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11시 삼도천


한편 운잔과 같이 명련사를 떠난지 시간이 지나 사신 오노즈카 코마치의 건성건성 노젓기를 감상하며 황천을 건너가던 이치린은 미간을 잔뜩 찌뿌리고는 너저분한 배 안에서 강풍(江風)에 양갈래 머리를 살랑이며 키득키득 웃는 코마치를 흘겨보았다.

"그만 좀 웃어요."

"아흐크큭. 웃는 건 내 자유거든? 크흐익."

"그렇게 노질을 하니 날아가는 것보다 느리잖아요."

이치린이 잡동사니들과 한 구석에 놓여있는 널부러진 술병들을 가리키며 말했으나 여전히 코마치가 웃으며 말했다.

"에이, 오랜만에 웃을 거리인데 왜. 크큭. 요괴 승려랑 뉴도가 직접 죽으러 오다니. 윤회(輪廻)와 업(業)은 버린거야? 까하핰."

"아, 거참! 잠깐 염마님만 보고 오는 거라고 말했잖아요. 그렇게 놀려 먹을거면 도착이나 하고 말하시던가."

이치린의 말 끝나기가 무섭게 거리를 조절하는 능력으로 순식간에 배가 반대쪽에 도착하자, 거짓말스러운 현실에 당황한 이치린을 상대로 코마치가 진지하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피안(彼岸)이다. 시비곡직청(是非曲直庁)은 저 방향으로 좀 날아가면 돼."

"아니 진작 올 수 있으면..."

"심심한데 재미가 없잖아. 자 술이나 놓고 가."

"근데 얼굴만 봐도 대낮부터 마신 것 같은데 그렇게 또 마시면서 일해도 되는 건가요?"

"에이, 귀신장님이 일하러 가기전에 무훈을 빈다고 사주신 거라고. 근무중 특혜야."

내려서 하얀 안개꽃과 붉은 피안화가 만개한 땅을 밟은 이치린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운잔에게 들고있던 술을 내려놓으라고 지시하곤 자리를 떴고, 운잔과 함께 도착한 시비곡직청의 접수청에서 빈 재판시간에 시키에이키와의 훈화 예약을 받고 대기 번호표와 함께 앉아서 대기했다.

"그래도 재판받는 싸늘한 유령들이 하도 많아서 덥진 않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운잔을 보며 한 구석에 있던 차를 타 마시던 이치린은 정파리의 거울을 들고 바쁘게 교대하여 오가는 염마들과 사신들, 재판받는 유령들로 빠르게 돌아가는 광경을 보다가 잡일 처리를 맡던 사신이 번호를 부르자, 운잔을 로비에 두고 청탁 및 수수에 대한 금지 교육과 기타 안내를 받으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노크와 함께 허겁지겁 서재의 서류를 정리한 시키에이키 야마자나두가 헛기침을 하며 용모를 단정히 하자, 방안에는 햇빛이 들어와 밝았으나 수북한 서류뭉치의 그늘이 염마를 덮고 있었고 정갈한 분위기와 여러 고서들, 햇빛에 피어오르는 먼지들과 매치되는 앤틱한 가구과 장식이 가득한 배경을 두고 의자에 앉은 이치린이 그녀를 독대했다.

"여기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 봅시다."

정파리의 거울을 보며 이치린을 파악한 염마는 주위에 수북한 결제서류 만큼이나 머리가 살짝 길어있었고 눈 아래가 조금 어두웠으나 꼿꼿하고 당찬 기품으로 거울을 내려놓고 회오의 봉을 들며 말했다.

"예약을 훈화 말씀으로 온건 처음이라서 뜻밖이로군요."

"빈 재판시간에 접수가 그거밖에 안 되어서요. 제보 건으로 말씀드릴 것도 있고요."

염마가 아쉽다는 듯이 고개와 함께 봉을 돌리며 긴 한숨과 함께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에이허~ 그럼 그렇지. 내 설교를 들으러 올리가.,"

"그 점은 죄송합니다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이 곳 피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알았다는 듯이 허리를 피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이치린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네요. 저야말로 직접 나서서 행하는 자를 좋아합니다. 사항이 중한 것 같으니 귀 기울여 들어보도록 하죠."

이치린은 서재 주위의 시계와 피로회복제등을 눈치껏 보면서 말을 이었다.

"샤메이마루 아야에 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무언가 꾸는 것 같은데 의심만 있어 정확하게 판단이 필요한데, 정파리의 거울이라면 갈등이 서로 오해없이 풀릴 듯합니다."

회오의 봉으로 입을 두드리며 생각하던 염마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오호, 그 꾸민다는 일을 대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네? 음.  뭔가 텐구라면.. 요즘처럼 빈번하게 사건을 벌여놓고 그 뒤에서 이득을 챙기려고 할 수 있겠지요."

"음, 그렇군요. 그래서 공권력에 의한 수사가 필요하다?"

"네. 자기가 떳떳하면 나올 게 없을테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염마를 보며 입가가 밝아진 이치린이 허리를 다시 피며 들뜬 마음을 '네!'로 표현했다.

"안그래도 요괴의 산의 카라스텐구, 샤메이마루 아야건에 대해서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그녀를 평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

"네." 이치린이 상기된 낯빛으로 경탄하듯 대답했다.

"그래서 요즘 이런 것들도 보고 있습니다."

다른 서류 뭉치에서 회색 빛 종이 뭉치 하나를 건네받은 이치린은 뭔가 익숙함에 의아해하며 접힌 부분을 제대로 펴보았다가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이건.. 오늘 아침에."

"네. 참 부지런하기도 한 어떤 텐구가 이름도 처음듣는 자기 신문처럼 초짜인지 별로 쓸모없는 피안까지 뿌렸더군요. 그리고 불교와 도교가 서로 멘레이키의 교육을 통해 평화적인 교섭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뭔가 살짝 불안해진 이치린이 입술을 떨면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빨간 펜으로 신문의 한 쪽에 줄을 그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여기 밑줄 친 곳에 기사에서는 '요괴의 산과 모리아 신사의 대표권을 대여받은 샤메이마루 아야가 이 모임에 대해 주선하고 있는것으로 보여지며 그녀가 멘레이키와 긴밀하기 때문에 그녀를 통해 세 집단간의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적혀 있지요."

"네. 보입니다."

"그래요. 다행이군요. 저는 말입니다. 승려인 이치린 씨가 드는 마음처럼 종교전쟁도 벌였던 불교와 도교가 대화로서만 이렇게 쉽게 접촉하고 교류하는건 아주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모리아 신사쪽 텐구들까지 꼈으니 당연히 의심이 들겠죠."

"네. 사실 그런 마음에 저도 정확하게 알아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집단원이 집단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이죠. 그러나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이를 예전에 아큐 양이 종교지도자들을 모아 회동을 가졌던 것처럼 이번 교육을 종교적 화합으로서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멘레이키에게 감정을 가르치기 위해 모리야 신사와 명련사, 신령묘 세 종교집단이 협력하면 평화적인 우호관계 형성도 매우 쉬워지겠죠. 이 교육은 그걸 노리고 있고요."

"..네."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었기에 이치린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래서 서로 이해의 과정을 가지는 저번 아큐 양의 회동과 더불어 서로 갈등을 해결하고 한 요괴의 자아성찰을 위해 다수가 협력하는 이 과정에 대해 저는 매우 가치있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집단이 군소리없이 참여할 수 있는 교집합이 바로 최대한 교육을 주선했고 중일 수 있는 샤메이마루 아야죠.  그녀가 좋은 의도가 아니라 특종과 기사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치린이 대답 대신 아래를 쳐다보며 한숨으로 아쉬움을 표현하자, 시키에이키가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수사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 수사해서 서로간의 오해가 생겨 이 자리가 파토나면 이런 평화를 위한 자리는 앞으로 영영 어려울 수 밖에요. 물론 논외자의 이야기지만 적어도 저번 회동이 이 자리를 이끌어 낼 선례가 된 것처럼 이 교육이 저는 환상향의 평화를 위한 선례가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리고 보셔야할 게 있는 것 같군요."

염마가 오래된 문서관리함을 열어 쌓인 붕붕마루 신문중 중간쪽에 있는 바랜 신문 하나를 이치린에게 건네주자, 이치린이 공손히 받아서 읽어보았다.

"응? 1면에 '요괴의 산이 공격받다'라고 써있네요."

"작년에 달이 천도한답시고 환상향을 침공했던 사건을 기억합니까?"

"네, 그 때 무녀들이랑 영원정이랑 소동좀 벌어진건 알고 있지만."

"단순하게 아시는 것 같군요. 지금 드린게 그 때 다음 날 샤메이마루 아야의 붕붕마루 기사 신문입니다. 잘 읽어보세요."

신문 1면을 읽어본 이치린은 천천이 정독하며 기사를 하나하나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요괴의 산에 대한 달의 기습 도발로 보이지 않는 물체의 공격에 산의 일부인 자연이 '소멸'되었으며 텐마 및 대텐구는 일제히 산에대한 재산 피해 및 기습 공격에 의한 '침공'으로 규정하였고 심각한 재산피해 수습 및 2차 공격 대비를 위한 긴급 병력동원 태세에 들어갔다."

황폐화된 산의 사진과 피해를 파악하는 텐구와 캇파등, 산의 요괴들의 참혹하게 나온 신문을 보고 살짝 놀란 이치린이 머리를 긁적이자 염마가 재판의 죄질을 다양히 싣은 서류의 그늘이 아닌 창문의 햇빛을 쐬면서 말했다.

"달의 천도와 함께 요괴의 산에 내려앉은 달의 물체가 산을 박살냈다고 하더군요. 만만치않은 피해를 입어 복구에 시간과 비용도 엄청 들었다고도 적혀있지요. 흔히 당한 만큼 몇 배로 돌려준다는 게 요괴들의 가장 쉬운 방식이지 않나요. "

이치린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신문의 피해규모와 공격 배후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자 염마가 다른 붕붕마루 신문을 건네주며 계속 말을 이었다. 

"과거에 오니와 전쟁을 벌였던 텐구들인만큼 그들의 호전성은 강합니다. 하지만 공격을 받았어도 오히려 산을 복구하면서 융합령을 내려 종족간 신분차별을 없에 내부갈등을 줄이고 부분적이긴 하지만 산을 개방하여 모리야 신사에 참배로도 놔주면서 인간과 다른 요괴, 종교와 화합하며 산 안의 평화를 가져옴과 동시에 이렇게 평화적인 자리에 참여하고 대민지원이라고 하여 다른 요괴들을 도와주고는 오히려 갈등해결에 나서고 있지요."

이치린이 받아든 다음 기사에서는 5달 전에 '요괴의 산 분쟁 조정위원회 창설. 대표인 텐마 대변인인 대탠구는 우리의 아픔에 환상향의 일원들이 도운만큼 타 집단에 대한 갈등과 싸움에 대한 고등적이고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요괴의 산은 성심을 다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도울 것이라고 발표했다.'라고 적혀있자 동공이 흔들린 이치린은 눈을 의심하며 신문을 계속 읽었다.

"제가 이런 걸 본 적이 없는데요."

"아야씨 신문을 보지 않았을테니까요. 흔히들 찌라시라고 하지 않던가요. 하지만 적어도 텐구들이 환상향의 평화를 위해 모든 걸 열어젖히고 우리와 협력도 요청할 만큼 애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평화적인 일에 아야 씨가 백옥루를 포함해 여러 곳에서 계속 주선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죄 지었다는 내용이 가득한 기사와 재판만 보다 이런 훈훈하고 철든 성숙한 노력에 마음이 더 갈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저는 카라스텐구 샤메이마루 아야를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쿠모이 이치린 씨는 명련사라는 불교계 요사(妖士)로서 종교적 화합과 평화. 갈등 해결에 얼마나 이바지하셨나요."

말문이 막힌 이치린이 바닥을 쳐다보며 신문을 내려놓고서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화끈 붉히고 눈을 못 마주치자 뒷짐을 쥔 염마가 의자에 앉아 회오의 봉으로 자신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수사를 원한다면 적어도 이번 교육이 끝난 다음에 수사 들어가도록 하죠. 하구한날 이변에 쌈박질에 갈등으로 비롯한 사건에 적어도 피곤하고 귀찮아서 안 싸우는 '나태'에 의해 평화가 그나마 유지되는 환상향에서 갈등요소를 완화하거나 없에고 진정한 의미의 이해와 화합을 통한 평화를 추구한다는데 저는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1시간이라도 아니 하루라도 그럴수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울 겁니다. 그것이 정의의자 도리이며 대의니까요."

한숨을 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인 이치린이 살짝 손을 떨면서 고개를 떨구자, 서류의 그늘 속에 들어간 염마도 손을 떨면서 말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저도 실은 요괴의 산이 공격받은게 어쩌면 다행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의 불행이자 비극이지만 결국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한 어른처럼 요괴의 산도 남의 불행을 이해하고 해아릴 뿐만이니라 덜어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는 현실 앞에서 말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그릇을 칭찬할 수 밖에 없는 건."

몸을 의자등받이에 젖히며 회오의 봉을 포개듯 두손으로 감싸쥐며 심장쪽에 붙인 염마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한치의 떨림도 없이 사실을 말하며 이치림의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들을 공격했던 달에 대해 영원정을 중재로 삼아 화해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더군요, 일종의 평화적인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건이 맞지않아 잘 되지 않는 모양이지만.. 뺨을 때린 자에게 맞싸대기가 아니라 서로 이성적인 해결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 줄 안다는 건 얼마나 큰 자비인지 승려이신 이치린 씨가 더 잘 알거라고 봅니다."

머리가 하얗게 되어 더이상 할말이 없어진 이치린이 두건을 감싸쥐었다 피면서 염마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가 분위기 어색해질까봐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걱정하진 마세요. 이번 일만 잘 끝나면 개별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도록 하죠. 요즘 저희도 분쟁조절을 위해 바쁘거든요. 대화를 하거나 구제불가한 요소들을 척결하거나 하면서 말이죠."

이치린이 머뭇거리다가 자리에 일어나서 말했다.

"네. 그럼 이번 교육이 끝나면 좀 부탁 드립니다."

"그러도록 하죠.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아뇨. 근데 좀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요."

"아, 요즘 재판에 업무에 바빠서 말이죠."

이치린을 보며 서재 위 다른 서류를 무의식적으로 정리하던 염마가 별 생각없이 놓던 서류의 제목에 [[극비문서(**장)-아마노자쿠 보고서 (정보공유협정 지원)]]라고 쓰인 것을 눈치껏 본 이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야 씨는 남의 말을 잘 귀 기울여 들을 줄 압니다. 이치린 씨도 남의 말에 경청하는 부분에 대해 배우시면 대인관계와 자아성찰에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남의 의지를 받는 종교요사로서의 필수덕목이기도 하겠지요."

'생각해보니까 아야랑 요괴의 산에 대한 칭찬밖에 없네.'라고 생각이 든 이치린은 '하긴 뭐 그럴 만하지.' 하며 속으로 자문자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교육에 대해 평화적인 교류 외에도 요괴의 정신적 성장이라는 면에서 정말 기대하고 좋게 보고 있습니다. 잘 마무리해서 서로간의 갈등을 푸는 좋은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도록 하죠. "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치린이 살짝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그럼 그 의뢰 외에 더 용건이 있으신가요?"

이치린이 고개를 흔들자 염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다음 재판시간까지 이 서류 업무결재를 해야할 것 같아서 다음에 여유있을 때 같이 설교하고 토론해보도록 합시다."

'아니, 안 그러셔도 돼요.'라는 말이 나올뻔한 이치린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네, 그럼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염마님도 여름 휴가 잘 갔다오시고 휴향했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염마가 외계인이라도 본 표정으로 황당하게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요즘 중대한 일이 많아서 쉴 틈이 없습니다. 끊임없는 죄에 대한 정의실현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고 요즘은 재판도 그전보다 늘어나고 있고요. 재정은 그나마 후원을 받아 나아지는데 휴가 일수가 박해서 저로서는 태업이라도 하는게 휴가겠군요."

한숨을 길게 쉬는 염마를 보며 '그럼 강가의 사신은 1년 내내 휴가겠네.'라는 생각이 든 이치린이 별 신경쓰지 않고 말했다.

"네. 알겠어요. 그럼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엄숙한 표정으로 담담히 바라보는 시키에이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안내했던 사신과 함께 집무실에서 나온 이치린이 답답한지 두건을 벗고 머리를 흔들어 헤친 뒤, 어떻게 됬냐는 운잔의 물음에 울상을 지었고 운잔도 설교가 아니라 야단이라도 맞았냐고 다시 물었다가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시무룩해져서 '쯥쯥'하며 혀를 찼다.

"아, 뭐 그렇게 소득이 없잖아. 그 까마귀에게 한번 비추는게 그렇게 어렵나. 이젠 외부에서 억지로라도 붙여놓으려고 하네."

운잔이 다 들린다며 이치린의 옆구리를 툭툭 치자, 이치린이 미간을 찌뿌리며 말했다.

"아, 다 들으라고 그래. 내가 아야 칭찬 들으려고 여기 온게 아니잖아. 이건 운잔이 말한 야단보다 더해. 차라리 평소의 설교를 들었음 들었지."

'그래도'라는 듯이 운잔이 웅성웅성 신기하게 바라보는 주변 유령들의 눈치를 보며 말하자 아쉬운 마음에 이치린이 얼굴을 붉히며 털어놓았다.

"좋은 일은 맞는거 같긴 한데 왜 우리보다 외부에서 더 잘 알고 더 관심가지냐는 거지. 마치 지들은 한 편의 연극이라도 구경하는 양 말야."

뭔가 살짝 찔리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목 아래쪽 옷깃을 집고 막 흔들며 털던 이치린이 푸념하듯 말했다.

"에이 모르겠다. 솔직히 염마님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건 뭐 좋은 일이 맞는데...  산의 요괴들이 좋은 일 하는것도 맞고.. 어휴, 이게 뭔.."

뭐가 그리 답답하냐는 운잔의 물음에 이치린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뭔가 분위기가 이번 '교육'이 파토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분위기었어. 솔직히 언니나 도교수괴나 자꾸 그런 느낌을 은근히 풍기는데 정작 상관없을 구경꾼들이 그러니. 게다가 그래도 내가 승려인데 여기저기 신경쓰는 기자에 비해 술 마시고 놀았던 거 같아 뭔가 부끄러워."

뭐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고 겉보기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는 운잔의 말에 이치린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관자놀이를 긁으며 말했다.

"몰라. 솔직히 혼란와. 일단 운잔 말대로 지금까지는 누가봐도 좋게 흘러가는게 맞는 거 같긴 하거든." 

강바람이나 쐬자는 운잔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이치린이 다시 황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지 몇분 지나지않아 이치린을 태우고 정박한 나룻배가 그대로 놓여있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둘이 '설마~'히며 조심스럽게 배안을 살폈다.

배 안에는 운잔이 가져온 술병들이 빈 채로 기존 술병과 함께 더 널브러져서 물결에 흔들리는 배와 같이 소리를 내며 굴러다니고 방금 빨아서 널었는데 바람에 툭 하고 떨어진 빨랫감처럼 자빠진 코마치가 팔자좋게 침을 흘리고 코를 골며 새근새근 무거운 눈거풀을 닫고 있었다.

순간 어이가 없어지다못해 딱 봐도 고생해보이는 염마가 떠오른 이치린이 '허허' 웃으면서 억지로 깨우려다가 낫도 뒹굴고 술병으로 너저분한 주변에서 서류철 하나를 보고는 운잔에게 조용히 하라고 요청하고는 정말 조심스럽게 배에 올라 서류를 살펴보았다.

검은 가죽 서류철에 [극비임무일지 - 눈으로만 읽을것. 숙지시 파기요망]이라고 적혀지 있는걸 본 이치린이 슬쩍 코마치를 살펴보고는 그녀를 등지고 서서 용접이라도 했는지 강하게 포장된 라벨을 운잔의 괴력으로 뜯어버리고는 천천히 내용을 읽었다.

안에 든 쪽지에 '잃어버리면 즉시 보고할것, 특히 너 코마치는 조심 또 조심.'이라는 쪽지와 귀신장들의 서명. 비용 내역서와 더불어 '잠복 및 긴급 기습 작전 - 목적 사선 체포'라고 적히고 각각 작전 시간시 누가 언제 투입 되는지에 대한 내용들과 귀신장, 염마의 승인 도장이 들어있었다.

살짝 손을 떨었으나 서류가 바람에 날라가지 않게 꼭 잡으면서 당황한 이치린은 이게 수확인지 아닌지 판단하기에 앞서 이 사신이 깨서 알면 어쩌지하는 불안이 들어 서류철을 닫고 포장을 다시 붙이려 운잔과 애썼으나 뜯긴 자국이 잘 맞지 않아 당황하며 허둥지둥했다.

"아이, 어쩌지 이거. 너 너무 쎄게 힘준 거 아냐?"

운잔이 아니라고 말하며 자신이 해결하려고 이치린이 쥔 서류를 힘껏 뺏자, 이치린이 반동으로 넘어지면서 배가 흔들려 머리를 부딫친 코마치가 머리를 감싸쥐고 말했다.

"아잇ㅆ 아, ㅆ.아으흐그응.."

바닥에 좀 쎄게 박았았는지 주위 구르던 술병을 헤치며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못들며 울상을 짓던 코마치를 어찌할줄 모르며 기겁하는 이치린과 달리, 운잔이 눈치껏 다른 곳을 쳐다보며 코마치의 옆에 서류철을 던져놓았다.

"아으그... 겁나아파.. 잘자고 있었는데 뭐야. 바닥인가?"

주위를 눈물실린 실눈으로 살피던 코마치가 주섬주섬 바닥을 살피다 서류철이 보이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술이 덜깬 표정으로 이치린에게 물었다.

"뭐야. 너 이거 보면 안돼. 보지마. 훠이훠이, 뒤로 돌아."

전혀 정돈 안된 뒤숭숭한 머리로 손을 여러번 젖는 코마치를 보며 이치린이 황급히 몸을 돌리자, 코마치가 술병을 헤치고 서류철을 만졌다가 뭔가 이상한것같아 여러번 만졌다가 깊은 푸념에 들어갔다.

"이거에 박았었나. 아우. 머리야. 뭐야. 너 벌써 온 거야?"

이치린이 괜찮겠지하는 생각에 코마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코마치가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어휴, 그럼 또 한 명 보내줘야겠구..."

순간, 서류철을 다시 잡은 코마치가 얼굴이 붉어지면서 강물이 요동치듯 집은 손을 요동치며 인상을 쓰며 외쳤다.

"야! 너 이거 읽었어?!!!"

안그래도 기분 안좋아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잔머리를 굴린 이치린이 시치미를 때며 말했다.

"아, 그게요. 그쪽이 머리를 박는 바람에 배가 흔들려서 그게 펼쳐지는 바람에.. 한 두 장 정도?"

 "뭐? 야! 이거 보면 안 돼. 아이 나 귀신장님이랑 염마님에게 죽게 혼나겠네.. 아이."

울상이 된 코마치가 어쩔줄 모르며 발을 동동구르면서 허둥지둥하다 분위기가 급변하며 천천히 이치린을 쓰윽 바라보자, 이치린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진짜 한 장 밖에 못 봤어요. 아무한테도 말 안할게요."

"휴, 다행이네. 이거 어떻게든 입막음해야되는 작전이거든."

"그런 걸 그걸 왜 눈에 잘보이는 곳에 둬요?"

머리를 긁적이며 어설프게 웃는 코마치에게 이치린이 황당해하며 일침을 놓자. '하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얼굴을 포개며 한탄하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그넘의 술이 웬수지.. 맛있어서 주는 대로 받아 마셨더니.. 아닌가, 배가 좀 흔들려서 그런건가? 그것도 아님."

 "비밀 지킬게요. 술 더 필요하시면 구해다드리면 되니까요."

이치린이 더 나갔다간 자신이 안 좋게 엮일까봐 재빨리 말했다.

"아니,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서.. 하아, 어차피 봤으면 상관없나. 암튼 이게 내 과실로 실패하면 내가 영혼까지 털려서."

"근무 중에 자는것도 안 털리시는데 뭘 걱정하세요. 흐흣."

농담삼아 말한 이치린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체념한 코마치가 주위에 술병 하나를 까서 쭉 들이킨 뒤,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어크흑,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아하니 주위에 보는 사람도 없고.. 어차피 내 과실이기도 하니까 확실히 입막음을 부탁할 겸 말해주지. 정확히 이야기해줘야 협박보단 입을 닫을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 테니까."

"네, 뭐."

'역시 근무중에 자는건 아무 말이 없네.'

이치린이 뭐 잘 된건가 싶어 눈치를 보는 운잔을 살피며 바르게 앉자, 코마치가 노를 저어 뭍에서 멀어진 뒤, 주위를 더 살펴보고는 손가락으로 얼추 앞머리를 빗으며 입을 열었다.

"하아, 그러니까 그 작전을 위해 미리 귀신장님이랑 건승하자고 술을 마셔서 그렇게 있었던거야. 그런데 네쪽이 술을 가져와서. 하아.. 머리 어지럽군."

코마치가 자신의 오른쪽 묶은 머리를 계속 손으로 잡고 볼에 부딪히듯 흔들면서 인상을 쓰자 이치린이 강바람에 머리를 살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사선체포라뇨."

"그게.. 그게.. 아우!! 그렇게 크게 말하지마! "

방방 뛰며 붉어진 볼로 울먹이는 코마치를 보며 이치린이 손바닥으로 입을 여러번 두드리며 미안함을 표현하자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운잔을 째려보며 말했다.

"목표대상을 아직 체포 못해서, 정보 들어오는 대로 계속 잡으려고 하고 있거든. 확실하게 말야."

생각나는 사선이라면 하나밖에 없던 이치린이 계속 물었다.

"지금 시점에서요?"

"응, 요즘 자주 목격되고 이동 동선이 확실해져서 계속 시도하면 가능성이 있거든."

'이번 일 때문도 있겠군.'이라고 생각한 이치린이 '아하~'하며 수긍했다.

"그래서 염마님이 계속 추진하고 있어. 꺼윽. 요즘 워낙 재판이 많아지니 죄지은 자가 늘어난다며 개탄하고 계시거든, 그래서 염마님이 요즘 지시를 많이 내리셔."

누가 봐도 술기운에 말하는 것에 이치린이 귀를 기울이며 물었다.

"어떤 지시요? 저도 한 소리 들었거든요."

"너도? 하. 역시 염마님은 가차없으셔. 그러니까 작정하시고 그러시지. 염마님은 요즘 더 이상 설교와 같은 대화로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기는 사실상 힘든 것같다고 회의감에 빠졌었거든. 특히 이 인내마경인 환상향은 더더욱. 그래서 체계적으로 나서기로 하셨었어. 일명 '실천하는 정의'리고 해서 평화와 화합같은 좋은 일에는 계속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되.."

그리고 씨익 웃은 코마치가 낫과 서류를 같이 잡으며 말했다.

"자연의 법칙 및 시류(時流)와 평화를 어지럽힐 수 밖에 없는 대상들은 축출하고 배제해서 순리대로 흘러가게 고쳐놓는 거지."

"네?"

이치린이 당황하면서 염마의 서재에서 봤던 아마노자쿠 관련 내용이 기억나 기겁하자 코마치가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왜? 대화와 교섭이 안 되는 것들은 훈화도 안 되잖아. 따라서 갱생도 어렵겠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배제하고 서로 공생을 추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죄짓는 자든 피해자든 줄어들어 어느 정도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적어도 되지 않겠냐는게 염마님의 바뀌신 생각이야. 가만히 앉아있는 정의는 죽은 정의라고 말이야. 그래서 안그래도 많은 재판일을 기본으로 깔고 일처리도 더 많아지신거고, 우리는 현장직만 하면 되는데 사무직하시는 분이 현장지휘까지 맡으시려 하니."

"저기 그런데.. 그 사선이 지금 우리랑 교육중인 도교쪽이랑.."

"뭔 상관이야. 일단 잡아서 신병확보부터 하고 너희는 할 거 하면 돼지. 우린 그런거 신경 안 써. 정의구현을 위해 움직이는 시비곡직청이라는 자신감에 오히려 들떠있고 말이야."

"아니, 좀. 써야 한다고요. 염마가 우리가 하는 교육을 무척이나 신경쓰고 파토 안내려고 아주 밑에서 압력을 주는데 도교 측을 건든다는 건."

당황하는 이치린과는 달리 코마치가 정말 깔끔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혀 상관 없으니 걱정마셔!"

"아니.. 아으. 이 사신 씨가 진짜."

너무 답답해져서 옆에 있던 술 하나를 까서 단숨에 병나팔을 분 이치린이 한숨을 길게 쉬며 말했다.

"아잇 이해를 못하겠네. 염마님은 나한테 이번일을 파토 나지 않게끔 하고, 밑의 사신은 염마의 지시로 파토 날 일을 하고.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나는."

"몰라 나도. 나도 명령받고 하는 입장이야. 너건 너가 해야지."

서로 답답함을 토로한 이치린과 코마치가 서로 남은 술들을 까며 마시자 운잔이 말려야하나 걱정하며 둘을 지켜보았다.

"아니 그게 공무집행인건 아는데. 이걸 해도 도교쪽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리가 없잖아요."

"아니 아까부터 왜 그걸 걸고 넘어지는거야. 사선이라 아무런 상관이 없다니까 그러네."

술기운이 올라온 이치린이 순간 그러면 이 사신과 염마가 알아서 이 교육을 망쳐줘 안그래도 찜찜한 이 일들을 다 끝나게 해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짜증내던 얼굴을 반색하고는 해맑게 웃으며 공손히 말했다.

"네,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네요. 꼭 작전 성공하세요."

물결에 소리를 내며 굴러다니는 잔을 집어 코마치에게 건네고 공손히 술을 따라주는 이치린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진 코마치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너 술 너무 많이 마신거 아냐?"

"아네요. 아네요. 자! 아무쪼룩 잘 부탁드려요."

술잔과 이치린의 어설픈 웃음을 보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코마치가 일단 술잔을 한번에 비우자, 운잔은 황천의 물결을 구경하며 될대로 되라는 듯이 배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천연덕스럽게 술병들을 걷어내고 노질을 하는 코마치를 보고 이치린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 찜찜함에 술을 한 병 더 까서 마시고는 말했다.

"그럼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예요? 내가 알기론 벽도 통과하고 용의주도해서 알기 힘들텐데." 

"너 기밀 한번 봣다고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한다?"

코마치가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듯이 매섭게 쏘아보자 이치린도 배 안에 다 마신 술병을 툭하고 던지면서 말했다.

"에이, 왜 이래요. 내가 아는 한에서 도와줄수도 있는데."

슬쩍 던진 말에 솔깃해진 코마치가 노질을 멈추고 턱을 괴면서 생각해보다가 집게손가락으로 이치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는 것 부터 말해봐."

이치린은 낚시하듯 떡밥을 아무거나 던지면 반응이 오겠지하는 마음에 정말 아무거나 말했다.

"그냥 그 사선이 비녀로 도술을 부리는데 그게 대부분 벽을 통과하는 거고. 요즘 인간마을에서 자주 보인다는 거요."

"뭐, 얼추 비슷하긴해. 우리가 파악한 동선이랑. 우리도 우리만의 제보가 들어오는 정보처가 있거든."

"더 이상 알려는건 보나마나 기밀이겠죠?"

코마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질을 하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암튼 저도 아는 것 있으면 제보할게요. 엄청 빵빵한 제보자인가 보네."

"그치, 게다가 후원도 엄청 많이 받.."

무심결에 한 말을 바로 멈추고 자신의 입을 쎄게 치며 후회하는 코마치를 보고 이치린이 진지하게 그녀의 태도를 바라보며 운잔과 눈을 마주쳤다.

"아우, 내 입. 진짜. 술까지 더 마셔놓으니까 그런가.. 이렇게 방정맞아서 어떡해."

'그냥 평소태도가 엄청 덜렁이인거 같은데.'

이치린이 슬쩍 생각하면서 다시 두건을 쓰자 코마치가 버럭버럭 화내며 이치린에게 따졌다.

"야! 너 이제 그만 물어봐."

"그 후원자가 아야죠? 정보처도 아야고."

"아니, 익명의 제보자야. 그 찌라시 텐구가 정보의 질이 좋을 리도 없고 돈이 많을리가 있겠니. 에이 이렇게 된 이상 다 말할 수 밖에 없잖아. 시비곡직청내에 정보기관이 있어. 거듭된 사신 체포 실패에 귀신장님이 빡쳐서 만든건데 그게 좀 커졌지. 현재 환상향내에 우리 측이 작전을 위해 잠복수사중이고. 돈은 여기저기서 행사를 벌이며 후원받고 있고."

홧김인지 술김인지 자 열어버린 코마치가 허탈해져서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감으며 빠르게 노질을 하면서 말했다.

"아이고.. 입조심 못해서 염마님이랑 귀신장님에게 죽었다. 난."

이치린이 말없이 술병 하나를 건네주는 것으로 답하자 코마치가 분개하며 다시 방방뛰었다.

"야아!!! 너 지금 장난하지!!"

그러면서 단숨에 병나팔을 불며 비운 코마치가 머리를 무척 쎄게 긁으면서 짧게 말했다.

"암튼 넌 너무 많은 걸 알았어. 내가 사신인만큼 조심하는 게 좋을거야."

"네." 라는 대답과 함께 유유자적 흔들리는 나룻배때문에 술기운이 올라와 속이 울렁거렸으나 다행히 황천을 건너간 이치린은 배에서 내려 쓰레기를 치우는 코마치를 합장하며 응했다.

"감사합니다. 무훈을 빌게요."

"너 진짜 입 무겁게 다녀야해. 함부러 입 열면 진짜로 죽어."

"그쪽도 물어보면 다 말해주지 마시고 적당히 마시세요."

"맞아. 나 그거 좀 고쳐야 할것 같아. 그럼 잘가. 비밀 꼭 지키고!"

고개를 숙인 후, 날아서 돌아가던 이치린이 곰곰이 생각중인 운잔에게 말했다.

"거기까지 갔는데 수확이 많이 없긴 하네. 오히려 혼란만 오고 말야."

카라스텐구와 연결되어 있는게 아니겠냐는 운잔의 질문에 이치린도 생각을 하고 말했다.

"아니,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한게 말야. 이게 사선 체포라며. 이 교육을 평화적인 교섭시도로 좋게 평가해준 시비곡직청에 만약 아야가 도교와 연결된 사선에 대한 정보를 줬다고 가정하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일로 도교측이 들고 일어날거고, 그럼 이 교육 자체와 더불어 평화적인 교섭분위기도 파토가 나는데 그걸 뻔히 알고 있을 시비곡직청이 분위기 망칠 작전을 하는것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이걸 어떻게든 주선해서 평화적 분위기로 기사로 써먹으려는 텐구가 뒤에있는 모리야신사랑 시비곡직청도 기겁할 그런 대혼란을 일으키려 하겠어? 이건 저번 종교전쟁보다 더할걸."

생각해보니 시비곡직청이 그런 작전을 한다는게 이상해진 운잔도 고개를 끄덕이자 이치린도 투덜거리며 말했다.

"게다가 걔네 내부 정보망이 있다잖아. 시비곡직청이 박봉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아서 하는거 보면 염마님이 작정한거 같고.. 아우, 뭐가 이렇게 복잡하지. 게다가 아까 염마님이 했던 말들에 가책이 들어서 좀 짜증나고 거슬려."

팔짱을끼며 고심하던 운잔이 이치린에게 소곤소곤 말하자 이치린도 예리한 눈빛으로 흘기면서 말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른건 몰라도 아마노자쿠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줬겠지. 어쩌면 우리도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을지 몰라. 그러니까 이번 건 그냥 실패했다고 하고 더 이상 입 열지말자."

굳이 그럴필요가 있겠냐는 운잔의 태도에 이치린이 인상을 찌부리며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이 말했다. 

"아까 너도 들었잖아. 기밀이라고. 그 작전 실패라도 하면 불똥이 우리에게도 튈걸. 넌 시비곡직청을 적으로 돌리고 싶어?"

고개를 야래야래 젓는 운잔을 보며 '어휴' 소리와 함께 혀를 찬 이치린이 무심결에 본 발 아래에 인간마을이 보이자 명련사를 향해 더 힘껏 날면서 운잔에게 말했다.

"그렇게 마셨는데 술로도 해결이 안 되는거 보면 나도 무진장 마음에 걸리나 보다. 얼른가서 추스려야겠어."

운잔이 속삭이자 다시 이치린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두건처럼 목소리가 흔들리면서 버럭 투덜거렸다.

"아, 또 그런다! 들어가기 전에 해장술 안하니까 걱정마!"


PM 12시 30분 인간마을


이치린의 발 아래에 가지런히 차려진 인간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지나가거나 물건 및 음식을 파는 자판이 형성되어 있었고 몇몇이들은 탄력이 나도록 몇번이고 나무도마에 치고 삶아서 바로 찬물에 담아 쫄깃하게 담아낸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소바(そば 메밀면)을 새하얀 연기를 뿜는 얼음쟁반에 담고 가쯔오부시와 쯔유(つゆ 가다랭이등으로 맛을 낸 일본간장)등의 여러 국물에 말아서 입에 폭풍흡입하며 혀 안의 한기로 몸 밖의 열기를 다스리고 있었다.

"하, 역시 이 집 소바맛은 더위에 직빵이라니까. 맛도 맛이지만 어떻게 얼음쟁반을 슬 생각을 하셨누."

그러자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메밀 반죽을 만들며 말했다.

"얼음 요정에게 산 얼음을 깎아서 만들었지요. 양도 한정되어있고 녹기 때문에 시간제한이 있지만 여름에는 차게 먹어야 더위에 걸리지 않잖아요. 건강 생각하셔야지."

"캬, 역시 이 집 이모 인심하나는 최고라니까. 쯔유좀 더 주시구려."

"장마비(梅雨, 쯔유로 읽음)를 장마 끝나고 찾으시는 거유?"

"아하하핫, 농담도 잘하신다니까."

"돈내고 재미도 있어야 또 오고 장사가 잘 되지요. 여기 직접 만든 거니 가져 가시구려."

국자로 통에 든 쯔유를 풀어 접시에 담아준 주인이 다른 쪽을 보며 말했다.

"처자는 입맛에 맞는가벼, 맛있게 먹으니 보기 좋네. 물도 좀 마셔가."

"허허, 감사하구려. 처자소리도 다 듣고 기분이 좋구마이."

"보아하니 요괴양반 같은디 요괴에 입맛에도 맛으면 파는 입장에서는 기쁠 뿐이죠."

반팔 소매를 너풀거리며 소바를 여러번 국물에 말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던 마미조는 요괴라는 말에 술렁이는 다른 손님들을 보며 씽긋 미소를 짓곤 주인에게 말했다.

"나 때문에 손님들 입맛이 불안해진 것 같은디 미안하게 되었구마이. 주인장."

다른 사람이 불안한지 눈치를 보며 뭐라고 말을 하려 하자, 주인이 포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우리집 손님은 다 같은 손님이지요. 드시고 값만 내면 다 됩답니다."

'캬하핫.' 소리와 함께 호탕하게 웃은 마미조가 할말없이 꾸억꾸억 소바를 삼키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게 자신의 술병을 꺼내 선반 한 구석에 놓인 빈잔들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주인장이 참으로 맘에 드니께 한잔 하시구려. 맛좋은 술이니께 좋은 사람이든 좋은 요괴든 좋은 음식을 대접받았으면 좋은 술로 대우해야제."

"어휴, 장사중에 술기운 올라오면 음식들 맛보기가 힘드니 맛 다 뵈리니까 장사가 엉망되서 마음만 받을게요."

"그럼 데펴 먹으면 된당께. 자 받으라카이."

주인이 공손히 받고 끊는 냄비에 중탕하듯 잔을 올려놓자, 눈치를 봤던 몇몇 사람들은 분위기가 풀어져서 다시 소바를 먹으며 말했다.

"자네들 그거 아나? 이번에도 모리야 신사의 현인신께서 이변을 바로 해결하였다더군."

"과연 신속이야. 자연의 법칙을 어지럽히는 자들의 사단을 귀신같이 알고 나서니 신통하구만."

"그뿐인가, 마을을 침범하고 인간을 습격하려고 한 야만바(山婆[각주:1])을 피해자 없이 바로 격퇴했다던만."

"보면 사나에 현인신께서 마을을 위해 요즘 가장 열심히이신것 같어. 그래서 인간마을이 더 안전해졌잖은가."

"그럼 뭐하나."

다른 사람의 푸념섞인 말에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이 주목하자, 그는 물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럼 뭐하냐는 말일세."

"이 사람아. 현인신이 잘하고 계신다는데 무슨소리인가."

"이보게, 그 잘난 현인신이든, 저기 기존부터 봉사한 하쿠레이 신사의 무녀든 하다못해 흑백의 마법사든 누구하나 실종사건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잖나."

 그러자 어이없다는 듯이 다른 이가 소바를 먹으며 말했다.

"쓰으읍, 쩝. 허헛, 왜 해결을 못했나. 이 사람아. 무녀들이 용의자인 오니들을 저번에 싹 털어버리지 않았나."

"그래서 실종사건이 해결이 되었나? 오히려 분노한 오니들이 몰래몰래 보복하고 있지 않냐는 말일세. 불안은 계속될 뿐이야. 자네들이나 나나 그저 무녀들을 믿기보단 아무 해가 없도록 입조심하는게 더 안전할 걸세."

듣는이들이 어이가 없었는지 허허허 웃어버리자, 주인이 데핀 술을 집게로 꺼내서 맛을 음미하며 입맛을 다시듯 마셨고 마미조가 진지하게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들었다.

"감사합니다. 손님. 참으로 고운 술이네요."

"고마우이."

"그런데 손님 잔이 두 잔이네요. 누구 기다리는 사..아니 동료라도 있으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마미조가 모자를 벗어서 손으로 머리를 털며 올라온 열기를 식혔다.

"입조심이나 누구나 하는 일이지 않은가. 결국 우리가 믿어야할 건 솔선수범 우리를 위하고 당한만큼 대신 값아주고 순리를 다시 돌리려 나서는 무녀들이야. 특히 요즘은 우리를 위해 더 열심히 손쓰고 있는 모리야 신사의 현인신에 믿음이 가는게 당연하고."

"당한 자들이 그러더군, 다 입조심 하라고. 하여튼 나는 피보기 싫으니까 말일세.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도 있어."

그러자 다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은 낮이니까 쥐는 못 듣고 새는 듣고 있겠구먼. 허허헛."

주위에서 웃음이 터지자 그 사람이 됐다는 듯이 소바를 말아먹었고 유심히 살펴보던 마미조는 옆 좌석에 누군가가 앉자 기척을 느끼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어깨선까지 오는 덥수룩한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안경을 낀 여인이 얇은 여름용 블라우스와 치마차림으로 마미조의 시야에 자신을 비추며 정중히 인사했다.

"오랜간만이제."

"겐스케 인사드립니다."

"변신한 차림이 무척 세련되구마이."

인간으로 변신한 모습에 마미조가 웃으며 말하자 겐스케도 마미조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변신 안해도 갈수록 회춘하시네요. 혹시 젋게 꾸미고 다니십니까."

"내가 젊어 보이는게 아니라 겐스케 쪽이 늙어보일 수도 있제."

피식 웃는 겐스케가 마미조가 미리 따라놓은 술잔을 비우자,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어휴, 요괴 처자 손님은 마음씨만큼이나 만나는 인간처자도 곱구만요. 요즘 젊은 아씨들처럼 예쁘장하게 꾸미고 다니시네요."

"예쁜 말씀 감사합니다. 이모."

"여기 집에서 묵힌 우메보시(메실장아찌)니까 같이 입가심이라도 하셔요."

"네, 잘 먹겠습니다."

겐스케가 기분좋게 대답하고는 마미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집 마음에 드는데요."

"그려. 말을 아주 곱상하게 잘하지 않어?"

"네, 근데 여기 인간마을에 와서 변신도 안하셨네요. 혹시 아직도 꼬리를 안 없에고 변신하시는지요."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이. 그리고 아무리 현혹과 가장의 변신술이래도 나라는 나름에 정체성이라는게 남아있어야 한다는기 내 철학이랑께."

"그러기엔 위험부담도 크고 귀털이랑 꼬리털때문에 더워서 생기는 땀띠 때문에 고생이지만.. 본 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혹시 몰라서 도수도 없는 안경까지 주워다 쓰는데..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겐스케가 살짝 내려간 안경을 콧등에서 손가락으로 올리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요즘 애들 풀어서 조사 중인데 환상향 돌아가는 분위가 심상치 않습니다. 특히 이 곳 인간마을은 더 그렇고요."

"무슨 일인데 그려."


  1. 노파의 형상으로 어린아이등 인간을 습격한다는 일본의 식인요괴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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