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불경 조각을 집어 살짝 껍질을 벗겨내자, 겉에 써진 글씨와는 다른 내용으로 글자가 빼곡히 적힌 글이 모습을 드러냈다.

'체계는 그대로, 정견(正見) 27 고제(苦諦) 35, 2994.'

모든 사물이 그대로인지를 확인한 나즈린은 낯이 익지 않은 물건 하나를 걷어낸 뒤, 종이에 써진 글씨를 읽으며 책장의 맨 밑바닥 부분에서 왼쪽 5번째에 있는 책을 꺼내 99페이지의 24번째에 해당하는 글자를 다른 종이에 붓으로 받아적으며 다시 지령을 확인했다.

'정념(正念) 52 집제(集諦) 49, 6147.'

7번째 층에서 오른쪽에서 4번째에 있던 책을 꺼내 든 나즈린이 14페이지의 67번째에 해당하는 글자를 받아적었다.

'정어(正語) 83 고제(苦諦) 29, 4235.'

4번째 층에서 왼쪽으로 9번째 있는 책에서 23페이지의 45번째에 해당하는 글자를 받아적은 나즈린의 눈과 손이 학습되어 제법 빠르게 움직였다.

'정업(正業) 19 멸제(滅諦) 35.'

그녀가 책상에서 왼쪽에서 5번째에 자리 잡은 불상에 적힌 글귀 중 19번째에 해당하는 글씨를 받아적었다.

'정정(正定) 4 도제(道諦) 72.'

책상 왼쪽에서 두 번째에 배치된 벼루에서 모퉁이에 써진 상표의 글자 4번째를 그대로 적는 등, 쪽지에 적힌 그대로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보고 책상에서는 물건들을 살피며 글씨를 적어나간 나즈린의 모습에 쥐들도 곡식까먹으랴 냄새맡으며 주위 살피느랴 둘의 병행으로 분주해지고 덩달아 예민해져서 경계를 삼엄하게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그녀가 꼬리를 말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전부 마법으로 하는 건 뱌쿠렌에게 들킬 우려가 있어서 안 된다지만 번거로운데 암호도 마법으로 해주시면 안 되나.'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코를 킁킁거리는 쥐들의 꼬리를 흔드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주위 소리에 예민해진 나즈린이 시간이 조금 흘러 마지막 글자까지 받아적자, 조심스럽게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보고확인 완료 절의 밀착 생활이 가능해진 만큼 발각되지 말고 오늘부터 대상의 움직임과 의사를 철저히 보고할 것 '

"흠.."

나즈린이 종이를 내려놓고 다른 종이를 꺼내 붓으로 오늘 쇼에 관에 보고 들은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보고서를 평문으로 적고는 편지처럼 접어 서랍 바닥의 마법 진에 내려놓았다.

'솔직히 오늘 주인을 많이 못 봤지만 그동안 보았던 내용을 적었으면 됐겠지.'

그리고는 지령이 적힌 종이와 받아적었던 종이도 같이 서랍에 집어놓고 위장용이던 바닥 뚜껑을 닫은 뒤, 서랍문을 닫자, 큰 소리가 나서 살짝 움추려든 나즈린이 힘조절을 잘못했네 투덜거리고는 펜듈럼으로 잠가 버리고서 꺼내놓은 책들과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팔정도(八正道[각주:1])와 사성제(四聖諦[각주:2])라니, 역시 비사문천님 다우시군.'

나즈린이 돌아보자 주위 정찰을 마친 쥐들이 마지막으로 방문을 닫았고, 서랍을 닫고 이부자리에 누워서 얇은 이불을 감기 걸리지 않도록 배에 덮은 나즈린은 베개를 들척거리며 통풍 잘되는 파자마와 천의 시원한 촉감과 함께 꼬리가 눌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서늘한 잠자리에 몸을 기댔다.

"주인이랑 같이 지내는 와중에 이 일도 해야 한다니, 요즘 하는 일이 많은데 정말 조심해야겠어."

이런저런 생각들로 살짝 불편해진 기분에 두 팔을 기지개 켜듯 펼치며 마음속으로 하소연하듯 외쳤다.

'하, 요즘 왜 이렇게 신경 쓸 게 많지!'

그리고는 한숨을 한 번 길게 쉬고 눈을 꾹 감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난 어쨌든 비사문천님의 부하니까." 

그녀가 눈을 감은 것을 본 쥐들이 호롱불을 끄자, 하루 동안 쓴 신경만큼 나즈린의 눈꺼풀도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PM 10시 32분 몽전대사묘


"두 분 다 수고가 많으셨군요. 멘레이키도 잘 배우고 왔는가?"

미코가 웃으며 토지코를 옆에 끼고 여기저기 노닥거리다 코코로를 데려다 준 아야와 모미지에게 감사를 표하자, 아야가 웃음으로 답하고 모미지는 주변을 기웃기웃 살폈다.

"어엄청 많이 배우고 왔어!!" 두 손을 번쩍 들면서 자랑하듯 곁에 붙은 코코로에게 미코가 미소로 답했다.

"오호, 더 배우고 싶은 열망이 밖으로도 드러나는 것 같네요. 두 분께서 잘 도와주시고 있으셔서 그렇겠죠."

"에헤, 아네요. 코코로 양이 배우고 익히는 열망과 역량이 뛰어나서 그렇죠."

"하하, 그렇겠죠?"

쑥스러워하는 미코가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웃는 사이, 모미지가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주시하는 것을 슬쩍 눈치챈 아야가 모미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하고 치며 신호를 줬다.

"아잇! 왜!!"

"어딜 그렇게 봐?"

"아, 아냐." 모미지가 겸연쩍은지 말을 돌렸다.

"그럼 오늘은 무엇을 배웠는가?"

"감정 중 분노에 대해 배웠어! 분노의 본질적인 표현방식은 위협이고 강력한 동기이자 항의이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당한 표현이니까!"

코코로가 반야 가면을 빠르게 슬쩍 비추며 미코의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하자 미코가 터진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좋아했다.

"하하, 누가 손본 애인지 정말 영특하지 않아요? 하하핫."

"그렇습니다. 태자님."

대견스럽게 등을 토닥여주는 미코를 뒤에서 슬쩍 바라보던 토지코는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자네들도 여기까지 왔는가?"

후토의 호기심 어린 얼굴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아야와 계속 한쪽을 쳐다보던 모미지가 쳐다보며 인사하자, 후토가 됐다는 듯 손을 저었다.

"바래다주는 길이에요."

"그러고 보니 후토는 오늘 하루 종일 안 보였는데?"

토지코의 물음에 후토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음.. 그게 말일세. 실은 대접을 좀 받기는 했다네."

"오늘 교육에 참여해주셨거든요. 저녁 식사도 차려주셨어요. 코코로 양 보호자처럼요."

아야가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미코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하, 그런 자상한 면모가 있었군그래. 후토도 이번 협력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주고 있다니 나와 뜻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매우 감격스러운 일일세."

"황송합니다. 태자님."

후토가 깍듯이 예를 갖추며 미코에게 고개를 숙이자, 손짓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준 미코가 토지코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는 와중에 아야와 모미지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우리 멘레이키.. 아니 이름을 불러줘야겠지. 코코로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끝날 때까지 좋은 교육 부탁하네."

"네, 걱정마세요. 불교 측과도 지금까지는 잘 합의되었으니까요."

미소를 지은 아야와 악수한 미코가 모미지에게 손을 내밀자, 살짝 당황했지만 웃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와 악수를 하기 시작한 모미지는 아무 생각없이 흔드는 손에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가 그녀가 자신을 기묘하게 눈빛으로 표정에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한 인상을 받고 손을 놓은 뒤에도 멀뚱멀뚱 미코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이제 들어가 봐야겠군요. 오늘 하루 다시 한 번 수고하셨습니다."

"언니들 안녕! 조심해서 가!" 미코의 쓰다듬을 받은 코코로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두 분 다 어두운 밤길 살펴가십시오." 토지코도 고개를 숙이며 배웅했다.

"조심히 돌아가게나."

"네, 그럼 다음에 볼게요."

아야가 후토의 인사까지 합쳐서 답하다가 자꾸 벽 쪽을 유심히 보는 모미지에게 말했다.

"자꾸 어딜 그렇게 봐?"

"아니, 그게."

입을 더 열려던 모미지는 아야와 더 말 섞기도 싫고 더 귀찮아질 것 같아 말했다.

"아냐."

"치, 그럼 계속 한눈팔고 뭐야. 안녕히계세요."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 저 벽에 곽청아가 계속 대기 타고 있었는데. 얘기했다간 피곤하니까.'

아야와 모미지가 산을 향해 날아가자, 미코도 코코로와 오늘 배운 것에 대해 말을 걸며 들어가고, 토지코가 후토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저녁 따로 안 차려줘도 되지?"

"그렇다네. 오늘은 좀 많이 챙겨 먹었으니 말일세."

"다행이네. 들어가서 씻고 자."

그녀들의 말을 들으며 맞은 편 벽에서 죽치고 있던 곽청아는 싫증 가득한 표정으로 못마땅한 심기를 들어내며 말을 내뱉었다.

"참, 저 텐구 천리안이었던걸 잊고 있었네. 참 성가신 능력이라니까. 뭐, 그래도 입을 다물고 있어줘서 수월하겠어."

그리곤 후토가 방으로 들어가고 토지코가 혼자 남자, 특유의 음흉한 미소로 토지코에게 다가갔다.

"응? 청아 그댄 후토처럼 어디서 무엇하다 오는 거야?"

토지코가 한심하게 쳐다보자 곽청아도 자신의 비녀를 만지작거리며 일부러 다른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 재밌는 일이 많아서 관심을 두느라 쏘다니고 있답니다. 호호."

"무슨, 청아가 관심 있는 일이라니 그것참 불안한 일이네." 그녀가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그럼요. 분명 누군가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멘레이키의 교육에 관한 일이니까요."

그러자 토지코의 눈빛이 사나워지고 언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태자님의 일을 방해할 셈이냐!"

"워워, 아무리 제가 잘못을 많이 하고 다닌다지만 그렇게 모든 일에 초를 치고 다니진 않아요. 후훗, 다만 좀 수상한 게 많다는 거죠."

"수상한 점이라니? 혹시."

속으로 이번 일이 석연치 않았던 토지코가 주춤하자, 곽청아는 쉬지 않고 몰아붙였다.

"오늘 후토가 뭘 하고 왔을까요?"

"분명히 텐구가 말하길 저녁을 차려주고 보호.."

"정말요? 오늘 제가 다 보고 왔는데요?"

"무슨..." 토지코의 안색이 변하며 물었다

"오늘 후토는 말이죠. 절에 불 지르려다 실패했거든요."

"뭐? 분명 후토라면 그럴 것 같아서 거짓말이라도 설득력이 있지만.."

"거짓말은 아니에요. 절의 땡중들에게 직접 물어보시면 부인하지 않을 거니까요. 오히려 텐구들이 거짓말을 퍼붓는 광경이랍니다." 나풀거리는 천들을 잡아 손으로 흔드는 곽청아가 씨익 웃었다.

"그치만. 욕망을 볼 수 있는 태자님께서 진행하시는 일인데 그 정도는 눈감을 수도 있지 않나?"

"그래요. 토요노미미 님은 분명히 모두의 욕망을 훤히 꿰뚫고 있죠. 남의 의도 정도는 쉽게 간파하시는 분이신데 그걸 하나도 짚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가신다? 특히 당한 불교 쪽은 더더욱 조용하게 넘어가 도교의 수하에게 저녁도 대접하고 교육까지 해주고?"

"음.." 토지코가 턱을 괴며 눈을 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싸워온 불교와 갑자기 협력한다는 점도 의아하지만, 자신이 만든 요괴이자 도교적인 상징으로 쓸 수 있는 멘레이키에 불교 물을 들이는 것도 분명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일 텐데 넘어가시고, 도교의 지도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물렁물렁해졌나요? 보나 마나 그걸 감수하고 이 일을 진행해야 하는 큰 이유가 있어서겠죠."

"분명히 의심도 들고 석연치 않은 구석은 많아. 너무 갑작스럽고 우리가 하자고 한 게 아니라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이 양쪽이 하자고 한 거니까.."

"그래요. 토요노미미 님이나 땡중이나 멘레이키의 성장이니 뭐니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라는 거죠. 후후. 그렇게 서로 대화가 통하고 관용적이었다면 애초에 전쟁이 왜 일어났겠어요? 거기에 계속 이 일을 진행하게 하려고 거짓말하는 사건과 기사에 환장한 텐구까지."

"청아 말은 산이랑 절이랑 우리 태자님이랑 서로 다른 의미로 입을 맞췄다는?"

"단순한 음모론은 아닌 거 알죠? 엄연히 정황증거가 있으니까요. 그 예로 천리안을 가진 텐구가 분명히 숨어있는 저를 보았을 텐데 입도 뻥긋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있으면 일이 방해될 거라는 것으로 여겼던 듯이 말이죠."

토지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한 곳을 계속 쳐다보던 모미지가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지. 방해할 건가?"

"어머, 그런 과격한 표현을, 사정이 어떻게 되는 건지 좀 알아보자는 거죠. 특히 이걸 진행하고 있는 수상하기 그지없는 텐구들은 더더욱."

'하긴, 텐구들이든 절에서 사는 것들이든 꿍꿍이나 의도가 있다면 태자님이 모르진 않을 터, 그걸 다 반영할 만큼 태자님도 무엇이든 의도가 있으시다는 건데.'

특히 곽청아 모르게 해야 된다고 청아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했던 미코의 모습이 떠오른 토지코는 공감하는지 고개는 끄덕거리면서도 한숨을 한번 쉬며 말했다.

"하지만 신하로서 명령에 반하는 일을 할 수는 없어."

"참, 이건 반하는 일이 아니라 조사라고요. 그렇게 따질 거면 합의해놓고서 불을 지른 후토 씨도 이미 반하는 일을 했던 걸요. 하지만 그 어떤 벌도 받지 않았잖아요. 그 입싼 텐구들은 더더욱 감췄고요."

팔짱을 낀 토지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곽청아가 들뜬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내막을 이제 알아보도록 합시다. 우리도 알 권리 정도는 있잖아요? 능글맞은 산이나 뒤숭숭한 절 뿐만 아니라 남의 꿍꿍이나 욕망을 잘 보시는 분은 어떤 꿍꿍이가 있으신지도 말이에요."

"지금 말하지만 난 이해되지 않고 석연치 않은 부분에서만 알아볼 뿐 그 이상은 하지 않아."

"네. 그러든지요. " 곽청아가 만족스러운 듯이 요시카를 불러오면서 손을 들어 손가락을 접었다 피며 답했다.



PM 11시 10분 요괴의 산


산의 입구인 출입 통제소에 도착한 아야와 모미지는 경비대원들의 출입심사를 거친 뒤, 모미지가 집어 던진 배낭을 받아든 아야가 화를 냈다.

"아잇! 부서지면 책임 질 거야!! 똑바로 달라고!"

"시끄러워. 일 끝났으면 돌아가!"

"흥, 모미지 너도 올라가야지!"

그러자 모미지가 비웃으며 말했다.

"뭐래, 여기 내 직장이거든? 할 일 없음 올라가셔."

할 말 없어진 아야가 고개를 저으며 배낭을 메고 올라가자, 고소한지 피식 웃은 모미지는 품 안에 감춘 몰래 따로 빼놓은 필름을 만지작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산 안에서 단결!"

자신을 보고 경례하는 부하들의 경례를 받은 모미지가 엄숙하게 물었다.

"밤늦게까지 수고가 많군."

"아닙니다."

"그래, 내가 부재중인 동안 경계지역에 침입자가 생겼다던가 특이사항으로 경보 울린 적이 있어?"

"아뇨, 없습니다." 부하중 한 명이 상황판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럼 별일 없었네."

상황표로 열외자나 근무병력 사항을 파악한 모미지는 출동기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돌려주었다.

"근무 수고하고. 장비 고장 나는 거 있으면 항상 보고해."

"네."

돌아선 모미지가 더운지 손 부채질을 하며 집에 가기 전, 경비대장실로 가서 경비대장 근무일지를 대충 적은 후, 경찰업무를 맡은 치안과에서 추적 및 체포기록, 레이더기지에서의 감지기록과 경보장치 작동기록이 자잘한 오작동 외에는 백지인 것을 확인하고 결재 싸인을 마친 다음, 펼쳐놨던 쇼기판을 정리해 제자리에 두고 산으로 올라갔다.

어두워진 밤을 비추는 달은 너무 먼지 길가의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에 날파리와 풍뎅이, 사슴벌레들이 달라붙으며 빛을 쐬는 와중에 주변을 날아가던 모미지는 방범하러 지나가는 치안과 대원들의 인사를 받고 나서 나무에 붙어 노래하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길 위를 날았다.

경험상 경보기가 없는 나무가 우거지고 한적한 곳에서 모미지가 주변을 살피고는 나무에 걸터앉아서 바람을 쐬자, 시간이 한참 지나 하타테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잘 있었어?"

"어.. 제가 여기있는 건 어떻게 아셨죠?"

"뭘, 내 능력이 염사잖아. 모미지가 지금 뭘 하는지 생각하면 이 폰에서 다 보여주지."

모미지가 웃음과 함께 품 안에서 필름들을 꺼내 하타테에게 건네주었다.

"바꿔치기한 필름입니다."

하타테가 필름을 받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챙기고는 모미지에게 빈 필름을 주면서 말했다.

"좋아, 몇 번 더 수고해줘."

"물론이죠. 그 정도야 뭐."

그녀가 건네준 필름을 챙긴 모미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참, 혹시 하타테 씨도 아시나요? 아야가 모리야 신사에서 망신을 당했다고."

"아니, 무슨 일인데?"

"아야가 극성맞게 모리야 신사에서 무례한 짓을 하다가 사나에 씨에게 내팽개쳐졌다고 하더군요."

"뭐? 까하하하핫! 진짜 웃기네. 응징당해도 싸지." 하타테가 고소하다는 듯 숨 넘어갈듯이 배를 집고 낄낄거렸다.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하타테 씨는 기자 치고 밖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으신 것 같군요."

"아, 어후흨, 배 아퍼. 실은 말야, 사정상 내가 밖에 잘 안 돌아다니거든. 관청에도 관행상 중요한 일 아니면 참석을 안 해서."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신나게 웃은 하타테가 차분한 말투로 답했다.

"네. 그렇군요. "

"솔직히 요즘 좀 시끄럽잖아. 밤이든 낮이든 많이도 돌아다니고." 하타테가 혀를 차며 뒷목을 잡았다.

"여기는 경보장치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경비대장인 제가 보장하죠."

"응, 오늘도 엄청 시끄러웠는데 매미소리처럼 또 시끄러워지게 여기서 걸리면 안 되니까."

하타테의 말에 모미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오늘도'라뇨?"

"응? 모미지는 못 들었어? 오늘 장난 아니었잖아. 난 밖이 너무 더워서 햇빛에 피부 상할까 봐 집안에 있었는데도 엄청나게 시끄러웠다고, 사방팔방에서 백랑텐구든 카라스텐구든 날아다니고 경보장치가 울리고."

"네? 그랬었다고요?"

"응."

어디 남의 나라 이야기하는 줄 아냐는 듯 쳐다보는 하타테를 보고 병쪄진 모미지가 자신의 목 뒷덜미를 쓰다듬으며 당황해서 물었다.

"이상하다. 다들 별일 없다고 했는데."

"왜? 오늘 가 있을 때 산 쪽 못 봤어? 천리안이면 다 보이잖아."

그러자 모미지가 '아차.' 싶어서 놀라며 외쳤다.

"그러고 보니 산 쪽을 오늘 본 적이 없긴 없는데..."

손에 깍지를 끼고 목을 감싸면서 한숨을 한번 쉰 모미지가 덩달아 당황하는 하타테에게 물었다.

"아무튼 하타테 씨의 말이 사실이라는 거죠?"

"그럼."

하타테가 자신의 폰으로 경비대원들이 출동하는 사진이나 수색하는 치안과 대원들의 사진 등, 염사한 사진들을 보여주자 충격을 받은 모미지가 당황해서 말했다.

"하지만 심지어 보고서에도 각자가 하나같이.."

"엥? 어.. 음.. 어쩌면 신경 안 쓰게 하려고 그러는 거 아냐?"

하타테의 말에 모미지가 엄숙하게 말했다.

"상관에게 보고 누락은 어떤 것이든 초계 임무를 맡은 자에겐 중죄입니다."

"음, 난감하네. 뭐 잘못한 거야 문책해보면 나오겠지. 일단 우리는 우리 일이 중요하니까."

"아무튼, 확실하게 이번 일로 아야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 까마귀 때문에 제가 자리를 너무 비워서 군기 빠지고 태업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아야도 지 업보를 그대로 갚게 될 거야."

모미지가 그 말에 안도하면서 주변을 살피며 치안과 대원들의 이동방향을 파악하며 말했다.

"이제 슬슬 가보는 게 들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타테가 그 말을 듣고 염사로 폰에 가까운 곳으로 날아오는 경비과 텐구들의 사진을 찍어서 보며 말했다.

"와, 천리안 엄청 편리하네. 고마워."

"감사합니다. 뭐, 제 눈엔 하타테 씨 염사가 더 편리해 보이는데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하타테가 염사를 한 번 더 하자. 폰에는 마을로 날아가는 아야의 모습이 찍혔다.

"그냥 집에 가고 있네. 나도 집에 가야겠어."

"살펴가십시오. 그리고 잘 부탁합니다."

"응, 나도. 수고해."

모미지의 인사를 받으며 하타테가 날아가자, 모미지도 태연히 길로 돌아가 걸어가면서 풀벌래의 날갯짓 소리와 풀을 갊아먹는 소리, 매미소리와 함께 나무수액을 먹으러 딱딱한 껍질을 투닥거리면서 다투는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꽃무지와 주변을 날아다니며 붙는 벌들의 날개 비비는 소리를 들으면서 습기로 푹푹찌는 밤하늘을 걸어가며 고개를 들어 천리안으로 더 많이, 크게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다가 열권[각주:3]에서 펼쳐지는 오로라를 감상했다.

집에 들어와 지하에서 전선으로 연결된 전등을 켠 뒤, 구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게다를 벗고 양말을 빨래통에 집어놓은 후, 토킨과 목의 리본을 걸이대에 놓은 다음, 몇 달 전 캇파들의 공사로 생긴 지하수를 이용한 상수도 펌프에서 끌어온 차가운 물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아야가 주변에 시원한 강풍을 일으키며 수려한 유카타로 옷을 갈아입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의 물기를 말리던 아야는 하루 동안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며 긴 하품을 하면서 새 이불을 깔아 잘 준비를 마쳤다.

수납 가능한 공간에 빼곡히 자리 잡은 카메라들과 수많은 렌즈, 차곡차곡 쌓인 신문 뭉치나 책, 벽걸이 시계 하나와 스크랩 된 종이 자료들과 앨범, 벽마다 차곡차곡 붙은 바람에 흔들리는 사진들이 반기는 서재에서 경옥으로 만든 케이스에 담겨있던, 렌즈에 색이 있는 독서용 안경을 쓰고 '눈이 편안해지는 색소사용'이라고 글씨가 써진 안경다리를 만지며 높낮이도 조절한 뒤, 펜과 종이를 꺼내 자신이 문화첩에 쓴 내용을 보고 그대로 옮겨적은 아야는 종이들을 케이스에 넣고 열쇠로 자물쇠를 잠갔다.

그리고 안경을 벗고 배낭에서 카메라들을 꺼내 상태를 확인한 후, 렌즈를 갈거나 배낭에 챙기고 필름들을 갈아두며 나중에 인화하려고 빈 케이스에 넣어둔 그녀는 찍지 않은 필름이 담긴 작은 박스 하나를 배낭에 넣었다.

'니토리 작품'이라는 문구가 작게 써진 큰 오디오같이 생긴 기계에 달린 헤드셋을 쓴 아야는 전원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음향'이라고 써진 다이얼을 돌리고는 음악을 감상할 때 하는 모습처럼 고개와 몸을 까닥까닥 흔들고 리듬을 타며 흥얼거리면서 가계부를 꺼내 살피고 기록한 취재 및 기록용지를 꺼내 읽거나 쓰면서 정리와 편집을 마친 뒤, 작업이 끝나자 헤드셋을 벗고 다른 방에 자리를 잡고 있던 니토리가 만들어 준 윤전기를 돌렸다.

그렇게 자신의 붕붕마루 신문을 뽑아낸 아야는 헤드라인과 신문 상태를 확인하며 만족스러운지 몇십 장을 가져와 배낭에 넣었다.

짜릿함을 가누지 못해 신나는 표정으로 들뜬 그녀는 철저하게 문단속을 하고 모든 전등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 얇은 이불을 덮고 베개를 베면서 지친 몸을 기댔다.

'윙~'

순간 '탁!'하는 소리와 함께 반사적으로 아야의 두 손이 손뼉을 치자, 소리가 조용해짐과 동시에 아야가 투덜거리며 일어섰다.

"에이, 집에도 모기가 있었네. 그러게 왜 귓가에 윙윙거려, 짜증나게."

펌프로 가서 손을 씻고 곳곳에 캇파가 영원정에서 약재를 받아 공장에서 만든 'd-페노트린, 0.1%, 디클로르보스, 사이클로덱스트린(탈취성분),(탈취성분 α포함) 함유 에어로졸' 가정용 살충제를 곳곳에 뿌린 아야는 살충제를 배낭에 집어넣은 다음, 다시 이불에 몸을 기대고 몸부림을 한번 치며 등이랑 어깨가 모이지 않도록 근육을 풀어주며 편한 자세로 열대야를 보내려 잠을 청했다.


  1. 사성제의 깨달음과 고통의 원인을 없에기 위해 수행하고 행하는 도제(道諦)에서 8가지 수행방법이자 실천 덕목으로 1.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2.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기, 3.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4.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5.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6.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정진하기, 7.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있기 8. 정정(正定) 바르게 집중하기, 이렇게 8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으로]
  2.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중 하나로 네 가지의 귀한 진리 혹은 깨달음을 뜻하며 고집멸도(苦集滅道)라 하여 깨닫지 못한 자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사람인 만큼 고통을 겪는다는 진리인 고제(苦諦), 고통의 원인에 대한 업과 번뇌에 대해 통찰하는 집제(集諦), 고통의 원인이 소멸할 수 있고 소멸에 이르는 단계가 열반 및 해탈임을 일컫는 진리인 멸제(滅諦), 고통의 원인을 소멸하기 위한 수행이자 실천을 통한 행의 진리인 도제(道諦)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3. 지표면에서 80km ∼ 1000km에 해당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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