뱌쿠렌이 말을 마치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고 짐을 주섬주섬 챙긴 모미지와 아야를 나즈린이 막아섰다.

"잠깐. 절에 들어오기 전에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어."

"네?"

나즈린이 다우징 봉과 펜듈럼으로 그들의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하자, 모미지는 자신이 숨긴 품 안의 필름이 들킬까 조마조마하며 말했다.

"뭘 하려는 거죠?"

"혹시 수상한 물건이라도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지 살펴보려는 거지. 유비무환으로 말이야."

"그 말은 저희를 믿지 못한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걸릴 게 많은 모미지가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아야도 동조하며 나즈린에게 따졌다.

"후토도 절 안에서 불 지르면 안 되니까 좀 살펴봐야겠어."

"허허헛, 더 불 지를 물건 같은 건 없네만!!" 후토가 실없는 소리라는 듯이 비웃으며 외쳤다.

"에이, 그럼 나즈린도 점검해야지. 나즈린도 원래 절에 안 살잖아." 무라사도 딴죽을 걸었다.

"시끄러워. 음." 나즈린이 능력을 사용하며 살피다가 배낭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 꺼내봐."

"네?" "에?" 아야와 모미지가 동시에 놀라서 소리치자, 나즈린은 그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꺼내 보라고, 이런 건 확실히 해야지. "

"응? 가방에 뭐라도 있어?" 코코로가 물었다.

"우리 절에 들어오려는데 수상한 것이라도 있으면 곤란하지."

"찍은 필름에 손상 가면 어떡하시려고요! 얼마나 예민한 물건인진 알아요??"

"몰라, 어떻게든 물어 줄 테니까 조심스럽게 다 꺼내봐!"

아야가 할 수 없이 모미지가 맸던 배낭에서 필름과 렌즈, 카메라들을 다 끄집어내자, 나즈린이 철저하게 다우징 봉으로 탐색했다.

"음, 금속반응은 렌즈랑 카메라에만 나오고, 딱히 수상한 건 없네."

"어디 봐." 이치린도 거들면서 카메라들을 만져보고 누에도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며 살피는 등, 빈 배낭 안까지 확인한 나즈린이 카메라의 상이 비추는 것까지 눈에 대고 살펴보고 펜듈럼을 거두자, 모미지가 탄식을 내뱉고 아야는 그다지 불만없는 표정으로 필름과 카메라들, 렌즈들을 배낭에 쑤셔 넣었다.

"자, 이제 확인된 건가요?"

"아니, 니들 옷도 수색해야지."

나즈린이 무표정으로 아야를 흘겨보면서 그녀의 벨트 부분을 살피자 아야가 난처하게 바라보았다.

"꼭 이래야만 하나요? 보는 눈도 많은데?"

"시끄러, 분명히 니들 중에 뭔가 물체 같은 게 잡힌단 말이야. 그게 뭔지는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저기 나즈린, 이 정도만 해도 민폐인데 이 정도로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쇼가 다가가면서 말리자 나즈린이 주섬주섬 아야의 옷들을 살피며 말했다.

"안 돼, 내 능력이 물건을 찾는 능력이지만 사물이 무엇인 줄 알아야 정확하게 찾지, 그냥 능력을 쓰면 물건이 있긴 있는데 그게 확실히 무엇인지는 끄집어내지 않는 이상 모른다고! 니들 중에 분명 있는데."

나즈린이 아야를 지나쳐 모미지의 허리춤을 살피자 모미지의 목덜미가 떨리고 손과 발에서 땀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하자, 긴장으로 경직된 손으로 무의식중에 품 안의 필름에 손이 안 가도록 이성의 끈을 확실히 잡으며 외쳤다.

"주지승님! 주지승님!"

뱌쿠렌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자 나즈린과 이치린, 쇼도 당황하고 뱌쿠렌도 황당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아, 확실히 점검 중이었어. 우리 절에 수상한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 말야."

"그래서 수상한 게 나왔나요?"

"아직. 하지만 분명히 있어." 나즈린이 확신하듯 모미지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아야 씨 물건은 다 살핀 건가요?"

"뭐, 모든 물건은 다 살피긴 했는디." 지켜보던 마미조가 대답했다.

"그럼 됐네요. 더 의심이 필요한가요? 다들 이런 시간에 저녁 준비부터 하고, 후토 씨랑 모미지 씨, 아야 씨는 결례를 용서하고 식사 준비랑 촬영 준비 들어가 주세요."

뱌쿠렌의 상황정리에 나즈린도 아쉬운 표정으로 다우징 봉을 집어넣고 지켜보던 코가사는 코코로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방 안에 들어갔으며, 마미조와 누에는 돌아서서 들어가는 뱌쿠렌을 슬쩍 쳐다보다가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자, 이제 사소하게 굴지 말고 먹으면서 놉시다. 나즈린. 먹을 땐 먹고 놀 땐 놀아야죠."

쇼가 나즈린을 부여잡고 방으로 끌고 가자 나즈린이 난처한 얼굴로 아웅다웅하다 끌려가고, 치르노는 자신의 주문이 밀려있는 게 생각났다며 작별인사를 하고 날아갔으며, 남들 정신 팔릴 때 제일 바깥쪽 문인 일주문을 살피러 간 쿄코도 빠르게 돌아와 무라사와 말을 나누며 함께 들어가고 이치린이 후토와 승강이를 벌이다 들어가 아야와 모미지, 둘이 남게 되자, 아야가 말했다.

"뭐해? 들어가야지?"

깜짝 놀란 모미지가 긴장을 풀지 못하고 긴 한숨을 쉬며 내뱉었다.

"어휴 씨, 깜짝이야. 너나 들어가!"

"아니, 안 들어가면 안 들어가는 거지 웬 성질이람!"

모미지가 흥건해진 손을 옷에 닦으며 화를 내자, 아야도 짜증을 내며 외쳤다.

"비싼 렌즈들인데 다시 닦아놔야 하잖아. 모미지, 여기 극세사 천으로 렌즈들 다 닦아놔."

"시끄러워. 내가 만진 것도 아닌데."

"니 할 일이 뭐지?"

아야가 공문을 꺼내 들자 모미지가 격분했다.

"아잇! 그것 좀 그만 꺼내! 무슨 노예 문서야!! 나즈린 씨가 말한 수상한 물건이 그거네! 그거!"

"너야말로 시끄럽고 다 닦아놔라. 사진 계속 찍어놔야 하니까! 히히힛!"

모미지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품 안의 필름들을 건드리며 안도의 한숨을 털어내는 사이, 나즈린이 쇼에게서 벗어나 뱌쿠렌에게 다가가 말했다.

"뱌쿠렌. 이야기 좀 해."

"어떤 이야기이죠? 나즈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들어오는 요괴들에 대한 소지품 검사도 못 해?"

못마땅한 표정의 나즈린이 따지자, 뱌쿠렌이 인자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나즈린에게는 그들이 많이 수상했나 보네요."

"응, 그러니까 확실히 알아보려고 한 건데, 그걸 말리는 건 좀 아니지."

"그랬었군요. 그래서 알아보려고 했었고요. 하지만 나즈린. 그건 의심이에요. 의심을 품어서 확실한 물증이 나왔나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뭔가 있긴 있었다고."

나즈린이 살짝 당황하자 뱌쿠렌이 다시 물었다.

"확실한 물증이 있었는지에 대해 묻고 싶군요."

"아니, 그렇게 확실한 건 아닌데. 그러니까 알아보고자 하려는 건데."

뱌쿠렌의 위압감에 눌린 나즈린이 당황하며 말하자 뱌쿠렌이 한숨을 길게 쉬며 말했다.

"나즈린. 당신의 물건 탐지능력은 정말 대단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의문과 의심은 결국 그럴만한 이유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게다가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는데 의심을 품고 캐게 되면 아야 씨와 모미지 씨의 기분은 어떨까요? 성심껏 코코로 씨의 교육을 돕고 싸우던 예전에서 벗어나 화합 분위기를 만들려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아니.. 뭐, 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상하잖아."

나즈린이 못마땅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자 뱌쿠렌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즈린. 그건 번뇌에요. 수상은 한데 증거가 확실하지 않는다는 건 나즈린의 마음이 그들을 믿고 싶지 않은 거겠죠. 그런 비합리적이고 무분별한 미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알아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심증만이 아닌 누구나 수긍할 확실한 물증을 찾아야 하겠지만 결코 그 과정에서 이 합의가 깨질만한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절에서는 그런 번뇌스런 마음을 버렸으면 하군요."

나즈린은 단호한 뱌쿠렌에 말에 대화가 통하지 않겠다 싶어서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뱌쿠렌이 말했다.

"자, 그럼 저녁준비와 함께 이번 교육에 나즈린도 열심히 임하도록 하세요. 나즈린도 불제자로서 우리의 자비와 종교적 역량에 대해 도교 분들이든 상관없는 텐구분들이든 수긍하게끔 보여주도록 합시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즈린에게 뱌쿠렌이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공양간(절의 부엌)으로 들어가자, 나즈린이 머리를 긁다가 한숨을 한번 푹 쉬고 말했다.

"뱌쿠렌에겐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지."

그리고는 절간의 곳곳을 다우징 봉과 펜듈럼으로 이질적인 것이 있나 구석구석 다우징하며 찾아보기 시작했다.

공양간으로 들어온 뱌쿠렌이 이치린, 무라사와 같이 공양간에서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하고 쿄코가 길어온 물로 손을 씻고서 저녁준비를 하자, 후토와 모미지, 아야도 같이 껴서 관람했다.

"어우, 깜짝이야. 옷이 하에서 얘도 앞치마 입은 줄 알았네." 

이치린이 후토를 보고 놀라서 외치자 후토가 얼굴이 붉어져 자신의 에보시[각주:1]를 만졌고, 다른 요괴들도 피식 웃었다.

"이런! 무엄하도다!"

"공양간에 이렇게 많이 들어올 필요는 없는데."

"저흰 촬영해야 하니까요. 후훗."

이치린이 카메라를 든 아야의 말에 투덜거리자 후토가 째려보며 말했다.

"흐흥! 요리가 잘 되는지 구경하고 싶을 뿐이네!"

"너 생각보다 언행이 솔직한 거 같다?"

후토를 가리키는 이치린의 말에 후토가 얼굴이 붉어졌다.

"도교를 행하는 자는 모든 생활에 있어 깨달음을 추구하고 자연스러움을 행해야 하는 법이다!"

"어휴, 어련하시겠어." 무라사가 읊조리며 미쯔바(참나물)를 물에 씻어 접시에 놓았다.

"그럼 저녁 메뉴는 무엇이죠?"

"아무래도 모코우 씨가 가져온 죽순으로 죽순 밥에 고야참플(여주볶음), 미쯔바(참나물)와 미소국으로 준비하려고요. 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는 음식들이에요."

"오, 그렇군요! 그럼 열심히 취재하겠습니다. 모미지 필름 좀 갈아줘."

아야가 모미지에게 카메라를 넘기고 다른 카메라를 꺼내 들자, 모미지가 능숙하게 필름을 갈았다.

이치린은 죽순을 잘라 쌀을 씻어놓은 쌀뜨물을 냄비에 담은 뒤, 붉은 고추와 같이 넣고 아궁이에 놔두며 말했다.

"너 여기 아궁이에 불 좀 피워. 너 좋아하는 거잖아."

"키킥." 무라사가 웃자, 후토가 자신이 생각해도 기묘했는지 난감한 표정으로 부싯돌을 쳐서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후토 씨가 절에 제대로 된 불을 피우셨네요."

"그러네요." 아야가 사진을 찍으면서 뱌쿠렌의 말에 동조했다.

아궁이에 불을 피운 후토가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으며 불을 피우자, 삶기 시작한 냄비 근처에 밥솥을 놔둔 이치린이 후토에게 말했다.

"미소(일본 된장)국 만들 줄은 알아?"

"알다마다!"

"그래? 잘됐네. 좀 만들어줄래. 미소는 저기 항아리에 있고 두부는 아래쪽에 사둔 게 있어. 야채 손질 좀 해야 해서."

후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씻은 뒤, 냄비를 꺼내와 물을 담고 도마를 가져와서 두부를 썰기 시작하자 이치린이 만족스러운 듯 버섯을 손질했다.

뱌쿠렌이 씻은 쌀을 불려놓고 고야(여주)를 썰기 시작하자, 아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셔터를 눌러댔고 모미지는 사방에서 풍겨오는 음식냄새에 무의식적으로 입 끝이 올라가면서 뒷짐을 지고 지켜보았다.




방의 다른 한구석에서는 코가사가 코코로와 같이 벽에 기대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츠쿠모가미들에게도 만나서 확 하고 놀래키려고 숨어 있었는데, 내가 그만 깜빡하고 잠들었지 뭐야?"

"앜크크킄, 정말?"

코가사가 기분 좋을 때 쓰는 노인 가면을 보이며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묻자 코가사가 신 나서 말했다.

"응, 근데 다른 애들이 어쩌다가 날 발견하고 확 놀라는 거 있지! 거기서 생뚱맞게 잠들어 있을 준 몰랐다고 그러더라! 흐흐흐흐."

"으히히히힠. 어쨌든 언니 성공은 했넼크크킄."

코코로가 박수를 몇 번 치면서 맞장구를 치자 코가사도 웃으면서 자신의 우산을 껴안았다.

"잠깐, 너희 이야기하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좀 끼어들어도 될까?"

누에가 코코로와 코가사에게 다가와서 묻자, 코코로와 코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슨 이야기인데?"

"음, 멘레이키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볼 거라서 코가사 너는 좀 비켜줄래?"

"음, 그렇게 말한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알았어!"

코가사가 우산을 들고 방에서 나가자 코코로가 아쉬운지 코가사를 슬쩍 쳐다보았고 누에가 멀어지는 코가사를 확인하고는 방문을 닫고서 코코로에게 물었다.

"너와 우리가 절에 있는 이상, 서로 허물없이 지내려면 솔직해야 하잖아? 그렇지?"

"뭐, 그렇겠지."

"그래, 너도 그런 점은 수긍은 하는구나, 그래서 우리가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몇 가지를 물어볼 건데 말야.

너 혹시 텐구들이랑 오기 전에 이야기 나눈 거 있어?"

"음? 어떤 거?" 코코로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가면으로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집게손가락으로 긁으며 물었다.

"뭐, 구체적으로 오늘은 뭘 할거라든지, 그런 거. 사소한 거라도 말야."

"아니. 그냥 오늘 절에서 배울 거라고만 했어."

"저번에도?"

"응,"

"처음 이걸 시작할 때도 그랬어?" 누에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랬다니까? 날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그러려면 내가 배워야 한다고 그랬어. 태자한테도 그랬고!"

"태자라.. 그 녀석을 이야기하는 건가."

"응, 태자한테 이야기했다고 텐구 언니가 그래서 바로 여기로 오게 된 건데. 난."

"뱌쿠렌은?"

"나야 모르지. 그때 절에 처음 와서 이야기 나눴어. 진짜야."

"그래? 텐구는 따로 또 뭐라고 했었어?"

"그때 언니도 들었던 그게 전부야."

"아, 그래?"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누에가 이것저것 물어보자 코코로는 점점 '이 언니가 왜 이러냐'는 듯이 무표정의 가면을 보이며 팔짱을 꼈다.

"그래, 그럼 넌 따로 들은 건 없다? 텐구든 도교 쪽이든?"

"그렇다니까. 들은 거라곤 잘 배우고 오라고 태자가 말한 게 전부야."

"텐구가 너를 데려올 때도?"

"그럼. 오늘 기분 어떠냐? 배운 것은 기억나느냐? 그런 것뿐이야."

"믿을 수 있는 거지?"

"참, 저기 언니. 내가 표정이 변하지 않아서 그렇지 말할 때 가면에서 다 티가 나서 거짓말 함부로 못 해."

누에가 그녀 머리 위의 가면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알겠어. 좀 확실해진 것 같네. 너무 급작스러워서 우리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거든."

"뭐, 나도 이 절에서 적응이 필요하니까. 알겠어."

누에가 방문을 열고 문밖을 나서며 말을 이었다.

"혹시 다른 일 있으면 우리도 알아야 하니까 알려줘. 그래야 서로 믿고 임하지."

"알았어. 언니."

'그다지 큰 수확은 없었네. 쳇.'

누에가 투덜거리며 문을 닫고 복도를 계속 걸어가자 다우징 봉을 양손에 낀 나즈린이 무성의한 표정으로 말을 거는 쇼와 쿄코에게 말을 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나즈린도 그 선술집에 가면 만족할 거라니까. 거기 완전 죽여준다고."

"허헛, 주인. 절에선 그런 이야기 하는 거 아냐."

"이야기하는 거 아냐!!!!"

"에이, 나즈린도 거기서 몇 잔 걸치면서 먹으면 분명히 반해. 거기 야키토리(일본 닭꼬치)가 소스가 정말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된다고. 아까는 치르노가 있어서 시원했지만, 지금처럼 방 안에서 푹푹 찔 때는 몇 잔 걸치면 바로 시원해 진다니까"

흥분해서 들뜬 모습으로 격양된 쇼에게 나즈린이 주책없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말했다.

"알았으니까, 주인. 이따 저녁이나 그렇게 드시고 짧은 치마랑 반팔로 갈아입은 다음에 얘랑 같이 좀 놀아."

"같이 좀 놀아!!!!"

쿄코가 크게 외치자 나즈린이 웃으면서 쇼에게 보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거봐, 같이 놀자니까 좀 놀아줘, 주인."

"에이, 나즈린도. 다음에 꼭 같이 가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

그녀가 다우징 봉으로 달라붙은 쇼를 슬쩍 밀자, 슬며시 웃은 쇼가 쿄코를 데리고 술과 음식에 관해 이야기하기 하며 반대편으로 걸어갔고, 나즈린이 문을 열고 코가사를 찾으러 간 코코로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개의치 않고 누에를 보며 고개를 흔들자 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누에가 이야기하자 나즈린도 봉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중에 쥐가 듣는 밤이 되면 이야기하자고."

그렇게 말하고는 누에를 지나쳐 복도를 걸어가던 나즈린은 복도를 뛰어다니는 코가사와 코코로를 보며 '뭐하냐.'라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쥐 몇 마리를 불러와 주의를 당부했다.



PM 6시 20분 몽전대사묘


그 시각, 신령묘에서는 곽청아와 토지코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로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

토지코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곽청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물론이죠."

말없이 곽청아를 쳐다보는 토지코에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애초에 이 상황이 이해가 가긴 하나요?"

"그건 아니지."

딱 잘라 말하는 토지코에게 곽청아가 특유의 묘한 웃음으로 살며시 곁에 앉으면서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 생각해봐요. 그렇게 종교전쟁까지 벌이며 인기를 위해 싸웠던 이들이 인제 와서 교육 운운하며 서로 평화모드에 들어간다고요? 너희가 섬기는 높고 높은 태자와 불교에서 그 콧대 높은 주지승이 서로 화기애애하게 텐구의 말을 순순히 듣고? 단순히 생각해봐도 밖에서 보이는 표면적인 이미지 달랑 하나 때문에 모든 걸 감수하면서까지 그럴 리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 상황을 수긍하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밑에 있다?"

곽청아가 주먹 쥔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만 펴 토지코에게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그거죠! 그걸 좀 알자는 거랍니다. 내 주장은 말이죠."

"하지만 태자님이 행하는 일에 신하가 의심나는 대로 건드린다는 것은 태자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

토지코가 고개를 젓자 곽청아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우린 태자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텐구를 믿지 못하는 거랍니다. 어쩌면 태자가 주지승이랑 같이 텐구에게 놀아나고 있을 수도 있지요. 텐구야 말로 욕심 가득하고 이득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요괴일 뿐이잖아요. 그런 것들에게 종교의 수장들이 놀아나는 건 더 위신 상하는 일 아닐까요? 후후후."

"그건 맞는 말이지만.. 사실 태자님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한 게 한두 가지는 아니었어."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네요. 그러니까 좀 확실하게 배경을 알자는 거죠. 진짜 불미스러운 배경이나 사건이라도 있으면 자리에서 박차고 나가버린 후, 비난하면 그만이고. 아니면 필요하다면 불교 쪽을 좀 몰래 괴롭혀서 못 견디고 나가게 해 이 자리를 파투내고 텐구와 불교 측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 버리면서 역시 못 믿을 것들이었다고 선전해 우리가 더 부흥할 수도 있고요. 방법은 참 많답니다."

토지코가 곽청아를 노려보듯이 쳐다보자 곽청아가 윙크를 하며 말했다.

"물론 '필요시'에야. 필요시. 후훗. 이래 보여도 다 전략 아니겠어요?"

"적과의 협상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아 알아보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곽청아 그대 생각에 공감하는 건 신하된 자로서 위의 위신을 고려해 태자님이 텐구에게 놀아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일 뿐이야."

"그래,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참 고맙지."

곽청아가 토지코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음흉한 미소로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알아내자고요. 태자와 텐구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또 이 모든 것의 배경에 대해 말이죠."



PM 6시 45분 묘렌사 공양간



공양간에서 이치린이 삶은 죽순을 우스바보쵸(薄刃包丁, 야채를 취급하는 칼)로 깍둑썰기하여 불린 쌀과 같이 넣고 밥을 지었고, 후토가 양수냄비에서 끓는 물에 미소(된장)를 풀어놓고 고운 채로 덩어리를 걸러낸 뒤, 실파를 가늘게 채를 썰어 찬물에 헹궈 매운맛을 씻어내고 청주와 같이 첨가하고는 간을 보고서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연한 소금물에 미리 살짝 삶아놓은 두부와 버섯을 넣었다.

"아까보니 센기리(せんぎり, 5~6cm 정도로 채 썰기) 속도가 제법 빠른데. 요리 하는 쪽인가 봐?"

"사이노메기리(さいのめぎり 두께 1cm 크기의 정육면체썰기)하는 자네보단 많이 했을 걸세."

둘이서 칼로 무언가를 써는 방법을 가지고 말을 나누자, 지켜보던 모미지는 전문분야라 가소로운지 희쭉 웃음을 지었다.

아야가 바람으로 공양간 안에서 차오르는 열기와 김을 흩어버리는 와중에 후토가 국이 끓으면서 거품이 생기는 대로 걷어내어 산초가루를 뿌림으로써 미소국을 끓여냈고, 무라사가 자루(腐, 데치거나 보관할 때 쓰는 소쿠리)로 데치고 찬물에 담가둔 미쯔바를 이치린에게 건네받은 칼로 썰어둔 양파와 스리바치(すりばち, 일본식 절구)에 살짝 으깬 통깨, 약간의 소금, 참기름과 간장을 곁들여서 볶아 초록빛이 감도는 무침 반찬을 만들고, 뱌쿠렌이 고야(여주)를 두부와 야채, 다진 고기와 볶으면서 계란을 풀어 노란빛과 함께 흰 두부와 야채, 고야의 초록빛이 어우러지는 고야참플(여주볶음)을 요리하자 그 광경을 보던 아야가 호기심에 물었다.

"주지승님은 고기를 안 드신다고 들었는데요."

"네, 저는 먹지 않지만 다른 분들은 드시니까요."

"아, 그렇군요."

"절의 방침과는 어긋나지만 사정상 외부에서 온 분들이 많으니 다른 분들의 입맛도 존중해야죠."

"그렇군요. 그럼 술은요?"

문화첩에 펜으로 적던 아야가 물어보고 모미지도 눈동자를 반짝거리자 뱌쿠렌이 웃었다.

"하하, 될 것 같나요?"

"에이. 너무해."

아쉬워하는 아야와 모미지, 이치린의 표정을 뒤로하고 뱌쿠렌이 마무리를 지었다.

"자, 다 됐네요."

접시들 마다 가득 고야참플과 미쯔바 무침을 담아내자 아야가 셔터를 광속으로 눌러댔다.

"오오오옷! 명련사의 주지승님이 볶아내고 담아낸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야참플과 배유령이자 성련선의 선장이 기품있게 담아낸 미쯔바 무침이라니 정말 황금보다 더 빛나고 먹음직스럽군요!! 대단한 비쥬얼이에요! 환상적인 조명과 앵글에 맞춰 정성이 카메라에 가득 담겨 있네요!! 보기 좋습니다!!!"

"하하, 주책맞은 칭찬 감사드려요. 아야 씨." 뱌쿠렌이 웃으며 말했다.

이치린이 이 텐구가 뭔 청승맞는 소리하냐는 듯이 쳐다보다가 문득 모미지가 코를 계속 킁킁거리더니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모르고 훌쩍훌쩍한 코와 함께 입에서는 침을 흘리자, 더 어이가 없어져 입을 열었다. 

"얜 왜 저러는 건데요?"

"뭐야? 이 텐구는 비염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러자 놀란 모미지가 허겁지겁 소매로 코와 입을 닦으며 딴청을 부렸고 그걸 본 아야가 실실 웃으면서 비웃듯이 말했다.

"개과 특성이예요. 후각이 발달해서 맛있는 냄새에 더 민감하죠. 지금 미소냄새에다가 요리중이라 더 정신 못 차릴걸요."

차마 부정은 못한 모미지가 그저 너풀거리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장작을 아궁이에 던져 넣었다.

"그래도 선장인데 나도 좀 잘 나오게 찍어. 이왕 앞치마도 입었는데."

"호오오오! 역시 뭔가를 아시는군요! 바로 그 자세예요!!"

무라사가 요리하는 자세를 잡고 아야가 자동적으로 렌즈를 바꿔 끼우고 모미지에게 불붙은 장작을 두 개 꺼내들게 하여 조명을 조절하면서 컨셉사진을 찍자, 황당해서 표정관리가 안 되는 이치린을 끼고 뱌쿠렌도 인자한 표정으로 고야참플이 담긴 접시를 잡았다.

"아아아앗! 주지승님도 가세하는 건가요! 정성스러운 그 자세 좋아요!"

셔터를 누르다가 필름이 다 되자 신속히 카메라를 모미지에게 주고 다른 카메라로 찍는 아야와는 달리 모미지는 귀찮은 표정으로 받아든 카메라의 필름을 갈면서 슬쩍 하나를 바꿔치기했고, 후토는 미소국이 다 끓자 국그릇에 담으면서 아야에게 말했다.

"이보게 텐구! 나의 미소국을 봐주시게나!"

"으아아아앗! 도교의 수행자가 선보이는 미소국이로군요! 정말 번쩍번쩍 빛나는 것 같아요!"

"그렇다네! 도교의 높은 가르침만큼이나 깊이있고 향내가 물씬나는 미소국이라고! 에헴!"

플래시 세례에 기세등등한 포즈로 답하며 죽이 잘 맞는 둘을 보던 이치린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바보가 둘이야."

모미지도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계속 끄덕였다.

"어디 맛이나 보자."

이치린이 국자로 조그만 국그릇에 담아 조금 마셔보고는 놀라며 말했다.

"맛있는데? 야, 이거 진짜 잘 됐다!"

"깊이있는 향내가 난다고 하지 않았느냐. 허허헛!"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들뜬 후토에게 이치린도 놀라며 말했다.

"아니, 진짜 잘됐어. 미소를 어떻게 풀었데?"

"태자님과 토지코의 밥상을 차릴 때 익힌 내 비결이니라!!"

"오오, 한번 밥 되면 먹어봐."

이치린이 태도가 달라지면서 후토에게 붙자 기분이 좋아진 후토도 웃으면서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보도록 하지. 후후."

"자자, 이치린 밥은 다 됐나요?"

"아, 뜸만 들이면 될 거예요. 다들 불러오면 그때 밥 푸죠."

"그래요. 그럼 다들 식사하자고 합시다. 이치린이 만든 죽순 밥이니 맛있을 거예요."

"그럼, 죽순 손질도 잘해놨다고."

"와! 정말 기대되네요!"

아야가 반색하며 모미지에게 고개를 돌리자 아야의 시야에 흥건해진 콧가와 함께 미소국을 맛보는 모미지의 모습이 보였다.

"모미지?"

"헉, 앗! 뜨거."

안 볼 때 허겁지겁 국이 담긴 사발을 맛보던 모미지가 놀라서 황급히 내려놓다 튄 국물과 낯뜨거움에 붉어진 얼굴로 두 집게 손가락을 맞대고 비비며 대답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미소냄새가 강렬하다보니 눈 앞에 있는게 맛있어 보이기에 맛만 보려고 했는데."

아야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말했다.

"어휴, 그래서 맛있어?"

"어.. 음? 음 그러니까 응! 인정!" 모미지는 철저히 물어본 아야가 아닌 뱌쿠렌을 쳐다보며 얼굴에 화색이 돌며 박수를 쳤다.

"맛있게 먹어주어 감사드립니다. 더 많이 해야겠어요." 뱌쿠렌이 합장을 하며 화답했다. 

"모미지가 생각보다 음식을 예쁘고 맛있게 잘 먹네요. 다른 분들도 먹고 싶을 정도로요."

아야가 주변을 의식해 눈치것 감탄하는 사이, 무라사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그럼 됐네. 뱌쿠렌이 고기 섞은 요리도 다하고 말야. 후훗. 식사나 맛깔나게 해보자고."

"텐구분들은 사진 잘 부탁드려요." 뱌쿠렌의 말에 아야와 기분 좋아진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1. 烏帽子: 일본 전통의 길쭉한 모자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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