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들을 준비가 되었으니 말해봐."
손에 깍지를 끼고 자신의 배에 올려두고서 등받이 의자에 기대 허리를 펴며 정중한 자세를 취한 모미지의 눈동자에 많이 늙어서 겉으로는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지만 융합령 전만 해도 자신보다 높은 신분에 직책을 맡던 카라스텐구였던 만큼 기품있고 절제된 모습의 작전과장이 들어왔다.
"네, 경비대장님. 우리 산에서 주민의 신분이 높든 낮든 종족이 다르든 능력에 따라 직책이 맡겨지는 개혁인 융합령이 시작되어 정착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응, 그렇지."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대장님은 예전에는 말단이셨을지라도 대텐구님의 법령에 노련한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부대의 전술적인 우두머리가 되셨고 다른 신분낮던 백랑텐구들에게 능력을 통해 지위를 획득하고 성공한 우상으로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높았던 신분의 부하들을 거느리시면서 충성을 받으시죠."
"말은 고맙지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모미지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거슬린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저도 융합령보다 훨씬 이전이든 발령 직전이든 나이와 상관없이 신분에 따라 여러 고위직을 맡았었지만, 지금은 물러나 정규부대의 전술적 정보와 군사작전을 통보받고 다루는 일만 많은 고문(顧問)용 직책을 불만 없이 맡으면서 경비대장님에게 충성을 다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대텐구님이 저보다 위이기 때문에 저는 그 명령을 따라 융합령을 따르고 준수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경비대장님이 제 직속상관이자 위이고 저는 아래이기 때문에 경비대장님이라는 위를 따르는 것이죠. 경비대장님도 위이신 대텐구님의 명을 따르고 있고요."
"그래서? 불만이라도 있다는 건가?"
모미지가 자신의 천리안으로 작전과장의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았지만, 작전과장은 표정도 동공도 아무런 미동 없이 서류를 열면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제가 이렇게 말을 돌려가며 하고 싶은 말은 위에는 위가 있고 아래에는 아래가 있다는 겁니다. 위에서 위, 그리고 또 그 위, 이렇게 절차와 체계가 있다는 말이죠."
작전과장이 건네준 낯익은 무언가를 받아든 모미지는 그것이 저번에 자신이 텐마에게 직통으로 보낸 아야에 대한 탄원서임을 보고 당황했다.
"어? 이건."
"보다시피 긴급통문 보내신 거, 거부의 의미로 반려 되셨습니다. 게다가."
작전과장은 골치 아픈 듯한 표정으로 훈계하는 말투로 말했다.
"텐마님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놀라시면서 긴급 보고체계가 어떻게 된 거냐며 대텐구님에게 이야기를 하셨는지 직접 오셔서 저희를 친히 털고 가셨습니다. 덕분에 저희 작전과 애들만 엄청 혼났습니다. 직급을 떠나 온갖 풍파를 겪은 연장자로서 여기저기 일처리 하시느라 바쁘시고 고생하시는 것 때문에 기분이 불쾌하시고 답답하신 마음은 충분히 유념하고 공감합니다만 엄연히 대텐구님 명령을 수행중이시라면 좀 더 숙고하셔서 경비대장님의 직속상관인 대텐구님 안에서 처리하셨으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직급으로 위아래를 따지는 세상에서 대텐구님에게 혜택를 가장 받으신 분이시자 저의 위인 경비대장님이 바로 수혜를 베푸신 위인 대텐구님을 건너뛰고 더 위를 중요시하는 월권적인 이 사례로 아래쪽에서 자신의 단계적으로 위쪽을 충성하는 마음에 대해 의구심과 회의감이 들지 않게 하려면 말입니다."
"으음..."
모미지는 건네받은 탄원서에 큰 도장으로 '거부'라고 적힌 것을 힐끗 보고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돌리며 주섬주섬 접어버린 후, 쇼기판 아래에 깔자 작전과장이 말했다.
"아래 요괴로서 간언 1하자면 감정적으로 동요되시는 건 알겠지만 일 처리까지 감정싸움으로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랫요괴나 윗요괴나 서로 감정만 상하니까요."
"이번에는 내가 크게 실수했군. 자네나 자네 부하들에게도 미안하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제 부하들은 경비대장님 부하들이고 결국 모두 한 식구지 않습니까. 지금 차려진 쇼기에서도 말을 하나라도 어떻게 다루냐에서 승패가 결정 나는 만큼 잘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잃을 수도 뺏길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다이쇼기의 명수로 명성이 높으신 전문가이시니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작전과장이 말을 마치고 일어서자 모미지가 여전히 부끄러운 듯이 붉어진 얼굴로 어설프게 웃으며 공손히 사과했다.
"내 사사로운 실수에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네. 보급계에 불러서 작전과에 술이랑 안주를 돌릴 테니 그걸로 상한 마음을 달래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저도 최대한 애들 달래보도록 하죠. 결재 서류만 놔두고 비문(비밀문서) 케이스는 가져가겠습니다."
물품을 챙겨서 돌아가려는 작전과장에게 모미지가 뭔가 생각한 듯 손가락을 튕기며 그녀를 불렀다.
"아! 작전과장. 궁금한게 있는데."
"네. 말씀하시지요. 경비대장님."
"요사과(妖事課) 서류상, 작전과 일에 병력지원이 많이 투입되는 거로 아는데 일할 병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왜 나오는 거지?"
"음... 글쎄요. 일단 다시 분류되어 저희보단 다른 중요한 일의 작업에 먼저 투입된다고 아시면 될 것 같군요. 거기까지는 제 소관이 아닙니다. 일이 많아서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산 안에서 단결."
"산 안에서 단결."
작전과장의 경례를 받아준 모미지는 그녀가 나가자 잠깐 멍하니 있다가 다이쇼기판을 바라보고는 배치된 수많은 보병(歩兵) 말을 손으로 밀면서 바닥에 떨어트려 판에서 비우며 혼잣말했다.
"파견 나가는 병력마다 행방도 모르게 증발."
승격 전의 비차(飛車), 각행(角行) 계마(桂馬)와 함께 금장(金将)과 은장(銀将)도 치우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지휘관들도 내 입장을 헤아려 주지 않는 상태에 대텐구님은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그 까마귀에게 홀리셨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장(玉将)을 들어서 만지작거렸다.
"난리 좀 나긴 했지만 이 짓거리를 끝내려면 결국 텐마님 밖에 없는데. 간청하면 받아주실 줄 알았건만 골치 겁나 아프게 되었군. 그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직접 뵙는 수밖에."
모미지는 옥장을 다시 판의 자리에 둔 후, 탄원서를 챙겨서 서랍 안에 넣고는 문밖을 나섰다.
"대장님. 오늘 일정입니다."
부관이 경례하며 서류를 주자 모미지가 받아들었다.
"응, 어디보자."
"아, 그리고 이번 분기에 의무부대에서 전 병력에 대한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직 언제 할지 정해지진 않았지만요."
"알았어, 수고해."
서류를 대충 읽으며 부관을 보낸 모미지가 술 항아리를 들고 더위에 시달리면서 근무를 보다가 저번처럼 코코로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아야가 큰 배낭을 멘 채로 찾아오자 저승사자가 온 듯처럼 한숨을 길게 쉬었다.
"저기! 잘 지냈어?"
코코로가 반가운 표정의 가면을 보이며 아무런 표정 없이 모미지에게 인사하자 모미지도 손을 흔들면서 화답했다.
"어서 가자. 모미지!"
손을 까딱거리며 본론부터 말하는 아야에게 기가 막혔는지 혀를 차던 모미지는 코코로의 긴 머리와 긴 소매 상의가 마음에 걸렸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너, 그렇게 꽁꽁 싸매고 덥지는 않니?"
"응? 나? 아니, 소매가 짧았으면 팔의 피부가 햇볕에 탔을 걸. 그리고 치마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어서 언니 생각보다 통풍 잘 돼. 주변에 바람도 많이 불고."
노인 가면으로 손을 흔들면서 친근하게 말하는 코코로와 같이 아야도 신난 얼굴로 들뜬 목소리와 함께 들이댔다.
"후후, 저의 능력인 바람을 다루는 능력 덕분이죠. 저의 곁에 있으면 누구라도 시원하답니다!"
확실히 그녀의 주변에만 바람이 몰아쳐서 코코로의 부드러운 머릿결이 휘날리는 것을 본 모미지는 띠꺼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 잘난 '발암'을 다루는 능력 말이지? 댁 덕분에 난 암 걸릴 것 같은데."
"뭐, 뭐얏!!! 이 멍멍이가!! 바람이라고 바람!"
코코로가 '풉'하고 입만 움직이는 미묘한 웃음을 짓자, 아야는 더 민망해져서 성질을 부렸다.
"텐구 언니. 그래도 이 언니 옆에 있으면 진짜 시원해."
"어휴, 그래. 근데 난 얘가 내 눈앞에 없으면 속이 시원해." 모미지가 코코로의 팔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읊조렸다.
"흥. 나도 얘가 암 걸려서 눈앞에서 사라지면 속 시원하겠네!" 아야도 지지 않고 맞섰다.
"이게! 진짜!!"
"응?! 히힛, 맞짱이라도 떠보고서 털리려고?"
아야와 모미지가 서로 옥신각신 싸우고 코코로가 옆에서 박수를 치며 '싸워라~ 싸워라~'하고 혼잣말하는 동안 무전을 받은 경비 텐구가 무전기를 든 채 그들에게 다다가 말했다.
"저기, 방금 민원이 들어왔는데 시끄러우니까 두 분 다 밖에서 싸우시랍니다."
"으.. 진짜 두고 봐! 언젠가 이 검으로 응징해줄 테니까!"
"흥. 너같이 느린 게 나에게 닿기라도 할까 봐?!" 모미지가 으름장을 놓자, 아야도 배낭을 내던지며 신경질로 화답했다.
"뭐? 느려? 「산와 익스페리즈 가나안」! (「山窩 エクスペリーズカナン」)!"
"헤헤. 역시 느려!" 모미지의 발동된 스펠카드의 탄막을 아야가 신속히 날아서 피했다.
"시끄러워! 그 입을 정말로 다물게 해주겠어!"
"그럼 이쪽도 화답해 줘야지! 「환상풍미」(「幻想風靡」)!"
전광석화 같은 아야의 민첩함처럼 탄막이 빠르게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모미지의 탄막과 섞여가며 사방팔방으로 난무하자 살짝 자리에서 물러난 코코로는 전투태세인 여우 가면으로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흥! 빨라 봤자 좁쌀만 한 탄막으로 뭘 어쩌겠다고!"
"조, 좁쌀?! 어딜 맞추지도 못하는 게! 그럼 어디 좁쌀에 한 번 털려봐!"
출입 통제소에서 무전을 받았던 경비텐구는 쌍안경으로 주변을 관측하다가 공중에서 싸우는 둘을 보고 당황하며 카라스텐구 선임에게 보고했다.
"입구에서 싸움 난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어휴, 일단 경비대장님에게 보고하고, 상부조치를 받아야지. 그런 거 좋아하는 기자들한테도 친분상 기사로 쓰라고 알리고."
"저, 싸우시는 분이 경비대장님이신데요."
그러자 선임은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무전기를 들며 말했다.
"하아, 알아서 보고할 테니 싸우는 대상은?"
"기자요."
으르렁거리는 모미지와 빡친듯한 아야가 서로 피하고 날리기를 반복하며 싸우자, 코코로도 스펠카드를 꺼내 들며 난입했다.
"싸움은 구경만으로는 재미없어! 「노면 분노한 기랑의 가면」(「怒面 怒れる忌狼の面」)!"
사방의 탄막을 피하며 눈에 보이는 아무에게나 돌진하는 코코로의 공격을 피해 서로에게 탄을 날리던 아야와 모미지도 코코로의 영향으로 감정이 더욱 격해져 SP모드 급으로 탄막을 뿌려댔다.
"나 원, 안 오는 건 둘째치고 왜 내가 얘넬 찾으러 가야 하는 거야?"
이치린이 운잔과 함께 투덜거리며 두건을 부여잡고 요괴의 산을 향해 날면서 투덜거렸다.
"...."
운잔이 같이 날면서 이치린에게 귀속말을 하자 이치린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휴, 몰라 나도. 그냥 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
"...."
운잔이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하소연하듯 운잔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언니가 시켜서 가는 거란 말야. 노닥거리고 있는 다른 애들도 많은데 귀찮게 정말."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아.' 소리와 함께 운잔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차피 가는 거 정보 좀 알아볼 겸 요괴의 산 좀 살피고 가자. 약속한 것도 있고."
"...."
"응? 지나가 보면서 한번 봤었는데 예전과는 좀 달라져 있다는 게 무슨 소리야?"
운잔이 대답 대신 손을 가리키자 함께 구름을 헤치며 날던 이치린의 시야에 멀리 떨어져 있던 요괴의 산이 아담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음? 뭐 딱히 이상한 거 같진 않은데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라니, 무슨 소리래?"
운잔이 집게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며 아래를 향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알았어! 내려가서 살펴보면 되잖아."
산 주변을 경계하며 나는 텐구들의 시야를 피해 참배로에서 가까운 산 중턱이 보이는 위치까지 조심스럽게 내려간 이치린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어? 정말 내가 알던 산과는 좀 다른데?"
멀리서 보았을 때는 잘 닦인 길과 마을을 비롯한 몇몇 구조물, 나무들이 우겨진 것처럼 보였던 산은 나무에 가려진 곳곳에 숨겨진 알 수 없는 많은 건물과 참호같이 곳곳에 이어진 길, 그런 건물들 주변의 벽과 철조망, 거대한 조명등과 관측장비, 확성기가 배치된 수많은 경계초소와 지나가는 텐구병사들과 캇파들, 한적한 곳마다 깔린 지뢰 같은 경보장치 등이 숲이라는 베일을 덮은 채 도사리고 있었다.
"세상에.. 이건 그냥 요새잖아. 알 수 없는 건물들도 많고. 그래서 계속 귓속말로.."
운잔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위를 살피며 두건을 당겨 쓴 이치린이 주변을 살피며 운잔을 쳐다보았다.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되겠어. 일단 빨리 자리를 뜨고 애들부터 찾아봐야겠는걸."
"..."
"지나가면서 봤는데 반대편에 입구가 있다고? 그럼 어서 가보자."
은엄폐한 경비텐구가 조용히 그들을 카메라로 잡고 셔터를 누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이치린은 운잔을 데리고 산 반대편의 입구로 오자마자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광경을 목격했다.
시간이 지나 '아무나 박살 나라' 하며 재밌게 싸워대던 코코로가 '아차'싶어 입만 크게 벌리면서 말했다.
"잠깐! 이렇게 막 싸우기만 하면 난 언제 최강이 돼?"
"좜껀만! 이 까막이한테 결판쩜 눼고!" 모미지가 탄막뿌리랴 피하랴 버겨운지 땀대신 체온을 식히기 위해 내민 혀를 집어넣지 못하는 상태로 대답했다.
"빨리 끝내드릴 테니 좀 기다리세요. 어떻게든 양쪽을 피하려고 개털 날리는 꼬락서니란, 후후훗."
"빨리 좀 끝내!! 싸우는 건 재밌지만 나도 강해진 다음 눈에 거슬리는 아무나 붙어서 파죽지세로 박살 내고 싶다고!" 코코로가 반야 가면으로 방방 뛰며 화를 내자, 아야가 눈치를 살짝 보고 아쉽다는 듯이 탄막뿌리기를 멈췄고 모미지도 여전히 손과 발이 땀으로 젖은 채, 혀를 내민 상태로 체온을 식히며 멈췄다.
"하여튼간 저 멍멍이 때문에 시간만 축냈네!"
"댁 같은 망할 까마귀 때문에 더 덥기만 하거든!"
아야와 모미지는 서로 성질을 내면서 노려보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한탕 뛰었으니까 그만한 보상은 해야죠. 잘 잡고 있어요!"
모미지는 아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풍이 몰아쳐서 자신의 머리털이 휘날려 옆머리가 얼굴을 덮어버리는 등 헤어스타일이 난장판이 되자, 여전히 휘날리는 머릿결을 자랑하던 코코로가 웃는 가면을 내보였다.
"야, 니희끼리 뭐해?"
운잔이 흩날리는 몸으로 손을 흔들고 강풍에 두건을 부여잡은 이치린이 그들을 부르자, 아야가 인사하며 되물었다.
"어? 이치린 씨, 운잔 씨 안녕하세요. 우리 산에는 어쩐일이시죠?"
"뭐긴! 니들 데리러 왔지. 언니가 부르고 있다고."
"참, 그랬죠. 호호. 이 강아지를 똥개 훈련하며 손봐주느라 신경 못 쓰고 있었네요."
"뭐? 이 발암이나 일으키는 요괴가." 강풍으로 머리가 넝마가 된 모미지가 반격했다.
"아, 정말, 내 능력만으로 탈탈 털릴 애가 입만 살아선."
"아우 씨, 내가 반드시 까마귀 네 작은 배때지에 칼빵을 놔주고 만다."
눈을 못 뜰 정도의 강풍을 맞아 토킨이 날아가고 머리를 휘날리는 모미지가 방패로 막고 칼을 부여잡으며 말하자, 일찌감지 멀리 떨어져 있던 코코로는 평상시의 여자 가면으로 멀뚱멀뚱 지켜보고 이치린은 자신의 볼을 긁으며 한심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니들 정말 말 곱게 하는구나."
"아, 가자고! 언제까지 싸울 거야!"
코코로가 가면을 반야 가면으로 바꾸고 두 팔을 흔들며 방방 대자 운잔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면서도 아야와 모미지를 째려보고 이치린도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아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웃듯 한숨을 푹 쉬며 바람을 멈췄다.
"네, 네. 갑시다. 저 먼지떨이가 된 모미지도 잘 챙겨가자고요."
앞머리, 옆머리가 뒤범벅된 모미지가 비록 머리카락에 눈이 가려졌지만, 천리안의 능력으로 아야를 째려보며 말했다.
"야! 잠깐 거기서!!"
"왜?"
아야가 시큰둥하게 돌아서며 쳐다보자 모미지가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가더라도 머리는 빗고 가야할 거 아냐!"
그 말과 함께 모미지가 머리를 정돈하고 멀리서 지켜보던 부관과 대원들이 빗을 가지고 와서 머리와 꼬리 빗는 것을 돕고 아야가 그 광경을 보고 엽단선으로 입을 가리며 웃자 이치린과 운잔, 코코로는 그 둘을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정리를 마친 모미지가 잠깐 경비대장실에서 바꿔치기할 남은 필름을 챙기고 돌아와 못마땅한 얼굴로 아야가 주워온 토킨을 뺏아들며 머리에 쓰자마자 일행이 명련사로 출발했다.
AM 10시 8분 명련사 법당
불이문을 넘어 법당 안에 도착한 그들을 뱌쿠렌과 쇼가 맞이했다.
"어서 오시죠. 이치린도 모셔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이치린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뱌쿠렌에게 답하자 쇼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들 좋은 가르침을 받고 가시길."
"응!" 코코로가 손을 흔들며 응답했다.
"다른 분들은요?"
아야가 주변을 돌아보며 묻자 쇼가 겸연쩍은 듯이 말했다.
"아, 이제 불러야죠. 뱌쿠렌. 오늘은 어디서 모일까요?"
"더우니까 시원하게 밖에 그늘에서 모이죠."
모미지는 긴옷에 꽁꽁 싸맸으니 더 덥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아야도 실내서도 바람 일으킬 수 있는 걸 까먹었나 싶어 말하려다가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뱌쿠렌과 쇼, 무라사, 이치린, 쿄코, 코코로, 누에, 아야와 모미지가 석등과 탑의 사이에 생긴 그늘에 모여앉아 서로를 쳐다보았다.
"응? 다 모인 것 같지는 않네요?"
의아한 표정의 아야가 문화첩에 펜을 굴리며 말했다.
"않네요!!!!!!!" 쿄코가 크게 말했다.
"아, 그게 찾아봐도 없더라고." 누에가 두 손을 하늘을 향한 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흠, 꽤 아쉽네요. 카메라 앵글에 다 잡혀야 좀 의미가 있는데 말이죠. "
그러자 불이문에서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후토가 나타나 외쳤다.
"하하하하핫! 역시 너희 땡중들은 결속력 따윈 요란하기만 하고 한 두 달도 못 가는 매미 같구나!! 크하하하핰!"
"쿄코가 복창하지 않도록 자기 입을 필사적으로 막고, 무라사가 스펠카드를 꺼내며 쇼와 누에가 자신의 창을 쓰윽 들어서 투창하려 하자, 아야의 카메라 셔터가 눌리기 전에 뱌쿠렌이 막았다.
"자, 다들 그 정도로만 하세요.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올 테니 후토 씨도 그만하시고요. 지금은 이런 시간낭비 보다 코코로 양의 교육이 우선입니다."
무라사가 스펠카드를 주섬주섬 집어넣고 누에도 창을 세우자 불만이 가득한 이치린이 뱌쿠렌을 이끌고 탑 뒤로 가서 아야와 모미지, 코코로가 듣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었다.
"히지리님, 솔직히 말해서 전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이미 우린 약속을 했는데도 저 불량한 도교 잔챙이가 절간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고요. 분명히 이건 적대행위에 규탄받아야하고 그에 맞는 응징을.."
뱌쿠렌이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특유의 인자한 웃음으로 합장하며 말했다.
"이치린, 그러한 사실로 많이 분했었군요.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그럼 지금이라도 혼쭐을 내줘야하는게 맞는 거 아닐까요?"
"하지만 지금까지 후토 씨가 우리 절에 불 지른 게 한 두번 있는 일이던가요?"
"아뇨, 그건 아니죠. 자주 그랬어요."
"그래요. 이미 우리 절에 대한 미움이 사뭇친 대상의 눈에 협약이 들어올까요? 그저 번뇌에 빠진 본능이 시키는대로 할 뿐이랍니다. 이런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구제해주도록 노력해야지 혼쭐울 내준다는건 분노와 시기에 우리도 사로잡힌 게 됩니다."
이치린이 살짝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이자 뱌쿠렌이 이치린에게 더 다가가 말했다.
"불교에 귀의한 승려로 설법하자면 이 절에 사는 존재로서 자비를 베풀도록 하세요. 그게 우리의 다른 점입니다."
이치린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뱌쿠렌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오자, 여전히 누에와 무라사, 후토가 서로 옥신각신 신경전을 벌였다.
"에휴, 그럼 찾아다닐 시간 소모할 필요없이 모미지가 천리안으로 찾아볼래요?"
"천리안으로 찾아볼래요!!!"
"하, 또 부려먹을려 하네."
아야가 명련사 일원들과 후토를 중재하는 뱌쿠렌의 사진을 찍으며 묻자, 따라하는 쿄코 옆에서 모미지가 투덜거리는 것을 바라본 누에는 몇 시간 전 친구와 이야기한 것이 찰나에 필름이 빠르게 돌아가듯 회상되었다.
"일단 산 쪽의 사정이 어뜬지 알아봐야 하겠는디 말여."
마미조가 코에서 내려간 안경을 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움직이면 그 약삭빠른 텐구가 눈치를 챌 텐데."
"한두 명 정도 빠져서 나머지가 텐구 둘을 감시하고 빠진 인원이 뒷조사를 해야제."
"그럼 일단 제가 붙어서 둘을 감시하죠." 이치린이 대답했다.
"나야 다우징 봉이랑 펜듈럼으로 수상한 물건을 찾으면 되고 쥐들을 풀어서 정보를 얻으면 되니까 산 쪽을 알아보도록 하지."
"마미조. 그럼 난 남아? 나 변신이나 위장 잘하는데?"
누에가 기대감에 찬 눈을 반짝거리며 묻자 마미조가 말했다.
"아무래도 남아야 하겠구마."
"왜? 나 진짜 잠입해서 정보 캐는 건 잘해!"
"네가 없어지고 나서 무슨 일이 터지면 누에 너의 정체불명의 능력상 텐구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너를 의심할 테니 지금은 의심을 받지 않게 텐구들의 감시영역에 존재하고 있어서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제."
누에가 '흠, 그런가.' 하며 턱을 괴고 생각하자 마미조가 말했다.
"일단 문제는 그 백랑텐구의 눈이제. 천리안이라고 캤던 거 같은데 말여. 투시도 될꺼이고 어디든지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알아보러 다녔다간 다 탐지되어 텐구의 건수만 만들어 줄 수밖에 없제."
"하긴 그건 그렇겠지. 그랬다간 도교 녀석들도 신나서 우릴 물어뜯을 테니까." 나즈린도 골치 아픈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께 남아있는 요괴들이 해줄 역할은 말여. 절대로 그 백랑텐구의 시선을 우리가 알아보러 나간 장소 쪽으로 향하는 방향이나 절 바깥으로 돌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제."
"뭐?" 누에와 이치린이 놀라서 외쳤다.
"아니, 그게 말이 쉽지, 어떻게 해?" 나즈린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하자 마미조가 웃으며 말했다.
"그 백랑텐구에게 말을 걸든가 화제를 돌리던가 그 카라스텐구를 닦달해 진행을 빨리하든가 해서 어떻게든 막아야지. 그 카라스텐구가 백랑텐구의 능력을 이용해 우리를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 가정이니까."
"음..." 이치린이 두건을 만지며 고심하면서 말했다.
"이건 어떻게 해볼게. 혹시 수상한 씨앗을 그 카라스텐구에게 붙여놔서 텐구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그것을 지켜보다 보면 뭔가 꿍꿍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누에의 말에 나즈린이 핀잔을 줬다.
"그랬다가 도교 애들이랑 텐구 애들에게 구실이라도 만들어주려고? 뱌쿠렌과 주인도 우리 쪽에서 벌인 일이니 뒤집어질걸."
"뭘? 도교쪽도 이미 개별적으로 합의를 깨고 불지르려고 선빵을 쳤잖아. 그리고 몇 번 씨앗을 아무 곳이나 둬서 실수가 잦다고 알게 한 다음에 붙여놓으면 장난이라고 하거나 엄연히 내가 간수를 못해서 그랬다고 둘러대면 되지 뭐. "
"글쎄. 장난이라고 해도 그 텐구가 아주 신랄하게 기사를 쓸 테고 누에 씨가 옛날에 일부러 붙여놓은 경험이 있어서 그걸 실수라고 믿을 것 같진 않은데요." 이치린이 대답했다.
"그 안은 정보가 백지인 지금보다 나중에 써먹는 게 좋을 것 같으이. 누에, 그러믄 서로 어디서 정보를 알 것인지 알려주고 공유하도록 하제. 아무래도 배경을 알려면 산 쪽을 알아봐야 하겠는디 말여."
"나도 쥐들을 풀어 산 쪽의 사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어."
"어차피 저는 운잔을 보내면 되니 남아서 시선을 돌리도록 하죠."
"뭐, 그럼 내가 제일 수상하니까 지금은 의심 안 받게 최대한 텐구들을 감시하지."
"그럼 다들 수고하게나." 마미조가 술잔을 기울이며 말하자 나머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비웠다.
"아니, 잠깐. 너 진짜 천리안이야?"
몇 시간전 계획을 염두해 둔 누에가 일부러 화들짝 놀라며 묻자 모미지가 멀뚱멀뚱 쳐다보며 말했다.
"네."
"그럼 내가 그냥 보여?"
누에가 정체불명의 능력을 쓰면서 바싹 붙으며 묻자 모미지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형용할 수는 없지만 보이긴 보입니다."
"응? 그럼 그냥은 내 본모습이 안 보이는 건가?" 자신의 여체 모습으로 돌아온 누에가 의아해하며 묻자 이치린이 거들었다.
"멀리 있는 것을 보는 능력인데 가까운 게 안 보이겠어?"
"네, 그냥 남들 같은 눈에 남보다 먼 곳을 뚫듯이 내다보는 능력이 추가된 것 뿐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 좋은 것도 충분히 보여지지만 외면하고 싶거나 보기 싫은 것도 다 눈에 들어오죠."
막판에 말할 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손가락으로 아야를 가리키는 것을 바라본 누에와 이치린이 피식 웃었고 아야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도 미간을 찌뿌렸다.
"오오, 그럼 투시도 되는 거야?! 본질을 꿰뚫어보는 그런 거 말야."
"헤에, 나머지 분들은 그럼." 아야가 눈에 카메라를 대고 제자리에서 한바퀴를 돌았다.
"뭐, 시간 아까우니까 그냥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니?"
"맞아! 난 빨리 배워서 강해질 거야!"
이치린과 코코로의 말을 들은 뱌쿠렌이 코코로를 신경쓰는 후토를 바라보곤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겠어요. 믿고 맡긴 도교 쪽도 만족스럽게 돌아가려면 말이죠."
"오늘도 잘 배우고 가렴." 쇼가 코코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코코로가 고개를 들어 쇼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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