가 되요.”

“와, 우리 요우무가 칼을 아주 잘 다루는구나.”

유유코의 칭찬 때문인지 단순히 칼을 잡아서 그런지 신나게 칼을 다루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모미지는 저걸 찍을까 말까하며 생각했다.

‘쟤는 왜 베는 것만 눈에 불을 켜고 하는 거지?’

그리곤 옆으로 다가가 그 둘을 몇 장 찍자마자 뒤에서 자신을 툭툭 치는 느낌이 들어 말했다.

“벌써 왔어요?”

모미지가 뒤를 돌아보니 무수히 많은 꽃들을 뿌리채로 다 뽑아와 두 손으로 움켜쥔 아야가 숨을 헐떡거리며 외쳤다.

“무.. 물 좀! 헉. 헉.”

모미지는 칼질에 빠져 신나하는 요우무 대신 컵을 꺼내 항아리에서 물을 퍼다 주었고 컵을 받자마자 바로 들이킨 아야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갔다 왔는데 이 정도 충분하신가요.”

유유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야는 재료를 내려놓은 뒤, 사진기를 꺼내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예쁜 것들로 잘 가지고 왔구나. 이걸로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겠어.”

썰기를 끝낸 요우무가 삶아놓은 고기를 칼로 다지고 육수를 미리 챙겨놓자, 유유코는 재료들을 살피며 말했다.

“두릅은 튀김으로 하면 괜찮겠고 유채는 나물로 해서 삶아 된장에 무치고 냉이는 초절임으로 하면 되겠구나. 나머지 꽃들은 주먹밥이나 샌드위치, 화과자 주위에 장식하면 되겠어.”

“과연! 요리에서조차 그 관록이 묻어나오는 군요! 봄의 제철음식 기사에 참조하도록 하죠!”

모미지는 탄성을 지르는 아야가 재빠르게 건네주는 카메라의 필름을 갈아 돌려주면서 음식냄새에 입맛을 다셨고 아야는 봄에 어울리는 음식과 둘이서 요리하는 모습이 생각한 만큼 인상적으로 나와서 유유코가 이야기 하는 대로 문화첩에 받아 적고 뭔가 생각대로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희열감에 입맛을 다시며 셔터를 눌러댔다.

다 된 밥을 우메보시(매실 장아찌)나 여러 재료를 넣어 꾹꾹 눌러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를 만들어서 들꽃들을 꽃아 장식하고 갑에 차곡차곡 쌓아 도시락을 만들어가는 유유코를 요우무는 끓는 기름에 재료를 넣어 튀김을 만들면서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요우무, 전부터 계속 염려스러운 게 있는가 보구나.”

“아아, 그게 저기 모시는 분께 무례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을 안했는데요.”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을 해보려무나. 요리가 걱정이면 지금 잘 되어가고 있지 않니.”

요우무는 머뭇거리다가 유유코의 입을 가리키며 말했다.

“실은, 요리가 만들어지는 게 걱정된 게 아니고요. 지금 완성 되어가는 걸 유유코 님이 다 드셔 버리실까봐 그게 걱정이에요.”

그러자 유유코는 군침을 흘리고 있던 자기 입을 황급히 닦으며 웃었다.

“에이, 그럴 리가 없잖니.”

“하긴 유유코님 식탐에 입에 넣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참아 오신 것도 대단하세요.”

요우무가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는 것에 아야는 문화첩에 이걸 고스란히 받아적었다.

“요우무, 기름 몸에 튀지 않게 조심하렴.”

“네, 걱정하지 마세요.”

긴 젓가락으로 익은 튀김을 건져내는 요우무에게 유유코는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생선 손질은 했니?”

“그럼요. 내장을 발라내고 반으로 갈라놨어요. 그런데 유유코님. 여기 가까이 오시면 기름 튈지도 몰라요.”

“망령이 끓는 기름을 무서워하겠니.”

“와! 잠깐만! 유유코씨 좀 더 붙어주세요!”

아야의 요청에 유유코가 요우무한테로 붙자 아야가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지금 요우무 씨가 잡은 젓가락좀 같이 잡아주세요!”

유유코가 시키는대로 요우무의 젓가락을 잡은 손을 잡자 요우무는 표정관리가 안될 정도로 난처해졌고 아야는 아주 흐뭇해져서 말했다.

“자자, 카메라 보지 마시고 표정 자연스럽게! 같이 요리하는 그 포즈 그대로 찍을게요.”

그렇게 몇 장을 더 찍자 요우무는 심적으로 난처해서 얼굴이 붉어지며 아무 말 못하고 두릅을 튀기는 것에 집중했다.

“다 되었니?”

유유코가 묻자 아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협조를 잘해주셔서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오겠는데요! 봄철의 두릅요리를 설명하는 기사에 같이 실으면 되겠어요!”

“그러렴.”

“근데 진짜 먹음직스러워 보이네요.”

모미지가 꼬리를 흔들면서 카메라를 들고 음식을 향해서만 찍자 아야가 슬쩍 짜증을 부렸다.

“모미지! 필름 낭비하지 말아요!”

그러자 모미지는 바닥을 보이는 재료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다 떨어져 가는데요?”

아야가 깜짝 놀라 살피자 그 말을 들은 요우무는 미안한 표정으로 아야에게 고개를 한번 숙였고 유유코가 웃으며 손짓했다.

“그럼 좀 갔다오렴.”

“아오. 그럼 갔다 올 테니 모미지는 사진 함부로 찍지 말아요!!”

그렇게 아야가 몇 번 왔다 갔다하는 사이, 요우무가 기미스(황신초) 소스를 얹은 생선구이와 삶은 고기들을 썰어 넣고 유유코가 볶은 야채나 과일, 화과자들을 꽃잎으로 장식한 후 여러 봄의 제철 반찬과 음식들을 싸면서 꽤 많은 도시락이 만들어지자 도시락 뚜껑이 닫히기 전, 그 장식된 자태를 필름에 담는 아야와는 달리 이 정도로 많은 양이면 먹다가 배가 터지지 않을까 고민이 든 모미지가 물었다.

“유유코 씨, 도시락을 더 만드실 건가요?”

유유코는 턱을 괴면서 살짝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 정도면 가서 요기는 될 것 같아. 이제 그만 만들지 뭐.”

“그럼 이제 나머지 음식들은 어떡하실 건가요?”

모미지가 다시 묻자 유유코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서 먹지, 뭐.”

“예?! 이걸 다요?”

모미지가 놀라자 나머지 3명은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니, 저 도시락도 가서 드실텐데, 미리 배를 채우시겠다고요?”

그러자 요우무가 웃으며 말했다.

“유유코님은 그걸로는 배 안 차세요.”

할말이 없어진 모미지가 아야가 다 쓴 카메라 필름을 다시 갈아 끼웠고 유유코가 요우무를 시켜서 남은 음식들을 조금 나눠주면서 말했다.

“넉넉하게 만들었으니 부담없이 넉넉하게 먹자꾸나. 요우무는 조금 있다 도시락을 같이 먹어야하니 조금만 먹으렴.”

요우무가 고개를 숙이는 걸로 답하고 아야와 모미지도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들 마다 맛있네요. 잘 먹도록 하겠습니다.”

맛을 보고 감탄하던 모미지는 입에다 음식을 넣기 바빴고 유유코도 참아왔던 만큼 요우무가 건네주는 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했으며 아야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과연 미각이 좋으시다보니 요리도 그만한 맛을 자랑하시는군요!”

아야도 감탄의 말을 하자 요우무는 유유코가 자신을 위해 직접 만든 음식들을 몇 점 먹으면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에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맛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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