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술기운도 나서 볼도 화끈거리고 낭패스러워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버린 누에가 마지못해 보인 그림에는 검은색 동그라미들이 괴상망측하게 연속으로 쳐져 있었다

"어? 음. 왜 검댕이만 가득한 걸까요."

뱌쿠렌도 특유의 눈웃음은 지어 보였지만 애매한 미소로 높은 어조로 묻자 나즈린이 두 손바닥을 들며 피식 웃었다.

"에이 뭐야. 우리 눈에 보이는 평소의 누에 모습이잖아."

"맞아. 누에 잘 모를 때 처음 보면 저랬어."

이치린과 무라사가 맞장구치자 후토도 눈썹 사이에 주름이 생길만큼 주요깊게 보면서 턱을 괴며 말했다.

"내 눈에는 더 해괴한 괴물로 보였는데."

"제 사진에도 누에 씨는 모자이크 아니면 저렇게 비슷하게 나와요."

그 와중에 플래시까지 터트리며 누에를 찍는 아야를 보고 길게 한숨을 쉰 누에는 귓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정체불명의 요괴니까 니들 눈에 이렇게 형용할 수 없는 정체불명으로 보이는 거지."

"아항, 그렇구만. 난 귀공이 그리기 귀찮아서 휘갈긴 건줄 알았네."

후토가 손을 탁 치며 말하자 누에가 곧바로 매섭게 쏘아보았다.

"하하, 다들 그만 하랑께, 누에야 정체 불명의 씨앗땜시도 있으이 원초적이고 공포적인 무의식적 대상으로서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거시제. "

"와, 제대로 자아성찰이네. 그럼 그 단발머리의 모습은 본모습이 아냐? 멘레이키는 본 모습인 가면들 그리는데."

나즈린이 팔짱을 끼며 묻자 코코로도 호기심에 슬쩍 바라보았다.

"음, 아무래도 기자인 저 때문에 더 방어적으로 나오시는 것 같아요."

슬쩍 눈치를 보며 카메라를 허리춤에 집어넣은 누에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볼을 두드리며 어색한 표정을 짓자, 마미조가 누에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자연스럽게 필 수 있도록 주무르면서 말했다.

"암, 누에는 정체불명의 요괴제, 느거들이 다 잘 알다시피말이제. 가면의 요괴는 가면이라는 정체성을 알아서 얼굴과도 같은 가면들을 그렸쓰니 누에도 지거 정체성을 알았으니께 정체불명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한 거시제."

친구의 변호에 어깨를 피며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는 누에를 보며 코가사나 쿄코, 모미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본질을 보고 보듬아주었어야 하는 법, 확실히 '정체불명'을 표현하는 것도 무리였겠군요."

뱌쿠렌도 자신의 태도에 반성하며 합장을 하자 이치린과 나즈린, 무라사도 수긍하며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럼 언니도 나랑 좀 비슷한 모습인거네."

자신의 갖가지 가면이 가득한 그림을 펼쳐보인 코코로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누에가 흐뭇하게 웃으며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캬, 정말 보기 좋은 장면이네요."

그 새를 못참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누에가 감탄하며 말하자, 모미지가 꼬리로 아야의 등을 툭하고 치면서 눈치도 없느냐는 듯이 인상을 썼다.

"그럼 마미조 씨는 어떻게 그렸어요?"

쿄코가 눈망울을 초롱거리며 고개를 쭉 빼들고서 묻자, 마미조가 웃으면서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내도 본디 내 모습이제."

평소 모습이 힘있게 그려진 선에 섬세한 채색, 머리 위의 구슬달린 모자부터 안경까지 세세하게 표현된 그림을 보며 누에가 감탄하며 엄지를 지어보이자, 마미조도 고개를 흔들며 윙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마미조 씨는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아야가 눈썹을 치켜 세우며 펜과 문화첩을 꺼내서 묻자, 다수의 시선이 마미조에게로 모여졌다.

 "내는 너무 오랫동안 봐와가지고 그리기 쉬었으이낄낄. 내가 살아온 많은 경험들이 다시금 떠올라 반가웠지말여."

아야가 문화첩에 조신조신 받아 적어가며 물었다.

"와, 마미조씨야 천(千)의 얼굴이신데요. 흐흐 그럼 그림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시며 그리셨나요? 아님 그리기 어려우셨거나 하는 부분요,"

"내는 말이여, 요기 요 부분 있제?"

마미조가 그림에서 검은 안경을 가리켰다.

"이 안경부분이 좀 인상깊었으이, 내 얼굴이믄 맨 얼굴로 했써야 하는 거신지 그냥 이 모습 그냥 그대로 그려야할지 고민이 됬응께. 이제는 내 눈의 각막과도 같은 도구니 말여."

"마미조는 안경 벗어도 미모가 사는데 뭘."

누에가 베시시 웃으며 말하자 뱌쿠렌과 아야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한번 숙였다.

"얘가 뭔말 한당까. 낄낄."

마미조가 웃으면서 누에에게 손을 젓자, 사진을 찍고 필름을 갈겸 카메라를 모미지에게 건네준 아야가 다시 물었다.

"와, 친구사이가 각별 하신게 보기 좋네요. 다른 분들은 그림을 보고 어떠신지 말씀해 주실까요?"

"되게 마미조같이 잘 그렸어요오옷!"

"채색하진 않았지만 검정색 선으로 잘 묘사됬네. 신경 많이 쓰셨겠어."

"꼬리의 복슬한 털까지 자연스럽게 그리신게 인상적이네요."

그림을 바라보던 해맑은 쿄코와 입술을 살짝 깨물며 턱을 괸 나즈린, 자신의 꼬리를 쓰다듬은 모미지가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럼 그림에서 추가해서 그리고 싶으신게 있으시다면 뭘 추가하고 싶으세요?"

"얼굴을 그리는 거시니께 뭐 상관없지만 내캉 꼬리가 몸만큼 커서 누에가 잡아줬으면 좋겠구마."

"네, 흐흐 알겠습니다."

피식 웃은 아야가 숙련된 모미지로부터 카메라를 받고서 나즈린에게 렌즈를 향하자, 나즈린이 마지못해서 귀를 쫑긋이며 눈치껏 그림을 들었다.

"나즈린 씨는 그리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그림 연습 좀 더 해야 할것 같다는 생각..?"

나즈린이 부끄러운 듯이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자, 코가사가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이, 그 정도면 뭘. 나보다 잘 그렸구만."

자신의 그림을 같이 보이며 웃어보이는 코가사의 눈동자에 턱을 낮게 수그러들며 탐탁지 않은지 입술을 다무는 나즈린에게 무라사가 말했다.

"네 특징은 잘 표현 했는데? 동그란 큰 귀 두개에 꼬리에 보석 목걸이에 막대기 두 개 까지." 

"이러든 저러든 자기 자신인데 자신감을 가지세요. 나즈린."

뱌쿠렌이 복돋아주자 나즈린이 옆머리를 긁적이며 꼬리에 메단 바구니 속 쥐와 수근거렸다.

"말은 못 그렸다하며 아쉬워 하지만 더 잘 그리고 싶어하는 욕구가 속에 가득 하구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후토의 말에 나즈린은 시험지를 들킨 학생처럼 입술 안쪽을 깨물며 얼굴을 붉혔다. 

"그림이 용지 아래쪽에 그려진게 지평선이 그려지진 않았어도 땅같은 부분에 서있는 건가 보제?"

"뭐, 바닥이 서있는건 맞지. 공중에 떠있으면 중앙에 있었을 거고." 나즈린이 마미조에게 대답했다.

"꽤나 신중하고 현실적이구마이. " 마미조가 땀 때문에 콧등에서 내려간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더 예쁘고 멋있게 그리고 싶으셨던 마음이 크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마미조 씨 생각보다 분석적이시네요." 

"뭐, 그저 사실에 입각한 추론일 뿐이제."

"으흠, 그렇군요 다음은 이치린 씨."

마미조와 대화하다 말을 돌린 아야를 나즈린이 슬쩍 쳐다보고 이치린도 잘못 그려서 둘둘 만 종이들 사이에서 완성된 그림을 선보이며 말했다.

"나는 뭐 곱상하게 잘 그렸지."

주위에서 '오'하는 환호성과 함께 관심이 모이자, 이치린이 의기양양하며 말했다.

"자, 어떤지 다들? 언니도요."

"대단해요. 정말 잘 묘사했네요."

"엄청 뿌듯했겠다!" 뱌쿠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코로도 두 팔을 펼치며 말했다.

"그럼 그럼. 운잔이랑 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야. "

아야가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빛 방향까지 계산하며 눌렀고 누에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이, 마미조와 누에, 나즈린은 언제 카메라를 자신에게 줄지 눈치를 슬쩍 보는 모미지와 아야의 태도를 주도면밀하게 살폈다.

"종이를 꽤 많케 썼구마이."

마미조가 주변 종이 뭉치를 가리키며 묻자 이치린이 대답했다.

"아, 이건 그림 그리다가 망친 건데 물감이라 지울 수 없어 따로 모아놨어요."

"처음에는 별로 그림이 만족스럽지 않았나보군요?"

뱌쿠렌이 입을 열자 이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상대들에 비해 종이들이 수두둑한게 꽤 초조할 수도 있었겠구마. 잘 그리고 싶은 강박도 있었을 듯 싶으이."

이치린은 마미조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을 쳐다보았다.

"오호, 그럴수도 있겠군요. 일단 필름에 작품을 박제했으니 다음은 주지승님!"

뱌쿠렌은 그 말을 듣고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면서 특유의 눈웃음으로 그림과 함께 화답했다.

"이 곳 묘렌사의 주지승으로서 도교측에 내세울만한 기법으로 그렸답니다."

능글맞게 펼친 뱌쿠렌의 그림에는 무수한 점들이 하나의 색이 된 점묘법으로 된 뱌쿠렌의 초상화가 불교예술처럼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등의 원색을 많이 써서 표현되어 있었다.

"와아아아!"

가지고 있는 우산마냥 입을 다물지 못하며 혀를 내두르는 코가사와 감탄하는 무라사등 다른 요괴들 뿐만아니라 후토도 충격을 받았는지 집중해서 바라보자 뱌쿠렌이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말했다.

"그리느라 시간이 걸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각각 다른 점들이 무수히 모여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듯, 합일된 형태로서의 존재라는 성찰과 경건한 마음가짐을 다스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와, 그러시군요. 기법이 참 색달라서 더 예쁘네요."

아야가 문화첩에 적는 사이 탐복한 모미지가 스스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자, 흥미롭게 바라보는 시선들 앞에서 문화첩을 집어넣고 토킨을 정리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자자, 여러분들. 그림이 아주 예쁜 그림들이 조금 있어서 그러는데 이 자리가 서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지 그림 경연대회나 인기투표가 아닌 만큼. 위축되지 마시고 서로 말할 수 있도록 하자고요."

그말에 쿄코가 손을 들자, 아야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 쿄코 양, 말씀하세요."

"네! 뱌쿠렌 그림은 너무 멋졌고. 또 음. 주지승님 답게 불교적인걸 너무 잘 표현하신점이 더 멋있었어요!"

"아항, 쿄코 씨의 의견이셨습니다. 다음은 후토 씨인가요?"

후토가 손을 드는 것을 본 아야가 묻자, 후토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두 눈을 감고 말했다.

"저렇게 점으로 찍어 표현하는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 분명히 손은 두 개일텐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찍은겐가? 보아하니 마법을 쓴게 아니겠나?"

그 말에 너털웃음을 터튼 뱌쿠렌이 말했다.

"하하하, 참. 정성을 들이면서 오랜시간동안 숙련되면 다 된답니다. 그렇게 노력과 영감이 필요한 창작 부분에 마력낭비 하진 않아요."

그리고는 8개의 붓을 손가락 사이마다 끼우고는 찍는 시늉을 하자, 후토가 혀를 한 번 차고는 침을 삼켰다.

"넵, 다음은 쿄코 양!"

쿄코가 슬쩍 주위를 돌아 보고는 웃으면서 그림을 보여주었다.

"난 이 그림이 맘에 들어요. 내가 나를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내 모습이니까요."

"쿄코가 자기 모습을 잘 표현했네요. 나무삼."

"다들 자기 모습을 잘 표현하는 것 같네. 거울을 봐서 그런가."

무라사가 말하자 아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거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서로 얼굴 그려주기도 해봐요."

"아야 씨 말씀도 좋은 것 같군요. 웃는 쿄코의 표정이 덩달아 기분 좋아져서 좋아요."

"음, 내는 그림상에서 어깨는 좁게 그려졌는데 선에는 곧게 힘이 들어간 모습을 보아서 뭔가 자부심은 강해뿐데 그걸 들어내기엔 내면에서 부터 자신감이 좀 많이 없어 보이는구마이."

마미조의 말에 놀란 누에와 쿄코가 주위의 시선과 같이 그녀의 입을 주시했다.

"뭔가 내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게 느껴지는게 내눈에는 나타난단 말이제. 대부분 그림에서 눈과 팔은 아무 생각없이 그렸을때 바깥이나 접촉에 대한 소통구간을 의미할수도 있긴 한디, 그런 눈과 팔에 힘이 들간 거시 욕구를 나타내는 경향을 나타낸다고 유추해 볼 수도 있제."

쿄코가 다시 자신의 그림을 보며 신기하게 바라보고 마미조도 초연한 모습로 말하자,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누에와 더불어 이치린과 후토가 무척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받아적기 급급한 아야와 그러한 모습을 재밌게 보는 코가사, 감탄하는 뱌쿠렌과 함께 문 밖의 토지코는 귀를 쫑긋 세우며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주요깊게 들었고 모미지는 살짝 무덤덤하게 남들 신경이 팔린 사이에 필름 몇 개를 바꿔치기했다.

"어, 음, 비슷한거 같기도 한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리고 싶은데로 그렸어요."

"네, 그렇군요. 한번 마미조 씨 말씀을 잘 생각해보도록 해봐요. 다음은 코가사 씨."

코가사가 신이나서 그림을 펼쳐보이자, 다들 난색을 표했다.

"야, 텐구 저건 넘어가자." 무라사가 기겁하며 말하자 아야는 고개를 저었다.

"해괴하군." 후토도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이며 허리를 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른 소개해 주세요. 코가사씨."

"보나마나 또 저걸로 놀래키려 했겠지. 뭐." 나즈린의 흘린 말에 주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가 말하기 전에는 그런 말은 삼가도록 하는게 귀의한 자의 품격이랍니다. 나즈린."

뱌쿠렌이 제지하면서 이야기 하란듯이 손을 펼쳐 보이자, 코가사가 우산을 들며 말했다.

"나를 그려봤어!"

누에가 슬쩍 바라보고는 당황스러운지 눈을 몇번 깜빡이며 그림 속 우산과 요괴의 얼굴을 각각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어느 쪽?"

"둘 다! 당연히 둘 다 나잖아."

"색이 참 화려하네."

어투가 끝자락에 올라간 데다가 영혼없는 웃음을 짓는 무라사에게 코가사가 외쳤다.

"내 놀라운 그림감각을 보라고!"

"어, 혹시 그림속에 누군가를 놀래켜주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되신 건가요."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내가 끌리는대로 그렸을 뿐이야!"

코가사가 아야의 말에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그래도 머리색은 예쁘게 잘 표현했군요."

모미지가 아야의 바람에 너풀거리는 앞머리를 정돈하며 말하자 코가사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치? 그치? 이 반가사[각주:1]그리는 것 만큼이나 엄청 신경 썼었어."

"머리카락 한올까지 세세하게 그릴만큼 자신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군요."

뱌쿠렌이 그림을 주요깊게 바라보며 말을 하자, 코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찰나동안 서로간의 아무말이 없자, 무라사가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음, 코가사는 이걸로 된 건가? 이번에는 내가 하겠어."

무라사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피고 자신의 그림을 펼쳐보였다.

"기자는 얼른 얼른 찍어서 기록으로 남기라구!"

"네! 헤헤."

무라사의 너스레에 아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완전 선장님 그대로네."

"그럼!"

쿄코가 유심히 바라보며 말하자 무라사가 턱을 치켜들며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림일 뿐이지만 보기만 해도 자신감이 느껴져."

나즈린이 다우징 봉에 꼬리를 걸치며 말하자 무라사가 옆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미소로 화답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물이 흐르는 강가를 배경으로 잡은 건 최고라고 생각해."

부는 바람에 소맷자락과 단발머리를 날리던 누에가 창끝으로 머리를 빗으며 말하자 무라사가 옆구리에 손을 올리며 침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꼭 여름이라서 그렸던 건 아냐. 하지만 칭찬은 고마워."

"선장이 그림을 열심히 그리느라 수고가 많았으이, 누가 봐도 선장답게 뭇지고 자부심이 느껴진당께."

"열심히 그렸던 걸 알아줘서 고마워요, 마미조 씨."

"미나미츠야 성련선을 이끈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선장이잖아요."

"후후훗, 뱌쿠렌도 덕담 고마워요. 그릴 때는 진짜 기분 좋게 그렸거든,"

어깨를 우쓱이며 귀에 입꼬리가 걸린 듯 웃는 무라사에게 아야가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고 코코로는 조용히 그런 모습을 주시했다.   

"그럼 다음은 저입니다!"

아야가 사진기를 든 모습과 함께 먹으로 자신의 흑발과 이목구비를 표현한 그림을 보이자, 모미지가 피식 비웃었다.

"야! 왜 웃고 난리야! 기분 잡치게!"

"으후히히히힛, 사진만 찍는 이유가 그거였네. 푸히히낄낄."

아야가 자신의 그림을 다시 보고 모미지를 째려보자, 어이없는 표정의 가면을 꺼내든 코코로의 옆에서 열심히 낄낄거렸다.

"치사하게 그림가지고 뭐라 그러는 거야? 참 그릇도 작네." 아야도 비웃으며 대응했다.

"뭐래, 지금 웃는건 말 그대로 감상평이거든. 크히힛, 대충그려놔서 웃음밖에 안나오네.크크킄."

"뭐! 대충 좋아하시네!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그림 그리거든! 에휴, 저 소통도 안 되는 멍멍이는 무시하고. 저는 제 직업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했답니다."

"아, 파파라치 말하는 거지?"

누에의 말에 주위에 있던 마미조, 코가사와 이치린, 후토, 나즈린이 웃자, 언짢은 표정의 아야가 고개를 돌리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리는 뱌쿠렌과 눈이 마주쳤다.

"어흡, 죄송합니다. 계속 캐주세욥흐흣."

"계속 해주세요오옵!!!!!!"

 어떻게든 체통을 지키려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으로 웃는 뱌쿠렌을 멍하니 보던 아야가 쿄코의 메아리에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자, 다들 어떻게 보시나요?"

"내는 전체적으로 직업 정신이 보이지마는 사진기랑 사진기를 든 손가락이 자세히 묘사된 거이 세심한거에도 신경쓰는 강박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여진당께."

마미조가 아야가 일으키는 바람을 맞으며 모자를 정돈하면서 말하자 아야가 웃으면서 귓가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군요."

"글고 말여, 선도 강하고 그림이 크고 빨리 그리려고 했는지 종이 왼쪽에 그려져있는게 독단적이면서도 행동이 성급할 정도로도 빠른데다가 전체적인 느낌이 나에게는 비춰지으이."

"오, 어느정도는 저돌적인 성격의 저랑 비슷하네요."

"마미조 씨 말처럼 이 까마귀가 민폐짓에 안 들쑤시고 다니는 곳이 없으니까요."

모미지가 물 들어올때 노 젓듯, 비꼬며 디스를 일삼자 머리를 만지던 아야가 인상을 팍 쓰고는 째려보며 카메라를 앉아있는 그녀의 무릎에 툭하고 던졌다.

"기회주의자 멍멍이는 그거 필름이나 갈아!"

"취재겸 사진을 찍겠다는 의지가 느껴져요!"

쿄코가 외치자 아야가 언제 화냈냐는 듯이 고마워하며 웃어 주었다.

"아야 씨야 워낙 어떤 의미로 유명하니 욕망에 찌든 그림도 되겠네요. 푸훗."

이치린이 웃으며 말하자 무라사와 누에도 피식 웃었다.

"네에에, 잘 들었습니다."

"다음은 내가 할래."

빨리 정리하려는 아야와 타이밍이 맞은 코코로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힘껏 그림을 펼쳐보였다.

"와아, 많이도 세세하게 그렸네."

"어쩜, 예뻐."

"하나하나 앙증맞게 그렸어요."

코가사처럼 주로 쓰는 가면들과 평소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유심히 바라본 요괴들이 저마다 소리를 주고받았다.

"코코로 양의 세심한 솜씨에 감탄했어요. 무척 섬세하네요."

뱌쿠렌이 합장을 하며 웃자 코코로가 아무표정 없이 엄지를 치켜드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럼 다른 요괴들이 다 했던 것처럼 그림을 소개해줄래?"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속 가면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이거는 내가 즐거울 때 쓰는 가면, 저건 내가 슬플 때 쓰는 가면, 요건 내가 싸우고 싶을 때 쓰는 가면이야. 딱 봐도 놀란 이 가면은 내가 놀랐을 때 쓰는."

"원망쓰러우어워어어억!!"

생각지도 못한 큰 소음에 코코로가 화들짝 놀라며 그림과 비슷한 가면을 꺼내들자 코가사가 웃으며 말했다.

"와, 대성공! 진짜 놀라면 저 가면이구나."

신기한듯이 바라보는 코가사에게 주위에서 병찐 시선이 모아지자 기겁한 무라사가 눈치없는 코가사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말했다.

"야, 그렇다고 굳이 왜 놀래켜."

"헤헷, 궁금했거든. 미안해!"

"얘는 하다 안 되서 생뚱맞게 놀래키네."

"생뚱맞게에!!!"

나즈린이 혀를 차며 말하고 그것을 따라하는 쿄코 사이에서 누에가 흥미롭게 바라보았고 코코로가 등을 두드려주는 아야와 괜찮냐며 어께와 손을 잡아주는 모미지 사이에서 놀란 마음을 추스리며 말했다.

"응, 놀라면 이 가면을 써. 평소에 가면을 들고 다니지만 그렇게 많이 쓰는 편은 아니야. 그리고 지금 이 모습까지 그림속 가면들은 다 네 얼굴이자 '나'로서의 상징이야."

"아하, 그러면 그리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코코로 양." 아야가 셔터를 누르며 말했다.

"츠쿠모가미로서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어. 나는 그저 도구인 가면 자체로서의 나와 이 요괴의 모습처럼 요괴로서의 나 말야. 근데 진짜 저 누에 요괴 말대로 다 '나'니까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

"아항, 그래서 다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겠군요!"

아야의 말에 코코로가 고개를 끄덕였고 마미조는 그것을 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좋은 말씀들을 들으면서 수행을 통해 더욱 정신적 역량이 깊어지고 성장해 가는 것 같아 대견스럽네요. 특히 그림에서 그런 점이 핀 꽃에서 나오는 향기와 같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과 동시에 배움에 길에서 기분 좋아 보이는게 더 의미 있어 보인답니다. 나무삼[각주:2]."

뱌쿠렌의 말에 노인 가면을 꺼내며 즐거운 듯한 몸짓을 보이며 화답한 코코로가 귀를 쫑긋 세우며 다른 요괴들을 살펴보았다.

"그럼 멘레이키는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 건가?"

후토가 물어보자 코코로는 한쪽 볼을 만지면서 생각해보고 말했다.

"음. 글쎄.. 더 멋지게 그릴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랑 내가 나를 표현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랑 자신감이 교차한다고 해야되나. 뭐, 마음에 들어!"

코코로가 주먹 쥔 손을 흔들면서 웃는 얼굴의 가면을 꺼내들며 좋아하자, 턱을 괸 후토도 빙긋 웃어주었다.

"자, 이번엔 모미지가 해봐야죠. 야, 꺼내봐."

아야가 카메라로 모미지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하자 모미지가 아야를 흘겨보며 마지못해 바람에 흩날리는 그림을 꺼냈다.

"이건 내 그림이고, 보다시비 이건 접니다."

모미지가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하며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하자 주위에서 그림을 향해 시선이 몰렸다.

"네, 알아요!" 쿄코가 손을 들며 응답했다.

"꽤 선이 날카롭고 표정이 결연한게 기개있개 그렸네요."

이치린이 바람에 날리는 옆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하자 마미조도 안경에 붙은 머리카락을 입김으로 날리며 말했다.

"무장(武將)다운 그림이로구만."

"와! 엄청 잘 그렸네. 칼을."

무라사가 국자로 그림속의 모미지가 든 검을 가리키자 모미지가 바로 얼굴을 찡그렸고, 무라사는 키득키득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크크크크"

"눈이 엄청 무섭게 그려졌어."

코코로가 가면을 빙빙 돌리며 묻자 모미지가 표정을 풀며 말했다.

"나에겐 눈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서. 적이 어디있든 포착할 수 있으니까."

"와! 정말 어디있든 볼 수 있는거야?!" 코가사가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그럼, 괜히 천리안이 아니란다, 물론 내가 뒤통수에 눈이 달려있지 않으니 뒤는 아니지만.하핫."

슬쩍 기분 좋아진 모미지가 자랑하며 으스대자, 아야가 같이 웃는데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간 채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그럼 모미지 씨는 그림을 그리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그러자 모미지가 붓을 단도처럼 파지하며 말했다.

"선공후사(先公後私[각주:3]), 입산필척(入山必斥[각주:4])!"

아야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고 질린다는 목소리로 흐느꼈다.

"어휴, 얜 직업병 여기서도 나타내네."

"너도 직업병 심각하거든?" 무라사가 시크하게 툭 던지자 걸터앉은 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 카라카사 얘는 왜 널부러져 있는겐가?"

후토가 주저앉아 얼굴을 감싼 코가사를 가리키며 물어보자 나즈린이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야, 왜 그래?"

"흑흑, 아까 놀랬더니 배가 고파졌어.."

정말 한심한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는 나즈린과 함께 쳐다보던 모두가 웃음이 터지자. 코가사가 창피한지 겨우 일어나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들지 못하며 흥얼거렸다.

"생각보다 잘 놀라시네요. 남을 놀래키려면 좀 힘들겠어요."

아야가 그림을 들고있는 모미지를 대신해 카메라의 필름을 직접 갈며 묻자, 다가와서 괜찮다며 등을 토닥여주는 뱌쿠렌의 무릎위에 앉은 코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누에 씨가 정체불명의 요괴라 남들 잘 놀래키시는게 특기잖아요. 그럼 코가사 씨에게 어떻게 놀라게하는지 가르쳐 주시는 건 어때요?"

"천젠데?!" 이치린이 감탄하며 외쳤다.

그 말에 거의 모두가 수긍하며 시선이 누에에게로 몰리자, 비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코가사의 눈빛마져 시야에 들어온 누에가 난처한 표정으로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건 내 고유 능력이라고. 말하자면 선천적인거라 가르칠수 있는 영역이 아닌걸."

"그래도 어떻게 놀라게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는 알려줄 수 있을 텐데요."

모미지도 안타까운지 코가사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같이 누에를 쳐다보자, 누에가 난처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쪽 날개의 갈고리 부분을 턱에 괴면서 다른 날개로는 흩날리는 머리를 빗으며 말했다.

"곤란한데. 나는 그냥 내 능력을 쓰면 정말 알아서 놀라버린단 말야. 얘처럼 힘들게 뭘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

"그라제, 백랑텐구 처자는 멀리있는 것을 볼 때 어떤 준비를 하제?"

"어, 그냥 천리안으로 보면 다 보입니다."

"누에도 마찬가지랑께. 설명할 수 없는 재능 같은 것이라 노력하는 코가사에게는 방법은 알지만 할수는 없는 그림에 떡같은 것이제. 쉽게 놀래키는 능력을 흠모하는 코가사도 이런 내 친구가 부럽겠지마는 사정을 이해해주었으면 하이."

친구인 마미조가 누에를 감싸며 말하자 주위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누에도 고마운지 미소를 지으면서 슬며시 바닥에 대고 있는 마미조의 손을 잡았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코가사 씨가 놀래키는게 되지 않으니 누에 씨가 가진 정체불명의 씨앗을 빌려주시면 코가사씨도 씨앗의 영향으로 이상한 것으로 보여 남들이 쉽게 놀라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필름을 다 간 아야가 웃으면서 시범삼아 누에를 향해 사진 몇번을 찍어보며 렌즈를 보고 묻자 후토나 뱌쿠렌도 손뼉을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놀래줄때만 빌려주는 것으로 배려해준다면 코가사 씨도 속상해하고 우울할 일이 없을 거예요. 누에도 조그만 자비을 베풀는 것이 우리 절에서 아름다운 선행이 될 겁니다."

"텐구 말이 합리적이고 일리가 있네. 모름지기 도교에서 세상 모든일은 허망한 것이니 가진 자는 미련없이 더 모자란 자에게 풀어야 하는 법! 베풀수 있음에도 베풀지 않는 것은 탐욕이니 행하여야 하네."

"에이, 예전에 정체불명의 씨앗 한번 썼다가 그 사달이 났잖아. 얘한테 도움은 되겠지만 정말 아무에게나 정체불명의 대상으로 보여주니까 이변으로 오해 받아 신사의 무녀들을 자극할게 뻔해."

"헤에?"

"에이, 아쉬운데."

"그래도 한 두번 정도는 도와줘도 되잖아."

이치린과 나즈린, 무라사나 쿄코, 후토등이 손을 비비면서 한숨을 길게 쉬며 울먹이는 코가사를 슬쩍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실망하거나 '설마 그러겠냐'는 표정으로 누에를 대하자 상황이 민망해진 누에를 대신해 마미조가 누에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과민반응으로 사건이 크게 나먼 코가사 안전이 위험해 지니께 누에도 배려하는 것이제. 그래도 코가사가 섭섭치 않케 2주에 한번이나 한달에 한번 정도는 괜찮을 듯 싶구마이.누에도 그 정도는 해줄수 있을 것잉"께."

누에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자 마미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야가 미소를 지으며 바로 대답했다.

"아, 그거라면 상관 없어요. 그런 걱정하시지 않게 허락하는 즉시 제가 신사들로 튀어가서 잘 이야기 해놓고 5분안에 돌아올테니까요. 바로 빌려주셔도 될 수 있도록 오해사지 않도록 정보의 요지경인 제 신문이 역할을 다 하겠습니다!"

"오오, 대단해!"

"이제야 이 텐구가 제대로 기자 노릇을 하네."

"참, 이렇게 신경써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야 씨."

뱌쿠렌이 코가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인자한 미소로 누에에게 고개를 숙이자 코가사도 안타까운 표정에서 밝아지며 눈물이 고인 눈으로 감탄의 표정으로 답했다.

"아, 뭐.. 그렇게까지 해준다면 뭐. 할 수 없이 빌려줘야지. 빌려주는 거니까 아껴줘야 돼."

누에가 분위기상 어쩌지 못하기도 하고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말하자. 코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다른 손으로 누에의 등을 토닥여준 마미조가 안경너머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야에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카라스텐구 자네 누에에 대해 꽤 자세히 아는 것 같구마이, 능력도, 가진 씨앗도 알고."

"아, 그거요? 당연하죠. '하늘을 나는 배'와 사나에씨의 'UFO 사건'을 취재한게 저잖아요. 기자인데 사건의 내막들을 알고 있는 건 필수죠. 누에 씨 능력으로 모자이크된 사진이 되긴하지만 처음 누에 씨의 사진도 사나에 씨에게 빌려준 제 카메라가 담았고 지금도 담고 있는게 저랍니다!"

"그런가, 얘에게 꽤 관심이 많은거같당께." 

"헤, 정확히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거죠. 제 직업병이거든요."

아야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는 마미조에게 보란듯이 주먹진 오른 손에서 집게 손가락을 펴서 살랑살랑 흔들며 미소지었다.

"와! 고마워!!! 누에!! 정말 고마워!!!"

"고마워!!!!"

감사함에 어쩔줄 몰라하는 코가사의 환호성을 쿄코가 따라하며 귓가 부분이 포닥포닥 흔들릴 정도로 방방뛰자, 다들 웃으면서 모미지의 그림으로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잘 됐구나. 고민거리가 풀렸네."

"응! 모미지도 고마워. 모미지 시간 뺏어서 미안!" 코가사가 우산을 흔들며 고개를 숙였다.

"네 고민이 해결되었으니 시간을 더 유익하게 썼는걸, 계속 하겠습니다."

코코로가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모미지가 그림을 들어보이자 나즈린이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그림에서 가장 잘 안그려지던 부분이 어디야?"

"아, 그건 구도가 잘 안 그려졌습니다. 여기 오른쪽에 산이 있는 것으로 그렸는데 왼쪽을 보는 것을 잘 그려졌지만 앞쪽이나 오른쪽을 보는 것은 어색했습니다."

뱌쿠렌과 마미조가 '흠.'하고 대답하자 쿄코가 입을 열었다.

"붓에 엄청 힘을 주나봐요?"

"그건 워낙 검을 다루다보니."

"직업병이네. 직업병." 무라사가 너스레를 떨었다.

피식 웃는 다른 요괴들 사이에서 아야가 입을 막고 웃자 발끈한 모미지가 귀를 빳빳이 세우고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야! 다음 너 해봐! 너!"

"키킼,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단다."

아야가 터벅터벅 걸어가서 그림을 펼치자, 먹과 여백으로 자신의 검은 단발머리와 옷을 표현하고 콩과 식물인 소목의 붉은 색으로 쓴 토킨을 모미지의 그림처럼 표현하며 살짝 크게 그린 눈과 강조된 귀, 웃는 미소와 한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손에는 주먹을 쥔 채로 문화첩과 엽단선을 찬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미화 남발하고 있네."

"어머, 내 모습이거든!"

"자자, 절에서 싸움은 안 됩니다. 진정들 하시고 아야 씨는 설명해주세요."

모미지와 아야가 옥신각신 싸우자, 뱌쿠렌이 중재를 통해 모미지가 헛기침을 하며 물러나고 마미조와 누에, 이치린과 나즈린이 유심히 보는 사이 아야가 말했다.

"보다시피 저널리스트인 저의 모습을 표현했답니다."

그러자 유심히 바라보던 나즈린이 손으로 그림을 가리켰다.

"손이 주먹을 쥐었잖아?"

"허리춤에 손을 댈 때는 주먹을 쥐거든요."

"참나, 공격성이겄지."

"어이, 거기 멍멍이는 그만하셔!"

"빨간 모자 쓴 애들은 입도 참 폭력적이구만." 혀를 끌끌 차던 후토가 팔짱을 끼며 핀잔을 주었다.

'절간에 불 지르려던 게 더 폭력적이지'라는 말이 나올뻔한 모미지가 겨우 참고 상황을 지켜보자, 주위에서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눈을 본래보다 더 크게 그리셨네요. 희망사항인가요?" 이치린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물었다.

"네, 눈은 클수록 예쁘잖아요. 그리고 더 잘 보이고요."

"모미지처럼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니, 네게 모미지 천리안까지 쥐어줬다간 환상향에 사생활이란 존재하지 않게될걸."

무라사의 말에 주위가 웃음으로 뒤집어지자, 아야가 얼굴이 붉어져 그림을 감싸며 외쳤다.

"그런거 아니거든요!"

"응, 맞어." 무라사도 심드렁하게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칼같이 답했다.

배를잡고 낄낄 웃던 모미지가 허리를 피며 산쪽 방향으로 고개를 들자, 웃던 누에가 눈치껏 모미지에게 다가갔다.

"킥킼, 너무 신나게 웃는 거 아냐?"

"어흌 어흐킄 아오 크크킄크킄."

"자자 이쪽보고. 저 요괴 제법 웃긴 것 같아."

"아우, 그러게 말입니다." 모미지가 누에의 바람대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모미지가 시선을 돌린걸 확인한 누에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웃던 나즈린과 이치린도 눈가가 예민해지며 모미지를 슬며시 바라보자, 자리에 앉은 누에의 어깨에 마미조가 수고했다는 듯이 토닥여주었다.

"그럼 어느부분이 그리기 편했어?"

"제 얼굴이요."

"그리기 불편했던 부분은?"

"카메라요. 더 정교하게 그릴 수 있었는데 번지는 붓의 한계로 무리였어요."

"그럼 그리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뱌쿠렌이 묻자 아야가 여전히 미소로 목가의 리본을 정돈하며 대답했다.

"제 자신을 그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응? 그게 다야?"

"네."

누에가 의아해하며 묻자 , 아야도 누에의 질문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보면 참 이번에는 뭘 찍어대서 기사를 만들까라는 생각이 든다네."

후토가 턱을 괴며 말하자 아야가 민망해져서 헛웃음을 지었다.

"어? 나도!!" 이치린이 반색하며 후토를 향해 외쳤다.

"오, 이교도도 통하는 구석이 있긴 하구만!"

후토와 이치린이 서로 위아더월드를 형성하며 하이파이브를 하자, 입에서 헛웃음만 나오는 아야와는 별개로 거의 다수가 공감의 장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뻔뻔하게도 자신을 너무 예쁘게 그렸어요. 반칙입니다."

모미지가 단호하게 외치자 아야가 여전히 웃으며 주먹을 쥐어보였다.

"저것 보세요. 그림에 나온 주먹이 저런 의미입니다!"

모미지의 회심의 공격에 아야가 깊은 한숨을 쉬며 손을 풀고는 박수를 한번 치며 말했다.

"자, 자.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줄 알겠어요. 여기까지 하고 코코로양은 지금까지 정신없이 진행했는데 느낌이 어때요?"

"꽤 재밌는 경험이었어." 코코로가 즐거울때 쓰는 방화범 가면을 꺼내며 말했다.

"다들 각자 그림만으로 어떤 특징과 성격을 가졌는지 알 것 같아. 나 역시도."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종이에 무언가를 쓱쓱 그리고 있는 것을 본 모미지가 물었다.

"뭘 그리고 있니?"

"응, 모미지 언니 예쁘게 그리려고."

모미지가 뜻밖의 그 말에 엄마미소를 짓자, 아야가 비웃으며 말했다.

"코코로양, 그 언니는 꼬리가 가장 예쁘답니다아~."

주위에서 그 말에 빵터져서 낄낄거리자 얼굴이 붉어진 모미지가 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아야를 노려보았다.

"죽을래? 어디가 가장 예쁘다고?!"

"어머, 그럼 얼굴이 가장 자신있나봐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가 아니라. 자신있는건 맞지만. 하여튼.."

머리를 긁적이며 깊은 빡침을 담은 한숨을 몰아시는 모미지에게 키득키득 웃던 아야가 말했다.

"어휴 잘 좀 생각해보지. 바보."

"야, 똑똑히 봐봐! 넌 반드시 내가 작살내다 못해 아작낼거야!!"

"아, 네에. 네에. 말로는 누가 못 박살내나. 저도 말로는 레이무고 마리사고 유카리고 수천번은 이겼겠네."

그러자 모미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씩씩 거리며 상기된 채로 외쳤다.

"그럼 내가 그럴 필요없이 경제적으로 한번에 등뼈부터 박살내주지."

"호, 내 손도 못잡는 굼뱅이가? 정말?"

"자자! 적당이들 좀 하세요! 서로 짓굿게 굴지 말고 코코로양의 그림부터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도록 합시다."

뱌쿠렌의 중재에 자리에 앉은 모미지와 아야가 빡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표정관리에 들어가자, 나즈린이 눈치껏 그런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을 굴렸다.

"아무튼, 그려줘서 고마워."
"뭘, 가까이 있어서 언니가 잘 보여 그린 거니까 부담스러워 하지마."

"흐흠, 그래. 고맙다." 모미지가 방금 전까지 상기되어서 그런지 쉽게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모미지 양은 어땠었나요?" 뱌쿠렌이 묻자 모미지가 말했다.

"저 까마귀만 빼면 정말 즐거웠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이네. 저도 저 멍멍이만 빼면 뜻깊은 자리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즐거웠답니다."

아야와 모미지가 서로 으르렁대자, 코코로가 무표정으로 한숨을 입김불듯 내뿜으며 둘의 소매를 각자 다른 손으로 잡아 끌었다.

"이왕 이렇게 시간을 보냈응께 코로로헌티 유익한 시간이 됬쓰면 좋겠당께."

담뱃대를 만지며 인자하게 미소짓는 마미조가 두손을 무릎에 포개고 고개를 끄덕이는 누에와 함께 앉아서 말하자,  코코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림은 오랜만에 그렸는데 미술경연대회가 아니라 그린 의미와 감정을 본다는게 참신하고 그리는데 부담이 없어서 좋았어요. 하지만 나에대해서 노출된다는 점에서 부담은 좀 있었어요."

이치린이 대답하자 코가사나 누에, 마미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야 당연히 부담이 되실거예요. 그래서 우리끼리만 아는거구요. 그런건 기사에 싣지 않을거니까 걱정마세요."

아야가 비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자신의 심장에 두드리며 말하자, 다들 믿지않는 눈으로 '에?'라는 한 단어로 답했다.

"아니, 이 요괴들이! 붕붕마루 신문은 이제 그런 사소하고 사적인 걸 담을만한 사적인 신문이 더이상 아니랍니다."

"어련하실까." 무라사가 팔짱을 끼며 흘겨보면서 말했다.

"진짜라니까요? 중요한스캔들은 담지만 가십거리는 가십거리일뿐이예요. 이 자리는 비밀을 보장하는 자리니까요. 필요없는 필름은 바로 폐기처분한답니다."

모미지가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숨긴 필름을 만지며 아야를 바라보았고, 후토와 마미조, 누에, 쿄코와 코코로도 유심히 아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저도 이 자리가 코코로양이 많이 배우고 사회성을 기르면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자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뿌듯하답니다. 나무삼."

"각자 미술표현 방법이 있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네. 뭐 어떻게든 감정에 대해 배우는 멘레이키에게 감정적인 접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뱌쿠렌과 후토가 말을 마치자 따라 외칠려고 입이 근질근질한 쿄코가 외쳤다.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에에!!!"

귀를 막은 코로로가 표정없이 놀란 가면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쿄코가 만족스러운지 방방뛰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도 예쁜 그림들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코코로 뿐만 아니라 저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어 감사드려요!"

감사의 절을하는 코가사에게 누에가 슬쩍 얼굴을 붉히며 다른 쪽을 쳐다보고 마미조가 흐뭇한 표정으로 '껄껄'웃으며 팔꿈치로 친구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웃어주자. 아야도 흐뭇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나도 주인이 없긴 했지만 재밌었던거 같아."

"응, 고마워."

생각할 것이 많아진 나즈린이 살짝 눈가를 찌뿌리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지만 코코로의 반응에 주위가 쏠려서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나도 이런건 처음이라 재밌었어."  무라사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손을 들며 대답했다.

"오늘 이렇게 서로가 주제를 정하고 그려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할게요. 아야 씨와 상의하여 잡은 주제인 만큼, 그림은 눈과 손을 통해 자신의 의사나 감정의 이미지인 심상(心象)을 표현하는 시각매체이기에 미세한 손의 떨림이나 그린 물체에 따라 자신이 바라거나 생각하는, 또는 자신의 그대로를 투사(投射)하는데 효과적이랍니다. 특히 자기가 자신에 대해 그리기때문에 자아에 대해 이해하기 쉽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통해 상호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되고 멘레이키인 코코로 양이 감정에 대해 다수의 의견과 표현을 듣고 이해하고 바라보면서 좋은 경험이자 학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어요."

어깨를 으쓱이며 표정이 밝아진 아야가 인자하게 웃으며 차분히 설명하는 뱌쿠렌에게 플래시도 터트리며 사진을 찍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몇몇과 함께 뱌쿠렌도 고개를 한번 숙이며 화답하고는 표정없이 미소짓는 노인가면으로 자신을보며 여러번 박수를 치는 코코로를 향해 미소로 답했다.

"자, 그럼 다들 붓이나 물감같은 미술도구 정리하고 마치도록 합시다. 수고많았습니다."

뱌쿠렌의 합장과 함께 정리를 위해 손길이 분주해지고 아야도 재빠르게 움직이자, 문이 벌컥 열리며 토지코가 뛰어온 것처럼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헉헉, 후토! 내가 너무 일찍온거 아니지? 끝났어?"

"맞네, 토지코. 지금 막 끝났는데 타이밍 좋게 왔군그래!"

"헉,헉 아이고 숨차. 데리려 오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녔잖아. 딱 맞춰왔나보네."

자리에 드러누워 숨을 고르던 토지코가 겨우 진정된 척하면서 코코로를 슬쩍보며 말했다.

"멘레이키도 그대로 있었네. 어흐흡, 흐업, 나 숨좀 커컥, 고르고 돌아가자. 혹시 물 없어?"

"그러도록 하게나!" 후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물감을 병에 담으면서 말했다.

쿄코가 귀를 쫑긋 거리며 쫄랑쫄랑 걸어서 구석의 물병을 건네주자, 받아서 과장된 몸짓으로 벌컥벌컥 들이킨 토지코가 물을 잘못삼켜 코로 역류하는 바람에 기침을 남발했다.

"쿠에엑! 쾌액! 우웨켁!" 

"잘한다. 잘해. 도교것들." 이치린이 혀를 차며 후토와 함께 토지코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날도 싹싹 더운데 뭘 그리 급하게 뛰어왔는가. 토지코여."

"쿠에켘! 아으, 날아왔거드으흐흐크에퀘에!"

"쯧쯔 코가 엄첨 매울 것이니 누가 안쓰는 수건좀 가져다주게."

"잠깐만, 지금 다 치우고 있는 중이라. 카라스텐구가 제일 빠르니까 얼른 건네드리는 게 좋겠네."

무라사가 말함과 동시에 쏜살같이 아야가 토지코에게 수건을 가져다주자, 무라사가 슬며시 웃었다.

"참, 자존심이라는 것 덕분에 다루기 편하다니까."

코를 킁하고 푸는 토지코 사이로 쪽과 치자를 치우던 마미조가 살짝 내려간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고는 아야를 유심히 쳐다보았고, 물감이 묻은 바닥을 쥐들과 같이 닦던 나즈린과 누에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이, 열린 문으로 유유히 들어온 운잔이 얼굴을 비추면서 뭘해야할지 몰라 지켜만보며 볼을 긁자, 이치린이 일부러 일어서서 외쳤다.

"운잔! 뭘 하다가 늦은거야!!"

어쩔줄 몰라하는 운잔이 미안한 표정을 짓자, 이치린이 아야와 모미지 눈치를 슬쩍 보고는 발끈하며 말했다.

"수업 다 끝났잖아. 찾으러 가려다가 수업 때문에 못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쏘다니고 다닐거야!"

나즈린과 마미조, 누에가 눈치를 채고 속으로 피식 웃는 사이, 주변에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지켜보기만 하거나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바닥에 묻은 물감을 닦거나 그림을 전시하게 붙이는 등, 주위 정리에 들어갔다.

"와, 이치린 그림 진짜 잘 그렸어."

"잘 그렸어어!!!"

"봐도 예쁘게 잘 표현했단 말야."

코가사와 무라사, 옆에 낀 쿄코가 서로 한마디씩 하며 감탄하자 의기양양해진 이치린이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어깨를 활짝 폈다.

"내 그림이랑 너무 차이난단 말야. 이렇게 예쁘게 표현하는 애들 부러워."

"그러게 말야. 네건 솔직히 꿈에 나올까 무섭지만. 크크킄."

"꿈에 나올까 무섭지마아아아안!!!!!!"

"아잇! 뭐야!!"

낄낄 웃는 무라사와 토라진 코가사 사이로 아야나 모미지, 코코로가 후토의 그림을 보며 사진을 찍거나 감탄하는등, 그림감상이 무르익자, 후토와 이치린은 서로를 슬쩍 곁눈질로 쳐다보고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동시에 고개를 돌리면서 팔짱을 끼며 자리를 피했다.

"참, 주지승님, 알려드릴게 있어요."

주변 요괴들에게 할일을 정해주건 뱌쿠렌이 아야를 쳐다보자, 아야가 모미지 근처에 있던 배낭을 열어서 자신의 붕붕마루 신문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산에서 이틀 뒤에 행사를 하거든요."

"어디 보죠. '요괴의 산 하계제(夏期祭)가 26일 화요일에 개막, 산천과 초목의 복구와 자연의 소중함을 축하하는 이 자리에서 주민과 외부손님들을 산에 초대하여 매서운 여름의 무더위를 이겨내는 행사를 개최한다. 또한 대텐구령으로 경계태세를 일시 해제하고 입산심사를 완화하여 산의 정책적 방향인 '부분적 개방주의'를 축제기간동안 누그러트릴 전망이다.'라.. 산에서 축제를 여나보죠?"

"네. 아무래도 저희가 1년 전 침략으로 산의 자연이 박살난걸 주위에서 도와주셔서 복구했으니까 그 감사함에 보답하고자 이렇게 대텐구님이 축제를 여시기로 했거든요."  

"좋은 취지네요. 보금자리를 다시 찾은 그런 자리는 다들 방문해야죠. 나무삼."

신문을 접으며 눈웃음을 지은 뱌쿠렌에게 아야가 감사의 표시로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빙긋 웃었고 모미지는 경비 및 입산심사의 최고 담당자인 자신이 이러한 산의 소식을 아야의 입에서 먼저 듣는 것도 당황스럽고 자신이 뻔히 산 밖에 있는데 외지요괴를 들이는 자리에서 경계태세를 완화한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눈을 꿈뻑꿈뻑하며 입을 벌리고 아야만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네, 그런데 오늘이 일요일인데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에 행사를 하네요?"

"아, 대텐구님이 주말에는 모두 쉬어야 한다고 주장해서요. 평일인 월요일에 행사준비를 하자는 본부가 있었답니다."

두 손을 배에 모으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여 빙그레 웃는 아야의 말에 모미지도 '그랬었나?'라고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막고는 부하로서 상관인 대텐구의 지시와 성품에 탐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손으로 복구한 산의 모습이 참 기대되네요. 이틀 뒤에 다함께 보도록 합시다."

뱌쿠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즈린과 턱을 괴는 이치린, 심각해진 표정으로 날개의 화살표같은 부분으로 머리를 빗는 누에와 팔짱을 끼며 빛이 반사된 안경너머 매서운 눈매로 바라보는 마미조를 지나 누에가 구경하라고 건네준 정체불명의 씨앗을 애완동물 다루듯 신기해하는 코가사와 이 날씨에 산을 타야하는 거냐며 투덜거리는 무라사 사이에 있던 탁자에 붕붕마루 신문을 구석에 내려놓으며 놀러간다며 신나서 박수를 치는 코코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몇 그림들은 벽에 붙여놓거나 다른 요괴들이 자신의 그림을 가져갔고, 자신의 그림을 가져가기로 한 코코로가 물감이 다 마르자, 돌돌 말아서 후토, 토지코와 같이 돌아가고 빗자루 질을 하는 문지기 쿄코등 절 요괴들의 배웅과 함께 아야와 모미지도 인사와 함께 돌아갔으나 그녀들은 도착할 때까지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모미지가 던진 배낭을 아야가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로 뺏듯이 잡은 뒤, 가라는 듯이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서로 사라지듯 제 갈길로 돌아갔다.



"말한 것처럼 누구나 내려놓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나 말하는 마땅한 손해라면 손해보며 사세요. 번뇌중의 탐욕은 내 것 뿐만 아니라 남의 것도 챙기는 것, 나만의 행복을 가진자는 남의 슬픔도 안고 가게 되니 그 업보가 깊어지는 법입니다. 관계에서 관심이든 사랑이든 내가 얻고 싶은 몫을 챙기려고 하면 생기는 실망과 상처로 백년가약이 사상누각이 되는 것이죠. 번뇌를 내려놓고 불심을 통해 내 몫을 털면서 남에게 대승적으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의지하고 다가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석가가 말하기를 베풀 수 있는 7가지로 첫째, 남의 일을 도와주는 신시(身施), 둘째, 마음의 벽을 허물고 따뜻하게 정을 주며 대하는 심시(心施), 셋째. 다정한 눈길로 상대를 보듬어주는 안시(眼施), 넷째, 밝은 미소로 마주하고 정겹게 상대방에게 화답하는 화안시(和顔施), 다섯째로 언사시(言辭施)라고 하여 친절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것이며 여섯째로는 남에게 자리를 내어서 양보하는 상좌시(床座施), 마지막 일곱째로 남이 속으로 필요한 것을 간파하여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찰시(察施)가 있으며 그중 언사시와 화안시가 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손 쉽게 남에게 베풀고 서로 쉽게 좋은 모습을 지낼 수 있습니다. 자금의 손해가 아니라 웃어주고 상대를 생각해주는 시간의 '손해'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손해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절에서는 손해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욕심을 내려놓고 살도록 합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쇼가 말을 마치고 목탁을 두드리자, 모인 승려들과 중생들이 합장을 하였고, 쇼가 인자한 웃음으로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범종을 칠 시간이군요. 이것으로 법회를 마칩니다. "

말을 마친 쇼가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즈린이 준비해준 간식과 술을 마시고는 불경을 어깨 사이에 끼우고 목탁을 챙긴채로 의기양양하게 일행이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오늘은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법회에서 좋은 가르침을 전했어. 계속 공부해서 비사문천의 화신으로서 더 좋은 가르침을 설파해야지.'

그렇게 여러가지 보람찬 생각을 하며 범종각 뒤쪽을 지나가던 쇼의 귀에 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파고들었다.

"정말 여기까지 왔으니 한 건은 터지겠지?"

"그렇다니까. 여기 비사문천인 호랑이요괴가 돈을 불러온다는 소문이 마을부터 자자하지 않나. 자네는 집에서 잠만 잤는가?"

"그전에는 법회에서 주지승님 말씀만 들었지 않나. 참으로 불심깊고 좋은 말씀을 잘하시는 분이시지.

"그렇고말고, 다만 그 분은 대표이신 분이 요괴들만 챙기지 않나. 이 비사문천님은 인간도 복으로 챙기신다네."

"으하하하핫! 에끼 이 사람아! 농도 잘하는구만."

"얼굴까지 보고 법회까지 들었으니 재물이 굴러들어오길 기대해봐도 좋네. 그러라고 온거 아닌가."

"으허허, 부처님의 자비도 받고 비사문천님의 재복도 받고, 명련사는 참 믿을만 하구만."

"암, 그렇지. 이 사람아. 하하하핫."


그 말을 들은 쇼는 표정이 굳으며 순식간에 세 명 사이로 파고들어 창 대신 가지고 있던 목탁을 두드리며 말했다. 

"딱한 중생들이여, 내가 누군진 아십니까?"

"헉! 아이고,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하, 왜 그러십니까. 살려만 주십쇼, 비사문천님."

"암요. 비사문천님 아니십니까. 헤헤헤."

"방금 저의 법회를 들으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쇼가 차갑고도 매서운 눈초리와 말투로 당차게 버럭 외치자,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싹싹 비었다.

"아무래도 그대들은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으셨나봅니다. 제 능력이라는 잿밥에 말이죠."

아무래도 요괴이기에 목숨의 위험과 더불어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들이 눈치를 보며 말을 못하자. 목탁을 계속 두드리며 쇼가 말했다.

"분명이 번뇌를 버리고 그중에서토 탐욕을 하지 말라고 했건만 대놓고 탐하다니 당신네들은 절에 있을 자격이 없군요! 이 절의 대표인 비사문천도 최고의 법회를 위해 불경을 공부하고 부처님의 말씀에 귀의하도록 최선을 다하는데 그러한 마음이 이심전심되기는 커녕 일확천금을 꿈꾸다니! 당장 반성하고 참선하도록 하세요!!"

감정이 들어간 목탁소리에 그들이 벌벌 떨며서 달아나듯 대웅전으로 눈치껏 달려가자, 쇼가 한숨을 길게 쉬면서 목탁을 든 두 손을 내려놓았다.

"참나. 뭐 저런."

그런 그녀는 한숨을 한번 쉬고 위에 있던 범종을 바라보면서 뒷짐을 지며 장고하기 시작했다.

'나의 능력은 매물을 불러모으는 능력, 이 능력으로 신도들이 몰린다지만 어쩌면 우리 절에서 탐욕이라는 번뇌는 내가 부르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는 한숨을 더 길게 쉬면서 내면속에서 나오는 한가지 생각을 덮어두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공부하고 노력해도 주변과 세간인식은 비사문천인 나보다 엄연히는 낮은 주지승이지만 거의 모든걸 이끌어가고 있는 뱌쿠렌에게 향해있는 걸 보면 불교계에서마저도 마치 나는 명예직으로 여겨진단 말인가?'

심호흡을 몇번하고 번뇌가 사라지도록 쇼가 한없이 목탁을 치자, 목탁 소리를 들은 나즈린이 다우징 봉을 세우면서 그녀를 불렀다.

"주인! 식사할 시간이야. 뭐하고 있어?"

"아, 나즈린. 번뇌를 털고있던 중입니다."

이마와 팔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소맷자락으로 쓰윽 닦은 쇼가 물집잡힌 손으로 인사하자, 나즈린이 놀라며 말했다.

"아니, 무슨 번뇌를 털어도 몸을 사려야죠! 뭔 목탁을 물집 다잡힐 정도로 친데.. 차가운 물 가지고 올테니까 아프지않게 찜질 좀 하세요, 무라사에게 부탁해서 젓가락질 무리하게 할 필요없이 부워먹을 수 있도록 식사는 죽이나 덮밥, 오차즈케로 준비해 놓을께요."

그리고는 애써 웃는 쇼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더운데 법회하느라 고생 많았어. 주인. 몸도 좀 챙기고. 요즘은 우리 절 최고인 비사문천답게 공부 열심히 하느라 멋지니까 좀 푹 쉬어,"

나즈린의 미소에 눈가도 비로소 웃음을 띤 쇼의 미소가 나즈린의 눈동자에 비치자, 쇼가 입을 열었다.

"네, 잘 쉬도록 할게요. 걱정하지 않도록."

웃으면서 같이 팔짱을 끼고 방을 향해 날아가면서 나즈린을 슬쩍 본 쇼가 흐뭇한 눈으로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되네었다.

'그래, 나에겐 서로 믿고 챙겨주는 나즈린이 남아있으니까.'

"자, 속도좀 내죠. 나즈린. 오늘 좀 배가 고프네요."

"어휴, 간식에 뱌쿠렌 몰래 술까지 챙겨드렸더니만. 요즘 학구열도 높아지시더니 먹성도 높으셔. 네, 가요. 가."

나즈린이 토라지듯 투덜거리자 쇼가 웃으면서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다들 기다리고 있던 식사자리로 들어갔다.

  1. 番傘 우천 시 쓰는 일본 전통우산 [본문으로]
  2. 南無三 불,법,승(佛·法·僧)이라고 불리는 3보에서의 믿고 신앙하는 귀의를 나타냄 [본문으로]
  3. 사사로운 개인적 일보다 공적인 일을 먼저 앞세운다. [본문으로]
  4. 산에 들어오면 반드시 물리친다 [본문으로]
Posted by 라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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