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2시경 묘렌사
"자자, 그러니까 이변이 안 되게 잘 설명해주셔야죠. 우후후."
씨익 우는 아야의 웃음에 기가 막혔는지 모코우가 혀를 찼다.
"뭐, 그래도 여기는 시원하고 좋네. 방금까지만 해도 몹시 더웠는데 말이야."
"그냥 저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요. 엄청나게 길어서 보는 사람도 더운데."
코가사가 말하자 모코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돼. 반팔을 입었으면 되었잖아!"
"바지가 긴 바지인데 뭘.."
마미조가 얼린 체리를 먹으며 말하자 누에와 모미지, 코가사와 쿄코가 피식하고 웃었고 코코로도 노인가면으로 '히히히'하고 소리를 내었다.
"아니, 봐! 케이네도 옷이 길잖아!"
"저기 모코우, 그래도 난 파란색에 통치마라 통풍은 잘 돼서."
할말이 없어진 모코우가 케이네만 바라보자, 얼음을 얼리던 치르노나 쇼, 후토와 뱌쿠렌까지 웃으며 분위기가 심히 무안해졌다.
"야, 음, 그냥 본론 들어가야겠다. 멘레이키. 아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코코로. 하타노 코코로야."
"그래, 코코로. 분노는 말이야. 말 그대로 '화'야. 화내는 것과 분노하는 것은 같은 말이지. 무슨 일이든 우리가 살면서 화를 내게 되는 상황이 있잖아. 나 같으면 당장 갈아 마셔버릴 카구야를 길에서 봤다든지, 밤참새네 가게에서 술 먹는데 카구야를 본다든지, 케이네와 태양의 밭에서 나들이하는데 토끼 두 마리를 붙인 카구야를 봤다든지..."
케이네가 난처해져서 모코우의 허리춤을 툭툭치자 모코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아, 나도 모르게.. 그냥 내가 싫어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정말 싫어하는 대상을 봤을 때 우린 미워하고 화를 내지."
"근데 왜 미워하는 거야?"
코코로의 질문에 모코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꺼려다가 말면서 말했다.
"아주 기이이잎게 사무친 원한이 있어서 말이야. 그걸 풀기 위해서지. 그냥 그런 정도만 알아주었으면 해."
"음.. 뭐, 알았어."
"아무튼, 나는! 꼴 보기 싫은 상대를 만날 때 제일 화가 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너는 어떨 때 화가 나지?"
"졌을 때."
"으흠, 계속 말해봐."
"속상할 때. 그리고."
코코로가 자신의 가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표정을 지었는데 상대방이 오해할 때."
손을 움직이며 머뭇거리는 코코로를 본 모코가 말했다.
"으흠, 그래. 정말 속상했겠구나. 그밖에 더 있니?"
"있을 텐데 좀 화가 나서."
"그래, 아무래도 속에서 울컥했나 보구나. 그래, 충분히 짜증 날 만한 상황이야. 그렇지? 우린 그런 상황에 부닥쳤고 화를 내는 단계에 도달했어. 뭐 더 참을 수 있다면 이 단계까지는 오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견디긴 인내심이 충분하지 않다면 엄청나게 힘든 일이거든. 기분이 좋으면 가슴설레고 두근거리고 무언가 해주고 싶고 에너지가 넘치게 되는 것처럼 화를 내게 되면 말이야. 몸의 모든 근육이 긴장되고, 심장박동이 더 빨라지고, 분노와 함께 몸에서 열이 나게 되지. 지금은 어떠니?"
"지금.. 지금은."
코코로가 분노할 때 쓰는 반야가면을 꺼내면서 무표정한 얼굴이 무서울 만큼 싸늘해지자 아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사진 셔터를 눌렀다.
"너무 화가 나!"
"그래, 너의 몸에 있는 모든 신경이 곤두서지!" 분노의 감정 때문인지 모코우도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응!"
"덜덜 떨리고 열기로 달아오르지!"
"응!"
"주먹이 쥐어지고 빨라진 박동수만큼 몸의 혈압이 높아지는 게 느껴지지!"
"응! " 코코로가 주먹을 쥔 상태로 누구와도 싸울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그래! 이게 바로 화를 냈을 때 몸이 반응하는 거야! 너의 감정이 몸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주는 거지!"
그러자 마미조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잘 가르치시는구먼. 멘레이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겠쓰으이."
"아, 뭐, 내 경험을 설명해주는 건데 뭐. 이런 걸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체험시키는 게 더 얘 몸에 익겠지."
"근데 모코우, 설명을 듣다 보니 나도 슬슬 화가 나는데 좀 진정시켜야 하지 않을까?"
"기다려봐, 케이네! 이제 시작이니까. 코코로 지금은 어때?"
"분통터져! 짜증나!" 코코로가 사납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이런 분노는 호흡을 증가시키고 혈압을 높이기 때문에 심혈관 같은 몸의 핏줄이나 다른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줘! 다혈질인 사람이 병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지. 이건 뭐, 우리가 이런 걸로 죽지 않는 요괴긴 하지만 고통받는 건 마찬가지니 설명하는 거야! 그리고 분노의 문제점이자 특징이기도 한 게 바로 분노가 행동을 너무도 쉽게 유발한다는 거지!"
"행동이라면! 이런 거!"
코코로가 허공에 탄막을 뿌리고 주먹질을 하자 모코우가 미동도 없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행동이 나타나지. 분노가 일어나면 근육이 긴장돼서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혈압이 높아져 있는 만큼 행동을 유발하는 몸의 스피드도 빨리 처리가 되거든! 즉, 전신이 전투태세에 돌입하게 되는거야!"
이를 악문 코코로의 허공을 향한 주먹질을 지켜본 모코우가 말했다.
"그리고 분노는 너를 싸울 준비가 돼 있도록 만드는 동시에 상대와 주변에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줘서 물러나게 해 싸울 필요가 없게 만들기도 하지! 즉, 분노의 본질적인 표현방식은 위협이야!"
"으으, 짜증 나. 그냥 다 박살 나버려! 다 결딴내버릴 거야!"
"저기 모코우 씨. 여기서 너무 화를 증폭시켜 버리면 큰 문제가 생겨요! 여긴 갈등요소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다고!!!" 아야가 다급히 외치자 모코우가 쳐다도 안 보고 말했다.
"진짜 분노할 때는 남의 목소리도 안들리게 되지만 말이야. 분노는 강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 힘을 빌려 마음속에 억눌린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평소의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말이야! 여기서 잘못되어 애절한 슬픔과 '한'스러움까지 더해져 심해지게 되면 '홧병'으로 발달하는 경우가 많아. 다시 한 번 묻지! 너는 뭐 때문에 화가 나지!!"
"나는.. 나는!!! 싸움에서 최강이 아직 아니라는 거!!!! 그리고.. 그리고.. 감정의 요괴면서!! 누구보다 감정에 해당하는 표정의 가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가지기만 하고... 가지기만 하고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거!!!!"
아주 큰 탄막들과 함께 주저앉아 코코로가 슬플 때 쓰는 할머니가면을 넘어 누가봐도 슬픈 표정의 가면으로 엉엉 울어버리자 유유히 탄막들을 피한 모코우가 코코로를 달래러 다가가는 요괴들을 제지하고는 자신이 다가가서 주저 앉아 울게 놔두면서 말했다.
"마음껏 울어.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아. 화나고 억울하고 답답한 만큼 울어버려."
오랜 시간 울분을 토해내며 서글프게 울다가 코를 훌쩍거리며 무표정으로 모코우를 쳐다보는 코코로에게 케이네에게서 받은 손수건을 건네준 모코우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분노 다음에는 지금 겪은 것처럼 멍하고 슬픔과 공허함만이 남지. 왜 그래야 했는지 민망하고 억울할 수도 있고, 아니 어쩌면 속에 담아두던 걸 다 쏟아 냈으니 후련함일 수도 있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분노 뒤에는 충분히 화낼 원인이 충분하고 복잡한 너와 너의 마음에 대해 지금처럼 화낸 다음에는 애도를 해주어야 한다는 거야."
눈물을 닦은 코코로가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모코우가 코코로에게 말했다
"아직 너는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을 그냥 상대와 싸우고 대놓고 화내는 분노라는 감정 그 자체에 충실했기 때문에 더 그럴 거야. 분노의 목적은 말이야.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더 관심을 집중시키고 나를 존중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거든."
그리고는 코코로를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거리며 달래면서 말했다.
"그러니 네가 화난 상대를 만나거나 네가 먼저 화를 냈을 때는 무언가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에게 내가 왜 화냈는지, 내가 왜 상대에게 화냈는지 정리해서 이야기 해주고 생각할 시간을 주도록 하렴. 분노는 그 자체로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동기이자 항의이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당한 표현이니까."
"응."
케이네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듯한 표정으로 곁에 서고, 아야도 숙연해져서 셔터를 누르는 사이, 다른 요괴들이나 후토도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았다.
"흐흑, 모코우. 넌 정말 좋은 선생님이야."
그녀가 울먹이며 말하자 모코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케이네. 내가 말했었잖아. 난 분노가 아니라 증오에 빠졌던 존재야. 그 자체만으로 결코 좋은 선생이 될 수 없어."
"아냐, 난 너처럼 코코로 학생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주지 못했어."
"휴우, 케이네. 너무 자책하지 마. 난 너처럼 배운 존재가 아니야. 난 그저 살다 얻어걸린 경험담을 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모코우가 케이네를 달래주자, 코코로가 케이네에게 젖은 손수건을 건네주면서 모코우에게 물었다.
"그럼.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어? 또 증오는 뭐야?"
"음? 아, 그거?" 모코우가 깜짝 놀라 난색을 보였다가 케이네를 쳐다보며 말했다.
"케이네, 근데 얘한테 증오를 설명해줘도 되나?"
"음.. 어차피 감정의 요괴라면 알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내가 보기엔 얘가 너무 많은 감정이 있어서 더 복잡해져서 그러는 거 같기도 하고, 또."
"또?"
케이네가 묻자 모코우가 눈치를 살짝 보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까 얘 탄막 뿌리고 화낼 때 저기 몰려있는 저것들, 슬쩍 봤는데 탄막이 아니라 무기들을 꺼내고 있더라고."
"!!"
바로 '어쩌면 좋지.'하는 표정으로 기겁한 케이네는 아야를 슬쩍 바라보자, 아야는 대답 대신 카메라를 비추며 셔터를 눌러댔다.
"좀만 더 늦었어도 솔직히 큰일 날 뻔했는데 말이야."
난처한 기색으로 말하는 모코우에게 케이네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해. 모코우, 코코로 학생이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배우겠어."
"그래, 뭐. 별일이나 있겠어. 큰일나면 난 모르지만. 어쨌든 한다."
아야가 다가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물어보자 케이네가 주의를 시켰고, 그 주의를 아야가 모두에게 설명하자마자 뱌쿠렌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모두의 무기를 걷어 한구석에 가져다 놔버리는 것을 본 모코우가 안심하고 말했다.
"뭐, 얼추 된 것 같군. 일단 분노표현은 말이야. 그 자체를 두려워하면 안 돼. 이미 충분히 화낼만한 상황이라면 차라리 화를 내는 게 더 마음 편하거든. 아무리 관계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지만 분노 자체를 통제로 둬서는 안 된다는 뜻이야."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코우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분노는 상당히 나쁜 친구들이 있거든. 아까 말한 증오라든지 앙심, 미움 같은 거 말이야. 즉 부정적으로 충분히 빠져들 수 있다는 거지. 나도 그랬었고 많은 요괴가 거의 이 상태지만. 방금 너도 화나서 알텐데 화나는 마음을 조절하기란 상당히 힘들어. 화라는 게 전혀 나와 맞지 않는 상황이나 주변이나 상대가 증거가 있든 없든 의도를 해서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고 판단이 된다든가 내가 화를 내도 불이익이 없는 위의 처지에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로서 화낼 수밖에 없을걸."
"응."
"그러니 이성으로 일단 화날만한 상황을 정리해. 이미 말했던 것처럼 바로 화내기보단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고. 내가 충분히 화낼만한 상황이고 상대방이든 제3자이든 내가 화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일 때 화내는 게 더 의사 표현의 역할이 잘 되고 예후가 적어도 나에겐 나으니까. 그리고 화가 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 그리고 끝난 일은 곱씹지 말고 끝내. 어떤 일이든 그게 제일 낫더라. 끝난 과거는 끝난 과거일 뿐이야. 현재에서까지 얽매일 필요는 없어."
"응."
"저기, 그럼 카구야와의 일은.."
케이네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모코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건 안 끝났잖아. 내가 말하는 건 완전히 해결된 일을 말하는 거야."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코코로에게 말했다.
"아, 어차피 증오에 관해 설명해줘야 하니까 잘 됐다. 내가 아까 분노는 나쁜 친구들이 있다고 했지?"
"응."
모코우는 말을 하려다가 치르노가 옆에 앉자,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도 배울래!"
"뭐? 넌 배워도.."
'잘 모르잖아.'라고 말하려던 모코우는 케이네의 미소를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휴, 이해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들어나 보렴. 내 처절한 인생의 굴레 같은 거니까."
헛기침을 한번 한 모코우가 말을 이었다.
"증오는 진짜 불같은 거야. 증오는 원인이 있고 밖으로 분출되는 표현인만큼 불이 번저가듯 연쇄작용처럼 주위로 번지기도 쉬운데다가 화낼만한 원인이 있든 없든 간에 이것에 사로잡히면 불이 다 타고 난 뒤 재만 남기듯 마음과 몸만 황폐해지고 지저분해질 뿐이야. 분에 못이겨서 홧병을 보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미워하고 끊임없이 증오하고 싫어하는 그 대상과 절대로 공존할 수 없어서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만 하는 관계거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마음을 계속 비효율적으로 낭비하지. 그저 상대를 미워하는데 말이야."
"마치 번뇌처럼?" 코코로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그래, 불교에서는 그렇다고 듣긴 했어."
"코코로 양이 기억해주고 계셔서 감격스럽네요."
"그러게요.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있어요."
뱌쿠렌이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쇼도 거들었다.
"응? 여기서 다들 뭐해?"
나즈린이 들어오면서 묻자 쇼가 그녀를 반겼다.
"나즈린! 어딜 갔다 온 거예요? 여기와서 얼린 과일좀 좀 먹어요."
"아, 쥐들 밥 먹이느라 좀 늦었어. 주인."
나즈린이 받아든 얼린 과일을 먹으려다 깜짝놀라 화를 냈다.
"주인! 이건 얼린 매실이잖아! 이 신걸 어떻게 먹어!"
"에이 아깝네. 아무 생각없이 햛았어야 됬는데."
아쉬워하며 낄낄거리는 쇼가 투덜거리는 나즈린에게 웃으며 얼린 체리를 건네주자 아야가 말했다.
"그럼 계속 증오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모코우 씨."
"응, 잠시 산만해졌군. 그러니까 분노는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낼 수 있는 아주 강한 의사 표현이라면 말이야. 증오는 그냥 그 대상. 미워하는 게 사람이든, 짐승이든, 요괴든, 사회든, 세상이든지 간에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거야. 내가 없어지거나 상대가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를 초래하는, 즉 무언가를 없애버리기 위한 광폭적 미움이지. 케이네, 그 단어 중에 꼭 그래야만 하고 그렇게 되는게 마땅하다는 의미가 있는 단어가 뭐였지?"
"음... 당위성?"
"아, 그게 맞겠다. 내가 증오할 만한 당위성이 있더라도 내가 느꼈을때는 그것에 빠져 사는 건 너무도 비효율적이야. 특히 나로서는 더 그랬어."
"왜?"
치르노와 코코로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묻자 모코우가 한숨을 쉬었다.
"분노와 같은 번뇌는 무의미함을 느끼신 건가요?" 뱌쿠렌이 물었다.
"명상과 수련으로 자신이 자연과 하나이고 증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건가?" 후토도 거들었다.
"아니, 그렇게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해봐도 좀 웃긴 건데."
심각한 표정을 짓다 갑자기 피식하고 웃던 모코우가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증오하는 대상과는 공존 불가라고. 난 증오하는 대상이 카구야고 걔도 날 증오해. 결국 죽이거나 없앨 수밖에 없는데 둘 다 불사란 말이야. 크크킄. 이 세상에서 없앨 수도, 없어질 수도 없으니 평생을 질리도록 미워하고 싫어고 죽이려들 수밖에 없지."
그리고는 다시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생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어 보이게 말이야."
조심스럽게 그녀의 말을 듣는 코코로 옆에서 나즈린이 다가와 물었다.
"그럼 벗어날 수도 있다는 거네."
"그래, 그걸 알려주기 전에 말이야.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아주 폭발적이고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지만 그게 옳은지, 정말 나를 위한 건지는 반영하지 않아.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을 마비시키거든. 본능밖에 없는 짐승처럼 말이야."
모코우가 목이 말랐는지 얼린 과일 조각 하나를 삼키고는 말했다.
"그렇게 살면 살수록 나만 소비하고 나만 생각하며 내 내면의 모든 에너지가 낭비되고 가진 감정도 사나워져서 사소한 것에도 화를 내게 되고 결국 모든 것에 화를 미치게 되는 거야. 하나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전부를 미워하게 되고, 하나에만 미움받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미움받게 되지. 그래서 마음과 삶이 힘들고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거야."
"예를 들면 나무에 붙인 불이 산불이 되듯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이고 그건 결국 나에게 화를 미치게 되는 것과 같아." 진지하게 듣고있던 케이네가 옆에서 거들었다.
"음. 증오는 생각보다 나쁜 거구나."
"증오를 낼만 한 이유가 있으니 그런 감정에 대해 나쁘다 착하다 판단을 내리는 건 좀 그래. 네가 아까 보인 울분처럼 한이 맺히거나 슬픔을 가지고 있으면 말이야. 대부분 복수를 할 때 쓰이는 것처럼 증오도 정당한 의도와 수단으로 어떻게 정당성 있는 일에 쓰이느냐에 판단해야겠지. 증오는 정말 분노보다 아주 아주 강한 동기거든. 물론 증오에 빠진자는 주체못할 증오를 내뿜기위해 화나는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어내겠지만."
멍한 채로 듣고 있는 치르노와 곰곰이 생각해보는 코코로에게 모코우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증오는 말이야. 아까 내가 벗어날 수 있다고 했었지? 그걸 알게 된 것이 얼마 전 일이거든."
"그게 뭐죠? 이야기해주세요?"
아야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묻자 모코우가 짜증을 냈다.
"아, 말하려는데 보채지 마! 넌 그냥 각 잘 잡고 날 조명 잘 받게 찍기만 하면 된다고."
"네, 알겠습니다. 헤헷."
"어휴 거참, 극성맞긴. 있잖아. 치르노, 코코로,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은 내가 정말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도움이 될지는 확신은 없어. 하지만 지금 하는 말은 정말로 너에게 도움이 될 거다. 듣는 이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내가 느낀 경험담으로서 말이야. "
고개를 끄덕이는 코코로의 옆에 다가와 앉은 쇼와 뱌쿠렌, 모미지 등 주위의 모두를 한번 쓱 살펴본 모코우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에 카구야와 싸우려고 영원정에 몰래 쳐들어간 적이 있었어. 사실 예전처럼 극성맞게 미워하던 시절은 지난 거 같긴 한데 내 안의 증오는 카구야와의 공존을 허락하지 않았거든. 공격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지만 분이 안 풀리니까 말 그대로 분통이 터져서 물씬 혼내주고 싶고 더 막 공격하게 되는 거지. 담에서 몰래 숨어서 화끈하게 불 지르려 기회만 엿보다가 카구야의 짜증나는 목소리가 들려서 담 너머를 봤거든."
"그래서?" 케이네가 물었다.
모코우는 케이네를 슬쩍 쳐다보더니 허탈하면서도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원정 마당에서 가져둔 평상에서 큰 토끼가 과일을 깎아주고 작은 토끼가 과일을 먹으면서 농담을 하며 웃고 있고 마찬가지로 웃고 있는 양반다리를 한 의사 양반의 허벅지에 무릎베개한 카구야가 웃으면서 과일을 먹고 있더라고."
"으음." 케이네가 손으로 턱을 괴며 대답했다.
"진짜 게네들 행복해 보이더라.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워보였어. 근데 그걸 지켜보던 내 심정은 어땠는지 알아? 딱 두가지가 생기더라고."
"어떤 거였제?" 마미조가 인자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물었다.
"하나는 미운 감정을 잔뜩 들고 간 속이 타는 나에게 나도 저렇게 행복하고 즐겁고 신나게 삶을 누리고 싶다는 부러움과 갈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반대인데. 좀 치사하고 치졸하지만."
모코우는 아까보다 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저렇게 원수 같은 대상이 행복하게 사는 꼴을 볼 수 없어서 더 분통 터지고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고. 못 견딜 만큼 말이야. 나는 이렇게 증오를 품고 분노하며 나 마음속에서도 괴로움을 안고 사는데 정작 내가 망하길 바라는 대상은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거야. 증오를 품은 자에게는 그런 세상이 불공평하고 미울 수 밖에 없지 않겠어?"
아야와 모미지, 뱌쿠렌과 후토 등 모두가 모코우의 말에 집중하며 듣자, 정작 그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두 가지 생각이 나서 복잡해진 마음으로 그 광경을 보다가 내가 그동안 생각의 오류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리고서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어."
"그게 뭐야?" 코코로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말이야. 그동안 내가 복수에 집중하다 보니 얽매여서 헤어나지 못하고 증오심에 빠져 파괴적인 본능에 충실해서 몰랐는데, 증오를 누그러트리고 좀 이성적으로 생각하니까 알게 된 거지만 최고의 증오표현이자 복수는 말이야. 내가 내 삶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사는 거야. 내가 카구야를 보고 느꼈듯이 남이, 아니 원수가 부럽고 미칠 듯이 약올라 죽을 만큼 말이야. 얼마나 고소한 일이야. 나는 행복한데 적은 그 모습을 보고 끽소리도 잘 못하고 속 터져 미치겠다니! 얼마나 꼬라지가 비참한지. 하핫."
그리고는 케이네와 어깨동무하면서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화와 분노, 증오에 빠져 내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지는 못했거든. 나도 엄연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내 주변도 나로 인해 행복해져야 할 텐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가장 좋은 것 같아."
"모코우!"
케이네가 감격에 차서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모코우를 바라보자 그녀도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그렇구나." 코코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코 씨의 복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야가 셔터를 누르면서 웃는 것 같은데 뭔가 심각하게 냉소적인 눈빛에 싸늘한 웃음으로 묻자, 모코가 대답했다.
"말했잖아. 이게 내 복수야. 더는 망가지고 싶진 않아."
"그렇군요. 아주 좋은 말씀이네요.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 남을 미워하는데 쓸 그 시간을 케이네와 다정한 추억으로 만드는 데 쓸 거라고."
코코로가 유심히 보는 앞에서 말을 마친 모코우가 케이네에게 얼린 과일을 먹여주자 쇼가 박수를 친 뒤, 눈웃음과 함께 온화한 표정으로 합장하며 말했다.
"석가가 법구경(法句經 1)에서 말하기를 '원한은 원한으로 풀어지지 않으리니 버릴때에만 풀리리라'고 하였고 이는 변치 않을 진리라고 한 만큼 정말 숭고한 결심입니다."
뱌쿠렌과 턱을 괴며 고개를 끄덕이는 후토를 포함한 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언짢은 표정으로 아야를 노려보는 모미지의 반대편에서 겸연쩍은 표정의 아야가 급히 카메라로 표정을 감추며 사진을 찍었고, 케이네가 잠깐 생각이 들었는지 옆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잠깐, 모코우. 그럼 카구야를 만나면 어떻게 할 거야?"
"아니, 그때는 싸우지. 과거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싸울 수밖에 없잖아. 그때 빼고는 그냥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방구석 폐인도 토끼들이나 의사에게 소문은 들을 거 아냐. 원수 같은 모코우가 입이 귀에 걸려서 잘살고 있다고. 그럼 뭘 하겠어? 이불이나 걷어차며 방방 뛰겠지. 크히히히히하하핫!"
호탕하게 웃는 모코우에게 케이네가 슬쩍 말했다.
"모코우, 그래도 뒷담은 좋지 않아."
"뭐, 어때? 없는데 선 나라님도 욕한다잖아. 난 카구야를 좋게 말해줄 순 없는 처지라고."
"에이, 그래도 주위 인식이라는 게 있지. 너의 체면도 상하는 일이고 너만 미워하면 되지 다른 요괴들까지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할 필요는 없어."
"흠, 알겠어. 하긴 농담이라도 가릴 건 가려 해야겠지. 안 좋은 부분을 꺼내 공감시키려 한 내가 잘못했어."
뱌쿠렌이 웃으면서 계속 말을 따라 하려는 쿄코의 입을 얼린 과일로 막은 코가사를 칭찬해주는 사이, 코코로가 여전히 생각에 잠겨 그들을 바라보았다.
"좀 도움이 되니?"
모미지가 묻자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행이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을 찍은 아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훈장님이 데려오신 모코우 씨가 잘 가르쳐주셔서 다행이네요. 코코로 양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요."
"응, 고마워!" 코코로가 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모두 정말 다 고마워!"
코코로가 춤사위를 보이며 절을 하자, 다들 유치원에서 상을 받고 돌아온 딸을 보는 듯한 흐뭇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저기 훈장님. 모코우 씨. 저녁은 안 드시고 가시나요?"
"아, 저녁은 둘이서 오긋하게 딴 곳에서 먹으려고요. 가져온 죽순 맛있게 잘 드세요."
모코우가 먼저 케이네에게 팔짱을 끼고 끌어당기며 말하자 케이네가 화들짝 놀랐다.
"모, 모코우!"
"아, 알겠습니다. 두 분 만의 다정한 시간 보내시길."
"네, 그럼요. 주지승님. 케이네, 가자. 아! 코코로."
코코로가 쳐다보자, 모코우가 포근한 눈웃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맙다. 다시 나를 돌이켜 볼 수 있게 해줘서."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코코로를 잠깐 바라보던 모코우가 천천히 돌아서자 아야가 외쳤다.
"아잇! 잠깐만요! 이 자리를 마련한 건 저라고요!"
"시끄러, 텐구! 난 케이네가 불러서 온 거야."
"에이, 너무해!"
그 모습을 웃으며 살피던 뱌쿠렌이 멍하니 앉아있는 치르노에게 다가가 물었다.
"바쁜데 이렇게 참여해줘서 치르노도 수고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응? 내가 왜 바빠?" 치르노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 많이 벌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바쁘지 않나요?"
"응? 바쁘다니? 그리고 돈은 그냥 여기서 뭘 얼리면 주는대로 받는 건데?"
"..."
뱌쿠렌이 난감한 기색으로 숨을 내쉬며 차분히 물었다.
"그럼 방금 모코우 씨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기억은 나세요?"
"응, 당연하지. 행복하게 살랬어!"
"명쾌한 요약이네요. 잘 이해했어요." 그녀가 감격에 찬 얼굴로 치르노에게 합장했다.
그런 모습을 지붕에서 지켜보던 곽청아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별 청승을 다 떠네. 이런 연극이나 하려고 나에겐 비밀로 했던 거야? 후토도 저기껴서 뭘하는 건지. 아무래도 내가 좀 손을 봐줘야겠는걸."
곽청아가 사라지고 나서 한참 뒤, 이치린은 슬쩍 돌아온 운잔을 보고는 나즈린에게 싸인을 주었고, 나즈린이 누에와 마미조에게 손짓을 하자 마미조가 차분하게 조금이따가 만나자고 이야기하고는 누에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 그럼 좀 늦었는데 이제 배낭을 챙길까."
아야가 카메라를 정리하고 모미지가 배낭을 주섬주섬 챙기자 뱌쿠렌이 말했다.
'에이, 그래도 늦었는데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야죠. 후토 씨도요."
"뭐? 나도 말인가?"
"응? 싫으세요?"
후토가 기겁하며 묻자 뱌쿠렌이 받은 죽순을 내보였고 잠깐 갈등에 빠진 후토가 말했다.
"그, 그럼, 저녁만 먹고 가겠네. 저녁만."
"네. 그러세요. 이치린, 나즈린! 저녁 준비하도록 하죠. 텐구분들은 어찌하실 거죠?"
"저, 저는 그다지.."
필름을 품 안에 숨겼던 모미지가 당황해서 거부하자 코코로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저녁메뉴는 맛있어?"
"절밥이니까 맛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몸에 좋다고 많이 찾거든요."
"후후, 역시 기자시니까 유행을 좀 아시네요." 뱌쿠렌이 웃으며 대답했다.
"응, 먹을래! 텐구 언니들도 같이 먹자!"
코코로가 웃는 노인 가면을 꺼내며 모미지와 아야에게 달려들며 붙자, 모미지가 필름이 든 자신의 품을 만지지 못하게 팔만 잡도록 내주고서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음.... 어차피, 밥만 먹는 거면 안 들킬 수도 있지.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해.'
"뭐, 밥먹는 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모미지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먹고 갈게요. 이왕 저녁 메뉴나 먹는 모습도 사진에 남기죠!"
"네, 잘됐네요. 그럼 코코로 양과 같이 안으로 들어오시길."
- 인도의 다르마트라타가 편찬한 석가의 가르침을 집성한 불교 초기의 경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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