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안에는 사토리가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양팔을 기대며 그녀를 맞이했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뻔한 타이밍에 당연히 등장했습니다! 반가운 말씀 감사드려요. 저도 반가운 소식을 준비했답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매고 온 크로스백스러운 서류가방에서 붕붕마루 신문과 철제로 된 상자를 꺼내든 아야가 화면에 원안의 직선이 빙빙 돌아가는 수신기를 놓고는 배시시 웃으면서 사토리에게 그 상자를 건넸다.

"내일자 신문이군요. 지상의 소식을 알려면 이만한 것도 없어서요."

"그럼요, 여기저기 열심히 날아다니며 생생한 소식만 챙겨담은 건데요."

1면 머릿기사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다음 장을 펴본 사토리는 서드아이와 같이 아야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요즘 복잡한 그 쪽 머리속 만큼이나 정신없을 텐데 용캐도 취재하시나 보네요."
"본업이 기자잖아요." 아야가 능청스럽게 눈웃음을 지으면서도 입가는 살짝 쓴 웃음을 드러냈다.

사토리의 다른 애완동물이 오린과 함께 접시에 디저트를 대령해오자, 카엔뵤 린이 철저히 문단속을 지시하고는 귀빈 맞이를 세팅하면서 사토리에게 애교를 부리며 속삭였다.

"사토리니이임~ 자두맛 아이스크림과 달달한 생크림을 올리고 우유 조금에 라임을 넣은 새콤달콤 복숭아 아이스티에 청포도 티라미수 케이크 대령해왔어와요."

"아주 잘했어요. 거기다 놔주세요."

카엔뵤 린이 두 꼬리를 일자로 세우고 신나게 떨면서 접시를 놔둔 뒤, 허리를 숙인 채 고개를 들어 사토리의 쓰다듬을 받으며 행복해했고, 다른 손으로 신문을 넘기며 꼼꼼히 읽던 사토리를 바라보던 아야에게 기분좋은 표정으로 린이 다가가 말했다.

"텐구언니는 귀빈답게 산에 사니까 말차가루를 사용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올린 녹차 프라프치노에 산딸기브래드 준비했어요."

"와, 감사합니다."

자수정과 아쿠아마린으로 된 식기와 쟁반을 내려놓자마자 사진기로 차와 디저트의 사진을 찍은 아야를 보며 오린과 사토리의 병찐 시선에 아야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플래시를 끄는 걸 잊었네요. 직업병이라."

"나 참, 사토리님 놀라셨잖아요. 그러면 안 되어요. 설탕은 여기, 우유는 저기, 녹차가루는 이것, 스푼은 거기, 나이프는 구석, 냅킨은 왼쪽, 빨대는 오른쪽에 있어요. 아이스크림은 바람에 빨리 녹으니까 지금은 쓰지 마세요."

쟁반을 내려놓은 린이 주먹을 쥐곤 집게 손가락만 펴서 저으며 경고를 주고는 바로 웃으며 안내하면서도 귀를 쫑긋거리며 구석구석 살피면서 아야가 가져온 수신기를 들고 화면을 주시하며 닫힌 문 근처에서 대기하자, 더위를 식힐 아야의 바람 대신 냉기를 스물스물 피어내는 청포도의 에메랄드 빛을 담은 티라미수를 한 스푼 떠서 입에 넣고 녹여 먹으면서 빨대를 생크림 사이에 꽂아 한 바퀴 젓고 밑에 깔린 얼음의 묵직한 울림과 함께 아이스티를 마신 사토리가 신문을 접으며 말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시는군요.."

숲속같은 우중충한 초록색이 가득한 프라프치노 위의 구름과도 같은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떠서 입에 머금고 맛을 음미한 아야가 준비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캬아! 맛있네요. 대단해요. 지상에서 팔아도 되겠어요. 이제 저도 더 대단한 걸 보여 드려야겠죠?"

기다렸다는 듯이 신문을 내려놓은 사토리에게 철제로 된 상자의 한쪽 버튼을 길게 눌러 지문인식을 하자마자 갑자기 튀어나온 쌍안경스러운 장치에 홍채인식을 마친 뒤, 덥개를 열어 등장한 자판에 품안에 있던 코드카드를 뒤집어서 인식장치에 넣고는 액정에 뜬 암호대로 자판에 입력했고 승인이 뜨는 것을 확인한 아야는 심호흡을 하고 상자 밑면에 손바닥을 데어 정맥 인식측정까지 마치자마자 마지막 뚜껑까지 오픈하면서 안에 든 서류 뭉치와 셀로판지들을 사토리에게 건네주었다.

"최근 일주일동안 세밀하게 알아낸 지상의 세력간 돌아가는 추세, 바깥세상의 출입 건수, 인간을 비롯한 무녀들의 움직임과 요괴들의 이변을 비롯한 사건발생 빈도등 시사적인 핵심정보들과 사토리님이 그렇게 원하시는 동생분에 대한 아주 자세한 자료들입니다."

서드아이까지 동원해가며 번호 하나와 검은 줄이 군데군데 가득한 해독용 셀로판지를 대고 번호에 맞게 서류들을 조밀조밀 검토해 본 사토리는 하나하나 세밀하게 읽어가다가 코이시에 대한 자료가 나오자 바싹 긴장하고는 매우 집중한 태도로 차근차근 흩어보면서 몰래 찍은 티가 나는 코이시의 사진등과 지도에 표시된 코이시의 이동경로, 목격자들 명단 및 환상향에 있는 장소간 노출 빈도 등, 수많은 자료들을 떨리는 손으로 세세히 바라보며 말했다.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이게 확실한 건지 좀 궁금해지네요. 정말 간절히 원하는 거라."

"저도 열심히 미행.. 아니 취재하고 우리 정보력을 다 총동원해서 알아낸 결실이에요. 무의식적으로 사라지시니 겨우겨우 목격자들 증언이랑. 저나 다른 텐구들이 돌아다니며 찍은 목격된 사진의 시간과 위치, 무의식이랑 아무런 상관없는 주위에 발산한 전파에 닿은 대형물체를 인식하는 수신기가 내는 신호를 종합하여 교차검증하고 거기에 열감지와 파동을 이용한 경보장치, 탐지기등에서 뽑은 자료도 규합하고는 동생분이 아닌 자들의 자료를 모조리 삭제한 결과죠. 일주일 간격이 있다보니 신뢰도도 높고 오차가 그리 크진 않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장에 몇일날 코이시가 무엇을 했는지 관찰결과나 목격자 진술, (음성식별 불가)칸이 조금 있는 혼잣말을 비롯한 대화 내용등 조목조목 기록된 자료들을 읽느라 혀의 침이 마르고 아이스티의 얼음이 다 녹아도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토리를 보고 수신기를 계속 확인하던 린이 눈치를 보다가 큼지막한 얼음을 가져와 다른 애완동물과 같이 뽀개고서 주인의 아이스티에 넣어주었고 아야는 그런 사토리를 보면서 프라프치노를 비웠다.

"언니, 녹차 샷 추가해줄까?"

"네. 그래줄래요? 칵테일처럼 사케도 조금 추가해주세요."

주전자에 담긴 차가운 녹차원액을 아야의 컵에 붓고 말차가루를 조금 뿌린 뒤, 사케를 조금 넣고 스틱으로 섞어준 린이 아야에게 건네주며 다시 주인의 눈치를 보자, 아야도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빵을 나이프로 잘라 따뜻한 김과 함께 붉은 산딸기 과즙이 모락모락 흘러내리는 것을 포크로 찍은 뒤, 과즙이 묻지 않은 바깥 부분까지 바르고 오물오물 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떨리는 손으로 힘없이 내려놓은 사토리가 서류를 쳐다보다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는 떨리는 손의 손목을 잡으며 무릎에 가깝게 내려놓고 부쩍 움추려든 몸으로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이 뜨거워진 눈시울로 침을 삼키며 말했다.

"... 수고했어요."

나오는 눈물을 옆의 티슈로 닦으며 걱정되어 다가온 린에게 손을 까딱이며 괜찮다는 사인을 주고는, 다른 티슈로 코를 풀은 다음에 빨대로 아이스티를 쪽 마시다가 안쓰러운 표정의 아야의 눈을 충혈된 서드아이로 마주보았다.

"네, 제 생각을 읽어보셔도 정확하다는 걸 아실 거예요. 저는 사토리 양에게 숨기는 게 아무것도 없답니다." 

"숨길 수가 없는 거겠죠."

사토리는 린을 불러 준비하고 있던 서류와 펜을 꺼내며 말했다.

"그럼 약속대로 해드리죠. 지금까지 투자한 수많은 자금과 귀금속 자원 외에도 엄청난 전력 소모양만큼 오쿠의 간헐천 센터 발전 전력 송전케이블을 더 확대해 드릴게요. "

사토리가 더 많은 자원 지원 서류에 싸인하고 아야에게 건네 주던 중, 아래의 서류를 슬쩍 쳐다봤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아야의 눈을 계속 주시하면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와, 저도 텐마님을 대변해 함께 할 사이로서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이 체계가 움직이려면 지저의 지원이 매우 절실 하거든요."

"지저도 요괴의 산의 기술지원 덕분에 이렇게 원활한 전력 공급망과 뜨거운 기온에도 냉동장치랑 냉장고로 차가운 음식을 먹을수 있게 되어 감사 드립니다. 굳이 안올라가도 빠르고 알찬 지상의 소식들로 정보 전달도 고맙게 생각하고요."

"뭘요. 그렇게 서로 상부상조하는게 친선이자 동맹인걸요. 구독자이시기도 하시니까 신경 써드리는게 당연하죠."  

"그리고 어떤 수로든 이렇게까지라도 제가 동생에 대해 알수 있다는 것도요.."

아야가 빙긋 웃으며 서류를 가방에 담자 사토리가 펜을 내려놓고 슬며시 담고있던 말을 털어 놓았다.

"네, 저기 근데 .. 지금 집중적으로 하고 있는 일 있으시죠."

"아, 네."

감정이 복받쳐서 그런지 손을 떨지 않으려고 깍지를 끼고 턱에 댄 사토리가 눈시울이 붉어진 서드아이를 매섭게 뜨며 싸늘하게 말했다.

"우리 동생까지만 해주시고 그 후로는 그만둬주세요. 솔직히 저도 점점 이성의 경계를 넘을까봐 고민하고 있어요." 

살짝 놀란 아야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두 눈 사이에 주름과 함께 인상을 슬쩍 썼다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미소로 말했다.

"아하핫, 여기까지 와서 이젠 내가 멈출수도 없어요. 이미 많이 엮여 버린걸요."

아야가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허리를 피면서 고개를 어깨선까지 집어넣고 눈초리로 탁상위의 서류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사토리가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아요. 이런 말 할 자격 없는거 알지만, 당신의 그 강박적이고도 항상 불안속에 살게하는 계산에 계산을 거듭하는 계획중에서 내가 읽은 게 정확하게 맞다면."

사토리가 격양되어 한숨을 다시 푹 쉬면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대로 쭉 가다간 앞으로 환상향을 더 엉망으로 만들 뿐더러. "

그리고 한탄하듯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입안의 단어를 털어놓았다.

"지금도 우리가 거리낌을 느끼면서 이미 정도를 넘어버렸는데 이젠 더 쉽고 편하게 막나가게 될 것 같아 모두가 비참하게 될 거에요.. 분명히."

빙긋 웃던 오린의 표정이 어느 새 심각해지면서 빳빳하게 선 두 꼬리의 털이 바싹 돋고 가늘던 동공이 커짐과 동시에 사토리를 바라보던 아야는 그 말을 듣고 빙긋 웃던 미소에서 점점 미소기가 가시며 표정이 굳어진 뒤, 녹차를 쭉 들이키고는 입맛을 다시고 매서운 눈빛과는 다르게 입가는 웃으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요. 정작 당사자들은 잘 되기를 바라며 환영하고 반기던데요."  

"하지만 이건 그나마 우리에게 남은 일말의 이성과 양심의 문제에요."

"다 감수하고 용인하셨어요. 대텐구님도, 텐마님도, 우리의 동맹도 말이죠. 사토리 양도 결국 우리에게 기대고 계신만큼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대응하는지도 다 알고 지원해주시고 있잖아요. 그것도 소신있게 말씀하시기엔 결국 암묵적인 용인이시죠. 무르실 생각은 없으시잖아요."

"그래서 내가 자격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게 그대로 굴러간다면 그대로 문제가.." 

아야가 사토리가 사인한 서류를 집게 손가락으로 톡톡두드리며 보란듯이 말하자 사토리가 자신의 머리띠가 손에 닿이도록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며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길게 쉬었다.  

"에휴.. 그쪽도 마음을 너무 가볍게 아는군요. 나도 정말 방법이 이것뿐이니 어쩔 수가 없었고 오죽했으면 이랬겠어요. 이게 누군가에게 얼마나 지독한 상처가 될지 감안했으니 더더욱요. 하지만 그쪽은."

"알죠. 오히려 너어무 자아아알 알죠."

아야가 그말에 놀라서 '그런데도'라고 말하려 고개를 든 사토리를 보며 바로 목청을 높히며 반박하듯 외쳤다.

"하지만 이 작전으로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응어리가 풀릴 누군가도."

일부러 말을 끊은 아야는 탁자에 왼팔을 내려놓고 사토리의 글썽이는 눈물로 흔들리는 동공을 바라보며 그녀를 향해 제안하듯 손을 내미는 사인을 취하며 말했다.

"반, 드, 시, 있답니다."

"... 정말 지독하기 그지없는 억지의 당위성이군요.."

"애초에 방금 드린 사토리 양의 아픈 손가락에 대한 정보가 이 일의 부산품인걸요."

여유만만해진 태도로 미묘하게 웃는 아야를 보며 다시 손을 깍지쥐고 자신의 목등을 감싼 사토리는 감당하기 힘든지 몸을 떨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하아.. 그러니까."

"네, 말 못할 고민이신거 알죠. 그만큼 각오하시고 절박하신 것도요. 그리고 그걸 들어주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오죽하면 저희겠어요."

안쓰러운 표정의 아야 앞에서 사토리는 무너지듯 흐느끼면서 울먹였다.

"코이시는.. 코이시는 말이죠.."

기겁한 린이 손수건을 들고 황급히 다가섰다가 손을 들어 만류하는 사토리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옆에 서자, 탁상에 놓인 티슈로 코를 푼 사토리가 아린 명치에 손을 대고 말했다.

"사토리가 저랑 이야기하지 않고.. 피해다니거나 다른곳은 잘 돌아다니는데 지령전에서 보이거나 저랑 있으려 하지 않아 얼굴 보기도 힘들어서.."

"네, 언니이자 세상에 단 둘인 혈육으로서 얼마나 가슴아프실지 느껴요. 더구나 다른 상대도 아니고 동생분은 생각도 읽으실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더 찹작하시겠죠."

"난.. 아니, 전.. 그냥 잘해주려고. 잘해.. 주려고.. 우린 가족이잖아요. 가족인데.. 우리끼리라도 뭉쳐야 할텐데.. 근데.. 얘는 나를.."

흔들리는 서드아이만큼 속이 타는지 아이스티를 그냥 들고 들이킨 사토리가 격양된 손짓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좀 더 친절하게 해주고 맛있는 것도 챙겨주고 안부도 물어보고 방도 새로 예쁘게 꾸며주고... 정말 잘해주고 기분좋게 해주려고 노력하는데.. 코이시는.. 동생은.. 아니 그 아이는 더 불편해하고 꺼려하기만 하고... 얘길 해보려고 해도 듣지 않을 뿐더러 피해버려서 이젠 얼굴도 잘 보질 못하니.."

사토리를 위해 바람을 살살 일으킨 아야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토리의 눈을 쳐다보았다.

"사토리 양은 동생에게 물심양면으로 챙겨주려 노력하는데 동생이 받아주지 않아 마음이 너무 힘드시겠군요."

아야의 말에 코이시를 생각하다 참아왔던 감정이 울컥하여 속상함의 울분과 동생과 자신, 자매에 대한 안타까움, 서글픔이 뒤섞인 사토리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흐느꼈고, 힘없이 덜덜 떨리는 몸과 눈물을 흘리는 서드아이가 안쓰럽게 쳐다보는 아야와 린을 충혈된 동공으로 힘들게 마주치며 말했다.

"으흐흐흑. 나.. 난 그저.. 동생이 행복했으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모진 밖에서 잘 먹고 잘 입히고.. 조금이라도 힘든세상 그래도 자매인데 우리끼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근데 이젠 마음을 몰라주니 괜스래 미워지고.."

녹은 티라미수가 끈적끈적한 자국을 남기며 줄줄 흐르는 것처럼 사토리도 그동안 봐온 주인의 공감하여 측은해진 린이 들고있던 손수건으로 급하게 얼굴과 서드아이의 흥건한 눈물자국을 닦으며 말했다.

"난.. 동생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모르셔서 오죽 답답하셨겠어요.."

아야의 말에 상에 엎드려 팔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쌓여왔던 울음을 터트린 사토리는 린과 아야가 다가가 등을 토닥여주였고, 진정이 된 사토리가 고개를 들자 아야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가에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저희가 마음고생을 덜하실 수 있도록 사토리 양의 말 못할 고민을 계속 신경 써 드릴게요. 자매를 위해서 말이죠. 그것이 구독자들에 대한 의리니까요." 

팔로 눈가를 닦듯이 가리고 눈물이 고인 서드아이가 물 때문에 상이 일렁이며 흔들리면서도 아야를 쳐다보자, 아야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구독자이실 뿐만 아니라 스폰서측에는 동맹일때까지 비밀보장을 약속드리죠. 한 배에 타있으니까요. 물론 저희랑 다르게 속을 도저히 알 수 없는 그쪽도 조용히 해주셔야겠지만요. 후후."

그러자 깊은 한숨과 함께 의자에 등을 붙이며 고개를 젖히며 부은 눈과 붉어져서 뜨거워진 볼, 남은 눈물을 아야의 살랑살랑 상냥한 바람에 말린 사토리가 감정을 추스리며 말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건데.. 그쪽의 모든 일이 만약 잘못되거나 들통났을 때, 아니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책임감과 사회의 미움과 분노를 당신이 절대로 감당하지 못할 거라 장담하죠. 전체의 미움이 뭔지 직접 겪은 자로서 그보다 훨씬 모질고 더할테니 당신이 빌수 있는 모든 것에 성공을 비셔야 할 겁니다."

"뭐, 저도 말이 쉽게 나올만큼 다 단단히 각오하고 하는 건데요."

여유만만한 몸짓으로 쓴웃음을 지어보이는 아야에게 앞의 태도와는 다르게 무서울정도로 냉소적인 표적으로 가소롭다는 듯이 사토리가 고개를 들었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그 다수의 미움에 못 견뎌 지저로 내려올 지경인데, 모든 밝혀지면 그런 저보다 더할 그쪽이요?"

"네, 저야 언제나 최악일 때 쓸 카드가 이젠 많거든요, 게다가 말은 그렇게 하셔도 그런 일이 없도록 그 쪽이 안 보이는 데에서는 모를까 오히려 대놓고 협조하시고 스스로도 입도 뻥긋 안하실 거라는건 알죠."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당신의 내면에선 한치앞의 불확실성에 느껴지는 불안함에 함부로 모든걸 맡기고 있는 거겠죠. 의지로 하기엔 버겨운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헤, 속마음을 제대로 읽었다면 아셨을텐데 저는 알아도 쉽게 말할거에요. 이게 누구를 위한 일이 될 수도 있는지 사토리양의 아낌없는 지원이 증명하잖아요?" 아야가 능청스럽게 베시시 웃으며 음료를 들이키면서 말했다.

"말씀처럼 외부정보와 동생을 위해서 이번 일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입도 다물고 있지만.."

사토리는 울분에 찬 얼굴로 아야를 보며 몸서리치며 말했다.

"난 적어도 읽은 생각과 남의 마음가지고 장난치려고 하진 않아요."

그 말에 아야가 멍하니 쳐다보다가 동의한다는 듯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알겠어요. 그럼 궁금한것 중에 하난데 마음은 읽으시는건 자동이라 어쩔수 없다해도 유일하게 마음을 읽을 수 없는 동생분에게 불안함을 느끼시는 건요?"

그리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사토리에게 준 서류중 '코이시 목격일지 및 대화문건(7/21~22)'라는 이름이 써진 비밀문건과 인간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웃는 코이시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도 동생분 입장에서는 장난치는거나 마찬가지일텐데 사토리 양이 동의하고 사주까지 한 이걸 다른이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저는 사토리 양 속마음 못 읽으니까 우리 진짜 솔직해져요."

사토리가 울먹이는 눈으로 깊게 한숨을 쉬며 얼음이 다 녹은 아이스티를 쭉 들이키고 코를 풀었다.

"나도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상처받는 답답한 현실도 갖은 수를 다 쓰면 그나마 도움이 되니까 수란 수는 그것이 도박이라도 우리를 위해 더 쓸까봐 그러죠."

걱정되어 조심조심 다가온 오린이 떨면서 슬며시 건네준 냅킨을 받아든 사토리는 입가와 눈가를 두드리며 서드아이까지 닦으면서 깊은 한숨을 풀었다.

"모든 일은 동생분에게 최대한 안 들키도록 하고 있는데다가 들켜도 최후의 수단이 있으니 너무 걱정마세요. 우리도 최대한 보험은 많으니까요. 게다가 '우'리잖아요. 사토리 양이 호소하는 걱정과 스트레스 해소뿐만 아니라 동생분과의 관계개선도 잘 책임 질게요. 저희의 친선임무니까요."

"혹시나 이 복잡한 일이 잘못되면 입을 열지않는 조건으로 지저로의 망명은 받아들이죠. 지저는 미움 받는 요괴에게 항상 열려있는 곳이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물론 내 애완동물로서 말이죠. 아는 게 많은 까마귀를 밑에 두는 건 어떨지 궁금해지는군요. 같은 까마귀인 오쿠가 반길거예요."

린의 등을 토닥이면서 입가는 웃는데 눈에 초점이 없는 묘한 미소를 짓어보인 사토리를 보며 아야가 대수롭지 않게 농담으로 여기며 겸연쩍은 미소로 화답하고 뒷목을 쓰다듬자. 오린의 눈이 번쩍이며 꼬리를 흔들었다.

"와, 언니 내 밑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네에."

"그럴 거란다. 오린."

너무나 빠른 사토리의 대답에 슬쩍 당황한 아야가 서류들을 챙기며 화제를 돌렸다.

"네, 알겠습니다. 지저도 보는 눈이 있으니 여기 오래 있을 수는 없겠네요. "

"그럼 지저의 대표로서 산의 대표인 텐마는 지금 우리 관계에 뭐라고 하시던가요."

"언제나 친선과 화합을 강조하시죠. 저희는 언제나 도움받은 만큼 도울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그럼 지금 외에 따로 협상계획도 잡을 수 있겠군요."

"저야 아래요괴일 뿐이니까 텐마님이나 대텐구님이 결정하시겠지요. 그래도 우리의 거래로 충분한 이득을 보시고 계시잖아요. 질좋은 지원을 주셔서 가장 정확한 정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시점에서 말이죠."

눈썹을 올리며 살갑게 눈웃음을 짓는 아야와 대조적으로 어두운 표정으로 기운없이 바라보던 사토리의 서드아이가 먹이를 노려보는 뱀처럼 매서운 실눈으로 바라보았다.

"네, 그렇군요. 솔직해서 좋네요."

"저야 숨기는게 없다고 했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사토리가 무심결에 타라미수가 들었던 접시를 만졌다가 녹은 타라미수 크림이 손에 묻어 린이 눈치것 물에 적셔서 준 티슈로 닦고도 끈적거림이 남아 찝찝한지 계속 만지작거리자, 아야도 다 흘러내리고서 시간이 지나 응고된 붉은 크림을 문지르듯 빵에 발라먹고 녹차로 목을 적시며 입가심을 하고는 시원하게 바람을 일으켰다.

"이 계절에 가장 유용한 능력이로군요."

"네, 그래서 찾는 분들도 많고 다들 부러워하시죠. 칭찬 감사합니다."

"부러워하는 능력이라.. 하긴 제 능력도 남들이 부러워하죠. 부러워만 하고 배척을 했으면 했지 찾지를 않지만..."

사토리가 차분하게 이야기하다 뒷말에 울분과 체념이 뒤 섞여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하자, 아야가 상체를 사토리 쪽으로 다가서며 두 손을 총모양으로 쥐고 집게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래서 제가 찾아왔죠."

"...당신 속셈도 참.."

질린다는 표정의 사토리가 애교를 부리는 아야의 눈을 보며 길게 푸념하듯 말했다.

"나도 별말 할 수 없는 똑같은 요괴지만.. 만약 내 능력을 그쪽이 가졌다면 환상향이 진작에 수천 번, 수만 번은 망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그 말에 아야도 린도 말을 꺼낸 사토리도 키득키득 웃자, 너무 웃어서 옷 매무새를 다듬은 사토리가 기묘한 미소로 싸늘함에 가까운 말투로 읊조렸다.

"마음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미움 받는데 마음을 다루려하는 그 쪽은 얼마나 미움살지 진심으로 걱정되네요."

"참, 걱정마시라니까요. 저만 미움 받지는 않을테니."

"하긴 당신 머릿속의 그 생각들대로 된다면 그렇긴 하겠네요. 그게 현실화 되기에는 운이 많이 따라줘야겠지만,"

"사실 그게 문제이긴 하죠. 상황파악도 그렇고 계속 숙지하고 있기도 힘들정도로 유기적이고 꽤 복잡하거든요."

아야가 남은 차와 음식을 비우며 말하자, 사토리도 아이스티에 송글송글 달라붙은 물기가 탁상에 흥건해진 곳에 서류의 모서리가 닿아자마자 순식간에 그 부분이 녹아버리자 황급히 닦으며 말했다.

"보안용 종이인걸 깜박했군요."

"아, 그럼 다음에는 다른 보안 용지로 드릴게요. 이번에 캇파들이 개발한 암호해독기도 가져다드릴까요?"

"아, 이번에 지저와 요괴의 산을 잇는 직통 전화선 개통 축하식이 있어서 그때 니토리씨에게 받기로 했어요. 바깥 세상에서는 핫-라인(hot-line)이라고 한다고 니토리 씨가 자랑하던 걸요."

"네, 더구나 그 친구가 그 사업으로 많이 챙겼으니까요."

실없이 웃으며 이야기한 아야가 가지고 있던 철제상자에 아야가 했던 보안절차의 반대로 서류를 담는 사토리를 보고 나서 갈 준비를 하자, 오른쪽 팔꿈치를 탁상에 대고 턱을 괴며 손날로 볼을 눈가까지 쭉 올린 사토리가 한숨쉬듯 말했다.

"조심해서 가세요. "

"네, 근데 말이죠. 사토리님. 더 하실 말씀 없으세요?"

아야가 천진난만한 표정에 매서운 눈매로 사토리처럼 싸늘한 미소로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며 묻자, 린이 슬쩍 아야 쪽으로 눈동자를 돌렸고 사토리는 별 생각도 미동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없네요. 의심을 두고 있는 요괴한테 할 말은요. 오린!"

"에이, 서운하게. 제가 마음은 못 읽어도 눈치라는 게 있어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으며 오린을 부르는 사토리에게 아야가 몰아붙였다.

"참, 저도 기자의 촉이라는게 있답니다!"

순식간에 의자를 밀어서 바닥을 쓰는 모션을 취한 아야의 손에 검은 머리카락이 보이자, 다가오다가 당황한 린이 야옹소리를 내었고 사토리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참나'소리까지 내며 한숨을 쉬었다.

"어? 왜 놀라시죠. 린 양?"

"아니, 그게, 그 검은 머리카락이 거기 나오니까."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는 아야가 몰아붙이자, 당황한 린이 횡설수설했고, 사토리가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꽤 재밌었어요. 아야 씨. 머리카락 색깔이 같으시니 그런 얄꿎은 장난도 치시고요."

린이 아차 싶어서 두 꼬리를 휘두르며 수신기를 내려놓고 얼굴을 붉히자 미간을 살짝 찌뿌린 아야가 말했다.

"예상한게 맞나보군요. 도중에 사라지셔서 말이죠."

"아니, 전 아야언니는 직모인데 언니가 쥔 머리카락이 반곱슬이니까 그래서.."

"오린! 그만!"

너무 당황해 횡설수설하는 린을 제지시킨 사토리가 린을 불러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 주면서 말했다.

"내 가족같은 애완동물을 그만 건드리세요. 장난 그만 치시고요."

"으앙. 사토리님. 으흐흐그으흐으극"

"옳지, 착하지? 오린이 잘못한 게 아니에요. 눈물을 거두렴. 이런걸로 기분 상하지 않는단다. 이해할 수 있어."

"으흐흑. 너무 감사해요. 사랑해요. 사토리니이임."

"그래 나도 사랑한단다. 진심으로 아껴주고 싶은 너를."

린과 볼을 대고 부비며 안아주는 사토리의 광경이 끝날 때까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기다린 아야가 차분하게 사토리에게 말했다.

"아무튼 침묵으로 협조해주시고 계시니까 이번 작전은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좀 협조해주세요. 지금처럼 하시면."

철제 상자를 삿대질로 가리킨 아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로 믿고 맡기는 이 일의 보안 문제로 정보제공이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누구보다 코메이지 자매의 우애와 결합을 위해 애쓰고 근심을 덜어드리고 있는 게 저희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러죠. 제가 당신 생각에 대해 오로지 동생을 위한 길이 될 수 있어서 모른척하고 지저에 얌전히 지원하고 있는 것도 동맹으로서 충분히 협조하고 있는 거니까요. 아니었으면 다 같이 끝장 났겠죠."

"네, 그나저나 다음부턴 저의 정보망을 무시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다 아는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죠. 바로 돌려보냈으니 충분히 조용해줬다 싶어서 굳이 얘기할 필요 없겠다 생각해서요. 다음부터는 아쉽지 않게 소통하도록 하죠."

"네, 감사합니다.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해드리죠."

"저야말로 감사드리죠. 저희 자매를 위해 애쓰고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시는 것도요. 근데 수단이 꺼림칙하게 문제지만.... 하아아아.. 좀 힘드네요. 고생 많으셨어요. 오린. 입구까지 모셔다드리렴."

"훌쩍, 네. 사토리니임."

사토리가 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오린이 방긋 웃으면서 아야를 안내하자, 사토리는 쓸쓸히 그 자리에서 자신 위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수신기를 옆 좌석에 두고는 왼손으로 집어넣지 않은 코이시의 최근 날짜에 웃는 사진을 보며 쇄골 중앙을 감싸쥐고는 눈물을 훔치며 지령전의 공허한 공간을 울음소리로 채웠다.

 


"아~ 진짜. 아까 청소 좀 잘할 걸.. 사토리님 앞에서 속상하시게 이게 뭐람.."

굳이 수레를 투덜투덜 끌며 쪽팔림에 혀를 차는 린에게 아야가 사진 몇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에이, 그래도 애정표현이랑 위로 받으셨잖아요. 덤으로 이것도요."

사토리의 빛과 각도가 잘 맞아 떨어지는 도촬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린은 해맑게 웃으며 꼬리를 격하게 흔들었다.

"꺄햐~ 이 언니는 정말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잃어버릴라 급하게 수레 안에 주섬주섬 집어넣고 덮개를 씌우고는 웃으며 안내하자, 아야가 슬쩍 당황하며 말했다.

"근데 그 수레 시ㅊ...ㅔ."

"가자, 언니."

아야가 내뿜는 강풍으로 저저의 열기를 식히며 날아가던 둘은 땋은 머리가 자꾸 때리듯 닿아 귀를 눕힌 린이 웃으며 말했다.

"언니 근데 사진 몇 장 더 있어?"

"얼마든지요."

"역시 환상향 최속이라더니 대답도 빠르네. 언니랑 엮인게 솔직히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해."

애매하게 웃는 린을 보며 아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다행이라뇨."

"사토리님은 나랑 오쿠, 다른 애완동물들을 포함해 우리를 가족같이 대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데 진짜 가족이신 코이시님은 그러질 못하시잖아. 어떻게보면 사토리님이 느끼는 코이시님의 빈자리를 우리가 대신 채워주고 받고 있는 셈이되어버리지 뭐양."

"아하, 무의식의 요괴이니까 기자인 제가 놓칠수 없는 희귀 소재이기도 하니 정보 공유할 뿐이에요. 헤헤."

"그래도.."

아야가 웃자 린이 어설프게 웃다 처량한 표정으로 딱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가 사토리님의 애완동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살짝 이해가 안 되서 말야. 그냥 다같이 행복하게 살수 없는건가 하고.. 사토리님이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애쓰시는데 정작 그래주고 싶은 코이시님은 우리에게 해주는 것보다 물질적 심적으로 그렇게 열정적으로 대해주시는데 부담스러워 하시는 건지 무의식이라 외면하시는 건진 몰라도 항상 소통도 안 되시고 외면하거나 다투기만하고 마음 아프게 하니까."

"서로 잘해보려고 하는 마음을 안 알아줘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무척 속상하시군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공감 및 반영해주며 바라보는 아야에게 린도 생각을 털어버리려는 듯이 고개를 여러번 저으며 말했다.

"우리가 사토리님에게 어떻게 위로가 되어주려 노력하고 힘내라고 해줘도 사토리님이 여전히 코이시님을 겪으며 느끼는 공허감처럼 우리도 사토리님에게 그런 마음이 든단 말야. 어떻게 노력하고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힘들때 위로하고 신경써줘도 전혀 행복하고 즐겁게 하기 어려운 그런 마음.. 난 그런 불편함이 정말 싫어. 잘해보려고 해도 더 비참해지잖아. 난 사토리님이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어. 코이시님도 우리도 다 같이. 누가 누구의 빈자리에 대한 대용품이 아니라.."

아야를 돌아본 린이 코로 날숨을 뱉으며 말했다.

"가족말야. 다 같은. 우리가 비록 애완동물이라 해도.. 그래서 코이시님이 살짝 미워지기도 해. 좋은게 좋은거 아냐.."

"네. 그래서 동생 소식이라도 알아서 더 속상하고 오해생기지 않도록 저희가 최선을 다해드리고 있죠."

"응, 그건 정말 언니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만큼 만만치 않게 우리도 퍼주고 있지만."

'어휴.'소리와 함께 고개를 저은 린이 문화첩과 펜을 든 아야에게 말했다.

"대화도 소통도 안 되서 눈치만 보다 동생분이 언니를 피하고 언니분이 동생의 행적을 수소문하는 이런 비참한 지경까지 가야한다는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소식 조차 몰랐으면 사토리님의 멘탈이 멀쩡하시진 않았을 것 같아요. 저희도 추적이 지금이야 기술이 발전해 겨우 되는 거지 금방 사라지시니 만남을 주선시킬 수 없어요."

"하긴 그건 그렇지. 그걸로 얼마나 힘들어하고 괴로워하셨는데. 대화록에 언니이야기만 나와도 통곡을 하신다고.. 상처가 많으신 분이라 항상 퍼주고 잘해주시는 분이니까.. 그래서 언제든지 다가오면 맞이하고 잘해줄 준비를 하고 계시지. 다만 그럴 연습을 우리에게 계속 하시고 계신 것도.."

"에이! 몰라. 아까 사토리님에게 감정이 이입되서 그런가봐. 나도 언니에게 무슨 소리하는건지. "

실언을 했다는 듯이 주먹으로 입을 치며 '야옹' 소리를 낸 린이 두 꼬리를 까딱거리자 아야가 문화첩에 받아적으며 말했다.

"이건 참고해서 사토리님에게 더 감동 서비스를 줄 수 있도록 할게요."

"사토리님에게 잘해주는 거면 고맙지. 비밀보장만 된다면 말야. 그래서 언니에게 지저의 최고 귀빈대접해주는 거고."

통로 근처에서 야마메의 출입 확인증 없이 프리패스를 받은 아야가 린의 배웅을 받고 통로를 오가던 중에 만난 키스메와 같이 셀카를 몇장 찍고 나눠가지며 지상으로 올라온 아야는 주위를 돌아보며 열대야의 텁텁한 습기를 시원한 바람으로 날려버고는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 하나를 때었다가 빌빌 동그랗게 여러번 꼬면서 반곱슬머리처럼 만들며 말했다.

"참. 아무리 그래도 이런 뻔한 거에 낚일 줄은 몰랐는데."

바람으로 저 멀리 머리카락을 날려버리며 온갖 단어와 문장으로 빼곡한 문화첩에 에→지령전 접선이라는 내용으로 다른 펜으로 서명하고는 재빨리 린이 쥐고있던 것과 비슷한 수신기를 확인한 아야가 자신의 쇄골에 몇번 치면서 말했다.

"안쓰럽지만 이제와서 마음 약해지지 말자. 사토리 양도 스스로 마음을 닫고 여기저기 경험하고 다니는 동생의 마음을 이해해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저 상태론 들을 리도 없고. 계속 되풀이되던 갈등이잖아."

가방을 열어 문화첩과 펜을 집어넣고 이어폰을 낀 아야가 다른 단말기를 연결하며 코드를 입력하고는 '취재중-구독료 납부'처리가 되자, 사토리가 쓴 계약서가 든 철제상자를 미소로 조심조심 쓰다듬으며 가방을 닫고 쏜살같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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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9시 7분 몽전대사묘


"자, 오늘도 코코로양이 무척 열심히 참여해서 수업을 잘 마쳤어요! 태자님."

아야가 고개를 숙였다 든 후, 환하게 웃자 코코로가 무심히 미코와 토지코, 옆에 자연스럽게 낀 후토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텐구께서 이렇게 수고가 많으니 우리의 흘러가는 시간이 더욱 의미있어지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쥔 홀을 다른 손으로 박수치듯 두드리며 반겨주는 미코에게 모미지도 인사하고는 코코로의 어깨를 짚어서 미코 쪽으로 집었다.

"하루종일 수고 많았군요. 서로가 말이죠."

두둥실 떠있던 토지코가 눈빛을 날카롭게 주시하며 넌지시 말하자 아야는 머리를 한쪽 어깨에 붙이고는 다시 빙긋 웃어주었다.

"암, 수고가 많긴 했네. 배운 것도 많았던 자리였다네."

"근데 너는 어떻게 거기에 낀 거야?"

토지코가 시치미를 딱 떼고 후토에게 물어보자, 후토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침을 삼켰다.

"으음, 어, 뭐. 그렇게 되었다네."

"뭔 소리야."

"아하, 그렇군요."

홀을 두드려 둔탁한 소리를 낸 미코가 알겠다는 듯이 그녀들을 쳐다보며 웃자, 바싹 긴장한 토지코와 후토를 보고 코코로가 미코의 옷자락을 잡으며 물었다.

"뭐야? 뭐야?"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저 귀 기울여 속을 읽으면 본질이 보일 뿐."

하품하는 모미지와 웃고는 있는데 눈매가 다소 날카로워진 아야를 시선에 두고 주저 앉아서 코코로의 등을 토닥여준 미코가 다시 정중히 인사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늦은 밤인데 살펴 가시길." 

"네! 감사합니다. 코코로양. 내일 또 볼께요."

"잘 가!"

코코로가 아야와 모미지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고서 둘이 다시 티격태격 신경전을 벌이면서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흐뭇한 표정의 미코를 보았다.

"저기."

"알고 있어요. 정말 많은 걸 배웠군요. 믿고 맡길만 해요."

그렇게 말한 미코가 토지코와 후토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들처럼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태자님!"

"황송하옵니다!"

바싹 긴장한 토지코와 후토가 허겁지겁 예를 갖추자 입꼬리가 올라간 미코는 코코로와 잡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자자, 자기전에 간식이나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나 해봅시다. "

"응, 좋아!"

손을 맞잡은 그 둘이 토지코와 후토를 신경 쓰지 않고 싱글벙글 말을 나누며 들어가자, 남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오늘 뭘 했었나?"

"뭘 하긴. 몰래몰래 도교 부흥을 위한 전도도 하고 살림도 준비 했지."

긴장해서 마른 혀로 입에 침도 묻히지 않고 고개를 돌려 말하는 토지코를 보며 후토도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도 불교 녀석들이 어떤 음해공작할지 모르니까 밀착 감시했다네."

그 말에 지금까지 쭉 지켜봤던 토지코가 어이없었지만 영혼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후토도 더 할말이 없어서 고개를 똑같이 흔들었다.

"그럼 그만 들어가세. 피곤하니 회포나 풀고 싶네."

"어, 먼저 들어가. 난 주변 좀 쓸고 들어갈게."

"알겠네. 늦은 밤에 무리하지 말게나."

돌아서서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가는 후토를 조심스럽게 살펴본 토지코가 심란한 한숨을 푹 쉬고는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빗자루를 쥐고 몸을 돌렸다.

"쓸게 많나 보죠?"

"어잇! 깜짝이야!"

돌아서자마자 해맑게 웃는 곽청아의 얼굴이 클로즈 업으로 시야에 들어온 토지코가 놀라 빗자루를 떨어트리자, 요시카가 재빨리 집었다.

"잘했어. 참 좋은 작품이지 않아요?"

곽청아가 순식간에 싸늘한 웃음으로 요시카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자, 요시카는 곧바로 토지코에게 잡은 빗자루를 건네주었다.

"하루종일 어디있었던 게지?"

"호호, 많이 싸돌아 다녔답니다. 그쪽처럼 하루종일 따라다니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죠."

그리고는 움추려든 목으로 침을 삼키는 토지코에게 묵직한 꾸러미 하나를 건네주자, 안의 내용물을 본 토지코는 그안에 가득한 네모난 조각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자세히 봐봐요. 흔히들 삐라(ビラ, 전단)라고 부르는 전단이죠."

조심히 조각을 바라본 토지코의 눈에 반가사유상의 모습과 함께 '혹세무민[각주:1]의 세상 귀의하여 안식의 길로.'라고 적힌 앞면이 들어오자, 황급히 뒤집은 뒷면에는 불경글귀 및 명련사로 찾아오는 길과 비사문천의 화신인 쇼, 주지승인 뱌쿠렌등 주요층의 얼굴과 명단이 적혀있었다.

"뭐야? 어디서 구한거지?"

"길바닥이요. 주워오느라 애썼답니다. 이렇게 편하게 떠있기 불편하게 허리나 무릎을 굽혀야 하니까 말이죠."

살짝 표독스러운 눈매로 불만에 찬 말투에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곽청아의 말에 토지코가 응했다.

"우리도 태자님이 시장에서 포교하긴 했지만 불교 쪽도 약속한 합의 이행을 깼다고 봐야하겠군요,"

"아, 합의한 기간중에 뿌린건진 몰라요. 색이 바라거나 흙 묻은것도 있는걸 보면 뿌린지 오래 된 것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토지코에게 가까이 다가가 싸늘하게 꺼낸 다음 말은 토지코의 뇌리에 비수처럼 박혔다.

"이걸 누가 만들었냐는 거죠. 여기저기에 대량으로 뿌려댔는데 말예요. 마치 신문처럼."

잠시 멍하니 생각에 들어간 토지코가 황급히 놀라며 말했다.

"그럼 텐구 그것들이."

"뭐, 절의 사주를 받았을 수도 있었겠죠. 그래도 분명한 건 절과 요괴의 산쪽은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가 이렇게 있다는 거예요."

"그럼 당장 이걸 들이대서 이 판을 깨야.."

주먹과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언성을 높힌 토지코에게 곽청아가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자자, 흥분은 그만. 귀공 말씀대로 합의 전에 뿌린거고 지금은 상관없다고 잡아 떼면 어쩌려고요. 더 할말 있나요?"

"하지만 내통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데 그걸."

"증거라는건 확실하고 결정적일 때에 터트리는 거랍니다. 이거 외에 다른 것도 찾으려고 했지만 그나마 건진게 다예요. 강가나 산길, 인간마을의 망한 가게 문앞에 떨어진 전단지들에서 말이죠."

바싹 마른 입술에 혀로 침을 뭍힌 토지코가 고심하며 머리를 감싸쥐며 말했다.

"오늘 하루종일 지켜봤지만 텐구들은 가만히 있었고 정상적으로 교육 진행되었어."

"그래요? 대놓고 티내지는 않나 보네요. 하지만 불안한 것들은 언제나 조짐을 보이기 마련이죠. 제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산 전체가 철통 경비로 삼엄하다는건 그만큼 지켜야할 게 중요하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산에 들어가진 못하고 건진게 이것이라는 건가?"

요시카가 토지코의 손에 있던 꾸러미를 가져가자 곽청아가 요시카의 모자를 바르게 고쳐써주며 말했다.

"물론이죠.  그리고 멀리서 지켜봐도 보일 정도로 모리야 신사로 가는 직통 참배로까지 만들어주고 주변 경비나 지원을 해주는 걸 보면 텐구들이 굴복했다고 볼수 있어요. 결국 모리야신사와 명련사간의 보이지 않던 밀월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거죠,"

"음.. 하지만 확실히하려면 부인 못할 증거를 더 모아야 할텐데."

"그럼요. 이제와서 티 안나게 하려고 노력 했는데 워낙 얘들이 산에 들어가게 하질 못하니 글른거 같아 나중에는 더 대범하게 하려고요."

"음.. 알겠네. 사고나 치지말고. 나도 계속 조용히 알아보도록 하겠네."

"네, 흐흐 사고는 무슨. 수고들하세요. 여러 세력이 얽힌 만큼 이왕이면 텐구들과 혹시 모르는 그 너머를 알아보길 바라요."

여유만만한 곽청아가 안으로 날아들어가고 요시카가 터벅터벅 뛰면서 뒤따르자, 마찬가지로 돌아선 토지코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찌뿌린 미간에 전보다 더 깊은 한숨을 쉬며 깍지 쥔 손을 만지작거렸다.

'절이랑 모리야 신사쪽의 텐구들이 내통이라면 이번 일에 우리가 놀아나는게 아닌가.. 당장 태자님이 아셔야 할 것 같은데 워낙 강경하셔서 말한들 받아들이실까.'

밤인데도 불구하고 텁텁한 습기에 머리에 쓴 에보시(烏帽子)에 땀이 차자, 벗어서 머리를 밤바람에 털어주고는 손가락으로 빗어 머리 모양을 만들어주며 생각을 정리했다.

'애초에 합의대로 되는 게 거의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더 심각해지기 전에 나중에 파토를 내야겠어. 판단이 설때까진 곽청아와 합세하는 수 밖에..'

에보시를 바르게 쓰고 들어간 토지코는 멀리서 신난 표정으로 등불을 피우는 후토를 보며 먹먹해진 마음으로 혼잣말했다.

"얘는 처음과 다르게 점점 놀러가는 것 같단 말야."

"응? 토지코, 방금 나에게 뭐라고 했었는가?"

"아, 아냐! 혼잣말이야. 내가 소릴 너무 크게 했네."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돌려 다시 불을 피우는 후토를 보면서 얼굴이 붉어진 토지코는 손바닥으로 정신차리자 하며 볼을 두드리면서 후토를 계속 쳐다보았다.

'쟨 도대체 거기서 무슨 생각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미코와 코코로의 방이 시야에 들어오자 멈추고 쳐다보았다.

'그러고보면 태자님은 속셈이나 속마음같은거 다 읽으실 텐데 무슨 생각인지 의중을 모르겠어.'

생각이란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의 토지코와는 달리 미코는 환한 미소로 코코로의 복습을 기특하게 격려해주며 마치 무용담같은 코코로의 배움 자랑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PM 9시 35분 요괴의 산 입구


반대편에서는 아야와 모미지가 서로 아옹다옹하면서 요괴의 산의 관문인 출입 통제소 전방에 진입하였고,

산 전체에 수많은 불빛들과 함께 곶곶의 불켜진 초소들. 모리야 신사나 주거지역으로 안내하는 가로등, 안테나나 관측소같은 여러 시설들이 어둠을 밝히며 야경을 만들자 공중에 떠있던 모미지는 그 웅장함에 감탄하다가 아야를 보고 썩은 표정으로 착지했다.

"자, 다 왔네요. 모미지랑 싸우느라 심심하진 않았지만."

모미지는 배낭을 아야에게 집어 던지는 것으로 답했다.

"살살 안 다뤄! 얼마나 예민한 것들인줄 알아!"

"알아서 던진거다."

"아잇, 짜증나." 아야가 빵빵 뛰며 토라지자, 무장한 경비대원들이 전등을 들고 다가왔다.

"산 밖에서 척결!"

경비대원들의 경례에 모미지와 아야가 같이 경례를 받아주고 아야가 나중에 내리자, 대원들도 경례를 내리면서 무전기를 들고 신원을 확인했다.

"둥지, 통제소에서 2분 입산 심사중, 검사대 통과시고 신분증 보여주시죠."

모미지와 아야가 서로를 노려보며 검사대를 통과하고 신분증을 건네자, 그렇게 꼼꼼히 읽지도 않고 바로 돌려주며 간단하게 금속탐지기와 혈액 판별 기계로 신원을 확인한 뒤, 자신들의 경계태세를 풀었다,

"등록된 거주자 확인 완료, 환영합니다. 들어오십쇼."

"들어올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혈액검사는 귀찮단 말야."

모미지가 투덜거리자 아야가 알코올 솜으로 문지르면서 말했다.

"그래도 안보가 털려서 모든 책임을 모미지가 독박쓰는거 보단 나을걸요. 후후."

"안보 걱정되면 날 밖으로 끌고 다니지 말던가."

퉁명스럽게 쳐다도 안 보고 기가찬듯이 말하는 모미지에게 아야가 피식 웃으며 혀를 찼다.

"야, 쟨 못들어오게 먼지까지 털어서 검사해."

"네?! 아, 아아 네.."

당황 경비대원들이 억지로 웃으며 시선을 돌리자, 뿔난 아야가 모미지쪽으로 바람을 몰아쳤다.

"하기만 해봐! 좋은꼴 못 볼 거니까."

"시원한데 한번 더 해보지 그래. 난."

칼을 뽑아든 모미지가 허공을 한번 가르며 바람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걸로 시원스럽게 베어줄테니까."

"후후후후, 해봤자 잔상만 가르겠지. 할일도 많고 바쁘니까 나 먼저 간다."

"니 까짓게 하루종일 일해놓고 뭘 또 할게 있다고."

"너 골려줄 구상이요."

씽긋 웃으며 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고 모미지를 가르킨 아야의 모습에 빡친 모미지가 칼을 휘둘렀으나 빙그레 웃는 아야의 잔상만 허공에 흩어졌다.

"거봐 내가 말했지? 캬하하핳하핫"

이미 저 멀리에서 고래고래 외치며 폭소하는 아야를 보며 토킨도 떨어트린 모미지가 씩씩거리든 말든 주위의 경비대원들은 모미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와아.' 하고 감탄했다.

"내일도 푹 쉬어서 시달릴 준비 잘 하라구! 꺄르륵. 푸히힛."

잔상을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진 아야의 꽁무니만 바라보며 분한 마음을 삭히던 모미지는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후.. 아 짜증나. 칩입자 및 출입대장 줘봐."

"네. 경비대장님."

야간투시경을 벗은 카라스텐구가 모미지에게 관련 서류를 건네주자, 하나하나 조목조목 확인한 모미지가 말했다.

"침입자가 생각보다 많아진것 같으니까 경계 최대한 신경쓸 수 있도록."

"네, 대장님. 자택으로 돌아가십니까?"

"아니, 부대 복귀."

"네, 둥지! 둥지! 각응 장기판으로 귀환. 반복한다. 각응 장기판으로 귀환."

"무전은 됐어. 조용히 들어갈거야."

무전기를 조작하던 캇파와 카라스텐구가 당황하며 모미지의 눈치를 보았다.

"주파수 다 맞췄는데.."

"그래도 당번병이라도 붙이시지.."

"아냐, 늦었는데 교대시간 될때까지 경계근무 열심히 하도록."

"네! 산 안에서 단결!"

날아서 부대 막사로 들어간 모미지는 불침번과 경계임무의 대원들에게 경례세례를 받은 뒤, 금방이라도 잠들것 같은 표정으로 초퀘해진 부관이 경비대장실 문 앞 의자에 서류를 안은 모습으로 맞이했다.

"산 안에서 단결."

"응, 기다리느라 고생많았어."

"대장님이 무전기를 안 가지고 가셔서 보고사항 드리려고 기다렸습니다."

반가운 목소리로 빠르게 경비대장실 문을 연 부관은 책상에 수북한 결재서류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물론 처리하실 일도 많고요."

"하아아.. 그냥 전결하면 안 돼?"

"위에서 내려온 사항들 간추린 겁니다."

"왜 내가 없을 때만 쏟아지는 건데.."

"모르겠습니다, 죄송한데 저 하품좀 해도 되겠습니까?"

"응, 해."

그 말과 함께 눈물까지 흘릴만큼 긴 아픔과 함께 기지개를 피며 눈을 비빈 부관이 인감도장함을 모미지에게 대령했다.

지문 인식과 함께 함의 뚜껑이 열리며 인감도장을 쥔 모미지는 결제서류를 읽고 부관이 허리를 세우며 자리에 앉아 대기했다.

"화요일날 축제한다며."

"네. 그렇습니다."

서류를 꼼꼼히 읽으며 도장을 찍던 모미지는 서류에 있던 축제관련 계획을 읽으며 말했다.

"경계태세를 낮추고 경비부대의 일부를 축제 통제 인원으로 쓴다고 되어있는데 내가 부재인 상황에서 심각한 안보 공백인것 같은데."

"위에서 내려온 지침입니다. 현장을 잘 모르실 수 있겠죠."

"아니 내가 있으면 병력을 몰아쓰든 말든 커버가 가능한데, 외부존재들을 다 받아들이면서 초계임무를 헐겁게 한다는 건 너무 태만한것 같아. 아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잖아."

"그래서 캇파들의 감지기나 레이더등 탐지 체계와 조기 경보장치에 그렇게 투자하시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병력 분산과 대장님의 부재를 염두해두고 말이죠."

"아니 그냥 내가 안나가면 되는 거 아냐. 대텐구님의 신하이자 산의 방위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데 경계태세를 낮출 순 없어. 이건 대텐구님에게 말씀 드리거나 보류 해야겠어."

모미지가 싸늘하게 도장을 찍지 않고 서류를 넘기자 부관이 벽에 걸린 부채로 모미지에게 부채질해주며 말했다.

"하긴 모든 사단이 나면 책임지셔야 하는 자리이신데 요즘은 자리에도 없으시니까요. 가뜩이나 갓파들의 장치들로 만회한 경비 병력들이 다 공병대나 여러 다른 작업에 끌려가는 실정이기도 하고요." 

"응? 배수로 공사 안 끝났어?"

"계곡쪽으로 물 잘 빠지도록 새로 판답니다. 그리고 그쪽 서류에 파견 건 있을 텐데요."

모미지가 부관의 말을 듣고 다른 서류판을 보자 '대인간지원-시설 건축 파견'이라는 제목의 계획서가 들어왔다.

"인간마을에 경비부대 2개 중대병력과 캇파 공병대 제 1건설단을 파견하여 저수지, 둑 및 주거생활 개선 지원 임무.. '텐마'령.."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긴 모미지는 '텐마령'이라는 글자에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우리가 사는 곳 내부공사도 안 끝나는데 이젠 인간들 사는 곳까지 외부공사라니. 남는 TO[각주:2] 있어?"

두 손을 모으고 입에 대면서 한숨을 불어 모은 모미지가 따뜻해진 손을 비비며 묻자 부관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만들어 봐야죠."

"아.. 아 짜증나. 우리가 주력 전투부대인지 막노동부대인지...  공병대장에게 산을 다 갈아엎을 거냐고 따지든가 해야지."

"직접 연결할까요?"

구석의 직동 무전기의 수화기를 든 부관이 묻자 모미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늦었잖아. 얼른 퇴근하고 편하게 눈좀 붙여."

"네, 알겠습니다. 산 안에서 단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경례하고 잽싸게 나간 부관을 바라보던 모미지는 다른 서류에 대텐구 직할대 소속 의무대 정기검진 계획서 등 다른 서류에 도장을 찍고 액자에 걸린 부대 배치 현황 지도를 꺼내서 돌돌만 후에 경비대장실의 문을 잠그며 막사를 나섰다.


밤이 더욱 칠흑같이 깊어갈 무렵, 산의 봉우리중 정상쪽 동쪽에 둥글고 커다란 레이더와 여러종류의 안테나들,  고개를 푹 숙인 수많은 깃발들과 거대한 망원경이 자리잡은 막사안에서 레이더 화면과 관측장비들을 번갈아보던 텐구와 캇파, 다른 요괴들이 근무복에 구름과 태양 사이에 눈이 자리잡은 앰블럼 비표를 단 채로 통신장비를 다루며 근무하고 있었다. 

[여긴 기상관측소. 7/24일 기상 관측 부대 관측결과를 전파한다. 현재 날씨는 맑음. 적운마저 없으며 풍속은 0.1m/s로 바람마저 불지 않음. 달은 하현달. 기온 27도의 열대야가 기승이며 내일 앞으로도 무더위가 예상되니 작업 및 근무시 주의 요망.]

마이크에 전파를 마친 텐구가 관측 사진에 승인 도장을 찍고 날짜별로 정리하는 사이에 문이 열리며 관측소 안의 분주하던 모든 이들이 경직되어 시선을 집중했다.

집게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킨 모미지가 경례를 하지 못하게 하는 사이, 뒤따라 온 다른 백랑텐구들이 통신장비들의 전원을 강제로 끄거나 끄도록 한 후에 어리둥절한 그들 주위로 가져온 술과 부식거리등 보급품을 구석에 나두었다.

"청소 다했나?"

"눈에 보이는 것들은요."

"좋아. 이제 여기 부대장은 어디있나?"

당황해서 웅성거리는 관측소 대원들 사이로 키작은 캇파가 터벅터벅 걸어오며 경례했다.

"기상 관측 부대장입니다. 연락도 없이 경비대장님이 무슨 일로."

"중대 사항이다. 이 시간 후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3급 기밀로 취급해도 된다."

모미지의 엄숙한 목소리에 기술담당인 캇파들이 이미 전원이 꺼진 헤드셋과 마이크, 이어폰을 내려놓고 아예 다른 장비의 전원을 내리자 모두들 보급 술병을 들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 외진 곳까지 오신 거라면 엄청난 중대사항이겠지요?"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린 텐마님과 대텐구님이 발령하신 주민 융합령으로 이렇게 누군가를 다스리고 능력에 맞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지 않았나."

"네, 물론입니다. 지도부의 은공 덕분에 이렇게 종족이 달라도 인정과 대우받고 있죠."

같이 온 대원들이 관측소 병사들에게 보급품을 전달하고 모미지와 같이 술병의 뚜껑을 까고는 건배하며 마시려던 부대장은 모미지와 같이 따라온 병사들의 비표가 치안과, 보급과, 병기과, 요사과(妖事課)등 다양한 것을 보고 의구심을 가지며 술을 들이켰다.

"캬아, 감사합니다. 경비대장님. 그런데 그런 말씀은 어째서?"

마찬가지로 병나팔은 분 모미지도 심각한 얼굴로 인상을 찌뿌리며 말했다.

"그런 텐마님과 대텐구님의 은덕을 배신하는 일이 요즘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확실한 겁니까? 그런 큰일날 소리를!"

놀라서 벌떡 일어난 부대장이 펄쩍펄쩍 뛰자,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심해지든 말든 모미지가 서류를 꺼내들며 말했다.

"현재 예산을 검토해보면 운영비에 심각한 누출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비리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내사를 맡고 있는 내 휘하의 치안과와 자금운영을 맡고 있는 경리과 등에 대해 특별 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필요하면 캇파 공병대도 말이지."

잠시 한대 맞은 듯, 멍하니 모미지를 바라본 부대장을 마찬가지로 병나팔을 불고는 술병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하... 그러니까 감사를 맡고 있는 치안과에 대한 감사를 포함하여 경비부대의 핵심에 대한 비리조사를 하신다는 말씀이군요."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부대장이 '꺄하핫.'하고 웃었다.

"감사하는 쪽을 감사하자니 재밌군요."

그리고는 표정을 바꾸어 한숨과 함께 하소연하듯 말했다.

"그런데 그걸 왜 저희에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압수수색이나 내사는 말씀하신대로 치안과 전문이고 저희야 기온이나 재고 지진등 재해를 경보하거나 하늘만 쳐다보는 곳이지 않습니까?"

"치안과장이나 공병대장등 조사 대상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병력이 필요해. 뜻을 함께 모아서 결행때까지 입닫고 기다리다가 바로 압수수색해서 자료를 박스에 담고 나올 수 있는 머릿수말야."

"아, 그래서 뒤 쪽에 소속이 가지 각색인 이유가."

"내 뜻에 따르는 임관한지 며칠 안 된 소대장 및 병사들이야. 여러곳을 압수 수색하려면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직속상관의에게 누설해서 입밖으로 세어나가지 않아야 하니까."

그녀가 건네준 요(妖)적관리 직위 현황표 서류를 건네받고 뒤를 흩어보며 생각에 잠긴 부대장이 주변 대원들을 바라보며 보급된 오이를 까득 소리가 나게 씹으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여기야 외진 곳이지만 정상에 있다보니 주거지역이나 근무지랑 가까워서 전원 무장하고 투입되면 신속하니까요. 아랫요괴에서 잘못된 곳은 고쳐야 하는 법. 대텐구님 승인은 받으셨겠죠?"

모미지가 고개를 젓자 부대장이 살짝 당황하며 불안한지 오이를 잘근잘근 씹었다.

"어.. 이거 잘못해서 아무것도 안 나오거나 마찰이라도 일어나면 항명에 항명이 꼬리를 무는 내란으로 취급받을수 있다는걸 감수 하시는 건지요?"

"간접 증거는 있어. 그저 나는 돈의 행방과 이것이 비리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 뿐이야. 진짜 비리라면 그런 암덩어리는 축출해야지."

"어쩔 수 없군요. 꺼읍, 죄송합니다. 갑자기 술이 들어가니 트림이.. 그럼 담을 박스는 구비해 놓았습니까?"

"저희 치안과 3중대 치장창고에 짱박힌 박스들 쓰시면 될 겁니다."

치안과 비표를 단 백랑텐구가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주위의 비표를 살펴보던 부대장이 말했다.

"뭐 저희야 순환 파견도 많고 근무도 많아서 은근히 머릿수가 많아질 때니까요. 다만. 궁금한게 왜 작전과는 없는지요."

"급하게 모의한거라 아직 포섭하지 못했네."

모미지가 술을 마저 들이키며 말하자 부대장이 더 못믿겠다는 표정으로 눈쌀을 찌뿌리며 말했다.

"에에? 그거 곤란한 말씀이군요. 지금 통신의 외적인 부분은 우리 캇파가 담당하지만 부대에서 내적인 통신관리는 작전과가 맡고있지 않습니까. 대텐구님과의 직통전화도 말이지요. 누구보다 상부에서 내려오는 정보를 전달하는 부서인데 상부와 조율하려면 당연히 필요하지 않습니까. 정말 저쪽이 모의하고 있어서 모함이나 누명같은 반격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푸시려고..?"

솔직히 작전과장이 조금 껄끄럽기도 했던 모미지가 말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지금 만남이 끝나는 즉시 포섭할 생각이네. 자정작용을 위해서 하는 대의라면 충성심 박힌 누구나 다 동의할거야."

"충성심.. 충성심이라. 아, 작전과라면 좀 그게 걸릴 수도 있겠군요."

동의하지 못하겠다는듯 헤픈 웃음을 짓는 부대장을 보며 모미지가 당황하여 물었다.

"어째서?"

"솔직히 경비대장님이나 저나 텐마님과 대텐구님의 융합령 덕분에 밑에서 위로 직위상승하지 않았습니까?"

"응, 그건 그렇지."

"카라스텐구인 작전과장은 융합령 때문에 위에서 밑으로 좌천된 사례거든요."

"..."

순간 아무말도 하지 못한 모미지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려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래도 대텐구님의 녹을 먹고 사는 자라면 충성할 걸세. 내 밑이면 내 명령에 따르게 되어있는게 규칙이고."

"네, 뭐. 아무튼 이 불안요소는 반드시 해결 되셔야 뭐 소득이 있을겁니다. 그렇게 큰 거액이 사라진거라면 그만큼 대비가 되어있다는 거니 치밀하지 않으면 헛탕만 칠 테니까 말이죠. 보니까 경비대장님이 직접 나실정도로 많이 헤쳐먹긴 했네요. 여기가 한직이라 멀리있긴 해도 돌아가는 걸 보면 이해도 갈 듯 싶지만..."

서류를 돌려준 부대장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미묘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부하들도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압수수색은 언제 할겁니까? 증거라도 보존해서 어떻게든 얻으려면 아주 불시에 해야할텐데요."

"일단 기회보고 소집명령을 내릴 때까지 본업하면서 대기하게."

"그럼 더더욱 작전과가 필요합니다. 우리끼리 무전을 주고받거나 조사대상들의 무전을 끊고 주위 정보를 통제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기기를 만드는데 협력한 캇파라 더 잘 압니다."

"일단 니토리에게 도움받으면서 지휘관 권한으로 작전과도 부속시킬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러자 납득됬다는 듯이 부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명령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참, 보급품 감사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모미지가 경례를 받고 방패와 검을 진 채로 같이온 부대원들에게 손짓하자, 모든 기기의 전원을 대원들이 상냥하게 켜주고 관측소를 벗어났다.

"얼추 조사병력은 만든 것 같습니다."

"수고했네. 경리과 쪽은 명령 나오는 즉시 자네가 쓸어서 조사하게."

"네. 맡겨만 주십시요. 백랑텐구의 감으로 다 쓸어 모으겠습니다."

"그리고 자네들은 집에 들어가거나 부대로 복귀하게."

그러자 옆의 보급과 비표를 단 카라스텐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작전과로 안 가십니까?"

"갈 거야. 하지만 이렇게 티나게 무력시위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격식이 있으니 진지하게 이야기해봐야지."

고개를 끄덕인 주위에서 하나둘씩 흩어지자, 마찬가지로 부대내로 들어간 모미지는 손바람으로 열기를 식히며 귀를 팔랑이고서 천리안으로 부대일정표에 작전과장이 퇴근한 것을 확인하고는 품안에서 필름을 꺼내어 만지작거리면서 늘 가던 약속장소로 날아올랐다.

기척을 내며 착륙한 모미지가 조심이 주변을 서성이자 풀숲에서 각진 무언가가 튀어나와 모미지의 어깨를 덥썩 잡았다.

"거기 계셨습니까?"

"아, 뭐야. 왜 이렇게 늦은건데. 여기 날파리도 달라붙어서 짜증나고 올빼미가 '꽤애에' 하고 울어대지 않나. 언제 울릴지 모르는 경보기의 공포에 날씨는 또 더워서 애먹었단 말야."

토킨이 떨어질 듯이 묶은 양갈래 머리를 흔들면서 목에 멘 목걸이 카메라를 들썩거리며 울상으로 방방뛰며 야단법석을 떠는 하타테를 보고 당황한 모미지가 황급히 입을 막으며 말했다.

"쉿, 조용. 지금까지 잘 숨어있다가 치안과 대원들에게 들키고 싶어요?" 
"아, 알았어. 알았다고." 하타테가 잔잔하게 뭉치는 날파리 때를 허둥지둥 손으로 쫓아내며 대답했다.

"그리고 '꽤애애'하고 우는건 부엉이에요. 올빼미는 '아우 우'하고 운다고요. 저기  절벽 너머에 있는 게 딱 생긴것도 부엉이네."

안쓰러운 표정으로 천리안까지 쓰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자 하타테가 울상으로 모미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워낙 밖에 안 돌아다니니까 울음소리까진 모르지.. 그리고 어차피 둘 다 육식하는 사나운 애들이잖아."

'허허.'하고 웃었지만 난처한 기색으로 팔에서 하타테를 떨어트린 모미지가 물건을 꺼내들었다.

"자, 여기 물건입니다."

모미지가 건넨 필름들을 받아든 하타테는 만족스러운듯이 체크무늬 가방에 넣고 말했다.

"고마워! 수고 많았어."

"그 까마귀 곤란해지도록 잘 모아서 확실히 터트려야 되는 거 알죠?"

"그럼, 그럼. 잘 보관하고 있다고."

"다행이군요. 그것만 믿고 이 일하는 거니까요."

"요즘은 좀 어때?"

"그냥 끌려다니고 코코로양 교육시키는 것 보면서 필름갈고 짐꾼하는데.. 전 제 일이나 하고싶군요. 화요일에 하계제를 여는데 아무나 다 오는 자리에 보안경계태세를 낮추려고 하니 뭔 일이 터저셔 피박쓸까봐 그게 걱입니다."

"보안 경계를 낮춰? 그건 좀 이상한데. 나중에 물어봐야지." 하타테가 수첩에 기록하며 말했다.

"텐마님과 대텐구님 령으로 내려온거라 공적으론 알아내기 힘들겁니다." 

"그래도 의심은 해봐야지. 지금 하는 일도 그렇고, 이해가 안 되잖아."

"그건 그렇죠. 아니 근데 이해 안 되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니 미치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혀를 내밀고 체온조절하던 모미지가 갑자기 생각이나서 말했다.

"맞다. 나중에 일 하나 벌일건데 그때 특종하나 물어다드리죠."

"응? 특종이라니?" 하타테가 한손으로 펜을 돌리면서 모미지를 쳐다보았다.

"내부 병폐와 관련된 비리건이라 나중에 부를 때 같이 동행하시면 자료 모아서 큰 거 하나 확실하게 드리겠습니다.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응, 물론. 걱정하지마. 잘 할테니까, 나도 잘 부탁해."

모미지가 눈치를 보다가 주위를 살피며 자리를 뜨고 하타테도 손 부채질을 하며 눈치를 보면서 풀숲에서 벗어나 어둠속에 행방을 지웠다.


PM 11시경 지령전


깊어가는 지상의 어둠만큼 어둠을 간직한 깊은 아래에 위치한 지저에서는 지령전의 주위를 돌던 오린이 누군가를 보고 씨익 웃으면서 두 손을 모으고 반갑게 인사하고는 다른 애완동물들에게 다과상등 이것저것 준비할 것을 말하고 오쿠에게 주위를 경계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상대를 천천히 호위하며 집무실로 모셨다.  

 

  1. 惑世誣民,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백성들을 속이다. [본문으로]
  2. Table of Organization 필요한 대기인원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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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나고 난 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수많은 쥐떼와 함께 다우징으로 주변을 철저히 살피며 쥐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나즈린이 운잔을 대동한 이치린과 함께 마미조, 누에가 알려준 방으로 찾아갔다.

"응?"

처음보는 사람 모습을 한 자가 방문을 열고 나오며 그들 사이를 지나가자, 나즈린과 이치린이 의아해하다가 방문 너머로 보이는 누에와 마미조를 보고 인사한 뒤, 주위를 살피며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는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건 누구.."

"이따가 설명해 준당께. 걔말고 주위에 다른 요괴는 없었으이?"

"응, 지금 주변에는 우리외엔 아무도 없어."

바닥에 한쪽 무릎을 들고 그 위에 팔꿈치를 기대어 손에 쥔 담뱃대를 입에 문 마미조가 그 둘을 보고는 허리를 피면서 담뱃대를 내려놓고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다들 하루종일 노고가 많았구마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누에에게 두건을 벗은 이치린이 입을 열었다.

"네, 운잔을 보내놔서 그 백랑텐구 고개를 산쪽으로 안 돌리게 하려고 무진장 신경 썼죠."

"내 말이. 땅 밑도 못보게 하려고 계속 눈치보며 말 거느라 힘들었다고."

하소연하듯 한숨을 뱉은 나즈린이 바구니가 달린 꼬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이치린의 말에 공감하자, 손을 부채처럼 흔들며 바람에 더위를 식히던 이치린이 누에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사토리 요괴를 만난 사항은 어떻게 됐죠?"

누에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나즈린이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응? 어째서?"

"자기가 싫다는데 뭐 어쩌겠어. 남의 마음을 읽는 걸로 쫓겨났는데 또 읽는 것으로 미움사고 싶진 않데."

담배를 물고 있던 마미조가 입에서 담뱃대를 뗀 후, 후하고 연기를 뱉으면서 입을 열었다.

"마음을 닫은 이상 권유는 어려울듯 싶으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짜 꿍꿍이가 있는지 없는지 감별한 확실한 카드였는데 말이죠."

여전히 더운지 작은 끈으로 머리를 묶으면서 손바람을 쐬던 이치린이 답답한 눈초리로 물었다.

"근데, 거미요괴한테 들은 정보도 있고 그 언니는 비협조적이긴 해도 그 사토리요괴 동생이 뭔가 알려주긴 했어."

팔짱을 낀 누에의 말에 마미조가 '호오.'라는 말과 함께 웃으면서 콧등에서 살짝 내려간 안경을 올렸다.

"사토리 요괴 동생이면..." 

"하여튼 들 다 뭐라고 했길래?" 나즈린도 목덜미를 긁으며 답답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지저의 거미요괴가 부업으로 투명한 기계에게 공격당해 황폐화된 요괴의 산에 거대한 토목공사와 건물들 설계를 담당했다고 했어 산을 복구하는 대신 엄청난 보수를 받았다고 하더라고. "

"투명한 기계에 산이 공격당한거라면 작년에 달이 일으켰던 이변을 말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이치린이 턱을 괴며 반응하자 마미조도 다시 담뱃대를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는 텐구들이 돈을 더 주고 설계를 함부로 바꿨다고 할만큼 엄청 큰 구조물을 만들었다고 들었어. 설계도도 텐구들이 다 사가서 남아있는게 없데."

"엄청 큰 구조물?" 나즈린이 물에 적신 수건을 이마에 대면서 체온을 조절하며 물었다.

"아무튼 그리고 요괴의 산 녀석들이 박살난 자연을 복구하려고 흙이랑 돌등 지저에서 많은 원료들을 사가면서 거래했다고 했었어. 무엇보다 그 텐구도 신문을 뿌리러 지저에 들른다고 했었고. "

"지저에 들른다라."

"지저가 요괴의 산이랑 거래하고 있다믄 지저를 다스리고 있는 사토리가 아야 뒤를 캐는 일에 비협조적이라는건 당연한거제."

마미조가 담뱃대에서 입을 때면서 연기와 함께 말하자 나즈린이 푹푹찌는 습기에 쥐들을 방에서 나가게 한 후, 불편한 표정으로 귀를 팔랑거리며 말했다.

"게다가 산에 자연을 복구하면서 건물들도 새로 지었다면 거기에 무언가 정보가 더 있을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게다가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면서 거미요괴가 만든 설계를 텐구들이 강제로 바꾸기까지 했다고 하던데 뭔가 강력하게 보안이 필요한 거지 않을까 싶어."

누에도 3쌍의 날개를 접었다 피면서 말하자 이치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잔이 이야기해줬던 요괴의 산의 경계가 매우 강화된 점도 근거가 되네요."

"변신술로 둔갑한 자도 어떻게든 잡으려고 하는 걸 보면 하나라도 들락날락거릴 쥐구멍이 나선 안 된다는 거제."

마미조도 경험에서 우러난 말로 대답하자, 나즈린이 무언가 생각이 들었는지 의아해하며 누에에게 말했다.

"어? 잠깐 그런데 지저랑 요괴의 산이 한패라면서 어떻게 그 한패인 거미요괴랑 지저의 지도자인 동생이 너에게 언니에게 불리할 정보를 줘?"

"아, 그거? 자매가 별로 사이가 안 좋나봐. 언니가 좀 쏘다니는 동생을 자기 눈에 담아 두려는 것 때문에 갈등이 좀 있는 것 같아. 그 동생의 무의식 능력으로 거미요괴가 술술 분 거고."

"진짜 둘이 싸웠나보네."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이치린이 나즈린에게 손 부채질을 하며 토로했다.

"갸 동생이 누에 네를 도왔다는 말이제?"

누에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미조가 자신의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갸가 능력 쓴거 말고 자신이 직접 누에 네게 알려준 정보도 있당가?"

"아니, 무척 조심하는 모습이었어. 맞다! 그러고보니 이와 관련해서 텐구의 무의식을 읽어달라는 요청을 사정상 거절하긴 했는데, 여기서 좀 찜찜한게... 이와 관련되면 무서운 언니들이 달려들어 몸 사려야 한다나."

"에?"

나즈린과 이치린이 당황하며 누에를 쳐다보자, 그녀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마미조가 담뱃대를 내려놓고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누에쪽으로 내밀며 물었다.

"더 말하지 않고 언니의 추적을 받을 수 있다면서 바로 사라졌어. 눈과 귀가 많다나."

"일단 그 말을 들으면 지저랑 텐구일당이랑 한패인건 염두해 둬야겠네."

"응, 오니들도 만났는데 말야. 술자리에 껴서 들으니 텐구들이 1년전 사건 후에 요즘은 오니랑 관계도 개선하고 잘 지내자고 하는 사이래. 오니들은 자신들이 안 그러고 대놓고 집 부셔서 들어갈텐데 왜 그러냐고 따지더라고. 근데 이미 낙인 찍히고 모리야 신사에서도 무녀가 와서 이 건으로 터니까 이왕 이렇게 비난받게 된 거 거리낌 없이 진짜 습격하는 오니들도 생겼데."

"와. 오니가 먼저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오니가 하긴 한다는 거네. 하지만 텐구들이 오니랑 서로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나오는 것도 이상하고." 나즈린이 혀를 차며 말했다.

"잠깐, 그 때 나즈린이 했던 말에는 인간에 대한 습격이 몇 달전이라고 했었는데요."

"응, 텐구들이 오니랑 화해하자고 한것도 몇 달 전이랬어." 누에도 이치린의 말에 대답했다.

"가만 있어봐, 산과 텐구들이 달라지기 시작한 요괴의 산이 달에게 습격받은 날짜가."

"1년 전이었제." 나즈린의 말에 마미조가 대답했다.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자, 마미조가 다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니들이랑 잘 지내자고 한다는 걸 보믄 이미 지저에도 텐구들이 돌아다니믄서 손 써놨겠구마이."

"음, 확실히 이건 텐구들이랑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운잔도 지저에서 요괴들이 가져온 화물이 요괴의 산으로 들낙거리는 걸 자주 봤데요."

운잔이 말해주는 것을 들은 이치린이 외치자 나즈린이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근데 텐구들이 오니들 습격을 가만히 나둔다는게 좀 이상한데. 더 대서특필하고 그래야하는거 아냐? 사방에서 오니들에게 집중포화를 날릴 기회일텐데 말야."

"오히려 오니들이랑 한패라서 쉬쉬하는거 아닐까? 얘네가 얼마나 발이 넓은 애들인데 모를리는 없고, 아하하아암." 이치린이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그건 한번 그짝 신문들을 다 알아봐야쓰것쓰으이." 마미조도 대답했다.

"그것 때문에 오니들 사이에도 말이 많더라고.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오니답지 않은 방법에 이미 낙인찍힌으니 갈수록 거리낌없이 따라하는 오니들이 늘어나서 오니들이 인간과 다투게 됨을 경계하던데."  

누에가 손을 들어보이며 답답한 표정을 짓자, 마미조가 접혀있던 꼬리를 피면서 답했다.

"아마도 그럴테지. 내도 산에서 본게 있으니께 말이여. 솔직히 내는 그냥 내막을 좀 알고 싶을 분이었는데 무언가 갈등을 부추긴다는 느낌이 드는 구마이. 그래도 확실한 물증은 없으니께. 말은 아껴야겠지마이, 근데 말여, 나는 누에 이야기중에서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당께."

"응? 어떤거?"

"이번 일에 대해 뻥긋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언니들이 입막음을 하러 온다캐는 거 말이제. 과연 그 무서운 언니라는 글마들이 한 두 마리가 아니라는 긴데,"

"어디보자, 생각해봐도 짐작가는게 언니인 사토리, 눈치빠를 텐구 두 명 뿐인데."  

누에가 답하자 마미조가 다소 심각해진 모두의 눈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말했다.

"무의식의 요괴가 겁날만큼 그렇게 확실히 입막음이 가능하다카믄 텐구들 뒤에 더 쎈 요괴가 배후에 있을지 모르제."

"배후요?"

"음,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 텐구들이 실은 주도하는 게 아니라 중간의 다리라는 건가요?" 당황하는 누에와 같이 이치린이 커진 동공으로 물었다.

"아직은 추측이랑께.  그저 우리가 확실히 알고 유추할 수 있는 건 이번 오니 습격사건의 피해자 입에서 '관리자'이야기가 나오고 지저를 다스리고 '꿍꿍이가 있다면 바로 마음을 읽어 알수 있는 사토리와 수상한 텐구들이 한 패로 추정에 사토리 자매의 사이가 좋지 못한디 이 일과 관련해서 간접정보를 아는 것만으로도 텐구들이 즉각 들쑤시고 해코지할 만한 뒷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거제." 

"수상하긴 한데. 이런 이야기 하면 지금 당장 경계에서 튀어나와 우리 앞에 따질 유카리랑 엮는 건 말야. 용의자들이 그냥 핑계대는 것일 수도 있어. 의심은 하지만 좀더 물증이 있어야할것 같아." 나즈린이 턱을 괴며 고심하는 얼굴로 말했다.

"근데 솔직히 추측이 아니라 맞 아떨어지는 유력한 배후가 있어봤자 텐구들이 직접 밝힌 모리야 신사잖아요?"

갑자기 생각난듯 손가락을 튕기면서 외친 이치린을 보며 나즈린도 수긍하며 말했다.

"하긴 모리야 신사의 사나에라면 오니도 털었다고 하는 거 봐서 들쑤시는 정도로 끝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모리야 신사에게 위임까지 받은 텐구들과 관련되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해코치가 간다는건 걔들이 꿍꿍이가 있거나 밝힐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되잖아."

"확실히 이번 일을 이끄는 텐구들은 모리야 신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니까 지원도 받고 있겠지."

누에의 말에 대답하며 깍지를 껴서 머리를 집고 생각에 잠긴 이치린과 귀를 팔랑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고심하는 나즈린의 사이에서 마미조도 자신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낄낄 거리면서 말했다.

"뭔가 정황만 보면 텐구들이 관계를 보험처럼 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니께 말여. 허헛."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누에 옆에서 고심하던 이치린이 박수를 한번 치며 외쳤다.

"아! 그럼.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을 내일 알아올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응? 그런 방법이 있어?"

누에가 놀라서 묻자,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이치린이 손수건으로 쓰윽 닦아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이라니 또 뭘.." 나즈린이 한숨쉬듯 숨을 뱉으며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내일 시비곡직청에 갈 거야."

해맑은 표정으로 기세등등하게 말한 이치린을 보고 옆에 있던 눈이 희동그레진 운잔까지 기겁한 외마디가 그녀에게 돌아왔다.

"뭐?!"

"그렇고만." 마미조가 팔짱을 낀 채로 넌지시 대답했다. 

"시키에이키라면 흑백 하나는 잘 가르니까 정파리를 쓰든 뭘 하든 텐구들이 깨끗한지 아닌지 알 수 있겠지. 어차피 옳은 일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당성은 원래하는 일이니까 내일 청탁하러 가려고."

"세상에.. 그렇게까지..?" 나즈린이 기겁해서 딱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며 흔들리는 동공에 비친 그녀를 쳐다보았다.

"효과가 있을까?" 회의적인 표정으로 누에가 바라보자 마미조가 콧등에서 내려간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이 일이 과연 정당한가 아닌가, 옳으냐 그르냐는 확실히 판별할 수 있것제."

"맞아! 그리고 이게 지금은 조용히 있지만 시키에이키에게도 들어가면 주위에도 더 크게 알려질거고 점점 판이 커지게되면 분명 텐구들이든 모리야 신사든, 저 너머 도교든 뭔가 알기 쉽게 인과적인 반응이 나오겠지."

누에가 주먹쥔 손으로 의기양양하게 외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마미조를 보았다. 

"하아, 뭐 맞는 말이긴 한데.. 근데 우리 쥐들이 여전히 전멸되거나 산 근처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의혹투성이에 수상하긴 하지만 우리 활동이 너무 커지면 주위, 특히 텐구들이나 도교쪽에 걸릴수도 있으니까, 그냥 원초적으로 건수 하나 만들어서 슬슬 이 교육을 중단 시키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나즈린이 길게 한숨을 쉬며 묻자 마미조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종교간 화합을 위해서 하는 이번 일이 좋은 선례로 남아야 종교분쟁의 대화의 창구가 계속 열리고 코코로라는 한 요괴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다시없는 기회이자 필요한 일이라 그건 좀 어렵제. 적어도 반박 불가한 증거가 나온다면 텐구들이 이 모든 자리에 초를 쳤다는 쪽으로 도교나 신사쪽도 수긍할 수 있게 나와야 체면과 평판이 살제."

"하긴 가짜 증거나 불확실한 증거로 그냥 함부로 몰아가면 기회랍시고 도교 쪽이 절은 도와주는 요괴들도 함부로 모함한다고 우릴 물고 뜯을 테니까."

"어휴, 제약이 많아서 복잡하네." 누에가 답답함에 머리를 긁듯 털어내다가 재빨리 머리를 빗어내듯 쓸어내며 말했다.

"일단 운잔이 말하길 산의 경비가 어제보다 느슨해졌다고 했어요. 경비서는 애들 무장과 복장도 단순해졌고요. 요즘 산은 입구에서부터 참배객이 붐비고 장이 들어서거나 다른 요괴들이랑 교류가 엄청 많았데요."

이치린이 구름같은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던 운잔이 하는 말을 동시통역하자, 나즈린도 이어 말했다.

"아까 쥐들에게 들었는데 텐구들이 환상향 지역 여기저기에서 그 전보다 자주 보인다고 했어. 특히 아야와 모미지 두 일당에게 감시를 붙였는데 쥐들은 여전히 산에 들어가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 모미지는 산에서 잘 안 나오고 아야는 인간마을등 각지에 취재를 위해 여기저기 들쑤신다던데 너무 빨라서 쫓진 못하고 목격담만 들었어." 

"그리고 요즘 뭔가 터지는 굉음이나 화염, 날아다니는 불덩이나 산불이 일부지역에서 나는 것을 산에서 봤데요. 텐구나 갓파들 같은 산의 요괴들이 지역에 투입되는걸 보면 운잔은 지진이나 화산 징후가 아닐까 의심된데요."

"알겠네. 수고 많았구마이. 경비를 담당하는 텐구가 요기 와있는디 오히려 경계가 풀어졌단 말이제? 거기에 화산 징후인데도 불구하고 이틀 후에 마치 대처하는 것처럼 산을 개방하는 행사까지 여는 건 우리가 의심한것 치곤 뭔가 빠른 대처 같으이."

"그러게, 마미조. 산에 쉽게 들어가면 거미요괴가 말한 엄청 큰 건물에 대한 정보도 얻기 쉬워질텐데 말이지. 그렇게 꽁꽁 싸매다가 그걸 감수한다고." 

마미조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차분히 입을 열었다. 

"방금 문 밖에 나선 내 너구리 수하에 의하면 요즘 곳곳에서 인간으로 변장한 요괴들이 많아졌는데 우리같은 너구리요괴나 여우요괴는 아닌것 같다 캐서 내가 뒤를 좀 캐보라고 했제."

"아, 아까 우리가 봤었던."

"글제.  아미래도 저번에 텐구 고넘야들이 아마노자쿠를 찾는다고 돌아다닌다 캤던 것이 마음에 결려서 말이제."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누에가 흥미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내가 직접 나서는 건 눈치빠른 텐구가 바로 알테니께. 그래가꼬 애들 풀어서 소문도 듣고 미행도 하고 냄새도 맡아가며 살펴봤었제. 확실히 가장 인간답게 생긴 카라스텐구들이 부쩍 많아졌당께. 아마노자쿠뿐만 아니라 오니들의 습격등도 물어보고 다닌다고 한디 주위 사건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모양새여그래."

"인간마을이야 요괴들로 넘치는 곳이지만.. 텐구 얘네들은 중요하게 둬야할 내부경계는 풀고 외부에 신경쓰는 걸 더 강화했다는 건 살짝 이해가 안 가네요. 들어올테면 들어오라는 듯이 자신있다는 건지. 정말 상관이 없다는건지."

이치린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골몰히 생각에 잠겼고 마미조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오니들에게 신경쓰면서 반응을 살핀다는 건 살짝 의심해봐도 되는 사항아닐까 싶으이."

"무슨 의미죠?" 나즈린과 이치린이 살짝 놀라며 마미조를 쳐다보았다.

"전에 이야기를 들을때 오니들이 인간을 잡아갈때 자신들의 정체를 못보도록 눈을 가려놓고 오니라고 강조하는 점이 좀 걸려서 말이제. 더구나 조금만 나와도 야단법석인 오니들이 그렇게 은밀하게 집단으로 작업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텐구와 오니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지만 텐구들이 단순히 신문기사로 쓰려고 인간으로 위장하면서 까지 반응을 쓰는건 과한가 아닌가 싶으이."

"흠.. 일리는 있는 가설이지만 증거는 없잖아."

"확신이 아닌 의심이니까 증거는 없어도 할 수 있잖아. 이제 찾아봐야지. 안 그래? 마미조."

 나즈린의 말에 누에가 마미조를 비호하며 대답했고 마미조는 '허허' 하는 웃음 소리와 함께 누에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런가.'하며 손 부채질과 함께 꼬리로 머리를 긁으며 이치린처럼 골몰히 생각에 잠긴 나즈린은 '산에 쉽게 들어가는'이라는 말과 '엄청 큰 구조물' 이라는 누에의 말이 계속 생각나 머리를 굴리다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입 밖에 꺼냈다.

"아! 굳이 내가 쥐들을 계속 동원하지 않아도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나중에 알아올게."

"올, 멋진데? 수고해!" 누에가 손바닥으로 주먹을 치며 빛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나즈린을 보며 따라 웃어주었다.

"둘이 수고가 많당께. 의혹만이 쏟아지니 내랑 누에도 변신을 하던 뒤를 캐던 하면서 좀더 확실한 증거를 모아야하겠제. 오늘은 방안이 더웅께 이만하고 마치장께."

"네, 후우우 여름이다보니 바람이 안통해서 찌네요. 벌써 땀 때문에 소매랑 등이 붙었어요."

"그럼 이만 나가볼께." 이치린과 나즈린이 문을 열고 복도 주변을 살피며 조심히 닫으며 나가자, 앉아있던 누에는 일부러 앉은 모습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면서 마미조의 꼬리를 베개처럼 벴다.

"가면 갈수록 뭔가 연관있는 것 같고 수상하네. 걔네들 정체애 대해 궁금해지는걸."

"계속 알아보고 있으니 갸들이 깨끗하다면 밝혀지겠제. 다만 알아가는 과정에 얼굴 붉히거나 불리한일이 없도록 조용히 가야하는게 참으로 복잡은 것이여."

"뭐 딱 봐도 수상한데 뭘. 난 사실 도교나 신사쪽도 믿음이 잘 안가. 걔네들도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그래봐야제. 내도." 마미조가 담뱃대를 품안에 집어놓고는 누에에게 손 부채질을 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마미조, 오니들 술 맛있더라. 나중에 같이 마셔봐."

"허허허, 누에도 참, 오냐, 내가 얘기하면 함 가봐야제."

같이 복도를 거닐며 눈치로 주위를 살피던 나즈린과 이치린, 운잔은 조심조심 밖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을 나눴다.

"내일 바로 갈 거야?"

"그래야겠지. 근데 내일 텐구 애들이랑 코코로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에 미리 가봐야겠어. 그러면 공무집행으로 대기할 필요도 없을테니까."

 나즈린이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이치린이 뭔가 갑자기 생각났는지 턱을 괴면서 말했다.

"근데 아까 깜빡하고 말 안했지만 살짝 걸리는게 있어."

"뭔데?"

"아야랑 모미지 얘네 텐구들끼리 뭉쳐다니고 있긴 하잖아. 우리가 한패라고 보고 있고."

"응, 근데?" 나즈린이 무심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가 걔네 데려올때 탄막도 뿌려가며 싸워대는 걸 봤거든. 뭔가 억지로 하는 듯이 사이가 무척 안 좋은 것 같던데."

"뭐, 확실히 지들끼리 티격태격하는 것 같긴 한 것 같지만."

나즈린도 생각이 났는지 옆머리를 만지작만지각 꼬면서 말했다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우리를 속이려고 지들끼리 연기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런가?"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의 운잔을 슬쩍 쳐다보며 겸연쩍게 웃은 이치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즈린이 헛웃음을 지으며 다우징 봉을 들고 말했다.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잘 다녀오기나 하세요."

"네. 네. 쥐 아가씨. 쥐 아가씨는 어떻게 하실려나요?"

깍지를 쥐고 뒷머리에 데면서 어깨를 쭉 핀 이치린이 밖으로 따라나와 그나마 부는 후덥지근한 밤바람을 맞으며 나즈린의 뒤를 따라가자, 나즈린이 어깨에 자신의 볼을 대고 비비면서 말했다.

"나도 알아볼 방법이 있어서 알아보러 가야지. 좋은 방법이든 나쁜 방법이든 간에."

"하긴, 산에서 쥐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좋은 감정 있기도 힘들겠다."

이치린의 말에 짜증섞인 표정으로 미간을 찌뿌리며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날린 나즈린은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고개를 돌렸다.

"응?"

"왜?"

"잠깐만."

나즈린의 태도에 의아하며 어두워진 주변을 살피던 이치린의 눈에근처의 건물 마루에서 수북히 쌓인 불경서적과 함께 종이에 먹 뭇은 붓으로 써내려가며 불경을 읽고 있던 쇼가 들어오자 마자 그녀의 목소리가 나른나른 들리기 시작했다.

"세존[각주:1]께서 이르시되, 모든 유위법[각주:2]은 모두 무상(無常)으로 귀결(歸結)하나니은혜와 사랑으로 만난 것은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네."'

'대반열반경[각주:3]'이라고 써진 경전을 읽으며 따라 써보던 쇼가 책을 덮고서 모기를 쫓기위해 쑥을 태우던 접시 옆에서 차분하게 따라 쓰며 말했다.

"세존깨서 이르시되, 모든 유위법은  모두 무상(無常)으로 귀결(歸結)하나니은혜와 사랑으로 만난 것은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네."'

보지 않고 그대로 따라 읽어지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경전을 빠르게 핀 쇼가 호롱불에 의지해 다시 따라 적으면서 말했다.

"모든 행()과 존재[]가 이와 같으니, 근심도 괴로움도 일으키지 말아야 하네. 좋아! 이 부분은 다 외웠고, 다시 해보자."

다시 빈 종이가 먹지가 되도록 따라적으며 외운 쇼가 다른 손에는 염주를 돌리면서 암기한 내용을 암송하는 모습이 둘의 시야에 비춰지자 이치린이 감탄하며 말했다.

"와, 비사문천도 무척 열심히인걸." 

"주인도 요즘 노력 많이 하는 편이야."

살짝 흐뭇해진 마음이 얼굴에 다 들어나 입꼬리가 올라간 나즈린이 말투만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방해되지 않도록 마당으로 들어섰다.

"요즘 신경 많이 쓰는 것 같아."

"이 세상이 신경 안 쓰고 살아는 지냐?"

나즈린이 피식거리며 말하자 물끄러미 바라보는 운잔과 손을 잡은 이치린이 말했다.

"아니 쇼 말야. 여태 봐왔던 것 치곤 요즘 본업에 정말 충실하거든."

"주인이 주인일 하는 게 무슨. 원래 해야되는 거잖아."

나즈린이 한숨을 푹 쉬면서 눈썹을 치켜올리며 이치린을 바라보자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듯이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치린이 입술을 열었다.

"아냐, 됐다. 직속부하한테 이 정도라도 말해줬으면 됬지."

"너 자꾸 더운데 시덥잖은 소리할래."

"네네. 더운데 쥐 아가씨 침 마를까 말 많이 시키지 말아야죠."

나즈린과 이치린이 티격태격하며 주변을 지나던 사이, 대웅전 밖에서 우렁찬 쿄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생은 늘 경계[界]와 함께 하며 경계와 화합한다! "

빗자루로 길가를 쓸다가 윙윙거리는 모기를 잡으며 따라 외치는 쿄코를 본 나즈린이 대웅전 쪽을 바라보자, 등불이 밝히는 쪽에서 뱌쿠렌이 목탁을 쥔 모습으로 앉은 채, 잡아함경[각주:4]을 낭독하고 있었다.

"어떤 것이 중생이 늘 경계와 함께 하는 것인가? 이른바 중생은 착하지 않은 마음을 쓸 때는 좋지 않은 경계와 함께 하고, 착한 마음을 가질 때는 좋은 경계와 함께 하며, 훌륭한 마음을 가질 때는 훌륭한 경계와 함께 하고, 비천(卑賤)한 마음을 가질 때는 비천한 경계와 함께 하느니라.[각주:5]"

주변을 빗질하다 모기를 잡으려고 바둥바둥 손뼉을 치는 와중에도 주위 소리를 따라읽는 쿄코의 목소리와 함께 경건한 모습으로 목탁을 두드리는 뱌쿠렌의 모습에 이치린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역시, 언니는 절의 주지승답다니까."

"뭐 이 절에 가르침이야 뱌쿠렌에게 집중되니까."

나즈린이 아까 공부하던 쇼가 생각나 탐탁지 않게 말하자 이치린이 슬슬 달려드는 모기를 손을 저어 쫓으면서 목등에서 흐르는 땀을 닦고서 말했다.

"그치. 종교적으로 우리 절을 이끄는 주지승이다보니 가르침을 받으려고 불제자와 중생들이 모셔가는게 우리 절이니까."

"아잇, 근데 따지고 보면 우리 절에서 제일 높은 비사문천이 우리 주인인데." 나즈린이 자신의 큰 귀 쥐변을 날라다니는 모기의 날개소리에 눈가를 찌뿌리며 나름 자신과 주인에 대한 자존심이 걸려 툭하고 던졌다.

"야아~ 역시 직속 부하답네. 그래도 우리 언니에게는 말야. 우리처럼 세속에 빠져있다보니 고기나 술등으로 감정적으로 행동해 사건도 많고 덕망과 깊이가 부족한 쇼보단 뭔가 모두를 끌어당기는 두터운 신망과 놀라운 능력에 경건한 카리스마가 있잖니."

"허어 참." 나즈린이 속으로도 부정하지 못하고 그냥 다우징 봉을 꽉 잡으며 기가 찬 표정으로 응했다.

슬쩍 쇼 쪽을 쳐다본 나즈린은 아무래도 마음이 걸려 미간을 찌부리면서 방방 뛰며 말했다.

"아잇! 이 놈의 모기들은 왜 귓가에서 알짱거리는 거야?"

"아, 그거 완전 짜증나지? 물리기 전에 들어가든가 하자."

그 둘의 눈치를 보던 운잔이 옆으로 다가가 이치린에게 귀속말을 하자, 당황스러운지 나즈린을 슬쩍 쳐다본 이치린을 보고 나즈린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이 구름아재가 뭐라고 한 건데?"

무척 궁금한 표정의 운잔을 보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슬쩍 닦은 이치린이 머뭇거리다 물었다.

"아니 그냥.. 그게 그 조그만 모기에게 물리는게 뭐 어떤거냐고 물어보네."

"아주 그냥 간지러 죽을 맛이지 그럼!!!"

나즈린이 폭발하자 무척 궁금한 표정의 운잔 옆에서 이치린이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문지르며 답했다.

"뭐, 모기들이 운잔을 물 수가 없으니까..."

"후, 더운데 이런 시덥잖은 말장난이라니."

"어이, 둘 여깄었구나!"

"얼마나 찾았다고!"

둘의 큰 소리에 반대편 건물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온 무라사와 우산을 든 코가사가 인사하자 이치린이 쳐다보며 물었다.

"응? 무슨 일인데."

"아니, 뭐긴. 일요일 저녁인데 술이나 하자고 머릿수 모으고 있지. 고기도 준비 되었거든."

무라사가 뱌쿠렌 쪽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말하자 코가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들이키고 먹으면 별일 없을 거야!"

"안주까지 있으면 상관 없지. 난 참여."

이치린도 뱌쿠렌쪽 눈치를 보며 말하자 무라사가 박수를 쳤다.

"좋아! 좋아! 나즈린은?"

"에이, 모르겠다. 나도 그냥 갈래. 근데 고기랑 술은 어디서 구한거야?"

"무라사랑 같이 돈 주고 샀어!"

코가사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무라사가 나즈린과 어깨동무 하면서 말했다.

"자, 가자. 뱌쿠렌 모르게 밤 보내야지."

"야, 더워. 떨어져. 이젠 큰 모기가 달려들어."

"내가 왜 모기야!"

무라사와 나즈린이 서로 농담을 주고받자 이치린도 운잔의 손 부채질을 받으며 말했다.

"그래도 몇 잔씩 하면 시원해질테니 나도 마음에 들어."

"그럼, 편하게 모이는 편한 자리인걸. 술 좋아하는 본존님도 부를까?"

"아니. 비사문천님은 좀 바빠서."

나즈린이 열심히 불성에 열중하는 쇼를 생각해 말하자 코가사가 우산을 숙이며 아쉬워하고 무라사도 모자를 들어서 바깥바람에 머리의 열기를 식히며 말했다.

"아쉽네. 쇼가 있으면 술자리가 재밌는데. 그럼 우리끼리라도 가서 놀자."

"그럼 쿄코는?"

"아, 불제자들 새벽 염불이 있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청소 해야한다고 안 되겠데."

이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같이 일주문을 나서자, 문득 생각이 난 나즈린이 말했다.

"맞다. 내일 거길 가야되는데 술 마셔도 괜찮은 거야..?"

"아이 그럼그럼, 걱정 붙들여매셔."

"뱌쿠렌 모르는 곳으로 갈테니까 소문 걱정 안해도 돼."

"와! 신난다!" 무라사의 흐뭇한 미소와 맺음말에 코가사가 우산을 흔들며 기쁨을 표현했고, 그 모습을 본 나즈린이 무라사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했다.

"술 조금만 챙겨줘. 나중에 주인에게 수고했다고 주게."

"크흐흐. 알았어. 근데 들통나니까 절 안에선 주지마."

"그럼, 그럼."

"그럼 누에랑 마미조 씨는요?"

이치린이 물어보자 코가사도 우산을 흔들면서 고민에 찬 표정으로 우물쭈물 말했다.

"나도 도움 받을 것도 있어서 좋긴 하지만. 실은 무라사랑 이야기 했는데."

나즈린이 고개를 들어 생각에 잠기고 말을 들은 무라사도 코가사 대신 난색을 표하면서 말했다.

"어음, 실은 그 둘은 정말 따로 놀아서 불러도 참여를 잘 안하는 데다가 불러도 뭔가 억지로 부른 느낌이라 서로 터놓고 즐기기엔 좀 그래. 그리 익숙한 것도 아니고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며 놀려해도 누에는 놀다가도 말나누다 보면 나중에 심적으로 벽부터 쳐버리고 마미조도 뭔가 있으면 우리 위에있는 느낌에 같이 모여도 너구리 패거리나 둘끼리만 있어버리니. 서로 불편해져버리거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받되 둘이 즐기라고 우리 이름으로 따로 술과 안주를 사주기로 했어요."

"좀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끌고와서 귀찮게 느끼지 않게 둘만 있도록 해주면서 둘을 신경써주고 있는거야."

무라사와 코가사의 말에 이치린과 나즈린이 슬쩍 서로를 쳐다보며 방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모습을 회상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쩝, 뭐 어느 정도 이해는 가네."

"어쩔 수 없죠. 머릿수가 적으면 많이 먹고 마실수 있긴 하지만요,"

"자자, 물주가 우리니까 걱정은 마."

"날도 더운데 씻 내려가는 물결처럼 시원하게 털어버리자."

자연스럽게 걸리던 마음을 말 하나로 한 번에 털어버린 둘이 다른 둘과 즐겁게 이야기하며 운잔과 함께 서로 절을 벗어나자. 이미 한참 전에 절을 벗어났던 셋은 한 명을 기다리고 있던 셋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1. 석가모니 [본문으로]
  2. 인연과 작용에 따라 일어나는 모든 현상 [본문으로]
  3. 석가모니의 열반을 중점으로 가르침을 둔 불교경전 [본문으로]
  4. 구나발타라가 한역한 팔정도, 무상등 불교사상의 원초를 담은 초기 불교경전 [본문으로]
  5. 잡아함경(雜阿含經) 16권, 비심경(鄙心經)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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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술기운도 나서 볼도 화끈거리고 낭패스러워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버린 누에가 마지못해 보인 그림에는 검은색 동그라미들이 괴상망측하게 연속으로 쳐져 있었다

"어? 음. 왜 검댕이만 가득한 걸까요."

뱌쿠렌도 특유의 눈웃음은 지어 보였지만 애매한 미소로 높은 어조로 묻자 나즈린이 두 손바닥을 들며 피식 웃었다.

"에이 뭐야. 우리 눈에 보이는 평소의 누에 모습이잖아."

"맞아. 누에 잘 모를 때 처음 보면 저랬어."

이치린과 무라사가 맞장구치자 후토도 눈썹 사이에 주름이 생길만큼 주요깊게 보면서 턱을 괴며 말했다.

"내 눈에는 더 해괴한 괴물로 보였는데."

"제 사진에도 누에 씨는 모자이크 아니면 저렇게 비슷하게 나와요."

그 와중에 플래시까지 터트리며 누에를 찍는 아야를 보고 길게 한숨을 쉰 누에는 귓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정체불명의 요괴니까 니들 눈에 이렇게 형용할 수 없는 정체불명으로 보이는 거지."

"아항, 그렇구만. 난 귀공이 그리기 귀찮아서 휘갈긴 건줄 알았네."

후토가 손을 탁 치며 말하자 누에가 곧바로 매섭게 쏘아보았다.

"하하, 다들 그만 하랑께, 누에야 정체 불명의 씨앗땜시도 있으이 원초적이고 공포적인 무의식적 대상으로서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거시제. "

"와, 제대로 자아성찰이네. 그럼 그 단발머리의 모습은 본모습이 아냐? 멘레이키는 본 모습인 가면들 그리는데."

나즈린이 팔짱을 끼며 묻자 코코로도 호기심에 슬쩍 바라보았다.

"음, 아무래도 기자인 저 때문에 더 방어적으로 나오시는 것 같아요."

슬쩍 눈치를 보며 카메라를 허리춤에 집어넣은 누에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볼을 두드리며 어색한 표정을 짓자, 마미조가 누에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자연스럽게 필 수 있도록 주무르면서 말했다.

"암, 누에는 정체불명의 요괴제, 느거들이 다 잘 알다시피말이제. 가면의 요괴는 가면이라는 정체성을 알아서 얼굴과도 같은 가면들을 그렸쓰니 누에도 지거 정체성을 알았으니께 정체불명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한 거시제."

친구의 변호에 어깨를 피며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는 누에를 보며 코가사나 쿄코, 모미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본질을 보고 보듬아주었어야 하는 법, 확실히 '정체불명'을 표현하는 것도 무리였겠군요."

뱌쿠렌도 자신의 태도에 반성하며 합장을 하자 이치린과 나즈린, 무라사도 수긍하며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럼 언니도 나랑 좀 비슷한 모습인거네."

자신의 갖가지 가면이 가득한 그림을 펼쳐보인 코코로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누에가 흐뭇하게 웃으며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캬, 정말 보기 좋은 장면이네요."

그 새를 못참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누에가 감탄하며 말하자, 모미지가 꼬리로 아야의 등을 툭하고 치면서 눈치도 없느냐는 듯이 인상을 썼다.

"그럼 마미조 씨는 어떻게 그렸어요?"

쿄코가 눈망울을 초롱거리며 고개를 쭉 빼들고서 묻자, 마미조가 웃으면서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내도 본디 내 모습이제."

평소 모습이 힘있게 그려진 선에 섬세한 채색, 머리 위의 구슬달린 모자부터 안경까지 세세하게 표현된 그림을 보며 누에가 감탄하며 엄지를 지어보이자, 마미조도 고개를 흔들며 윙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마미조 씨는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아야가 눈썹을 치켜 세우며 펜과 문화첩을 꺼내서 묻자, 다수의 시선이 마미조에게로 모여졌다.

 "내는 너무 오랫동안 봐와가지고 그리기 쉬었으이낄낄. 내가 살아온 많은 경험들이 다시금 떠올라 반가웠지말여."

아야가 문화첩에 조신조신 받아 적어가며 물었다.

"와, 마미조씨야 천(千)의 얼굴이신데요. 흐흐 그럼 그림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시며 그리셨나요? 아님 그리기 어려우셨거나 하는 부분요,"

"내는 말이여, 요기 요 부분 있제?"

마미조가 그림에서 검은 안경을 가리켰다.

"이 안경부분이 좀 인상깊었으이, 내 얼굴이믄 맨 얼굴로 했써야 하는 거신지 그냥 이 모습 그냥 그대로 그려야할지 고민이 됬응께. 이제는 내 눈의 각막과도 같은 도구니 말여."

"마미조는 안경 벗어도 미모가 사는데 뭘."

누에가 베시시 웃으며 말하자 뱌쿠렌과 아야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한번 숙였다.

"얘가 뭔말 한당까. 낄낄."

마미조가 웃으면서 누에에게 손을 젓자, 사진을 찍고 필름을 갈겸 카메라를 모미지에게 건네준 아야가 다시 물었다.

"와, 친구사이가 각별 하신게 보기 좋네요. 다른 분들은 그림을 보고 어떠신지 말씀해 주실까요?"

"되게 마미조같이 잘 그렸어요오옷!"

"채색하진 않았지만 검정색 선으로 잘 묘사됬네. 신경 많이 쓰셨겠어."

"꼬리의 복슬한 털까지 자연스럽게 그리신게 인상적이네요."

그림을 바라보던 해맑은 쿄코와 입술을 살짝 깨물며 턱을 괸 나즈린, 자신의 꼬리를 쓰다듬은 모미지가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럼 그림에서 추가해서 그리고 싶으신게 있으시다면 뭘 추가하고 싶으세요?"

"얼굴을 그리는 거시니께 뭐 상관없지만 내캉 꼬리가 몸만큼 커서 누에가 잡아줬으면 좋겠구마."

"네, 흐흐 알겠습니다."

피식 웃은 아야가 숙련된 모미지로부터 카메라를 받고서 나즈린에게 렌즈를 향하자, 나즈린이 마지못해서 귀를 쫑긋이며 눈치껏 그림을 들었다.

"나즈린 씨는 그리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그림 연습 좀 더 해야 할것 같다는 생각..?"

나즈린이 부끄러운 듯이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자, 코가사가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이, 그 정도면 뭘. 나보다 잘 그렸구만."

자신의 그림을 같이 보이며 웃어보이는 코가사의 눈동자에 턱을 낮게 수그러들며 탐탁지 않은지 입술을 다무는 나즈린에게 무라사가 말했다.

"네 특징은 잘 표현 했는데? 동그란 큰 귀 두개에 꼬리에 보석 목걸이에 막대기 두 개 까지." 

"이러든 저러든 자기 자신인데 자신감을 가지세요. 나즈린."

뱌쿠렌이 복돋아주자 나즈린이 옆머리를 긁적이며 꼬리에 메단 바구니 속 쥐와 수근거렸다.

"말은 못 그렸다하며 아쉬워 하지만 더 잘 그리고 싶어하는 욕구가 속에 가득 하구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후토의 말에 나즈린은 시험지를 들킨 학생처럼 입술 안쪽을 깨물며 얼굴을 붉혔다. 

"그림이 용지 아래쪽에 그려진게 지평선이 그려지진 않았어도 땅같은 부분에 서있는 건가 보제?"

"뭐, 바닥이 서있는건 맞지. 공중에 떠있으면 중앙에 있었을 거고." 나즈린이 마미조에게 대답했다.

"꽤나 신중하고 현실적이구마이. " 마미조가 땀 때문에 콧등에서 내려간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더 예쁘고 멋있게 그리고 싶으셨던 마음이 크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마미조 씨 생각보다 분석적이시네요." 

"뭐, 그저 사실에 입각한 추론일 뿐이제."

"으흠, 그렇군요 다음은 이치린 씨."

마미조와 대화하다 말을 돌린 아야를 나즈린이 슬쩍 쳐다보고 이치린도 잘못 그려서 둘둘 만 종이들 사이에서 완성된 그림을 선보이며 말했다.

"나는 뭐 곱상하게 잘 그렸지."

주위에서 '오'하는 환호성과 함께 관심이 모이자, 이치린이 의기양양하며 말했다.

"자, 어떤지 다들? 언니도요."

"대단해요. 정말 잘 묘사했네요."

"엄청 뿌듯했겠다!" 뱌쿠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코로도 두 팔을 펼치며 말했다.

"그럼 그럼. 운잔이랑 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야. "

아야가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빛 방향까지 계산하며 눌렀고 누에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이, 마미조와 누에, 나즈린은 언제 카메라를 자신에게 줄지 눈치를 슬쩍 보는 모미지와 아야의 태도를 주도면밀하게 살폈다.

"종이를 꽤 많케 썼구마이."

마미조가 주변 종이 뭉치를 가리키며 묻자 이치린이 대답했다.

"아, 이건 그림 그리다가 망친 건데 물감이라 지울 수 없어 따로 모아놨어요."

"처음에는 별로 그림이 만족스럽지 않았나보군요?"

뱌쿠렌이 입을 열자 이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상대들에 비해 종이들이 수두둑한게 꽤 초조할 수도 있었겠구마. 잘 그리고 싶은 강박도 있었을 듯 싶으이."

이치린은 마미조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을 쳐다보았다.

"오호, 그럴수도 있겠군요. 일단 필름에 작품을 박제했으니 다음은 주지승님!"

뱌쿠렌은 그 말을 듣고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면서 특유의 눈웃음으로 그림과 함께 화답했다.

"이 곳 묘렌사의 주지승으로서 도교측에 내세울만한 기법으로 그렸답니다."

능글맞게 펼친 뱌쿠렌의 그림에는 무수한 점들이 하나의 색이 된 점묘법으로 된 뱌쿠렌의 초상화가 불교예술처럼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등의 원색을 많이 써서 표현되어 있었다.

"와아아아!"

가지고 있는 우산마냥 입을 다물지 못하며 혀를 내두르는 코가사와 감탄하는 무라사등 다른 요괴들 뿐만아니라 후토도 충격을 받았는지 집중해서 바라보자 뱌쿠렌이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말했다.

"그리느라 시간이 걸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각각 다른 점들이 무수히 모여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듯, 합일된 형태로서의 존재라는 성찰과 경건한 마음가짐을 다스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와, 그러시군요. 기법이 참 색달라서 더 예쁘네요."

아야가 문화첩에 적는 사이 탐복한 모미지가 스스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자, 흥미롭게 바라보는 시선들 앞에서 문화첩을 집어넣고 토킨을 정리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자자, 여러분들. 그림이 아주 예쁜 그림들이 조금 있어서 그러는데 이 자리가 서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지 그림 경연대회나 인기투표가 아닌 만큼. 위축되지 마시고 서로 말할 수 있도록 하자고요."

그말에 쿄코가 손을 들자, 아야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 쿄코 양, 말씀하세요."

"네! 뱌쿠렌 그림은 너무 멋졌고. 또 음. 주지승님 답게 불교적인걸 너무 잘 표현하신점이 더 멋있었어요!"

"아항, 쿄코 씨의 의견이셨습니다. 다음은 후토 씨인가요?"

후토가 손을 드는 것을 본 아야가 묻자, 후토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두 눈을 감고 말했다.

"저렇게 점으로 찍어 표현하는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 분명히 손은 두 개일텐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찍은겐가? 보아하니 마법을 쓴게 아니겠나?"

그 말에 너털웃음을 터튼 뱌쿠렌이 말했다.

"하하하, 참. 정성을 들이면서 오랜시간동안 숙련되면 다 된답니다. 그렇게 노력과 영감이 필요한 창작 부분에 마력낭비 하진 않아요."

그리고는 8개의 붓을 손가락 사이마다 끼우고는 찍는 시늉을 하자, 후토가 혀를 한 번 차고는 침을 삼켰다.

"넵, 다음은 쿄코 양!"

쿄코가 슬쩍 주위를 돌아 보고는 웃으면서 그림을 보여주었다.

"난 이 그림이 맘에 들어요. 내가 나를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내 모습이니까요."

"쿄코가 자기 모습을 잘 표현했네요. 나무삼."

"다들 자기 모습을 잘 표현하는 것 같네. 거울을 봐서 그런가."

무라사가 말하자 아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거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서로 얼굴 그려주기도 해봐요."

"아야 씨 말씀도 좋은 것 같군요. 웃는 쿄코의 표정이 덩달아 기분 좋아져서 좋아요."

"음, 내는 그림상에서 어깨는 좁게 그려졌는데 선에는 곧게 힘이 들어간 모습을 보아서 뭔가 자부심은 강해뿐데 그걸 들어내기엔 내면에서 부터 자신감이 좀 많이 없어 보이는구마이."

마미조의 말에 놀란 누에와 쿄코가 주위의 시선과 같이 그녀의 입을 주시했다.

"뭔가 내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게 느껴지는게 내눈에는 나타난단 말이제. 대부분 그림에서 눈과 팔은 아무 생각없이 그렸을때 바깥이나 접촉에 대한 소통구간을 의미할수도 있긴 한디, 그런 눈과 팔에 힘이 들간 거시 욕구를 나타내는 경향을 나타낸다고 유추해 볼 수도 있제."

쿄코가 다시 자신의 그림을 보며 신기하게 바라보고 마미조도 초연한 모습로 말하자,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누에와 더불어 이치린과 후토가 무척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받아적기 급급한 아야와 그러한 모습을 재밌게 보는 코가사, 감탄하는 뱌쿠렌과 함께 문 밖의 토지코는 귀를 쫑긋 세우며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주요깊게 들었고 모미지는 살짝 무덤덤하게 남들 신경이 팔린 사이에 필름 몇 개를 바꿔치기했다.

"어, 음, 비슷한거 같기도 한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리고 싶은데로 그렸어요."

"네, 그렇군요. 한번 마미조 씨 말씀을 잘 생각해보도록 해봐요. 다음은 코가사 씨."

코가사가 신이나서 그림을 펼쳐보이자, 다들 난색을 표했다.

"야, 텐구 저건 넘어가자." 무라사가 기겁하며 말하자 아야는 고개를 저었다.

"해괴하군." 후토도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이며 허리를 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른 소개해 주세요. 코가사씨."

"보나마나 또 저걸로 놀래키려 했겠지. 뭐." 나즈린의 흘린 말에 주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가 말하기 전에는 그런 말은 삼가도록 하는게 귀의한 자의 품격이랍니다. 나즈린."

뱌쿠렌이 제지하면서 이야기 하란듯이 손을 펼쳐 보이자, 코가사가 우산을 들며 말했다.

"나를 그려봤어!"

누에가 슬쩍 바라보고는 당황스러운지 눈을 몇번 깜빡이며 그림 속 우산과 요괴의 얼굴을 각각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어느 쪽?"

"둘 다! 당연히 둘 다 나잖아."

"색이 참 화려하네."

어투가 끝자락에 올라간 데다가 영혼없는 웃음을 짓는 무라사에게 코가사가 외쳤다.

"내 놀라운 그림감각을 보라고!"

"어, 혹시 그림속에 누군가를 놀래켜주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되신 건가요."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내가 끌리는대로 그렸을 뿐이야!"

코가사가 아야의 말에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그래도 머리색은 예쁘게 잘 표현했군요."

모미지가 아야의 바람에 너풀거리는 앞머리를 정돈하며 말하자 코가사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치? 그치? 이 반가사[각주:1]그리는 것 만큼이나 엄청 신경 썼었어."

"머리카락 한올까지 세세하게 그릴만큼 자신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군요."

뱌쿠렌이 그림을 주요깊게 바라보며 말을 하자, 코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찰나동안 서로간의 아무말이 없자, 무라사가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음, 코가사는 이걸로 된 건가? 이번에는 내가 하겠어."

무라사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피고 자신의 그림을 펼쳐보였다.

"기자는 얼른 얼른 찍어서 기록으로 남기라구!"

"네! 헤헤."

무라사의 너스레에 아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완전 선장님 그대로네."

"그럼!"

쿄코가 유심히 바라보며 말하자 무라사가 턱을 치켜들며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림일 뿐이지만 보기만 해도 자신감이 느껴져."

나즈린이 다우징 봉에 꼬리를 걸치며 말하자 무라사가 옆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미소로 화답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물이 흐르는 강가를 배경으로 잡은 건 최고라고 생각해."

부는 바람에 소맷자락과 단발머리를 날리던 누에가 창끝으로 머리를 빗으며 말하자 무라사가 옆구리에 손을 올리며 침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꼭 여름이라서 그렸던 건 아냐. 하지만 칭찬은 고마워."

"선장이 그림을 열심히 그리느라 수고가 많았으이, 누가 봐도 선장답게 뭇지고 자부심이 느껴진당께."

"열심히 그렸던 걸 알아줘서 고마워요, 마미조 씨."

"미나미츠야 성련선을 이끈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선장이잖아요."

"후후훗, 뱌쿠렌도 덕담 고마워요. 그릴 때는 진짜 기분 좋게 그렸거든,"

어깨를 우쓱이며 귀에 입꼬리가 걸린 듯 웃는 무라사에게 아야가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고 코코로는 조용히 그런 모습을 주시했다.   

"그럼 다음은 저입니다!"

아야가 사진기를 든 모습과 함께 먹으로 자신의 흑발과 이목구비를 표현한 그림을 보이자, 모미지가 피식 비웃었다.

"야! 왜 웃고 난리야! 기분 잡치게!"

"으후히히히힛, 사진만 찍는 이유가 그거였네. 푸히히낄낄."

아야가 자신의 그림을 다시 보고 모미지를 째려보자, 어이없는 표정의 가면을 꺼내든 코코로의 옆에서 열심히 낄낄거렸다.

"치사하게 그림가지고 뭐라 그러는 거야? 참 그릇도 작네." 아야도 비웃으며 대응했다.

"뭐래, 지금 웃는건 말 그대로 감상평이거든. 크히힛, 대충그려놔서 웃음밖에 안나오네.크크킄."

"뭐! 대충 좋아하시네!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그림 그리거든! 에휴, 저 소통도 안 되는 멍멍이는 무시하고. 저는 제 직업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했답니다."

"아, 파파라치 말하는 거지?"

누에의 말에 주위에 있던 마미조, 코가사와 이치린, 후토, 나즈린이 웃자, 언짢은 표정의 아야가 고개를 돌리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리는 뱌쿠렌과 눈이 마주쳤다.

"어흡, 죄송합니다. 계속 캐주세욥흐흣."

"계속 해주세요오옵!!!!!!"

 어떻게든 체통을 지키려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으로 웃는 뱌쿠렌을 멍하니 보던 아야가 쿄코의 메아리에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자, 다들 어떻게 보시나요?"

"내는 전체적으로 직업 정신이 보이지마는 사진기랑 사진기를 든 손가락이 자세히 묘사된 거이 세심한거에도 신경쓰는 강박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여진당께."

마미조가 아야가 일으키는 바람을 맞으며 모자를 정돈하면서 말하자 아야가 웃으면서 귓가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군요."

"글고 말여, 선도 강하고 그림이 크고 빨리 그리려고 했는지 종이 왼쪽에 그려져있는게 독단적이면서도 행동이 성급할 정도로도 빠른데다가 전체적인 느낌이 나에게는 비춰지으이."

"오, 어느정도는 저돌적인 성격의 저랑 비슷하네요."

"마미조 씨 말처럼 이 까마귀가 민폐짓에 안 들쑤시고 다니는 곳이 없으니까요."

모미지가 물 들어올때 노 젓듯, 비꼬며 디스를 일삼자 머리를 만지던 아야가 인상을 팍 쓰고는 째려보며 카메라를 앉아있는 그녀의 무릎에 툭하고 던졌다.

"기회주의자 멍멍이는 그거 필름이나 갈아!"

"취재겸 사진을 찍겠다는 의지가 느껴져요!"

쿄코가 외치자 아야가 언제 화냈냐는 듯이 고마워하며 웃어 주었다.

"아야 씨야 워낙 어떤 의미로 유명하니 욕망에 찌든 그림도 되겠네요. 푸훗."

이치린이 웃으며 말하자 무라사와 누에도 피식 웃었다.

"네에에, 잘 들었습니다."

"다음은 내가 할래."

빨리 정리하려는 아야와 타이밍이 맞은 코코로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힘껏 그림을 펼쳐보였다.

"와아, 많이도 세세하게 그렸네."

"어쩜, 예뻐."

"하나하나 앙증맞게 그렸어요."

코가사처럼 주로 쓰는 가면들과 평소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유심히 바라본 요괴들이 저마다 소리를 주고받았다.

"코코로 양의 세심한 솜씨에 감탄했어요. 무척 섬세하네요."

뱌쿠렌이 합장을 하며 웃자 코코로가 아무표정 없이 엄지를 치켜드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럼 다른 요괴들이 다 했던 것처럼 그림을 소개해줄래?"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속 가면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이거는 내가 즐거울 때 쓰는 가면, 저건 내가 슬플 때 쓰는 가면, 요건 내가 싸우고 싶을 때 쓰는 가면이야. 딱 봐도 놀란 이 가면은 내가 놀랐을 때 쓰는."

"원망쓰러우어워어어억!!"

생각지도 못한 큰 소음에 코코로가 화들짝 놀라며 그림과 비슷한 가면을 꺼내들자 코가사가 웃으며 말했다.

"와, 대성공! 진짜 놀라면 저 가면이구나."

신기한듯이 바라보는 코가사에게 주위에서 병찐 시선이 모아지자 기겁한 무라사가 눈치없는 코가사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말했다.

"야, 그렇다고 굳이 왜 놀래켜."

"헤헷, 궁금했거든. 미안해!"

"얘는 하다 안 되서 생뚱맞게 놀래키네."

"생뚱맞게에!!!"

나즈린이 혀를 차며 말하고 그것을 따라하는 쿄코 사이에서 누에가 흥미롭게 바라보았고 코코로가 등을 두드려주는 아야와 괜찮냐며 어께와 손을 잡아주는 모미지 사이에서 놀란 마음을 추스리며 말했다.

"응, 놀라면 이 가면을 써. 평소에 가면을 들고 다니지만 그렇게 많이 쓰는 편은 아니야. 그리고 지금 이 모습까지 그림속 가면들은 다 네 얼굴이자 '나'로서의 상징이야."

"아하, 그러면 그리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코코로 양." 아야가 셔터를 누르며 말했다.

"츠쿠모가미로서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어. 나는 그저 도구인 가면 자체로서의 나와 이 요괴의 모습처럼 요괴로서의 나 말야. 근데 진짜 저 누에 요괴 말대로 다 '나'니까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

"아항, 그래서 다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겠군요!"

아야의 말에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였고 마미조는 그것을 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좋은 말씀들을 들으면서 수행을 통해 더욱 정신적 역량이 깊어지고 성장해 가는 것 같아 대견스럽네요. 특히 그림에서 그런 점이 핀 꽃에서 나오는 향기와 같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과 동시에 배움에 길에서 기분 좋아 보이는게 더 의미 있어 보인답니다. 나무삼[각주:2]."

뱌쿠렌의 말에 노인 가면을 꺼내며 즐거운 듯한 몸짓을 보이며 화답한 코코로가 귀를 쫑긋 세우며 다른 요괴들을 살펴보았다.

"그럼 멘레이키는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 건가?"

후토가 물어보자 코코로는 한쪽 볼을 만지면서 생각해보고 말했다.

"음. 글쎄.. 더 멋지게 그릴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랑 내가 나를 표현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랑 자신감이 교차한다고 해야되나. 뭐, 마음에 들어!"

코코로가 주먹 쥔 손을 흔들면서 웃는 얼굴의 가면을 꺼내들며 좋아하자, 턱을 괸 후토도 빙긋 웃어주었다.

"자, 이번엔 모미지가 해봐야죠. 야, 꺼내봐."

아야가 카메라로 모미지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하자 모미지가 아야를 흘겨보며 마지못해 바람에 흩날리는 그림을 꺼냈다.

"이건 내 그림이고, 보다시비 이건 접니다."

모미지가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하며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하자 주위에서 그림을 향해 시선이 몰렸다.

"네, 알아요!" 쿄코가 손을 들며 응답했다.

"꽤 선이 날카롭고 표정이 결연한게 기개있개 그렸네요."

이치린이 바람에 날리는 옆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하자 마미조도 안경에 붙은 머리카락을 입김으로 날리며 말했다.

"무장(武將)다운 그림이로구만."

"와! 엄청 잘 그렸네. 칼을."

무라사가 국자로 그림속의 모미지가 든 검을 가리키자 모미지가 바로 얼굴을 찡그렸고, 무라사는 키득키득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크크크크"

"눈이 엄청 무섭게 그려졌어."

코코로가 가면을 빙빙 돌리며 묻자 모미지가 표정을 풀며 말했다.

"나에겐 눈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서. 적이 어디있든 포착할 수 있으니까."

"와! 정말 어디있든 볼 수 있는거야?!" 코가사가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그럼, 괜히 천리안이 아니란다, 물론 내가 뒤통수에 눈이 달려있지 않으니 뒤는 아니지만.하핫."

슬쩍 기분 좋아진 모미지가 자랑하며 으스대자, 아야가 같이 웃는데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간 채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그럼 모미지 씨는 그림을 그리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그러자 모미지가 붓을 단도처럼 파지하며 말했다.

"선공후사(先公後私[각주:3]), 입산필척(入山必斥[각주:4])!"

아야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고 질린다는 목소리로 흐느꼈다.

"어휴, 얜 직업병 여기서도 나타내네."

"너도 직업병 심각하거든?" 무라사가 시크하게 툭 던지자 걸터앉은 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 카라카사 얘는 왜 널부러져 있는겐가?"

후토가 주저앉아 얼굴을 감싼 코가사를 가리키며 물어보자 나즈린이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야, 왜 그래?"

"흑흑, 아까 놀랬더니 배가 고파졌어.."

정말 한심한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는 나즈린과 함께 쳐다보던 모두가 웃음이 터지자. 코가사가 창피한지 겨우 일어나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들지 못하며 흥얼거렸다.

"생각보다 잘 놀라시네요. 남을 놀래키려면 좀 힘들겠어요."

아야가 그림을 들고있는 모미지를 대신해 카메라의 필름을 직접 갈며 묻자, 다가와서 괜찮다며 등을 토닥여주는 뱌쿠렌의 무릎위에 앉은 코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누에 씨가 정체불명의 요괴라 남들 잘 놀래키시는게 특기잖아요. 그럼 코가사 씨에게 어떻게 놀라게하는지 가르쳐 주시는 건 어때요?"

"천젠데?!" 이치린이 감탄하며 외쳤다.

그 말에 거의 모두가 수긍하며 시선이 누에에게로 몰리자, 비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코가사의 눈빛마져 시야에 들어온 누에가 난처한 표정으로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건 내 고유 능력이라고. 말하자면 선천적인거라 가르칠수 있는 영역이 아닌걸."

"그래도 어떻게 놀라게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는 알려줄 수 있을 텐데요."

모미지도 안타까운지 코가사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같이 누에를 쳐다보자, 누에가 난처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쪽 날개의 갈고리 부분을 턱에 괴면서 다른 날개로는 흩날리는 머리를 빗으며 말했다.

"곤란한데. 나는 그냥 내 능력을 쓰면 정말 알아서 놀라버린단 말야. 얘처럼 힘들게 뭘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

"그라제, 백랑텐구 처자는 멀리있는 것을 볼 때 어떤 준비를 하제?"

"어, 그냥 천리안으로 보면 다 보입니다."

"누에도 마찬가지랑께. 설명할 수 없는 재능 같은 것이라 노력하는 코가사에게는 방법은 알지만 할수는 없는 그림에 떡같은 것이제. 쉽게 놀래키는 능력을 흠모하는 코가사도 이런 내 친구가 부럽겠지마는 사정을 이해해주었으면 하이."

친구인 마미조가 누에를 감싸며 말하자 주위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누에도 고마운지 미소를 지으면서 슬며시 바닥에 대고 있는 마미조의 손을 잡았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코가사 씨가 놀래키는게 되지 않으니 누에 씨가 가진 정체불명의 씨앗을 빌려주시면 코가사씨도 씨앗의 영향으로 이상한 것으로 보여 남들이 쉽게 놀라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필름을 다 간 아야가 웃으면서 시범삼아 누에를 향해 사진 몇번을 찍어보며 렌즈를 보고 묻자 후토나 뱌쿠렌도 손뼉을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놀래줄때만 빌려주는 것으로 배려해준다면 코가사 씨도 속상해하고 우울할 일이 없을 거예요. 누에도 조그만 자비을 베풀는 것이 우리 절에서 아름다운 선행이 될 겁니다."

"텐구 말이 합리적이고 일리가 있네. 모름지기 도교에서 세상 모든일은 허망한 것이니 가진 자는 미련없이 더 모자란 자에게 풀어야 하는 법! 베풀수 있음에도 베풀지 않는 것은 탐욕이니 행하여야 하네."

"에이, 예전에 정체불명의 씨앗 한번 썼다가 그 사달이 났잖아. 얘한테 도움은 되겠지만 정말 아무에게나 정체불명의 대상으로 보여주니까 이변으로 오해 받아 신사의 무녀들을 자극할게 뻔해."

"헤에?"

"에이, 아쉬운데."

"그래도 한 두번 정도는 도와줘도 되잖아."

이치린과 나즈린, 무라사나 쿄코, 후토등이 손을 비비면서 한숨을 길게 쉬며 울먹이는 코가사를 슬쩍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실망하거나 '설마 그러겠냐'는 표정으로 누에를 대하자 상황이 민망해진 누에를 대신해 마미조가 누에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과민반응으로 사건이 크게 나먼 코가사 안전이 위험해 지니께 누에도 배려하는 것이제. 그래도 코가사가 섭섭치 않케 2주에 한번이나 한달에 한번 정도는 괜찮을 듯 싶구마이.누에도 그 정도는 해줄수 있을 것잉"께."

누에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자 마미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야가 미소를 지으며 바로 대답했다.

"아, 그거라면 상관 없어요. 그런 걱정하시지 않게 허락하는 즉시 제가 신사들로 튀어가서 잘 이야기 해놓고 5분안에 돌아올테니까요. 바로 빌려주셔도 될 수 있도록 오해사지 않도록 정보의 요지경인 제 신문이 역할을 다 하겠습니다!"

"오오, 대단해!"

"이제야 이 텐구가 제대로 기자 노릇을 하네."

"참, 이렇게 신경써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야 씨."

뱌쿠렌이 코가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인자한 미소로 누에에게 고개를 숙이자 코가사도 안타까운 표정에서 밝아지며 눈물이 고인 눈으로 감탄의 표정으로 답했다.

"아, 뭐.. 그렇게까지 해준다면 뭐. 할 수 없이 빌려줘야지. 빌려주는 거니까 아껴줘야 돼."

누에가 분위기상 어쩌지 못하기도 하고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말하자. 코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다른 손으로 누에의 등을 토닥여준 마미조가 안경너머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야에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카라스텐구 자네 누에에 대해 꽤 자세히 아는 것 같구마이, 능력도, 가진 씨앗도 알고."

"아, 그거요? 당연하죠. '하늘을 나는 배'와 사나에씨의 'UFO 사건'을 취재한게 저잖아요. 기자인데 사건의 내막들을 알고 있는 건 필수죠. 누에 씨 능력으로 모자이크된 사진이 되긴하지만 처음 누에 씨의 사진도 사나에 씨에게 빌려준 제 카메라가 담았고 지금도 담고 있는게 저랍니다!"

"그런가, 얘에게 꽤 관심이 많은거같당께." 

"헤, 정확히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거죠. 제 직업병이거든요."

아야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는 마미조에게 보란듯이 주먹진 오른 손에서 집게 손가락을 펴서 살랑살랑 흔들며 미소지었다.

"와! 고마워!!! 누에!! 정말 고마워!!!"

"고마워!!!!"

감사함에 어쩔줄 몰라하는 코가사의 환호성을 쿄코가 따라하며 귓가 부분이 포닥포닥 흔들릴 정도로 방방뛰자, 다들 웃으면서 모미지의 그림으로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잘 됐구나. 고민거리가 풀렸네."

"응! 모미지도 고마워. 모미지 시간 뺏어서 미안!" 코가사가 우산을 흔들며 고개를 숙였다.

"네 고민이 해결되었으니 시간을 더 유익하게 썼는걸, 계속 하겠습니다."

코코로가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모미지가 그림을 들어보이자 나즈린이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그림에서 가장 잘 안그려지던 부분이 어디야?"

"아, 그건 구도가 잘 안 그려졌습니다. 여기 오른쪽에 산이 있는 것으로 그렸는데 왼쪽을 보는 것을 잘 그려졌지만 앞쪽이나 오른쪽을 보는 것은 어색했습니다."

뱌쿠렌과 마미조가 '흠.'하고 대답하자 쿄코가 입을 열었다.

"붓에 엄청 힘을 주나봐요?"

"그건 워낙 검을 다루다보니."

"직업병이네. 직업병." 무라사가 너스레를 떨었다.

피식 웃는 다른 요괴들 사이에서 아야가 입을 막고 웃자 발끈한 모미지가 귀를 빳빳이 세우고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야! 다음 너 해봐! 너!"

"키킼,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단다."

아야가 터벅터벅 걸어가서 그림을 펼치자, 먹과 여백으로 자신의 검은 단발머리와 옷을 표현하고 콩과 식물인 소목의 붉은 색으로 쓴 토킨을 모미지의 그림처럼 표현하며 살짝 크게 그린 눈과 강조된 귀, 웃는 미소와 한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손에는 주먹을 쥔 채로 문화첩과 엽단선을 찬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미화 남발하고 있네."

"어머, 내 모습이거든!"

"자자, 절에서 싸움은 안 됩니다. 진정들 하시고 아야 씨는 설명해주세요."

모미지와 아야가 옥신각신 싸우자, 뱌쿠렌이 중재를 통해 모미지가 헛기침을 하며 물러나고 마미조와 누에, 이치린과 나즈린이 유심히 보는 사이 아야가 말했다.

"보다시피 저널리스트인 저의 모습을 표현했답니다."

그러자 유심히 바라보던 나즈린이 손으로 그림을 가리켰다.

"손이 주먹을 쥐었잖아?"

"허리춤에 손을 댈 때는 주먹을 쥐거든요."

"참나, 공격성이겄지."

"어이, 거기 멍멍이는 그만하셔!"

"빨간 모자 쓴 애들은 입도 참 폭력적이구만." 혀를 끌끌 차던 후토가 팔짱을 끼며 핀잔을 주었다.

'절간에 불 지르려던 게 더 폭력적이지'라는 말이 나올뻔한 모미지가 겨우 참고 상황을 지켜보자, 주위에서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눈을 본래보다 더 크게 그리셨네요. 희망사항인가요?" 이치린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물었다.

"네, 눈은 클수록 예쁘잖아요. 그리고 더 잘 보이고요."

"모미지처럼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니, 네게 모미지 천리안까지 쥐어줬다간 환상향에 사생활이란 존재하지 않게될걸."

무라사의 말에 주위가 웃음으로 뒤집어지자, 아야가 얼굴이 붉어져 그림을 감싸며 외쳤다.

"그런거 아니거든요!"

"응, 맞어." 무라사도 심드렁하게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칼같이 답했다.

배를잡고 낄낄 웃던 모미지가 허리를 피며 산쪽 방향으로 고개를 들자, 웃던 누에가 눈치껏 모미지에게 다가갔다.

"킥킼, 너무 신나게 웃는 거 아냐?"

"어흌 어흐킄 아오 크크킄크킄."

"자자 이쪽보고. 저 요괴 제법 웃긴 것 같아."

"아우, 그러게 말입니다." 모미지가 누에의 바람대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모미지가 시선을 돌린걸 확인한 누에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웃던 나즈린과 이치린도 눈가가 예민해지며 모미지를 슬며시 바라보자, 자리에 앉은 누에의 어깨에 마미조가 수고했다는 듯이 토닥여주었다.

"그럼 어느부분이 그리기 편했어?"

"제 얼굴이요."

"그리기 불편했던 부분은?"

"카메라요. 더 정교하게 그릴 수 있었는데 번지는 붓의 한계로 무리였어요."

"그럼 그리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뱌쿠렌이 묻자 아야가 여전히 미소로 목가의 리본을 정돈하며 대답했다.

"제 자신을 그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응? 그게 다야?"

"네."

누에가 의아해하며 묻자 , 아야도 누에의 질문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보면 참 이번에는 뭘 찍어대서 기사를 만들까라는 생각이 든다네."

후토가 턱을 괴며 말하자 아야가 민망해져서 헛웃음을 지었다.

"어? 나도!!" 이치린이 반색하며 후토를 향해 외쳤다.

"오, 이교도도 통하는 구석이 있긴 하구만!"

후토와 이치린이 서로 위아더월드를 형성하며 하이파이브를 하자, 입에서 헛웃음만 나오는 아야와는 별개로 거의 다수가 공감의 장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뻔뻔하게도 자신을 너무 예쁘게 그렸어요. 반칙입니다."

모미지가 단호하게 외치자 아야가 여전히 웃으며 주먹을 쥐어보였다.

"저것 보세요. 그림에 나온 주먹이 저런 의미입니다!"

모미지의 회심의 공격에 아야가 깊은 한숨을 쉬며 손을 풀고는 박수를 한번 치며 말했다.

"자, 자.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줄 알겠어요. 여기까지 하고 코코로양은 지금까지 정신없이 진행했는데 느낌이 어때요?"

"꽤 재밌는 경험이었어." 코코로가 즐거울때 쓰는 방화범 가면을 꺼내며 말했다.

"다들 각자 그림만으로 어떤 특징과 성격을 가졌는지 알 것 같아. 나 역시도."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종이에 무언가를 쓱쓱 그리고 있는 것을 본 모미지가 물었다.

"뭘 그리고 있니?"

"응, 모미지 언니 예쁘게 그리려고."

모미지가 뜻밖의 그 말에 엄마미소를 짓자, 아야가 비웃으며 말했다.

"코코로양, 그 언니는 꼬리가 가장 예쁘답니다아~."

주위에서 그 말에 빵터져서 낄낄거리자 얼굴이 붉어진 모미지가 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아야를 노려보았다.

"죽을래? 어디가 가장 예쁘다고?!"

"어머, 그럼 얼굴이 가장 자신있나봐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가 아니라. 자신있는건 맞지만. 하여튼.."

머리를 긁적이며 깊은 빡침을 담은 한숨을 몰아시는 모미지에게 키득키득 웃던 아야가 말했다.

"어휴 잘 좀 생각해보지. 바보."

"야, 똑똑히 봐봐! 넌 반드시 내가 작살내다 못해 아작낼거야!!"

"아, 네에. 네에. 말로는 누가 못 박살내나. 저도 말로는 레이무고 마리사고 유카리고 수천번은 이겼겠네."

그러자 모미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씩씩 거리며 상기된 채로 외쳤다.

"그럼 내가 그럴 필요없이 경제적으로 한번에 등뼈부터 박살내주지."

"호, 내 손도 못잡는 굼뱅이가? 정말?"

"자자! 적당이들 좀 하세요! 서로 짓굿게 굴지 말고 코코로양의 그림부터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도록 합시다."

뱌쿠렌의 중재에 자리에 앉은 모미지와 아야가 빡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표정관리에 들어가자, 나즈린이 눈치껏 그런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을 굴렸다.

"아무튼, 그려줘서 고마워."
"뭘, 가까이 있어서 언니가 잘 보여 그린 거니까 부담스러워 하지마."

"흐흠, 그래. 고맙다." 모미지가 방금 전까지 상기되어서 그런지 쉽게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모미지 양은 어땠었나요?" 뱌쿠렌이 묻자 모미지가 말했다.

"저 까마귀만 빼면 정말 즐거웠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이네. 저도 저 멍멍이만 빼면 뜻깊은 자리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즐거웠답니다."

아야와 모미지가 서로 으르렁대자, 코코로가 무표정으로 한숨을 입김불듯 내뿜으며 둘의 소매를 각자 다른 손으로 잡아 끌었다.

"이왕 이렇게 시간을 보냈응께 코로로헌티 유익한 시간이 됬쓰면 좋겠당께."

담뱃대를 만지며 인자하게 미소짓는 마미조가 두손을 무릎에 포개고 고개를 끄덕이는 누에와 함께 앉아서 말하자,  코코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림은 오랜만에 그렸는데 미술경연대회가 아니라 그린 의미와 감정을 본다는게 참신하고 그리는데 부담이 없어서 좋았어요. 하지만 나에대해서 노출된다는 점에서 부담은 좀 있었어요."

이치린이 대답하자 코가사나 누에, 마미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야 당연히 부담이 되실거예요. 그래서 우리끼리만 아는거구요. 그런건 기사에 싣지 않을거니까 걱정마세요."

아야가 비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자신의 심장에 두드리며 말하자, 다들 믿지않는 눈으로 '에?'라는 한 단어로 답했다.

"아니, 이 요괴들이! 붕붕마루 신문은 이제 그런 사소하고 사적인 걸 담을만한 사적인 신문이 더이상 아니랍니다."

"어련하실까." 무라사가 팔짱을 끼며 흘겨보면서 말했다.

"진짜라니까요? 중요한스캔들은 담지만 가십거리는 가십거리일뿐이예요. 이 자리는 비밀을 보장하는 자리니까요. 필요없는 필름은 바로 폐기처분한답니다."

모미지가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숨긴 필름을 만지며 아야를 바라보았고, 후토와 마미조, 누에, 쿄코와 코코로도 유심히 아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저도 이 자리가 코코로양이 많이 배우고 사회성을 기르면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자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뿌듯하답니다. 나무삼."

"각자 미술표현 방법이 있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네. 뭐 어떻게든 감정에 대해 배우는 멘레이키에게 감정적인 접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뱌쿠렌과 후토가 말을 마치자 따라 외칠려고 입이 근질근질한 쿄코가 외쳤다.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에에!!!"

귀를 막은 코로로가 표정없이 놀란 가면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쿄코가 만족스러운지 방방뛰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도 예쁜 그림들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코코로 뿐만 아니라 저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어 감사드려요!"

감사의 절을하는 코가사에게 누에가 슬쩍 얼굴을 붉히며 다른 쪽을 쳐다보고 마미조가 흐뭇한 표정으로 '껄껄'웃으며 팔꿈치로 친구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웃어주자. 아야도 흐뭇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나도 주인이 없긴 했지만 재밌었던거 같아."

"응, 고마워."

생각할 것이 많아진 나즈린이 살짝 눈가를 찌뿌리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지만 코코로의 반응에 주위가 쏠려서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나도 이런건 처음이라 재밌었어."  무라사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손을 들며 대답했다.

"오늘 이렇게 서로가 주제를 정하고 그려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할게요. 아야 씨와 상의하여 잡은 주제인 만큼, 그림은 눈과 손을 통해 자신의 의사나 감정의 이미지인 심상(心象)을 표현하는 시각매체이기에 미세한 손의 떨림이나 그린 물체에 따라 자신이 바라거나 생각하는, 또는 자신의 그대로를 투사(投射)하는데 효과적이랍니다. 특히 자기가 자신에 대해 그리기때문에 자아에 대해 이해하기 쉽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통해 상호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되고 멘레이키인 코코로 양이 감정에 대해 다수의 의견과 표현을 듣고 이해하고 바라보면서 좋은 경험이자 학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어요."

어깨를 으쓱이며 표정이 밝아진 아야가 인자하게 웃으며 차분히 설명하는 뱌쿠렌에게 플래시도 터트리며 사진을 찍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몇몇과 함께 뱌쿠렌도 고개를 한번 숙이며 화답하고는 표정없이 미소짓는 노인가면으로 자신을보며 여러번 박수를 치는 코코로를 향해 미소로 답했다.

"자, 그럼 다들 붓이나 물감같은 미술도구 정리하고 마치도록 합시다. 수고많았습니다."

뱌쿠렌의 합장과 함께 정리를 위해 손길이 분주해지고 아야도 재빠르게 움직이자, 문이 벌컥 열리며 토지코가 뛰어온 것처럼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헉헉, 후토! 내가 너무 일찍온거 아니지? 끝났어?"

"맞네, 토지코. 지금 막 끝났는데 타이밍 좋게 왔군그래!"

"헉,헉 아이고 숨차. 데리려 오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녔잖아. 딱 맞춰왔나보네."

자리에 드러누워 숨을 고르던 토지코가 겨우 진정된 척하면서 코코로를 슬쩍보며 말했다.

"멘레이키도 그대로 있었네. 어흐흡, 흐업, 나 숨좀 커컥, 고르고 돌아가자. 혹시 물 없어?"

"그러도록 하게나!" 후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물감을 병에 담으면서 말했다.

쿄코가 귀를 쫑긋 거리며 쫄랑쫄랑 걸어서 구석의 물병을 건네주자, 받아서 과장된 몸짓으로 벌컥벌컥 들이킨 토지코가 물을 잘못삼켜 코로 역류하는 바람에 기침을 남발했다.

"쿠에엑! 쾌액! 우웨켁!" 

"잘한다. 잘해. 도교것들." 이치린이 혀를 차며 후토와 함께 토지코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날도 싹싹 더운데 뭘 그리 급하게 뛰어왔는가. 토지코여."

"쿠에켘! 아으, 날아왔거드으흐흐크에퀘에!"

"쯧쯔 코가 엄첨 매울 것이니 누가 안쓰는 수건좀 가져다주게."

"잠깐만, 지금 다 치우고 있는 중이라. 카라스텐구가 제일 빠르니까 얼른 건네드리는 게 좋겠네."

무라사가 말함과 동시에 쏜살같이 아야가 토지코에게 수건을 가져다주자, 무라사가 슬며시 웃었다.

"참, 자존심이라는 것 덕분에 다루기 편하다니까."

코를 킁하고 푸는 토지코 사이로 쪽과 치자를 치우던 마미조가 살짝 내려간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고는 아야를 유심히 쳐다보았고, 물감이 묻은 바닥을 쥐들과 같이 닦던 나즈린과 누에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이, 열린 문으로 유유히 들어온 운잔이 얼굴을 비추면서 뭘해야할지 몰라 지켜만보며 볼을 긁자, 이치린이 일부러 일어서서 외쳤다.

"운잔! 뭘 하다가 늦은거야!!"

어쩔줄 몰라하는 운잔이 미안한 표정을 짓자, 이치린이 아야와 모미지 눈치를 슬쩍 보고는 발끈하며 말했다.

"수업 다 끝났잖아. 찾으러 가려다가 수업 때문에 못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쏘다니고 다닐거야!"

나즈린과 마미조, 누에가 눈치를 채고 속으로 피식 웃는 사이, 주변에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지켜보기만 하거나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바닥에 묻은 물감을 닦거나 그림을 전시하게 붙이는 등, 주위 정리에 들어갔다.

"와, 이치린 그림 진짜 잘 그렸어."

"잘 그렸어어!!!"

"봐도 예쁘게 잘 표현했단 말야."

코가사와 무라사, 옆에 낀 쿄코가 서로 한마디씩 하며 감탄하자 의기양양해진 이치린이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어깨를 활짝 폈다.

"내 그림이랑 너무 차이난단 말야. 이렇게 예쁘게 표현하는 애들 부러워."

"그러게 말야. 네건 솔직히 꿈에 나올까 무섭지만. 크크킄."

"꿈에 나올까 무섭지마아아아안!!!!!!"

"아잇! 뭐야!!"

낄낄 웃는 무라사와 토라진 코가사 사이로 아야나 모미지, 코코로가 후토의 그림을 보며 사진을 찍거나 감탄하는등, 그림감상이 무르익자, 후토와 이치린은 서로를 슬쩍 곁눈질로 쳐다보고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동시에 고개를 돌리면서 팔짱을 끼며 자리를 피했다.

"참, 주지승님, 알려드릴게 있어요."

주변 요괴들에게 할일을 정해주건 뱌쿠렌이 아야를 쳐다보자, 아야가 모미지 근처에 있던 배낭을 열어서 자신의 붕붕마루 신문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산에서 이틀 뒤에 행사를 하거든요."

"어디 보죠. '요괴의 산 하계제(夏期祭)가 26일 화요일에 개막, 산천과 초목의 복구와 자연의 소중함을 축하하는 이 자리에서 주민과 외부손님들을 산에 초대하여 매서운 여름의 무더위를 이겨내는 행사를 개최한다. 또한 대텐구령으로 경계태세를 일시 해제하고 입산심사를 완화하여 산의 정책적 방향인 '부분적 개방주의'를 축제기간동안 누그러트릴 전망이다.'라.. 산에서 축제를 여나보죠?"

"네. 아무래도 저희가 1년 전 침략으로 산의 자연이 박살난걸 주위에서 도와주셔서 복구했으니까 그 감사함에 보답하고자 이렇게 대텐구님이 축제를 여시기로 했거든요."  

"좋은 취지네요. 보금자리를 다시 찾은 그런 자리는 다들 방문해야죠. 나무삼."

신문을 접으며 눈웃음을 지은 뱌쿠렌에게 아야가 감사의 표시로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빙긋 웃었고 모미지는 경비 및 입산심사의 최고 담당자인 자신이 이러한 산의 소식을 아야의 입에서 먼저 듣는 것도 당황스럽고 자신이 뻔히 산 밖에 있는데 외지요괴를 들이는 자리에서 경계태세를 완화한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눈을 꿈뻑꿈뻑하며 입을 벌리고 아야만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네, 그런데 오늘이 일요일인데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에 행사를 하네요?"

"아, 대텐구님이 주말에는 모두 쉬어야 한다고 주장해서요. 평일인 월요일에 행사준비를 하자는 본부가 있었답니다."

두 손을 배에 모으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여 빙그레 웃는 아야의 말에 모미지도 '그랬었나?'라고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막고는 부하로서 상관인 대텐구의 지시와 성품에 탐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손으로 복구한 산의 모습이 참 기대되네요. 이틀 뒤에 다함께 보도록 합시다."

뱌쿠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즈린과 턱을 괴는 이치린, 심각해진 표정으로 날개의 화살표같은 부분으로 머리를 빗는 누에와 팔짱을 끼며 빛이 반사된 안경너머 매서운 눈매로 바라보는 마미조를 지나 누에가 구경하라고 건네준 정체불명의 씨앗을 애완동물 다루듯 신기해하는 코가사와 이 날씨에 산을 타야하는 거냐며 투덜거리는 무라사 사이에 있던 탁자에 붕붕마루 신문을 구석에 내려놓으며 놀러간다며 신나서 박수를 치는 코코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몇 그림들은 벽에 붙여놓거나 다른 요괴들이 자신의 그림을 가져갔고, 자신의 그림을 가져가기로 한 코코로가 물감이 다 마르자, 돌돌 말아서 후토, 토지코와 같이 돌아가고 빗자루 질을 하는 문지기 쿄코등 절 요괴들의 배웅과 함께 아야와 모미지도 인사와 함께 돌아갔으나 그녀들은 도착할 때까지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모미지가 던진 배낭을 아야가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로 뺏듯이 잡은 뒤, 가라는 듯이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서로 사라지듯 제 갈길로 돌아갔다.



"말한 것처럼 누구나 내려놓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나 말하는 마땅한 손해라면 손해보며 사세요. 번뇌중의 탐욕은 내 것 뿐만 아니라 남의 것도 챙기는 것, 나만의 행복을 가진자는 남의 슬픔도 안고 가게 되니 그 업보가 깊어지는 법입니다. 관계에서 관심이든 사랑이든 내가 얻고 싶은 몫을 챙기려고 하면 생기는 실망과 상처로 백년가약이 사상누각이 되는 것이죠. 번뇌를 내려놓고 불심을 통해 내 몫을 털면서 남에게 대승적으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의지하고 다가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석가가 말하기를 베풀 수 있는 7가지로 첫째, 남의 일을 도와주는 신시(身施), 둘째, 마음의 벽을 허물고 따뜻하게 정을 주며 대하는 심시(心施), 셋째. 다정한 눈길로 상대를 보듬어주는 안시(眼施), 넷째, 밝은 미소로 마주하고 정겹게 상대방에게 화답하는 화안시(和顔施), 다섯째로 언사시(言辭施)라고 하여 친절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것이며 여섯째로는 남에게 자리를 내어서 양보하는 상좌시(床座施), 마지막 일곱째로 남이 속으로 필요한 것을 간파하여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찰시(察施)가 있으며 그중 언사시와 화안시가 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손 쉽게 남에게 베풀고 서로 쉽게 좋은 모습을 지낼 수 있습니다. 자금의 손해가 아니라 웃어주고 상대를 생각해주는 시간의 '손해'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손해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절에서는 손해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욕심을 내려놓고 살도록 합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쇼가 말을 마치고 목탁을 두드리자, 모인 승려들과 중생들이 합장을 하였고, 쇼가 인자한 웃음으로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범종을 칠 시간이군요. 이것으로 법회를 마칩니다. "

말을 마친 쇼가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즈린이 준비해준 간식과 술을 마시고는 불경을 어깨 사이에 끼우고 목탁을 챙긴채로 의기양양하게 일행이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오늘은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법회에서 좋은 가르침을 전했어. 계속 공부해서 비사문천의 화신으로서 더 좋은 가르침을 설파해야지.'

그렇게 여러가지 보람찬 생각을 하며 범종각 뒤쪽을 지나가던 쇼의 귀에 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파고들었다.

"정말 여기까지 왔으니 한 건은 터지겠지?"

"그렇다니까. 여기 비사문천인 호랑이요괴가 돈을 불러온다는 소문이 마을부터 자자하지 않나. 자네는 집에서 잠만 잤는가?"

"그전에는 법회에서 주지승님 말씀만 들었지 않나. 참으로 불심깊고 좋은 말씀을 잘하시는 분이시지.

"그렇고말고, 다만 그 분은 대표이신 분이 요괴들만 챙기지 않나. 이 비사문천님은 인간도 복으로 챙기신다네."

"으하하하핫! 에끼 이 사람아! 농도 잘하는구만."

"얼굴까지 보고 법회까지 들었으니 재물이 굴러들어오길 기대해봐도 좋네. 그러라고 온거 아닌가."

"으허허, 부처님의 자비도 받고 비사문천님의 재복도 받고, 명련사는 참 믿을만 하구만."

"암, 그렇지. 이 사람아. 하하하핫."


그 말을 들은 쇼는 표정이 굳으며 순식간에 세 명 사이로 파고들어 창 대신 가지고 있던 목탁을 두드리며 말했다. 

"딱한 중생들이여, 내가 누군진 아십니까?"

"헉! 아이고,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하, 왜 그러십니까. 살려만 주십쇼, 비사문천님."

"암요. 비사문천님 아니십니까. 헤헤헤."

"방금 저의 법회를 들으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쇼가 차갑고도 매서운 눈초리와 말투로 당차게 버럭 외치자,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싹싹 비었다.

"아무래도 그대들은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으셨나봅니다. 제 능력이라는 잿밥에 말이죠."

아무래도 요괴이기에 목숨의 위험과 더불어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들이 눈치를 보며 말을 못하자. 목탁을 계속 두드리며 쇼가 말했다.

"분명이 번뇌를 버리고 그중에서토 탐욕을 하지 말라고 했건만 대놓고 탐하다니 당신네들은 절에 있을 자격이 없군요! 이 절의 대표인 비사문천도 최고의 법회를 위해 불경을 공부하고 부처님의 말씀에 귀의하도록 최선을 다하는데 그러한 마음이 이심전심되기는 커녕 일확천금을 꿈꾸다니! 당장 반성하고 참선하도록 하세요!!"

감정이 들어간 목탁소리에 그들이 벌벌 떨며서 달아나듯 대웅전으로 눈치껏 달려가자, 쇼가 한숨을 길게 쉬면서 목탁을 든 두 손을 내려놓았다.

"참나. 뭐 저런."

그런 그녀는 한숨을 한번 쉬고 위에 있던 범종을 바라보면서 뒷짐을 지며 장고하기 시작했다.

'나의 능력은 매물을 불러모으는 능력, 이 능력으로 신도들이 몰린다지만 어쩌면 우리 절에서 탐욕이라는 번뇌는 내가 부르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는 한숨을 더 길게 쉬면서 내면속에서 나오는 한가지 생각을 덮어두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공부하고 노력해도 주변과 세간인식은 비사문천인 나보다 엄연히는 낮은 주지승이지만 거의 모든걸 이끌어가고 있는 뱌쿠렌에게 향해있는 걸 보면 불교계에서마저도 마치 나는 명예직으로 여겨진단 말인가?'

심호흡을 몇번하고 번뇌가 사라지도록 쇼가 한없이 목탁을 치자, 목탁 소리를 들은 나즈린이 다우징 봉을 세우면서 그녀를 불렀다.

"주인! 식사할 시간이야. 뭐하고 있어?"

"아, 나즈린. 번뇌를 털고있던 중입니다."

이마와 팔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소맷자락으로 쓰윽 닦은 쇼가 물집잡힌 손으로 인사하자, 나즈린이 놀라며 말했다.

"아니, 무슨 번뇌를 털어도 몸을 사려야죠! 뭔 목탁을 물집 다잡힐 정도로 친데.. 차가운 물 가지고 올테니까 아프지않게 찜질 좀 하세요, 무라사에게 부탁해서 젓가락질 무리하게 할 필요없이 부워먹을 수 있도록 식사는 죽이나 덮밥, 오차즈케로 준비해 놓을께요."

그리고는 애써 웃는 쇼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더운데 법회하느라 고생 많았어. 주인. 몸도 좀 챙기고. 요즘은 우리 절 최고인 비사문천답게 공부 열심히 하느라 멋지니까 좀 푹 쉬어,"

나즈린의 미소에 눈가도 비로소 웃음을 띤 쇼의 미소가 나즈린의 눈동자에 비치자, 쇼가 입을 열었다.

"네, 잘 쉬도록 할게요. 걱정하지 않도록."

웃으면서 같이 팔짱을 끼고 방을 향해 날아가면서 나즈린을 슬쩍 본 쇼가 흐뭇한 눈으로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되네었다.

'그래, 나에겐 서로 믿고 챙겨주는 나즈린이 남아있으니까.'

"자, 속도좀 내죠. 나즈린. 오늘 좀 배가 고프네요."

"어휴, 간식에 뱌쿠렌 몰래 술까지 챙겨드렸더니만. 요즘 학구열도 높아지시더니 먹성도 높으셔. 네, 가요. 가."

나즈린이 토라지듯 투덜거리자 쇼가 웃으면서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다들 기다리고 있던 식사자리로 들어갔다.

  1. 番傘 우천 시 쓰는 일본 전통우산 [본문으로]
  2. 南無三 불,법,승(佛·法·僧)이라고 불리는 3보에서의 믿고 신앙하는 귀의를 나타냄 [본문으로]
  3. 사사로운 개인적 일보다 공적인 일을 먼저 앞세운다. [본문으로]
  4. 산에 들어오면 반드시 물리친다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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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긴 했지만 그래도 술도 얻어마시고 많은 정보를 얻어낸 누에는 마미조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이 생겼다는 뿌듯함와 술기운에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명련사로 돌아왔다.


PM 4시 50분 명련사


"나 왔어! 뭐해?"

재빨리 몸을 피한 토지코를 보지 못한 채, 벌컥 문을 열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던 누에가 묻자, 거울들과 함께 지필묵과 도화지등 수많은 종이와 벼루, 붓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엎드리거나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두가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누에를 바라보았다.

"아, 보다시피 다들 그림 그리고 있지."

접시에 치자, 쪽등 천연재료를 개어 색을 내 천연 물감을 만드는 무라사를 비롯해 흐뭇한 표정으로 사진찍기 바쁜 아야의 시원한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붓으로 종이에 그림그리기 여념이 없던 요괴중 두건을 벗은 이치린이 말했다.

"얘 가르치던 와중에 다들 무슨 그림이람?"

누에가 다른 요괴들이 그린 그림들을 흘깃 보며 물었다.

"아, 이것도 교육의 일종이라는데."

"자화상을 그려보는 거예요. 자기가 자신의 얼굴을 그려보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식해보고 주관적으로 평가해보는 자아상()을 확립하는 거죠. "

아야가 대답하며 누에의 사진을 찍자, 누에가 표정을 찌뿌렸다.

"사진 찍지 말라구!"

"헤헷, 어차피 자체 모자이크 되시니까 상관 없잖아요."

한숨을 쉬는 누에에게 아야가 더 이상의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돌리자, 코이시가 했던 말들이 떠오른 누에는 아야의 뒤통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마미조에게 곁눈질로 싸인을 보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 그린 요괴는 다른 요괴 얼굴들도 그려보기로 했어!"

코코로가 대답하며 열심히 붓으로 색을 칠하자, 마미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누에는 오랜 친구인 내가 잘 아니께 그려줘야겠제."

"어? 마미조오..  씨는 벌써 다 그린거야요?"

쿄코가 붓을 잡은 손을 흔들고는 신기해하며 물었다.

"물가에 비친 얼굴을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봤는디 시간에 따라 변한 모습까지 다 기억한당께."

"하하, 마미조 씨야 갈수록 멋지게 회춘하시잖아요."

"흐히힛, 주지승도 날이 갈수록 머리부터 얼굴까지 화사하구마이."

뱌쿠렌의 너스레를 받아준 마미조가 같이 웃자, 누에가 멋쩍어 얼굴을 붉히면서 자리에 앉았다.

"글고 누에의 본 모습을 더 많이 본 내가 적임자인기 당연한거제."

"하긴, 오랜 친구분이시니, 저야 모자이크된 미확인 물체로만 담아내고 있는데 딱 적당하시네요!"

아야가 바싹 붙어서 희희낙낙한 미소로 셔터를 신나게 누르자, 누에가 뱌쿠렌이 건네준 종이와 코코로가 건네준 붓을 받으면서 슬쩍 주위의 눈치를 보며 아랫 입술의 살을 살짝 물었다.

'나 술좀 마셨는데 이거 해도 될려나.. 에라 모르겠다.'

모미지가 무심하게 대충 혀를 차면서 그리는 것을 본 누에가 한쪽 볼이 부풀어 오르도록 날숨을 뱉은 후, 고개를 끄덕이며 붓에 물감을 뭍혔다.

"오늘 느낌 좀 받았는데 붓 발이 안 서네. 끝이 너무 갈라지는데,"

나즈린이 자신의 얼굴에 동그랗고 큰 귀를 그리면서 동공이 커지고 낯빛이 상기되어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 네가 먹좀 갈아라."

"응, 그래서 열심히 그리는 중이야."

물감을 풀고 먹을 갈던 무라사가 한 소리를 하자 그녀도 한 입으로 말하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는 슬쩍 다른 요괴들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다 가지각색으로 그렸네."

"야, 그린다며. 내 눈에만 보고만 있는 것 같이 보이냐."

나즈린이 보채지 말라는 듯 웃으면서 슬쩍 다른 그림을 바라보았다.

"어?"

도중에 끊긴 곡선으로 외눈에 혀를 내민 보라색 우산을 작게 그린 코가사가 수평선이 강조된 상태에서 왼쪽에 붉은색 봉선화 물을 붓에 적셔 바탕을 칠하자, 눈을 깜빡이며 눈썹을 치켜 올린 나즈린이 물었다.

"너 그거 우산."

"응? 아, 난 츠쿠모가미잖아. 이 우산 먼저 그리고 한쪽에 바탕 다 칠하면 이 얼굴도 그려야지."

"그럼 왜 벌써 바탕을 붉게 칠하는데?"

"그거? 납량특집스럽게 하려고! 놀랍지?"

"무슨 수박 과육인줄 알았잖아."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붓으로 푸른 쪽물을 붓에 뭍혀 붓끝의 사이사이 미세한 갈라짐으로 자신의 머리모양과 머릿결을 묘사해 칠하는 것을 본 나즈린이 살짝 감탄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코코로의 그림을 바라보자, 그림에는 용지 위쪽에 가면들이 그려져 있었다.

"츠쿠모가미인 얘도 은근히 비슷하게 그렸네."

"얘네들도 다 내 얼굴 표정이니까!"

코코로가 아무런 표정없이 마미조를 쳐다보며 말하자 마미조가 콧등에서 내려간 안경을 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66개 다 그리려면 부지런히 그려야할텐데."

아야가 옆에서 서둘러 사진을 찍고 나즈린이 너스레를 떨자 코코로가 붓을 잡으며 말했다.

"아, 도중에 몇개는 생략할거야."

"응? 다 네 얼굴인데 그래도 돼?"

"그럼, 얼굴 그림 그릴 때 코 생략하는 거랑 같은 거 아냐."

나즈린이 잠시 멍해져서 생각을 하다 '그런가.'하고 납득하며 붓을 잡자 무라사가 다가와 말했다.

"너 그림은 어떤지 볼까?"

"야! 나 못 그렸단 말야."

뺏다시피 잽싸게 나즈린의 그림을 들어본 무라사는 용지 아래쪽에 여러번 스케치되어 배경에 그림자와 같이 그려진 두 귀가 얼굴만한 나즈린의 전신이 그려져 있는걸 보고 웃었다.

"앜크크크킄. 야, 색칠만 잘하면 되겠넼크킄. 얼굴이 세 개야 세 개.ㅋㅋㅋ"

"아잇! 야! 안 내놔!!"

"자자, 볼거 다봤니 뭐.크킄."

무라사가 건네준 그림을 재빨리 뺏어든 나즈린이 얼굴을 붉히며 민망한 표정으로 아야의 눈치를 보자, 아야는 카메라를 잔뜩 찌뿌린 얼굴의 모미지에게 필름을 갈라고 건네주고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는 넌 벌써 계절타냐?"

물가에 배 한척 위에 발이 생략되어있고 몸쪽이 살짝 크게 그려져긴 팔로 늠름하게 서있는 선장의 모습으로 표현된 그림을 나즈린이 흘겨보며 가리키자 무라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압!"

"예압은 무슨."

두건을 벗은 이치린이 파란 쪽색 물을 붓에 뭍혀가면서 자신의 푸른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그려가며 핀잔을 주자 필름을 능숙하게 갈아치운 모미지가 말했다.

"농도로 명암표현이라니 수묵화같아 느낌있군요."

"어머 그럼, 그러면 이렇게 분위기도 살고 예쁘게 나오잖아."

자신의 얼굴이 담긴 거울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짓던 이치린이 눈동자를 그린 부분에 묽게 뭍힌 쪽물을 튕기듯 붓으로 쓸어내려 푸른 자신의 눈색깔을 표현해내자 바라보던 모미지가 감탄하여 들고있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와, 작품이네요."

"까핫, 알아주니 고마워."

"모미지! 카메라 다 갈았어?"

모미지가 인상을 쓰며 팍 치듯 카메라를 건네주자, 쏜살같이 카메라를 집어든 아야가 셔터를 눌렀다.

"후후후, 나는 자네처럼 백지에 머리색을 칠할 필요가 없다네!"

까르르 웃으며 이치린을 향해 외친 후토가 자신의 긴 백발을 쓸어내렸다.

"어, 저도요!"

"아, 백랑텐구 그쪽도 같은 백발었지!"

후토와 모미지가 눈이 맞아 서로 하이파이브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기가 찬 이치린이 혀를 차며 그림을 마저 칠했다.

"그럼 둘 다 합쳐서 탈색조네."

"뭐얏!"

건너편에서 꼭두서니에서 얻은 분홍색 물을 칠해 옷을 칠한 쿄코는 작게 그려져 좁은 어깨와 몸에서 바깥으로 뻣은 팔, 곧은 선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그림에 쪽물과 녹색 쑥물을 섞어 청록색을 만들고 머리색을 칠하며 조심스럽게 작품을 완성해갔다.

"자, 다들 열심히 그리고 계시네요. 다들 작품을 보여주면서 그리면서 소감이 어떤지, 완성하신 분들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와 느낌에 대해 말해보도록 합시다."

"어? 꼭 보여줘야 하는 거예요? 나 진짜 잘 못 그렸는데."

쿄코가 당황하며 말하자 뱌쿠렌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누가 잘그렸네 하는 자리가 아니니까요."

"그치만 내가 날 너무 못 그린거 같아 창피한데."

"에이, 그런 걸로 뭐라고 할 자리가 아니잖아요. 열심히 자신에 대해 표현할 수 있으면 되는 거죠. 아니면 계속 강조하는 그런 '부정'속에 '잘 그리고 싶은 욕구'가 담겨져 있는걸 수도 있고요."

아야가 베시시 웃으며 사진을 한번 찍고 말하자 쿄코와 뱌쿠렌, 마미조가 슬쩍 아야를 쳐다보았다.

"마미조, 다 그렸어?"

볼쏙 옆에서 마미조의 그림을 바라보던 누에가 날개를 접으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마미조 실력은 그대로라니까."

"누에, 네는?"

"알면서, 나 이런 거 안 내켜."

"우매한 불교 것들에게 내 그림을 먼저 선보여줘야겠군!"

소매를 너풀거리며 당차게 일어나 자랑하듯 그림을 펼쳐보인 후토가 의기양양하게 들어보이자, 백지의 3분의 2을 차지하는 후토의 모습이 강한 선으로 별다른 눈동자 없이 원으로 묘사된 눈과 코, 입과 더불어 미소를 품은 얼굴로 승리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대단하네, 대단해."

이치린이 말의 의미와는 달리 질린다는 표정으로 하이톤으로 말하자 아야가 사진을 한번 찍고 문화첩과 펜을 꺼내며 물었다.

"그림에 대해 설명해 주실수 있나요? 후토 씨?"

"그럼! 이 그림은 말이지."

후토가 팔을 쫙 피면서 한바퀴 돌리며 말했다.

"눈 앞에 보이는 불교 중생들을 물리치고 태자님께 칭찬받을 준비하는 즐거운 내 모습을 표현했지."

"저 질문!"

나즈린이 손을 들자, 아야와 뱌쿠렌이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후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중생?"

"기가 막혀서 그러는데 탄막좀 던져도 돼?"

"응, 안 된다! 다음 질문!"

후토가 돌아보지도 않고 묻자 아야가 손을 들며 진지한 표정으로 노려보듯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럼 후토 씨는 그림에서 불교 쪽을 물리친 것과 그저 태자님에게 칭찬받을 생각중 어느 것이 더 큰 기쁨인건가요?"

마미조가 '허허'하고 웃고 누에가 내려간 마미조의 안경을 다시 올려주는 사이, 코코로도 모미지에게 무릎배게를 한 상태로 기대며 아야의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카락을 누그러트리자. 모미지가 자신의 복슬복슬한 털꼬리를 쿠션처럼 코코로의 바닥과 옆구리의 사이에 끼워주어 편안한 상태로 집중해서 쳐다보았다.

"어.. 음, 그야.. 그냥 둘 다 즐거운 사실이지 않겠나."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후자가 전자에 대한 보상같이 들리잖아요. 말의 문맥이나 어조에 있어서도 더 강조되어 있고요."

당황한 후토가 손을 꼬며 목에는 핏대가 미세하게 떨리며 시선은 앞에 있는데 눈동자는 아래를 향해있는 상태로 허둥지둥 대답했다.

"시,신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그야 딱 봐도 무척이나 흐뭇한 광경이지 않은가."

질린 표정의 불교 쪽 요괴들과 대비된 후토의 모습에 아야가 문화첩에 열심히 적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저 그림만 아무런 배경없이 그냥 보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퍽이나 행복해 보이지. 뭐."

"퍽이나 행복해!!!!"

무라사가 쿄코의 제창과 함께 비꼬듯 냉소적으로 말하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워 보입니다."

"즐거워 보입니다아!!!!!"

모미지가 하필 물어본게 아야라 인상을 팍 쓰면서 바람에 날리는 코코로의 머리를 손으로 빗어주며 대답하고 쿄코가 다시 제창했다.

"항상 볼 때 적의에 찬 모습이었는데 누구한테 이겼는지는 제쳐두고 이렇게 웃는 모습도 예쁘시네요."

뱌쿠렌이 합장하며 미소로 말하자 적장 급이 인정했다는 명제가 뇌리에 꽂힌 후토가 항복이라도 받은 것처럼 정말 기쁜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 하니께 그림이 큼지막하고 하나하나 강하고 굵게 그려진게 딱 봐도 행동적이고 주관 뚜렷하고 저돌적일 정도로 자신감 넘치게 보이는 구마이. 세상을 보는 눈이 강조되어 있지 않으니께 바깥에 무신경하거나 자기 중심일 수도 있겠지 말여."

뱌쿠렌이 실눈에 가까운 눈웃음을 지은 채 마미조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문장이 너무 길어 따라할 타이밍을 놓쳐서 놀란 쿄코와 누에, 코가사와 코코로등 주위가 그녀를 바라보자, 바람에 날려 안경에 뭍은 머리카락을 입김으로 후 불며 털어낸 마미조가 안경을 쓰지 않고 실눈으로 다시 당황하는 후토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뭐, 연륜의 식견이라는 것이제." 

"와, 멋있다. 마미조!"

누에가 감탄하자 마미조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주관적인 존재로서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당께. 그동안 쭉 지켜봤던 저 도교 아가씨의 행동에 대한 관찰과 내 경험에 비추어 추론하믄 그럴 경향이 높다는 것이제."

"흠흠 뭐 여러 존재를 오래본 자가 보기엔 그래 보일 수도 있겠지."

후토도 부끄러운듯 다른 쪽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물면서도 굳이 부정은 안하며 그림을 내려놓았다.

"오호, 그렇게 볼 수도 있었군요! 다음은 누가 할까요? 제가 보기엔 말이죠."

아야가 문화첩에 빠르게 기록한 뒤, 베시시 웃으면서 의기양양하게 누에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음은 우리의 호기심덩어리! 누에 씨로 갑시다!"

"뭐래. '너'의 호기심이겠지."

모미지가 태클을 걸자 무라사도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아니, 왜 나야! 속셈 뻔히 보이게 할래!"

"아니, 싫으면 싫은거지 왜 그렇게 과민반응이세요."

아야가 카메라를 들면서 슬며시 웃는 표정으로 묻자 누에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카메라부터 치워!"

"에이, 취재중인데요. 어차피 누에 씨 능력 때문에 잘 찍히지도 않아요."

셔터를 누르는 시늉을 하는 아야가 자신의 카메라를 내려다보며 말하자 주위에서도 누에를 쳐다보았다.

"누에야 정체불명의 요괴니께 그럴 수 밖에 없제. 싫으면 싫은 거니께 다들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장께."

마미조가 담담한 어조로 말하자 아야가 아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자리는 다들 알다시피 코코로 양 뿐만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개방하는 동등한 자리입니다. 비사문천님이 절 일로 지금 이 자리에 없지만 적대적이던 도교의 후토 씨까지 체면없이 참여한 이상 예외가 있다면 화합을 꿈꾸는 함께한 이 자리의 의미가 퇴색되겠죠. 정체를 밝히자는 자리도 아닌데 민감하겠지만 누에 양도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게 제 바람이네요."

뱌쿠렌이 그렇게 말하자 나즈린과 코가사, 이치린등이 고개를 끄덕였고 누에가 깊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

"에이.. 뱌쿠렌이 그렇게까지 말하면 할 수 없지 뭐."

"누에, 저기 말여."

마미조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누에가 그림을 보여주자, 다들 그림을 다시 쳐다보며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게 뭐야?!"

코가사가 화들짝 놀라며 외치자, 코코로와 모미지, 나즈린과 이치린, 후토등 모두들 의아하게 바라보았고 아야는 흥미로운 눈초리로 셔터를 눌렀다.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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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조그만 빛 사이로 어둠만이 가득한 심연의 통로에 주저앉아서 부채를 살살 흔들며 바람을 쐬는 쿠로다니 야마메를 만난 누에는 그늘이 선사하는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까 우리가 쫓던 그 괴생명체의 주인공인가 봐?"

소매를 접어 반팔인 상태로 슬며시 고개를 돌린 야마메에게 누에가 웃음을 보였다.

"아무도 오기 싫어하는 지저에 이렇게 대놓고 찾아오는 건 목적이 있다는 거겠지?"

야마메도 웃으면서 부채를 던진 뒤, 펑퍼짐한 치마를 짚고 일어서며 말했다.

"응, 뭔가 우리끼린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네."

만족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려던 누에에게 결의에 찬 야마메가 바로 답했다. 

"그래, 그럼 바로 탄막 승부다!  민부「캡처 (罠符「キャプチャー).."

스펠카드를 꺼내 든 야마메에게 한숨을 쉰 누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탄막장난 하러 온 거 아니거든."

"에에? 그럼?"

휘동그레진 눈으로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누에가 차분히 말했다.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요괴의 산에 일하러 간 적 있어? 건축처럼 뭘 만든 것 같은."

"음, 뭐, 내가 건물 짓는 설계도 하고 토목공사도 지상에서 하기는 하는데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하는 편이 아니라서."

스펠카드를 주섬주섬 집어넣고 리본을 주섬주섬 만지며 누에를 쳐다보던 야마메가 그렇게 대답하자, 누에가 다시 차분하게 물었다.

"높은 곳이거나 텐구들이랑 같이 일했던 적이 있는지 정말 기억 안 나?"

야마메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아!' 소리와 함께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텐구들이라면,그냥 게네 주변에 농업용수용 저수지랑 배수로를 공사 설계해주고 야밤에 주거용 건물 몇 개 짓는 걸 설계에 감독한 게 다야. "

"게네들에게 들은 거 없어? 아님 왜 그런 게 필요한 다던지 말야."

"나야 그냥 주문 받는 대로 만들어주고 내려온 거지만 산이 어디서 내려온 투명한 무언가에 당해 좀 황무지처럼 된 적이 있어서 복구하려고 그랬겠지, 아마도?"

그리곤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내가 아는 건 그게 다야."

'산에 내려온 투명한 무언가라.. 저번 그 사건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 외에 정말 뭐 별다른 건 없는 거야? 앞으로 무엇을 시키겠다나 어떻게 하겠다 하는 것 말야."

"에이, 그런 고객 사항은 제 3자에게 말 안 하지. 사실 그러고 싶어도 이미 4~6개월 전에 끝난 일이라 없지만."

손사래를 치며 웃는 야마메에게 누에가 흥미롭다는 듯이 흔들던 날개를 접으며 물었다.

"4~6개월 전?"

"그래. 그때 즘이었을 거야. 그 외에 추가 주문을 받거나 본 적은 없어. 어차피 나야 올라가면 방역 해야 한다고 배척받으니까 오래 못 있는단 말야. 일하기 버겨운 환경이라고."

"그럼 텐구, 특히 까마귀가 여기 지저로 내려온 건 본 적 없어?"

"뭐, 우츠호를 빼면 신문 뿌리는 까마귀가 여기저기 들쑤시는 게 취미니까 오고 간 적은 있겠지. 내가 본 적은 없지만."

'오기는 한다는 말인데...'

생각을 계속 정리해 나가는 누에에게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던 야마메의 눈가가 살짝 경련이 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응? 어? 어엇! 어으으엇. 어허험!"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괜찮아??"

말투부터 경직되며 잠을 자듯 눈을 감았지만, 입맛을 다시며 입을 움직이기 시작한 야마메의 모습에 기겁한 누에가 날개를 곤두세우며 묻자 그녀가 말들을 꺼냈다.

"그 텐구들이 올라가서 뭘 시켰느냐면 말야. 내가 처음 가봤을 때 산의 자연이 순식간에 없어져서 좀 엉망으로 된 곳을 포함해 아예 갈아엎겠다고 텐구들이 말했었어. 히히. 그러면서 엄청난 보수를 약속했지. 쩝쩝"

"뭐?"

눈을 크게 뜨며 귀를 쫑긋 세운 누에가 놀라며 묻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야마메가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로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에게 엄청나게 큰 여러 가지 건물들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 무엇에 쓸 건지는 묻지 않았어. 그리고 텐구들이 우리 지저에서 구매해 퍼온 흙을 부어만든 땅에 풀부터 다시 자라도록 물을 주고 직접 쓸 수 있는 수도관이랑 저수지, 그 외 건물들이랑 하수 처리시설까지 내가 설계해주고 캇파들이 설비를 담당하고 텐구들이 일하면서 큰 공사에 들어갔었지."

'여기서 흙을 구매해?'

"건물이라고?"

"응, 무척 거대한 건물이었는데 아주아주 중요하다고 했어. 뭐 하나하나가 보안사항이었는데. 나중에 공사된 곳을 가봤는데 나에게 들어가기 전에 먼저 위약금을 좀 세게 주는 거야. 알고 봤더니 텐구 식대로 리모델링을 좀 해놨더군. 감히 이 몸이 그렇게 잘 설계해놨더니 과학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라 배전부터 바꿨다고 하는데 무슨 헛소리인지. 아, 나가시소멘[각주:1] 먹고 싶다. 아무튼, 나무도 새로 심고 산을 통째로 바꾸는 역대 최대의 대규모 공사였어. 다시 마감 지휘하느라 땀 뻘뻘 흘린 거 생각하면 심장에서 열이나! 머리 굴리느라 되게 아팠다구, 아 왜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건물이나 기반 시설을 공사하는데 참여했지.전문가가 필요하다는데 내가 이런데 전문가였거든! 캬햐, 멋지지 않아? 멋지지?"

그리고는 누에가 어이없어하든 말든 입가에서 배시시 웃으며 집게손가락으로 누에를 가리키고 말했다.

"무엇보다 보수를 정말 잘 줬어! 텐구들이 이 전문가 대접할 줄 안다니까! 술이랑 고기도 잘 주고. 으힛! 다 끝내고 모든 관련 자료는 다 소각으로 폐기하는 작업까지 끝내니 진짜 푸짐하게 차려줬어!"

"그래? 그럼 혹시 그 설계도좀 볼 수 있어?"

그러자 야마메가 머뭇거리며 볼을 만지작만지작하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 이젠 없어. 그것마저 텐구들이 돈 주고 다 사갔거든. 아주 그것도 짭짤하게. 나한테 남은게 하! 나! 도! 없다는 거지. 어차피 설계도 지들이 알아서 수정해놔서 쓸모없어."

누에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짜증의 한숨을 뱉었다 숨을 몰아쉬고 말했다.

"그럼 아까 흙을 여기서 텐구들이 구매해갔다고 하는데 지저랑 산이랑 어떤 관계인 거지?"

"관계? 아, 관계라고 할 것도 없는 거지. 그냥 주인이랑 손님, 아냐, 좀 유식하게 말해서 고용자와 노동자 같은 필요에 의한 보수가 오가는 사이 같은 거라고. 우린 널린 게 암석과 흙이거든. 파괴된 자연을 먼저 복구시키는 데 필요한 텐구들이 찾는 것이기도 했고.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 뭘. 아아, 나도 나도 피서 갈거야."

누에가 '얘 왜 이러냐?'라는 생각보다는 쏟아내는 정보를 주워담느라 머릿속이 바빠져서 질문을 정리하고 대답을 기억하는데 치중하며 고삐를 당겼다.

"그럼 아야라는 텐구가 여기 왔었어? 사토리랑 아야와의 관계도 혹시 알아?"

"으흐힉, 까마귀 보는 게 장마철 수족구병처럼 보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신문 뿌리러 오는 것밖에 나는 모르는데, 그 까마귀 엄청 성가시게 하던데. 내가 진짜 말은 안했어도 피곤해서 정말."

"아니 아니, 그럼 사토리와 그 까마귀 텐구랑 관계가 어때?"

"에이 그거야 난 모르지, 아, 너무 습하고 축축하다 여기, 그거야 사토리가 틀어박힌 지령전 일인데. 근데 다들 성가시게 하는 거 싫어하지 않나? 막 이렇게 들이대고 성가시게 하고 말이야. 그런건 짜증나. 기분나빠."

그렇게 말한 야마메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계속 생각하는 누에에게 가까이 다가가 들이대며 말했다.

"거 열심히 물어보느라 애쓰는데 말야. 정말 확실한 건 어떤 까마귀든 건들지 않는 게 좋아. 이곳 환상향에서는."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가 나지막이 누에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정말로 큰 난리 나는 수가 있으니까 말야."

그 말을 마치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 있는 야마에 옆에서 누에는 아무 말 못하고 놀란 눈으로 믿기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분명히 방금 속삭일 때 훨씬 어린 여자애 목소리였는데...'

그리고 발소리가 나며 한 소녀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야마메 옆에 서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쉽지만, 이 언니가 아는 건 이게 다네, 여기까지 밖에 도움이 안 되겠는걸."

"넌 대체?"

소녀는 활짝 웃는 미소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지그시 눈을 감은 서드아이와 함께 둥근 모자의 그늘 속에서 비추는 초점 없는 눈으로 새침하게 뒷짐을 지며 살랑살랑 다가갔다.

'얜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설마 지금까지 계속??'

"안녕! 난 코이시야! 꽤 유익하고 재밌는 광경이었지?"

"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놀란 눈초리로 경악하는 누에에게 마음속까지 칠판에 손톱을 긁듯 소름 끼치는 느낌으로 귀여운 목소리가 귓가를 통해 파고들었다.

"난 무의식의 요괴라 언니가 이 언니한테 얻어 먹을 게 없나 애쓰는 것 같아서 내 능력을 좀 써줬지. 무의식은 원초적 욕망이 기반이라 엄청 솔직하거든."

"무의식을 다뤘다니, 너 말은 지금 얘가 한 말이 전부 무의식적으로 나왔다는 거야?"

코이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에이, 전부는 아냐, 무의식을 방출시켰다간 정말 온갖 말들이 다 튀어나오거든. 배고파서 먹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거나 싫어하는 거에 대한 태도, 지금 하고 싶은 행동 같은 기본 욕구뿐만 아니라 밖으로는 못 내뱉고 마음속에 항상 억압해 뒀던 말까지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까지 다 나오게 했다간 언니가 가장 듣고싶고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어느 세월에 듣겠어?"

누에의 옆에 서서 여전히 환한 미소로 야마메를 바라보는 코이시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있지, 무의식을 담당하는 원초아(id) 위에는 자아(ego)라는 현실을 살아갈 때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이 담긴 의식 같은 성격을 집행하는 통제적 부분이 있다는 걸 난 본능적으로 알거든. 그 위에 가치 있게 살게 도와주는 양심적 도덕과 관련된 초자아(super ego)라는 게 있다는 것도[각주:2], 그래서 내가 요괴의 산이나 건축토목업과 관련된 무의식을 좀 많이 건드려주면 자아도 어쩔 수 없이 막으려 움직이게 된단 말야. 그럼 내 능력으로 자연스럽게 무의식에서 감춰뒀던 비밀스러운 사실들이 아무 생각과 함께 입 밖으로 나오는 것과 동시에 무조건 통제하려고 과로하는 자아가 급격히 지치게된다구. 그럼 자신이 계획하에 꽁꽁 숨겨놨던 경험이나 사실들의 보안을 유지하는데 허점이 생기면서 다 내뱉게 되고 관련 정보가 술술 나오게 되지. 지금 언니가 보듯이 말이야."

아연실색하며 경이롭게 쳐다보는 누에에게 코이시가 노란 옷의 청록소매를 너풀거리며 강조했다.

"뭐, 이렇게 술술 분 이야기를 믿느냐 마느냐는 언니의 자유고. 이 언니 무의식 속에는 텐구들이 자기가 설계한 작품에 손댄 게 정말로 자존심 상하고 분했었나 봐."

자신의 중심에 눈꺼풀이 닫힌 제3의 눈처럼 눈을 감은 그녀는 '쯧쯧'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고 아야라는 텐구언니가 정말로 기사 쓴다고 귀찮게 한 게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무의식까지 왔나 보네."

누에가 날개의 떨림을 애써 멈추려고 노력하면서 야마메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이 요괴는 어떻게 된 거지?" 

"아, 이 언니는 지금 내가 무의식이 방출되도록 건드림과 동시에 아무 말이나 막 나오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신중히 통제하고 있거든. 곧 자아가 왜곡되지 않고 본래대로 움직이게 되면서 정신 차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면 돼."

"일단 고마운데, 이렇게 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뭐야."

"아, 그거. 난 마음을 닫아버린 무의식의 요괴라서 남들 눈에 잘 띄지 않거든. 누군지 잘 못 알아보기도 하고. 그런데 방금 소동 난 거 보니까 언니도 나랑 비슷한 거 같아서 말야. 잘못 알아보는 게 당연한 정체불명의 요괴니까 은근히 내 모습과 와 닿아서 말이지."

살짝 측은해진 누에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코이시가 한숨을 한번 쉬며 말했다.

"그리고 귀찮은 친언니 때문에 말야. 언니라면 친언니의 심기를 잔뜩 건드려줄 수 있을 것 같거든."

"뭐?!"

어안이 벙벙해진 누에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이 돌아서서 뒷짐을 지고 주변을 빙빙 돌아가며 걸었다.

"어차피 언니에게도 내 친언니 능력이 최악의 카운터잖아. 언니 입맛에도 맞지 않아?"

"아니, 하지만... 혹시 자매끼리 싸웠었니?"

'그래도 사토리 요괴는 착해 보이던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누에가 묻자 코이시가 계속 걸었다.

"으흠, 말하자면 언니는 말야. 사토리 요괴라서 남들 마음 정도는 다 꿰고 있거든. 세상에서 친동생인 나만 빼고 말야. 그래서 남들이랑 살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왜 그 행동을 하는지 언니는 뻔히 다 알고 있고 그걸로 남을 대하는 데, 나는 그게 안 된단 말야. 한마디로 난 거의 유일하게 언니의 혈육가족이자 언니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거야."

코이시는 뒷짐 진 손을 등에 붙이고 어깨와 머리를 리듬타듯 좌우로 흔들면서 감긴 제3의 눈을 앞으로 내밀었다.

"언니는 마음을 읽고 대처하니까 남이 자신에게 보이는 두려움과 공포를 잘 알아서 자신을 잘 따르도록 만들거든. 왜 언니 주변에 애완동물들 밖에 없냐면 남들이 미워해서 아무도 다가가지 않고 지령전에서 잘 안 나온 것도 있지만 자신에게 마음 속까지 따를 애들이고 자신도 그걸 알거든. 딴 마음 품으면 바로 알 수 있으니까. 난 솔직히 언니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언니에게 곁에 둔다는 건 그렇게 불안을 기반으로 둔 일방적인 거야. 남으로 하여금 읽힐 거라는 두려움에 딴 맘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자기 스스로 억압하게 만드는."

그리고는 다시 돌아서서 누에를 쳐다보며 소름끼치게 희쭉 웃었다.

"다만 나는 지금처럼 마음 닫고 살아갈 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거든. 미움받든 말든 신경 안 쓰고 말야.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거든. 하지만 언니는 지령전에서 같이 살면서 나를 통제하기만을 원해. 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않고 답답하고 불안하니 자신의 주관만을 나에게 집어넣으려고 말야. 말로는 나의 행복을 바란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내가 얌전히 말 듣고 언니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거라 언니의 행복이거든. 나도 내 마음이 있는데 내가 하고싶은게 있지 존중이라곤 결코 없어. 가족이니 자매니 하면서 묶어두려고만 하지 난 지금 이대로 슬퍼 보여도 내 방식대로 충분히 여러 가지 경험을 얻으며 살고 있는데 말야."

그리고 팔짱을 끼며 '핏'소리와 함께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누에가 목소리 톤을 낮추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바깥에 쏘다니면 얼마나 재밌는게 많은데. 아주 속상했겠구나."

"맞아. 얼마나 속상했다고. 나는 내 맘에 들게 살고싶지 친언니 마음에 들게 살고싶지는 않거든."

"그럼 내가 앞으로 어떻게 네 언니를 신경 쓰이게 하면 될까?"

"어? 이미 언니 충분히 하고 있어.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의아해진 누에는 굳이 이해하지 않고 바로 기회다 싶어 물었다.

"그럼 네 능력으로 아야라는 텐구의 입 좀 열게 건드려줄 수 있어?"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건 무척 힘들어. 언니"

"어째서?"

"일 자체는 쉽지만 말야. 내가 건드리는 무의식은 그 자체로도 사방팔방 연결되어 있어서 과거속에 묻혀있던 기억만 건드리는게 아니라 잘못하면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나 잊고있던 창피했던 사건등 아픈 트라우마마저 건드릴 수 있거든. 개를 보았을 때[각주:3] 누구나 그렇듯 쓰다듬어주는[각주:4] 요괴도 있겠지만 동물이 물린 기억이 있거나 또는 으르렁거리는 무서운 소리, 무서운 모습[각주:5]을 보고 겁을 먹어서 개를 보여주기만 해도[각주:6] 두려워 할[각주:7] 뿐만 아니라[각주:8] 이빨있는 동물자체를 전부 무서워하는[각주:9] 요괴가 있다면[각주:10] 내가 무의식을 건드릴시 무의식 속에 있던 그 물린 기억이 중폭되면서 잊혀지지 않을정도로 의식에 상기되어 더 괴롭게 될지도 몰라."

코이시는 진지하고 무서울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그 트라우마 정도가 생명에 위협을 느꼈거나 두려움이 휩싸일 정도로 심각하다면 자기 의사와 다르게 일상에서 그런 경험이 계속 반복되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고 이루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겠지[각주:11]. 난 그런 아픔을 잘 알아서 남의 마음속 아픔을 건드리는 일과도 같은 걸 별로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럴 일 없게 지금처럼 목표만 조심조심 살살 건드린다 해도 사실 뒷감당이 안 돼. 아무리 나라도 아주 무서운 언니들이 스펠카드 룰을 무시하고 쪽수로 달려들면 귀찮아. 잡혀서 사토리 언니앞에 대령될게 뻔해."

"텐구들이야 내가 다 쓸어버리면 되지. 난 강하거든."

"언니가 딱 봐도 강해보이긴 하지만 그런 차원이 아냐. 잘못 건드렸다간 아무리 언니라도 환상향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만 알려줄게. 나도 최대한 몸사리면서 조금 알려주는 거야."

"뭐? 참, 나같은 대요괴를 너무 우습게 아는것 같은데. 그렇게 겁을 주는건 뭐야?"

"언니 생각보다 여긴 듣는 귀와 보는 눈이 많거든."

누에가 자연스럽게 코이시의 감긴 눈을 슬쩍 쳐다봤다가 다시 마치 텅빈것처럼 싸늘하기 그지없는 코이시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어? 아냐. 있잖아. 그보다 그럼 또 물어볼게 있."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의아함만 가득해진 누에가 말이 빨라지자 코이시가 딱딱 끊어서 템포를 조절하듯 말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겠지만 난 어떻게든 잡아두려는 언니의 추적을 받고 있어서 말야. 너무 오래있었지 뭐야. 예전에는 무의식을 이용해 사라지면 되지만 요즘은 이게 잘 안 통해서 여간 귀찮은게 아니거든. 지금처럼 아야라는 텐구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건들면서 시간 보내주길 바라. 언니, 그럼 이만 안녕."

멍하니 코이시를 바라던 누에가 그녀를 오래 쳐다보다가 눈의 시점이 잘 안 맞아 상이 겹쳐서 2개가 되었다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흔들면서 하나의 상으로 맞춰지자, 코이시는 사라지고 길게 하품하는 야마메만 누에의 주변에 존재했다.

"어흠, 잠깐 머리가 띵한 것 같았는데."

슬쩍 멍하니 누에를 바라본 야마메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혹시 내가 실수한거라도 있어? 왜 그리 빤히 바라봐?"

"아냐, 그냥 쳐다본건데."

누에가 눈치로 손을 젓자 야마메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뭐, 아니면 됐고. 근데 생각보다 금방가네. 지저는 옛도시에서 시장이나 온천등 즐길거리도 많은데 말야."

"내가 놀러온게 아니라서 말야."

 

누에가 차분히 말하자 야마메도 깍지 낀 손바닥을을 뒤통수에 붙이고 어깨와 팔을 쭉 펴서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아함, 하긴. 논다고해도 오니같은 다른 요괴들도 득실득실하니까 소란스럽긴 하지. 그럼 다음에.."

 

야마메가 말을 마치기 전, '오니'라는 단어가 뇌리에 박힌 누에가 커진 동공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허겁지겁 말했다. 
"아냐, 네 말대로 즐기고 가는 것도 좋겠다! 오니같은 요괴들 안보려면 어떻해야 해?"

 

 

"그거야 술집이나 음식점같은 소란스러운 장터만 아니면 되겠지. 그새 마음이 바뀌었나봐?"

"알았어. 고마워!"

말을 마친 누에가 허겁지겁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 야마메는 현기증이 나는지 뒷목을 주무르며 무엇이라고 해야할지 형용할수 없는 모습으로 바뀐 그녀의 멀어지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 번화가로 들어선 누에는 최대한 이목을 끌지 않게끔 일반적인 모습으로 요괴들 속에 섞여서 간판이 달린 술집이나 음식점 곳곳을 살피며 뿔달린 요괴들을 찾기 시작했다.

제법 시끄러운 곳에서 잔소리가 들리는 큰 술집에 들어선 누에는 수많은 술병들과 함께 다른 오니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호시구마 유기를 보고 말을 걸었다.

"어이, 저기 오니 씨. 물어볼게 있는 데 말야."

그러자 허허 웃으면서 술잔을 들이키던 유기는 다른 일행과 같이 슬쩍 누에를 바라보고는 술잔의 술을 다 마시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야? 여긴 물어볼 오니가 한둘이 아닌데?"

유기의 말에 다른 오니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잔을 들이키자 누에도 차분하게 웃으며 물었다.

"요즘 우리가 진상조사를 하고 있거든, 오니가 인간들을 몰래 습격 한다는데 말야."

그 말에 유기의 주위가 조용해지며 누에를 노려보았지만 유기가 거만한 표정으로 손을 까딱까딱 흔들면서 자제시키고는 다른 술잔에 술을 부우며 누에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본론부터 말하는걸 보니 답이 빨리 급한가 본데. 그럴려면 좀 안면도 있고 친목도 다져야 서로 자연스럽게 입을 여는 거야. 더울텐데 한잔 들이켜."

누에가 할 수 없이 술잔을 잡자, 유기도 술잔을 들며 건배를 하고는 서로 술잔을 비웠다.

"자, 그럼 이제."

"목 축인거 가지고 되나. 한잔 더."

유기가 누에가 마신 잔에 술을 따라주고 자신의 잔에도 따르자, 답답한지 누에가 한숨을 살짝 쉬고는 그녀와 건배하며

들이켰다.

"크으. 써. 자 그럼 이제."

"자. 두 잔이나 들이켰는데 지금 기분은 어때?" 유기가 호기넘치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술자리인건 아는데 사정 설명 다했으니까 질문에 대답 좀 해줘. 답답하니까."

"속은 어떤데?" 유기가 피식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이거 가지고 무슨.. 이 속은 괜찮은데. 지금 마음 속이 좀 탄다고."

그러자 유기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는 누에가 내려놓은 빈잔을 치우고 누에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그래, 지금 네가 느끼는 그 답답함이 우리들이 너에게 답해줄때 느끼는 감정이란 말야. 이건 호시구마하이(星熊盃) 잔이다. 여기에다 마시면 아주 끝내주니까 들이키면 대답해주지."    

누에가 건네준 잔을 잡고 "쯥."소리를 내며 잔을 입에 대자 유기가 말했다.

"거기 입댄 쪽이야."

살짝 돌려서 잔을 쭉 들이킨 누에는 잔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와, 한잔만 더 줘도 돼? 캬! 술맛이 기가 막히는데!"

"술을 최고로 맛있게 해주는 잔이지, 빨리 마셔야하지만. 술맛을 즐길줄 알아야 술자리인 법. 이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풀어보자고."

누에가 술자리를 살짝 살펴봤다가 병들과 잔들만 만연한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근데 안주는 어딨어?"

그러자 유기를 포함해 다른 오니들이 무심한듯 시크한 표정으로 술병을 들어보이자, 누에의 입에서 '허헣허허'하는 당혹스러운 웃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술자리에 거추장스러운건 필요없어."

"배고프면 식사를 했겠지."

오니들이 저마다 한소리를 하며 잔을 들이키거나 병나팔을 불자, 유기가 자신의 뿔을 살살만지며 분위기상 잔을 들이키는 누에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우리도 그일 때문에 무척 답답하거든. 결론부터 말하지. 우린 안했'었'어 ."

"응? 뭔 소리야? 그 말은 결국 했다는 거잖아." 누에가 날개를 접으며 묻자, 옆에있던 오니가 크게 술잔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하, 거참. 거보소. 우리가 인간을 습격을 하는건 맞는데. 갑자기 인간이 사라지는거 보고 우리가 했다고 몰아가는데 왜 그런 누명을 쓰고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 예? 진짜로 그랬다면 우리에게 남아 떨어지는 시체라도 있었으니 아쉬울게 없는데 비난밖에 없으니 아쉬운것 투성이잖소! "

"그러니까. 내 말이! 우리가 인간을 털어버리고 싶으면 무녀고 뭐고 대낮에 대놓고 집 부셔서 들어갈텐데 누가 소문대로 편법이나 쓰고 비겁하게 잡아오냐고요! 그런게 오니면 그딴 쫄보 뿔을 떼버려야지!"

"아, 것 때문에 그 시퍼런 무녀가 실상을 밝히고 단죄한다고 난입해서 우리랑 한바탕 하지 않았소. 아이 씨, 진절머리나서 진짜."

오니들의 반발에 주위에 있던 바구니에 담긴 물수건으로 손을 닦던 누에가 '모리야 신사 쪽에서 한바탕 했었구나.'하며 지켜보자, 유기가 차분히 말했다.

"이제 알겠지? 우린 안했는데 말야. 자꾸 우리가 했다고 하더라고. 이해는 못하겠지만 지상에서는 오니가 습격했다는 목격자와 증거도 나오고 말야. 지상애들이 하는 짓을 지저의 우리들이 뭘 알겠어."

"습격을 안 했는데 증거가 나와?"

누에가 의아해하자 유기도 답답한지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도 진짜 그런 자존심없는 오니가 있나하고 내부 단속도 해봤지만 잘 나오진않고 미움받는 지저요괴로 취급 당하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생각이 좀 바뀌었지."

"뭐, 나도 지저에서 갇혀있었고. 미움까진 아니더라도 두려움의 대상이긴 했지만.. 그래서?"

"아, 어떻게 보면 지저 출신도 되잖아. 너. 야하핫!"

유기가 웃으면서 누에와 하이파이브를 하자 누에는 지저출신이라기엔 애매하지만 토를 달지 않고 친근해지기 위해 받아준 후, 얼얼한 손을 감쌌다.

"아하핫아흐극." 

"야, 그래서 말야! 우리도 행동이 앞서서 그렇지 생각이라는 걸 하거든. 잘 생각해보니 이왕 미움받는거 우리가 비난받는 식으로 인간을 습격하는게 생각보다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오니들이 생겨난거야. 뭐만하면 잡아온 인간이 환상향에 대한 경계및 보안을 어겼다라고 핑계만 대면 되거든. 그럼 자신이 선을 넘은거니 무녀든 관리자든 뭐든 아무도 신경을 안 쓰니까. 어차피 요괴는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로 살아가니까 본문에도 맞고. 그래서 소문 그대로 따라하는 오니들이 생겨났고 더 진짜 오니가 습격한 현장 증거들이 생겨난거야. 우리같은 정통 오니들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지."

"암요. 기가 막힙니다. 세상 참 어떻게 되려고 그런지. 자자! 한 잔 더 들이킵시다."

다른 속상한 오니들과 같이 건배하며 술을 마신 누에가 조심스럽게 유기에게 물었다.

"누군가 사주한 거 아닐까?"

"아니라고 볼수는 없겠지만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지. 추측을 아무리 해봤자 물증은 없는 정황증거뿐이니까." 

"싸우거나 원한 산 애들은 없어?"

"예전이라면 진탕 싸웠던 요괴의 산에 지금 있는 텐구들인데. 내가 산의 사천왕이었으니까. 그 콧대높던 녀석들, 달이었나 어디에게 작년에 당하고 나서 태도가 바뀌었어. 이제 우리에게 과거에 대해서 화해하고 자치권이 있으니 산은 못 돌려주지만 언제든 방문해도 되니 같이 잘 지내보자고 술자리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신기한 노릇이지만 나쁠 것 없지. 그러니 나름 존심있는 걔네가 털린지 얼마나 됬다고 지금 우리에게 털릴만한 짓은 안 하겠지. 그리고 솔직히 오니들은 좀 미움 많이 받아서 한 둘이 아냐. 역추적 자체가 힘들단 거야."

유기의 말에 누에가 턱을 괴며 슬슬 입을 여는 오니들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래도 앙금이야 뭐 가시겠습니까. 싫은 소리 안한다고 예전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참, 이 친구 앞으로 잘해보자는 건데 지금은 뭐 지나간 일 가지고 그래."

"텐구들이야 요즘 야마노자쿠를 잡으러 인간마을을 대놓고 돌아다니던데, 우리가 저지른 일이라면 바로 걸렸겠지. 걔들이 가만이 있을 애들도 아니고."

"아냐, 생각은 안하고 살겠지만 잘 생각해봐. 얘네가 우리탓으로 몰려고 저지른 일이었다면 오히려 이번 일을 꼬투리잡아 종이쪼가리에 우리가 했다고 적어놓고 뿌려대며 대놓고 나쁜 요괴로 몰아가겠지만 잘지내자고 하고 조용하니까 얘들은 아닌거지." 

"씁쓸하구만. 술이나 합시다."

그 말을 들은 누에는 곰곰히 생각해보며 다른 오니들의 푸념을 들으면서 산에서 1년 전 사건과 몇 개월 안된 이 사건이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리도 해보며 술을 들이켰다.

"인간을 습격하는 이유라도 있어?"

"딱히 이유일것까지야. 우리가 본질이 요괴니 공포스럽고 두려워하게 만들거나 하는게 단데, 다만 내가 경계하고 있는게 있지."

"어떤 건데?"

"인간이나 우리나 이번 일로 점점 적대적으로 강경해지고 있거든. 더 이상 세간 인식이 낙인을 찍으니 거리낄게 없어지는 거야. 의심이 확신이되고 미워할 증거들이 점점 넘쳐나기 시작하게 되는거지. 오해는 풀기 힘드니 다들 단속이나 잘하든가 갈려면 오니답게 대놓고 들어가라고."

"맞습니다. 거기 검은 요괴도 좀 더 잡수시고 돌아가시소. 자, 건배나 하십시다."

다른 오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들이켰고 누에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기의 잔으로만 술을 마시다 유기에게 그만 마시라고 한 소리를 들은 후, 술냄새가 나지않게 물로 입울 헹구고 시간을 확인하고는 인사와 함께 술자리에서 나와 돌아갔다.


 

  1. 流しそうめん 반쪽으로 자른 대나무 속으로 흐르는 물에 띄우고 츠유(조미료를 섞은 간장 액상소스)이나 장국을 부워 먹는 밀가루를 원료로 한 일본 국수요리, 여름철에 주로 먹음 [본문으로]
  2. Sigmund Freud(지그문트 프로이트)1923, 's personality-theory(성격 이론) [본문으로]
  3. 무조건 자극(UCS, Unconditioned Stimulus) 무조건 반응을 일으키는 자극 [본문으로]
  4. 무조건 반응 (UCS, Unconditioned Response) 생체가 가진 원래 반응 [본문으로]
  5. 조건 자극 (CS, Conditioned Stimulus) 학습,경험, 훈련에 의해 무조건 자극과 연계되어 반응을 일으키는 자극 [본문으로]
  6. 중성 자극(NS, Neutral Stimulus) 학습 되기 전에 유기체가 보이는 특정한 반응과 무관한 자극 [본문으로]
  7. 조건 반응 (CR Conditioned Response) 무조건 자극과 중립자극이 결합해 중립자극만 주어져도 나타나는 반응. [본문으로]
  8. pavlov(파블로프) 1927. classical conditioning(고전적 조건형성) 행동주의 심리학 [본문으로]
  9. 자극 일반화 (유사한 자극에 반응을 일으킴) [본문으로]
  10. Watson&Rayner(왓슨&레이너).1920, 행동주의 S(자극)-R(반응)이론, 공포에 대한 학습 및 비슷한 조건에서 공포의 전이.(고전적 조건형성) [본문으로]
  11.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적 사건(사건,사고등 급작스러운 짧고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는 유형과 학대등 두렵고 공포스러운 사건에 오랜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유형)을 겪고 재경험하거나 이를 회피하고, 외부에 무감각해지거나 극도로 과장하여 경계하는 등, 공포와 불안을 노출하는 정신병리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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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3시 경, 지저


"어휴, 여긴 더 덥네."

허공을 가르면서 스쳐 가는 바람마저 덥자, 한숨을 푹 쉰 누에는 손 부채질을 하며 투덜거렸다.

"더구나 그 녀석과 만나는 건 정말 내키지 않는데. 쩝."

옆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기울여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무력감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더니 마미조를 속으로 생각하며 외쳤다.

"아냐!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얻어가야지! 조금만 참고 기운 내면 되잖아."

이미 망을 보는 야마메를 비롯한 지저의 요괴들을 매우 간단하게 정체불명의 씨앗으로 혼란을 주어 정 반대 방향으로 따돌려버린 누에는 엉뚱한 곳을 쫓고 있을 거란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옛 도시를 지나 작열지옥터에서 흘러나오는 열기에 땀을 쏟으며 지령전에 도착한 누에는 짧은 머리카락마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털어내면서 바람에 날린 머리를 정돈하고는 아무도 없는 정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반지하로 된 로비로 슬며시 들어갔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한 빛이 천장까지 닿지 않아 주변이 어두운 데다가, 싸늘하고 음산한 공기가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것에 대해서 바깥보다는 덜 더워 내심 감사한 마음이 든 누에는 복도를 돌아다니며 두리번두리번 원하는 방을 찾았다.

애완동물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복도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코메이지 사토리'라고 명패가 써진 큰 방을 발견한 누에는 한숨을 길게 쉬면서 심호흡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아, 내 능력과는 극상성이지만 했던 말에는 책임을 져야지."

'이제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돼. 절대. 허튼 속마음이 안 나오도록 최대한 마음을 다스려야 해.'

돌린 시야에서 다른 방에 '코메이지 코이시'라고 명패가 쓰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신경 쓰지 않고 노크를 몇 번 하고는 긴장된 마음과 떨리는 손으로 몇 번 숨을 고르며 문을 열었다.

서재에 앉아 냉차를 마시며 고서를 읽던 사토리의 눈동자에 글자 대신 누에의 얼굴이 맺히자, 미소와 함께 찻잔을 내려놓고 책을 덮는 소리와 함께 살짝 흔들리는 서슬퍼런 서드아이의 외눈도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이 누추한 지저까지 와주시다니 고생 많으셨네요."

"에헤, 뭐, 오는 건 어렵지 않지."

누에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애매하게 웃으며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면서 내심 긴장을 풀자, 사토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하나 더 꺼내 물을 붓고는 의자 하나를 끌고 오며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더운 날씨인데 좀 식히셔야죠."

"어, 그래, 고마워."

의자에 앉아 차를 홀짝거리던 누에가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

"어? 여기서 얼음은 어떻게 구했데?"

"오린이 치르노 양에게서 사온 거예요. 얼음을 거대하게 만들면 힘쎈 유기 씨가 들고 오시는데 보관이 어려우니 필요할 때마다 빠르게 사오곤 하죠."

"아, 그럼 셋 다 엄청 바쁘겠네."

누에가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니 살짝 의구심이 드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녀의 말에 동감하는 대답을 하며 차를 들이켰고, 사토리도 머리띠를 위로 살짝 올리면서 빗으로 머리를 빗고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작열지옥터 때문에 여름에는 더워서 찾지 않으시거든요. 원래 미움받아 손님이 없는 곳이긴 해도, 모든 걸 무릅쓰고 이렇게 정성껏 찾아오신 분에게는 대접해 드려야죠."

그녀의 눈웃음에 마음이 여유로워진 누에가 차를 다 마시면서 목의 갈증과 함께 긴장이 풀리자, 사토리가 다시 고서의 읽던 페이지를 피면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못하겠다는 말씀만 드리고 싶네요."

누에가 당황해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날개를 들고 외쳤다.

"아니 어째서??"

"무슨 용건이신지는 마음을 읽어서 다 알겠지만 저는 제 능력 때문에 모두의 미움을 사 홀연히 남게 된 요괴. 원하지 않아도 읽어지는 남의 마음을 읽는 건 쉽지만 그만큼 남의 마음을 잃고 두려움을 사기도 쉽죠."

자신의 찻잔을 비운 사토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정체불명의 요괴인 누에 씨가 저의 능력으로 그저 힘만 셀 뿐 평범한 요괴가 되는 만큼 각오하고 오신 건 탄복했지만 올라가서 남의 두려움과 미움을 더 사고 싶지는 않아요."

그녀의 단호한 말에 누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날개를 세운 체, 자신의 입술을 물면서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야 씨가 의심되는 건 알겠지만, 의심은 의심을 낳을 뿐. 제 능력으로 의심이 풀리든 아니든 미움받는 저의 말을 신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들진 않네요. 오히려 다수가 원하지 않는 답을 하면 제가 속이는 게 아니냐고 의심을 받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건.."

누에가 살짝 당황했다가 난처한 낯빛으로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러든 아니든 일단 확인만 해줘. 안 내키는 건 알겠지만,"

"내키지 않아도 오신 누에 씨의 선택처럼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도 저의 선택. 읽기 힘드시겠지만, 저의 마음도 헤아려주셨으면 하네요. "

더는 대화가 힘들다는 것을 안 누에가 그녀의 냉철한 서드아이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이다 한숨을 한번 쉬고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면서 숨을 고르자, 그렇다고 응답하듯 사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과 공포는 우리 요괴들에게 삶의 밑천이지만 남에게 경멸받고 미움받는다는 것은 마음에 비수가 꽂히는 일, 지금까지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꽂혀왔지만, 그 한 번이 얼마나 아리고 아픈 일인지 느끼고 알기에 더는 아무에게 하나라도 받고 싶지 않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알았어. 충분히 알았으니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혀를 차며 아쉬워하는 누에에게 사토리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누에의 찻잔에 냉차를 부어주며 말했다.

"그럼 여기까지 오셨는데 다른 이야기나 하죠. 여기에 있으면 지상 소식에도 어둡거든요. 지저는 제 애완동물 이야기 이외에는 똑같은 일상이지만요."

"어차피 내 생각 읽으면 알 텐데."

그 말을 툭 던진 누에는 최대한 껄끄러움과 민망함을 숨기려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도 지상은 이변도 흔하고 새로운 얼굴들도 많고 그로 인한 재밌는 사건들이 많으니까요."

누에가 타들어 가는 목에 냉차를 붓자, 사토리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어쨌든 저야말로 아무런 현혹없이 누에 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요괴니까요."

"아니, 한 명 더 있는 걸."

그 말에 사토리가 살짝 놀랐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네요."

누에가 부끄러운지 슬쩍 얼굴을 붉히자, 사토리가 자책하듯 자신의 볼을 몇 번 두드리며 하소연했다.

"참으로 불공정한 대화라 하나부터 열까지 죄송스럽군요."

"그렇게 미안하면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데 말야."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대답으로 돌아오자 누에는 혀를 찼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차피 지저는 지상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요. 관리자나 무녀가 꼬투리를 잡아 엄청 피곤하게 만들거든요."

"에이, 어쩔 수 없지. 그럼 아야라는 까마귀에 대해서 말인데."

그러자 사토리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까마귀요? 저도 까마귀를 여럿 거느리고 있긴 한데 어디로 튈진 모르는 시한폭탄들이어도 저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거든요."

"그런 까마귀 말고, 신문쟁이 말야."

헛물켰는지 열기가 푹 식은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붙인 사토리가 고개를 들어 질린다는 말투로 말했다.

"지저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시는 것 외에는 모르겠네요. 오히려 누에 씨 생각을 읽으니 현황이 어떤지를 알겠네요. 지상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많았나 보군요."

얻을 수 있는 것이 더는 없겠다고 판단이 든 누에는 배려와 체면상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 신경 쓰면서 냉차를 다 마시고 말했다.

"그럼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알려줄 수 있어?"

"그럴 수 있다면요." 사토리가 찻잔을 떨리는 손으로 잡으면서도 은은한 눈초리로 최대한 누에를 배려하며 말했다.

"인제 그만 돌아가시려나 보군요. 가시는 길에 이왕 오셨으니 지저에서 이것저것 즐겨가며 잘 살펴가세요."

사토리가 일어서서 정중히 배웅하자, 그녀의 인사를 받고 방에서 나온 누에는 다른 애완동물들이 문을 열고 청소 및 정리 중인 옆방이 매우 호화스럽고 귀여운 가구나 벽지로 꾸며져 있는 것을 흘깃 보고는 무거운 날갯짓으로 스산한 마음을 추스리며 음침한 지령전의 정문을 나섰다.

"에이, 더워."

비교적 시원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목등과 팔, 다리를 찌르듯한 열기와 빗줄기처럼 땀를 쏟게하는 후덥지근한 습기에 인상을 잔뜩 찌뿌리며 옛 도시를 거닐던 누에는 반쯤 뜬 눈으로 다시 손부채질을 하며 한숨으로 막막한 속마음을 달랬다.

"자, 이제 어쩐다."

한숨을 푹 쉬며 빈손으로 돌아가는게 아쉬워 자신의 옷깃을 여러번 털어낸 누에는 날개로 머리를 빗어낸 뒤, 주위의 온천과 장터, 많은 요괴들의 사이를 지나 지저의 출구를 향해 무겁게 날았다.

'마미조한테 물어봐서 어떻게 사토리요괴를 구술려야 되는지 알아보고 올 걸.' 

이왕 나섰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텁텁한 습기 만큼이나 자신을 짓누르는 것에 한숨을 쉬던 누에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길이 다가왔다.

"깍! 깜짝이야!"

"어머, 생각보다 크게 놀랐나보군. 놀래킬려고 한거지만."

불쾌함이 가득하며 노려보는 누에의 표정에 키득키득 웃던 미즈하시 파르시가 말을 이었다.

"이제 모습을 들어냈구나, 처음보는 회괴망측한 것이 있어서 건드려봤더니 모두를 놀라게 하는 요괴를 내가 놀라게 될 줄이야. 굉장히 수지 받았는걸."

"뭐야?"

"왜? 맨날 보지 못하던게 있으면 누가 먼저 이야기하며 주목받는 걸 보고 약오르기 전에 내가 먼저 확인해보는게 당연하잖아. 먼저 탄막을 쓴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화내."

그렇게 말한 파르시가 슬쩍 자신의 손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이게 스킨쉽같은 거라서 그래?"

"아니거든!!"

"버럭 화내는거 보니 아닌거 같긴 한데. 크킄. 아깐 따라잡지 못해서 놓쳤지만 이렇게 장난치는 재미가 있는 요괴일준 몰랐는걸. "

삼지창을 들며 화를 내던 누에는 잠깐 생각을 해보고는 침착하게 창을 뒤로하고 표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물었다.

"저기, 혹시 아야라는 까마귀텐구가 여기 온 적 있어?"

"응? 야아, 글쎈데. 내가 본거라곤 사토리 애완동물들 뿐이라."

"그럼 그 요괴에 대해서 들은건."

"까하하하, 소문 말인것 같은데 아는 까마귀라곤 사토리 애완동물인 우츠호 뿐이라니까. 지상이랑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우리가 올라가면 갔지 대부분 이쪽으로 오려 하지 않아서 지상소식이 그렇게 빨리 들어오진 않는다고."

"음..."

누에가 턱을 괴며 고민에 빠지자 파르시가 녹색의 눈을 반짝이며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역으로 물었다.

"그럼 뭐하러 내려온 거야? 정말 그런 거 물어보려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가 눈동자에 들어온 파르시는 눈을 감으며 생각을 좀 해보다가 말했다.

"그럼 야마메에겐 가봤어?"

"아니."

"야마메가 토목건축업을 좀 해서 수주를 받으러 올라갈 때 지상소식에 대해 잘 알지도 모르거든. 예전에 어떤 산에 일하러 간다고 갔던게 기억이 나네."

'산'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확 들어온 누에가 파르시에게 더 다가갔다.

"걘 어딨어?"

"좀 더 앞에 가면 있을텐데."

"알았어. 고마워!"

누에가 활짝 핀 얼굴로 그냥 지나가려하자 파르시가 누에의 날개 하나를 붙잡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누가 문지기로서 그냥 보내준데. 구두라도 할말은 해야겠어!"

"좋아, 뭐 무단침입한건 맞으니까. 해."

"너 날개가 달린 것도 모자라 한쌍이 아니라 3쌍이나 붙었네..."

전혀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를 잡힌 누에가 당황하자 파르시가 눈가를 가늘게 찌뿌리며 팔짱을 끼고 '핏.'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날개가 3쌍이나 달렸으니 엄청 빨리 날겠네. 부러워."

"야, 야. 저기 그런거 아니거든. 빨리날긴 무슨."

"아니면 뭐, 됐네. 그럼 얼른 가봐."

언제그랬냐는 듯이 밝아진 파르시가 손을 흔들며 보내주자 황당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누에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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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로가 두 손을 무릎에 붙이며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자, 뱌쿠렌이 흐뭇한 미소로 말했다.

"배우려는 자세가 정말 열성적이네요."

"얼른얼른 배워야 하니까!"

"슬픔에 대해 가르치기 전에 기쁨에 대해서 집중하고 그대로 느꼈던 것처럼 코코로 학생도 몸과 느낌, 마음, 현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알아차렸으면 좋겠어요. 불교에서는 이름 4염처, 또는 4염주(念住), 4의지(意止)라고 하죠.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판단하지 않고 지켜보는 거예요. 정확히는 몸 안의 생멸을 관찰하고 불건전한 탐진치가 생기지 않게 하는 거지만. 거기까지 나갈 필요는 없겠죠."

"판단은 왜 하면 안 되는 거야?" 코코로가 물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할 때 판단하지 않는 것이란 '좋다/싫다'를 분별하지 않는 것이고, 이 분별은 곧 감정이 개입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좋은 것에 더 마음이 가므로 탐욕이 생기고, 그 탐욕이 집착을 부르고 싫은 것은 기피하고 분노를 일으킨답니다. 그래서 그대로 지켜보고 받아들이는 거죠.

"음.. 감정은 오묘한 거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벌일 수 있으니."

코코로가 슬픈 표정의 가면을 꺼내며 고민하는 사이, 모미지가 안 좋았던 일들이 떠올라 한숨을 푹푹 쉬고 심장을 가라앉히기가 힘들어서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가 바로 산 쪽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등을 돌리려 하자, 마미조가 이치린의 팔이 순식간에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코코로의 등을 재빨리 토닥여주면서 주목이 되도록 큰소리로 조언했다.

"그러니께 감정에 대해 잘 알아둬서 네 의지와 지금 감정이 어떤지 잘 봐둬서 혼란이 없게 해야제."

"이 너머가 깨달음의 요소인 7각지(覺支)[각주:1]만 태도에 대해 가르쳐준 거니까 이건 넘어가도록 할게요."

모미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귀엽지 않냐고 묻는 이치린의 말까지 곁들여지자, 귀를 쫑긋 세우며 코코로를 살펴보는 모미지치럼 여러 가지 책을 살펴보던 뱌쿠렌도 원하는 페이지가 나오자 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슬픔은 상실감, 억울함, 실패, 불쌍함을 느낄 때 드는 감정으로 공통적인 유발 원인으로는 '상실감'이 있어요. 어떤 것이든 그 가치가 큰 대상이 클수록 슬픔이 더 크게 일어나죠. 거기에 라자루스[각주:2]라는 사람은 상실 자체가 큰 슬픔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상실로 돌이킬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슬픔을 느낀다고 하였는데, 그 상황이 다시 돌아올 리 없으므로 슬픔을 느낀다는 거죠."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드는 여러 마음 그 자체라는 말인가?"

후토가 묻자 뱌쿠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이 슬퍼하거나 슬퍼하는 장면을 봤을 때도 감정이 이입되어 슬퍼지기도 하죠. 우리가 슬퍼할 때 일어나는 작용으로는 불교적인 걸 다 빼고 말씀드리자면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 슬퍼함으로써 '그것'에 대해 생체적으로 각인 및 학습이 되어 피하거나 견딜 수 있게 해준답니다. 예를 들어 이별을 겪고 슬퍼한다면 다음 이별에 대해 대비하거나 더 만남은 더 좋게 가지도록 노력하게 되는 거죠. 또한, 그 행동을 하지 않거나 그 대상을 만나지 않고, 조심하게 해줍니다."

지켜보던 이치린이 아야가 능력껏 일으키는 바람을 쐬면서 흥미로운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슬픔은 앞서 말한 '실패'나 좌절 같은 경우에 대해 극단적인 충격을 완화하되 잊지 않게 해주면서 반성하거나 되새겨보며 자아 성찰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누군가 슬퍼하면 무언가 위로를 해주고 싶고 측은해지는 경험들이 다들 있을 거예요. 다들 어떤가요?"

몇몇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슬퍼할 때 누군가 위로를 해주거나 안타깝게 봐주기도 할 거예요."

역시 몇 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뱌쿠렌이 다 따른 물을 한 컵 들이마시고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그렇게 슬픔은 동정심과 관심을 남에게서 유발해주기 때문에 주변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외부에서 감정적 지지를 얻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게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낮아진 자존심과 기댈 곳이 필요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슬픔은 보호와 돌봄을 받기 때문에 애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네요. 아기가 울면 부모가 신경을 쓰면서 애착 관계를 유지하고 단절되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요."

쿄코가 눈치껏 빈 물병을 치우려고 일어서자, 순식간에 잠깐 흔들리다 균형을 잡는 새 물병이 뱌쿠렌의 옆에 놓였고 아야가 씨익 웃으면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또한, 환상향에서도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는 상대를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처럼 상대의 공격성을 누그러트립니다. 예를 들어 패배한 대상은 인간이든 요괴든 신이든 십중팔구 우는 모습으로 나오고 더는 플레이어가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대화하고 다음 상대로 넘어가지."

"음, 뭔가 묘하지만 격하게 공감은 가네요." 말을 들은 전원이 수긍하며 한결같이 대답했다.

"계속 제가 슬픔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도 신경을 쓴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만큼 슬픔은 연민을 일으키고 이 연민은 공감을 유발합니다. 이 공감은 전문용어로 '감정 이입(empathie)'이라고 하는데 감성 지능의 구성요소 중 하나라고 하네요. 이런 공감은 슬픔을 겪는 대상이 나와 가까운 사이일 때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하네요. 이 부분이 결여된 요괴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배우면 되니까요."

"아항. 그렇구나." 코코로가 고뇌하는 가면을 꺼내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슬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슬퍼서 신경도 안 쓰이고 무기력해지는걸."

무라사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한숨을 쉬면서 말하자 코가사도 우산을 위아래로 흔들며 수긍했다.

"무기력, 우울처럼 슬픔은 다른 감정들과 혼합하고 동시에 느끼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기 때문에 슬픔을 심하게 겪는 존재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살피고 돌아보아야 하죠. 기억과 상반된 감정까지도요."

"상반된 감정이라면?"

"예를 들어 분노가 섞인 슬픔이라면 슬픔이나 실패감을 느끼며 괴로울 때 남을 공격하거나 화풀이하는 것, 좀 더 극단적으로 기분 좋아지는 법으로 금지된 쾌락을 추구하는 등 더 호전적이 될 수 있겠죠. 쉬운 예로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 흥분해서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옆에 있는 나무나 의자를 발로 찬다거나 하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아님"

뱌쿠렌은 눈을 비비며 카메라를 다시 든 아야와 계속 한숨을 푹푹쉬는 미리 갈 필름을 준비중인 모미지를 감안하여 울적하지만 최대한 잘 찍히게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무언가 피해를 보았을 때 비탄과 슬픔에 차있는 상태로 그 대상에게 피해보상과 죗값을 추구하는 분노를 쏟아내는 것도 예를 둘 수 있겠죠. 소위 '울분'이라고 하는 것들을 말이죠."

"울분이면 감정이 섞인 거지?"

"네, 행동이 둔해지는 슬픔과 행동을 부추기는 분노가 섞이는 양가감정이에요."

"아하, 텐구언니가 말해줬던 건데 이런 걸 알고 싶었어. 가면을 한 가지만 쓰기 힘들거든."

셔터를 열심히 누르던 아야가 눈가가 붉어진 채로 말없이 다 찍은 카메라를 슬며시 건네주자,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던 모미지가 능숙하게 받아서 필름을 갈아 끼우며 돌려주고는 간 필름을 소맷자락의 필름으로 바꿔치기해 배낭에 넣으며 울먹이는 눈으로 떨리는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뱌쿠렌. 질문!" 누에가 속으로 '마음이 좀 축 쳐지고 답답한데 그나저나 저 텐구는 왜 웃었지?' 하고 의아해하며 손을 들었다.

"네, 누에 씨 말씀에 다들 집중해주세요."

"그럼 이런 슬픔은 어떻게 이겨내?"

누에가 히죽 웃으면서도 눈초리를 모미지를 향해 집중하자, 뱌쿠렌이 다시 책을 뒤져가면서 말했다.

"네, 잠깐만요. 우리 불교에서는 부처님 말씀을 따르고 참선하면서 불경을 외우는 것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면 즐거워지는데, 다른 관점도 알려주어야 하니까요. 어디 보자, 일단 도교는 어떻죠?"

그러자 후토가 헛기침을 하면서 진지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두 손을 무릎에 올리며 생각하고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난 도교에 속해있지만, 정확히는 신토를 추구하는 입장이라.. 그래도 체면이 있으니 일단 떠오르는 대로..'

"솔직히 말해 일단 내가 아는 것으로는 장자 외편 13편 천도에서 마음을 비우면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잘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이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고 하였네. 장자가 심재(心齋)라고 언급한 '마음 비움'은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는 것이지. 그렇게 사물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면 잡편 23편에서 마음을 바르게 하면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밝아지며, 밝으면 텅 비게 되고, 텅 비어 마음이 무위로 돌아가면 그것이 곧 자연의 도와 일치되어 못할 일이 없다고 하였네."

"그렇군요. 잘 들었죠. 코코로양. 어디, 좀 쓸만한 게.. 이게 좋겠다."

뱌쿠렌이 책을 들면서 펼쳐 들며 말하는 사이, 누에가 복잡한 생각이 들어 계속 눈동자를 모미지 쪽으로 돌려 그녀를 주시했다.

"슬픔은 그 감정 자체로 마음을 억누르고 계속 상실감과 패배감, 실패를 되새기게 만들기 때문에 내면으로 지치고, 또 위안과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의 마음도 지치게 만들고 의욕을 저하합니다. 게다가 모든 슬픈 일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만들며 주변에서 약한 대상으로 볼 가능성이 크죠. 이런 단점들 때문에 슬픔이 매우 낮게 평가되곤 하지만 슬픔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게 좋아요. 어차피 들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감정이니까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라." 누에가 따라 말하면서 모미지의 시선, 표정,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네, 또 슬픔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누구에게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표현을 하는 게 좋아요. 슬플때는 주의가 흐려지고 슬픈 기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에 자기폄하가 더 심해지거든요. 자신이 사회적으로 약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이 경쟁구도나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일 때는 피해야 하죠."

코코로가 지난날 감정이 복받치고 슬펐던 기억들이 떠올라 한숨을 푹 쉬고 무릎을 세워서 주저앉은 자세로 무릎에 팔짱을 낀 두 팔을 포개어 받치고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묻으며 '으아앙 그치만 나도.. 나도 오해없게 표정짓고 싶어으흐흑' 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마미조도 지금 심정처럼 긴 머리를 바람에 흔들리며 슬퍼하는 코코로를 지그시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곁에 있는 누에가 반대쪽의 모미지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내려간 안경을 올리면서 덩달아 모미지를 바라보았다.

"활동을 하는 것도 좋아요. 무언가를 하거나 성취하면서 얻는 쾌감이 슬픔을 견디는 데 도움을 주거든요.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랍니다."

눈물 흘리면서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어깨를 토닥여 두드려주는 코가사와 함께 고개를 올리면서 말없이 끄덕이는 코코로를 바라보던 모미지는 무심결에 시선을 돌렸다가 누에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다른 쪽을 바라보는 누에를 보고는 의아하고 이상함이 뒤섞인 복잡한 생각이 껴서 누에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지금은 기분이 어떤 느낌인가요. 코코로 양?"

"그냥. 한없이 슬퍼. 가르쳐준 것처럼 몸도 마음도 축 처지고." 코코로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힘없이 말했다.

"네. 그게 슬픔이에요.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계속 느껴서 배워보도록 해요. 다른 분들도 궁금한 것 있으신가요?"

"뱌쿠렌, 그럼 그냥 슬픔이랑 흔히 말하는 우울이랑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궁금한데."

무라사가 붉어진 눈시울로 아야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묻자, 자신의 입장에 울컥하여 입을 가린 손을 덜덜 떨었지만 눈치껏 아야를 감시하던 나즈린도 동감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우울은 말할 때 뭔가 더 특화된 슬픔처럼 쓰이잖아."

뱌쿠렌이 대답했다.

"우울이란 좋은 일이 생겨도 잘 해소되지 않고 완화되기가 힘든 슬픔이에요. 다만 그게 우울 '증'일 경우는 모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감정이자 몇 시간, 하루, 며칠 같은 일시적이고 경미한 신체적 느낌이자 자신의 평가기준이 약간 바뀌거나 일시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슬픔이라면 우울은 지속해서 수면과 식욕이 몇 주나 몇 달간 저하되어 고통을 느끼고 좋은 일이 생겨도 무기력해져서 자각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해 비하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추진력과 집중력이 낮아지고 희망을 가지는 데 어려움을 느낀답니다."

누에를 살펴보던 모미지는 자신을 쳐다보는 모미지를 인식하고는 너무 티 나게 쳐다봤나 하며 점잖게 자세를 고쳐잡으면서 여전히 대성통곡하며 붉어진 얼굴로 설움의 눈물을 팡팡 쏟는 쿄코를 한번 쳐다보고 평상시의 여자 가면을 쓴 코코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대부분 우울증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열등감 혹은 무능함, 미래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비관적이 되고,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세상을 힘들다고 느끼며 까다롭고 부당하게 받아들이는 3가지의 시선, 즉 인지삼제([각주:3]認知三題, cognitive traid)라고 하는 인지적 왜곡이 특징이라고 한답니다."

수긍하는 무라사를 찍던 아야가 은근슬쩍 모미지를 쳐다보자, 모미지는 인상을 팍 쓰며 눈에 힘을 주고 그녀를 노려보는 것으로 답했고 누에가 그 모습을 보고는 옆 머리를 긁으며 다문 입에 코로 날숨을 내쉬면서 주시했다.

눈치껏 아야와 모미지, 둘의 시선을 파악한 이치린은 아야와 모미지의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속으로 의아해 했다.

"그럼 이제 슬픔을 표현해볼래!"

코코로가 슬플 때 쓰는 할머니 가면을 꺼내면서 두 주먹을 쥐고 눈가에 가까이 붙인 뒤, 살짝살짝 흔들자, 귀여운 마음이 들어 웃던 코가사와 후토는 몇 초 지나지 않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 콧물을 흘렸다.

"아, 다들 이렇게 우는 건가?"

코코로가 옆에서 얼굴이 붉어져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미지와 소매로 얼굴을 훔치는 아야등 주변 요괴들의 행동을 모방해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리고 몸을 웅크리며 '으으흐흑.'하는 낮은 소리를 내자, 쿄코와 이치린, 나즈린도 덩달아 대성통곡했다.

"어흐, 으흐흑, 자꾸 눈가에 눈물이.. 수업 태도가 이렇게 좋은데 왜 열심히 준비한 제가 다 슬플까요. 으허어엉. 손수건 좀 닦을게요. 미안합니다. 여러분."

그러면서 손수건으로 촉촉이 젖은 눈가를 닦은 뱌쿠렌도 상기된 얼굴로 책을 펴며 말했다.

"아무튼. 흑흑. 이렇게 슬픔을 배우면서 필수적으로 나오는 게 제가 흘리는 것과 같은 눈물이랍니다. 눈물은 훌쩍, 기쁨을 가르칠 때 이야기했던 것처럼 동공 괄약근의 움직임과 더불어 눈물샘이 자극되면서 눈물이 나오고 내면에서 나의 비통함을 느끼고 주위에 알리는 동정, 연민, 도움에 대한 신호이자 의사소통이기도 한답니다. 어흐흑, 왜 이리 마음이 아플까요."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감싸 쥐는 뱌쿠렌의 등을 토닥이며 안경에 묻은 눈물을 흔들어 털어내는 마미조와 그녀의 큰 꼬리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으흐흐흡.'하고 흐느끼는 누에 등, 주변이 눈물바다가 되자, 코코로가 일일이 그녀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모방하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입의 끄트머리를 크게 벌리거나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눈가를 당겨보는 등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해보았다.

"얼굴 붉어지는 건 나에게 무리야. 지금 주변에서 보이는 거 말고도 슬프면 어떻게 되는지 더 자세히 가르쳐줘."

누에처럼 마미조의 꼬리를 붙잡고 얼굴을 가까이 대면서 뱌쿠렌에게 묻자, 뱌쿠렌은 퉁퉁 부은 눈으로 책에 눈물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내용을 뒤졌다.

"어흐흐흑. 이거 빌린 거라 물 묻으면 안 되는데."

"엉엉, 남의 도움 없인 잘 놀래키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먹고살아. 어어어아아앙." 코가사가 흐느꼈다.

"으아아앙, 으흑, 으에에에엥. 으흑흐흐어어어어엉." 쿄코도 주체하지 못하고 응어리진 눈물을 쏟았다.

"주인은 항상 날 속상하게 하면서. 으으으엉, 미안해야 되긴 해도 좀 신경 좀 써줬다면. 으흑, 어흑, 으허헝."

나즈린이 코 풀 종이가 있는지 이치린을 바라봤다가 그녀도 마음에 쌓인 게 많은지 땅을 치고 엎드려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을 보고는 측은함이 느껴져서 아야에게 말을 하였고, 발자국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가 얇은 종이들을 가져오자 그녀의 속도만큼 종이들도 빠르게 동났다.

"어흑, 찾았어요. 코코로양. 크흡, 슬프면 말이죠. 눈과 얼굴이 눈물로 인해 부어있고 충혈되어 있으며 자기 손만 멍하니 바라보고 먼 데를 보거나 공허하게 응시하며 표정이 어둡고, 훌쩍, 턱을 달달 떨며 표정이 맥빠져 있거나 촉촉이 젖어 흐릿하게 됩니다."

마법으로 대충 얼굴 붓기를 가라앉힌 뱌쿠렌이 한숨을 두 번 쉬며 말했다.

"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슴을 손으로 문지르거나 양옆으로 팔을 늘어트리고 주먹을 가슴에 대고 문지르거나 누르며 팔로 어깨를 감싸고 양팔사이에 고개를 파묻으며 코를 훌쩍거리며 울부짓고 울먹이거나 몹시 쉰 목소리 또는 생기없고 단조로운 목소리가 되며 자신의 빈손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손수건, 휴지를 잦고 감정을 투사할 만한 징표를 움켜잡거나 발걸음이 무거워진답니다."

"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아니라 그걸 다 따라 하기엔 너무 긴데. 혹시 적어줄 수 있어?"

"잠깐만요. 누가 으흐흐흑. 적어 줄 거예요. 누가.."

그러자 아야가 눈물을 계속 쏟으며 흐느끼면서 외쳤다.

"저기 제가.. 제가 할께요으어어어엉, 으흐흐으흐앙. 제가. 훌쩍 제가아.."

"아야씨, 하기 싫은 건 어흑, 으흐흑, 아니시죠?"

"아니, 그게어엉, 아니라.. 제가 지금 슬픔이 복받쳐서어어으허헝."

두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절규하는 아야를 포함해 신용하고 있던 부하들의 뒷골을 후리는 비리와 더불어 아야한테 시달리고 있는 현실 등, 쌓인 설움이 폭발해 두 팔에 얼굴을 포개고 크게 오열하는 모미지와 말없이 절규하는 무라사, '아이고 태자님 으아앙.'하고 꺼이꺼이 우는 후토까지 포함해 모두 덩달아 울어버리자 코코로는 무표정 그대로 한숨을 쉬었다.

할 수 없이 벼루와 먹, 붓을 가지러 아야가 문을 나서자 불공[각주:4]을 드리러 온 요괴나 사람들이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울음에 저게 무슨 곡소리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신기해했고 물건을 챙겨 재빨리 문을 닫은 아야가 눈물을 닦기 바쁜 모미지를 신경 쓰지 않고 먹을 갈아 붓을 잡고 쓸 준비를 마치자 뱌쿠렌이 손수건으로 입을 잠깐 가렸다가 입을 열었다.

"받아 적으세요. 아야씨. 흐흐흑. 슬픈 이는 몸가짐은 움찔하고 놀라며 어깨가 축 처지고 딱 굳어있으며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으흑, 어떡해. 매사에 어색해 하며 힘없어 보이는 몸눌림과 마음에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고 어깨와 등이 굽거나 외부세계와 상호작용이 점점 줄어듭니다. 어으흑, 으흑, 생체반응으로 가슴이 아파 견디기 힘들며 눈자위가 뜨겁게 부풀어 오르며 목구멍이 따갑고 콧물이 줄줄 세어나오며 목구멍과 갈비뼈 안쪽이 쑤시고 어지럽거나 기력이 쇠진한 듯이 느껴지며 심장이 쪼개질 듯이 아프거나 시야가 흐릿해지고 에너지가 한없이 소진되어 한기가 느껴지게 됩니다. 크흐흑. 그리고 대답하거나 질문이 어려워지고 더 나은 미래를 낙관할 수 없으며 자기 내면에 칩거하고 슬픔에서 벗어나려 하며..  혼자 있고 싶거나 술, 친구를 찾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기를 바라며 고통스럽거나 부정적인 화제를 피하기도 하고 그리고 고통의 순간이 끝나기만을 바란다. 장기간이 되면 통절하게 울부짖고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리며 호흡이 가빠지고 식욕이 저하되며 절망, 체념, 낙담하게 됩니다."

아야가 조밀한 글씨로 알뜰하게 받아적고 눈물에 종이가 젖지 않도록 모미지가 왼쪽 눈, 코코로가 오른쪽 눈을 맡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자, 마미조가 슬픔에 못 이겨 회한이 드는지 한숨을 쉬면서 술병에서 술을 따라마시고 쿄코가 아무 울음소리나 따라 하며 흐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억압되면, 훌쩍. 세상을 등지고 살거나 자신을 통제하려 들며 심호흡과 잦은 눈의 깜빡거림, 관심사를 바꾸려 하거나 미소가 떨리고 술을 찾으며 크흡, 손으로 입이나 턱을... 가리거나 모임에서 빠져나오며 어흐, 미소가 떨리고 관심사를 바꾸려 한다고 하네요. 흐흑."

숨을 내쉬는게 마치 한숨쉬듯 길게 내쉬던 뱌쿠렌이 물병채로 물을 마시고 말했다.

"그리고 애석하거나 우울하면 무거운 한숨과 미간을 찌푸리게 되고 눈을 깜빡거리지 않으며 촉촉이 젖어 충혈된 눈과 함께 다크서클이 지고 눈이 멍해지며 앞머리를 내려뜨려서 되도록 모습을 감추고 싶어합니다. 어흑, 제 이야기네요. 흐흑."

"아뇨, 저희도 그래요. 뱌쿠렌." 나즈린과 무라사, 이치린이 서로 부둥켜 울면서 말했다.

"이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손은 늘어뜨리거나 힘이 없으며 떨기도 하고 합리화하거나 설명하려 들며 자주 대화의 맥락을 잃고 헤매게 됩니다. 흐흑, 하다 만듯한 의사표현과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하며 웅얼거리고 안타까움에 스스로 비하하기도 한답니다."

코코로가 가면을 유지하며 아야가 속기한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자 뱌쿠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용을 이었다.

"자세는 구부정하고 손놀림이 굼떠지며 팔이 무겁고 어깨가 처지고 자신의 발 쪽으로 시선을 내려뜨리면서 자신이 예전에 했던 선택이나 언행을 후회하고 질책하고 돌이키고자 발버둥 치기도 하며 울부짖고 변명거리를 찾으며 불면증, 신경성 위장장애, 식욕저하, 가슴이 답답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어허윽, 진짜 지금 제 심정이네요. 흑, 남에 눈에 띄고 싶지 않거나 심란함, 순간을 잊기 위한 노력, 체중감소와 건강에 소홀해지고 흐느껴 울게 됩니다."

목 아래를 감싸 쥐고 숨을 한숨 쉬듯 잠깐 고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계속 말했다.

"그러면서 친밀한 교류가 힘들고 자기 자신을 용납하지 않으며 만회할 과잉보상이나 쾌락을 추구하게 된답니다. 어흐으흐,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거나 발을 질질 끄거나 인기척을 무시하며 잘 먹지 못하고 훌쩍, 약속을 깜빡하며 수척해지고 잠시 고립을 자처하게.. 됩니다. 흐으흐읍, 의욕이 없고 심장박동이 둔화되며 내부에만 관심이 쏠려있고 힘이 들며 시간 감각이 마비되고 집중력이 저하되며 내부의 상처에 집착하고 비관적이 되게 됩니다."

"으흑, 계속 들으니까 더 슬퍼." 무라사가 코를 세게 풀면서 울먹였다.

"이런 감정에 반할 경우에는.. 반할 경우여요, 여러분. 직장을 바꾸거나 이룬 성과를 과장하거나 삶의 방향에서 다른 선택을 하거나 애써 행복한 웃음을 지으려 하고 반응하기 전에 멈칫거리고 억지스럽거나 과장된 감정 성찰이나 과음, 거짓말을 하게 된다고 하네요."

마미조의 눈물 묻은 안경을 안경 닦는 천으로 닦아주고 나서 그녀의 꼬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쏟던 누에는 퉁퉁 부은 눈과 붉어진 볼을 손바닥으로 두드려 진정시켜주면서 아야의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얼굴의 열기를 식히면서 말했다.

"으흑, 으헝, 훌쩍, 나 우는 거 너무 힘들고 마음도 아파서 그러는데 잠시 생에서 겹겹이 쌓인 슬픔 좀 삭히고 올게요."

팔등으로 두 눈을 가리듯 닦으며 우는 누에에게 뱌쿠렌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안경 사이로 마미조의 눈이 예리해졌고 이치린과 나즈린도 눈이 슬쩍 돌아가면서 누에와 아야를 동시에 살폈다.

문을 열고 바깥의 늪과도 같은 무더운 공기를 마신 누에는 안이 더 시원하다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 필기에 정신이 없는 아야를 마지막으로 보면서 문을 닫았고, 차가운 물을 받아놓은 통에 얼굴을 담그는 등, 최대한 빠르게 부기를 빼고는 눈물 젖은 리본 등 매무새를 단정히 하면서 주위를 살피며 허공을 날아올라 절을 벗어났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토지코는 의문에 찬 얼굴로 묘렌사를 찾았다.

"태자님 뒷바라지해드린다고 너무 늦어버렸네. 후토도 분명 절에 갔을 텐데."

'내막을 알기 위해서 감수하고 곽청아랑 손잡았지만 영 찜찜해서 계속 걸린단 말야."

관음전에서 자두와 술로 목을 축이며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설파하는 쇼의 목소리를 지나가면서 들으며 후토의 목소리를 찾던 토지코는 주변을 걷던 요괴나 사람들이 하나같이 기이한 표정으로 웅성웅성 떠들 정도로 대성통곡이 흘러나오는 방을 발견하고는 너무 놀라서 눈이 희둥그레지며 재빨리 문에 귀를 대고 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혀를 찼다.

"뭐야? 후토도 울잖아? 다들 이게 뭔 청승이람?"

토지코가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지만 모르겠다는 소리를 들어서 최대한 벽에 밀착하여 소리를 들으려 하며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이,

몹시 내키지 않는지 인상을 팍 쓰고 투덜거리던 누에는 팔등으로 이마에 가득한 땀을 닦으며 지열이 가득해 공기마저 매섭게 끓는 지령전에 도착했다.

  1. 1. 염각지. 알아차리기라는 깨달음의 요소 2. 태법각지. 안팎의 현상들을 선별하는 깨달음의 요소 3. 정진각지. 정진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4. 희각지. 기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5. 경안각지. 편안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6. 정각지. 집중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7. 사각지. 평온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본문으로]
  2. Richard Lazarus (1922. 3.3 ~ 2002. 11.24) 미국의 심리학자, 스트레스, 인지, 감정에 대해 연구 및 정의에 업적 [본문으로]
  3. Aaron T. Beck (아론 백) 인지치료에 업적을 남긴 미국의 정신의학자, 인지삼제는 그의 인지치료이론에서 언급 [본문으로]
  4. (佛供) 불보살에게 음식, 향, 꽃등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치거나(공양) 그것을 바치며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불교의식, 살아있는 대상의 소원의 성취를 위한 것으로 죽은 넋을 위로하는 규모가 큰 재(齋)와는 다름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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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 좋은 말들이죠? 우리는 일상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행할 때 원하는 것을 얻거나 얻을 생각에 만족하고, 예상과 분석, 점검으로 평정을 찾으며 그것을 얻었을 때 자신과 주위에서 기쁨이 쏟아지고, 성취감을 느끼며 해냈고 할 수 있다는 의욕심이 들게 된답니다. 이러한 상태를 우리는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코코로를 바라본 뱌쿠렌이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잠깐 읽은 뒤, 계속 말을 이었다.

"이러한 기쁨은 무언가를 행하는데 상당한 동기가 됩니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뭔가 더 하고 싶고 눈에 보이는 남도 더 챙겨주고 싶고 무언가를 행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강력한 내적 에너지가 되는 셈이죠. 반대로 내가 기분이 나쁘거나 힘들 거나 축 처지면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기쁨과 관련된 소위 정적정서는 사고의 방식과 세상에서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고 호기심과 창의력을 가지게 해주며 남과 사회적 연결을 돕는답니다.[각주:1]"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예전에 훈장님이 가르쳐준 좋은 기분에서는 좋았던 기억이 더 잘 생각나는 것과도 연관있는 거예요?"

"맞아요. 코코로 양."

뱌쿠렌이 대답을 하면서 책을 펴 한번 훑어보고는 난처한 기색으로 몇 번 더 정독하면서 말했다.

"이런 긍정적인 기쁨은 강력한 내적 에너지가 되고 의욕과 안정감을 주어 회복력 및 신체활동을 돕고 처한 상황에 대해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낙천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심리적인 자원이 된다고 하네요. 그 예로 슬픔, 공포, 분노, 혐오 및 수치와 같은 부적정서로 인한 심장박동수 증가, 혈압상승과 같은 신체적 각성및 긴장감을 기쁨, 만족, 흥미 및 사랑과 같은 정적정서가 완화시키고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복원효과[각주:2]가 있다고 합니다. 나태나 통제되지 않는 분노, 번뇌와 같은 마음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긍정의 효과지요."

뱌쿠렌이 책을 덮자, 살짝 주변을 살핀 후토가 나서서 도왔다.

"기분이 좋으면 아침에 쉽게 일어나고 실수나 불편함, 나쁜 일이 있어도 괜찮고 받아들여지고 용서되는 것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네."

"아하! 확실히 이해돼!" 코코로가 손뼉을 치며 감탄을 쏟아냈다.

"후토 씨처럼 설명을 좀 풀어서 해야 하는데 케이네 훈장님이 왜 수업방식에 회의적인 말씀을 하셨는지 공감이 가네요."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한숨을 쉬듯 토로하는 뱌쿠렌의 말에 주변에서 키득키득 웃자, 아야가 문화첩에 기록하면서 모미지에게 필름을 갈도록 카메라를 맡겼다.

"기쁨과 감정은 불교에서 느낌에 해당하는 오온(五蘊)인 수(受)와 관련이 있어요. 오온은 기억나나요?"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는 코코로가 눈에 들어온 뱌쿠렌이 만족스럽게 말했다.

"그럼 다행이네요. 기쁨은 관심사나 취미생활, 즉 뭔가 내가 끌리거나 재밌는 것을 할 때 흥분과 흥미를 느끼는데 이런 감정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고 도전하는 동기가 되어주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답니다. 코코로양은 좋아하는 것이나 관심사가 있나요?"

그러자 코코로가 두 팔을 들면서 외쳤다.

"춤추는 거랑 승부로 최강이 되는 거!"

"그렇군요. 참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신나는 흥밋거리네요."

"그쪽은?" 코코로가 부채로 뱌쿠렌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는 불경 읽기와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중생을 구제하고 요괴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 만들기랍니다."

코코로가 이번에는 후토를 가르치자 후토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시해선이자 신하된 자로서 나는 태자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고 태자님을 보필하며 살아가는 '생' 그 자체이지."

그녀의 말을 들어준 코코로가 뱌쿠렌을 다시 바라보자, 뱌쿠렌이 다시 인자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집중력을 강화해 쉽게 몰입하고 탐닉할 수 있게 해주면서 즐거움과 함께 도취감을 일으켜 자신감을 불어 일으켜주죠. 그것에 완전히 빠져드는 거예요. 아주 자세하게요."

"아주 자세히?"

"네. 알면 알수록 정들게 되니까요. 더 빠져들게 되고 흥미롭고 친밀해져서 좋아지는 것이죠."

"아항."

"그리고 실패하든 잘되지 않았든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보람 있고 기쁘고 관심을 얻거나 주면서 쾌활해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어요."

"그럼 기쁨이 계속되면 좋겠네."

코코로가 기쁘거나 즐거울 때 쓰는 노인 가면을 꺼내며 팔을 흔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세속에서 기쁨을 늘 느끼길 바랄 수는 없어요.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열반의 단계가 아닌 이상이지만. 그렇게 된다면 기쁨에 의존하게 되어 더 큰 기쁨을 찾기 위해 탐욕을 부리겠죠."

아야가 모미지에게 카메라를 건네받은 사이,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기쁨의 긍정적인 영향은 지켜보는 누구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보는 이도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해요. 기쁜 일이 있어서 막 좋아할 때 주변인들이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축하해주는 것을 보아도요. 그렇게 유쾌한 감정들은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여 쉽게 친해지게 하고 인정받는 느낌을 들게 해주기 때문에 사회 친화성과 자부심을 높여주는데 이는 스트레스나 자괴감을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되어요."

코가사와 쿄코가 실없이 웃으며 지켜보고 나즈린이 슬쩍 눈치로 아야를 쳐다보자, 카메라를 얼굴에 붙인 자세의 아야는 미소를 지으며 셔터만 눌러댔다.

"자, 기쁨과 관련된 감정의 단어는 매우 많아요. 저번에 연습했던 것처럼요."

그녀가 펼쳐준 책의 글을 읽어본 코코로는 자신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난처한 말투로 말했다.

"꽤 많은데."

살짝 지루해진 누에가 슬금슬금 뒤로 가서 책을 뺏어 들며 높이 들면서 하나하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디 봐, 설레는, 들뜬, 짜릿한, 즐거운, 열렬한, 황홀한, 환희에 찬, 뛸 듯이 기쁜, 고양된, 각성한, 신나는, 하늘에 뜬 기분, 기쁜, 상쾌한, 명랑한, 쾌활한, 흥겨운, 흐뭇한."

책을 내려놓은 누에가 코코로를 돌아보면서 깍지를 껴 자신의 목덜미에 대고 말했다.

"확실히 기분 좋아지는 단어들이네."

"설레는, 들뜬, 짜릿한, 즐거운, 열렬한, 황홀한, 환희에 찬, 뛸 듯이 기쁜, 고양된, 각성한, 신나는, 하늘에 뜬 기분, 기쁜, 상쾌한, 명랑한, 쾌활한, 흥겨운, 흐뭇한!!!"

쿄코가 해맑게 따라 외치고 나서 놀란 표정의 가면을 꺼내 들며 볼을 만지작거리는 코코로에게 웃으며 말했다.

"따라해보니 기분 좋아져!!!"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활짝 웃던 쿄코가 손뼉을 치며 외쳤다.

"기뻐!!"

무라사가 피식 웃으면서 쿄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이치린이 어깨동무를 해주는 것을 본 코코로가 웃을 때 쓰는 노인 가면을 꺼내 들면서 입을 열었다.

"신나는, 고양된, 상쾌한, 쾌활한. 흥겨운."

그리고는 공중에 떠서 부채를 꺼내 들어 춤사위를 펼쳐 보이면서 말했다.

"공중에 뜬 기분!"

"오오, 너도 제법 기분 좋아진 것 같은데!"

누에도 장난기 넘치는 표정과 함께 코코로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응!"

"모미지! 사진기!!! 아니, 카메라!! 얼른!!"

당황한 아야가 다급히 모미지에게서 카메라를 받아서 사진을 찍자, 모미지가 혀를 찼다.

"둘 다 똑같은 말 아니냐. 이 까막눈아."

"바쁘니까 실수한 걸 가지고 개처럼 물어뜯긴!"

모미지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상을 팍 쓰자, 아야는 그것마저도 사진을 찍었다.

"아잇! 개 아니라고!!"

모미지와 아야가 옥신각신 다투자, 나즈린과 무라사가 한숨을 쉬며 말리고 돌아가서 마미조 옆에 앉은 누에가 미소를 지으면서도 되도록이면 모미지가 등지고 있는 산 쪽을 보지 않게 하려고 계속 지켜보았다.

"자, 기쁨이라는 감정을 잘 느끼고 있는 것 같으니 계속 가르침을 논하도록 하죠. 기분이 좋다는 것, 즉 기쁨은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어주고 미루던 일이나 좌절, 실패에 관해서 그 영향이 손해가 크고 치명적이지 않는 한 감수하고 도전하게 하는 의지를 불어넣어 줍니다. 시도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감정적인 힘이 되어주는 거죠. 또 욕구나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도 보상차원에서 생기고요. 다들 기분 좋을 때 무언가 하려고 하고 물건을 사고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리고 쉽게 협동하고 좀 더 많은 생각과 혜안을 고려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를 가지게 해줍니다."

아야가 문화첩에 뱌쿠렌의 말을 요약해 기록하고 모미지가 받은 카메라의 필름을 갈면서 눈치를 슬쩍 보고 바꿔치기하는 사이에 코코로가 집중해서 들었다.

"무엇보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는 남이 잘 보이고, 남을 더 잘 도와주게 되죠. 도움을 통해 인정받음과 더불어 자신의 말이 잘 들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기분을 좋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니까요. 자기 자신에게도 무언가 하려는 의지를 불어넣어 주고요. 자, 그럼 우리가 기쁠 때 느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뱌쿠렌이 후토를 자신의 앞에 앉힌 뒤,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기쁠 때 어떤지 표현해주시겠어요?"

"음, 뭐, 어렵지 않네!"

그녀가 제자리에 높게 뛰면서 활짝 핀 손으로 만세를 부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웃자, 지켜보던 몇몇 요괴들도 그 모습에 웃음이 터져 박장대소라며 키득키득 웃었다.

"우히히힣! 뭐야, 그게!"

"아흑, 어우, 까하하하!"

"네, 후토 씨가 잘 보여주셨군요. 우리가 기쁨에 도취하면 좋아서 방방 뛰거나 허공으로 팔을 들어 올린다거나 콧노래를 부르고, 목소리가 격양되거나 떨리고 얼굴과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게 되죠."

"와! 나도 지금 기분 엄청 좋아!! 히힛!!"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리듬을 타듯 팔을 흔드는 코코로의 얼굴에서는 분명히 입에서 웃음소리가 나오고 있었지만, 눈썹과 볼에 미동도 없이 입만 크게 벌리고 그야말로 딱딱한 무표정이 반영된 어색한 미소에 보는 이들이 낯선 시선을 지었다.

"정말 어색하긴 하네. 동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마치 누가 시켜서 억지로 짓고 있는 거 같아."

"누, 눈이 웃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응? 난 분명히 웃고 있다고!"

코코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걸 어떻게 말해줘야 얘가 마음이 안 상하려나 고민에 빠진 주위에서 코가사가 우산을 내려놓고 코로로의 뒤로 다가와 두 집게손가락으로 그녀의 입가에 가까운 볼 쪽을 살포시 잡아당겼다.

"어? 뭐하는 거야?"

"이제 아까처럼 웃어봐."

코가사의 말처럼 코코로가 웃자 볼 쪽이 당겨지면서 볼살도 마치 보조개가 들어가듯 당겨져 입가가 올라가며 전보다는 좀 더 웃는 얼굴에 가까운 표정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하니까 여전히 눈웃음이 안 지어져 부자연스럽긴 한데 확실히 아까보다는 웃는 얼굴 같네요."

"응, 확실히."

"너무 표정이 없으니까 저렇게 입가만 올라가도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네요."

"아야 씨, 셔터 그만 눌러요."

"그만 눌러요옷!!"

"에이, 이런 장면을 놓칠 순 없죠."

"눈썹이랑 눈가가 조금만 올라가도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말이에요."

자신의 얼굴을 본 주변에서 방금과는 다른 반응들이 쏟아지자 코코로가 고개를 돌려 뿌듯하게 미소를 짓는 코가사에게 물었다.

"이게 웃는 거구나. 언니 알려줘서 고마워."

"뭐 어때? 안 그래도 예쁜 얼굴인데. 히히." 코가사가 혀를 내밀며 웃음과 함께 답했다.

그런 모습을 잠자코 보던 누에는 팔짱을 끼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근데 왜 다들 얘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변하지 않는 얘 얼굴만 보고 판단하려 하는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코코로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가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얘 기분을 알고 싶으면 진짜 얘 표정을 봐야지. 지금 크게 웃고 있잖아!"

광대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크게 웃는 가면이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본 주위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숙이며 수긍했고 아야도 가면 쪽으로 클로즈업 샷을 하자, 미소를 짓던 마미조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우리 친구 말이 맞제. 우리가 있는 그대로를 우리의 잣대로 이러쿵저러쿵 오해하고 살 붙이면서 상처 주지 않으려면 말이여."

"진짜 처음 보는 사람이면 오해할 수 있겠지만 다 아는 사이끼리 그대로 받아줘야지. 얘가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누에의 말에 코코로도 입을 크게 열면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자, 후토도 입가 웃음과 함께 눈을 감으며 수긍했다.

"멘레이키가 저토록 표현하는 것을 보니 내심 아쉬움이 컸나 보군. 본질을 중요히 여기지 못한 우리 잘못이네."

"그러게요. 누에 씨 덕분에 다시금 되새길 수 있게 되었네요.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뱌쿠렌이 웃으며 누에에게 합장하자, 누에가 미소를 짓고도 얼굴을 붉히며 머뭇거리면서 고개를 돌렸고, 그와 함께 눈이 마주친 코코로가 기쁜 목소리와 함께 윙크로 답했다.

"고마워, 언니!"

"에이, 야. 뭘, 당연한 소릴. 가지고 말야."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새침한 모습에 마미조가 키득키득 웃어버리자 기회를 놓칠 리없는 아야의 셔터가 돌아갔고 누에가 한숨을 쉬며 방방 뛰었다.

"아잇! 웃지 마!! 너도 사진 찍지 말라고!!"

"누에 씨가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네욬크킄킄."

말리는 누에를 보고 쇼나 나즈린, 이치린과 쿄코도 폭소를 터트리자, 후토는 우산을 주섬주섬 챙기는 코가사를 살펴보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코코로를 지켜보았다.

그러는 사이 뱌쿠렌이 책을 펼쳐 읽으면서 다시 읊었다.

"자, 그럼 다시 수업을 진행하도록 할게요. 이런 기쁨의 표현 중 웃음은 동공 괄약근이라고 하는 눈의 테두리에 해당하는 부분의 고리 모양 근육이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주름이 잡히기 때문에 정말로 웃는 것인지 웃는 척한 것인지 확연히 드러난다고 해요."

읽기를 잠깐 멈춘 뱌쿠렌은 코코로를 돌아보며 그녀를 위해주면서 입을 열었다.

"물론 코코로 양과 관련있을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관련이 깊긴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를 표하는 코코로를 바라본 뱌쿠렌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눈주름만 잡히는 것만이 진정한 웃음 판단력이 아니라 관골, 즉 광대뼈인 눈 아래쪽 부분도 수축하기 때문에 소위 어색한 미소란 눈 아래쪽 관골에 힘을 줘 수축하면서 웃거나 관골과 동공 괄약근에 힘을 줘서 대충 눈주름만 잡는 것을 말한다고 해요. 소위 영혼 없는 웃음이라고 부르는 웃음을 말하죠."

코가사나 무라사가 서로 웃어보면서 눈을 확인하거나 얼굴 근육이 움직는 것을 확인하자 코코로 뿐만 아니라 나즈린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럼 진짜 웃음은 뭐야? 눈에 주름 잡히는 게 다가 아니면?"

궁금한 표정의 가면으로 모미지가 필름을 갈아주는 사이 카메라를 내려놓은 아야의 눈매를 살펴보던 코코로가 물어보자 뱌쿠렌이 내심 대답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스스로 궁금해져서 빨리 대답했다.

"관골과 동공괄약근이 바깥쪽 부분을 티 나게 수축하면서 자연스럽게 눈이 '미소'를 지으면서 보는 이가 기분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미소라고 하네요. 정말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이나 숙련된 연기자의 미소, 아기의 웃음처럼요."

"흐음, 그렇구나."

"이런 웃음은 기쁠 때 흘리는 눈물처럼 마음을 상기시키고 힘든 감정을 완화하기 때문에 내면의 윤활하고 적극적인 에너지가 될 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적개심과 시기심을 낮춰주고 더 쉽게 융화되거나 공감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다른 요괴들이 '오오.'하면서 감탄하며 쳐다보자 뱌쿠렌이 어설픈 미소로 다른 손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물론 웃음은 역으로 보는 이에게 도발의 의미가 되기도 하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우월감을 표하기 위함이나 비웃음, 보고 있는 상대가 패배감, 상실감, 자존심이 낮은 이런 경우는 보는 이의 사기를 낮추거나 적개심, 시기심을 높여주고 탄막이나 말보다 빠른 주먹을 부르는 역할을 해요."

코코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호기심 가득한 가면을 꺼내 들자 뱌쿠렌이 응답했다.

"그만큼 표정으로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수월히 읽을 수 있다는 거랍니다. 말투, 억양도 보조정보로 따라오죠. 그리고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죠."

"그럼, 그럼, 내 표정도 굳이 한 가지 의미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네?"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가면을 내밀며 표정없이 물어보는 코코로에게 뱌쿠렌은 목탁을 한번 길게 두드리고는 슬며시 눈웃음을 지었다.

"얼마든지요."

놀랐는지 입을 벌리다가 붙이면서 미소를 짓고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따라 하며 자신의 몸에 붙이며 고개를 숙이는 코코로의 모습에 주변 요괴들이 놀라워하거나, 웃거나, 몇 명은 귀여워하거나, 대견하게 바라보았고 오직 열심히 사진을 찍고 문화첩에 필기하는 아야와 턱을 괴며 심각하게 바라보는 후토만 동떨어졌다.

"탁탁 타다다다다다다락!!!"

쿄코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목탁소리를 따라 하자 주위에서 폭소와 함께 후토도 피식 터졌으며 누에가 접어든 날개를 무심결에 펼칠 정도로 키득키득 배를 잡으며 웃었고 마미조가 껄껄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자, 절에 찾아온 멘레이키 소녀도 스스로 마음에 깨달음을 얻는데 우리 절 요괴들도 우리 절에서 기쁨은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깨달음을 얻고 말씀처럼 사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목탁을 두드리며 주지승이 하는 말씀에 고개를 숙이며 볼멘소리로 '네에.' 말과 함께 찔리는지 떨떠름하고도 짧은 대답이 오가자, 진정이 되어 평범한 소녀 가면으로 돌아온 코코로가 집게손가락으로 볼을 비비면서 바라보았고, 곧바로 모미지가 볼을 찌르는 옆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주지승님, 외람된 소리지만 제가 문외한이라서 그러는데 그 목탁은 왜 치는 건가요?"

"아, 목탁소리는 염불이나 경전을 외울 때 박자를 맞추거나 정신을 맑게 하고 번뇌를 털어내어 집중하도록 하는 거랍니다."

모미지와 아야, 후토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던 모미지가 문득 무슨 일이 모른다는 걱정과 함께 하타테와 대화한 게 생각나 산을 살피려 등을 돌리자, 이치린과 누에가 동공이 흔들리면서 몹시 당황했다.

"뱌쿠렌! 또 계속 가르쳐야 할 것 같은데?"

누에의 다급한 말에 주지승이 손바닥으로 볼을 두드리며 '내 정신 좀 봐.'하며 웃음으로 응답하고 책을 펼치며 이치린, 나즈린, 누에 등 주변 요괴들을 돌아보았다.

다시 사진을 촬영하려 아야가 필름을 갈도록 모미지에게 카메라를 주고는 새 카메라를 꺼내라고 시키는 사이에 주지승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몇 가지만 더 읽어 말하고 다음 감정인 슬픔에 대해서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기쁠 때는 어깨와 허리를 짝 펴거나 턱을 높이 들고, 보폭이 커지면서 느긋해지고, 웃음, 행동이 과장되고, 농담하거나 장난을 칠 정도로 들뜨고 남에게 무언가를 보이는데 개의치 않으며 대화를 주도하거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안정되고 편한 기분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하죠. 도취감에 고양되어 성취나 성공에 집착하고 성원해주거나 응원해주거나 자신의 진가나 성과를 알아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싶어 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신하고 때로는 과대평가도 하죠. 강한 성취감과 쾌락을 느끼고 추구하며 이와 같은 감정이 매우 강해지면 교만해지거나 남의 기쁨에 대해 공감보다는 주목이 다른 상대에게 가는 것에 대해 질투가 유발될 수 있고 반대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자기 자신의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고 의욕도 없는 것과 더불어 칭찬이 인색해지고 타인에게 신뢰를 보내며 자신보다는 다른 쪽으로 주위를 돌리거나 다른 상대에게 의견을 구하거나 확인절차를 밟는 것을 매우 신경 쓰게 된다고 합니다."

책을 덮고 나즈린이 쥐들을 시켜 눈치껏 가져온 물을 한 컵 마신 뱌쿠렌이 아야의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다른 책을 꺼내 들었다.

"자, 그럼 이번에는 다른 감정인 슬픔에 대해서 가르쳐보도록 하죠."

  1. (Fredrickson, 1998; Isen, 2002) [본문으로]
  2. (Fredrickson, Mancuso, Branigan, & Tugade, 2000)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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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시 경 명련사


오후가 되어 작열하는 햇살과 경쟁하듯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키며 땀을 흘리는 아야와 혀를 내밀며 '헥헥'거리는 모미지, 바람마저도 더운지 자신에게 부채질하는 코코로에게 몰아붙이는 사이, 그들의 눈에 방문한 요괴와 사람들로 붐비는 명련사의 바쁜 일상이 펼쳐졌다.

"어? 너희 왔어? 한참 법회라 바쁠 때 왔네. 잘 지냈지?"

신자들을 위한 물통을 나르던 무라사 미나미츠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화색이 돌면서 반갑게 인사하자,

삼인방도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무라사 씨. 잘 지내셨나요?"

"뭐, 지내는 거야 똑같지. 교육받으러 온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좀 기다려야 해. 뱌쿠렌이 지금 설법 중이라서 말야. 우리도 지금 정신없고."

그렇게 말하고는 잠깐 삼인방을 살폈다가 물통을 건네주며 말했다.

"어? 너네 땀 많이 흘렸잖아. 더운 날씨에 찾아오느라 고생했으니 마셔."

"어머, 감사드려요!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도 그늘이 없으니 무척 더웠거든요."

아야와 모미지, 코코로도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는 코코로가 먼저 물을 마시고 손에 물을 조금 적셔서 몸을 식힐 겸 목과 얼굴을 문지르자 바로 받아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켠 아야가 깊은 날숨을 뱉고서 미소를 지었고, 건네받은 모미지는 마시려던 손을 급하게 멈추면서 아야를 돌아보았다.

"야, 너 어느 쪽으로 마셨냐?"

"알아서 마셔. 물만 마시면 됐지!" 아야가 입가를 닦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내가 너 입댄 곳에 마실 것 같아?"

"니넨 목말라 죽어가는데 그런 거 따지고 있냐?" 무라사가 한심하게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냥 이 언니 허리춤에 있는 이걸로 떠 마시면 안 돼?"

코코로가 무라사의 국자를 가리키며 묻자 무라사가 난색을 보했다.

"미안하지만, 이거 그런 용도아냐. 쓰는데 상관은 없어도 이걸로 마셨다간 좀 기분이 오싹해질걸."

못 견딘 모미지가 물통 전부를 입에 부어버리자, 웃음과 함께 낯익은 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하하하. 자네들도 드디어 왔는가."

후토가 소매를 너풀거리며 반갑게 맞이하자 삼인방은 대답대신 여기 왜 있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허 참. 뻔하지 않은가. 교육을 똑바로 하나 안 하나 지켜보러 온 거라네!"

"아침부터 찾아와서 심심하면 종도 쳐가며 내내 기다리더라고." 무라사도 질린듯이 이야기했다.

지나가는 인파를 헤쳐 일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나즈린이 낯익게 소란스러운 그녀들을 발견하곤 황급히 다가왔다.

"뭐야? 하필 바쁠 때 한꺼번에 다 와버렸잖아. 잠깐만 내가 다 불러올 테니까."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근처에 있던 쥐떼가 움직이면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설법하는 쇼, 목탁을 두드리면서 경을 외고 있던 이치린, 처음 오는 신자들에게 명랑하게 절 안내를 하던 쿄코와 요사채[각주:1] 근처 그늘에서 술과 함께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마미조와 누에, 남을 놀래주려고 준비하다가 석등 그늘 옆에서 잠든 코가사까지 깨워서 데려오자, 나즈린이 쥐들에게 품에서 쌀들을 던져주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냉철하게 일 처리를 시작했다.

"자, 일단 모일 요괴는 모였고 절에 들어온 이상 너희 몸수색부터 해봐야겠어."

"아, 뭐, 그러세요!" 아야도 자신 있는 말투로 팔짱을 끼며 받아쳤다.

"에, 또 말입니까?" 모미지가 숨긴 필름 때문에 난처한 표정을 그대로 표하자 나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귀찮게 되었네요. 모미지도 저도 여기서 무언가 걸린다면 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호랑이 입에 들어온 셈이니까 각오하곤 있어요. 후후."

아야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을 꺼내자 그와 비교되는 인상 쓴 모미지의 투정 섞인 말이 뒤따랐다.

"뭐야? 완전 호구(虎口)잖아."

"응, 맞아. 호구(口)야."

"둘 다 말장난 하지 말고 검사나 받아."

다우징 봉을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들이대던 나즈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에 사람들이나 요괴들이 오지 못하도록 한 뒤, 이치린, 마미조, 누에가 유심히 바라보고 '뭐, 저렇게까지 털면 뭐가 나오나?'라고 혼잣말하는 쇼와 심드렁하게 주저앉아서 턱을 괴고 무심히 바라보는 무라사, 뭐가 트집 잡을 게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빛의 후토, 호기심 가득한 쿄코와 코가사의 시선이 아야와 모미지에게 집중되자, 코코로도 곤란한 감정이 들 때 쓰는 원숭이 가면을 꺼내 들며 집중했다.

다우징 봉을 두 손에 쥐고 그녀들 주변에서 흔들던 나즈린은 아야가 목에 맨 카메라, 신경이 쓰여 침이 말라가는 모미지의 검과 방패, 매고 있던 배낭도 따로 빼놓은 채, 이번에는 펜듈럼을 꺼내 들며 열심히 탐지했다.

"허리춤의 벨트 들어봐."

아야가 거만한 표정으로 상의의 양 옆구리를 집고 벨트를 내보였고, 펜듈럼과 벨트를 번갈아 보던 나즈린이 차분하게 말했다.

"금속 반응은 그 외에는 없고 그럼 저 열외대상에 뭔가 있다는 건데."

한숨을 쉬는 모미지를 지나친 나즈린이 펜듈럼을 빼놓은 물건들에 가져다 댔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아야의 카메라를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가 모서리에 있는 당기는 버튼을 누르려 하자 아야가 다급히 외쳤다.

"잠깐! 그거 당기면 내부가 열리는데 안의 필름이 빛을 받아서 못쓰게 돼요!"

"그거 다시 사주면 되는 거 아냐?" 누에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남의 물건인데 함부로 대해서 손해를 끼치는 건 무례한 일이죠." 쇼가 엄숙하게 반론했다.

"잠깐 확인으로 믿음을 살 수 있으믄 여기서 마구 찍어갈 텐구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닐 것이제."

마미조가 어떻게 하겠냐는 듯 담뱃대를 흔들자, 아야도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숙이고 격양된 채로 빠르게 입을 열었다.

"으아악!! 내 필름! 아이고 카메라 만져본 요괴들도 저 말고는 안 계시면서 그거 열면 내부가 뭔지 알기나 하시냐고요!!"

"수상한 게 있나 없나 확인만 할 거야. 그러니까 연다."

씁쓸한 표정으로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아야가 팔짱을 끼며 쳐다보는 사이에 나즈린이 카메라의 내부를 열자 복잡한 기계 내부와 더불어 늘어진 필름과 타이머 및 시간 장치, 상단의 렌즈, 캇파가 만든 전지(電池)가 전선에 얽혀 구석에 박혀있는 광경이 드러났다.

"흠.. 흠.. 기계를 모르니 그냥 봐선 진짜 열어봐도 모르겠네. 보면서 사진 찍는 기능과 다른 수상한 물건이라고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도 내부에는 없고." 펜듈럼을 계속 살피던 나즈린이 급하게 당황하자 울상이 된 아야가 울부짖었다.

"어흐흑. 내 필름 하나가 날아갔어. 어흑."

"잘 됐네. 저걸 직접 갈아야 하는 일거리 하나 줄어서." 모미지는 쾌재를 불렀다.

아쉬워하는 누에와 이치린, 아야와 모미지의 표정과 태도를 유심히 지켜보는 마미조와 다르게 쇼와 후토, 코가사와 쿄코의 당혹스러운 시선을 한 초점에 받게 된 나즈린이 난감해서 재빨리 카메라를 닫았다.

"뭐, 없으면 됐잖아. 이거 하나 가격 청구해."

민망한지 붉어진 얼굴로 카메라를 내려놓고 배낭을 뒤져본 나즈린이 얇은 금속통으로 된 스프레이들을 꺼내 들며 물었다.

"이건 뭐야?"

"그견 땀냄셰 제겨용 데오트란트랑 모기 퇴치용 살충제에여." 아야가 울먹이면서 발음이 깨진 그대로 답했다.

"뭔가 이상하거나 위험한 물질 든 건 아니지?"

나즈린이 에어로졸 스프레이를 가리키며 물어보자 아야가 성분표시 그대로라고 답했고, 카메라와 필름들로 가득한 배낭까지 살피고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에이, 없네. 검사 끝났어."

"절간 것들은 의심이 많아 참으로 깐깐하구만." 후토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야 씨, 카메라는 괜찮나요?"

"괜찮나요오옷?????"

쇼와 쿄코의 물음에 재빨리 다가가 카메라를 확인한 아야는 내부를 열어 살펴보고 못마땅한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카메라는 괜찮은데 빛노출이 심해서 필름 일부를 못 쓰게 됐어요."

"미안하구마이, 오늘 함께하는 시간에서 떳떳해지는 것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믄 아깝진 않을 것이구려."

마미조가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아쉬워하는 누에 곁에서 다가와 필름 값을 건네주며 아야의 어깨를 토닥여주자, 아야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우, 네, 그걸로 일단 위안 삼아야죠. 잘 알았으니까 다음에 또 하실 때는 미리 필름을 뺄게요."

그 모습을 본 나즈린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혀를 차면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금덩이 하나 쥐여주고 퉁칠려 그랬는데.'

계속 지켜보던 코코로가 평범할 때 쓰는 소녀 가면으로 돌아가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든 말든 관심이 떨어진 코가사가 오드아이를 반짝거리며 귀엽게 여기던 코코로에게 물병을 더 건네주면서 부채질을 해주었다.

"자, 이제 나즈린은 다 된 거 같으니까. 사실 오늘 가르침은 뱌쿠렌이 준비했거든요. 그런데 하필 법회중이니까 제가 대타로 들어가고 뱌쿠렌을 불러올게요."

쇼가 말을 마치고는 머뭇거리더니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어디로 둘지 모를 눈초리로 나즈린에게 말했다.

"저기 나즈린. 내가 아무래도 보탑을 어디다 뒀는데 거기가 어딘지 모르겠네요."

"아잇! 주인!! 내가 저번에도 간수 잘하랬잖아!!"

동공이 커진 나즈린이 귀를 펄럭이며 방방 뛰면서 언성을 높이자 쇼가 겸연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무심결에 놔뒀는데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 나요."

"아이 정말. 내가 못 살아!"

한숨을 쉬면서 미간을 찌푸린 나즈린이 쥐들에게 명령을 주고는 쇼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에휴, 알았으니까 주인. 어차피 뱌쿠렌 데려올 거니까 가면서 찾자고요."

일행을 뒤로하고 쇼와 함께 절간을 돌아다니던 나즈린은 자신의 펜듈럼을 살피다가 요사채의 한 방에서 보탑을 발견하고는 쇼에게 똑똑히 보라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눈썹을 치켜세우며 손가락으로 말없이 그것을 가리켰다.

"하하. 여기 있었네요.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였는데 나즈린이 찾으면 금방 나오네요!"

쇼가 겸연쩍게 어설픈 미소와 윙크를 지으며 어디로 둘지 모를 눈초리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자 나즈린이 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한숨을 내뿜으며 말했다.

"물건 좀 함부로 두지 말라고요! 주인."

"알았어요. 알았어."

"저번에도 그랬잖아요! 한번 말하면 좀 들으라고요!"

"네, 그럴게요."

쇼가 웃으면서 말하자 보탑을 쥐어둔 나즈린이 눈을 깜빡이면서 쇼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받고 일단 따라오세요!"

언성을 높인 나즈린에게 '또 한소리 듣겠구나.' 하며 끌려간 쇼는 공양간에서 나즈린이 건네준 자두와 도자기 병 하나를 받아들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과즙 많고 상큼한 자두가 제철이니까 설법할 때 혀 마르면 꼭꼭 챙겨 드시고 말하느라 목 타지 않게 물도 마셔주고 그러세요. 주인."

투덜거리는 말투로 팔짱을 끼며 시선을 옆으로 돌리는 나즈린을 바라본 쇼가 흐뭇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아 뭐해요! 다 기다리니까 얼른 가시고! 수고하시고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쇼의 등을 떠밀듯이 밀며 재촉하는 나즈린을 슬쩍 바라본 쇼가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뱌쿠렌의 대타로 들어가자 나즈린도 일행과 합류해 뱌쿠렌을 기다렸다.

"음, 진짜 냄새가 잘 안 나네, 뭔가 묻혀가는 것 같은 아주 미세한 향이 남아있긴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어."

아야가 가져온 데오트란트를 몸에 뿌려보며 냄새를 맡아보곤 감평하는 무라사 옆에서 나즈린과 이치린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야생의 후각을 가진 나즈린이 맡기엔 어때?"

"채취가 확실히 가려지긴 하네."

"캇파들이 요즘 이런 쓸만한 화장품도 만드나 봐."

"뭐, 캇파들이야 돈이 되는 거면 무엇이든 만드니까요." 아야가 웃으며 이치린의 말을 거들었다.

"나도 좀 뿌려줄래? 바람이 불긴 해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하긴 너가 입은 옷이 더워서 그런지 땀 많이 흘리긴 했네."

두건을 벗고 소매도 반팔로 접은 이치린에게 무라사가 조밀하게 데오트란트를 뿌려주자, 슬쩍 눈치를 보던 후토가 수건을 가져와 이치린의 목 등과 볼에서부터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응?"

이치린이 당황해서 쳐다보자 후토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당장 씻지도 않을거면 땀냄새라도 덜 나야 할 것 아닌가? 절은 공공예절 정도는 지킬줄 알았더니만,"

"뭐? 얌마!"

"아하하하핫!!"

이치린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손을 높이 들며 소리치자 후토는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로 답하며 다 닦은 수건을 쥐여주고는 살그머니 주위에서 떨어졌다.

"저런 거랑 이런 건 어디서 팔아요?" 코가사가 살충제를 뿌려 코코로 주변을 배회하는 모기는 물론 벽에 앉아서 쉬고 있는 모기도 잡으며 물었다.

"캇파들이 인간 마을이나 산의 입구 참배로에 새로 생긴 장터에서 팝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공산품이죠."

모미지가 대답하고는 마음속으로 자꾸 부하들에 대한 의심이 들어 산 쪽 방향을 쳐다보면서 천리안으로 산의 모든 동태를 감시하자, 코가사가 숨을 한번 들이켜며 말했다.

"그렇구나. 놀랍네. 징글징글한 모기는 분명 빌빌거리며 죽는데, 시체가 나는 특유의 냄새마저도 못 느끼겠으니." 

쿄코까지 달라붙어 데오트란트를 서로 뿌려대자 멀찌감치 뒤의 그늘에서 앉아 짧은 머리카락을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면서 지켜보던 누에가 파르르 흔들리는 머리 위 잎사귀처럼 바람을 온몸으로 쐬는 마미조에게 말했다.

"마미조, 저거 사줄까."

"됐다마. 그 돈으로 같이 안주에 술이나 걸치믄서 시간이나 흘려 보내자구마."

그러자 누에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긴 그게 더 기분 좋겠네."

아야가 틈새시장을 노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치린 씨. 그런데 운잔 씨가 안 보이네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 이치린이 떨려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최대한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아, 운잔은 말야. 공부하는 게 지루하다고 도망갔어."

"음, 그렇군요. 사진으로 같이 남기려 했는데 아쉽네요."

'뭐, 사실 너희 산을 감시하러 보냈지만.'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아쉬워하는 아야를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무마한 이치린이 잘 넘어갔거니 하고 마음의 안도감을 붙잡을 때, 쇼와 교체된 뱌쿠렌이 차분히 걸어와 얼굴을 비치며 모두에게 합장했다.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뵙게 돼서 참으로 좋은 시간 이내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머리를 뒤로 젖히며 쓸어내려 정돈하면서 눈웃음을 지은 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아야와 모미지, 코코로에게 말을 걸었다.

"오시는 길은 어떠셨나요?"

"네,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좀 더운 것 빼곤 무난했어요."

아야가 쑥스러워서 목 등을 여러 번 문지르며 대답하고 코코로도 고개를 끄덕이자, 모미지도 말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더우신데도 이렇게 찾아뵈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고생 많으셨네요."

옆에서 마음껏 뿌린 이치린으로부터 테오트란트를 건네받은 코가사가 해맑은 얼굴로 코로로에게 테오트란트를 뿌려주자, 뱌쿠렌도 안색이 더 밝아지며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이 좋은 시간에 절에서 코코로 양에게 가르침을 주게 되어서 영광스럽네요. 부디 마음의 양식과 지식을 추억 속에 쌓아가시길."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고 후토도 달갑지는 않지만 인정한다는 듯이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것을 아야가 사진으로 남김과 동시에 무기를 거두고 팔상전[각주:2]에 모두 모이게 하여 다소곳하게 앉혔다.

"자, 설법 대신 오늘의 가르침을 시작해보도록 하죠."

뱌쿠렌이 말을 마치고는 수많은 책을 꺼내놓자, 다들 목덜미를 만지작거리거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당황했다.

"아, 저번에 케이네 훈장님과 모코우 씨의 좋은 말씀과 가르침을 듣고 깊이 생각을 해보았어요. 과연 코코로 양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가르침이란 무엇일까, 불교적 입장에서 가르쳤음과 동시에 더 깊이 생각하고 응용할 수 있는 재량을 더 높여주기 위해서는 좀 더 관용적이고 포용적일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책들을 정리하며 다시 쌓아둔 뱌쿠렌이 아야의 플래시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대도서관, 영나암에서 감정, 성격에 관한 책을 빌려 제가 미리 예습했었습니다. 저는 불교에 귀의한 승려이지만 약속이 절에서 가르치는 것만큼 코코로 양이 절에 온 인상 불교적 입장뿐만 아니라 하나의 생애에 도움이 되기를 절실히 바라므로 얻어 가는 게 많도록 방대한 지식을 가르쳐주려 합니다."

후토가 굉장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턱을 괴면서 뱌쿠렌을 쳐다보자 코코로도 흡족해하며 말했다.

"좋아! 덕분에 엄청 광범위하게 강해질 수 있겠어!"

만약을 대비하여 모미지 옆에 앉은 이치린과 나즈린이 맞는 말이라 감탄하여 손뼉을 치긴 해도 불교적 입장이라 어설픈 웃음의 애매모호 표정을 지었고 다른 요괴들도 호탕하게 웃는 마미조를 포함해 감탄사를 던지면서 뱌쿠렌에게 열망 있는 눈길로 답하자 뱌쿠렌이 입을 열었다.

"불교적 입장은 그대로 유지하는 거니까 아야 씨는 기사 이상하게 쓰지 말아 주시고요."

"아, 네네. 그럼요." 아야가 빙긋 웃으면서 그대로 펜을 꺼내 문화첩에 적으며 말했다.

"그리고 부탁 좀 드려볼게요."

아야가 그 말에 의아해 하며 머리를 긁적이면서 뱌쿠렌을 바라봤다가 그녀의 손을 흔드는 제스처를 이해하고는 엽단선을  흔들어 피부의 땀샘도 움추려들 서늘한 바람을 실내에 솔솔 불어넣었다.

"자, 그럼 저 대신 수고 해주시는 본존이신 쇼 씨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렇게 다들 감정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모였으니 오늘 감정과 기분이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본론에 들어가 보도록 하죠."

"네, 주지승님. 좋은 생각이시네요."

"그럼 코코로 양부터 시작할까요?"

"난 아주 신나고 좋은데?"

"왜 기분이 좋을까요?" 뱌쿠렌이 손을 다소곳하게 포개며 인자한 미소로 물었다.

"얼른 배워서 엄청 강해질 거니까!"

코코로가 들뜬 표정의 가면으로 주먹을 움켜잡고 뒤로 팔을 당기며 의지를 불태우자 코가사도 우산을 젖히고 코코로를 뒤에서 껴안으며 말했다.

"저도 좋아요! 코코로도 또 보고요!"

"전 그냥 무난해요." 이치린이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왜 그런지 물어봐도 될까요?"

"뭐,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오늘 그냥 그래요."

"그렇군요. 나즈린은요?"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나즈린도 살짝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으흠, 그럼 미나미츠는 어떤가요?"

"난 좋아. 이런 만남은 시간 빨리 때우는 데 안성맞춤이거든."

웃고는 있지만 귀찮음이 묻어나오는 말투와 억양의 무라사를 보고 뱌쿠렌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독백했다.

"오늘은 우리 절 쪽이 분위기가 처진 것 같군요."

고소함에 피식 미소를 짓는 후토와 눈이 마주친 뱌쿠렌은 그녀에게 잔잔한 말투로 물었다.

"후토 씨는 기분이 어떤신가요?"

"절간에서 파계한 무리에게 둘러싸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군."

후토가 디스와 호감을 넘나드는 대답을 하자 이치린과 뱌쿠렌, 나즈린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다들 모여서 떠들썩하고 좋아요!!! 쿄코도 옆에서 활짝 웃으며 끼어들었다.

"저 역시 이렇게 다들 모이시는 자리에 껴서 얼굴도 뵙고 좋네요!"

아야가 카메라를 열심히 들이대며 플래시를 터트리고 말하자, 뱌쿠렌이 머뭇거리는 모미지에게 물었다.

"이제 한 분 남으셨네요."

"예? 아, 저는."

모미지는 솔직히 사건도 있고 기분이 난장판이었기에 불편한 심기를 우회하여 표현했다.

"좋았을 수도 있었겠네요. 아니 이 까마귀랑 같이 있지만 않았어도 말이죠."

"피, 난 좋은 줄 아냐."

"그럼 부르지 마!"

"이렇게 합법적으로 부려 먹는 기회가 흔한 줄 아니?" 아야가 비웃으며 엽단선으로 입을 가렸다.

"아이 이게 진짜 작작 좀 골탕먹여라! 아작나기 싫으면!"

'자자, 알았으니까 두 분 다 그만 하세요."

모미지가 한숨을 푹 내쉬고 아야가 웃음을 짓는 사이, 뱌쿠렌이 목탁을 몇 번 치면서 분위기를 정돈하며 말했다.

"그래요. 다들 어떤 기분인지 우리가 서로 알게 되었네요. 코코로 양도 들으면서 공감이 가나요?"

"응,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론 모르지만 지금 기분은 알겠어."

"네, 그런 공감하는 자세가 중요한 법이니까 배워가면서 잘 기르도록 해요. 그럼 설법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불교에서 감정에 관해 이야기했었는데 오늘은 기쁨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죠. 우리 불교에서 기쁨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번뇌를 버리고 자신이 참된 깨달음을 얻게 될 때 주어지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욕구나 바람이 충분히 충족되었을 때 오는 행복감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행복과 연관이 매우 깊은 감정이죠."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쁠 때 쓰는 노인 가면을 꺼내서 수긍했다.

"행복에는 4가지가 있는데 평온하고 진정된 상태에서 외부 조건에 따라 충분함과 행복을 느끼는 만족, 내부에서부터 행복감을 느끼고 외부 조건에 연연하지 않는 평정심. 들뜨고 흥분이 되는 상태에서 외부조건에 따라 유쾌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기쁨, 마지막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분이 주장한 에우다이모니아(eudaemonia)라고 하여 좋은 영혼이라는 뜻으로 내부에서부터 삶의 즐거움이 동기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유용한 활동에 참가하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성취감 및 의욕심이 있어요."

"만족, 평정심, 기쁨, 성취감과 의욕심!"

코코로가 뱌쿠렌의 말을 복창하면서 웃는 류의 가면들을 돌려가며 살펴보았다.  

  1. 寮舍寨 부엌, 사무실, 창고등이 포함된 승려들이 생활하는 건물 [본문으로]
  2. 八相殿 부처님의 일생을 8개의 그림으로 표현하여 봉안한 법당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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