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뭐하는 것이더냐! 누가 썰기를 이런 식으로 썰라고 하더냐!”

“그렇지만..

어찌 말대꾸더냐! 행동에는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았더냐.”

죄송해요.”

통탄할 노릇이로다. 잘 보고 배우라고 하는 것을 이리 소홀이 할고.”

소란스러운 부엌으로 다가간 유유코는 다그치는 할아버지와 울먹이는 손녀를 보며 부채질을 하였다.

어려서 그렇지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은데. 요우키.”

“유유코 님께서.”
요우키는 검을 집어 도마에 이리저리 미끄러진 토란을 여러 토막으로 썰어버리면서 깍듯이 인사했다.

역시 요우키 솜씨는 여전하다니까.”

콘파쿠가()가 유유코 님을 보필하려면 기본이지 않겠습니까만.”

근심 가득한 요우키가 돌아보자, 썰다가 미끄러지거나 뭉개져서 난장판이 된 토란 조각들이 다른 도마에 요우무의 걱정만큼이나 쌓여있었다.

할아버지의 할 말을 잃은 표정에 손녀가 쳐다보지 못하자 유유코가 실없는 표정으로 대신 대답했다.

“하다 보면.”

기본부터 다시 가르치겠습니다. 손녀의 보필에 만족하실 때까지.”

에에, 지금도 요우키가 잘해주는데 둘이서 더 잘해주겠지.”

“유유코 님의... ..”

가슴을 툭툭 치며 통탄하는 할아버지 옆에서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만 숙이며 울먹이던 손녀가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닦았다.

아직은 어리니깐. 요우무야. 요우키를 보고 잘 따라 배우렴.”

..”

유유코의 미소의 요우무가 글썽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심 마십시오. 아직은 미더워도 제가 이 넓은 포부를 걸고 유유코 님을 평생을 모실 반석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럼! 요우키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데.”

가슴을 툭툭 치며 자부하는 요우키 옆에서 유유코가 싱글싱글 웃으며 요우무를 쳐다보았다.

앞으로도 더 든든할 거고 말이야. 그렇지?”

!” 어린 시종이자 손녀가 주인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걱정 하덜덜 마시고 자, 방에서 편히 쉬고 계시지요. 제가 토란국에 맛있는 밥상을 대접하겠습니다. 자자.”

할아버지가 주인을 데리고 부엌을 나서자, 할아버지의 반듯하게 잘린 토란 토막들과 손질하는 요령을 몰라 검이 미끄러져서 난잡하게 썰리고 땅에 떨어진 자신의 토막 조각들을 손녀는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2.

, 베어 보거라!”

마당에 놓은 대나무를 검기로 베어버린 요우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우무가 발도술로 재현하였다.

그래. 훌륭했다. 이렇게 곧은 것도 흐름에 베어지기 마련이지.”

두 검을 쥔 요우무가 다시 검을 거두고 발도 자세를 취하자, 요우키도 엄중히 말했다.

자고로 병법에 이르기를, 적에게 대항할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하게(故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하라 하였다. 항상 검을 뽑기 전에는 생각부터 해야 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검을 뽑은 요우무의 이마에 할아버지의 딱밤과 함께 불호령이 엄습했다.

생각부터 하고 검을 뽑으랬지 않느냐! 발도 시합이 아니니라!”

죄송합니다.”

더 연습하고 벚꽃놀이 채비를 돕거라. 유유코 님의 모처럼 나들이니 말이다.”

그럼 저기 큰 벚꽃 나무로 가는 건가요?”

어허!! 그건 입에 담지도 말거라.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도다.”

그러자 요우무가 오기 겸으로 물었다.

만약 유유코 님이 가자고 하면요?”

그때는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말리거나 우리가 조용해지는 수밖에.”

살기 어린 할아버지의 엄포에 요우무가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조용히 명계에서 발 뻗고 살고 싶으면 알려고 하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요우무가 다시 검을 뽑고 휘두르다가 검기로 주위 나무의 가지를 쳐내자, 요우키가 순간의 검기로 주위의 잡초들을 잔디처럼 마구 쳐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갈고닦으려무나.”

저도 할 수 있어요!”

암 그래야지! 그래야 유유코 님이 널 믿고 단 잠을 이룰게 아니냐.”

입술을 모은 요우무가 고개를 숙이며 답하자 요우키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답했다.

유유코 님이 나를 믿는 것은 오랜 세월이지만 유유코님이 너를 믿는 것은 높은 실력이어야 할게 아니더냐. 부리나케 수련을 하거라.”

“유유코 님을.”

그랬으면 좋으려 만.. 말만 앞서는 자는 신용이 없는 법이다. 실력이 있으면 아쉬울 게 없는 것이야.”

실력을 기르도록 노력하면 될까요?”

손녀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세월 가득한 미간의 주름을 찌푸리며 말했다.

실력이 있어야 믿음이 있고 믿음이 있어야 의지가 될게 아니더냐.”

. 정진하겠습니다. 할아버지.”

항상 친족보다는 주인을, 모두를 사부처럼 여기거라.”

요우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결계가 열리며 유카리가 인사했다.

안녕, 유유코는 꽃놀이 준비 치장이 안 끝났다고 기다리라던데.”

! 유카리님. 편하게 기다리시도록 귀빈석으로 모시겠습니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깍듯이 인사하자. 유카리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손부채질을 했다.

뭐하느냐! 얼른 정중히 방으로 뫼시거라. 나는 다과상을 준비하러 가마.”

, 넵넵. 가시죠. 유카리님.”

됐어. 위치 아니까 얼른 따라오렴.”

유카리가 결계로 사라지자 요우무가 허둥거리면서 부리나케 집안으로 들어가고

요우키도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3.

 

한참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경단을 손수 빚어 모양을 내느라

새와 토끼, 꽃등 다양한 모양의 경단과 꿀, 그리고 술과 차가 담긴 다기가 가득한 상을 내온 요우키가 같이 기다리던 손녀와 함께 예를 표하자 유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 역시 경험상 감각적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황공한 말씀이옵니다.”

요우키가 이제 물러가라며 요우무의 등을 두드리자, 요우무가 고개를 숙이며 방을 나갔고 요우키도 일어섰다.

그럼 드시고 계십시오. 유유코 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아니, 됐어.”

아니, 그게 무슨 말씀 이시온지.”.”

내가 말이야. 그대와 좀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겠는걸.”

미천한 자에게 하실 말씀이라면 귀하게 새겨 듣겠습니다.”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이 휘동 그래진 요우키 앞에 유카리가 싱긋 웃었다.

오늘 같이 벚꽃 놀이하려고 가려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좀 염려스러워서.”

염려라면 이 제가 책임지고 보필하겠습니다.”

그러자 유카리의 인상이 날카로워졌다.

“사이 교우 아야카시.”

, 그 말씀이시라면..”

유유코 근처에 또 누가 알지?”

쏘아붙이는 유카리 앞에 요우키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저뿐입니다.”

그래. 그쪽만 조용히 하면 저 벚꽃나무도 그냥 큰 벚꽃에 불과하고 유유코도 그 비밀을 일단을 모를 거란 말이야. 그치?”

요우키는 엄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 그래도 벚꽃 철인데 눈치 빠른 유유코면 뭔가 염려스러워서 말이지.”

이미 세월의 무게만큼 제 입도 무겁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아니 아니,. 자네와 유유코와의 정도 무겁잖아.”

유카리는 일어서서 앉아있던 요우키의 두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이 백옥루를 책임지는 손발이라면 아무리 주종관계라도 사사로운 정에 약한 법이니까.”

그전에 저는 무도가입니다. 사심 따위는 이 검에 벤지 오랍니다.”

그전에 시종이잖아.”

요우키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그 반동에 의해 요우키의 머리도 살짝 흔들렸다.

종이 주인의 말을 거스를 수 있나?”

안 되는 걸 말리는 것도 종의 역할이지요.”

그래, 안 말리면 큰일 나니까.. 다만 담벼락에 구멍이 나면 꼭 그게 커져서 담이 허물어진단 말이지.”

그렇다는 즉슨.”

적어도 사이교우 아야카시가 개화라도 하는 사달이 안 날려면 유유코 앞에서는 아는 사람도, 알아도 말해야 되는 위치 있는 자는 없어야 안심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런 것입니까...”

요우키가 주먹을 쥐었다가 떨리는 손을 피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쪼그만 꼬맹이도 아는 거야?”

제 손녀는 모릅니다.”

다행이네. 걔도 알았으면 유유코가 한동안 스스로 청소하고 밥 해 먹어야 했을 테니.”

많이 배웠으나 아무쪼록 보살핌이 많이 필요한 아입니다.”

직접 가르쳤으니 그거야 보장된 거겠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소신은 망극합니다.”

유카리는 요우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조용히 초야에서 수련의 길을 떠나겠습니다.”

요우키는 결심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그동안 집안일하느라 검이 무척 고팠을 텐데 수고 많았어.”

아쉬울 따름이지만 이것마저도 충절이라면 그게 맞겠지요.”

간단하네. 이제 그쪽이 자유고 꼬맹이는 고생해야 되겠지만.”

인연으로 이어진 만남, 회자정리 거자필반이 아니겠습니까.”

유카리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턱을 괴며 쳐다보자 요우키가 엄숙히 일어섰다.

그러면 조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소신 이제 유유코 님의 보위에서 검객으로서의 사명을 찾으러 물러나겠습니다. 손녀가 미덥지 못하더라도 유유코 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유유코가 멍하니 쳐다보자 요우키가 후덕하게 웃었다.

오래된 지음이시니 동등히 행복하게 해 주시니라 믿습니다.”

대답 대신 손을 들어준 유카리에게 요우키가 가볍게 일어서서 나갔고, 깊은 한숨과 함께 술잔을 들이켠 그녀는 정성이 담긴 알록달록한 경단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4.

그게 어디 있더라. 늙어서 그런가, 큰일인 것이야.”

고문서가 가득한 방을 열심히 뒤져보던 요우키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면 내가 이미 처리를 해서 없는 것이던가. 그러지 않았기를 바라야겠구먼.”.”

책들을 정리하고 대문에 싸 둔 작은 짐을 들고 백옥루를 한번 살펴본 요우키는 마치 호연지기와도 같은 포부로 외쳤다.

이 한 몸 남은 생은 벨 수 없는 검성이 되어 돌아오겠노라!”

, 멋잇어.”

유유코는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박수를 치면서 환호해주었고 요우무도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어찌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한동안 이별의 배웅인데 언제 볼 줄 알고?”

귀하신 몸과 얼굴 상하십니다.”

그동안 노고로 상한 몸과 얼굴인 요우키보다야.”

요우키가 웃으면서 경의를 표하고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유유코 님을.”

, 할아버지.”

“세상 물정.”

요우키 손녀니까 잘할 거야 아마.”

유유코의 미소에 요우키는 요우무의 두 어깨를 주물러주었고 그녀도 화답하듯 와락 껴안고 울먹이자 반색하며 꿀밤을 먹였다.

에끼! 주인님 앞에서는 아무리 사적 자리라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느니라.”

..”

“유유코 님을.”

, 못 미더우시겠지만 노력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손녀를 토닥이며 주인에게 절을 올렸다.

신 콘파쿠 요우키, 이만 하직하옵니다. 만년해로 하시옵서서.”

검성이 돼서 돌아오면 그때 잘 큰 손녀를 가르쳐주러 와야 해.”

요우무도 같이 주인에게 절을 올리고 일어선 후, 백옥루를 지탱하던 기둥 하나가 떠나가듯 요우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떠나는 길을 바라보던 유유코와 요우무는 적막과 함께 경의를 표했다.

 

, 요우무.”

, 유유코님.”

오늘은 몹시 피곤하구나, 씻을 물과 얼굴 부기를 뺄 찬 물과 이부자리를 펴 오너라.”.”

, 유유코님. 믿고 맡겨주세요.”

유유코가 방으로 돌아가자 요우무는 대문 쪽을 흘깃 보고서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우물을 향했다.

진작 저 좀 믿으시지 그러셨어요. 할아버지.”

그렇게 우물에서 푼 물을 옆에 있던 물통에 담으며 한스러운 독백을 이어나갔다.

이제 저를 믿어주세요. 가르쳐주신 만큼 잘할게요.”.”

그리고 지금 와서는 성공적이었던 지난 일을 떠올렸다.

 

 

뭐어? 요우키가?”

, 저에게 뭔가 큰일 날만한 비밀이라고 까지만 말하고 함구하라고 했어요.”

가만있어보자, 거기에 또 뭐라고 했는데?”

큰 벚꽃나무 보고 그렇게 말씀만 하신걸요.”

그래? .. 그러면 좋아. 너는 거기까지 아는 거 같고.”

, 뭐를요?”

요우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의아해하자 유카리는 대조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 큰일이네. 이걸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는데.”

, 뭔가 큰일이 나는 게 정말인가 봐요?”

“큰 일 뿐이겠니.. 살고 싶다면 나가보렴.”

?”

요우무가 경악하며 묻자 유카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유유코를 위해서라도 나가라고.”

! 유카리님.”

.. 이게 미리 일어날 큰일을 막은 거기를 바라지만.”

요우무가 고개를 숙이고 한 구석에 앉자, 유카리가 차가운 낯빛으로 요우키를 기다렸다.

 

 

"그래요. 죄송한 일이지만 저도 할아버지도 어쩌면 기회가 필요했어요."

요우무가 도르래의 손잡이를 놓자 우물 끝으로 큰 소리와 함께 울림이 가득했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으니.. , 이제 백옥루에는 유유코 님과 그분이 의지할 저뿐이에요.”

경의를 표하듯 담담한 어조를 마치자마자 요우무가 매우 기다렸다는 듯한 희열감으로 두 물통의 손잡이를 쥐었다.

콘파쿠가의 새로운 손발인 만큼 그동안 고생하신 할아버지의 믿음과 가르침대로 주인님을 열심히 보필하고 모시겠습니다!”

물통을 들고 할아버지, 유유코 님 기다려주세요.’ 신나게 뛰어가는 요우무의 표정에는 천진난만함이 가득할 뿐이었다.

 

 

Posted by 라쿠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