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2시 35분 묘렌사


한참 뒤, 묘렌사에 들어온 마미조는 승려나 염불을 드리러 온 다른 요괴나 인간들 사이를 지나 일행을 찾다가 관음전(觀音殿)에서 운잔이 주변을 살피고 있고 익숙한 여러 말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끼고는 노크하며 문을 열었다.

"아아, 좀 늦었지 말여. 미안하당께."

"아냐, 괜찮아." 코코로가 열심히 거울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며 대답했다.

"뭘 하고 있었당가?"

누에의 빈 옆자리에 앉은 마미조의 질문에 열심히 사진을 찍는 아야 옆에 있던 뱌쿠렌이 특유의 미소로 말했다.

"아무래도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면 무의식적으로 감정이 투사(投射)[각주:1]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마미조 씨가 저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떨리는 선이나 굵은 선 같은 것으로 확실하진 않아도 감정이 드러날 수 있잖아요?"

고개를 끄덕인 마미조가 의기양양하게 종이들을 꺼내며 이것저것 신나게 그려보는 코코로를 바라보았다.

"무척 신나보이는구마이."

"그러게."

옆의 누에가 마미조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날개를 접으면서 선투성이의 검은 구체를 덕지덕지 종이에 그렸다.

"너는 그거 뭘 그린 거야? 루미아야?"

마미조처럼 늦게 도착한 이치린이 묻자 누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지? 정체불명의 나라고!"

'어휴, 그래라.'라고 말하듯 의기양양한 누에 앞에서 고개를 돌린 이치린은 코가사와 떠드는 쇼를 힐긋힐긋 보면서 그녀를 그리고 있던 나즈린을 보곤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와, 생각보다 나즈린도 꽤나 귀엽고 수줍네."

"아, 아니! 아니거든."

"아니긴 뭘." 능글맞은 그녀의 말에 나즈린이 얼굴을 붉히며 짜증을 부렸다.

"아니거드은!!!!!"

난데없는 쿄코의 복장에 주위가 조용해지면서 모든 시선이 쿄코를 향해 몰렸다.

"저 쿄코 양. 뭐가 아니라는 건가요?"

당황스러운 얼굴로 뱌쿠렌에 묻자 쿄코가 당황하며 고개를 저으면서 얼버무렸다.

"아.. 아네욧."

"참, 이 절은 격식없이 요란하군." 후토가 한소리를 하면서 절이 화염에 불타는 모습을 열심히 그려댔다.

"남의 집에서 이런 그림 그리는 거 너무 교양 없지 않아?"

무라사가 멸시에 찬 눈빛으로 후토를 바라보자 후토도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아, 걱정 말게. 진짜로 불 질렀던 걸 좀 더 상상력을 확장시켜 그린 거니까."

"아니 좀, 요점 피해 가지 말아줄래?" 손바닥으로 입을 감싸며 한숨을 쉰 무라사가 짜증을 숨기지 못했다.

"너무 그러지 말아주겠나, 다른 그림도 그렸으니까."

웃는 얼굴로 자신의 다른 그림을 번쩍 들어보인 후토의 손에는 붓을 잡고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코코로외에 이치린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응???"

이치린이 당황하자 후토는 무심하게 두건을 벗어서 풍성한 하늘색 옆머리를 너풀거리는 모습까지 그린 그림을 꺼내 들었다.

"와.. 잘 그렸다."

코가사가 박수를 치자 후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린은 왜 그린 거야?"

"두건 벗은 게 예쁜지 쓴 게 예쁜지 비교해보려고 그렸다네." 

후토의 말에 물어본 무라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화답했다.

"아니 그러면 벗어줄 수 있냐고 직접 물어보면 될 거 아냐. 이상한데 점잔빼지 말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자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진 후토와 이치린이 서로 고개를 돌리며 얼버무렸다.

"아잇 짜증나, 쟤는 날 왜 그려가지고..."

"아, 아무리 그래도 적지에서도 겨, 격식을 차리는 게 귀인인 것!"

무라사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문득 코가사가 열심히 그린 그림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와, 코가사 진짜 잘 그렸다."

"아냐, 나 진짜 못 그렸어. 시간도 걸리고 그림 잘못 그리는 편이야."

"응? 내가 보기엔 잘 그리는데. 엄청."

"아냐. 물론 내가 그린 그림이긴 해도.. 솔직히 표현이 별로라 그림 잘 그리진 못해."

코가사가 손사래를 치자, '거 참, 이상하네.'라는 말과 함께 잠깐 생각한 무라사가 다시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와 그럼 코가사 그림 못 그렸네. 정말. 본인이 봐도 별로라고 하니."

그러자 막상 들으니 살짝 표정이 짜증 난 코가사가 억지로 웃는 것을 보고 무라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왜? 네가 직접 못 그린다며."

"아 그래.. 그래, 내가 말하긴 했네. 미안." 아쉬운듯이 코가사가 하릴없이 채색 덧칠을 덕지덕지 감정을 실려 붓 끝을 버무렸다.

"아니, 뭐 어쩌라는 거야?" 무라사도 팔짱을 끼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았다.

"그럴때는 열심히 그렸다고 결과만 아니라 과정도 칭찬해주세요. 아무래도 자기가 잘 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부담스럽지만 내가 그린 자부심이라는게 있잖아요. 미나미츠."

가까이 다가간 뱌쿠렌이 미소로 코가사와 무라사 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독려하자, 무라사도 모자를 고쳐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조심할께."

"나도 말을 똑바로 했어야하는데 겸손스럽게 말하다 보니.. 미안."

"그래요. 서로 인정하고 사과하니 얼마나 보기 좋나요. 나무삼."

합장하며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뱌쿠렌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맞추고 사진을 찍어대는 아야도 무덤덤하게 그림을 그리는 모미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와, 주지승님 덕분에 좋은 분위기를 필름에 담아가는군요! 화목하고 보기 아주 좋아요."

건너편에서 뱌쿠렌의 그런 모습을 보던 쇼는 입술을 오므리면서 초조한 눈빛으로 붓을 종이에 빙빙 돌리며 생각했다.

'나도 훈화를 하면서 비사문천답게 먼저 나섰어야 하나..'

옆에서 쥐들에게 의견을 물으며 밑선을 덧칠하던 나즈린의 눈에 은근슬쩍 바라본 주인의 탐탁치 않은 심각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응? 주인,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셔?"

"아, 나즈린. 아야 씨 말대로 보기 좋은 광경이라서요. 아하핫."

나즈린의 어깨에 손을 짚고 당기면서 웃는 쇼를 보며 '이런 실없는 주인.'하며 한소리를 뱉는 나즈린의 옆에서 쿄코가 이리저리 춤추는 손의 삐뚤삐뚤한 선으로 조심조심 밑선을 따면서 까칠한 종이의 질감을 붓으로 쓰윽 문지르면서 자국들을 남겼다.

무라사도 푼 여러색의 물감중 푸른 색들을 큰 붓에 문지르고는 흰 종이에 돌리듯이 문지르며 농도를 조절해 물결을 표현하고 아야의 카메라 필름을 갈아준 모미지는 누구 하나 잡아먹을 만큼 날카로운 선으로 대칭이 전혀 안맞는 그림을 애써서 그렸다.

각자 그리는 그림이 시야에 들어온 쇼는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았다가 만다라가 가득한 자신의 그림이 뭔가 허전해보여 은근슬쩍 나즈린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아잇! 주인. 보지마! 아직 덜 그렸단 말야. "

레이저 탄막을 흩뿌린것 같은 직선과 휘어진 곡선투성이의 그림을 본 쇼가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 이거 추상화인가요? 나즈린"

"아니.. 주인. 그냥 내가 못그린거야." 나즈린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아, 미안하군요. 제 실례에요."

쇼가 황급히 사과하자 나즈린이 손사래를 쳤다.

"아냐, 주인 눈에 그렇게 보였으면 됬지."

"원래 뭐 그린 거길래?" 누에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그린 거길레에에!!!!"

"뭘 그린거든 눈에 보이는 사물이 그것이 되는 법이죠. 마음에 따라 달린 것이니."

뱌쿠렌이 나즈린을 감싸주는 말로 두둔하자, 누에도 자신이 정체불명의 요괴라 다른 상대에게 두려워하는 경험의 산물로 비춰진다는 사실이 떠올라 공감하는 뜻으로 마미조에게 기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주지승님. 하긴 아무리 정확하고 세밀한 그림도 제가 가진 이 사진기를 못이기는 것처럼 어떻게 표현하고 열성을 다했느냐가 중요한 거죠. 그래서 작품이라고 부르는 거고요."

아야의 말에 뱌쿠렌이 합장으로 동의하자, 나름 열심히 그리던 모미지도 힐끗 눈치를 보면서 필름을 빼돌렸고 후토가 '말만 하지 말고 그림 좀 그리자.' 하며 옆에서 다른 물감을 빌려갔다.

"그 말 맞는 것 같아! 나도 열심히 그렸어!"

코코로가 자랑하듯 가면들과 함께 거울로 본 자신의 표정없는 얼굴 그림을 보이자. 다들 박수를 치면서 격려했다.

"세밀한게 에쁘게 그렸네. 귀여워."

"그러게."

"지금까지 봤던 가면들 다 표현한 것 봐봐. 신경 많이 썼겠어."

주위의 칭찬과 격려에 의기양양해진 코코로가 그림을 펄럭이며 춤사위로 화답하자, 치마와 소매가 너풀거리면서 한번 돌때마다 아야의 카메라 필름이 돌아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와, 정말 춤추는 것도 예쁘군요. 나중에 파노라마 모드로도 찍어 봐야겠어요."

한번 춰보고는 주위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는지 두둥실 떠다니는 가면들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냥 추면 좀 허전하니까 부채좀 아무거나 줄 수 있어? 내 부채가 안 보여서."

"응, 자."

모미지가 생각 없이 주위에 놓여있던 부채를 집어서 건네주자, 카메라의 상에 많이 보던 부채가 코코로의 손에 들려서 흔들리지 직전인 것을보 고 잠깐 멈췄다가 카메라를 황급히 내렸다.

"야 이 빠가사리 텐구야! 너는 뇌가 우동사리야? 저거 엽단선이잖아!"

"아, 그랬나? 그랬구나~ 니꺼였구나~ 안 미안." 모미지가 쳐다도 안 보고 영혼 없이 대답했다.

"야! 그게 비아냥 될 문제가 아니라고. 코코로양. 그거 흔들면 아주 위험하니까 얼른 주세요."

황당한 표정의 가면을 흔들면서 아무런 표정 없이 코코로가 춤출 때의 자세를 취하자, 마찬가지로 주변이 고개를 갸우뚱하든 말든 기겁한 표정의 아야가 땀을 흘리며 말과 행동을 서둘렀다.

"워워워!!! 흔들면 안 된다니까요. 태풍에 휩쓸리고 싶지 않으면 이리 주세요."

콧바람과 함께 웃는 표정의 가면으로 코코로에게 부채를 건네받자 마자 바로 허리춤에 끼우고는 흐르는 땀을 자신의 능력으로 부는 바람으로 털어버리며 말했다.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엽단선은 한번 부치면 집 따위는 그냥 날아가는 바람이 나와서요."

"그럼 간수를 잘하든가."

"뭐야! 꺼내서 준 게 누군데!"

모미지의 비야냥에 아야도 화를 내며 말하자, 잠자코 보고있던 이치린은 턱을 괴며 장고[각주:2]에 빠졌다.

'분명 저 둘이 붙어서 일을 벌이는 거라고 추리하면 저렇게 싸워대는 것도 연막인가?'

의심에 찬 눈초리를 숨기지 않고 쳐다보던 이치린이 붓을 종이에 할퀴듯 칠하면서 무늬를 내자,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던 코가사가 뭔가 생각난 듯 큰 소리를 냈다.

"아! 좋은 생각이 났어!!"

"응? 뭐가요? 코가사 양."

 주위의 시선이 모아진 코가사가 한쪽에 놓인 종이 뭉치를 들고 빈 종이를 코코로만 빼고 하나하나씩 나눠주며 말했다.

"자, 순서대로 하나씩 받고. 코코로는 아까 춤춘 걸 동작마다 단계별로 나눠 봐줘."

코가사의 말을 이해못한 코코로가 창고에 갔다 온 쿄코에게서 부채를 건네받고는 코가사만 멀뚱멀뚱 쳐다보자, 코가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그럼 한번 다시 춤춰 봐줄래?"

다들 종이를 만지며 코가사와 코코로를 쳐다보는 사이, 코가사가 느낌을 살려 팔을 펴면서 발을 딛으려는 코코로의 동작을 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 거기서 멈춰줘."

"응?"

갑자기 멈추면서 반동으로 몸을 떤 코코로가 놀란 가면으로 코가사를 바라보자, 코가사는 가장 가까이 있던 아야에게 말했다.

"아야 씨는 저 장면 잘 기억하고 그려주세요."

사진기 플래시를 터트린 아야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팬을 잡자, 그 모습을 본 코가사가 만족스럽게 말했다.

"좋아. 다시 춰보고 내가 멈추라면 멈춰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가면을 흔든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몸을 흔들기 위해 동작을 취했다.
"멈춰. 이건 모미지 씨가 잘 기억하고 그려주세요. 그래 주실 수 있죠?"

"나 그렇게 빠르게는 못 그리는데."

"그냥 자세만 기억하고 그려주세요. 다시 춤춰줄래."

코가사의 말에 따라 코코로의 춤 동작 하나하나를 안에 있던 모두가 단계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코가사도 마지막으로 코코로의 모습을 보고는 빠르게 붓으로 그렸다.

"근데 이거 왜 한 거야?"

춤추고도 아리송해진 코코로가 묻자 코가사가 마미조와 누에 사이에서 그녀들이 그리는 그림들을 보면서 혀를 내밀며 말했다.

"아까 아야 씨의 파노라마라는 말에서 영감을 얻었거든." 

"응? 그럼 혀는 왜 내민 거야?"

"아, 이거. 내가 자주 하는 버릇인데, 내 본ㅊ..ㅔ..아니, 내 우산이 혀를 내밀있는 것처럼 나도 '메롱'하는 거야. 혀 내미는 걸로 놀라게 하는데는 무리인것 같고, 장난스럽게 보이도록 자주 해."

겸연쩍게 다시 혀를 내밀며 말하는 코가사를 보고는 코코로도 잠깐 멈칫하더니 무심하게 코가사를 바라보다 따라서 혀를 내밀었다. 
"에ㄹ엉~이어케?"

"푸힛. 맞아. 생각해보니 이것도 감정표현이네? 아야 씨도 그렇죠?"

"네, 맞아요." 코가사가 바로 보이는 방향에 있던 아야가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마미조는요?"

하타테가 모미지와 같이 일을 꾸미고 있다는 말을 기억하고 모미지를 티나지 않게 슬쩍슬쩍 주시하던 마미조가 코가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혀를 내미는 코코로에게 미소로 화답하자, 심드렁하게 턱을 괸 누에가 날개에 먹물 묻혀가며 그리고 있건 코코로의 그림에 혀 내미는 모습을 덧칠했다.

눈과 볼은 전혀 미동도 없는 채로 혀만 메롱 내민 모습을 본 뱌쿠렌과 쇼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자, 후토도 골몰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가면 하난 태자님이 잘 만드신 것 같긴 하단 말이야.'

"자, 그럼 이제 다들 다 그리셨나요?"

뱌쿠렌이 진행하면서 묻자 다들 그림을 보여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다 된 것 같군요. 다들 빠르셔.. 자,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코가사 양?"

"아, 그거. 다들 이리 줘보세요." 

나눠준 순서와 반대로 그림들을 돌려받은 코가사가 종이들을 포개서 바닥에 대고 손으로 눌러 반듯하게 하고는 모아쥐면서 말했다.

"자, 아까 춤추는 동작 나눠서 다들 그리셨잖아요? 그림은 제각각이지만 이렇게 하면."

한쪽 모서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 튕기듯이 한 장, 한 장 놓자마자 각 동작의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모습의 코코로가 춤추는 모습이 빠르게 펼쳐졌다.

"와, 대단해. 내가 춤추는 모습이 펼쳐지잖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온 코코로의 눈앞에 코가사가 다시 처음부터 종이를 튕기기 시작하자 팔을 살짝 들고 몸을 틀면서 한 바퀴 도는 춤사위가 아주 빠르게 펼쳐졌다.

"지금은 좀 띄엄띄엄 하긴 한데 더 자세하게 한 장 한 장 많이 그려서 튕기면 엄청 자연스럽게 나와."

"오, 그런 방법은 어떻게 안 거야?"

나즈린의 질문에 코가사가 슬쩍 머뭇거리다가 슬픈 눈의 미소로 말했다.

"배척을 많이 받아서 혼자 놀다 보니까 그냥 알게 된 거야."

"아. 그래. 경험이었구나."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으로 나즈린이 안쓰럽게 대답하자 반짝이는 눈으로 빨리 튕겨달라고 조르는 코코로를 보며 코가사가 다시 종이들을 튕겼다.

"확실히 언니 말대로 동작이 띄엄띄엄 있는 게 있네. 다들 다시 세밀하게 많이 그려주면 안 될까?"

코코로가 방방 뛰면서 조르자, 다들 난처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저걸로도 충분하잖아. 더 많이 하면 중노동이라고."

무라사가 시큰둥하게 말하자 코코로가 아쉬운 표정으로 가면으로 표정없이 바라보았다.

'와, 표정 없이 쳐다보니까 화내는 것 같네..'

"혹시 화난 건진 모르겠지만, 너도 그려봐서 알잖아. 정말 대충 그리지 않는 한 은근히 힘들다고."

"후.. 알았어. 내가 무리한 부탁을 했었네. 다들 그려줘서 고마워."

코코로가 돌아서서 다시 코가사 앞으로 가서 움직이는 그림을 보자, 누에가 조심스럽게 코가사가 튕기는 모습을 보며 마미조에게 말했다.

"저거 바깥세계의 그.. 영환가 애니멘가랑 원리는 같은 거지?"

"글제. 많은 종이를 한 장 한 장 다른 그림으로 돌리는 겅께." 

여전히 아쉬운 표정의 코코로에게 아야가 가방에서 어떤 카메라를 꺼내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죠. 코코로양, 저한테 해결책이 있으니깐요."

"또 설레발 시작이다. 저 망할 텐구."

"너도 텐구야. 마.." 혀를 차는 모미지 옆에서 무라사가 어이없어하며 핀잔을 줬다.

"오옷, 뭔데? 뭔데?"

코코로가 두 손을 모아 목 아래에 붙이고 방방 뛰며 묻자, 아야가 의기양양하게 손에 쥔 즉석카메라를 보였다.

"짜잔. 바로 이 체키[각주:3] 인스턴트카메라죠. 필름이 겁나 비싸다는 게 흠이지만 환상의 컷을 위해서라면."

"에?"

"코코로양, 놀라지 말고 아까처럼 끊어서 춤사위를 보여주세요."

아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춤을 한번 시범 삼아 춰본 코코로가 동작을 단계별로 나눠보고는 준비가 되었다며 아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시작해봅시다! 카메라 의식하지 마시고, 멈추면 찍겠습니다."

코코로가 동작을 멈출 때 아야가 셔터를 누르고는 카메라 밑에서 인화된 필름을 꺼내 마르라고 조심스럽게 밑에 내려놓고는 다시 한 동작 한 동작을 모미지가 짜증 내며 던져주는 큼지막한 카메라 필름을 받아 갈면서 찍었다.

"휴, 한 동작 다 찍었다. 코코로양, 지금까지 찍은 동작 한번 다시 춰줄 수 있나요?"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까지 끊었던 한 동작을 한번에 춰보자,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던 아야가 말했다.

"이 한 동작이 8초네요. 이걸 찍으려고 든 필름은 30장."

"이거 비싸다면서 무슨 돈으로 샀냐? " 모미지가 비아냥거리며 찍은 필름을 빨리 마르라고 흔들었다.

"다 돈이 생.. 얌마! 지금 뭐하는 짓거리야!" 
"뭐? 빨리 말려야지." 모미지가 쳐다도 안 보고 흔들며 말했다.

"그랬다간 고착이 안되서 색 다 번진다고! 빨리 안 놔!"

그 말에 볼 한쪽에 공기를 머금고 '후~'하고 불면서 불만 찬 한숨을 쉰 모미지가 바닥에 내려놓고 남은 필름들을 배낭에 주섬주섬 넣었다.

몇 분 지나자 색이 다 올라온 사진들을 조심조심 포갠 아야가 다들 보이도록 모이게 하며 말했다.

"자, 이번에는 제가 튕깁니다."

한 번에 쑥 손가락으로 튕기자, 사진들이 한 장 한 장 보이기 시작하면서 코코로가 춤추는 모습이 빠르게 동작 별로 지나갔다.

"와, 더 깔끔해졌어. 내 모습도 더 잘 나오고, 나의 춤추는 모습이 남의 눈에는 이렇구나. 참 아름다운 광경이네..."

황홀한 표정의 가면으로 유심히 쳐다보던 코코로가 코가사의 손에 들려있던 그림들과 아야의 손에 든 사진들을 둘 다 가리키며 말하자, 주위에서 미소와 웃음꽃이 피었다.
"나 진짜 기분 좋아졌어. 다들 나 그려줘서 고마워."

"호호, 이렇게 필름을 많이 쓰면 더 길게 찍을 수도 있겠네요. 아야 씨."

뱌쿠렌이 미소로 말하자 아야도 동의하며 다시 튕기고 대답했다.

"네, 그러게요."

"에이, 그거야 바깥세계에선 이미.."

누에가 피식 웃으며 한소리를 하려다가 마미조가 옆구리를 툭 치자, 아차 싶어서 입을 닫았다.

"응? 바깥세계가 어쨌다고?"

옆에서 무라사가 묻자 누에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저 텐구들부터 시작해서 니들 전부 요즘 이상해."

 "뭐가?" 괜히 찔린 나즈린이 짜증 내며 입술을 깨물며 말하는 무라사에게 따졌다.

"그냥 느낌이 전부 다."

"느낌만으로 남을 의심하는 건 잘못된 일이랍니다. 부디 이 절에서는 다들 그러지 마세요."

"쯥, 뭐 그렇다면야."

이치린이 무라사의 말을 반박하려다가 오히려 뱌쿠렌이 나서자 슬쩍 당황해서 나즈린을 쳐다보았고 나즈린도 귀를 펄럭이며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잘 모르겠다는 의사 표현을 나눴다.

"하긴 미나미츠씨가 그럴 만도 하죠. 나도 이 까마귀 하는 짓이 수상해 미치겠는데."

모미지가 배낭을 던지며 투덜거리는 볼멘소리를 하자, 주위 시선이 한순간에 모여졌다.

"뭐?" 누에가 당황스러워서 물었다.

"하하하, 얜 또 뭐래. 아는 것도 자기 개털 한 올만큼 없는 멍멍이가, 그리고 내가 배낭 던지지 말랬지!"

"시끄러운 소리 집어치워. 난 늑대고, 니 취미생활에 노가다 뛰고 싶은 마음 없다."

"어휴, 이게 지금까지 잘하다 진상 피울래!!"

"또 싸워?" 코코로가 지겹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는 짜증 가득한 가면으로 바라보았고 유심히 바라보는 마미조 사이로 둘을 살피던 나즈린도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둘이 싸우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겁나 사이 안 좋은 거 같긴 한데. 근데 한패면 저런 말이 나올 수가 있나..'

"자자, 둘 다 그 정도만 하세요!! 어디 절에서 함부로!"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후토 옆에서 쇼가 언성을 높이며 중재하자, 자신의 옆 머리를 쥐어 뜯을 만큼 잡아당기며 짜증을 낸 모미지가 긴 한숨을 쉬며 돌아섰고, 아야도 토킨을 벗어 머리를 쓸어내리고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죄송합니다, 쟤 때문에 텐구로서 창피한 모습 보였네요."

"뭐 어차피 둘 다 텐군데." 무라사가 한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죄송합니다. 너무 이해 안 되고 속상한 게 벅차올라서.."

그 말에 코코로도 다시 평범한 가면으로 돌아오며 모미지를 쳐다보았다.

"응? 모미지 씨, 무엇 때문에요?"

뱌쿠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인자하게 합장을 하자 모미지가 노려보다시피 하는 아야와 마미조 상이에서 입을 다시며 말했다.

"이게 좋은 일이라는건 알지만 제가 제 일은 못 하고 여기서 왜 저 조류랑 왜 이러고 있지하는 거요. 다들 알잖아요. 저 산에서 망이나 보고 순찰이나 하고 있어야 해요. 근데 저는 제자리에 없지, 업무는 밀리지, 저 망할 면상은 계속 봐야 하지.."

"하아, 모미지 씨가 마음에 짐이 많으셨군요. 저도 모미지 씨가 산에서 성실히 일한다고 들어서 자기 일에 전념하시는 만큼 얼마나 상심 크실지 와 닿네요. 이청득심[각주:4]이라고 하는 것처럼 언제나 모미지 씨의 말을 들어주고 경청할 상대가 되어드리죠."

뱌쿠렌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긴 한숨과 함께 얼굴이 달아오른 모미지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뱌쿠렌이 다가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

갑자기 뭔가 생각난 모미지가 고개를 들고 뱌쿠렌을 쳐다보았다.

"잠깐, 근데 제가 성실히 일한다는 걸 절분이신 주지승님이 어떻게 아시죠?"

"에.. 아하하핫. 저기 그게 말이죠.."

그러자 당황한 뱌쿠렌이 눈치를 살피며 말은 못하고 떠는 손으로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날리는 아야를 가리켰다.    

"아이 썩을... 또 너냐?"

"얜 좋은 소리를 해줘도 난리네. 단순해서 난동 피우는 거 좋아하는 거 보면 개과가 맞나 봐."

"부리나 안 놀리면 다행이게. 아, 빡쳐."

뱌쿠렌이 방금 말했던 접근법과 대화법을 다시 기억하며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생각하는 쇼 사이에서 둘 사이의 관계를 유추하던 누에가 둘이 뭔가 꾸민다고 보기에는 조금 이상하니 아야가 다 꾸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마미조에게 귓속말하자, 마미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야. 둘 다 짜증 그만내고 나좀 가르쳐달라고. 둘이 붙어있지 말든지, 자꾸 분위기 깨지마!" 

방방뛰는 코코로를 보며 아야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사진들을 튕기자, 언제 화냈냐는 듯이 코코로가  '와아'하며 주먹 쥔 양 손을 흔들며 좋아했다. 

"그래도 코가사때문에 다양한 표현방법을 알게 되었네요."

"헤, 고마워요. 주지승님."

'메롱'하고 혀를 내밀며 옆머리를 넘기고 겸연쩍게 웃는 코가사의 모습을 아야가 순식간에 다른 손에 쥔 카메라로 찍자, 코코로도 '메롱'하며 혀를 내미는 모습을 따라 했다.

"나두어 찌허져어."

그러자 곧바로 코코로를 향해 플래시가 터졌고 분명 카메라가 코가사를 향해있던 아야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다른 카메라로 역광으로 상을 잡은 후토가 아야와 눈이 마주치며 물었다.    

"어어, 텐구. 지금 딱 빛이 예쁜데 이거 섬광은 어떻게 끄는 건가?"

"에이, 남의 걸 쓰시고 그래. 그거 조작 어려우니까 당장 이리 주세요."

아야가 거만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돌려받아 조작 다이얼을 만지자, 마미조가 천천히 인중에서 내려간 안경을 올렸다.

"텐구 처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구먼, 그럼 그 비싼 체키 필름을 사려면 돈이 꽤 들었응것 같은디 말여."

"아 네, 자, 후토 씨. 여기요. 마미조 씨도 사시게요? 요즘 물량이 없어서 잘 안 팔걸요?"
"내는 텐구들이 카메라를 다 사 갔다고 들었당께. 사려고 해도 못 사지 말여."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마미조를 보며 아야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아, 요즘 텐구들 사이에서 취미생활로 사진 붐이 불다 보니 카메라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거든요."

"그럼 필름만은 시중에 왜 남아도는감? 분명 소모품일 텐데 말여."

"그거야 캇파들이 만드는 필름을 쓰니까 시중의 필름을 살 필요가 없죠. 산에서 자급자족이 되니까요. 저 즉석카메라 필름은 시중에도 없는 거라 특별히 캇파들이 만든 거랍니다."

모미지도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자, '저런 거 굳이 왜 묻지?' 하며 무덤덤한 주위와는 달리 이치린, 나즈린, 누에와 마미조는 유심히 아야의 말과 태도를 살피고 귀 기울였다.

"흠, 그려, 그랬었고만. 이번 취재에 돈이 정말 많이 들었겠구마이."

"마미조 씨 말이 맞습니다. 얘가 신문이랍시고 만드는 종잇값만 하더라도 엄청날텐데 말이죠."

모미지가 한술 더 떠서 비야냥거리자 이치린과 나즈린은 계속 모미지의 태도를 살폈고 아야도 비웃으며 말했다.

"후후, 단순하게 생각해서 문제들이라니깐. 제가 모리야 신사와 요괴의 산의 위임을 받아 이번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잊으신건가요?"

"아, 글면."

"네. 돈이야 산에서 주는 지원금 말고도 모리야 신사가 다 대주고 있답니다. 좋은 일에 직접 돕지는 못해서 죄송하고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네요."

쇼를 비롯해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자 후토도 다 찍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소리 했다.

"우리 도교 측도 십시일반 보태고 있다네."

"그럼요. 다들 코코로 양을 위해 좋은 일 한다는데요."

"다들 그것만 보고?"

누에가 의미심장하게 묻자, 그럼 뭐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야가 붉은 섬광의 눈을 비추며 답했다.

"네, 다들 그런 거 아니면 뭘 생각하시는 거예요?" 

의문문이 의문문으로 돌아오자 살짝 인상을 찌푸린 누에의 주변에선 관계없던 요괴들의 미심쩍은 표정이 순간 교차했다.  

"그러게요, 솔직히 다들 코코로 교육때문에 모인 거였잖아요."

쇼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말하다가 누에와 더불어 이치린과 나즈린등이 표정이 진지하자 당황하며 다시 말했다.

"그럼 아니었나요? 우리 잘못 모인 것도 아니잖아요. 여기 후토 씨도 계신걸요."

헛기침을 하며 후토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좋은 일 하겠다고 그러는데도 이러시니.. 다들 자기만을 생각하며 이변 일으키시다가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서 그러신가. 음.. 아! 알겠다."

아야가 도도하게 웃으며 붉은 눈애 못미더워하는 누에의 얼굴을 담고 입을 열었다.

"혹시 같이 제 기삿거리가 되는게 싫으신 건가요?"

"누에로서는 신경 쓰일 수 밖에 없제. 글고 이게 정작 그짝 텐구 처자의 기삿거리를 위해서 벌어진거믄 판이 너무 크기도 하거레이."

마미조가 친구를 변호하며 말하자 아야도 카메라를 만지며 여전히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했다.

"아항, 그건 것 때문이셨구나. 하지만 이건 제 특종이에요. 특종이면 특종답게 판을 더 키우는게 뭐가 이상한가요? 그리고 이게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쯤 이 자리엔 무녀들이 다 박살 내놓았겠죠. 하지만 그랬나요? 조용한 것도 모잘라 오히려 돕고 있으니 이 일이 나쁠 게 없는 거죠. 전 오히려 종교집단들이 이 일을 기사거리로 만드는걸 장려하는 줄 알았는데.. "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한바퀴 돌리는 아야를 보며 몇몇이 수긍하자, 반박하려는 누에의 입을 틀어막듯이 다음 후속타가 능청스럽게 아야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아! 맞다. 맞다. 죄송해요. 누에 씨. 제가 이것저것 다 들춰내는 '기자'라 계속 카메라를 잡다보니 깜빡! 했지 뭐예요. '정체불명'의 요괴라는걸 항상 잊어서 말이에요. 정말 죄송해요."

90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아야가 사과하자, 주위의 의혹가득한 표정이 오히려 누에를 향했고 마미조가 '에휴~' 소리로 말을 열려 하자 끝이 아니라는 듯이 허리 숙인 아야의 추가타가 작렬했다.

"그러니 누에씨도 정체불명의 능력으로 제 카메라에 전혀 찍히지 않으신다는 점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게 진짜..'

"지금 말이 무슨 의미당까?"

미간을 찌뿌리며 얼굴이 붉어진 누에가 속으로도 짜증을 내고 진지하게 화난 표정의 마미조가 입술을 물면서 묻자, 허리를 피며 미소로 답한 아야가 당당하게 주위 모두 보라는 듯이 큰 소리로 답했다.

"카메라에 뭐가 찍혀야 기삿거리라도 되는데. 모자이크밖에 안 찍히니 정체걱정할 필요가 없으시다는 거죠! 한마디로 기우[각주:5]라는 거예요! 기우!!"

"아니 니 말만 하고 화제 돌리지마. 난 다들 싸우던 사이가 요괴하나 가르치는걸로 순조롭고 살갑게 굴게 된다는게 뭔가 더 뒷배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거라고. 그 뭐냐, 개연성이 없잖아. 개연성이!"

누에의 말에 마미조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치린과 나즈린은 각자 어이없게 바라보는 쇼를 비롯해 주위 요괴들을 의식해 동조는 하지면 말라가는 혀를 적시며 눈치를 보았고 지켜보던 후토가 눈을 뜨며 말했다.

"정체불명의 요괴가 카메라때문에 많이 예민해졌는가 보군. 우리가 낀게 별로 곱지 않다는건 알겠네."

"후토 씨. 기왕 오셨는데 좀 속상하셨다면 제가 죄송해요."

아야가 안절부절 못하고 덜덜 떨며 후토에게 사과하자 한숨을 쉰 뱌쿠렌도 합장하며 말했다.

"우리 누에 양이 신경이 곤두셨었나 보네요. 제가 대의에만 신경쓰고 개요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불찰이 큽니다. "

"저도 신경 썼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내가 교육에만 졸라서 언니 능력을 이해 못했었네. 나도 미안."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해하는 쇼를 따라 코코로도 슬픈 표정의 가면으로 누에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고 보다못한 마미조가 말했다.

"다들 그런 식으로 몰고가지 말그레이. 논점의 본질을 트리지말고. 의혹을 좀더 풀자는 거제."

"의혹이라, 어떤 의혹인지 감은 안잡히는데 지금 의혹은 확실하게 풀어서 보여주면 되겠네요."

아야가 즉석카메라를 들고 누에의 사진을 찍고는 필름이 인화되기를 기다리자, 필름에는 정체를 알수없는 모자이크가 가득했다.

"자, 보이시죠? 그러니 기삿거리가 되어서 정체가 밝혀질 걱정 없으셔도 된답니다."

"그러네." 무라사도 동의하며 대답했다.

"진짜다. 언니, 이제 괜찮을것 같아."

코코로도 두팔 벌려 반기면서 말하자마자 다른 뉘양스의 말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아뇨, 분명 뭔가 있을 겁니다. 마미조 씨 말에 동감해요. 다른 카메라로도 해봐!"

느닷없이 기회를 엿보던 모미지가 칼같은 눈으로 배낭을 툭 하고 던지자, 마미조, 누에, 이치린, 나즈린 할 것 없이 아야도 놀라며 말했다.

"뭐어?"

"다시 해보라고, 이 텐구 분명 지금 사기치고 있는 걸 겁니다. 느낌이 그래요!"

'차라리 지금 뭐든 파토나서 다신 끌려다니지 않고 이 면상 안보는게 낫지.'

"허? 허어?! 허허커컼크킄. 나 참."

어안이 벙벙해진 아야가 기가 막혀 웃으면서 차마 찍은 필름이 상할까봐 꺼낼수는 없고 배낭에 있던 여분의 사진들을 꺼내 보여주는 사이, 아야가 신경쓰지 않던 널부러진 필름을 뒤따라 배낭속의 사진과 필름들을 꺼내던 모미지가 교묘히 소매속에 넣는 것으로 바꿔치기 했다.

"걱정마세요. 누에 씨, 마미조 씨, 제가 책임지고 찾아낼게요. 이 입만 가벼운 카라스 텐구, 어디 숨겼는지 내가 꼭 찾아내고 만다."

일부러 크게 소리내며 아야가 눈치 못 채도록 정신없이 헤집자, 황당해하는 표정의 가면을 낀 코코로와 더블어 옆에 나즈린이 초점없이 멍해진 눈으로 귀를 곤두세우면서 펼쳐지는 광경을 이해하려 애썼다.

'오버라고 하기엔 저건 쌍으로 진짜 싫어하는거 아닌가?'

'서로 저렇게 할 정도면 연막이라고 보기엔 너무 막장인데.'

이치린도 어이없어하며 상황을 계속 살펴보자, 모미지가 투덜거리며 뒤엎듯 뒤지면서 말했다.

"아, 왜 없는거야. 분명 사기친 증거가 나와야하는데 기사랍시고 별 잡소리적은 글이랑 초상권 사케로 바꿔먹은 도촬 사진들만 있네."

"도촬은 인정하는데 자꾸 비야냥 거리지 말아줄래!"

대충 상황을 파악한 마미조가 슬그머니 웃으며 어이없어하는 누에 옆에서 위로하듯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서로 싫어하는게 연막은 아닌것 같으니 둘이 충동질하여 적당히 정보를 얻는데 써먹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며 궁리하기 시작했다. 

"자, 다들 그만하세요. 다 불러모은 자리에서 뭐하는 겁니까!"

"하아, 쇼 말이 맞아. 니들도 그만좀해..  왜 서로 가지가지 하지 못해 안달인 거야. 적 앞에서 서로 좋은 꼴 보여준다. 진짜,"

무라사가 후토를 쳐다보며 말하자 어떻게 진정시키나 고민하는 뱌쿠렌과 쇼, 모미지의 태도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이치린, 나즈린, 마미조와 누에를 제외한 다수가 혀를 끌끌 차는 후토를 의식하며 불똥이 튈까 조용히 몸을 사리면서 분위기를 파악했다.

'서로 사기치는거라도 저렇게 싫어하는게 자연스럽게 나올 수가 있나? 한패가 아니더라도 저렇게 리스크 큰 애를 데리고 뭔가를 한다고?'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치린에게 무언가 다가와 어깨를 쎄게 주무르자, 놀란 이치린이 기겁하며 말했다.

"뭐, 뭐얏!"

황급히 고개를 돌린 그녀에 눈에 열심히 어깨를 주물러주던 후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넨 뭐 그리 진지한가? 그렇게 자세를 숙여서 생각하단 어깨가 뭉쳐 아프다네."

"아이, 니가 눌러서 더 아프거든요! 갑자기 왜 어깨를 주무르는거야!"

"이렇게 혈자리들을 눌러주면 긴장이 더 풀릴걸세. 그래도 코코로를 교육하러 모인 자리인데 이렇게 심각해져야 되겠는가."

마지막 말에 이치린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의식하며 '쯥'소리와 함께 한숨을 쉬자, 누구보다 열심히 뒤지는 모미지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진과 필름 뒤지기에 열을 올렸다.

"아잇 진짜, 확실히 있어야하는데. "

"뭐 한게 있어야 나오지. 있긴 개뿔."

모미지의 투정에 아야가 비꼬는 사이, 방문에서 누군가가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누가 왔나봐요."

"누가 왔나봐아!!!요요오!!" 분위기가 안 좋아 눈치껏 계속 입을 막던 쿄코가 놀라서 손을 놓치며 무조건 반사적으로 따라했다.

"네, 누구세요?"

"아, 안녕, 여기 모여있었네. 다들. 밖에 구름요괴도 있고 시끄러워서 더운데 빨리 찾을 수 있었지 뭐야? 후후,"

코가사가 문을 열자 초록 눈의 요괴가 웃으며 다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1. 외부 세계나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이전시켜 표출하 는 심리적 작용 [본문으로]
  2. 長考: 깊히 오래 생각함. [본문으로]
  3. (チェキ 즉석카메라를 일컫는 일본의 상표명, 다른 상표명인 폴로라이드와 비슷.) [본문으로]
  4. 以聽得心 남의 말을 들어주어 남의 마음을 얻는다. 경청의 중요성을 담은 사자성으로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비슷함. [본문으로]
  5. (杞憂) 쓸데 없는 걱정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