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참 격세지감을 느껴요. 어쩌면 이런 요상하고 괴팍스러운 일이 사소했을지 모를 짧은 삶에 계기가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운명이나 계시라는 게 있다면 누군가를 괴롭히면서 절묘하게 삶을 부여잡고 짜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 만큼요. 아, 사실 이제 신은 믿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가타카나를 배울 때 조심해야 되는 요괴들의 이름과 종류를 알려주는 부모님과 같이 자라오면서 두 분과 같이 산길을 외우고 송이를 캐어 파는 녹으로 살아왔습니다. 송이는 정말 귀한 식물인지라 잘 차려입은 분들과 거래를 하는 흙투성이의 부모님을 보며 흥정하는 배짱을 동경했습니다. 산바람에 거칠어지시는 부모님의 주름살과 대비되는 그분들의 붉은 눈 속 검열 대에 부모님의 노력의 대가가 정해졌고 그것은 우리 집안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었죠.
부모님은 그분들의 이름을 전부 ‘텐구’라고 불러주셨고 저는 붉은 눈은 다 이름인줄 알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불러왔었습니다. 불품 없는 송이들은 저희 집안의 밥상으로 올라왔고 좋아라하는 저를 보며 그분들께서는 우리 같은 직업 말고 높으신 분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야 이런 고생을 안 하고 더 맛난 걸 먹는다고요. 정작 저는 부모님이 캐시는 송이가 좋았는데 말이에요. 우리가 그걸로 먹고 살잖아요?
제가 어린이를 갓 넘을 때가 되었을 무렵, 부모님께서는 학당에 계속 보내시면서 이 요괴 천지에 기술이든 지식이든 교육을 받아야 그나마 살아남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깨어 있으셨던 분들이었어요. 어떻게든 쓸모가 없으면 정말 살아남기 힘든 곳이라는 걸 그분들이 더 잘 아셨을 테니까요. 학당에서 공부를 시작해서 끝나면 다른 친구들을 사귀면서 놀고 훈장님께 숙제 못한 부분을 야단도 맞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아버지에게 얼마나 배웠는지 알려드리면 아버지는 그 힘든 산행의 고생도 잊으신 듯 흡족해하시고 어머니께서 캐온 송이를 고르며 칭찬하셨었습니다. 그때는 참 학당이라는게 좋았어요. 친구들도 뵙고 예쁜 훈장님도 보고 무엇보다 힘들게 일하시고 오신 부모님이 제가 뭘 하면 웃으셨거든요.
머리가 점점 영글어가면서 부모님께서는 송이 캐는 법을 알려는 주시는데 그렇게 공을 들이시진 않았었어요. 저는 모르는 단어지만 보험이나 최후의 밥줄이라는 단어를 쓰시더라고요. 그리고 이 일은 고생을 사서하는 일이랍시고 항상 야단치는 말투로 투정을 부렸던 건 기억나네요. 그래서 그저 훈장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공부를 하긴 했는데 점점 어려워 지다보니 진도를 따라가기 벅차거나 제 머리의 한계를 느끼는 날들이 많았어요. 그럴수록 부모님께 그런 모습을 점점 안보여주거나 감추게 되었던 거 같아요. 두 분 기대가 워낙 크셨고 힘들게 일하고 오셨는데 자식으로서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는 않았었으니까요.
청소년이 되고 어느 정도 컸다 싶었을 때는 공부는 어렵고 고생은 무슨 일이든 따라온다는 것을 제일 먼저 깨달은 거 같았어요. 그때는 히에다노 가가 속기사라는 걸 구한다고 하는 등 소위 전문직 이라는게 생겼거든요. 나중에 알고 나서야 머리와 손이 고생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안정된 수입과 사회의 인정, 무엇보다 안전하고 몸이 고생하지 않는 직업들이 늘어난 거예요. 물론 아무나 뽑을 수 없으니 등급으로 직업을 나누고 또 마도서일 경우 각 요괴들마다의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지 없는 지를 따져서 높낮이가 생겼어요. 당연히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높은 경쟁률이 치솟았죠. 직업은 한정되어 있고 실력자는 많았으니까요. 네, 그때 그렇게 많을 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많았네요. 그리고 그것은 어린 마음의 패기로 누구나 다 도전하게 하는 욕망을 주었어요. 그래서 뛰어들었죠,
워낙 소문에 능한 그 고위직 ‘텐구’들을 상대해서인지 부모님은 먹고사는데 지장도 없고 인정받는 그 ‘안정되고 높으신’ 번역 겸 속기사를 한다는 말에 무척 기뻐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주말에 송이 캐는 걸 일손 돕는다고 따라가면 저 길을 텐구가 나오고 저 길은 액신이 다니니 위험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해주시면서 두려움을 가지게 하셨었죠. 아마 공부에 집중하라고 했던 거 같아요.
한다고 하긴 했었는데 높아진 공부의 질만큼 제 머리가 못 따라간게 문제였죠. 마음속 패기랑 머릿속 암시능력이 맞질 않으니 앉아있기는 거의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 든게 많지가 않았어요. 그럴수록 부모님이 고생하셔서 번 돈을 학당에 바치는 만큼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이 생각으로 도전 했었어요. 정말 중간 평가를 해보면 점수가 안 나오는 부분에서 자괴감이 드는데 어떻게든 붙어서 머리 터질 듯이 했던 걸 생각하면.. 아우 생각하기도 싫은데 생각해버렸네요. 이런.
아무튼 몸서리치는 그런 준비기간을 보내고 시험을 쳤는데 그만 낙방을 해버렸어요. 된 친구들은 좋은 미래를 위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정당한 대가를 얻었고 저는 다시 그 미래를 준비해야 했었죠. 당연한 순리인건 알았지만 좀 아쉬웠어요. 아니 안타까웠어요. 이 현실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말이에요,
참 지금 와서 재밌는 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걸 떨어졌는데 부모님이 먼저 생각이 난다는 점이었어요. 낙방에 대한 절망이 지나가면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이 왔고 그 다음에 부모님의 실망이 오더군요. 그리고 저는 제 마음속에 죄인이 되었어요. 첫 시험이라 어려웠을 거라는 친구의 조언에 그걸 이룬 친구들보다 노력을 안 하고 공부도 더 못했던 제 자신의 현실이 더 크게 느껴져서 한숨만 푹푹 쉬었어요. 엄연히 사실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날 부모님의 침울한 얼굴 다음에 애써 달래시는 그 표정을 보면서 그것은 현실이 되었어요. 참 뭐하고 해야 할까요. 왜 내 자신이 더 미워졌을까요. 그 땐.
그리고 저는 다시 내년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하다보니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긴 했어요. 워낙 어려워서 말이죠. 어릴 때부터 봤던 텐구들의 말은 알겠는데 그 높으신 분들이 쓰는 미사어구 어휘력 시험이랑 다른 요괴들 문자는 외우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하지만 점수는 종합이었고 그것 때문에 쪽지 시험에서 좌절하다보니 내가 정말 큰 목표를 잡은 게 아닌가 싶었어요. 훈장님은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했지만 솔직히 노력 했는데 안 됐잖아요.(...) 그래서 저는 내가 노력을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거구나 하고 코피 터지게 했는데 그만큼 머리도 몸도 혹사가 되니 내가 공부할 뇌가 아닌가 싶어서 밤에 공부하다 밖에 나가 한숨만 푹푹 쉬었어요. 그러다 슬쩍 보면 항상 산행에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서로 피로로 누워계시고 제가 안마를 해드리려 하면 공부할 시간 아깝다고 하셔서 측은해져서 안 읽어지는 책을 붙잡고 공부하게 되었네요.
그러다보니 공부보다 사실 부모님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어요. 아버지께서 산행하시다 미끄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보름을 앓으셨거든요. 텐구들은 자기들 네 그 높은 텐구들에게 바칠 송이가 필요한데 저희도 경쟁자가 많으니 밥줄이 끊길 염려가 있어서 비상사태라 어머니랑 같이 산을 타며 송이를 캐면서 독버섯 구별법이나 독도법등 여러 가지를 배웠거든요. 어머니께서 맹수 같은 요괴들에 대해 알려주고 절대 얽히면 안되는 액신이나 엉덩이 구슬을 노리는 캇파 등 정말 자세히 알려주면서 조심스러웠지만 그래야 제 교육비를 버니까요. 그리고 나서 저는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버시는지 더 잘 알게 되었고 공부할때마다 복잡한 생각만 가득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작년의 낙방을 뒤로하고 재시험을 보게 되기 며칠 전 낮, 외울게 하도 많다보니 작년의 시험문제를 외워도 문제를 살짝 비틀거나 조금만 바꾸면 거의 틀리는 제 자신을 보며 정말 머리의 한계를 느껴 학당에서 하당한 후 밖에 나가 바람을 쐬며 멍청한 제 자신을 원망했어요. 이것밖에 안되는 내 자신으로 그 겁나는 결과를 맞이해야 한다니..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누구나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켜 주고 싶지 않잖아요. 근데 이제 내 자신도 실망해야하는 판인데 어쩌겠어요.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그 순간 산이 보였고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실력으로 깨져서 떨어질 바엔 뭔가 일이 있거나 불운으로 떨어지는 게 좋지 않을까.. 거듭된 실망으로 붙을 희망보다 떨어질 걸 걱정하던 저는.. 그래요 시험 한번밖에 보지 않았지만 예상 문제랑 쪽지시험은 수십, 백 몇 번을 1년 내내 보았으니 제 심정으로는 어려웠어요. 산에서 목숨이 안 위험할 정도로 탈이 나면 시험에서 못해도 덜 부끄럽지는 않을까 이 생각이 들어 바람 쐬러 나갔거나 버섯을 캐러갔다는 핑계를 댈 생각으로 익숙한 산행에 나섰어요.
무식하다면 용감하다고 해야하나.. 실은 그때 무식한 게 맞았으니까요. 그리고 산의 중턱에 오를 때쯤 코스는 아니까 만날 요괴를 정해야 했어요. 아무리 봐도 추수의 신님들은 그렇게 부모님이 위협적으로 말 안했으니 별로 저에게 도움 안 될 거 같고 캇파는 목숨이 위험할 거 같고 적당히 탈이 나려면 얼굴이 익은 텐구들 아니면 액신님 뿐이었거든요. 그래서 소위 그 액신님의 길에 들어섰어요. 적어도 시험에 떨어지면 그 액신님을 봤기 때문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참 어린마음에 저도 생각이 참 엉성했네요.
그리고 부모님은 정말 전문가셨어요. 그래서 지금도 존경합니다. 진짜 그 액신님께서 다니시는 길이었거든요.(...) 제가 송이와 독버섯 말고도 돈 되는 나물을 구별할 줄 아는데 계속 갈수록 그런 것들이 점점 손길을 닿지 않고 무성히 자라있었어요. 버릇처럼 조금씩 뜯어가며 가다가 어떤 여자의 말을 들었어요.
“넌 초식동물이야? 뭘 그렇게 뜯고 다녀?”
돌아본 뒤에는 마치 가을의 단풍처럼 붉은 옷에 제가 뜯은 나물처럼 푸르고 긴 머리의 여러 장식, 마치 누군가 만든 인형 같은 핏기 없는 모습, 사방에서 돌아가는 검푸른 기운들과 함께 호기심의 찬 눈빛이 저와 마주쳤어요.
그리고 ‘아차’ 싶었는지 서로 물러서고는 액신님이 머리를 긁적였어요.
“에이 일 났네... 마주하면 안 되는데 모른척하고 지나가면 될 걸 사람 하나 잡아버렸잖아.”
말로만 보던 액신님은 정말 표정이 싹 변하는 것도 공포스러웠어요.
“얘! 누가 그러기에 풀을 뜯고 다니래!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나, 난 잘못 없어.”
액신님의 꾸중에 항상 실수로 아는 문제를 틀리면 꾸중 받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나물들을 떨어트리고 말했어요.
“잘못했어요. 늘 항상 하는 걸요.”
“응? 뭘?”
“잘못할 짓을요.”
그 말을 하는 제자신의 말에 왜 눈물이 고였을까요. 그때 정말 힘들었던 게 폭발 했었나 봐요. 더구나 그 액신님까지 봤으니 더 이상 무너질 곳도 없었겠죠. 그땐.
“아니, 내 말 뜻은 꼭 그런 건 아닌데. 아, 그렇게 큰일이 나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울먹이던 저를 웃으면서 다가와 토닥여주던 액신님을 보며 저도 이젠 만져졌으니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에 울먹여져서 그동안 온갖 힘들었던 마음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났어요. 네. 심장이 멎을듯했으니 진짜 주마등이 맞겠네요. 제가 자초한 상황인데 누구나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겁을 내게 되는...
“그래, 참,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너도 참 딱하다고 해야하나 뭔가 사연이 있거나 그러겠지.. 혹시 길을 잃었니?”
제가 고개를 저었어요.
“아, 다행이다. 난 날 만나서 길을 잃은 줄 알았지. 헤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땐 제가 지지리 궁상이라 귀에 안 들어왔지만요.
발랄한 목소리에 명랑한 말투로 웃는 액신님의 미소에 마음이 조금 진정된 저는 한숨을 쉰 차분히 말했어요.
“그래도 액신님을 봐서 기뻐요.”
“뭐? 정말?”
제 두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으면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기뻐하는 액신님의 그 밝은 표정은 정말 기뻐보였어요.
“어머 어머, 너 정말 보는 눈이 있구나! 솔직히 이 액 때문에 나도 남도 서로 피하기 바쁜데 날 보러 왔다니 정말 고마워. 히히, 덕분에 기분 좋아졌네. 나도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너가 기뻐할까?”
그 해맑은 미소와 감사의 표시에 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들으신 말을 다 털어놓았어요.
“아.. 그랬었구나. 참 많이 힘들었었겠다.”
가장 고생이 많으실 액신님께서 할 말이 많으실 텐데 제가 얼마나 살았다고 이야기를 그렇게 읊고 있었는지,
“그래서 여기까지 왔구나. 날 만나러?”
저는 액신님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음. 그래도 고마워. 난 항상 피해 다니는 삶이었는데 어쨌든 날 보러 와주고 이렇게 말도 섞고 있잖아.”
그리고는 제 손을 끌어다 잡으며 말씀하셨어요.
“자, 악수. 이왕 이렇게 늦어버린 거 서로 고맙다는 의미로 감사의 인사라도 나누자. 얼른.”
“저, 이렇게요?”
“그래! 마. 손에 힘주고. 그치. 자. 손뼉도 치자, 예!”
같이 손뼉까지 치며 친근함을 표현하시는 액신님께 저도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했어요.
“액신님도 할 말이 많으시죠?”
“에이, 나야 할 말은 많지만 너도 이미 내가 액신이라 알고 있는 걸 털어놔봤자 누가 더 힘드나 밖에 더 되겠어? 네가 하는 일도 경쟁인데 힘든 것마저 경쟁이면 슬프잖아.”
제 손을 잡고 말씀해주시는 액신님의 손은 맥박이 느껴지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안정되는 기분이었어요.
“그냥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만 말해줄게.”
액신님의 하루 일과를 들은 저는 누가 봐도 힘들고 외로워 보이는데 밝게 말씀해주시는 말씀에 숙연해졌어요.
“그렇게 지내고 있어.”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살다보니 이렇게 아는 요괴 말고도 말 상대가 생기는 예상치 못할 삶이잖아?”
“음, 사실 액신님을 처음 뵙게 되서 좋은데 그냥 좀 힘들어서 막 나간 거 같아요...”
말끝을 흐리자 액신님이 두 손으로 잡아주시며 말했어요.
“물론 너는 괜찮지 않겠지. 복잡하잖아. 여러 가지 생각이 내 주변의 액처럼 휘감을 테고.”
고개를 끄덕이자 액신님도 주변에 도는 액 하나를 잡았어요.
“나도 그래. 이 액들로 인해 나도 말 상대할 대상이 적거든. 정말 밝게 지내려하지만 이 복잡한 속은 썩는데 말이야. 그저 내가 하는 일로 말이야.”
“하.. 저도 제가 선택한 일인 걸요.”
“그래도 서로 속 썩는 건 같구나.”
“예..”
“뭐, 다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목표가 있으면 걱정은 이 액처럼 항상 쌓여만 갈 거고.”
“액신님도 그래요?”
저의 질문에 액신님은 주의의 액들을 가리켰어요.
“그걸로 파생된 액이 이렇게 산더미처럼 많은걸. 내 몫도 물론 있지만 남의 몫까지 말이야.”
“다 짊어지는 삶이신데 힘들지 않으세요?”
“뭐 액신이니까 내가 자초하는 거고. 그래서 내가 액신으로서 존재하고.”
“힘드시겠다.”
“너도 학생으로 존재하느라 고생 많았어.”
“그러게요. 서로 다 힘드네요. 내 주변에도 다 힘든 분들 밖에 없어.”
“그러게, 힘드니까 서로 이렇게 산골짜기에 박혀있네.”
풀숲에 드리운 저희 그림자가 참 처량하게 느껴졌는데 이상하게 잡힌 손은 오래 잡고있어서 제 맥박이 느껴지다 보니 더 놓고 싶지 않았어요.
“그럼 그 시험만 합격하면 행복한 거야?”
“아마도요?”
“네가 잘하는 거고?”
“시험만 통과하면 잘 하겠죠?”
“음.. 잘 해야 시험을 통과할 텐데.”
“뭐 그렇긴 한데.. 솔직히 그것 때문에 걱정이에요. 제가 선택했잖아요.”
“또 해볼 수 있잖아.”
“또 하다뇨?”
“네가 잘 하는 거.”
후, 글쎄요. 그때 제가 잘 하는 거랑 제가 하고 싶은 걸 구별하려고 생각하게 되었던거 같네요.
“잘하는 거라면.”
“나는 잘하는 게 말이야. 이렇게 말 거는 거랑 말을 나누면 내가 거의 이야기를 끄는 거랑 예쁜 거랑 빙빙 도는 춤도 잘 추고 남의 액도 잘 가져가고 행복하게 해주고 엄청 보람찬 게 많아. 너는 어때?”
“저는.. 잘 하는 게, 소..송이를 잘 따요. 그리고 텐구 들이 주로 쓰는 문자도 알고요. 다른 고급 나물들도 알고 산도 잘 타요.”
“그래,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네 못하는 걸 채우느라 힘들었으니 네가 여기서는 잘하는 걸 생각해.”
“하지만 못하는 건 여전한걸요.”
“얘는, 내 말을 뭘로 들었니? 난 남의 액을 가져가준다고.”
그리고는 주위의 액 하나를 집어서 윙크하시면서 말했어요.
“이게 너의 액이야. 네가 잘하는 걸 한다면 잘 이루어질 거야.”
“정말요?”
“그럼!”
액신님이 제 액을 가져가 주셨다는 말로도 너무 가슴이 고동치고 들뜬저가 반색하자 액신님도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이렇게 능력 많고 명석하니 먹고 살 걱정은 없겠네. 네가 잘하는 게 뭐라고?”
제가 시험 걱정을 놓고 들떠서 다시 말하자 액신님도 좋아하시며 말했다.
“우와, 그럼 우리 네가 잘하는 거 하러가자.”
그렇게 그날 저는 액신님께 약초나 산나물을 알려드리고 액신님이 두려워 흉한 요괴들이 안 오는 깊은 곳의 고급 송이를 잔뜩 캐고, 캇파들이 노는 폭포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다가온 액신님을 아시는 ‘니토리’라는 캇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텐구 문자를 아는 애는 신기하다고 알려준 캇파들이 쓰는 문자를 살짝 배웠어요.
그리고 액신님이 불러서 온 엔가초를 열심히 하는 ‘아야’라고 본적 있는 텐구에게서 텐구 문자를 아는 것으로 보안에 조금 위협적일수도 있지만 '기특한 이번 달의 화제대상‘ 기사 예약도 받고나서 산에 내려왔어요.
“정말 네가 잘하는 게 이렇게 큰 줄 몰랐네. 그치.”
“네.”
서로 캇파가 준 오이를 한입 베어물고 텐구가 준 과자, 버섯, 더덕, 나물이 가득한 바구니를 가득 든 저와 액신님은 서로 미소를 지었어요.
“액신님은 신사가 없으세요?”
“생기는 날에는 금지구역이라 거의 나밖에 오지 않겠니. 그래서 내가 사는 곳이 신사지.”
“아하. 찾아 뵙고 싶네요. 근데 액신님은 이름이 뭐에요.”
“아, 카게야마 히나야. 그리고 너는.”
히나님께서 처음 봤을 때 지으신 표정으로 정말 달콤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열심히 살고 경험한 너의 장점으로 선택한 대로 곧 삶을 개척할 누군가겠지.”
뭘 말하든 사족 같은데 제가 굳이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요. 그냥 뭉클한 이 마음을요.
“아, 참 맞다, 맞다. 멋진 말 생각하느라 깜빡해서 큰일 날 뻔 했네. 빨리 엔가초하자.”
그렇게 둘이 무슨 데덴찌하듯 신나게 엔가초하고 히나님은 돌아서서 말했어요.
“고마워. 덕분에 누군가를 만나면 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넌 정말 멋진 경험을 주는 아름다운 애야.”
“히나 님도 아름다우세요.”
그때 본심이 나와서 히나 님 께서 겸연쩍게 웃으신 거 기억나네요. 묘하게 솔직하신 분이었어.
“그럼, 얘가 이제 뭘 좀 아네. 남들보다 짧은 시간에 좀 오래봐서 그런가?”
“내일도, 내일 모래도, 그냥 일상이 힘들텐데 히나 님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그러자 히나 님이 인자하게 말씀하셨어요.
“일회일비하지 마렴. 누구나 불행만이 가득하지 않고 그 다음은 행복할 수 있어. 그 반대도.”
“그렇군요.”
“그래도 어쩌면 이 고생을 하면 누군가는 액을 덜어 행복해지고 나도 내일은 즐거울지도 모르잖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오늘처럼 행복하자.”
그 붉으신 옷과 리본처럼 제 볼도 그 색에 물들여 공감했던 거 같아요.
“네.”
그렇게 제일 생각 많이 나는 그날 저녁에 부모님에게 바구니를 건네 드리고 놀라신 부모님께서 기특하게 보셨다가 표정관리 하신 걸 아직도 기억해요. 하긴 부모님 생에 볼까말까한 정말 비싼 최고급을 캐왔으니 그런 모습도 기특하셨던 거 같아요. 가격 입찰 때 저를 데려오셨더라고요. 그 ‘아야’라는 텐구도 엄청 고급적인 차림으로 그 높으신 텐구 옆에 있었는데 깍듯이 하면서도 저를 보며 알고 있다는 듯 미소지은거 보면 참.
두려움과 불안이 일으킨 사단으로 벌어진 이야기다보니 그래서 그 시험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실 거예요. 아마 핵심이 아니까 싶지만 액신님이 액을 다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본 시험은 정말 털렸죠. 그래도 기존보다 점수가 조금 된 것으로 위안삼고 오히려 부모님과 함께 송이 캐는 기술을 즐겁게 배우고 아무래도 점점 더 텐구들과 서로 친해지면서 신용이 생겨 제가 텐구들의 거래장부기록을 텐구 네 말로 대필해서 편하게 주는 것으로 소문이 나 이쪽 납품으로 어린나이에 으뜸가는 대상이 되어서 명성도 쌓고 잘하고 좋아하는 걸로 열심히 살게 되었거든요. 히나님이 기특하다고 하셨고요. 정말 대놓고 말해주셔서 신사 짓자는 이야기로 너스레를 떨면 회피하시긴 하시지만.
솔직히 시험은 망쳤으니 아무래도 액을 가져간다는 건 그냥 하는 소리였던 거 같아요. 아니면 진짜 뵈어서 불운해 졌는지 도요. 아니 제가 잘하는 걸로 소위 성공을 했으니 액을 가져가신게 맞는 걸까요? 결국 남는 건, 저의 믿음인데 히나님께서 알고 계시겠죠.
그리고 히나님을 보면 불행해진다는 말을 들었는데 산을 타다 다칠 때도 있고 거래가 잘 안될 때도 있고 누구나 죽으니까(...) 결국 끝에는 불행이 있잖아요. 그러니 살면서 행복할 필요는 어느 정도 있어서 만족하고 있어요. 정말요.
그렇게 이 이야기에서 앞으로가 어떻게 되든 생은 길어서 제가 공부하면서 배운 말인 호사다마도 새옹지마도 될 수 있는 인생이니 결과에 너무 불안해하고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나 남는 게 무엇이든 제가 다시 선택을 내리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거나 잘하는 거와 좋아하는 것을 구별 하는 거, 뭐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처럼, 또 자상하고 발랄하셨던 히나님처럼 누군가에게는 말을 들어줄 대상이 필요하다는 거, 그리고 그걸로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거, 그것이 이런 인연의 소중함이 아닐까 싶어요. 그저 이 글로 이어지는 모든 인연들에게 그것이 누구시든지 기댈 대상이 필요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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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최근에 수능철이다보니 지금은 다들 진로 정하기 바쁠때라 SKY캐슬같은 드라마도 나오고 지금은 수시결과가 나왔지만 수시 전까지 포함한다면 올해 하반기는 다들 장고와 불안 걱정에 빠져있으실 때일 거예요.
이런 고생하고 수고하신 분들에게 공감도 공감이지만 위안가는 내용을 주고 싶어 무언가를 빈다면 신이지만 불안과 걱정은 사실상 불운과 같은 액이나 다름 없으니 좀더 액을 가져가주시는 액신님에게 어울리고 더 정서적으로 유대되지 않을까 싶었고 그래서 일부러 독자의 마음으로 느끼게 할수 있는 서사를 구축한 화자가 있는 이야기로 인터뷰/수픽 스러운 문체로 내적 공감이 들도록 적었습니다.(알퐁소 도데의 '별'같이 묘사했어요.) 수많은 불안과 걱정 피로를 이겨내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어려운 목표, 장점과 선호에서 갈등하시면서 다양한 삶을 온갖 감정으로 살아가시는 분들께도 많은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힐링 소설로 남아주기를 바랍니다.
제목인 재수가 없어졌던 어느 날에서 '재수'는 중의적인 단어입니다. 히나를 만나면 불운의 아이콘이니 일단 엔가초부터 해야되서 재수가 없어지는 것도 맞겠지만 2수,3수,4수등 시험볼때의 그 '재수'를 담고 있어서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에 자신의 장점을 살려 막연히 두려워하지 않게된 '나'의 성장으로 재수생이라는 책임감에서 시험을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연연하지 않게 되어 사실상 삼수일수 있는 현실이자만 '나'에겐 더 이상 연연할 필요가 없어 재수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의 '나'는 최대한 중의적으로 써서 요괴일 수도 인간일 수도 있습니다. 히에다노가라고 하기엔 시험낙방에 요괴천지의 요괴의 산을 거늴만큼 요괴들과 더 친숙하고 히나가 사람이라고 한건 그냥 사람처럼 생겨서 말한 걸 수도 있는 거고 엉덩이 구슬은 아무래도 인간적인 공감을 주기위해 넣은거지만 산을 두렵게 하기위한 어머니의 블러핑일 수 있어요. ㅎㅎ 그리고 정말 힘들어서 회피하고 싶은 순간에 회피하려고 하는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아무말이나 하는것 처럼 감정묘사를 솔직히 숨기지 않게 하도록 나이가 어립니다. 그러니 감정을 이입하면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은 송이버섯을 최고급으로 치기 때문에 소위 '잘 하는 것'을 더 값지게 부각시키기 위해 소재로 삼았습니다. 텐구 문자나 캇파문자 속기사등은 창작 설정이에요. 뭐 걔네들 문명이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ㅎㅎ
히나가 만나면 불행해지지만 원래 발랄한 성격이라고 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이런 소재에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자애롭고 나쁜 액도 가져가고 착한 히나 액신님을 찬양합시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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