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3시 경, 지저
"어휴, 여긴 더 덥네."
허공을 가르면서 스쳐 가는 바람마저 덥자, 한숨을 푹 쉰 누에는 손 부채질을 하며 투덜거렸다.
"더구나 그 녀석과 만나는 건 정말 내키지 않는데. 쩝."
옆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기울여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무력감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더니 마미조를 속으로 생각하며 외쳤다.
"아냐!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얻어가야지! 조금만 참고 기운 내면 되잖아."
이미 망을 보는 야마메를 비롯한 지저의 요괴들을 매우 간단하게 정체불명의 씨앗으로 혼란을 주어 정 반대 방향으로 따돌려버린 누에는 엉뚱한 곳을 쫓고 있을 거란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옛
도시를 지나 작열지옥터에서 흘러나오는 열기에 땀을 쏟으며 지령전에 도착한 누에는 짧은 머리카락마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털어내면서
바람에 날린 머리를 정돈하고는 아무도 없는 정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반지하로 된 로비로 슬며시 들어갔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한 빛이 천장까지 닿지 않아 주변이 어두운 데다가, 싸늘하고 음산한 공기가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것에 대해서 바깥보다는 덜 더워 내심 감사한 마음이 든 누에는 복도를 돌아다니며 두리번두리번 원하는 방을 찾았다.
애완동물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복도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코메이지 사토리'라고 명패가 써진 큰 방을 발견한 누에는 한숨을 길게 쉬면서 심호흡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아, 내 능력과는 극상성이지만 했던 말에는 책임을 져야지."
'이제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돼. 절대. 허튼 속마음이 안 나오도록 최대한 마음을 다스려야 해.'
돌린 시야에서 다른 방에 '코메이지 코이시'라고 명패가 쓰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신경 쓰지 않고 노크를 몇 번 하고는 긴장된 마음과 떨리는 손으로 몇 번 숨을 고르며 문을 열었다.
서재에 앉아 냉차를 마시며 고서를 읽던 사토리의 눈동자에 글자 대신 누에의 얼굴이 맺히자, 미소와 함께 찻잔을 내려놓고 책을 덮는 소리와 함께 살짝 흔들리는 서슬퍼런 서드아이의 외눈도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이 누추한 지저까지 와주시다니 고생 많으셨네요."
"에헤, 뭐, 오는 건 어렵지 않지."
누에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애매하게 웃으며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면서 내심 긴장을 풀자, 사토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하나 더 꺼내 물을 붓고는 의자 하나를 끌고 오며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더운 날씨인데 좀 식히셔야죠."
"어, 그래, 고마워."
의자에 앉아 차를 홀짝거리던 누에가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
"어? 여기서 얼음은 어떻게 구했데?"
"오린이 치르노 양에게서 사온 거예요. 얼음을 거대하게 만들면 힘쎈 유기 씨가 들고 오시는데 보관이 어려우니 필요할 때마다 빠르게 사오곤 하죠."
"아, 그럼 셋 다 엄청 바쁘겠네."
누에가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니 살짝 의구심이 드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녀의 말에 동감하는 대답을 하며 차를 들이켰고, 사토리도 머리띠를 위로 살짝 올리면서 빗으로 머리를 빗고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작열지옥터 때문에 여름에는 더워서 찾지 않으시거든요. 원래 미움받아 손님이 없는 곳이긴 해도, 모든 걸 무릅쓰고 이렇게 정성껏 찾아오신 분에게는 대접해 드려야죠."
그녀의 눈웃음에 마음이 여유로워진 누에가 차를 다 마시면서 목의 갈증과 함께 긴장이 풀리자, 사토리가 다시 고서의 읽던 페이지를 피면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못하겠다는 말씀만 드리고 싶네요."
누에가 당황해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날개를 들고 외쳤다.
"아니 어째서??"
"무슨 용건이신지는 마음을 읽어서 다 알겠지만 저는 제 능력 때문에 모두의 미움을 사 홀연히 남게 된 요괴. 원하지 않아도 읽어지는 남의 마음을 읽는 건 쉽지만 그만큼 남의 마음을 잃고 두려움을 사기도 쉽죠."
자신의 찻잔을 비운 사토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정체불명의 요괴인 누에 씨가 저의 능력으로 그저 힘만 셀 뿐 평범한 요괴가 되는 만큼 각오하고 오신 건 탄복했지만 올라가서 남의 두려움과 미움을 더 사고 싶지는 않아요."
그녀의 단호한 말에 누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날개를 세운 체, 자신의 입술을 물면서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야 씨가 의심되는 건 알겠지만, 의심은 의심을 낳을 뿐. 제 능력으로 의심이 풀리든 아니든 미움받는 저의 말을 신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들진 않네요. 오히려 다수가 원하지 않는 답을 하면 제가 속이는 게 아니냐고 의심을 받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건.."
누에가 살짝 당황했다가 난처한 낯빛으로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러든 아니든 일단 확인만 해줘. 안 내키는 건 알겠지만,"
"내키지 않아도 오신 누에 씨의 선택처럼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도 저의 선택. 읽기 힘드시겠지만, 저의 마음도 헤아려주셨으면 하네요. "
더는 대화가 힘들다는 것을 안 누에가 그녀의 냉철한 서드아이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이다 한숨을 한번 쉬고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면서 숨을 고르자, 그렇다고 응답하듯 사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과 공포는 우리 요괴들에게 삶의 밑천이지만 남에게 경멸받고 미움받는다는 것은 마음에 비수가 꽂히는 일, 지금까지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꽂혀왔지만, 그 한 번이 얼마나 아리고 아픈 일인지 느끼고 알기에 더는 아무에게 하나라도 받고 싶지 않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알았어. 충분히 알았으니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혀를 차며 아쉬워하는 누에에게 사토리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누에의 찻잔에 냉차를 부어주며 말했다.
"그럼 여기까지 오셨는데 다른 이야기나 하죠. 여기에 있으면 지상 소식에도 어둡거든요. 지저는 제 애완동물 이야기 이외에는 똑같은 일상이지만요."
"어차피 내 생각 읽으면 알 텐데."
그 말을 툭 던진 누에는 최대한 껄끄러움과 민망함을 숨기려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도 지상은 이변도 흔하고 새로운 얼굴들도 많고 그로 인한 재밌는 사건들이 많으니까요."
누에가 타들어 가는 목에 냉차를 붓자, 사토리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어쨌든 저야말로 아무런 현혹없이 누에 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요괴니까요."
"아니, 한 명 더 있는 걸."
그 말에 사토리가 살짝 놀랐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네요."
누에가 부끄러운지 슬쩍 얼굴을 붉히자, 사토리가 자책하듯 자신의 볼을 몇 번 두드리며 하소연했다.
"참으로 불공정한 대화라 하나부터 열까지 죄송스럽군요."
"그렇게 미안하면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데 말야."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대답으로 돌아오자 누에는 혀를 찼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차피 지저는 지상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요. 관리자나 무녀가 꼬투리를 잡아 엄청 피곤하게 만들거든요."
"에이, 어쩔 수 없지. 그럼 아야라는 까마귀에 대해서 말인데."
그러자 사토리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까마귀요? 저도 까마귀를 여럿 거느리고 있긴 한데 어디로 튈진 모르는 시한폭탄들이어도 저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거든요."
"그런 까마귀 말고, 신문쟁이 말야."
헛물켰는지 열기가 푹 식은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붙인 사토리가 고개를 들어 질린다는 말투로 말했다.
"지저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시는 것 외에는 모르겠네요. 오히려 누에 씨 생각을 읽으니 현황이 어떤지를 알겠네요. 지상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많았나 보군요."
얻을 수 있는 것이 더는 없겠다고 판단이 든 누에는 배려와 체면상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 신경 쓰면서 냉차를 다 마시고 말했다.
"그럼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알려줄 수 있어?"
"그럴 수 있다면요." 사토리가 찻잔을 떨리는 손으로 잡으면서도 은은한 눈초리로 최대한 누에를 배려하며 말했다.
"인제 그만 돌아가시려나 보군요. 가시는 길에 이왕 오셨으니 지저에서 이것저것 즐겨가며 잘 살펴가세요."
사토리가 일어서서 정중히 배웅하자, 그녀의 인사를 받고 방에서 나온 누에는 다른 애완동물들이 문을 열고 청소 및 정리 중인 옆방이 매우 호화스럽고 귀여운 가구나 벽지로 꾸며져 있는 것을 흘깃 보고는 무거운 날갯짓으로 스산한 마음을 추스리며 음침한 지령전의 정문을 나섰다.
"에이, 더워."
비교적 시원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목등과 팔, 다리를 찌르듯한 열기와 빗줄기처럼 땀를 쏟게하는 후덥지근한 습기에 인상을 잔뜩 찌뿌리며 옛 도시를 거닐던 누에는 반쯤 뜬 눈으로 다시 손부채질을 하며 한숨으로 막막한 속마음을 달랬다.
"자, 이제 어쩐다."
한숨을 푹 쉬며 빈손으로 돌아가는게 아쉬워 자신의 옷깃을 여러번 털어낸 누에는 날개로 머리를 빗어낸 뒤, 주위의 온천과 장터, 많은 요괴들의 사이를 지나 지저의 출구를 향해 무겁게 날았다.
'마미조한테 물어봐서 어떻게 사토리요괴를 구술려야 되는지 알아보고 올 걸.'
이왕 나섰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텁텁한 습기 만큼이나 자신을 짓누르는 것에 한숨을 쉬던 누에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길이 다가왔다.
"깍! 깜짝이야!"
"어머, 생각보다 크게 놀랐나보군. 놀래킬려고 한거지만."
불쾌함이 가득하며 노려보는 누에의 표정에 키득키득 웃던 미즈하시 파르시가 말을 이었다.
"이제 모습을 들어냈구나, 처음보는 회괴망측한 것이 있어서 건드려봤더니 모두를 놀라게 하는 요괴를 내가 놀라게 될 줄이야. 굉장히 수지 받았는걸."
"뭐야?"
"왜? 맨날 보지 못하던게 있으면 누가 먼저 이야기하며 주목받는 걸 보고 약오르기 전에 내가 먼저 확인해보는게 당연하잖아. 먼저 탄막을 쓴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화내."
그렇게 말한 파르시가 슬쩍 자신의 손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이게 스킨쉽같은 거라서 그래?"
"아니거든!!"
"버럭 화내는거 보니 아닌거 같긴 한데. 크킄. 아깐 따라잡지 못해서 놓쳤지만 이렇게 장난치는 재미가 있는 요괴일준 몰랐는걸. "
삼지창을 들며 화를 내던 누에는 잠깐 생각을 해보고는 침착하게 창을 뒤로하고 표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물었다.
"저기, 혹시 아야라는 까마귀텐구가 여기 온 적 있어?"
"응? 야아, 글쎈데. 내가 본거라곤 사토리 애완동물들 뿐이라."
"그럼 그 요괴에 대해서 들은건."
"까하하하, 소문 말인것 같은데 아는 까마귀라곤 사토리 애완동물인 우츠호 뿐이라니까. 지상이랑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우리가 올라가면 갔지 대부분 이쪽으로 오려 하지 않아서 지상소식이 그렇게 빨리 들어오진 않는다고."
"음..."
누에가 턱을 괴며 고민에 빠지자 파르시가 녹색의 눈을 반짝이며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역으로 물었다.
"그럼 뭐하러 내려온 거야? 정말 그런 거 물어보려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가 눈동자에 들어온 파르시는 눈을 감으며 생각을 좀 해보다가 말했다.
"그럼 야마메에겐 가봤어?"
"아니."
"야마메가 토목건축업을 좀 해서 수주를 받으러 올라갈 때 지상소식에 대해 잘 알지도 모르거든. 예전에 어떤 산에 일하러 간다고 갔던게 기억이 나네."
'산'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확 들어온 누에가 파르시에게 더 다가갔다.
"걘 어딨어?"
"좀 더 앞에 가면 있을텐데."
"알았어. 고마워!"
누에가 활짝 핀 얼굴로 그냥 지나가려하자 파르시가 누에의 날개 하나를 붙잡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누가 문지기로서 그냥 보내준데. 구두라도 할말은 해야겠어!"
"좋아, 뭐 무단침입한건 맞으니까. 해."
"너 날개가 달린 것도 모자라 한쌍이 아니라 3쌍이나 붙었네..."
전혀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를 잡힌 누에가 당황하자 파르시가 눈가를 가늘게 찌뿌리며 팔짱을 끼고 '핏.'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날개가 3쌍이나 달렸으니 엄청 빨리 날겠네. 부러워."
"야, 야. 저기 그런거 아니거든. 빨리날긴 무슨."
"아니면 뭐, 됐네. 그럼 얼른 가봐."
언제그랬냐는 듯이 밝아진 파르시가 손을 흔들며 보내주자 황당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누에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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