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2시 명련사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명련사에서는 아야가 불러서 온 치르노의 과일 얼음을 먹으면서 교육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불교에는 삼독(三毒)이라고 해서 탐진치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본능적으로 욕구로서 탐내고 구하는 탐욕에 해당하는 탐(貪), 또 하나는 자신과 맞지 않거나 우월한 대상에게 보이는 증오, 노여움, 시기. 질투와 같은 진(瞋). 치(癡)는 사리분별을 못 하는 무식에 해당하죠. 이 세 가지는 번뇌로서 중생들을 괴롭게 하고 자아에 집착과 고집을 만들게 됩니다. 이를 다스리기 위해 수행이 필요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나 감정적으로 싸우고 다투고 힘들어하는 것도 불교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쇼의 설명을 들으면서 얼린 복숭아를 까둑까둑 소리를 내어 먹는 코코로를 클로즈업하며 찍는 아야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치린이 마지못해 말했다.

"얘 좀 먹게 놔두지?"

"에이, 먹는 모습이 예쁘니까 그렇죠."

"와, 정말? 더 찍어줘."

신난 아야와 좋아하는 코코로를 어이없이 바라보던 이치린은 저 멀리 방패와 검을 두고서는 얼린 과일을 입에 물고 카메라 필름을 가는 모미지에게도 말을 걸었다.

"그쪽은 이 안 시려워? 다 먹고 하지?"

그러자 모미지가 필름을 재빨리 갈고 얼음을 입에서 뺀 후, 대답했다.

"아뇨, 혀로 체온조절 하는지라 오히려 혀도 시원하고 좋은데요."

할 말이 없어진 이치린이 가만히 있자, 과도로 과일 껍질을 깎던 뱌쿠렌이 말했다.

"쇼 씨가 좋은 말씀 해주셨네요. 다들 박수로 응원해줍시다."

얼린 멜론을 입에 문 후토나 한창 썰린 과일을 얼리고 있는 치르노까지 전부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본 쇼는 흐뭇한 미소로 인사하며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많이 연습했는데 나즈린이 없어서 아쉽네요."

"나즈린은 왜?"

누에가 묻자 쇼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즈린에게는 믿음직하고 대범한 모습을 보이고 싶거든요."

"에이, 잘하는데 뭘."

"잘하는데 뭐어어어얼!!!!!!!"

누에와 쿄코가 답하자 쇼가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원래 실수도 좀 하고 감정적이라 평소에 이러질 못해요."

"자신감만 있으면 되죠. 그런 의미로 쇼 씨도 몇 컷 찍겠습니다!"

아야가 재빨리 카메라의 렌즈를 쇼에게 겨누자 옆에서 후토가 눈치껏 쇼에게 얼린 수박을 건네주었고 

무심코 받아는 들었지만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쇼에게 후토가 고개를 돌리면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서.. 설정 샷. 하라고."

우걱우걱 자신의 입에 얼음 과일 조각을 넣는 후토의 뒤에서 빙그레 웃음을 보인 쇼가 제대로 자세를 취했다.

"와! 좋아요! 아주 좋아요! 표정이 살아있네요! 앵글도 좋고!!"

"하여튼 저게 원래 파파라치가 아니라 신문기자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광속으로 셔터를 눌러대는 광경을 묵도한 누에가 자신의 한탄을 모미지가 거들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야, 너네 동업자잖아."

"동업자는 무슨 얼어 죽을.. 이건 뭐 시다바리죠."

"...."

누에가 난감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뱌쿠렌이 치르노에게 합장을 하며 말했다.

"요정분이 이렇게 교육환경을 쾌적하게 해줘서 감사하군요. 나무삼."

"에이, 뭘. 나도 돈 받고 하는 건데."

"네?" 뱌쿠렌의 얼굴이 경직되며 물었다

"아, 제가 돈 주고 불렀거든요. 여름에 엄청 귀하신 몸이라 데려오는데 엄청 어려웠어요."

당황하는 뱌쿠렌에게 아야가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이치린이나 후토, 누에와 모미지도 덩달아 당황했다.

"니가 돈이 있어?"

"있어, 멍청아!" 아야가 내리깔면서 모미지를 꼬라보며 말했다.

"근데 요정이 굳이 돈이 필요한가?"

"그럼! 돈은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댔어! 그러니 난 돈을 겁나 수많이 벌어서 레티랑 다이짱을 겁나 수많이 행복하게 해줄 거야!"

반짝이는 눈으로 의기양양해진 치르노에게 뱌쿠렌이 땀을 흘리며 물었다.

"아,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니?"

"장사하는 캇파에게!!"

"..."

순간 주변이 조용해지자 치르노가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응? 왜? 아냐?"

"치르노. 돈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는 있겠지만 소유할 수는 없어요. 그냥 돈은 수단일 뿐이라고요."

뱌쿠렌이 따로 치르노에게 설교하는 동안 후토가 접시에 있는 얼음 과일을 챙기며 말했다.

"더우니 우리는 땀 빼지말고 과일이나 먹자고."

"뭐, 이해도 안 될 거고 설명하는 것도 오래 걸릴 텐데요. 그러죠."  이치린도 거들면서 얼린 복숭아를 챙겼다.

모미지가 눈치껏 과도를 잡고 과일을 깎자 코코로가 유심히 보면서 웃는 가면으로 말했다.

"와, 이 언니 칼 엄청나게 잘 다루네."

"그럼. 내가 검을 몇년을 잡았는데 작은 칼도 거뜬하지."

"와? 진짜? 방패나 큰 검 휘두르는 것밖에 못 봤는데."

"그래. 솜씨 좀 보여줄까?"

그녀가 과도를 쥐고 다른 멜론을 텐구만의 강한 악력으로 껍질을 부수듯 깎으며 코코로의 얼굴을 슬쩍슬쩍 바라보자, 모미지의 솜씨에 주위에서 감탄 소리가 들리며 시선이 모여졌다.

"휴, 다 됐다."

울퉁불퉁한 멜론이 과육이 드러난 채로 코코로의 무표정한 얼굴이 조각되어있자. '와~'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와 플래시가 터졌다.

"와! 대단해! 대단해!"

"와 믿을 수 없어! 완전 똑같잖아."

"검 진짜 잘 다루시네요! 이게 산의 솜씨인가요!" 

"머리카락까지 잘 묘사했는걸. 엄청나!"

아야도 깎여진 멜론 조각상과 으쓱으쓱 하는 모미지를 집중적으로 찍으며 말했다.

"과연! 산의 으뜸가는 칼잡이는 다르군요!!"

"야! 칼잡이가 뭐야! 검의 장인은 힘의 조절과 검의 길이를 가리지 않는 거지."

모미지가 아야와 승강이를 벌이면서도 만족감을 숨기지 않는 사이, 코코로가 자신의 얼굴이 조각된 멜론을 잡고 유심히 보았다.

"근데 난 왜 안 웃어?"

"응?"

다들 행동을 멈추고 코코로를 쳐다보자 코코로가 멜론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울지도 않고."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여기엔 그 어떤 표정도 없어."

그녀는 모미지에게 다가가 조각상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거 내 얼굴 보면서 만든 거지?"

"으음. 그렇지."

"아무런 표정이 없는데 정말 내가 그래? 이런 표정을 보면 어떤 느낌이야?"

"어, 음..."

"차가워!"

찬 기운을 스물스물 내던 치르노가 해맑게 외쳤다.

"차가워?"

"응!!"

무표정인 코코로가 푸른 오라가 감도는 탈들을 돌리며 천천히 다가가자 그녀도 차가운 얼음날개를 흔들었다.

"나는 네가 차가운데 차갑다는건 어떤 느낌이야?"

"당연히 최강을 나타내는 거지! 게다가 난 최고로 차갑거든!"  

"차가운게 최강이라면 내가 최강을 향하니까 당여한 거잖아!"

"뭐야? 이 치르노님이 최강이거든!!!" 

냉소적으로 둘을 주시하던 모미지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이마를 치고 심각하게 보던 후토가 두 눈을 감고 긴 탄식을 뱉고 이치린이 '아잇, 그게 아니라..'라고 옆에서 말하자 곧바로 고심하던 아야가 거들었다. 

"자, 만담은 그만! 궁금하죠? 표정이 차갑다는건 냉철하고 치밀하고 신중하다는 거예요."

"표현을 안하거나 못하는 걸 수도 있고. 그게 또 카리스마를 뿜기도 하지." 

"응? 정말?"

코코로가 후토의 말을 듣고 아야를 쳐다보자 쇼가 거들었다.

"무표정도 솔직한 표정이잖아요."

"그래? 그런 거야?" 

그녀가 의아해하자 누에가 다가와 코코로의 가면들을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 있잖아. 네 표정들."

"그래도..."

"네가 무슨 요괴인데?"

"그야 멘레이키, 가면요괴."

"그래. 이것들이 너고 너의 얼굴이자 표정들이라고."

"음..."

코코로가 자신의 가면들과 멜론에 조각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누에가 그녀를 보듬듯 바라보는 광경을 아야가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겼다.

"아! 야! 카메라 안 꺼?"

"어휴, 죄송합니다. 제가 플래시를 안 껐네요." 아야가 능청스럽게 카메라의 버튼을 건들며 말했다.

"얘가 한창 생각 중인데 다 깰래!"

화를 내는 누에 옆에서 생각에 잠긴 코코로에게 모미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미안, 표정만 다시 조각해줄까?"

코코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이것도 엄연히 내 표정인걸."

그 말에 모미지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견스러운 듯 코코로를 쓰다듬어주자 훈계를 듣고 온 치르노가 얼린 체리들을 들고 말했다.

"덤으로 이거 하나들 먹어!"

"치르노. 고마워! 잘 먹을게!"

"뭘."

"치르노 양이 말을 잘 이해한 것 같네요."

만족스러운 듯이 웃는 뱌쿠렌에게 치르노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뭘?"

"방금 제가 했던 말들이요."

"응? 그랬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과일 얼리기에 전념하는 치르노를 허탈하게 바라보는 뱌쿠렌을 제외하고 다들 여름의 열기에 베일을 벗듯 김을 내는 얼려진 여름 과일을 열심히 맛보며 먹었다.


"아, 근데 궁금한 거 하나가 있어."

"뭔데?" 코코로의 질문에 이치린이 대답했다.

"그 옆에 따라다니던 요괴는 어딨어?"

"응?!"

깜짝 놀란 이치린이 아야와 누에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으응, 운잔은 여름 나들이한다고 갔어."

"그래? 그럼 츠쿠모가미인 코가사 언니는?"

"어.. 걔, 걔는 잘 모르겠네. 분명히 생각나면 불쑥 튀어나오는 애라."

"원마아아아앙스러어어어어어워어어어어!!!"

범종각의 지붕에서 튀어나온 코가사가 소리를 지르자 이치린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깄네."

"저기서 뭐하는 거야? 얼른 와서 과일먹어!"

누에가 소리를 지르자 재빨리 날아온 코가사가 얼린 과일을 햛짥햛짥 햛는 쿄코를 지나 코코로 옆에 앉았다.

"거기서 뭐 했어?"

"응, 다들 놀라게 해주려고!"

"설마 햇빛 다 드는 저기서 기다렸던 거야?"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는데 이 정도면 놀라게 해주는 건 대 성공이지? 그렇지?"

정말 얜 왜 이렇게 사냐 하는 딱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누에가 싱글벙글한 코가사에 적선하듯 입에 얼린 체리 하나를 넣어주자, 코코로도 그것을 보고 코가사의 입에 체리 하나를 넣어주었다.

"와 시원하고 맛있어!"

그리고는 축 늘어져서 기운이 나가자 코가사가 화들짝 가면을 비추며 기겁한 말투로 물었다.

"츠쿠모가미 언니!! 왜 그래?"

"으음.. 너무 차가운 걸 먹었더니 놀라서 힘이..."

"응? 괜찮아??!" 코코로가 코가사를 흔들며 말하자 코가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누군가 놀라서 괜찮아진 것 같아."

"저거 일부러 장난하는 건가?"

"글쎄." 후토의 질문에 이치린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코가사는 많이 있으니까 손 씻고 드세요."

뱌쿠렌이 인자한 웃음으로 말하자 코가사도 우산을 들며 말했다.

"네."

모미지는 우산 요괴가 우산을 양산처럼 썼는지 말라 죽어가는 듯한 우산의 눈과 빠싹 마른 혀를 보고는 "뭐지.' 하며 잠깐 생각하다가 과일을 먹었고, 하늘에서 마미조가 유유히 날아와 합류했다.

"꽤 맛난걸 먹고 있으니께 즐거워 보이는구마이."

"아. 마미조 씨. 늦으셨네요." 아야가 열심히 주변 요괴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말을 걸었다.

"날이 더워가 그늘진대서 낮잠 잔다고 늦었구먼."

"늦었으면 와서 빨리 먹어!" 코코로가 노인가면으로 즐거운 말투로 말했다.

"빨리 먹어어어어요오옷!!!!!"

친구에게 빙긋 웃어주는 센스도 잊지 않은 마미조가 이치린에게 곁눈질을 하자, 이치린도 눈을 한번 깜빡였다.

"치르노 양이 있을 때 와서 다행이네요. 마미조 씨 몫도 얼려달라고 해야겠어요. 치르노 양. 그래 주실 수 있죠?"

쇼가 묻자 치르노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껍질이나 잘 까두라고."

"에휴, 친구 과일 껍질은 내가 까준다." 누에가 다도를 가지고 깎자 마미조가 낄낄거리며 웃었고 코코로는 그런 둘의 표정을 유심히 번갈아 보았다.

"이건 누가 깎은기가?"

코코로의 얼굴 모양으로 깎인 멜론조각을 들고 감탄한 마미조에게 모미지가 말했다.

"접니다만."

"와, 텐구처자가 솜씨도 기가 막히게 좋구먼. 이걸로 장사해도 되겄당께."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모미지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자 누에가 마미조를 챙기며 말했다.

"얼른 손 씻고 와서 먹어. 날씨도 더운데 말 많이 해서 더위 탈 필요 없잖아."

"아야 씨, 놔둔 얼음이 좀 잘 녹는 거 같으니까 바 람좀 살짝 약하게 해주세요."

뱌쿠렌의 요청에 아야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다 앵글에 잡히도록, 몇번 더 찍을게요."

"그냥 찍으세요. 아까부터 뭐 알려주고 찍었나. 뜬금없게."

이치린이 핀잔을 주자 아야가 모미지가 갈아준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사진빨이라는게 있잖아요. 지금이 빛도 각도 다 잘 나오고 아주 좋다고요! 모미지, 다른 필름도 갈아주세요."

모미지는 아까부터 계속 바꿔치기한 필름을 아야가 안 보는 지금 그 순간에 품속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하아, 하면 되잖아."

하소연을 하든 말든 아야가 상관없이 셔터를 눌러대자, 들뜬 코가사가 조심스럽게 코코로에게 물었다.

"코코로는 지금 기분이 어때?"

"응? 좋아. 덥지도 않고 맛있는 것도 먹고."

"제철과일들이니까 맛있게 먹어!"

"응, 그럴께." 코코로가 가면으로 웃음 지어 보였다.

"얘는, 누가 들으면 니가 다 준비한 줄 알겠다."

과일을 깎던 누에가 핀잔을 주자 부끄러운 듯이 바라보는 코가사를 보고 코코로가 웃었고,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렸던 후토도 뱌쿠렌이 쇼와 이치린과 이야기하고, 쿄코가 치르노나 마미조와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뭐해? 얼른 먹어."

이치린이 후토를 툭 치며 말하자 후토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알아서 먹을테니 좀 내버려두게나!"

"아니, 네 몫이 점점 없어지니까 그렇지."

"알았다고 했지 않느냐!!"

"알았어. 빨리 먹어. 돌아갈 때는 더우니까."

후토가 '흠.'하고 과일을 먹자, 바로 앞의 불이문에서 두 물체가 천천히 걸어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많이 모여 계셨네요?"

이야기 나누며 먹다가 깜짝 놀란 그들이 불이문 방향으로 쳐다보자, 수박과 죽순, 대나무를 든 카미시라사와 케이네와 후지와라노 모코우가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어? 훈장님, 여긴 어쩐 일로?"

"아, 아직도 코코로 학생이 감정에 대해 배우고 있을까 봐서 방문했죠. 잘 지냈니?"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코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야? 케이네. 네가 말한 애가 얘야?"

케이네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코우가 난처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희 절에 방문해주시고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훈장님. 모코우 씨도요."

"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뱌쿠렌과 쇼가 두 명에게 깍듯이 인사하자 케이네와 모코우도 웃으며 가지고 온 물품을 건네주었다.

"그냥 방문하긴 좀 그래서, 선물을 좀 가지고 왔어요. 수박은 이미 먹고 계시지만, 대나무는 쓸 곳도 많고 죽순은 여름 반찬으로 해 드시라고 준비했으니 받아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잘 쓰도록 하죠."

물품을 건네받은 뱌쿠렌의 사진을 찍은 아야가 케이네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오, 이렇게 선물을 드리려고 찾아오신 건가요?"

"헤에, 꼭 그것만은 아니고.."

"뭐야, 텐구 너도 있었네. 난처하게스리.."

모코우가 못마땅해 하고 아야가 웃으면서 대하자 케이네가 이야기했다.

"실은 감정을 가르치던 중에 감정의 요소 중 하나가 '분노'라서 '분노'에 대해 모코우가 누구보다 잘 설명해줄 것 같아서 같이 데리고 온 거예요. 혼자 보내면 안 갈 것 같기도 해서요."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를 만지는 모코우에게 아야가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오옷! 그렇군요!! 모코우 씨께서 코코로 양에게 친히 분노에 대해 가르쳐준다니 과연 경험을 살린 참교육이 되겠네요!"

"야, 얌마! 가까이서 찍지 마! 넌 초상권도 모르냐!"

"후후, 환상향에서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요. 얌전히 제 필름이나 돼 주시길."

"후우, 케이네가 불러서 왔지만. 내가 누굴 가르칠 입장도 아니고 애초에 요괴가 뭐야? 자유분방하고 자기감정이랑 하고 싶은 대로 날뛰면서 자기 멋대로 사는 건데 뭔가 주관적인 가치관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것 같잖아.

이게 요괴로서 정말 잘하는 건지 도움은 되는지 모르겠다고."

모코우가 답답한 기색을 보이자 케이네가 그녀를 달래주었다.

"걱정 마, 모코우. 코코로 양은 감정의 요괴니까 분명히 공감만 잘하면 네 감정이 도움될 거야."

"글쎄. 내가 너처럼 설명이라도 잘했으면 좋으련만. 이건 말이라도 잘못 말했다간 딱 이변 일어날 각이라고."

그리고는 모인 선인과 요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변 일으킬 애들로만 다 모였네, 어휴."


PM 2시 인간마을


인간 마을의 한 건물에 들어간 나즈린이 어떤 사내에게 금덩이를 던져주면서 말했다.

"그때 습격당했던 것 좀 말해줄 수 있어?"

"그런 적 없소."

"시치미 때지 마. 다 알고 왔어. 일단 금덩이부터 받고 대화를 하자고."

그러자 그 사람은 미간을 잔뜩 찌뿌리며 굴러간 금덩이를 잡아 나즈린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정말 모르오."

그러자 나즈린이 다시 금덩이를 건네주고 다우징 봉을 그 사람의 목에 가위처럼 겨누며 말했다.

"헤, 이봐. 나 요괴야. 무녀를 부르기 전에 나한테 바로 죽을 수 있어. 쥐떼도 필요없지. 그러니 금덩이를 받고 말을 하자고. 양측에게 좋은 조건이잖아."

하지만 그는 나즈린을 노려보며 격양된 심호흡 소리와 함께 금덩이를 나즈린에게 던지듯 돌려주면서 말했다.

"금덩이를 받고 말해도 나중에 죽을 게 뻔한데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적어도 지금 도망치거나 누군가 듣고 오도록 소리를 지르는 게 내 목숨보전에 더 이로울 같은 건 내 생각만이오?"

"흠, 협상은 안되는 건가? 그럼 오니에게 습격 당한 건 맞아?" 답답해진 나즈린이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모르오." 그가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아. 정말 답답하게 하네! 난 그저 알고 싶을 뿐이야. 뭐 때문인지 알아야 우리도 우리 절에 다니는 불자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해 주든가 하지. 솔직히 오니라면 사람을 먹고 싶음 대놓고 쳐들어오겠지. 그 힘센 애들이 무녀가 무섭겠냐."

"그런 거 아니오."

제 자신도 답답한지 한숨을 쉬듯 토로하며 팔짱을 꼈고, 그와 동시에 나즈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럼 뭐 어떻게 했는데? 몰래 들어와서 잡아갔나? 아무 죄도 없는데?"

사내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구면서 몸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제발 그냥 가주시오. 제발, 내가 삶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오."

"당신만 잡혀간 건 아니잖아. 못 돌아온 사람도 있다던데 그렇다는 건 뭔가 '경고'의 의미로 당신을 살려줬다는 뜻이겠지. 그럼 당신은 그것에 대해 함구하는 조건으로 목숨을 부지했을 테고."

한숨을 길게 쉰 사내가 나즈린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잘 알면서 나를 괴롭히오? 사정을 알면 이제 그만 가주시구려."

"헤에. 이것 봐. 정작 내가 알고 싶은걸 모르잖아. 나 요괴야. 인간은 인간끼리 사정 봐주겠지만, 요괴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거든. 자, 어떻게 할래? 그 쪽에게는 입을 다무는 게 최선의 선택지인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면 더 많은 금덩이와 함께 명련사의 힘으로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우리 명련사 주지와 비사문천님의 힘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고개를 이러저리 돌려가며 머리를 감싸쥐고 곰곰이 생각을 하던 사내는 한 손가락을 입 중앙에 두고 곧바로 다른손으로 목을 긋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나즈린의 기묘한 미소를 보고 소름이 돋아 무거운 그 입을 열었다.

"좋소. 일단 지금은 살아야하니까.."

"그럼. 그럼. 침묵을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삶의 의지가 충분한 인간이네. 시작해보세요." 

"하아.. 얼마 전에 나는 집에서 자다가 무장한 오니들에게 끌려갔소. 나에게 검은 복면을 씌우고 묶은 뒤 어디론가 데려가서는 오니의 낮고 둔탁하지만 시끄러운 목소리로 나의 죄에 대해 호명을 하였소."

"응? 무슨 죄?" 나즈린이 금덩이를 하나 더 얹어주며 물었다.

"이것저것 말했었소. 요괴가 많은 환상향에 사는 게 언제 잡혀먹힐지 모르니 무서워서 남들에게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것과 요괴에 대한 비방, 그리고 결계에 대해서 알려고 한 죄도 있었소. "

"뭐?"

나즈린이 놀라서 금덩이를 떨구자 사내도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잠깐, 잠깐만!"

그녀가 다우징 봉을 다시 들고 금속을 포함하여 집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질적인 물체를 찾았지만, 전혀 찾지 못했고 집주변에 엿들을 수 있는 통로가 있나 살펴봤지만 그런 부분도 없자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흠, 이상하네. 그래서?"
그가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니는 미움을 받기 때문에 잡아먹어도 전혀 탈이 없는 환상향을 이탈하고 거부하려는 자를 잡아먹기 좋아하는데 내가 적격이라고 그랬소. 그래서 또 무녀나 경계요괴에게 이유없이 함부로 인간을 습격했다는 뒷탈이 없도록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면서 이 일에 반성하고 사죄하고 다신 안 그렇겠다는 조건으로 빌고 또 빌어서 이렇게 살아나온 거요. 또 이게 알려지면 분명 자신들이 무녀나 환상향의 관리자와 갈등이 생길 것이고 그것에 대한 대가는 다 내가 질 것이라고 하였소."

말을 마친 그는 감당하기 힘든지 침을 큰 소리가 나도록 삼키며 깊은 숨을 내쉬고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가만, 언제부터 오니들이 이렇게 습격한거야?"

"잘 모르오. 습격은 빈번했어도 몇 개월 안 되었을거요."

"흠, 그래. 엄청나게 무서웠겠네? 근데 그냥 무녀에게 말하지 그랬어? 알아서 털어줄텐데."

"무녀가 24시간 내내 보호해주는 건 아니잖소. 무녀가 없을 때나 방심하는 새벽 또는 저녁 등 어둠을 틈타 얼굴도 알 수 없는 어두운 복장으로 쳐들어와 순식간에 잡아가는데 한낱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겠소. 이것을 공론화하고 오니들을 혼내줘 봐야 반드시 응징이 돌아오니 그 때 뿐이오."

"그렇군. 알았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당신 주위에는 내가 알 수 있게 쥐들을 붙여놓을거야. 보호를 확실히 받고 싶으면 우리가 사는 절에 와서 귀의하던가, 그 금덩이로 경호원을 더 고용하든 마음이라도 편해지게 맛있는 거라도 많이 먹든지 해. 당신 목숨 값이 될 수도 있으니까. "

그렇게 돌아선 나즈린이 금덩이를 더 던져주고 쥐들에게 주변에서 감시하라고 지시한 후,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오니들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그냥 부닥치고 행동하는 오니들 방식이 아닌데 진짜 무녀에게 혼나니까 빡쳐서 저항의 의미로 저러는 건가? 아니 어쩌면 다들 오니라고 하긴 하는데 복면을 가렸으니 오니라고 단정지을 수가 있나.. 목소리가 오니 목소리였다는 게 걸리긴 하지만 겁에 질리면 공포에 그렇다고 믿게 될수도 있지만. 아, 모르겠다. 일단 돌아가자.'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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